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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192화 (192/205)

이면순례자 (2)

갑자기 왜 마인들이 잡혀 있는 시설로 불렀나 했더니, 설마 그런 목적이었던 건가?

혹시나 한 마음에 다시 한번 주변, 그러니까 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 나는 조금 미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에 잠시 후 다시 방으로 되돌아온 라피냐를 향해 진시우에게 들은 말이 사실인지를 물어보았으니- 라피냐는 이내 내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평온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이다.

“그래요. 심문을 시키려고 불렀어요.”

“······.”

뭐라 할까-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기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이내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지난번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치곤··· 생각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써먹으시는군요.”

“그런 말씀···? 제가 뭐라 했었나요?”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사람의 형상을 한 것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마모될 테니 위험하다든가, 혹은 성인도 안된 저희가 현장에 뛰어드는 게 조금 그렇다든가··· 뭐, 그런 말들 말입니다.”

지난번 만남에서 라피냐가 내게, 아니 정확히는 우리에게 했었던 말들을 말이다.

“아, 그 말···. 혹시 싫으세요?”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물론, 내 입장에서도 이왕 같이 협력을 하게 된 마당에, 괜히 미성년자를 배려한답시고 우리를 이상한 곳에 박아두거나, 전장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써먹으려고 하는 쪽이 더 좋긴 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온다면, 적어도 이후의 행동에서 쓸데없이 인도적인 배려를 한답시고 작전에서 배제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상황 자체가 불만인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 당황스러워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말로 우리를 제재하고, 다시 이렇게 끌어들였으면서 첫 시작부터 저런 걸 시켜오니 그게 좀 어이없었을 뿐.

그때 라피냐가 우리에게 했던 말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태도로 느껴졌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미 현장을 목격했는데요 뭘. 유천하 당신, 그때 검으로 마인을 쑤시면서 시우 씨랑 아무렇지 않게 농담까지 하고 있었잖아요?”

“······.”

“무표정으로 푹푹 찔러대는 걸 봤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애초에 상황이 위험해서 두 분 다 걱정한 건 맞는데,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시우 씨한테 했던 거였어요.”

우리 천하 씨는 너무 멀쩡해 보여서- 나는 라피냐의 대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우선 현장에 미성년자가 끼어드는 건, 그때 말했듯이 개인적으로는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이왕 이렇게 같이 일하게 된 마당에, 순례자의 자격까지 얻은 사람을 멘탈적인 면에서 걱정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

“물론 그건 단순한 자질의 측면이니, 현재의 척도는 아니겠지만··· 어찌 됐든 순례자에, 등천자에, 실력과 마음가짐, 당장 현재의 멘탈 상태도 저쪽과는 다르게 멀쩡해 보이니까 써먹을 수 있는 쪽으로는 써먹어야지요.”

“······.”

“그걸 못 하겠으면 아예 처음부터 마인 사냥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되는 일이고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내 옆에 앉아 있던 진시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듯 두드렸고, 그에 진시우는 인상을 찡그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해했습니다.”

진시우의 실질적인 멘탈 상태를 떠올린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말이다.

생각해보니까 그때도 라피냐는 내겐 그림자 교단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 멘탈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주로 진시우에게 표했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잠시 착각을 해버린 모양.

어째, 라피냐는 진시우의 멘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은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을 정도.

비록 판단의 기준 중 하나인 순례자의 자격은 이하린의 얼굴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다소 미묘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원작의 이하린도 자주 쪼그라들 뿐이었지 무슨 일을 겪든 간에 결국에 시간이 지나면 혼자서도 알아서 잘 이겨내긴 했었다.

아마도 지금은 나라는 사람이 있기에 그게 상대적으로 부각될 일이 없는 것이겠지.

어쨌든,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등천자든, 순례자든 나름대로 만상세계가 인정하는 기준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나 또한 빠르게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전부 다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굳이 심문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때는 딱히 보여드린 게 없었을 텐데요.”

하여,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무리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마인을 칼로 쑤시고 있었다 한들, 실제로 심문에 대한 경험도 꽤나 많다고 한들, 라피냐가 본 건 오직 그 장면뿐이었을 텐데- 이렇게 다짜고짜 심문을 맡기는 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문제없어 보인다고 해도, 적어도 일단은 생도인 한 나를 이런 일에 써먹는다는 게 약간은 이상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그러자.

“그야··· 유천하 당신, 꽤 재밌는 기술을 알고 있다면서요? 시우 씨한테 들었거든요.”

“······.”

“심문할 때 심리적인 타격도 없는 사람이, 심문하기에 딱 좋은 기술까지 갖고 있다고 하니까··· 한번 시켜보고 싶어지더군요.”

나는 내 물음에 되돌아온 라피냐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진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시선을 진시우는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

도대체 얘는 뭐 하자는 걸까 지금.

“······.”

“······.”

그걸 벌써 말했냐는 의미로 바라본 것이었는데 저 눈치 없는 놈은 무척이나 떳떳해 보이는,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노려보진 마세요. 그날 주교급 마인을 어떻게 추적했는지 물어보다가 알게 된 이야기였으니까요. 설마··· 그걸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잡아뗄 생각은 아니었겠지요?”

“······.”

“아니면, 말하면 곤란한 기술이었나요?”

하지만 적어도 라피냐는 내 시선의 의미를 이해한 모양인지 나서서 진시우를 변호해주었고, 나도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물론 괜히 집행기관이 탐낼만한 모습을 보여줘 관심을 끌고 싶진 않았지만, 이미 인턴으로나마 반쯤 발을 걸치게 된 마당에 그건 의미 없는 이야기였으니, 굳이 쓸 수 있는 수단을 눈치를 보며 숨길 필요가 있겠는가?

애초에 진시우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원래부터 딱히 숨겨야 할 부분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리 사용했던 것이었다.

그저, 저 반응이 어이가 없었을 뿐이지.

하여-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라피냐에게 의사를 표현해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거··· 금제? 라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능숙하게 쓰는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거든요.”

“그야··· 조건이 까다로운 기술이니까요.”

“지금 그거, 그 까다로운 기술을 구사하는 본인이 대단하다는 말로 들리는 거 알아요?”

“······.”

“노려보지 마세요. 농담이니까요.”

그렇게 나는 장난스레 흘러나온 라피냐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런 내 태도에 작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물론, 그래도 반쯤은 진심이지만요.”

“······.”

라피냐는 약간은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는 내게 그리 말해왔고, 그러면서도 다소 흥미가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그것도 상당히 묘한 말을 곁들여가면서.

“시우 씨한테 이야기를 듣고, 한번 무련 측에 공문을 보내서 알아봤어요. 그런 류의 기술을 갖고 있는 문파가 생각보다 많기는 한데, 그런 수준으로 실전에서 써먹을 만큼 기술을 보전하는 쪽은 극히 드물다더군요.”

“······시대가 시대니 말입니다.”

“예. 그거에요. 물론··· 무림? 이란 말은 저희에겐 낯선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끼리 다투던 시절에서 정체 모를 괴물들과 싸우는 시절이 되었으니, 100년이면 불필요한 기술은 모두 사장될만한 세월이니까요.”

하지만-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내 시선을 마주하였고, 지금 그녀의 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명 상당한 흥미로움이었다.

“그렇기에 제 입장에서는, 그러한 기술을, 그렇게 써먹어서 실제로 교단의 마인까지 찾아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관심이 갔고,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 싶어졌고 말이에요.”

“······사문에서 배웠습니다.”

“예. 그러시겠지요. 그냥 저로서는 그 부분에 조금 흥미가 가는 거예요. 물론 그쪽 분들이 그런 걸 밝히는 걸 되게 꺼린다고 듣긴 했지만··· 뭐, 그간 유천하 당신에 대해 알려진 부분이 사실상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그 말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하린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말했던 부분도, 검제에게 말했던 부분도, 처음 티르유에게 말했던 부분도, 전부 종합하자면 나로서도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하긴 했지만 아직도 숨기는 건 많았다.

하지만, 라피냐도 말했듯이 이 세계의 무인들 또한 어지간히 규모가 있고 알려진 곳이 아니라면 사문이나 무공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숨기는 편이었고, 나처럼 신비 문파 출신인 이들은 아예 대부분 그러하였다.

애초에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뿐.

처음 침식이 시작되고부터 한 세기가 흐른 지금은 세계 곳곳에 접경지가, 다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침식에 집어 삼켜져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아예 심연지역이 아니라면 침식지대 사이사이에는 잿빛탑이 비어 있는 공백 지대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였기에, 그런 곳에서 은거하는 문파들이 적지는 않다고 들은 바였다.

당연히 그런 곳에서 거주하다 세상에 나오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저마다 나름대로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었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각성자들도 은근히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기에,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그런 핑계를 대며 잡아떼고 있는 것이니- 내가 저 말에 답해줄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 것도, 혹은 이상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으니까.

“······.”

“······.”

그리고- 그래서일까?

“뭐··· 어쨌든, 그래서 보고 싶었어요. 저희도 기본적인 심문 사이클은 한 번씩 돌리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니까요.”

라피냐 또한 이어지는 내 침묵을 그런 맥락으로 알아들었는지 이내 말을 돌리었다.

아무래도 한번 찔러나 본 모양이었다.

“···일단 해보겠습니다만, 제 것도 마공을 익힌 놈들이 아니면 효율이 떨어질 겁니다.”

그러므로 나도 이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아주었고, 그렇게 화제는 다시 자연스레 마인들의 심문에 대해서로 넘어가게 되었다.

“예.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래서 일부로 마공을 익힌 놈들만 같이 모아놨으니까요.”

“······모아?”

“예.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혈마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마인들은 모두 이 시설에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이 혈마공이라 조금만 조정해도 해결되더군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저가 다녀왔던 곳- 다른 구역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다가가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울려오는 띠릭거리는 소리.

그렇게 간단하게 잠금을 해제한 라피냐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다시금 말을 건네왔다.

“솔직히 말해서, 우선 저번에도 말했듯이 아직은 저희도 교단을 추적 중인 상황이라,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그런 상황에서 심문에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다니··· 당연히 한 번쯤 시켜봐야 하지 않겠어요?”

“······.”

“그러니 부담 갖진 마시고 한번 능력이나 보여줘 보세요. 물론,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신다면, 저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유천하 당신을 현장에 투입해드릴 테니까요.”

그리고는- 그대로 문을 열어 재꼈을 뿐.

“그러니까, 이게 첫 번째 일이에요.”

“······.”

그러자 물론- 그에 따라 그 문 너머에 펼쳐져 있던 구금 시설과 쭈르륵 구속되어 갇혀있는 마인들의 모습이 엿보였으니, 나는 잠시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그런 내 모습에 라피냐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내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라피냐의 입에선 장난스런 말이 흘러나왔다.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심문을 못 해도 현장에서 굴리면 되니까요. 애초에 이미 심문을 했던 터라 딱히 큰 기대도 안 하고요.”

“······.”

“그저··· 생각보다 쓸모가 있으면, 더 좋은 대우로, 더 많은 권한을 줄 순 있겠지만요.”

나로서는 그저 마인들이 익힌 마공의 종류를 만상의 눈으로 빠르게 훑어본 것에 불과했지만, 라피냐에겐 다르게 보였던 걸까?

물론 저것도 한번 찔러나 보는 느낌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스웠다.

“그러니까.”

하지만 내게 큰 기대를 안 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라피냐는 아무렇지 않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한번 증명해보세요. 당신의 쓸모를.”

그것도 나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이면서.

손에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마법이 부여된 직사각형의 카드를 내게 흔들어 보이면서.

***

약간은 옛 추억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다, 다 말··· 끄르윽··· 큭··· 크윽···!”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인을 심문하니, 새삼스레 암영비천대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름 즐거웠던 시절.

“······끄르윽··· 크륵··· 다, 다··· 아···!!”

크아아악!!- 하지만 그건 이미 다 스러진 과거가 되어버린 기억이었고, 아무래도 마인 녀석에게도 아직 비명을 지를 기력이 남아 있는 듯했기에 나는 혈을 더 뒤틀어주었다.

비록 이곳이 중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암영비천대의 수장으로서 마인의 심문을 대강 처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뿐.

물론 내 손을 따라 박히는 기의 쐐기가 녀석의 혈도를 자극할 때마다 마인의 몸이 지진이라도 난 듯 꿈틀거렸으나, 솔직히 말해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이놈은 마인치곤 곱게 자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엄살이 심한 녀석이거나.

“끄륵··· 크악, 큭, 끄윽··· 카학!”

누가 보면 마치 내가 뭔가 심한 짓이라도 하는 줄 알 것 같았지만, 사실 내가 지금 이 녀석에게 하고 있는 일이래 봤자 기맥을 뒤틀고, 마기를 자극해 기의 흐름이 전부 신경을 통해서만 지나가게 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혈마공을 익힌 놈답게 기의 질이 무척이나 탁했기에, 그것만으로도 전신의 신경이 상당히 따끔해지긴 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물론.

“엄살이 심하군.”

“······끕, 끄윽?!”

솔직히 말해서 마기의 농도만 보더라도, 이놈 또한 최소 9명의 사람을 죽여 제 몸에 흡수한 쓰레기 같은 자식이었으니, 이런 놈이 고작 이 정도의 자극으로 이렇게 몸부림을 치는 게 나로서는 무척이나 우스웠을 뿐.

혈마공의 특성상 이놈이 사람을 흡수하면서 저질렀을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렇게 유의미한 고통도 아닐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다, 마, 말··· 끄윽! 마, 말 할··· 흡.”

“알았으니, 일단 다 끝나고 나면 듣지.”

게거품을 물며 몸을 떨어대는 녀석의 반응이 조금 우습게만 느껴졌던 나는, 신교에서 진행하는 기본적인 심문 과정의 순서를 따라 근육과 뼈를 조금씩 틀어주기 시작했고, 녀석이 혼절하든 말든 순서를 이어나갔다.

무림의 말로 하자면, 분근착골의 수법.

어차피 이런 놈들은 거짓말을 하든, 사실을 말하든 정확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으니, 중간중간 물어보는 것보단 우선 확실하게 혼을 빼놓는 게 더 효과적이었던 탓이었고, 이건 분명 예로부터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쓰였을 만큼, 오래되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물론- 원래라면 조금 더 심화 과정을 밟아줘야 했겠지만, 지켜보는 눈이 부담스러웠기에 나도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진행했을 뿐.

그러니까.

“끄윽··· 뼈, 뼈··· 끄르륵······ 제······.”

금제를 가해 기혈을 꼬아놓는다든가, 근골을 뒤틀어놓으면서 신경을 섞어놓는다든가, 뭐 딱 그러한 기본적인 과정 정도만 말이다.

물론 이것도 그리 인도적인 방법은 아니었으나,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으니 마인에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대우를 해준 셈.

신교였다면 일단 칼부터 꽂았을 터였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 있다면, 이 세계의 마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따로 교육을 당한 녀석들이 아닌, 암시장에 굴러다니는 비급을 익힌 놈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 정도만으로도 어느 정도 먹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

“······.”

나는 기어코 아예 아무런 미동도 없이 기절해버린 마인을 내려다보고는 손을 뗐고, 옆에서 어느 순간부터 입을 벌리며 바라보고 있는 라피냐를 향해 담담히 말을 건네었다.

“이 녀석도 바로 진행하시겠습니까?”

“······.”

“엄살이 심한 녀석이라 강제로 깨운 다음 물어보면, 바로 다 토해낼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물론.

“······.”

“······.”

그런 내 행동에 진시우는 그저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라피냐를 향해 거봐-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라피냐는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하.”

아무래도 그녀의 예상과는 달랐던 모양.

하지만 내게 직접 해보라고 시킨 것은 라피냐였고, 내게 이런 수단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진시우도 알고 있었으며, 나 또한 따로 숨길 생각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추궁당하는 게 귀찮아서 이렇게 좋은 수단을 안 쓰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지 않겠는가?

어차피 교단의 뒤를 쫓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상황도 몇 번은 더 일어날 테니 말이다.

애초에 사실 벌써 7명째 마인들을 들쑤시고 있던 만큼, 이미 앞선 과정을 거친 녀석들이 보인 반응이 있었기에 금제를 가하는 과정을 더 보여줄 필요는 없긴 했지만, 나로서도 그림자 교단의 정보를 얻고 싶었기에 그냥 계속 진행해나가는 점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뭐예요··· 당신?”

4명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지켜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이던 라피냐가 이제서야 다시 입을 열어왔고, 그녀는 무언가 혼란스러운 듯 내게 물어왔다.

그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도대체 지금 이게 뭐냐는 듯한 목소리로.

하지만 물론.

“수준이 낮아 생각보다 잘 먹히는군요.”

“······아니, 그게··· 뭔.”

“아무래도 여기는 다 잔챙이인듯합니다. 이래선 정보를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군요.”

나는 그녀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돌려주었고, 기절해 있는 마인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천천히 녀석을 깨워보았다.

“······.”

그런데 아무런 반응조차 없는 게 제대로 정신이 빠져나간 모양. 누가 보면 죽은 줄 착각하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의 혼절이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아까웠던 만큼, 나는 강제로 녀석을 깨워볼까 고민해보며 다시금 손에 기를 그러모았고, 그러자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라피냐가 다시 말을 건네왔다.

그것도 상당히 이상한 소리까지 하면서.

“아니··· 유천하 당신, 어디서 사람 좀 쑤시다가 왔어요? 뭔, 마인도 아니고 이게···.”

“······피곤하십니까?”

나는 정신이 나갔냐는 말을 완곡히 돌려서 답해주었고, 그에 눈을 깜빡거리는 그녀.

물론 마인이라 한다면 마인이 아닌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라피냐가 말하는 마인과 내가 생각하는 마인의 정의가 다를 터였기에 저 말은 나도 조금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러자, 그런 내 반응에 라피냐는 무언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입을 달싹거렸으니, 아무래도 심문의 수위나 그런 것보다는 내 태도에 할 말이 많은 게 아닐까 싶었을 뿐.

그렇기에 나는 적당히 선수를 쳐주었다.

“원래 침식 지역에서 생활할 때부터 마인은 자주 사냥했었습니다. 그때는 특례법이 뭔지도 몰랐으니··· 그냥 넘어가 주시지요.”

“······아니, 그게.”

“그리고 저희 사문은 원래부터 마공에 민감한 편이었습니다. 지금은 마인이라 하면 침식 마인이 대부분이지만, 원래 동아시아에선 마인이라 하면 이놈들처럼 마공을 익힌 쓰레기들을 일컫는 말이었으니 말입니다.”

비록 내가 알던 중원과 역사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이곳 또한 고대로부터 무공이 전해져온 건 맞았기에 나는 중원의 무림과 이곳의 무림을 치환하여 설명해줄 수 있었다.

나름대로의 명분 또한 있었던 탓이었다.

“무공의 역사는 사실상 인류의 역사와 함께 저 까마득한 옛날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마인에 대한 대응 방식 또한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왔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러한 시대기에 빠르게 사라져버렸지만요.”

“······그쪽 사문도 그렇게 오래됐나요?”

“예. 게다가 제 사문은 종교적으로도 뼈대가 깊은 무문입니다. 마인에 대한 대응 방법이 이렇게 계속 전해져 내려왔을 정도로요.”

사실 뼈대가 깊다 못해 마교라 불리긴 했으나, 그건 신교의 입장에서 보면, 정확히는 우리 시조 계파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억울한 소리였고, 실제로 신교 내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인 교리의 대부분은 정통적인 불가의 설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검혈마제가 이끄는 무리처럼 진짜로 사교에 가까운 급진파도 대거 포진하고 있긴 했으나, 그것까지 내가 신경 써줄 의리는 없었고, 일단 뿌리 자체는 그러했을 뿐.

그러므로 나는 당당하게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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