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순례자 (1)
또각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세계연맹의 본부가 위치한 워싱턴 DC. 그리고 그 도시의 구석 변두리에 마련되어있는 자그마한, 그러면서도 그 내부는 실로 효율적으로 설계된 어떠한 기관의 중앙복도.
정장을 입은 여인이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넘실거리며 그곳을 걸어 나갔고, 그런 여인의 발걸음을 따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내 그녀를 발견하고선 짧게 묵례를 건네왔다.
그러면서도 한편, 사람들의 표정 속엔 왜 여인이 이곳에 있는지 조금 의아해하는 모습도 엿보였으니- 그건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녀의 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여인.
“예. 그렇게 처리해주세요. 아, 예. 일단은 스카웃 리스트에 있기도 했고, 특급 주시 대상이기도 했으니까요. 한번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요. 처리할 일도 있었고요.”
[그렇군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팀은 계속 따로 추적을 진행하고 있겠습니다.]
“예. 조심해서 진행하고 계세요.”
이면순례자의 부단장- 트리난 라피냐는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게 워치 너머의 상대에게, 그러니까 교단을 추적하고 있는 집행자에게 간단히 지시를 내리며 이런저런 일정을 조율해나가는 중이었다.
물론 근래 남미의 상황이 미묘했던 만큼 원래라면 그녀도 현장에서 대기하였겠지만, 오늘은 그녀도 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뿐.
“아!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등천의 구도자에서 부단장님한테 보낸 서류가···.”
“등천에서요? 아, 그건 이따 처리할게요.”
그렇게 라피냐는 통화를 종료함과 동시에 제게 건네져 온 말에 간단히 대답해주었고, 그리고는 이내 잠시 일정을 되새겨보았다.
애초에 오늘은 현장에서 뛰는 동안 밀렸던 일들을 처리하러 온 것도 맞았던 탓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크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그림자 교단 추적 건의 보고부터 시작해서, 그와 관련된 다른 기관들과의 협업 조율, 또한 작게는 블랙리스트 점검과 새 인턴의 능력 확인까지.
이면순례자의 단장이 단장이었던 만큼, 사실상 기관의 공식적인 업무는 모두 그녀가 결재해야 하는 판국이었기에 라피냐가 하는 일은 무척이나 많았고, 그건 현장과 사무. 그 어느 쪽에서 봐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장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은밀한 승천자에겐 분명 현장이 더 어울렸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무리 라피냐 자신이 하이랭커라 한들 승천자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이 동등할 순 없었고, 하물며 각자에겐 맞는 적성이 있었으니- 능력과 적성,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지위만 생각해봐도 이쪽이 더 효율적이었기에 라피냐는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면순례자의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녀로서는 참으로 피곤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확실히 이게 효율적인 걸- 라피냐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기에 다소 번거롭고, 귀찮긴 했을지언정 그녀는 아무런 불만 없이 제 업무를 받아들였다.
승천자 수준까진 닿지 못했어도 자신은 하이랭커였고, 하물며 일반적인 조직관리와 운영은 그녀 자신이 더 뛰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일단··· 용건은 협업 편성 관련, 맞지요?”
“예. 그렇습니다! 자원자에 한해 팀을 편성 중이라는데, 일반 공략자들이다 보니 저희 쪽에서도 조정을 해줬으면 좋겠다 합니다.”
“예. 그럼 이따 해도 되겠네요. 우선은 우리 귀여운 인턴 친구부터 만나야 하니까요.”
이쪽이 더 중요해 보이거든요- 라피냐는 그렇게 생긋 웃어 보이며 대답을 돌려주었고, 그에 다가왔던 직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턴··· 아, 하긴 그렇겠습니다.”
물론 기관 간의 협업인 만큼 일반적이라면 전자가 더 중요하긴 했으나, 새롭게 합류하게 된 인턴- 아니 인턴이라기엔 그랬지만, 그 정체가 정체였기에 납득이 되었던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상대는 근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루키, 아니 원래부터 루키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공식적으로 작전이 시행되려면 추적부터 성공해야 하니, 뭐··· 괜찮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편성 관련 서류는 따로 책상에 올려둘 테니 이따가 확인해주세요.”
“예.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그렇게.
“마침 오늘 오는 그 아이가 신기한 재주를 갖고 있다고 들어서, 혹시 또 모르니까요.”
라피냐는 금일 기관에 방문하기로 예정된 자- 유천하에 대해 생각해보며 담담히 일정을 조율하였고, 슬슬 계획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는 대규모 척살에 관한 요소들을 점검해보며 사전에 약속된 장소로 걸어 나갔다.
일반 사무직원들이 돌아다니는 구역을 벗어나 지하로, 지하에서도 다시 수회의 보안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특수한 시설로.
그러니까.
[삑-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면순례자의 본부, 그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마인들이 감금되어 있는 곳을 향해서.
[제4실. 현재 입장 인원 2명.]
“아.”
그리고 지금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존재하였듯이, 먼저 시설에 도착해 라피냐를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문이 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하얀색 머리카락에 라피냐는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애초에 눈앞의 소년 또한 그녀가 오늘 하루 시간을 낸 이유 중 하나였던 탓이었다.
“어라?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었나요?”
“······.”
“왜 여기 있을까요? 우리··· 시우 씨는?”
그러니까 바로- 등천회랑의 생도이자, 유망주인, 그러면서도 이면순례자 소속의 집행자이기도 한 아이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열심히 학교에서 수업이나 들어야죠.”
“······짜증 나게 하지 마. 라피냐.”
“참··· 귀염성 없는 건 여전하네요.”
하지만 물론, 그 이유가 이유였던 만큼 라피냐는 진시우를 보자마자 장난스럽게 핀잔을 들려주었고, 그렇게 장난스럽게 건네진 라피냐의 말에 진시우는 곧바로 인상을 팍 찡그리곤 그녀를 쏘아붙였으니, 두 사람은 이내 남미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무척이나 달라진 태도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이런 사이였다는 듯이.
이면순례자의 부단장과 일개 집행자의 사이가 아니라, 꽤나 친근해 보이는 태도로.
“학교는 빼먹고선 이런 곳에나 오고요.”
“···직접 불러놓고선 쓸데없는 소리를.”
“뭐, 그렇긴 한데··· 솔직히, 생도로서 휴식을 취하라 했더니, 말도 안 들어먹다가 결국 이리된 셈이니까··· 이 정돈 괜찮잖아요?”
물론- 친근한 건 한쪽뿐이었지만 말이다.
“정말··· 열심히 나이에 맞게 학교도 가고, 친구도 만들고, 푹 쉬고 왔으면 했는데··· 사춘기라 그런가 왜 이리 속을 썩여대는지.”
“······.”
“우리 시우 씨는 여태 친구도 못 사귀고.”
허나 지은 죄가 있었던 만큼, 계속해서 놀려대는 라피냐의 태도에도 진시우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는지 그저 시선을 피해 보는 게 전부였으니, 그런 진시우의 태도에 라피냐 또한 이내 피식- 작게 웃어 보였을 뿐.
“하여튼 정말······.”
그리고는 그대로.
딱-! 그에게 다가가 진시우의 머리를 쥐어박았고, 당연히 그 손짓에 진시우 또한 곧바로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어왔다.
“지금 뭐 하잔···!”
하지만.
“쉬고 있으라니까 말은 안 듣고 말이야.”
“······.”
“우리 시우. 결국 이렇게 쫄래쫄래 끼어들어서 만족하니? 이 누나가 참 속이 썩어요. 너 때문에. 아직 꼬맹이면서 항상 정말···.”
진시우가 인상을 쓰든 말든 편하게 넥타이를 풀어헤친 라피냐는 한 번 더 진시우를 쥐어박았고, 그러면서도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듯이 휘저어버리곤 고개를 내저었을 뿐.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볼래?”
그리고는 이내- 마치 정말 가족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러한 행위가 무척이라도 익숙하다는 듯이. 그렇게 라피냐는 진시우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는 유천하 그 애까지 있으니까 적당히 잔소리만 하고 넘어간 거지. 혼자였으면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려버렸을 거야.”
“······.”
“아주 꽁꽁 얼려다가 회랑에 등기로 보내버리면, 그제야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면서 거기에 콕 틀어박혀 있지 않겠니? 응?”
하지만 그런 라피냐의 태도에도 진시우의 반응은 그저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 게 전부였고, 라피냐 또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진시우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 하얀 머리를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콕콕- 내리찍었다.
장소가 장소였기에 아무도 보는 이가 없어서 다행이지, 이 두 사람의 얼굴을 아는 이가 봤다면 분명 무척이나 놀랄만한 광경.
아니, 라피냐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진시우의 성격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만 있었어도 저러한 취급을 말없이 받아주고 있는 진시우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터였다.
지금 라피냐는 그를 마치 어린애라도 되는 것마냥, 애 다루듯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껏해야 친구 사귀어서 한다는 게, 하지 말라고 한 마인 사냥을 한답시고··· 참나.”
“······정정할 게 있는···.”
“뭐, 혹시 유천하랑은 친구가 아니다···?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려는 건지 나는 조금 의심스러운데. 그럼 명색이 집행자라는 애가 생도를 그냥 그런 일에 끌어들였다는 거니?”
“···일반 생도는 아니지. 그 녀석이.”
하지만 물론.
“조용히 하렴. 누나가 말하고 있잖아.”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만남이었던 만큼 라피냐의 입장에선 이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에 불과했고, 애초에 라피냐에게 진시우는 언제나 어린애와도 같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하물며 그 이후의 관계가 관계였기에, 지내온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더 그러하였다.
그렇기에 라피냐는 잔뜩 짜증 서린 얼굴로 저를 노려보는 진시우의 태도에도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러면서도 잠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도심에서 일어난 멸화급 마수의 습격.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솟구쳤던 빛.
마지막으로- 마력 폭주로 날아가 버린 크레이터의 가운데서, 저가 만들어낸 광경에 쓰러져 울고 있던 8살짜리 꼬마의 표정까지.
-······.
애초에 라피냐가 기억하는 진시우의 첫인상은 결국 폐허가 된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울고 있던 8살짜리 꼬마에 불과했고, 다시 그 이후로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후원해온, 그러한 아이에 가까웠을 따름이었다.
그녀가 집행자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던 날,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 속에서 마주한- 고아가 되었던 그런 아이.
그런 만큼,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던 어린아이도 이젠 어느새 그 시절의 그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라피냐에게 진시우는 언제나 말 안 듣는 어린애였고, 보살펴줘야 할 꼬맹이와도 같았다.
물론 실제로도 라피냐의 입장에서 진시우는 그저 더럽게 말은 안 들어 처먹으면서도 매번 위험한 일만 골라 하는, 무척이나 걱정만 끼쳐대는 미성년자에 불과했고 말이다.
“······짜증 나게 하는군.”
하지만- 당연히 진시우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태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을 따름.
안 그래도 그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오래된 기억들은 질풍노도의 시기와 만나 진시우에게 상당히 미묘한 성격을 안겨주었고,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진시우로서는 저러한 라피냐의 태도가 다소 꺼림직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그는 라피냐의 태도가, 저러한 행동의 배경이, 결국 어린 날의 저가 저질렀던 과오에서 시작된 연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어찌 저걸 담담히 넘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이 갈수록 그의 얼굴 위로도 짜증이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진시우는 인상만을 찌푸릴 뿐, 따로 라피냐의 행동에 화를 내진 않았는데- 그건 그 또한 라피냐의 태도가 지금에 와선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간 그녀에게 받아온 도움이 있었던 만큼, 라피냐에게는 그로서도 진심으로 화를 내긴 힘들었던 탓이었다.
이제는 그도 라피냐가 저를 숫제 가족처럼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제겐 그런 것에 화를 낼 자격이 없을 테니까.
그러므로.
“그것보다··· 정말 인턴으로 쓸 생각인가?”
진시우로서는 계속해서 제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탁- 쳐낸 뒤,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화제를 돌려보는 게 최선이었을 뿐. 그렇기에 진시우는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물론, 이렇게 계속 헛소리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고 말이다.
어쨌든- 그러자 그러한 진시우의 물음에 라피냐 또한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었으니, 그가 건네온 질문이 질문이었던 탓이었다.
“그럼 쓸 생각이지. 설마 빈말이었을까.”
“나는··· 그렇다 치고, 유천하 그 녀석을?”
“그 녀석을···? 음, 무슨 의미일까 그건?”
“유천하··· 그 녀석은 아직 생도니까.”
“하. 너도 거울이나 좀 보고 오렴.”
진시우의 말에 라피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버렸고, 이내 가볍게 대답해주었다.
“애초에 그 애를 생도라 생각했으면, 마인을 잡겠답시고 남미로 데려가진 않아야 했지 않겠어? 게다가 내가 봤을 때, 유천하는 너랑 같은 과야. 말려도 저 혼자 돌아다닐 게 뻔히 보이니 너랑 같이 묶어두는 수밖에.”
“······.”
“그리고 처음부터 스카웃 리스트에 적어뒀다는 건 시우 네 비문 등급으로도 열람 가능했을 텐데? 그걸 알고서 접근한 거잖아.”
무척이나 합리적인 말. 하지만 진시우로서는 조금 상황을 다르게 볼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타천자 하나 정도를 상대하는 거라면 모를까, 라피냐 네가 말해준 대로라면 상황이 다르지.”
“그래. 그래서 너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던 거고, 하지만 이미 너희는 일을 저질렀네?”
그대로 다물어지는 진시우의 입.
하지만 라피냐는 그러한 진시우의 반응을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도, 유천하 그 애도 얌전히 회랑에 있었으면 해. 그렇지만 두 사람 다··· 얌전히 그럴 성격은 아니잖아.”
“······.”
“하물며, 차라리 너를 빼면 뺐지, 그 애는 이미 등천자에, 등천의 구도자에서도 제대로 후원을 받고 있는 몸이라 내가 빼든 말든 정식으로 합류할 여건은 갖추고 있거든.”
라피냐는 이곳에 오며 들었던 등천의 구도자의 협업 인원 리스트를 떠올려보았다.
물론, 지원자에 한해서 추렸다던 그 목록을 최종적으로 작전에 편성하는 결정권자는 자신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관이 다른 만큼 지원자가 강력히 희망한다면야 따로 쫓아오는 것까지 컨트롤 하는 건 힘들었다.
하물며 직접 지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유천하라면 실력으로 보나 활약으로 보나, 그리고 등천의 구도자의 성향만 생각해보아도, 그저 좋다고 추천을 들이밀게 뻔했을 뿐.
공략자들 중에서도, 조금 더 진성인 인간들이 모인 곳인 만큼, 그곳의 사람들은 다른 조건보다는 공략자의 의지를 중요시했다.
그러니 차세대 승천자로 불리는 아이가, 그런 실력을 갖춘 아이가, 직접 마인 토벌에 참여해 제 의무를 다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아마 나르화리얀이든, 검제든, 아크샤든 옳다구나 하고 바로 추천을 넣지 않겠는가?
아니, 설령 실력이 안 되더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등천의 구도자는 그럴 게 뻔했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렇게 합류해버린다면 기관의 입장상 이쪽에서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으니, 그럴 바엔 차라리 이쪽에서 직접 인턴에 집어넣는 게 속 편한 일이었다.
그러니 라피냐가 봤을 때는 이게 한 고집 할 것처럼 보였던 유천하를 케어해줄 최선의 방책이었고, 그러면서도 실질 전력은 최상위권이라 볼 수 있는 그 아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유천하의 실질적인 전력은 분명 상황에 따라 라피냐 자신보다도 더 강하다 할 수 있었으니까.
하여, 라피냐는 그 부분을 설명해주었다.
“그랬던 거야. 대강 이해했어 이제?”
“······쯧.”
물론- 진시우는 그에 납득하면서도,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애초에 진시우 또한 유천하의 실력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먼저 마인 사냥을 제안했던 것이기도 했고, 이미 세간에선 유천하의 실질적인 무력은 랭킹 100위권 안에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당장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녀석은 최상위권 랭커들까지 제칠만한 실력자였다.
하지만 그날 라피냐에게 들었던 말대로라면 멸화급 마수의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었고, 진시우는 그 부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저 옛날, 진시우 자신이 미련하게 도심지를 날려버리면서까지 일념혼을 폭주시켰던 것도, 그 마수가 이미 도시를 초토화하며 박살 내고 있었기에, 결국에는 도시를 습격한 멸화급 마수를 밀어내고자 했던 것이니까.
그러하므로 진시우에게 멸화급 마수란 여타의 재앙보다도 더 증오스럽고, 조심스러운 무언가였고, 다시 두렵기도 한 무언가였다.
그러니, 아무리 만약의 가능성이라도 그런 재앙이 도래할 수 있는 전장에 누군가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이 진시우로서는 무척이나 불쾌하고, 또 불편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정말 마수와 조우하게 된다면.
그래서 도저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면.
진시우는 또다시 제 영혼에 원을 그려가면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 순간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건 결국 마수가 아닌 제 옆에 서 있는 사람일 게 뻔했던 탓이었다.
그리고 물론.
[임시 통행증. 신원 확인 완료.]
[삑-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아.”
그 순간에 제 옆에 서 있을게 누구인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 애도 벌써 왔나 보네.”
“······.”
“저번처럼 말실수하지 마.”
그리고 그렇게.
[제4실. 현재 입장 인원 3명.]
저벅- 이 순간 진시우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던 인물은,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문을 열고 실내로 걸어들어왔을 따름이었다.
***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는 실내의 공기.
나는 말없이 밀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을 뿐.
“······.”
물론 오늘은 불러서 오긴 했으나, 설마 이렇게 이면순례자의 본부에 올 일이 생길 거라곤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이 순간 조금 낯선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무슨 불러도 이런 곳으로 사람을 부른 건지, 지하 깊숙한 곳에 있던 이 밀실은 조명마저 칙칙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니, 그게 더 어색한 느낌을 선사했다.
분명 밖에서 볼 땐 작아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도대체 지하를 얼마나 파놓은 걸까?
그리고- 거기에 더해.
“······시험은 잘 봤더군.”
“······뭐, 시험쯤이야.”
라피냐는 내가 오자마자 부드럽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무언가 조치해놓을 게 있다면서 안에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기에, 지금 이곳엔 나와 진시우만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게 더 어색한 느낌을 풍겨왔을 뿐.
물론, 이미 지난 주말에는 둘이서도 잘 돌아다닌 마당에 이러는 것도 웃기긴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조금 그러했다.
게다가- 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들어오는 걸 지켜보던 진시우의 표정이 굉장히 오묘한 기색을 띠고 있었기에, 아니 지금도 약간은 뜻 모를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게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왜 저렇게 계속 쳐다보나 싶어서 조금은 기분이 불쾌해졌을 정도.
만약 마르네나 리베르테 같은 애들이었으면 그만 보라고 의념으로 뒤통수를 때려주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
“······.”
하지만 이렇게 저 녀석의 행동을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어봤자 의미도 없었고, 생각할 거리도 있었기에 나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구는 녀석을 무시한 채 생각에 잠겨보았다.
안 그래도 이면순례자의 본부에 오게 되니,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집행기관이라면··· 예. 그럼 일단 알겠어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똑같으니까요.
공원에서의 밤-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에서 이하린이 내비쳤던 태도가 말이다.
‘······설마 아니겠지.’
솔직히 말해- 아무리 내가 걱정된다고 한들, 이미 모든 사정을 밝힌 마당에, 집행기관과 함께 활동하기로 예정된 마인 사냥에까지 두 사람이 따라올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이미 내 심경은 모두 말해주었고, 이면순례자는 좋은 방패가 되어주었을 테니까.
그러나, 역시 그럼에도 두 사람의 눈에 깃들어있던 걱정은 끝까지 사그라지지 않았고, 하물며 내가 그림자교단의 마인을 노린다는 걸 짐작한 뒤로는 그러한 걱정은 확연히 더 짙어졌으니, 약간은 미묘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정 걱정된다 싶으면 야금야금 눈치를 살피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몰래 따라올 것 같아 불안한 기분이 들었을 뿐.
‘물론··· 여전히 가능성이 없진 않지.’
예상하건대, 아마도 집행기관이 언급된 이상 그녀로서도 우선은 정보를 알아보려 할 테고, 만약 그 사안과 인과가 파악된다면 그녀도 분명 직접 행동에 나설 게 분명했다.
단순히 나를 걱정하는 걸 떠나서라도, 이건 분명 직접 나설만한 건이었으니 말이다.
이하린이라면 그 추적이 어렵진 않을 터.
하지만 나도 집행기관을 단순히 핑계로만 이야기한 건 아니었고, 실제로 지금 남미에선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두 사람이 이곳에 온다고 하더라도 나와 진시우가 걸린 것처럼 금방 집행자들에게 적발당해 강제 귀가 조치를 당할 게 뻔했다.
애초에 나는 등천자, 진시우는 원래 이곳에 소속된 집행자였기에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지, 집행기관은 괜히 집행기관이 아니었기에 그런 병아리 같은 아이들까지 끼워줄 만큼 무르진 않을 테니까.
그건 분명 실력과 무관한 부분이었다.
그런 만큼- 평범한 생도 두 사람이 작전에 끼어들려면 최소한 누군가가 둘을 책임지고 보증해줘야겠으나, 도대체 누가 고작 1학년짜리 생도 둘을 마인 사냥에 밀어 넣겠는가?
제정신이라면 아무도 안 그럴 터였고, 그렇기에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그나마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
물론 나를 걱정한답시고 눈을 글썽거리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정말로 옆에 따라와선 마인과 싸우는 걸 보는 게 몇 배로 더 불편했기에 나로서는 그녀가 이곳에 오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아직까지도 낯선 일이긴 했으나, 그날 두 사람에게 이야기해준 건 진심이었으니까.
나는 이하린이 다치치 않았으면, 그리고 아리엘이 죽지 않았으면, 아니 다른 이들도 괜히 엄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보다.”
“······?”
나는 슬슬 적응되어가는 분위기 속에, 다시 두 사람에 관한 생각을 밀어 넣었고, 그리고는 다시 진시우를 향해 말을 건네보았다.
이미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정확한 요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니, 굳이 불필요한 상황에 심마를 자처하고 싶진 않았고, 이하린을 생각하는 동안 이 분위기에도 어느덧 적응이 되어 다른 생각도 들었던 탓이었다.
왜냐하면.
“오늘 왜 여기로 부른 건지는 들었나?”
“······아.”
일단 불러서 오기는 왔으나, 대체 왜 현장이 아닌 이면순례자의 본부로. 그것도 이런 깊디깊은 지하의 비밀 시설로 나를 들여보내 준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턴으로 같이 활동을 하기로 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한들 인턴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곳으로 오면서 거쳤던 통과 절차나, 이 방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 혹은 주변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소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만상의 눈에 엿보이는 벽 너머의 마인들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장소는 상당히 보안이 필요한 곳 같아 보였다.
나처럼 정식으로 속하지도 않은, 일개 생도를 들여 보내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마인 전용 구금시설이라는 느낌.
다소 미묘한 기분이 드는 장소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나마 이유를 알고 있을법한 집행자 진시우에게 이유를 물어보았고, 그에 진시우는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심문. 직접 마인을 심문해보라더군.”
“······음?”
그것도 상당히 뜻밖의 대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