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89화 (189/205)

마음과 마음 (6)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 나는 이 순간 충동적으로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잠시 미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차 싶으면서도, 낯설었다고 해야 할까- 아까는 나도 모르게 번뇌에 잠겨 들어 심마가 찾아올뻔했고, 지금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의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가 버렸으니 참으로 이상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흘러나온 말의 내용이 내용이었기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을 뿐.

하지만.

“······걱정되니까?”

이미 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선 벙찐 표정으로 두 눈을 깜박거리는 두 사람의 반응에 작게나마 한숨을 내쉬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반응에 두 사람은 설마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이, 방금까지의 표정도 잊고선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되물어왔고 말이다.

“걱정되니까··· 라구? 어··· 대체 뭐가?”

“뭐가··· 걱정돼서 그러셨던 건데요···?”

순간적으로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그러나 이미 말해버린 내용을 정정해봤자 의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 자체가 내가 지금 말한 것처럼 걱정이 되는 행동이었으니 나는 결국 다시금 한숨을 내쉬곤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론.

“그건··· 말해주기 곤란해.”

그런 내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을 뿐.

“······.”

“······.”

그저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순수하게 내 대답이 황당해서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엘도 그렇고, 열심히 우울해하고 있던 이하린도 굉장히 심란한 표정이 되어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녀의 표정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아무래도 아까는 그렇게 잡아뗐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니 그 부분이 어이가 없고, 또 서운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물론 지금 이하린이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진 나로서야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작게나마 인상을 찌푸리며 내 손을 꼬집어오는 아리엘부터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네왔다.

“뭐야··· 그 대답은? 지금 밀당하는 거야?”

“······.”

“뭔데 진짜? 정말 위험한 일이라도 하는 거야? 아니면, 대체 뭐가 걱정된다는 건데?”

역시 이렇게 얼버무리긴 힘든 모양.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째 약 올리는 셈이 되어버렸기에 아리엘은 내 실수에 왜 말을 하다 마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옆에 있던 이하린은 무언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실수하긴 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전부 사실대로 말해주긴 곤란했을 뿐.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손등에서 느껴지는 아리엘의 재촉에도 그대로 시선을 피해 보았고, 피부로도 느껴질 만큼 따가운 시선에도 그저 하늘만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해도 곤란해질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뻔뻔하게 넘기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저희, 혹시··· 저희가 따라갈까 봐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이하린으로부터 무척이나 날카로운 말이 흘러나왔으니,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왜냐하면.

“혹시 그래서, 그래서 걱정된다고 하신 거예요? 사실대로 말하면 저희가 따라갈까 봐. 근데 그러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라서요?”

지금 이하린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이유를 맞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갑작스럽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정확한 답을 맞힌 그녀의 대답에 순간적으로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이하린도 떨리는 두 눈으로 내 시선을 마주했다.

“······.”

“······.”

그것도 무언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씁쓸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약간은 다른 감정도 엿보이는, 그런 복잡해진 눈빛으로.

그리고는.

“······마인을··· 사냥하고 계신 거예요?”

빠르게 변해가는 표정 속에, 이하린은 다시 한번 정확한 대답을 건네왔으니, 그에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놀라웠다.

물론 내가 두 사람에게 숨길만 한 일이면서도 위험한 일, 다른 이가 들으면 걱정할만한 일, 그러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간 마인과 여러 번 엮여왔던 만큼 그걸 떠올리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터.

하지만.

“그래서··· 마인을 사냥한다고 하면 제가 따라갈까 봐. 실제로 따라오면 다칠까 봐··· 그래서, 그게··· 싫어서 숨기시는 거에요?”

이하린은 그것보다 조금 더 자세한 부분을, 그러면서도 확신하는 듯이 말해왔으니, 저 물음에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고 잡아떼고 싶었으나 저 대답이 너무나도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기에, 저렇게 말을 하면서도 굉장히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차마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대체 어떻게 저리 확신할 수 있는 걸까.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 저 말을 듣고서도 그래야 하는지 확신이 안 들었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반쯤 인정하는 듯한 물음을 되돌려 주는 게 지금의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에 이하린은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것도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그때랑···.”

내게는 조금 얼떨떨한 대답을 말이다.

“그때랑··· 표정이 똑같으니까요. 3월에 저를 말리셨을 때, 그날 밤의 표정이랑요···.”

“······.”

“제가 쓰러졌을 때 지어 보이신 표정이랑, 저한테 화내시고 나서 지어 보이신 표정이랑, 지금 짓고 계신 표정이랑··· 전부 다요.”

그리고 물론- 이하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지금의 내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그리고 그때의 내가 지어 보였을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는 당연히 알지 못했고,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게 정확한 어떠한 부분인지를 짐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내 감정이 어느 정도 얼굴 위로 드러났다는 말.

“3월···? 마인 사냥을 하다 다쳤을 때?”

물론 이하린의 말에 아리엘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3월의 일을 모른다 치더라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리엘을 보니 그렇게 대놓고 드러나진 않은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하린은 아니라는 것.

이하린은 지금 분명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도 정확한 내용으로 말이다.

“원래······ 아리엘 씨랑 저는, 천하 씨가 혼자 공략을 다니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고민이 많아 보이시기도 했고, 그래서 업적도 쌓을 겸, 그러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그런데··· 지금 천하 씨 표정은 그때랑 똑같으세요. 제가 다쳐서, 피투성이가 돼서 돌아왔을 때, 그때··· 품에 안겨서 쓰러지기 직전에 봤던 혼란스러워하시던 표정이랑요.”

도대체 그 표정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천하 씨는··· 주말에 마인을 사냥하고 오신 거예요···? 아니, 요새 마인을 사냥하고 계신 건가요? 그런데 저희에게 말하면 괜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래서 그러신 거고요?”

이 순간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그렇기에 나는 이하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다시 한번 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본인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면서 무슨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럼 지금 내 표정도 그렇게까지 감정적이 되어 버렸다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한순간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대놓고 말하는 이상 아니라고 말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결국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 저는··· 마인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

“······.”

그런 내 말에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내비쳤으니- 이하린은 무언가 분한 듯 입술을 작게 깨물면서, 아리엘은 대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그러면서도 수긍하는 내 말에 놀람과 섭섭함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왜··· 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무언가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이하린이 약간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그러한 말을 건네왔으니, 그 물음에 나는 순간의 고민 끝에 담담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냥, 필요하다 느껴서 그렇습니다.”

“······왜 필요하다 느끼셨는데요?”

“마찬가지로 그냥이라고 말씀드리면···.”

“하지만 아니시잖아요···. 그런 이유.”

이하린의 입이 작게 달싹거렸고, 나는 여전히 겹쳐져 있는 손을 통해 그녀의 손이 약간이지만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준비를 하던 도중에 있었던 대화까지 겹쳐, 더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아까도 그녀는 무척 서운해했었으니까.

“왜,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건데요···?”

“그건··· 정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어디서, 어떻게 마인을 사냥하고 계시는 건지는 대답해주실 수 있으세요···?”

“마찬가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내 대답이 속상했는지 이하린의 눈이 조금 더 투명해졌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화가 났는지 이하린은 단호한, 그러면서도 조금씩 떨려오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러면··· 그때 저는 왜 말리신 거예요?”

그것도 내게는 조금 당황스러운 질문을.

“천하 씨도 그렇게 혼자 그런 일을 하러 다니시고, 이유도 말해주실 수 없다면··· 제가 그러겠다 했을 땐, 왜 말리셨던 거예요?”

“···하린 씨가 그런 모습으로 돌아왔었으니까요.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 그렇게.”

그 말과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거리던 이하린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하린으로서도 그건 비슷했던 모양이었는지, 그녀는 무척이나 복잡한 심경이 담긴, 그러면서도 걱정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눈으로 나를 향해 이리 말해왔을 따름이었다.

“그치만··· 아까 천하 씨 모습도 불안해 보였어요. 힘들고, 지쳐 보였단 말이에요.”

그리고 물론.

“그 표정을 봐버렸는데··· 어떡해요···?”

“그건···.”

나로서도 저 말에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기에, 이내 그냥 말을 돌려버렸고 말이다.

“······실제로 다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게 너무 신경쓰여요. 그리고 위타극을 상대로는 다치셨었잖아요.”

“그리고 죽였지요. 애초에 이미 죽은 위타극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목표요···? 그럼 무엇을 목표로 하시는 건데요? 그걸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될 만큼, 그렇게 위험하다는 말씀 아니세요?”

허나, 이어져 건네진 이하린의 말에 나는 그대로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걱정되니까··· 라고 말씀하신 걸······ 저희는, 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녀의 말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어느 쪽이든 그 대답이 두 사람에겐 상처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결국, 위험한 적이 아님에도 이렇게 숨겼을 만큼 두 사람을 못 미더워한다는 것이나, 위험한 적을 마주할까 봐 두 사람을 걱정해 숨겼다는 말이나, 어찌 되었든 저 두 사람에겐 그러한 말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밖에 안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 태도가 그렇게 느껴지기에 이하린은 지금 저렇게 서운해하며, 그러면서도 약간은 분해하며, 여러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하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가 조금 당황스러웠고, 곤혹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

“······.”

내 침묵을 따라 이하린도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가운데에 앉아 있던 아리엘 또한 우리의 대화에 얼추 내용을 짐작했는지 심란해진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이하린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듯, 그러면서도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달싹거렸으니, 그녀는 이내 내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그게 더 속상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떨려오는 목소리로.

“아까도 그러시고, 그때도 그러시고, 지금도 그러시고··· 천하 씨는 항상 숨기세요.”

“······.”

“물론··· 저도 알아요. 저도 말하지 않는 게 많고, 제 실력이 천하 씨를 걱정하게 할 만큼 형편없다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래서 함부로 말하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제가 걱정을 많이 끼치고 있다는 것도······ 다 알아요.”

하지만- 이하린은 그 말과 함께 잠시 말을 멈추었고, 이제껏 겹쳐져 있던 손을 빼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내 아까보다 더 글썽글썽해진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무척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내게 말을 건네왔다.

“저도··· 저도 똑같이 걱정된단 말이에요.”

“······.”

“천하 씨가 그때 저를 말리셨을 때 하셨던 말처럼, 제가 천하 씨한테 중요하고, 그래서 걱정되고, 모르는 곳에서 위험한 일을 겪는 게 싫다고 하셨던 것처럼······. 저한테도, 천하 씨는 소중하신 분이고, 그래서 걱정되고, 모르는 곳에서 위험한 일을 겪는 게 싫어요.”

이하린은 다시금 말을 멈추었고, 그리고는 이내 그때의 일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저한테는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위험한 일을 겪는 게 싫다고, 그럴 거면 차라리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만약 제가 천하 씨 눈 밖에서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무척이나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그러셨잖아요.”

“······.”

“제게,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하 씨에게도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그러한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아리엘이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으나, 그럼에도 이하린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천하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한텐 천하 씨가 더, 더 중요하고 소중하단 말이에요······ 정말, 정말요.”

“······.”

“아리엘 씨가 말한 것처럼, 저도 천하 씨가 좋아요.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냥··· 그냥 제게 천하 씨는 정말 너무 특별하니까요.”

“······.”

“아까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천하 씨는 제가 구해준 사람이면서도, 다시 저를 구해준 사람이기도 하고, 저를 걱정해주고, 다른 누구보다 저를 걱정시키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하린은 작게 속삭였고, 그와 동시에 내게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왔다.

“저도··· 걱정 하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

“아무것도 모르고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면서 지레짐작하는 것보단, 무엇 때문에 힘든지, 왜 그러는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그것도 무척 서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이하린은 그렇게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릴 순 없어도, 제가 무모하게 굴까 봐 걱정이 되셔도, 저도 걱정된단 말이에요.”

아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이제서야 쏟아내듯이. 눈물까지 글썽거려가면서. 그렇게.

“아까, 정말··· 너무 걱정했단 말이에요.”

이하린의 마음이 내게 쏟아져 나왔다.

***

울먹거리는 얼굴도, 떨리는 목소리도.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손의 흔들림도.

그리고- 다시 거기서 느껴지는 온기도.

“제가···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고, 걱정만 시키더라도, 저도 걱정해드리고 싶어요. 항상.”

이 순간 나는 몇 번을 입을 열었고, 다시 닫았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저 가만히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혼란스러웠고, 마음이 복잡했으며, 손끝이 간질거렸고 말이다.

“······.”

그래서일까.

“그래서 알고 싶어요. 왜 그러시는지도, 왜 힘들어하시는지도, 왜 말씀해주시지 않는지도, 그렇게··· 선을 긋지는 말아주세요···.”

내 머릿속엔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 손을 놓는 순간 내가 도망이라도 가는 것처럼, 이렇게 내 손을 꼭- 움켜잡고 글썽거리고 있는 이하린을 앞에 두고 하기엔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나는 이 순간 마음이란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마음은, 이렇게 실체를 가진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고 있었으니, 마음이란 어찌 보면 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진정한 무형지독이 아닐까- 바로 그러한 우스운 생각을 말이다.

왜냐하면.

“제게는··· 천하 씨가, 정말, 정말 소중하단 말이에요.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더요.”

내가 이 세계에 와서 겪은 그 어떠한 일보다, 그 어떤 부상보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겐 더 알싸하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강렬하게 건네지는 염려와 호의가 나쁘지 않았고, 그렇기에 다시 씁쓸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기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와 대비되는 밤공기가 참으로 차갑게 느껴져, 그게 다시 또 허탈했다.

애초에 내가 근래 고민을 하고 있던 이유, 내게 심마가 찾아올 뻔했던 이유, 그 모든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분명 존재했으니까. 그리고 이럴수록 그게 더 대비되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그날의 기억을 되새겼다.

-세계는 이미 여러 번 되돌아갔습니다.

바로, 아크샤가 보여줬던 세계의 모습을.

폐허가 된 거리의 모습과 멸망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말은 분명 내게 여러 생각을 안겨주었고, 회귀자라는 말과 어우러진 그 날의 대화는 결국 하나의 화인으로 남아버렸다.

분명 이하린의 허상 속에서도, 그녀는 다른 세계선의 모습과도 같이 겹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만상세계. 제가 승천할 당시 세계는 제게 그리 속삭였습니다. 앞으로 찾아올 미래에서 세계를 되돌리는 자를 찾아야 이 침식의 멸망을 온전히 끝낼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당신··· 유천하 당신이 찾아야 합니다.

아크샤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그리고 내가 가정한 게 사실이라면, 그 모든 건 결국 이 아이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정말로 앞선 실패가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것이라면, 그건 곧 이하린도, 아리엘도, 이미 죽음을 겪었었다는 말을 의미하였기에.

그렇기에.

-제가 구한 게 천하 씨였다는 사실도, 제가 천하 씨를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저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천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 모든 게 인과라 생각해요.

나는 그 미래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 미워할 거예요···?

-······그럼··· 다행이에요···.

애초에- 3월의 밤, 그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던 이하린의 모습은 당연히 내게도 여러 생각을 안겨주었고, 그 일을 겪은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듯이, 그렇기에 이하린이 나로 인해 원작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듯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이하린은 결국 알아서 저가 원하는 미래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만큼, 내가 훗날 중요한 순간에 무림으로 되돌아가더라도 그녀는 혼자서도 어떻게든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바로 그러한 생각을 말이다.

비록 지금의 그녀는 아직 유망주에 불과했을지언정, 내가 기억하는 원작 후반부의 이하린은 승천자 이하린이었고, 다시 검성이라 불리며 심연과 맞서 싸우는 이였으니까.

그러나- 아크샤의 말은 틀을 망가트렸다.

단순히 내 선택으로 인해 약간의 미래가 뒤틀리는 게 아니라, 아예 확정된 죽음을 다시 재현시킬 수도, 혹은 비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신경 쓰였고, 그렇기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생각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던 걸지도 몰랐다.

“······.”

허나 그럼에도 나는 무림에 돌아가야만 했고, 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을 뿐.

나는 이하린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으나, 내가 그 모든 것을 확실하게 책임져 줄 순 없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지 않더라도, 내게 보내주는 그녀의 호의가 감사하더라도, 내게는 분명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잠시 내려놓았지만, 그것이 내 의무니까.

그래서 조급해졌던 걸지도 몰랐고,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고민해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내게는 중요한 목적이 있는데도, 만약의 미래가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기에. 둘 다 낚아채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조금이라도 노력해보고 싶었기에.

경중이 다름에도, 그게 신경 쓰였기에.

그리고 이 순간.

“······저도, 저도 걱정된단 말이에요.”

울먹거리며 말해오는 눈앞의 작디작은 존재를 바라보며, 나는, 왜 근래의 내 마음이 그렇게 심란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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