집행자 유천하 (2)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한 기습.
우웅-! 늘어진 시간 속에서 타천자는 의식이 이어지기도 전에 먼저 이능부터 발현시켰고, 그건 분명 본능적인 판단이었으니- 이 순간 타천자의 머릿속엔 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이 상황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꾸드득-!!
‘괴물.’
흩날리는 팔을 인지함과 동시에 제 몸을 공간의 저편으로 튕겨낸 타천자는 그곳에 분신체를 남겨두고선, 그대로 빠르게 그림자 속으로 녹아 들어가며 상황을 파악하였다.
물론, 설마 차원 단면 너머의 본체가 발각당하고, 이렇게 한순간에 공격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에 참작의 여지는 있었다.
이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능력의 사용으로 인해 정신이 분산되어 있었다 한들, 코앞에 다가와 있던 순간에도, 당장 검을 휘두르고 있는 저 순간에도, 저 검은 습격자에게선 지금도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아니, 인기척도, 소리도, 호흡도, 심지어 마력의 떨림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실로 현실인지조차 의심스러운 광경.
‘숙련된 암살자.’
그러니 저건 분명 상정치 못한 존재였고, 이건 단순히 실력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스슥- 당장 지금만 해도, 타천자는 저의 피해를 인지함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틈새와 현실을 넘나들며 제 몸을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하듯이 한순간에 수십 미터 너머로 흘려보내는 중이었고, 그건 분명 평범한 물리적인 차원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
[······.]
검은 눈은 분명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찰나의 찰나. 떨어져 나간 팔이 아직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는 잠깐 동안 타천자의 육체는 상당한 거리를 벌렸으나, 습격자의 눈동자는 그 시간의 틈새에서 시선을 보내왔다.
마치, 제 앞에 나타난 분신체가 허상이라는 걸 바로 간파했다는 듯, 이면 세계와 현실을 넘나들며 그림자를 타고 전이 중인 자신의 본체를 한순간에 파악해냈다는 듯이. 바로 그렇게- 유천하는 두 눈을 마주해왔다.
육체의 반응보다도, 마력의 반응보다도, 가장 먼저 반응을 내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내.
팟-
[···!]
한순간에 사라졌, 아니 확대되었을 뿐!
콰앙-!! 타천자의 감각이 흐릿해지는 형상을 감지한 순간 울려 퍼진 소리는, 상대가 이미 그의 코앞으로 다가온 뒤에야 귓가로 들려왔고,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냈다.
후웅- 하지만 이미 팔꿈치 밑으로는 사라져버린 오른팔과 어깨까지 날아가 버린 왼팔의 부재는 그저 허공에 헛손질을 그려냈고, 검은 궤적은 흙먼지를 갈라내며 쏘아졌다.
대기를 넘어서 전해지는 오싹한 살의.
콰드드득··· 우우웅-!!
그러므로- 테흘리안은 다시 그림자를 일으켰고, 그러면서도 빠르게 판단해보았다.
아니, 그건 공세를 가해오는 유천하 또한 마찬가지였고, 둘은 그 찰나의 틈새에서, 교차하는 마력 속에 서로를 파악해나갔을 뿐.
‘근접계열. 무투파. 최소 하이랭커급.’
‘근접전은 미숙. 빠른 건 마력 운용력.’
‘속도는 특성? 아니, 시야가 특성?’
‘분신체가 아니라, 그림자가 특성.’
그리고 그렇게.
‘승산은······ 희박.’
‘생포는 문제없음.’
서로의 판단이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휘몰아친 그림자의 마력과 유천하의 검격이 격돌하며 순간적인 반발이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유천하의 검격이 가속했으니.
우웅··· 콰직-!
콰아앙-!! 업륜의 마력이 빛을 발하며 한순간에 3차례에 걸친 찌르기가 벽을 꿰뚫었고, 순식간에 다중의 마력 장벽을 깨부수고 타천자를 강타한 별빛의 궤적은 그대로 타천자의 마력을 흐트러트리며, 마인의 육체에 구멍을 내버림과 동시에 지면에 내리꽂혔다.
[크윽··· 카악!!]
타천자의 입에서 토해지는 그림자.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발현되는 이능.
쿠드득··· 우웅-!
그렇게 마인의 신형은 그 순간 이미 바닥에 내려앉아 있던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든 뒤였으나, 유천하 또한 물이 흘러가듯 이동하는 타천자의 움직임을 바라보곤 지면을 박차면서 뛰쳐나간 뒤였을 따름이었다.
당연히, 차원의 단면 너머에서 일어나는 이능의 발현마저 모두 꿰뚫어내면서 말이다.
콰과과과과-!!
[크윽···!!]
쾅-!! 허공에서 터져 나가는 마력의 파문.
그렇게 다시 한번 도주한 타천자의 반격과 뒤쫓아간 유천하의 검격이 허공에서 격돌했을 땐, 이미 하오란과 집행자의 연극을 바라보며 도주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고,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마력에 사방에서도 비명이 쏟아졌다.
“여, 여기도···! 마, 마인이 있다!!”
“씨팔···!! 뭔 사방에서 지랄을···?!”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런 외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전혀 개의치 않고선 검을 뻗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자! 일반인들은 모두 저쪽으로···!”
한순간에 교차하는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두 사람의 공격은 쉴 새 없이 격돌하며 휘몰아쳤으니, 그제서야 타천자는 이 상황이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 뿐.
왜냐하면- 쫓기던 마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녀석을 뒤쫓던 집행자는 자연스레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흑···! 함정이었구나 배덕자들이여!!]
콰앙-!! 그러므로 다시 한번 더 지면에 내리꽂힌 타천자는 분노와 격정 속에 폭주하듯 마력을 터트렸고, 그대로 쿵-! 파동에 맞아 무너져내리는 건물 속으로 녹아들었다.
물론 그가 어디로 숨어들든 간에, 차원 단면의 너머로 도망치든 간에, 한번 그를 인식한 유천하의 시야는 끊임없이 그를 뒤쫓았으니, 타천자는 이미 자신의 도주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인은 생각했다.
집행자 중에서 이런 실력자가 있었는지, 아니, 이런 실력을 갖춘 이가 있었다면 진작 알게 되었을 텐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바로 그러한 의문점을 되새겨보면서.
‘도대체 누구지? 어떻게 이런 녀석이?’
타천자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해나갔다.
애초에 눈앞의 저 상대는 최소한 존귀한 그림자- 멸화급 주교 오스벨런과도 같은 실력을 갖춘 초인이었고, 그 적지 않은 집행자 중에서도 최소한의 기준점을 넘기는 건 고작해야 각 단체의 수장급밖에 없었을 따름.
그 이면순례자의 괴물- 멸천자 리들러를 제외하고서라도, 같은 곳의 서리백귀나 무련산하 삭월의 단주라도 오지 않는 이상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집행자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삭월의 단주는 륜을 사용하는 무인이라 들었고, 그 여자는 능력에 의지하는 이능력자였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
그러나 이 실력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카득··· 콰과과과과-!!!
그림자가 중첩되며 검처럼 휘둘러졌고, 칠흑의 별무리가 그것을 꿰뚫고 쏘아진다.
양팔이 사라져버린 육신이었을지언정 이능 자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타천자의 공격은 유천하의 공세에 제대로 된 반격도 가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니, 이 상황에 어찌 실력을 의심할까.
[크윽···!!]
첫 암습으로부터 고작 10초도 안 지난 상황에 이미 승산이 예상되었을 정도로. 그렇게 전황은 빠르게 기울어져 가기 시작했다.
허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저 기묘한 관측 능력에 계속해서 본체의 위치를 피격당하고 있긴 했으나, 물질에서 벗어난 저의 이능은 교주께서 부여하신 능력과 만나 흔치 않은 현상을 자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테흘리안 자신의 실력 또한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말이다.
그러므로.
[어디 한번 쫓아와 봐라!!]
쉽게 목을 헌납해 줄 생각 따윈 없었다.
콰득···! 파아앙-!!! 순식간에 그림자의 장막이 펼쳐지며 거리 곳곳으로 쏘아졌다.
유천하의 공세에 한쪽 발이 마저 잘려나갔으나 그는 이미 사지를 멀쩡히 보존하는 것 정도는 포기한 지 오래였고,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우선 무사히 도주에 성공하는 것뿐.
카드드득-!! 그렇기에 한순간에 그림자로 녹아내린 그의 형체는 현실과 이면세계를 넘나들며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그대로 연결된 도시의 그림자를 통해 최대한 존재감을 분산시키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유천하조차 뒤쫓기 힘들 속도로.
정말 마력 그 자체의 성질과 동화되어.
물론 유천하의 시야에는 마인의 핵이 어디로 이동하는지가 엿보였으나, 확실히 물질마저 투과하며 뻗어 나가는 마력 자체의 확산 속도는 그로서도 쫓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미 본체를 파악한 이상 놓칠 이유는 없었지만, 포획까진 시간이 걸릴 만한 상황.
허나- 그럼에도 유천하는 담담했다.
“그곳. 좌측 상단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담담함에는 이유가 존재하였으니, 대지를 박차던 유천하의 입에선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건 상대의 위치를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물론.
“잘했어요.”
[······!!]
후우-! 그 대상은 정해져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림자의 실을 타고 빠르게 도망치던 타천자는 뭉개진 감각 속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제가 도망치는 방향 앞에 나타난 잿빛 머리카락을 한 여인을.
무척이나 차가워 보이는, 아니 실제로도 그림자로 변화한 육체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오라를 품고 있는 그녀를.
타천자는 똑똑히 목격하게 되었다.
[아.]
또한, 그 순간 뻗어진 새하얀 손까지도.
후웅··· 콰드드득-!!!
탁- 그렇게 라피냐의 손이 혹한을 머금고 그가 흘러가던 벽을 짚었으니, 그러자 백색의 겨울이 건물을 뒤덮었고, 타천자는 한순간에 덮쳐온 한기에, 얼어붙어 가는 마력 속에 뒤늦게나마 상황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너, 너···! 느은······!]
눈 깜빡할 사이에 건물째로 마력까지 모조리 동결시키는 능력을 목격하였기에. 이능을 발현하기도 전에 겨울이 저를 덮쳤기에.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 여인을. 마인을 사냥하러 돌아다니는 이를 알고 있었기에.
[증오스런······ 이면··· 례······.]
바로, 저를 습격한 곳이 어디였는지를.
“쉿.”
콰지직-! 살벌한 소리를 들음으로써.
타천자는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새하얀 눈송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에, 근처에 있던 빈민들은 물론이고 헌터들까지 부리나케 도망가버린 뒤였으니, 낡아빠진 건물이 즐비했던 거리에는 어느새 적막이 내려앉았다.
아니, 애초에 지금 멀쩡하게 그곳에 서 있는 건 단 두 사람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후우웅.
거기에 기후와는 맞지도 않은, 새하얀 눈송이까지 흩날리는 중이었기에, 아무나 다가가기엔 실로 묘한 분위기가 자리했을 뿐.
허나, 그곳에 있는 이들은 그 분위기에도 개의치 않고 얼어붙은 건물을 바라보았고, 그러면서도 담담히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참··· 정말로 이 녀석을 잡아버렸네요?”
“애초에 그러려고 온 것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여태까진 계속 놓쳤었거든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렸고, 제 옆에 있던 남자- 유천하에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한 명이 합류하자마자 이렇게 잡아버리니··· 확실히 그 눈, 되게 쓸만하네요.”
“······좋은 특성이지요.”
“마력을 모두 꿰뚫어 보니까 직접 간파하진 못해도 본체의 위치를 특정해낼 수 있다라··· 솔직히 응용할 구석이 정말 많겠어요.”
라피냐는 한 손으로는 타천자가 숨어 들어있던 장소, 그러니까 그림자가 녹아들어 간 외벽을 더 꽁꽁 얼려버리면서도, 동시에 탐이 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말해왔다.
물론, 그와 반대로 유천하는 라피냐의 능력에 더 관심을 내비쳐 보였지만 말이다.
“그것보다··· 마력 자체의 속성입니까?”
유천하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체감되는 싸늘한 한기에, 다시 주변에서 메말라가는 습기를 느끼며 라피냐에게 질문을 건네었으니. 이건 그로서도 조금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냉기가 아니었던 탓.
그리고- 그러한 유천하의 물음에 라피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나 상당히 뜻밖의 이야기까지 꺼내오며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 저요? 예. 특성도 이거긴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마력 자체의 속성이 있긴 했어요. 뭐냐··· 그, 동양 쪽에서는 구, 뭐시냐··· 절맥인가 뭔가로 불린다고 듣긴 했네요.”
“······구음절맥?”
“아, 예. 그거였던 거 같네요.”
유천하는 미묘해진 표정으로 라피냐를 바라보았고, 그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사실 설명하기 귀찮았기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내저은 그였지만, 유천하는 지금 그녀의 말에 약간의 흥미를 느끼었을 따름.
물론 이미 예전부터 라피냐의 마력이 저렇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능력을 사용하는 걸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한기가 더 강하기도 했고, 지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가 다소 친숙하게 들렸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절맥이라면, 분명히 기가 혈맥을 틀어막고 있어야 했을 터인데, 만상의 눈에 엿보인 라피냐의 마력은 아무런 문제 없이 도도하게 순환하고 있었다.
하여, 그걸 예전에 관측해봤던 그로서는 저 말이 의아하게 느껴진 것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유천하는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특성으로··· 절맥을 이용하고 있었군.’
이런 세계이기에 가능한 조화인 걸까? 유천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타천자를 붙들어놓기 위해 계속해서 마력을 사용 중인 그녀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확실히 마력이 흘러가는 통로 중 몇 군데엔 다른 곳보다도 더 강한 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홉 군데에 기가 모여드는, 그것도 음기가 모여드는 지점이 있었을 따름.
그러나 라피냐의 특성이 얼음과 관련된 속성을 다루는 능력이었던지라, 아무래도 그 덕분에 그녀는 일반인이었다면 오히려 요절했을 기운의 순환마저도 저리 아무렇지 않게, 무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러한 사실을 의아하게 여기지도 않을 만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말이다.
무학적인 관점에서 절맥이라는 특질이 갖는 여러 리스크와 장점이, 이능과 결합하는 것만으로 온전히 장점만 남게 됐으니 유천하로서는 다소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혹시, 탑이 아닌 자연 각성자셨습니까?”
“음···? 어떻게 아셨어요? 예. 한 6살인가. 그때 어쩌다 보니까 자연 개화했었거든요.”
“한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짙더군요.”
사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개화를 했다면, 그전에 절맥으로 인해 쓰러지든, 죽든 했을 것이란 게 추측의 이유였다.
다만, 저건 둘러대려고 하는 말이었을지언정, 실제로 그가 느끼는 부분이기도 했다.
애초에 당장 건물째로 얼음조각상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그런지, 대기 중에 존재하던 수분마저 모조리 집중되어 얼어붙고 있다는 게 풍결의 가호를 통해 느껴지고 있었으니, 이곳은 마치 사막과도 같아지는 중이었다.
물론 일반인들에겐 소름이 끼칠 만큼 오한이 드는, 차갑고도 건조한 사막이겠지만- 어쨌든 확실히 상당한 현상을 자아내는 이능.
유천하는 잠시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려보았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보았다.
카드득.
순간, 무언가의 변화가 감지된 탓이었다.
“······자···.”
그리고- 그 변화는 다름이 아닌, 얼어붙어 있던 타천자가 꿈틀거리는 것이었을 뿐.
“······대체······ 게 무······ 슨······.”
하지만 의식이 되돌아오고 있다 해도 타천자의 본체와 마력이 라피냐의 마력에 얼어붙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저 상황에서 타천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유천하와 라피냐는 담담히 마인을 응시했다.
아니, 애초에 녀석을 생포하려고 온 것이었던 만큼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두 사람에겐 그다지 위협이 안 되었던 탓이었다.
설령 타천자가 폭주를 하게 되더라도.
“혹시나 해 물어보는데, 이 녀석. 설마 지금 그것까지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거라면···? 아. 예. 그건 없습니다. 다만, 있어도 지금이라면 문제없을 것 같군요.”
“하긴, 사례만 늘어나는 셈이겠네요.”
하지만- 타천자는 삐거덕거리는 의식 속에서도 제 앞에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유명하고도 증오스러운 하이랭커, 트리난 라피냐와 조금 전까지 그의 전신을 난자했던 정체 모를 하이랭커급의 남자를. 이를 악물고선 똑똑히 노려보기 위해서 말이다.
“······러운······ 자······ 흰······.”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서히 회복되는 의식 속에 그는 생각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게 분명했던 탓.
설마 근래 주교급의 행방이 왜 여럿 사라졌다 싶었더니, 이면 순례자에서 행동에 나섰던 건가? 아니, 분명 이런 조합에게 기습을 당했다면 대부분 어쩔 수 없었을 터였다.
고작 저 자신을 잡으러 왔다기엔 하이랭커급의 각성자가 2명에 다른 집행자까지 동원된 마당이니, 분명 이 역겨운 집행자들은 저를 잡아다가 정보를 캐내려 할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생포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한들 이미 심연에 영혼을 바친 자신이 쉽게 정보를 뱉진 않겠지만,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보를 캐낼 수단 정도는 준비해놨을 거라 가정하는 게 맞았을 뿐.
허나, 정말로 그리된다면 추후 예정된 테러와 계획까지 모두 어그러질 테니, 타천자로서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치욕스러웠다.
차라리 한 사람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피해를 감수하고 도주를 해보겠지만, 마력까지 얼려버리는 서리백귀의 능력이나, 차원 너머를 꿰뚫어 보는 저 정체 모를 남자의 감각은 그에게 크나큰 절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위대한 그림자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그분께 폐를 끼쳐야만 했으니- 타천자로서는 실로 절망스러웠던 것이었다.
하물며 지금 이곳에 다가오는 집행자의 숫자는 고작 저 둘이 끝이 아니었고 말이다.
“벌써 끝난 건가. 확실히··· 빠르군.”
“음? 생각보다는 늦게 오셨네요.”
저벅-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다가오는, 기이하면서도 방대한 마력을 가진 남자.
“······어차피 내 능력은 시가지에선 적합하지 않으니까··· 요.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차마 광산까지 보내긴 좀 그렇잖아요.”
“예. 저도 만약을 대비한 것뿐입니다.”
정확한 무력은 측정할 수 없었으나 마력량만으로도 무시할 수가 없는 존재감이었으니, 점점 확실시되는 듯한 저 자신의 처우에 타천자는 두려움과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어이없게 본체의 위치를 들킨 것도,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할만한 전력의 격차로 습격을 해왔다는 것도, 모두 불쾌했던 탓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해방하거라.]
갑자기 타천자- 황혼급 주교 테흘리안의 머릿속으로 어떠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도 그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면서도 다시 경이로운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 순간에 들려올 리가 없는 목소리가 말이다.
타천자는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
하지만.
[그곳에서 인과의 끈이 느껴져, 네게 명하노니. 너는 목숨으로 그것을 가려내거라.]
제 심장에서 일렁거리기 시작한 침식의 마력도, 저 고귀한 목소리도, 모두 거짓이 아니었으니- 타천자는 그림자의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제껏 심연에 잠겨있으셨던 위대한 이, 그림자 교주께서 지금 제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갑자기 왜 말을 건네오신 건지를.
목소리가 주목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카드득.
전해지는 침식의 마력 속에, 요동치는 제 심장의 근원석을 느낌으로써. 해방되는 무언가를 느낌으로써,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