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 (7)
이하린은 서운함과 미안함, 그러면서도 걱정 어린 마음까지 뒤섞여 가슴이 아려왔다.
주말부터, 아니 지난주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승천제 때의 그 광경 이후부터 계속해서 쌓여왔을지도 모르는 염려를 쏟아내었음에도 유천하는 대답해주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변화 없는 차분한 표정.
“······.”
하지만 이하린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투명해진 눈망울 너머로도,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이 순간- 유천하의 검디검은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제 말을 들은 유천하의 얼굴 위로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이 엿보이고 있었기에, 이하린은 미미하지만 분명 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이하린은 종종 그것을 느껴왔다.
언제나 차분하고, 담담하고, 그렇게 항상 변화가 없는 듯한 유천하였지만, 이하린 자신은 유천하가 웃는 얼굴을 알고 있었고, 유천하가 걱정하는 얼굴을 알고 있었으며, 다시 유천하가 슬퍼하는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저와 같이 있을 때면 그가 웃어주었기에.
저가 사고를 치면 그가 걱정해주었기에.
그리고.
저가 다쳤을 때면, 담담해 보이던 유천하의 얼굴에도 언제나 씁쓸한 기색이 어렸기에- 이하린은 그 순간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비록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그녀에겐 그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말씀해주실 수··· 없으신 거예요?”
이하린은 그냥 넘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 유천하의 얼굴 위에 떠오른 표정은, 분명 그녀에게도 익숙한 표정이었으니까.
자신이 바보처럼 즐거워하고 있을 때에도 유천하는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었기에, 조금 전 보았던 유천하의 얼굴은 분명 제가 아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힘들어 보였기에, 이하린은 그가 너무나도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니, 대체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유천하는 이하린에겐 정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제 손으로 써 내려간 인물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소중했다.
언제나 바보 같은 저를 도와주는 사람.
-제가 하린 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무공을 배우십시오.
저가 위험할 때면 항상 나타나는 사람.
-···방금의 검은 훌륭했습니다.
-이제 그만 쉬셔도 됩니다. 맡기세요.
이 세계에 부채감을 떠안고 있던 자신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이 되어준 사람.
-그날의 은혜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한 분이기도 하고,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이 무섭고, 다시 무척이나 힘들다 느껴져도, 그 속에서도 언젠가는 잿빛의 심연을 뚫고 희망의 빛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만드는 사람.
-등천자 유천하의 이름이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듣고 싶어요···.”
저를 걱정시키는 사람.
이하린에게 유천하는 여러 의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를 향해 느끼는 이하린의 감정은 고마움이었고, 희망이었으며, 때론 선망이었고, 다시 어느 순간에는 염려가 되었다.
물론 이하린은 유천하가 얼마나 강한지도,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다.
이하린 스스로가 써 내려간 주역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원작의 주연 인물들과 비교해봐도 압도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선, 다시 올곧은 마음을 가진 이였으니까. 그렇기에 이하린 자신이 이처럼 기대를 걸고, 선망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이런 행동이, 참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분명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 씨가 왜··· 힘들어하셨는지를, 왜 말씀해주시지 않는지를······ 듣고 싶어요.”
이하린이 처음 마주했던 유천하의 모습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던 모습이었기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 병원에 누워 있던 그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눔으로써, 그 순간에서부터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기에.
저 자신이 아니었다면 유천하가 그날 죽었을 것이란 걸, 이하린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다시.
“······.”
“······.”
이하린은 유천하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하고, 뛰어나다 해도 유천하는 무적이 아니었고, 처음 만난 순간에도, 위타극을 베어냈던 순간에도, 허상일지언정 승천제에서 이능에 휘말려 사라진 순간에도.
유천하에게도 위험한 순간은 존재했다.
그리고 만약, 유천하가 죽는다면, 그것도 자신이 모르는 순간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이리 아파질 만큼 이하린에게 유천하는 이미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어찌 이걸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어린애처럼 굴고 싶진 않았지만, 유천하의 표정을 봐버린 이상, 힘들고 지쳐 보였던 그의 표정을 봐버린 이상, 다시 그 표정의 이유가 마인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하린은 그 이유를 들어야만 했다.
하물며 그걸 자신들에게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유가, 자신들이 걱정되어서라면,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아서라면··· 이하린은 떼를 써서라도 유천하에게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 일이 그를 괴롭게 만들고 있다면, 보잘것없는 제힘으로는 도와줄 수 없을지언정 다른 방법으로라도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소중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도움조차 못 된다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팠지만,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마저 붉어져 버렸지만, 그게 참 속상했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는 유천하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고 싶었으니까.
그게 유천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떨리고 있는 손일지라도 도저히 유천하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손을 놓으면, 앞으로도 자신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항상 서로 중요한 속마음은 숨긴 채로, 자신은 항상 그에게 도움만 받는 관계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런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
이 순간- 유천하는 제 손을 소중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놓고 싶지 않다는 듯 꽉 부여잡고 있는 이하린을 바라보며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아니 그러지 않았던 부분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꽉 붙들어진 손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경계. 그리고 검게 덧칠해놨던 세계 속에 스며든 백색의 물감. 어느새 점점 회색빛이 되어가고 있는 마음.
“······.”
덮어두었던 공백에 색이 덧칠해졌고,
유천하는 그것을 깨닫고선 생각했다.
익숙지 않은 호의가, 그러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제게 닿고 있었다는 것쯤은 그 또한 진작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그는 제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분명 무림에서의 나였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그곳에선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다시 수차례의 파문이 되어 그를 두들겼기에.
그러한 두들김 속에 유천하 자신은 무림에서의 자신과도, 전생에서의 자신과도, 3월의 자신과도, 4월의 자신과도,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 조금씩, 계속해서 변해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 제 변화를 깨닫는 게 어렵진 않았을 정도로 유천하는 분명 이제껏 많은 것을 깨달아왔다.
아니, 유천하 스스로는 그리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순간.
“······그러니까··· 말해주시면 안 되나요?”
유천하는 그러한 파문이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커다랬다는 걸 깨달았고, 그러면서도 이제껏 계속 저도 모르게 그 물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환생한 이후의 자신, 무림에서의 자신.
소교주로서의 자신, 지금까지의 자신.
유천하라는 사람의 시작은 분명 지금의 삶보다 더 이전에 자리했으나, 그는 이 새로운 삶, 아니 유천하로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괴로웠을지 몰라도 죽음을 경험한 끝에서 찾아온 새로운 삶은 분명 경이로웠고, 그는 그 힘듦과 고난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며 새로운 ‘나’로 단조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제껏 그는 이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것을 비워내야만 했다.
제게 주어진 의무와 환경이 무겁게 저를 옥죄일지언정, 그것이 저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걸 위해선 제 발걸음을 억누르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벗어둬야 했으니까.
그게 제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지였으니까.
그러나 이 순간- 유천하는 이곳에 와서야, 새로운 환경에 놓이고 나서야, 이제껏 벗어두었던 마음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란 게 참 어렵고, 무겁다는 것을.
“······말씀해주실 수··· 없으신 거예요?”
그리고 다시- 그러하였기에.
“······.”
이제껏 그걸 버려두었던 것이란 사실을.
쌓아온 걱정을 쏟아내 버리고선 떨리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렇게 그는 찾아온 고백의 순간에서 그 사실을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를 통해서.
저를 향해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통해서.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필요치 않아 내려놓았고, 중요치 않아 버려두었으며, 검 끝을 흔들리게 하였기에 그는 미혹마저 베어내며 마음을 덧칠했다. 아니, 저가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여 검을 휘두른 끝에, 어느새 그리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먹으로 덮어놓았기에 오히려 그곳에 스며들어 덧칠해지는 색채가 더 또렷하게 다가오니- 삶이란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유천하는 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검게 덧칠해놨던 내면에 스며든 백색의 물감은 분명 이질적이었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 만들어내는 이 소리 없는 물결이 그에게는 익숙지 않은 흔들림으로 다가왔기에.
이건 이제껏 겪어왔던 관계와는 본질에서부터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기에.
유천하에겐 이 모든 게 낯설었을 뿐.
사람의 마음은 한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느껴지는, 아니 이제껏 받아온 호의가 신교에서 받아왔던 것과는 그 궤가 다르게 느껴진 탓이었다.
“······.”
“······.”
하여- 그는 말없이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아니, 옆에서 안절부절못해 하는 아리엘도 바라보았고, 그대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공원을 바라보았으며, 제 손을 소중한 무언가라도 되는 듯 붙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걱정을 하는 걸까, 왜 이러는 걸까-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낯설고, 다시 불편하였기에 유천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
“······.”
그럼에도, 단 하나 분명한 점이 있다면.
“······이··· 되어서.”
그건- 유천하에게도 이 관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특별해져 버렸다는 사실이었고,
“걱정이 되어, 그게 싫어서 그랬습니다.”
그는 지금의 이 마음도, 감정도, 행동도 무엇 하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무언가 막혀있던 둑에 하나의 틈이 생겨났고, 그 틈을 따라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지금 이 말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듯이, 아무런 고민 없이, 나는 그렇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무.”
이건 분명,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랬습니다.”
“······.”
“그래서 마인을 사냥했고, 그래서 하린 씨에게도, 아리엘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위험해질까 봐······ 그게 싫어서.”
그렇게 나는 충동적으로, 아니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시키는 대로 말을 꺼냈고, 내 대답에 호흡까지 멈춘 채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얘기하지 않은 겁니다.”
아까와 비슷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말.
이 별거 아닌 말 몇 마디를 내뱉는 게 왠지 모르게 힘들었기에, 무언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느껴졌기에.
나는 이 순간 피곤하단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졌고, 또 다른 한구석은 다소 무거워져 갔다.
“······.”
“······.”
그리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흘러나간 내 대답에 두 사람의 표정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갔으니, 조용해진 여름밤 아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을 느끼며, 우리는 이 순간 서로 입을 열었고, 이내 다시 닫아버렸다.
“그··· 아니······.”
소리 없는 대답이 나오려다 사그라든다.
달싹거리는 입 모양이 엿보였어도,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꺼내오는 이는 없었고, 그렇게 아까와는 다른 적막이 찾아왔으니.
바로 그 순간.
“······지금··· 한 말은 그럼.”
이제껏 나와 이하린의 대화를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아리엘이, 방금의 내 대답을 듣고선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뻐금거렸던 그녀가 말을 건네왔다.
“우리가 나섰다간 괜히 다칠까 봐. 결국 그게 걱정돼서··· 말해주지 않았다는 거잖아.”
조금 전 저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할 때, 승천제의 일을 언급하며 지어 보였던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그 얼굴에 머금고서,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러나 약간은 긴가민가한 심경까지 같이 곁들인 채로, 아리엘은 힘없이 그렇게 물어왔다.
아까, 내가 우려했던 부분을 언급하면서.
하지만.
“아니, 그게 아니야.”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던 질문이었으나, 이 순간 나는 어떠한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떻게가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알 것 같았기에, 혼란스럽고, 낯선 기분 속에서도 나는 흔들리는 심상의 파문을 느끼며 그대로 대답했다.
“말 그대로, 그냥 다치지 않았으면 해서. 그게 전부야.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냥.”
“······그게, 그 말이잖아. 네가 하려는 게 우리에겐 위험해 보여서, 우리의 실력으론 위험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숨겼다는······.”
“아니, 실력과 상관없는 이야기야 이건.”
“······.”
내 말에 아리엘이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 순간 이하린이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그것도 아리엘과 같은 맥락의 질문을.
“그럼··· 왜 저희에게 말해주시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왜··· 저희가 걱정이 돼서, 그래서 마인을 사냥하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건.”
하지만 물론.
“혹시라도 다칠까 봐, 그게 싫어서. 만약의 상황이라도 그러지 않았으면 했으니까요.”
“······.”
“실력이랑 상관없이 그런 일에 휘말리는 상황 자체가 싫어서, 만약에라도 다치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서 얘기 안 했습니다.”
나는 그 물음에도 즉시 답을 돌려주었다.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예상되면서도, 이후에 이어질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면서도, 그저 이 순간 흔들리는 무언가를 뱉어내야만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것 같았기에.
“······그, 말씀은···.”
나는 담담히 내 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조금은 낯간지러우면서도, 어딘가 약간은 후련한, 그렇기에 다시 씁쓸한 심경으로.
“예.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싫었을 만큼, 제게도 이 관계가 소중했으니까요.”
“······아.”
그렇게 속에 있던 마음을 꺼내보았다.
“실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도움이 못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만약에라도,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게 싫어서, 그런 마음이라 그랬습니다.”
“······.”
“애초에 제가 이렇게 마인을 사냥하고자 했던 건, 처음부터 그러한 이유였으니까요.”
내 말에 이하린의 입이 작게나마 벌어졌고, 그녀는 지금 저가 들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마저 헷갈렸는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내 옆에 앉아 있던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론.
“······아.”
아리엘의 반응도 그녀와 마찬가지였을 뿐.
하지만 나는 당황스러워하는 이하린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계속해서 더 많은 사실을 두 사람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처음··· 마인 사냥을 생각했던 건, 하린 씨가 처음 다쳐서 돌아왔던 날이었습니다.
“······그게 무.”
“피에 젖은 채로 제게 안겨 쓰러졌을 때, 이후에 카룬드가 쳐들어와 두 사람이 쓰러졌을 때, 다시금 피투성이가 된 하린 씨를 보고 마인을 사냥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
이하린의 눈이 천천히 깜빡거렸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는 듯, 무언가 혼란스러운 듯 한순간에 변화해가는 표정 속에 잠시 소리 없는 옹알거림을 하던 그녀는, 이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작게 속닥거렸다.
“대체··· 왜······ 그건, 그냥 우연한······.”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
다시 말없이 달싹거리는 이하린의 입.
“해서 그 이후에도 마인 사냥을 했습니다. 위타극과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4월에는 최대한 타천자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
“카룬드 같은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불필요한 위험이라 판단했기에 그러했습니다.”
나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벙찐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하린을 바라보곤, 이내 마찬가지로 놀란 눈을 떠 보이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론······ 그 모든 게 단순히 하린 씨만을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
“애초에 그날 카룬드가 노렸던 건 결국 너였고, 루타텔 씨가 아니더라도 유망주인 너는 목표가 되기 쉬운 사람이었으니까.”
“뭐? 그··· 어, 그··· 어······?”
그러자 내 말에 아리엘의 입에도 버퍼링이 걸렸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근래 걱정이 많았던 건··· 단순히 마인 사냥뿐만이 아니라 벽에 막혀서였기도 했고,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걸 위해서는 그걸 넘어설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야.”
“······목··· 표?”
“뭐가 목표인지는 말해줄 수 없지만, 목표를 그렇게 잡은 것도 다시 너 때문이었고.”
말없이 입을 달싹거리기 시작한 아리엘.
“허상이어서 다행이었지만, 아리엘 그때 네가 나 대신 죽으려고 했던 건, 이전에 말했듯이 나한테도 가볍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아··· 아, 아니. 그, 그건···.”
“승천제를 통해 마인을 사냥해야 할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고, 승천제의 내용이 내용이었던 만큼 제대로 목표를 잡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 나한테 무모하다고 해도, 내가 봤을 때는 너랑 하린 씨가 더 무모하고, 만약의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가 뻔했으니까.”
“······.”
“그게 만약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아서.”
내 말에 두 사람이 바보처럼 가만히 입을 뻐금거렸고, 미간을 찡그리곤, 풀었으며, 다소 얼이 빠진 듯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그러면서도 내 입에서 흘러나온 갑작스러운 고백에 무척이나 혼란스럽다는 듯, 무언가 반박하고 싶지만,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리고는 이내.
“아··· 아니, 잠깐만!”
인상을 찡그리며 잠시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해보던 듯한 아리엘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황급히 입을 열어왔다.
“승천제? 너··· 혹시 목표라는 게 그럼. 그림자 교단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것도 무척이나 정확한 추측을 말이다.
승천제를 언급한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 이 부분을 알려주는 건 분명 합리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의 나로서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지금 기분이 그러했다.
물론, 그렇다고 긍정해주진 않겠지만.
“대답해주지 않을 거야 그건.”
“······.”
허나- 이미 조건은 모두 밝혀진 뒤였던 만큼, 아리엘의 표정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물론, 아리엘의 입에서 그 추측이 흘러나온 순간, 자연스레 표정이 풀어져 가던 이하린의 얼굴 또한 차갑게 가라앉았으니, 내 대답과 태도를 확인한 이하린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음을 건네왔을 뿐.
“······그림자 교단··· 을 혼자 사냥하신다는 말씀이세요? 정말, 그림자 교단이에요?”
“이건 정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 씨라도 혼자서 그런 건···!”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하린은 이제껏 계속 붙잡고 있던 내 손까지 꽉 움켜쥐며 외쳐왔으나, 그에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비록 사전에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게도 좋은 핑곗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하린이 울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언가의 충동에 사로잡혀 이야기하긴 하였으나, 그렇다고 한들 지금의 흐름은 끊어낼 필요성이 있긴 하였다.
두 사람에게 건네준 말은 진심이었을지언정, 아니 진심이었기에 나는 이 두 사람이 나를 따라 전장에 나서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이하린이 다시 또 그렇게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게···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떻게 그런 걸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냥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 라니요?”
내가 두 사람을 걱정하는 만큼,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이 나를 염려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지간한 이유로는 이 두 사람을 납득시키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여, 내게는 두 사람이 납득할만한 이유, 그러면서도 함부로 따라오겠다고 할 수 없을 만한 변명거리, 아니 변명이라기엔 확실한 구실을 해줄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을 뿐.
그렇기에- 나는 우연히 얻게 된 이유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핑계를 꺼내 들었다.
“예. 들으면 납득하실 겁니다. 왜냐면···.”
그리고 물론.
“저는 지금 집행기관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가 아닌, 정식으로 같이 마인 토벌을 수행하게 되었으니까요.”
“······!!”
“······?!”
이어진 내 대답, 난데없이 흘러나온 집행기관이라는 말에 두 사람은 무척이나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떠 보였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