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86화 (186/205)

마음과 마음 (3)

그렇게 난데없이 건네진 말에 이하린은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눈을 깜빡거렸고, 아리엘은 이때다 싶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말해줬는데··· 말 안 해주는 거야?”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방금 엄청 진지하게 이야기했는데···.”

세차게 흔들리는 이하린의 눈동자.

물론 아리엘의 행동은 누가 봐도 대놓고 화제를 돌리려는 느낌이었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주제였는지 다른 아이들도 이하린을 향해 관심을 내비쳤다.

“오! 그건 나도 좀 궁금하다.”

“맞아. 둘이서 맨날 같이 다니잖아.”

“그래. 너네는 무슨 사이야 대체···?”

슬슬 언령이 풀렸는지 평소에 이하린을 귀여워하던 아리엘의 친구들도 입을 열어왔고, 미묘한 분위기에 자체적으로 음소거 상태에 들어가 있던 사카타나 남궁설아마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은 원래 그런 사이였어?”

다만, 어째 아리엘에게 물어볼 때는 약간 장난이 섞인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진지하게 궁금해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이하린의 눈동자는 빠르게 데굴거리기 시작했고 말이다.

“···그, 그런 게 왜 궁금하세요?”

마치 그런 걸 알아서 뭐하냐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대답은 가뿐하게 되돌아왔다.

“그야 우리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뭔가 다른 애들이랑 다르게 조금 더 특별한 사이 같긴 한데, 물어볼 일이 있어야지.”

“유천하 쟤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이하린 너도 은근히 미스테리한 화젯거리거덩.”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저 말처럼 이하린도 분명 화제가 생길만한 인물이기는 했다.

애초에 이하린은 나와 마찬가지로 입학 이전의 행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면서도, 그 등천의 구도자에서 추천을 받아 입학한 생도이자, 동시에 근래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생도였으니 당연한 이야기였을 뿐.

물론 인지도가 부족해 유망주 소리는 못 듣고 있었지만, 적어도 실제 유망주들 정도라면 이하린의 실력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리엘이나 남궁설아는 아예 실전에서 이하린의 실력을 목격한 적이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들 또한 지난 승천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하린의 기량을 목격했을 테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하린은 3월 카룬드 침입 때도, 4월 위타극 테러 때도, 5월 승천제에서의 메인이벤트에서도 계속 끼어있었던 인물.

“되게 존재감이 없긴 한데, 그런 거치곤 갑자기 튀어나온 애가 검강도 쓰고, 업륜도 갖고 있고, 마인하고도 자주 엮이고··· 그치?”

“······.”

“맞아. 다른 애들 중에서도 은근히 하린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 거 알아?”

비록 사건마다 내가 도드라지게 나서다 보니, 이목을 빼앗겨 원작보다는 인지도가 부족하긴 하겠지만 지금의 그녀도 나름대로 알만한 사람들에겐 주목받고 있을 터였다.

만약 내가 대놓고 활약하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는 더 관심을 받았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다.

“아리가 너희랑 친해진 것도 궁금하긴 했는데, 그래도 얘는 짐작이 가긴 했거든?”

“근데 하린이 너랑 유천하는 둘 다 추천 입학으로 입학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구, 심지어 처음부터 매일 거의 둘이서만 다녔잖아.”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가 궁금하군.”

물론, 그동안 하도 이목을 끌어서 그런지 어째 이하린 자체보단 나와 관련된 부분에 더 주목한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보여준 행적이 행적이었으니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뿐.

“혹시 서로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어?”

그렇게 아리엘의 친구- 시아라 불렸던 아이가 이하린을 향해 질문을 건네었고, 그에 이하린의 눈동자가 한 번 더 데굴거렸다.

아무래도 저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듯한 눈치였는데, 이미 아리엘은 이야기를 한 상황에 주변에서 제게 궁금하다는 듯 저러고 있었으니 이하린으로서도 차마 모른 체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이하린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입학하면서 알게 된 거야?”

“그것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더?”

하지만, 다소 애매하게 느껴지는 대답.

“음···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줄래?”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자세히 이야기해보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에 이하린은 조금 더 민망해졌는지 붉어지는 귓가를 머리카락으로 가리고선 다시 입을 열어왔다.

그것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끄럽다는 듯 평소보다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이다.

“그······ 처, 처음 만난 건 2월이었어요.”

“2월? 뭐야, 생각보다 별로 안 됐었네? 더 오래된 줄 알았는데··· 너도 알고 있었어?”

“응? 아, 그치? 난 들어서 알고 있었지. 나한테도 자세히 들려줬던 건 아니었지만.”

친구의 대답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 아리엘이 이하린을 바라보며 가볍게 되물었다.

“천하랑 접경지에서 만났다구 했었지?”

“···넵. 중국 쪽 2차 외곽 접경지에서 만났었어요. 저는 침식방어전에 참여했구, 천하 씨는 그때 막 사회에 나온 상태였었구요.”

그 말과 함께 나를 힐끗거리는 시선.

이하린은 그 말과 함께 내 눈치를 보고는 무언가 고민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내 결정한 듯 소곤소곤 말을 이어나갔다.

“거기서··· 우연히 전장에서 마주쳐선, 이런저런 일을 통해 같이 황색탑에도 도전하러 가구, 그대로 같이 입학하게 된 거예요.”

“이런저런 일? 우연히?”

“아, 넵···! 마침 천하 씨도 회랑에 입학하러 나오셨다 해서,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그렇게······?”

그런데- 생각보단 간략했다 해야 할까?

어째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 아무래도 이하린으로선 본인만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기에 함부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주기가 조심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물론,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겨우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모야. 하린이는 왤케 숨기는 게 많아···?”

“···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접경지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대? 같이 황색탑엔 왜 가구?”

“아, 그··· 그건.”

“등천의 구도자 건은 어떻게 된 건가요?”

“그것도 어······.”

“그래서 둘이 친해지게 된 계기가 뭔데?”

그렇게 사방에서 하나씩 던져지는 질문, 그리고 빠르게 깜박거리는 이하린의 눈동자.

쏟아지는 질문에 당황한 이하린은 제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던 손을 더 좁혀버렸고, 그러자 귓가를 가리고 있던 검은 장막이 이내 그녀의 하얀 뺨까지 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머리카락 사이로 눈만 빼꼼 내놓은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어쩌다 보니까가, 어··· 어쩌다 보니까라··· 제 보고를 받은 등천의 구도자에서··· 후원을 결정했구, 그래서 어··· 후원이··· 그러다 보니까 정식 계약이 되었고··· 어······.”

그와 동시에- 슬쩍 나를 쳐다보는 그녀.

짐작대로 나와 관련된 이야기고, 이제껏 아리엘을 제외하고는 아무한테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내용인 만큼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에는 내 입장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려면 첫 만남의 상황까지 얘기해야 할 터였으니 이해되는 바.

물론 그러면서도 이전의 대화 때문에 조금 토라져 있는 건 그대로였는지, 여전히 제대로 눈을 마주쳐오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하린은 바닥을 보며 작게 속닥거렸다.

“···해도 돼요?”

“······.”

“그때··· 얘기?”

정말 속삭이듯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

하지만 중간이 끊기긴 했어도 나는 이하린의 말을 알아들었고, 그렇기에 나는 토라져 내 눈치를 보면서도 내 의사가 중요하다는 듯 옹알거리는 이하린의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살며시 웃어 보았다.

애초에 나로서는 딱히 그때의 일이 알려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저 와중에도 나를 신경 써주는 모습이 즐거웠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때 하린 씨가 나를 구해줬지.”

“아.”

나는 곤란해하는 이하린을 대신해, 의아해하는 아이들에게 가볍게 대답해주었으니, 이건 아리엘 때와는 다르게 나도 어느 정도 대답해줄 수 있는 부분이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물론.

“···응?

“음···?”

난데없이 흘러나온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말이다.

***

이 순간- 일제히 내게로 향하는 시선.

그리고 나는 그게 뭔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동시에 눈을 깜빡거리는 이하린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해주었다.

“서로 처음 만났을 당시에··· 내 부상이 너무 심해서 마수를 잡다가 쓰러졌었는데, 그때 나를 구해줬던 게 바로 하린 씨였거든.”

“······엥?”

“그리고는 병원에서 내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 신경 써주기도 했고, 하린 씨는 원래 등천의 구도자 소속이라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하린 씨를 통해 후원을 제안받았는데, 그때 회랑 입학 건으로 황색탑에 가게 됐지.”

입학하려면 추천장이 필요했으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때의 사실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주었고, 그런 내 말에 아이들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의아하다는 듯 변해갔다.

마치- 지금 자기들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 그러니까··· 네 말은 그럼······.”

“네가 죽을 뻔한걸, 하린이가 구해줬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천하 네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아무래도 영 납득이 안 가는 모양.

“하지만 사실이지. 하린 씨는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아이들은 내 말이 정말이냐는 듯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에 대신 대답해준 나를 바라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던 이하린은 이내 부끄럽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그러면서도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는 헤실거리려는 입이 엿보였고 말이다.

“생명의 은인··· 생명의 은인···.”

다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아이들의 반응은 그럼에도 여전히 미묘했다.

“허. 이게 뭔··· 네가 대체 어쩌다가?”

사실 그간 보여준 모습들이 있는 만큼, 이게 그리 쉽게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는 아니긴 했다. 무슨 멸화급 마수가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을 테니 이상하게 들리긴 했을 터.

하지만 반대로, 그동안 내가 보여준 모습들이 있는 만큼, 둘러댈 말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므로.

“어쩌다가- 라고 해도 사실이야. 사문의 근거지는 침식 영역 안쪽의 공백 지대에 있었고,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전투를 꽤나 치러야 했으니까.”

“···응? 전투?”

“도시로 오기 바로 직전에, 근방에 자리하고 있던 마인들 하고 싸웠던 상태였거든. 다른 걸 다 떠나서 습격한 숫자가 너무 많았어. 녀석들도 나를 어떻게든 죽이려 했었고.”

“······엥?”

나는 적당히 설정해둔 내용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오래전은 아니지만, 지금과는 전력 차이도 꽤 있었어. 그땐 지금보다 실력도 낮았고, 공략을 해본 적이 없으니 업륜도 없었고, 내력도 적었거든.”

“방금··· 2월이라 하지 않았음?

“입학 전에 얻은 게 꽤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하린 씨를 만났을 땐 기껏해야 마수 2마리를 베어내곤 바로 쓰러져버렸고. 다시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땐 하린 씨가 있었지.”

물론 이것도 진실 반, 거짓 반을 적당히 섞은 이야기였고, 침식 마인은 아니었을지언정, 장소가 다를지언정 그 상황에 놓이기 직전에 마인들의 습격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건 이하린에게 처음 사정을 설명할 때 준비해놨던 핑계였다. 비록 그때는 자세히 묻지 않고 가볍게 납득하고 넘어갔던지라 실제로 쓰진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도대체 뭐에 정신이 팔렸길래 내게 그걸 물어보지 않는 건가 싶긴 했고, 하다못해 순례자의 길 이후에라도 물어보지 않을까 싶긴 했었으나, 그땐 이하린의 상태도 다소 이상했었기에 알아서 잘 생각했겠거니 하고 넘어간 부분이긴 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이하린으로선 바로 눈앞에서 내가 실제로 죽을 뻔한 걸 목격하기도 했고, 내 실력을 제대로 온전히 파악하게 된 건 사실상 카룬드의 습격 이후였을 테니 그땐 이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지 않았을까 싶었을 뿐.

아니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증명됐기에 굳이 확인할 이유가 없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쨌든 그런 만큼.

“······!!”

이 순간, 이하린은 내가 처음으로 들려준 이야기에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얼굴로. 이하린은 천천히 제 큼지막한, 그러면서도 동그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그, 그래서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거였어요? 역류나 수호자급에 휘말린 게 아니라?!”

지금까지 저가 토라져 있었다는 것도 잊고선 황급히 내게 그 점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순히 놀랐다는 표정만이 아니라, 의아함과 걱정, 염려, 왠지 모를 미안함까지 담겨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이다.

“예. 도시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런 상태였습니다. 내력도 체력도 한계라서 일단 도시로 숨어들었는데, 하필 그때 도시에 역류가 터져서 휘말린 탓에 쓰러졌으니 어찌 보면 이유는 반반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아, 아니 왜 벼, 병원에 안 가시구!”

“그야 그때는 신원이 없었으니까요.”

“아.”

그제야 저와 등천의 구도자에서 신분을 만들어줬다는 걸 떠올렸는지 이하린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없이 입만을 뻐금거렸다.

그리고 물론.

“뭐야. 그럼 이건 하린이도 몰랐던 거야?”

“아니, 마인··· 은 그렇다 치고, 너가 죽을 뻔했다는 얘기 자체도 처음 듣는데 난?”

“그야 이것까지 얘기해줄 필욘 없잖아.”

그런 우리의 대화에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리엘까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빠르게 말을 건네왔을 따름이었다.

“너···! 또, 또 필요 없다고! 맨날 필요가 없대 이 바보는! 이러면 진짜 섭섭해 나?”

“···다 지나간 이야긴데 얘기해서 뭐해.”

“그래도! 아니, 그리고 대체 어떻게 하면 마인한테 습격을 받는 건데? 네가 뭔··· 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리엘은 잠시 말을 멈췄고, 가만히 그걸 바라본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금 설정을 추가로 설명해주었다.

“그야 근방에 있었으니까. 사문의 무학을 배우면서 마인을 사냥하러 다니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원한이 쌓이기도 했고··· 마침 타이밍이 안 좋기도 했고······ 뭐 그런 거지.”

거짓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소와 대상이 다를 뿐이지, 마인 사냥도, 원한도, 일단은 전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마인사냥? 잠깐, 그거 특례법 위반 아니야? 아무리 은거 문파라도 그런 걸 시켜?”

“대인전에 왜 그렇게 능숙하나 했더니···.”

“···여, 여기 범법자가 있다! 아, 아니다. 시킨 거면 아동학대인가? 어쨌든 불법이다!”

“살기가 강했던 건 그것 때문인가? 허.”

물론 그러자 주변에서 소란을 떨어대기 시작했지만,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무시했고, 가만히 입만 뻐금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째 둘 다 반응이 이상했던 탓이었다.

“마인 사냥··· 그래서 그때 그렇게······?”

“사문··· 마인 사냥··· 원한··· 그럼 역시.”

다만, 둘은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중이었는데, 들어보니 그다지 중요하진 않아 보였을 뿐.

기껏해야 마인 사냥에 관한 내 태도나, 대인전 경험에 대한 걸 생각해보는 거겠지.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어쩄든, 그렇게 첫 만남부터 하린 씨한테 도움을 받았고, 회랑에 입학하려고 등천의 구도자에 제안해 황색탑에 가선 순례자의 자격을 얻어왔고, 그리고 같이 입학한 거야.”

“······.”

“구명지은을 받은 데다, 입학과 관련된 일에도 도움을 받았고, 같은 곳에 소속되게 되었으니까 당연히 대하는 게 다를 수밖에.”

내 말에 뭐라 중얼거리던 이하린이 순간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친해진 이유가 있다면 그거겠지. 나도 하린 씨를 중요하게 대하고, 하린 씨도··· 첫 만남이 그래서인지 계속 신경 써줬으니까.”

“···그, 그건··· 그으렇긴 한데에······.”

그런데 그 순간.

“아, 잠깐만, 근데 그럼 맨 처음 등천에서는 뭘 보고 너를 후원해주겠다고 한 거야? 죽을 뻔했다는 애가 수호자급이라도 잡았어?”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나가 그리 질문을 건네왔고, 그에 뭐라 말을 꺼내려던 이하린도 말을 멈추고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바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 그건 제, 제가 추천을 넣어서······.”

“추천? 뭐야. 하린이가 먼저 대쉬한 거야?”

“···네? 아,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그럼 추천은 왜···? 얘기만 들어보면 신원도 없고, 도시 한복판에서 피투성이가 된 애가, 별다른 활약도 못 하고 기절한 거잖아.”

“그··· 얼추 맞긴 한데, 활약은 하셨어요. 천하 씨는 중상인 몸으로 휘청거리면서도 부정형 A급 마수를 일격에 베어내셨는걸요?”

그 말에 일제히 혀를 내두르는 아이들.

“일격? 하, 뭐 아까는 실력이 낮았니 뭐니 하더니, 그러면 지금이랑 다를 게 없잖아?”

“그땐 A급이고, 지금은 여명급인 차이지.”

“······하여튼 괴물 같은 새끼. 재능충 새끼.”

“와씨, 누구는 만전의 상태로도 일격이 힘든데, 은근슬쩍 사람 기만하네 이 친구?”

순간 아이들의 반응이 의아하긴 했으나, 생각해보니 사실 그간 상대했던 것들의 수준이 높아서 그렇지, A급도 강한 편이긴 했다.

애초에 연맹의 기준에선 A급이라면 번외급인 수호자급을 제외하고는 최고 등급이라 할 수 있었고, 그만큼 공략자나 부대단위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각성자나 군인들로는 상대조차 힘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편.

그러니 저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유난 떨기는.”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의 수준이라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그 반응을 무시했고, 그건 이하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대답을 이어나갔다.

“어, 어쨌든! 그, 그래서 등천의 구도자에서도 제 보고를 받고 후원을 결정했어요. 정확히는 티르유 씨가 스카웃 목적으로······.”

“티르유? 아, 그··· 철혈무희?”

“···아, 넵. 그··· 티르유 씨요!”

“근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진짜 사람들 남의 별명이라고 막 짓는다. 그치 않음?”

“너, 그런 말 하는 것도 실례야 이 새꺄.”

물론 이미 어느 정도 궁금증도 해소되고, 말문이 트인 아이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하린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하린이 너를 통해서 등천의 구도자가 유천하를 알게 됐고, 얘는 또 그걸 통해서 등천회랑의 추천장을 얻으려고 순례자의 길에 도전하러 갔다는 말이네···? 결국은?”

“넵···! 그냥 그거에요. 결국은.”

“음··· 그냥이라기엔, 그럼 결국 그렇게 회랑에 입학해선, 그 덕분에 얘가 하린이 너도 구해주고, 우리 아리도 구해준 셈이잖아?”

티나는 그 말과 함께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럼 사실상 유천하가 여기 있는 건, 우리 아리가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자면 다 하린이 덕분인 거 아니야?”

“······넵?”

“열심히 싸워준 거랑 별개로, 결국 하린이 너가 그날 유천하를 구해서, 유천하가 다시 너랑 아리를 구해주게 된 거잖아. 사실상.”

“뭐··· 크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그 말에 가볍게 동의를 보태주었다.

물론, 그건 내가 의도한 방향성이긴 했지만, 실제로 그날 이하린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미래는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차원이동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었다면 아마 내가 아는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하린이 그곳에 있었고, 내가 그곳에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이곳에 와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뿐.

비록 우연한 나비효과는 아닐지언정, 의도 속에 일어난 바람일지언정, 결국 그 맨 처음의 시작은 이하린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나는 구태여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나도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게 그녀라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그건··· 그, 그게에······.”

물론 이하린은 그런 사실이 부끄러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러한 부분을 언급했다는 게 당황스러웠는지 미묘한 반응을 내비쳤지만, 아이들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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