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순례자 (5)
지난 주중에 있었던 유천하와의 대화.
분명 그날의 시작은 유천하의 걱정을 덜어주고, 다시 모두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해보는 게 목적이었으나- 결국에는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으로 변질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랬습니다.’
‘다시금 피투성이가 된 하린 씨를 보고 마인을 사냥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유천하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이하린의 마음은 같이 몽글거렸고, 흐느적 녹아내리더니 다시 삐죽거렸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자신이 다쳐서 쓰러졌던 모습을 보고 마인 사냥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해온 유천하의 진심이, 그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고백해온 유천하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뭉클하게 다가왔기에.
다시- 반대로 저 때문에 그가 위험한 일을 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위험에 저가 저질러놨던 일들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세부적인 이유는 조금 달랐을지언정 복잡한 심경을 느끼고, 그에 불만은 가졌던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저런 이유로 마인을 잡으러 간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저 멍청이는.
유천하가 말한 이유에 해당되는 건 그곳에 있던 아리엘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하린도 아리엘도, 두 사람 모두 유천하가 왜 자신들에게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으려 했는지는 알 것 같았으나, 반대로 저런 이유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들을 걱정해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한들, 그게 고맙다고 한들, 그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가볍지가 않았다.
유천하가 이하린을, 다시 아리엘을 걱정했다면- 두 사람 또한 유천하를 걱정하였다.
그 걱정의 발로가 어떠한 색으로 칠해져 있든 간에, 두 사람 모두에게 유천하는 생명의 은인이었고, 소중한 친구였으며,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다시···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말하면···.
물론, 그렇다 한들.
-결국 지금의 우리로는 뭘 해도 또 걱정시킬 거 아니야. 따라가지도 못하게··· 진짜···.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유천하가 마인 사냥을 하고자 한 이유가 그곳에서 기인하였기에, 유천하의 마음이 조금 더 깊은 진심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을 받아들였을 뿐.
속상하지만 서로의 실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자신들의 걱정이 다시 유천하를 걱정시킨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가장 최선은 결국 유천하가 마인 사냥을 그만두는 것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고, 유천하는 집행기관과 함께하면서까지 확고하게 마음을 정해버린 상태였다.
그러니 아리엘은 자신의 부족함에 속상한 기분을 느꼈고, 결국 승천제에서의 일까지 되새기며 그 마음을 억눌렀을 따름이었다.
유천하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일개 생도에 불과한 자신은 민폐밖에 안 될 터였으니까.
하지만.
-하린이 넌 어떻게 할 거야···? 괜찮겠어?
-생각해봐야겠어요···. 어떻게 할지를.
그와 반대로- 이하린으로서는 그 상황을 조금 더 명확하게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속마음속에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서로의 목숨의 가치가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간다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이유였으나, 그녀의 마음속에서 유천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져간다는 것도 중요하였으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건.
‘그림자 교단···. 하필이면 이 시기에···.’
바로- 지금 유천하가 뛰어든 판은, 분명 원작의 흐름 속에서도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유천하는 단순히 집행기관과 함께한다고만 했지, 어떠한 장소에서, 어떠한 목적을 갖고 움직인다고는 확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과 지금의 정세를 생각해보자면 유천하는 그림자 교단을 노리는 중이었고, 집행기관 또한 대부분은 지금 남미에 신경이 집중되어 가는 시기였을 뿐.
아프리카에서 요동치는 심연과 마인들의 암약은 이미 절반 가까이 몰려가 있는 승천자들의 의해서 제어되는 중이었으나, 남미에서 벌어지는 교단의 약진은 어떤 기점을 통해 연맹에 발각됨으로써 전보다는 조금 더 큰 규모의 혼란을 앞두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물론.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요. 티르유 씨.
그 흐름을 만들어낸 건 그녀였고 말이다.
2년, 아니 이제는 3년에 더 가까워진 지난 시간 동안 이하린 자신은 분명 수많은 위험에 대비해왔고, 커다란 흐름들을 사전에 미리 뒤틀기 위해 여러 밑밥을 깔아왔었다.
저 스스로 등천의 구도자에 들어간 것도, 티르유와의 거래를 통해 여러 정보를 흘려왔던 것도, 모두 그러한 준비의 일환이였다.
비록 그로 인해 발생한 사소한 뒤틀림, 카룬드의 습격이라든가, 위타극의 변덕이라든가, 그런 것들에는 그녀 자신 또한 휘말려 위험해질 뻔하였으나 그래도 정말 더 위험하고, 커다란 재앙은 점점 막아내고 있었을 뿐.
적어도 지금까지의 흐름대로 사전에 계획이 발각당하고, 꾸준히 주교급을 토벌당해온 그림자 교단이라면 ‘원작’에서처럼 대규모의 습격을 벌일 여력 정돈 잃어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아직은 그래도 위험한데······.’
그렇다 한들, 지금의 교단이 갖고 있는 여력만으로도 멸화급 한, 두 개체를 떨어트리는 건 분명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그 초점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원래 자신이 설계해둔 흐름대로라면, 10월 안에 한차례 대규모 토벌이 발생하고, 다시 루타텔과 휴네 리들러의 손에 교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인이 격퇴당해야 했을 터.
그러나- 시간은 아직 7월에 발을 들이는 중이었고, 하필이면 이 시기는 가장 많은 변수가 생겨날 수 있는 위험한 시점이었다.
승천제에서의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혹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은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로 인해.
교단의 지침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그 무엇도 확신할 순 없었고, 그렇기에 남미의 정세는 어떻게 변화할지 몰랐으니, 그 변화의 흐름 가운데엔 유천하를 위험케 할만한 요소 또한 분명 충분하였던 탓이었다.
하니, 이하린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자신이 유천하의 옆으로 다가갔을 때,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상황의 위험성- 그러니까 저가 아닌 유천하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과 자신이 직접 판에 끼어들었을 때 유천하에게 가해지는 위험을 제 손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를. 그 수많은 변수들을.
그녀는 양손으로 검을 부여잡고선, 차갑게 가라앉은 의식 속에 오랜 시간 고민하였다.
그리고- 이내 결론은 내려졌을 뿐.
-저는··· 그래도 따라가야겠어요. 이런 저라도 도와줄 방법이, 이유가 있으니까요.
-방법···? 이유···?
-네. 그러니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3월의 이하린과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변화인 만큼, 벽을 넘어선 수준은 아니었으나 여명급 정도라면, 아니, 카룬드 정도의 타천자라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고, 황혼급을 상대로도 제 한 몸을 간수할 자신은 충분히 있었다.
하니, 변수를 고려했을 때 폐가 될 확률보단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터.
유천하가 정확히 어떤 상황에 휘말리게 될지 모르는 판국에, 언제 어느 시점에 교단의 반격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에, 이하린에겐 그 누구보다 특별한 무기가 있었으니까.
아니, 유천하의 실력을 생각하자면, 그리고 그가 위험해질 만한 상황을, 하이랭커급의 강자들이 만들어내는 전투에서 사소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변수까지 고려해보자면.
분명- 이하린 자신의 저작권리의 가호도, 아리엘의 언령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직접적인 전투를 생각해봐도 밸런스만 갖춘다면 어떻게 멸화급 주교를 상대로도, 유천하에게 방해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터였고, 그 부분에 대한 가능성은 비록 허상이지만 승천제를 통해 분명 확인된 바였다.
하물며 오스벨런의 특성과 자신의 특성 <검의 반려>는 상성도 나쁘지 않았을 따름.
-저희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러니- 이하린은 결정을 내렸고, 그녀는 빠르게 여러 사안을 고려해 판을 짜올렸다.
집행기관, 아니 저작권리의 가호를 통해 간접적인 서치로나마 유천하가 이면순례자와 접촉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녀도 그와 비슷한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었고, 말이 나오지 않게 편성을 해갈 필요도 있었을 뿐.
그러므로- 이하린은 그녀를 섭외했다.
현장에서 민폐가 되지 않을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밸런스를 고려했을 때 분명 유천하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사람. 아니, 그를 돕는 데 적극적으로 임할만한 사람.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저가 이상한 행동을 벌여도 믿고 따라와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리고 그렇게.
-혹시······ 마인 사냥··· 좋아하세요?
그녀는 최소한의 준비를 맞출 수 있었고, 이 순간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물론- 조금은 이상한 방법으로.
***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예요···?”
애처롭게 저를 올려다보는 큰 눈망울.
티르유는 말없이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
뭐라고 해야 할까- 왜 이러나 싶은 기분.
갑작스럽게 면담을 요청하더니 건네오는 애교 아닌 애교에, 그리고 이하린을 따라온 유망주들이 보내오는 기대 어린 눈빛에, 그녀답지 않게 당황에 빠져버린 탓이었다.
물론 그에는 이 난데없는 만남과 구성도 어느 정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가장 컸던 건 지금 이하린이 제게 건네온 말 때문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양손까지 꼬옥 그러모은 채로 말해오는 것치곤, 그 내용이 실로 미묘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마인을 사냥하고 싶다고?”
“······네에엡.”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하물며 갑작스러운 이하린의 행동도 행동이었지만, 그나마 이 애는 등천의 구도자 소속에, 저가 후원해주고 있는, 그리고 기묘한 서포트를 주고받는 관계라 칠 수 있어도 다른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원학회와 무련에서 소중히 여기는 아가씨들이 대체 왜 이하린과 함께 이곳까지 찾아와선, 저렇게 미묘한 기대와 함께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걸까- 바로 그 부분이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허나 그 내용이 내용이었기에 티르유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이내 차분해진 목소리로 의아한 점을 짚어나가 보았다.
“일단, 마인 사냥은 너희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난 생도가 마인 사냥을 한다고 해서 말릴 생각은 없어. 그건 솔직히 말해서 조금 과잉보호 같으니까.”
“······.”
“그리고 왜인지도 상관은 없어.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나도 특례법에는 불만이 많았고, 생도 시절엔 자주 그랬었으니까.”
그런데- 티르유는 담담히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할 거면 그냥 몰래 하면 되는 걸, 지금 이런··· 인원으로, 나한테 이 말을 건네왔다는 건.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거겠지?”
“······넵.”
“그리고 그게 나하고도 관련된 거고?”
티르유는 이하린에 대해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는 단순히 실력만이 아니라 그녀의 성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 행동 자체가 의아했을 뿐.
그렇기에 티르유는 어느 정도 사유를 짐작해보았고, 그러한 그녀의 말에 이하린은 별다른 말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했으니- 티르유는 다시금 말을 건네었다.
바로 본론을 듣고 싶었던 탓이었다.
“그래. 하린이 네가 나를 찾아왔다면,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온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러면 그게 뭔지부터 먼저 말해야지 않겠어?”
“······.”
“그니까, 일단 그것부터 말해봐 하린아.”
티르유의 의견은 분명 타당했기에, 그녀의 말에 이하린의 양쪽에 앉아있던 둘- 아리엘과 남궁설아 또한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이 제안을 먼저 꺼냈던 건, 그 시작은 다름 아닌 바로 그녀였던 탓이었고, 두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티르유의 반응이 상당히 우호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하린 또한 티르유의 성향을 알기에 이렇게 접근한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그냥 마인 사냥이 아니라, 이왕이면 정식으로 그··· 지금 준비되는 작전에, 어떻게··· 같이 끼어볼 수 없을까······ 그래서.”
“아니, 잠깐만.”
이 순간- 이하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티르유의 예상을 벗어난 말이었을 따름.
“작전···?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남미에··· 그림자 교단······. 안 돼요?”
“······뭐?”
물론, 이 말이 어찌 들릴지 알았기에 이하린은 처음부터 괜히 더 쭈굴거리며 운을 띄어보았던 것이었지만, 당연히 이런 사안이라면 티르유에게 그런 게 통할 리는 없었다.
아니,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이하린과 그녀 단둘뿐이었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게 아니었으니 사안의 중요성이 달랐다.
그리고 물론.
“설마, 하린이 너··· 약속을 어긴 거야?”
“네? 아···. 아, 아니에요! 그런 건···!”
티르유가 중요시하는 부분은 이하린의 입에서 기밀이 흘러나왔다는 게 아니라, 이런 곳에서 그녀가 말을 꺼냈다는 것이었다.
생도의 신분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를 꺼냈다는 건, 그걸 사용했다는 말 아니겠는가?
이하린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기밀을 알고 있다는 건 중요치 않았고, 저 능력을 연맹에도 보고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또 비밀 유지를 약속했던 것은 티르유 자신이었기에- 그녀에겐 그 부분이 중요했을 뿐.
애초에 페루에서의 제보도, 그 이전에 있었던 교단에 대한 제보들도, 모두 이하린의 가호로부터 나왔던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티르유의 표정이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럼?”
물론, 이건 이 자리에 있는 둘- 아리엘과 남궁설아를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이 없을지언정 이하린의 가호는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중요한 능력이었고, 대수롭지 않게 새어나간 한마디일지라도, 그걸 통해 마인들이 이하린의 능력을 짐작해낸다면, 그 순간 이하린은 마인들의 타겟이 될 터였다.
당장 지금 이하린이 얘기한 작전 또한, 따지고 보면 이하린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비록 제한이 있다 한들, 정보계열의, 아니 저렇게 넓은 범주의 이능은 절대 흔한 게 아니었고, 이하린의 이름 모를 가호는 분명 그 어떤 능력보다 가치가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티르유의 표정은 갈수록 점점 차가워졌고, 그런 그녀의 눈을 마주한 이하린은 살며시 눈을 데굴거리며 이리 답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아도, 믿어준 것뿐이에요.”
“······.”
저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기묘한 신뢰감이 느껴지는, 바로 그러한 대답을 말이다.
그리고- 물론 아리엘과 남궁설아는 정말로 이하린의 가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고 있었으나, 둘은 그저 각자의 기준대로 상황을 해석해보고 있었을 뿐.
아리엘은 그저 집행기관과 마인 사냥에 대한 정보를 유천하로부터 들었다는 걸 숨기려고 하나보다 싶었고, 남궁설아는 솔직히 말해서 그냥 도움이 필요하대서 온 것이었다.
하물며 그게 허가를 받아 마인을 사냥하는 것이고, 그 도움의 대상이 유천하라면야, 그 외의 자잘한 일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유천하는 그녀의 은인이었고, 이하린 또한 그날 그녀를 도와준 전우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이하린에게 아무런 제반 사정조차 물어보지 않았고, 아리엘은 이하린이 그저 유천하에게 뭔가를 더 들었나 보구나 하며 넘겨짚고 넘어간 상황이었다.
아리엘에게도 이하린은 항상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고, 은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
“······.”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그러면서도 이 상황에 별다른 의문을 품고 있지 않은 듯한 두 사람의 표정에 티르유는 잠시 고민해보았고, 이내 이하린의 말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알았어.”
이래서야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방금은 걱정되어 이러긴 했으나, 티르유는 이하린을 이미 한 사람의 공략자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의 판단을 믿어주었다.
비록 여리고 순한 모습 또한 자주 보여줘서 그렇지, 티르유는 이하린이 속이 깊은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다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부족하진 않단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내- 아까 전과는 달리 이하린의 요청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마인 사냥과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알아서 하라고 했겠지만, 정말로 남미에서 예정된 작전에 대해 알고, 또 그곳에 참여하고 싶어서 이렇게 저 아이들까지 데리고 온 것이라면 쉽게 볼 수만은 없었던 탓이었다.
하여, 티르유는 우선 그걸 확인해보았다.
“일단··· 그럼, 남궁설아랑 아리엘. 너희 둘은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모르는 거야?”
“아, 그건 아니에요. 그림자 교단하고 싸우는 일이라는 것 정돈 저희도 알고 있어요.”
“정확히는, 토벌 작전이라 들었습니다.”
곧바로 되돌아온 대답에 티르유는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이하린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 찾아왔냐고 묻고 싶긴 하지만, 일단 다 알고 온 모양이니까 숨기지는 않을게. 그래. 지금 집행기관하고 그림자 교단 토벌 건에 관해서 협업 조율이 이루어지는 중이고, 아직 편성은 완료되지 않았어. 등천의 대표는··· 내가 맡고 있고.”
“······.”
“하지만, 그런 만큼 무작정 끼어달라고 해서 끼워줄 수는 없어. 물론··· 어린 나이에 이런 위험한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건, 적어도 나는 상당히 좋게 생각하지만, 저쪽에서는 그런 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티르유는 그 말을 덧붙였다.
“너희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말해 봐. 과연, 너희가 정말 작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것뿐이거든.”
“······.”
“너희가, 정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그것도 무척이나 진지해진 목소리로.
아까보다 더 냉철해진 태도로 그렇게.
그리고 물론.
“예. 충분히, 도움이 될 거예요. 무조건.”
“······.”
그러한 티르유의 말에도 이하린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을 돌려주었고 말이다.
티르유는 차분히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으음.”
저 당당한 태도에 티르유는 원래 알고 있었던 그녀의 실력에 승천제 영상을 통해 봤던 모습들을 더해보았고, 다시 아리엘과 남궁설아가 보여줬던 모습까지 떠올려보았다.
협력전에서 그 유천하를 상대로 혼자서 유의미한 시간을 버텨냈던 이하린이나, 황혼급 주교를 상대로도 분투했던 남궁설아나, 하물며 여러 전제조건이 붙긴 했지만 멸화급 마수까지 떨어트렸던 아리엘의 실력이라면 분명 어지간한 등천자만큼은 도움이 될 터.
물론 평균적인 지점은 부족하겠으나, 최상위 유망주답게 이 아이들은 어지간한 등천자보다 뛰어난 장점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하니- 저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정과 실력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부여해줄 순 있을지언정, 과연 이들이 실제 현장에서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티르유로서는 그 부분이 조금 거슬렸다.
연맹에서 괜히 미성년 각성자에게 마인 사냥을 금지시키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티르유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해보았다.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지. 너희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것들을 상대로도, 아무렇지 않게 실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봐.”
“······어떻게 증명하면 될까요?”
물론, 지금 제 입에서 나올 말이, 저 애들에게 이런 조건을 걸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몇몇의 얼굴이 떠오르긴 했으나, 역시 티르유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건 고작 나이 같은 게 아니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은 등천의 구도자였고, 저 애들은 공략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건 단 두 가지.
“타천자. 랭킹이나 소속은 상관없어.”
오직- 지닌 마음가짐과 실력이었을 뿐.
“실제로 타천자를 사냥하거나 잡아서, 증거를 갖고 와. 그러면 바로 넣어줄 테니까.”
“······.”
“그게 작전에 합류할 수 있는 조건이야.”
그렇기에 티르유는 루타텔과 라피냐가, 혹은 유천하가 들었다면 인상을 찌푸렸을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건네었고, 생도들에게 주어졌다기엔 다소 위험해 보이는 제안에도 아이들은 그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였으니.
“······.”
“······.”
그리고는 이내- 이하린의 입이 열리며.
“예. 금방 잡아 올게요!”
망설임 없이 이러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 즉답에는 다른 이들의 문제 없다는 듯한 표정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나, 그걸 떠나서라도 이 순간 이하린의 표정 속에도 자신감이 가득 깃들어 있었으니, 이처럼 그녀가 자신하는 이유는 분명 존재했다.
왜냐하면.
지잉-!
비록, 전부는 아닐지언정 그녀는 분명, 상당히 많은 마인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타천자 오스벨런. 현 위치 론드리나.]
[타천자 파나엘라. 현 위치 코차밤바.]
[타천자 테흘리안. 현 위치 세로데···.]
[타천자 백······.]
다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러한 마인과 타천자들의 행적마저도 시시각각으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