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데 카사 사망 후 행적 묘연(정정)
그러니까.
-200517 에콰로드에서 검거 완료.
-최근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킴.
혹시나, 설마 했었던, 그 예상 그대로.
***
하오란 쟈오- 아니, 하오란은 제 스스로를 바퀴벌레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폄하가 아닌 좋은 의미로서.
“······끕?”
접경지에서 태어나 버려졌고, 살아남기 위해 그는 마공을 익혀 사람을 살해하였다.
제 손에 들어온 게 역혈마공이었기에 그는 역혈마공을 익혔으나, 그 손에 들어온 게 혈마공이었다면 혈마공을 익혔을 것이며,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싫어서 특례법에 응하지 않았고, 의무를 거부했기에 권리마저 잃어버려 적원회에 들어가 마인이 되었다.
오로지 제 삶의 권리를 지켜줄 우산이 필요했기에, 불필요한 위험 없이 목숨을 계속 부지하려면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었기에.
그건 분명 저 자신이 내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적원회에서도 목숨이 위험한 순간은 자주 찾아왔기에 그는 조금 더 편리한 삶을 갈망했고, 그렇기에 적원회주와 갈라져 회를 뛰쳐나간 페르데 카사를 따라 용병이 돼서야 비로소 삶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편한 일만을 수행하고, 대가를 받는다.
위험한 일은 보스- 페르데가 처리한다.
저가 한 일은 의뢰를 받고, 관리하는 것이었으며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재가공해 페르데의 의뢰 활동을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때로는 의뢰에 필요한 물품을 블랙마켓에 가서 구매한다거나, 의뢰에 필요한 정보를 블랙마켓에 가서 얻어온다거나, 힘없는 일반인을 납치해 협조를 요구한다거나, 뭐 그런 시시콜콜하면서도 자잘한 일들을 말이다.
하오란은 그 일들이 마음에 들었고, 그렇기에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렇기에 다시- 무기질적인 눈으로 그 대단했던 페르데를 토막 내던 어린 괴물에게 제 위치를 들켰을 때는 하오란 또한 제 인생이 끝났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네게 기회를 주마. 여기서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 다시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
-시간이 없으니 빨리 선택해 보거라.
그 괴물- 유천하는 하오란 자신의 몸을 검으로 푹푹 찔러대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리 말해왔고, 하오란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 결국 다시금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죽음이 무서웠기에.
다시 거부하면 그 막돼먹은 괴물이 제 몸도 페르데처럼 토막을 내버릴 것 같았기에.
그러면서도- 삶은 살아가고 싶었기에.
-분명히 말해주마. 내가 금제를 온전히 풀어주는 날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너는 그날 죽는 것을 거부했으며, 이건 네가 선택한 결과일 뿐이니까. 알겠느냐.
그렇게 그의 삶은 시한부가 되어버렸다.
물론, 유천하는 저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제 쓸모가 다하면 감옥에 처넣어주겠다고만 했었으니- 이 세계에 마인이 사라질 날은 없었기에 하오란도 처음엔 자기가 다시 자유로운 삶을 얻었다고만 받아들였다.
허나- 그건 그저 안일한 생각이었을 뿐.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마법처럼, 아니 정말 저주라도 건 것처럼 유천하는 하오란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뒤바꿔버렸고, 그는 죽지는 않되 시한폭탄처럼 터져대는 고통을 항시 품고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유천하와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벌써 2달이란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선 온몸의 혈도와 신경이 뒤섞여 꼬여 들어가고 있었으니.
그는 매일같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고, 온몸이 구속당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서 매일같이 엄습하는 고통은, 분명 그의 정신을 나날이 피폐하게 만들어주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한 달간 그는 무척이나 억울한 기분 속에 휩싸였을 뿐.
“······끄읍··· 끄읍?!”
하오란의 입장에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지 않은가? 유천하가 또 금제를 발동시킬까 두려워 열심히 남미에서 마인들의 정보를 모으고 있었건만, 지나가던 집행자에게 어처구니없게 붙잡혀버렸고, 결국엔 유천하를 만나지 못해 금제로 인한 고통이 시작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죽고 싶은 심···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개똥밭이라 한들, 이승이 더 좋았으니까. 하오란에게도 그것만큼은 분명한 부분이었다.
어쨌든, 그렇기에 하오란은 막혀오는 숨통을 부여잡고,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유천하에 대한 욕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이럴까.
솔직히 하오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저 자신은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고, 제 삶의 시작이 비루했기에 비루하게 살아왔던 것에 불과했다. 하니, 저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도 공략자가 되는 이들이 미친놈들이지, 저 자신이 이상한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감옥에 갇히는 건 그렇다 치겠으나, 일단은 아프지만 않았으면 했다. 삶은 소중했기에 죽고 싶진 않았으나 조금 편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 안 되는 걸까? 하오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하오란은 매일같이 다짐했다.
만약 다시 유천하를 만나게 된다면, 이미 붙잡혀버린 이상 그런 날이 찾아올 리는 없겠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 어린놈의 새끼한테 욕을 퍼부어주겠다고.
그 괴물 같은 놈이 시킨 일을 하다 이렇게 되었으니 그 정도는 해도 될 거라고, 바로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말이다.
“······.”
그리고, 그렇게.
“······끕?”
지금 이 순간- 하오란의 앞에는 무척이나 익숙한 사람이, 무척이나 익숙한, 무기질적인 눈을 한 검디검은 남자가 서 있었으니.
“한심한 것.”
“······끄읍?!”
하오란의 머릿속엔 무수히 많은 가정과 생각이 떠올랐고, 휘몰아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와선, 그 사람이 자신이 매일같이 생각하던 사람일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하물며 그가 이런 곳에는 올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야?
그리고 그 결과.
“일단··· 완화는 시켜주마.”
“끄읍?! 끄읍··· 끄읍···!!”
자신이 미쳐서 환각을 보는 건지, 아니면 정말 제 눈앞에 나타난 게 유천하 그 괴물 같고 개 같은 자식인지 고민해본 하오란은 마침내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제 다짐 또한 실천했고 말이다.
“끕··· 야··· 이 개 같······!”
아니, 정확히는.
“아는척하면 죽일 테니.”
“······은?”
“알아서 잘 처신하거라.”
실천하려는 시도를 했을 뿐.
“설명해줄 시간은 없으니 눈치껏 행동하거라. 그게 네게도 더 이로울 테니까.”
“······.”
차분해 보이는 눈빛 속에 흐르는 살기.
분명 담담한 목소리와 표정이었음에도 유천하로부터 새어 나온 살기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순식간에 하오란의 전신을 난자했고, 그 순간 하오란은 고통마저 잊어버렸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듯한 감각.
온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살의.
갑작스러웠으나 설명은 필요 없었다.
“······.”
그것만으로도 하오란에겐 충분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눈앞의 남자는 저 말대로 아무렇지 않게 저를 죽일 사람이었고, 하오란은 그걸 알았다.
고통 속에 맛탱이가 가버렸던 하오란의 정신은 오랜만에 마주한 소름 돋는 살기에 두들겨 맞고선 한순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그는 빠르게 제 본분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억울함이고 아픔이고 나발이고, 일단 눈앞의 남자가, 지금 이 상황이 더럽게 무서웠으니 취해야 할 태도는 하나뿐이지 않겠는가?
바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
“······예.”
“닥치거라.”
“엡······.”
하오란의 눈동자가 데굴거린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입을 다문 하오란의 머리가 데굴거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하고, 유천하가 그의 상태를 파악하던 순간.
바로 그 순간.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처음 보는 여인, 잿빛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한 사람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내부로 걸어 들어왔고, 그대로 자연스레 말을 건네왔다.
방문과 관련된 절차를 혼자 처리하고 오느라 유천하보다는 입장이 늦었던 것이었다.
“뭐예요. 벌써 확인까지 끝난 거예요?”
“예. 타진해보니 확실히 적합합니다.”
“······흐음. 볼수록 재주가 많네요.”
그리고 그녀- 라피냐의 태도와 그녀를 대하는 유천하의 태도를 본 하오란은 빠르게 어떠한 상황인지를 이해했으니, 유천하의 말을 이해한 그는 살며시 눈을 깔았을 뿐.
라피냐가 들어오자마자 짜릿한 살기가 한 번 더 저 자신의 목을 훑고 지나간 탓이었다.
하물며 그게 다가 아니었고 말이다.
“그것보다··· 일단 미끼로는 적합해 보이는데, 작전 중에 사망해도 문제는 없습니까?”
“······?!”
“예. 블랙리스트에 오른 놈이니까, 원래는 죽여도 무방한데 혹시 몰라 살려둔 거니까요. 만약의 상황이라면야··· 뭐, 괜찮겠죠.”
“······!!”
하오란의 입이 더 굳게 다물어진다.
“그것보다, 이렇게 구금된 마인까지 꺼내 가려면 저희 쪽에서도 사람을 같이 붙여줘야 돼요. 물론, 이번에만 쓰고 다시 집어넣으면 저도 있으니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 부분은 이후에 생각하도록 하지요.”
“······뭐, 일단은 알아만 두시라고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하오란을 바라보았고, 그리고는 잠시 상황을 점검해보았다.
유천하가 일반적인 생도는 아니었기에 제안을 들어주고, 다시 요청까지 받아주어 이렇게 바로 찾아오긴 했으나- 이미 붙잡힌 마인을 풀어줘야 한다는 게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제어할 수단이 확실하다고 하고, 이미 그 효과를 어느 정도 직접 눈으로 본 바가 있었기에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면순례자에서 포획한 녀석이 아니기에 그 절차가 귀찮기는 했지만, 정말 황혼급 주교 테흘리안을 포획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야, 그리고 차세대 승천자의 자질을 증명해낸 신인의 호감을 살 수만 있다면야 이런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라피냐는 하오란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이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우선 상황은 인지시켜줘야 했으니까.
“일단 너. 특례법 제3조에 의거해 임시로 특별사면 대상이 되었으니까 알아 둬.”
“······트, 특별 사면 마, 말입니까?”
“임시. 네가 여태 저지른 짓이 있으니까 허튼 기대는 하지도 마.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규정이고 뭐고 바로 죽일 테니까.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거든.”
협조하는 것- 라피냐의 손이 하오란의 이마를 콕 두드렸고, 그와 함께 순식간에 하오란의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싸늘한 한기.
하오란의 몸이 부르르 진동하였다.
“······옙.”
그리고는 다시금 눈을 내리깔았을 뿐.
별거 아닌 행동이었으나, 그 잠깐 사이에 느껴진 마력만으로도 하오란은 라피냐의 수준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이미 유천하의 태도로 그의 상급자라는 걸 깨달은 하오란으로선 라피냐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지금 흘러나온 저 말이나, 이 상황이나 저 여인은 아마 집행기관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한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더욱더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하오란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물론.
두 사람은 그러한 하오란의 반응은 신경도 안 쓴 채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고 말이다.
“만약 이번 일이 성공하면, 시우 씨랑 해서 정식으로 팀을 편성해드릴게요. 탐지능력부터 시작해서 심문 수완까지··· 특성이나 실력이나 확실히 별동대로 쓰기 좋아 보이네요.”
“팀이면··· 둘이서 말입니까?”
“설마요. 최소 5인으로 편성될 거예요.”
그렇게 흘러나온 라피냐의 말에 유천하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어째 생각보다 더 빠르게 신뢰를 쌓아가고 있기는 했으나, 저게 저 자신에게 이로운지는 정확하게 판단이 안 되었던 탓이었다.
“그럼··· 팀의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그거야 지금은 모르지요. 아직은 정보가 없어 추적뿐이지만 연구시설에 대한 단서만 잡히면, 대규모 토벌 건으로 변해 다른 기관하고도 협력해서 움직이게 될 테니까요.”
아- 그 말과 함께 말을 덧붙이는 그녀.
“만약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야··· 아는 사람하고 편성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아는 사람? 누구 말입니까?”
말에서 느껴지는 묘한 뉘앙스에 유천하는 그리 되물었고, 대답은 바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것도.
“티르유. 당신 후원자도 참여하거든요.”
그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정확히는 무언가가 우려되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
등천의 구도자 소속 공략자이자, 상위권 랭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사람. 그러면서도 해가 바뀔 때마다 랭킹의 앞자리를 갱신하며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는 그녀.
티르유 아르파냐는 지금 이 순간- 몹시 당황스러운 기분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다.
“······.”
티르유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물론, 저 자신은 분명 등천의 구도자에서도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다시 본인이 유망주였던 시절의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기에 적극적으로 유망주를 후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 누구보다 더 침식을 몰아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말이다.
애초에 자신이 이하린을 후원하는 것도, 유천하를 후원하고자 했던 것도, 그리고 다른 신입들을 도와주는 것도, 모두 그러한 맥락의 이유였고, 다시 저가 원했던 일이었다.
먼저 제게 다가와 공략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작은 소녀가 기특했기에, 죽을만한 상황임에도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며 쓰러지던 유천하의 모습이 기특했기에, 자신은 분명 그러한 마음가짐을 좋아했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
“······.”
“······.”
그런 티르유조차도 지금 제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엔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깜빡거리는 그녀의 눈동자.
그러면서도 그녀는 잠시 제 앞에 와있는 아이들, 그러니까 상당히 익숙한 한 사람과 다른 의미로 익숙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단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그리고는.
“방금 한 말···. 다시 한번 말해볼래?”
이내 얼떨떨해진 목소리로 이하린에게 되물어보았고, 그런 티르유의 말에 되돌아온 말은 역시나 아까와 같았을 따름이었다.
“마인 사냥 하고 싶은데··· 안 돼요?”
그것도- 아까보다 더 절실해 보이는 목소리로, 초롱초롱한 눈빛과 함께 건네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