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85화 (185/205)

마음과 마음 (2)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산뜻한 목소리.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산뜻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필기가 4점이었다는 거?”

아니, 정확히는 조금 어이가 없었을 뿐.

그에 질문을 건넸던 티나는 떨떠름해 보이는 얼굴로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주변에 있던 아이들 또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저기··· 아리야? 뭔 소리야 그건 또?”

진심으로 하는 듯한 말에 티나는 벙찐 얼굴로 아리엘에게 되물었고, 그에 아리엘은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티나 너가 친해진 이유가 궁금하다며.”

“그으··· 쟤 필기점수가 4점이었던 거랑 친해진 이유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 건데?”

“처음엔 그런 이유도 있긴 있었으니까?”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에는 다시 괜찮아졌지만, 나도 사실 회랑에 오기 전까지 약간은··· 진시우한테 열등감?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했는데 그 비슷한 기분 정도는 느끼고 있었거든.”

“응···? 뭔 소리야? 아리엘 네가 왜?”

“그야 맨날 어떻게 해도 2등밖에 못 해서? 평가에서는 꾸준히 밀리고, 이론도 아슬아슬하고, 뭐랄까··· 다른 사람들이 보내주는 기대에 부응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매번 그렇게 뒤쳐지니까 약간 부담스러웠단 말이야.”

그런데-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약간은 미안한 듯, 그러면서도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얘가 나타나서는 실기는 만점을 맞아버리곤, 필기는 빵점을 맞아버린 거야.”

“···빵점은 아니었는데.”

“빵점이나 4점이나 바보야. 어쨌든! 실기는 진시우도 제치고 1등을 하면서도, 정작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게 확 뒤처지니까 그게 나한테는 엄청 신기하게 느껴졌던 거 있지? 그러면서도 되게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아리엘의 고백에 나는 얘가 지금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고민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아 보였다.

당연히 그래서 더 어이가 없었고 말이다.

“물론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천하가 되게 신기하고 편했었어.”

“······.”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대체 어떻게 이런 애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잘난 애라는 걸 알게 됐는데, 정작 그러면서도 엉뚱한 부분에서 그렇게 큰 구멍이 보이니까 약간 허당처럼 느껴지더라구.”

“······.”

“생도 중에서 제일 강한 애가 결국 실기에 몰방한 바보라 생각하니까, 덕분에 등수에 대한 집착도 상당히 줄어들었고 말이야.”

물론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나를 향해 작게 눈을 찡긋거렸고, 그에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

뭐라고 해야 할까, 참으로 미묘한 기분.

의도친 않았으나 나름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혼자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부분에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잠시 그 점이 헷갈린 것이다.

허나 내가 그런 기분을 느끼든 말든 아리엘은 잠시 예전, 그러니까 첫 만남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그 입에 머금고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애들처럼, 아니 내 입으로 이런 말은 좀 부끄럽지만···. 어쨌든 나를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한테 별다른 기대를 내비치는 것도 아니었거든?”

“······.”

“근데 또 나보다 확연하게 뛰어난 구석이 있으면서도, 정작 나보다 확실하게 뒤처지는 구석도 있고 그러니까, 그게 왠지 모르게 안심도 되고, 흥미롭기도 하고 그랬던 거야.”

“······.”

“그런 상황에서, 어쩌다 보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둘이서만 계속 마주치게 되니까. 생각보다도 허물없이 대하게 됐던 거구.”

어째 자꾸 말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영 거슬리긴 했으나, 지난 일이었으니 나는 그냥 흘려넘기기로 결정했고, 어쨌든 이제서야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아리엘과 꽤나 쉽게 친해졌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저런 이유도 있었던 건가?

안 그래도 승천제 때의 일을 통해 아리엘 또한 미묘한 열등감과 조급함을 품고 있었다는 걸 충분히 알게 된 바였고, 아리엘이 세간의 시선을 생각보다 부담스러워한다는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으니 바로 납득이 가는바.

물론, 저렇게 첫 만남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서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매일 같이 수련하면서 점점 더 편해졌고, 그러다 보니 같이 대련도 하고, 천하도 날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데, 은근히 맹한 구석까지 있어서 놀리는 게 재밌기도 했고··· 뭐.”

“······.”

“그러다가 자연스레 친해지게 된 거지.”

화사한 미소 속에 그렇게 흘러나오는 말- 지난 기억들이라도 떠올렸는지 아리엘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하린이는··· 천하 덕분에 얼마 안 가서 같이 어울리게 됐고, 하린이도 천하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나를 편하게 대해줘서··· 그래서 편해지고, 친해져서 이렇게 된 거야. 응. 내가 둘이랑 친해진 과정은 이런 식이었어.”

생각보다 별거 없지?-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난데없는 고백은, 그렇게 따스한 미소와 잔잔함 속에 끝맺었을 따름이었다.

그것도 약간의 낯간지러움을 남긴 채로. 다소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선 말이다.

물론, 그런 만큼-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건 누구라도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 뚜렷했으니.

바로 그렇게-

“···어째, 되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너?”

-가만히 아리엘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들도 이제는 어느새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우씨. 이 분위기 어쩔 거야 대체.”

“참나, 너희가 자꾸 물어봤으면서 뭘.”

“농담으로 넘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마도 생각보다 아리엘이 솔직하게 대답을 돌려줘서 신기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에 와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리엘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편이긴 했으나, 이제껏 아리엘이 저런 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어쩌면 이것도 아리엘의 마음이 이전과 달라졌단 반증이라 볼 수 있었을 뿐.

원래라면 저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진지하게 되돌아온 아리엘의 대답, 그 내용에 원래부터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기원학회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리엘을 향해 서운함을 내비쳐 보였다.

마치, 왜 자기들 사이에 그걸 이제까지 이야기 안 해줬냐는 듯한 표정이라 해야 할까? 나름대로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리고 물론.

“근데··· 그럼 여태껏 우리는 안 편했어?”

“그런 거면 우리가 불편하게 했던 거야?”

“미리 말해주지. 그럼 조심했을 텐데···.”

“응?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얘들아!”

시무룩해진 친구들의 반응에 당황한 아리엘은 빠르게 제 손을 내저었을 따름이었다.

“너희도 당연히 편하지! 완전 어렸을 때부터 맨날 함께 다니고, 같이 지내왔었는걸?”

오해하지 말라는 듯 말을 덧붙이는 그녀.

“근데 뭔가 방금은 뉘앙스가 이상했잖아.”

“우리한테는 그런 걸 얘기도 안 했었고.”

“유천하한테는 몸까지 내던졌으면서···.”

“아니··· 그 얘긴 지금 왜 나오는 거니?”

하지만 아리엘의 친구들은 그런 아리엘의 반응에도 그저 서운하다는 듯 투정을 부렸으니, 미안하다는 듯 당황해하던 아리엘이 순간 어이가 없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리고 물론- 그건 씨알도 안 먹혔을 뿐.

“웹에만 검색해도 뜨는 걸 뭘. 너 승천제 이후론 연관 검색어에 유천하까지 뜨잖아.”

“······.”

그런 그녀들의 대화에 방금의 진지했던 분위기에 말없이 듣고만 있던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트렸고, 주스를 마시려던 이하린까지 덩달아 콜록거리기 시작했으니.

그에 귓가가 조금 달아오른 아리엘이 콜록대는 이하린을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제 친구들을 노려보았다.

어째 마력이 일렁거리는 게 아무래도 언령을 쓸까 말까 고민 중인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애들 앞에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배신감 느꼈으니까 그렇지··· 너무해!”

“맞아, 아리 네가 잘못했어 이건. 너무해!”

“우리는 십년지기 친군데 말도 안 하고.”

“···너희가 이래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하지만 진심으로 서운하다는 듯 구는 아이들의 태도에 차마 그러기는 힘들었는지, 아리엘은 작게나마 핀잔을 돌려주며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허탈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건 천하나 하린이한테도 얘기 안 했어 바보들아. 그리고 그때 내 앞에 있던 게 너희였어도 바로 뛰어들었을걸? 아마도···?”

어째 약간은 미안해진 듯한 목소리였다.

“아마도는 뭐야. 난 아마도 실망했을걸?”

“알았어 알았어! 똑같이 그랬을 거야.”

“그럼 쟤가 더 편했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니··· 그건 그냥. 음··· 당연히 편하긴 한데, 편하다의 느낌이 달라서 그래 그건.”

물론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했기에 아리엘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친구들을 바라보았고, 그리고는 다시 나를 보며 약간은 피곤해진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하였다.

“너희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알고 있기도 했고, 우리 아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내가 너희한테 보여줬던 모습도 그렇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조금 다르단 말이야.”

“······어떻게?”

“음··· 그러니까···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거 하곤 별개로, 나는 너희한테도, 그리고 다른 애들한테도 일단은 아리엘 화이트잖아? 승천자의 딸이구, 유망주기도 하구, 어릴 때부터 계속 그렇게 비치고··· 불려왔으니까.”

그 말을 하며 약간은 민망한 듯 웃어 보인 아리엘이 이번에는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둘은··· 천하도 그렇고, 하린이도 그렇고··· 이제껏 기관에서도, 시설에서도, 다른 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 으음. 이게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잠시 고민되는 듯 미간을 그러모았고, 잠깐의 생각 끝에 다시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그것도 상당히 미묘한 말과 함께 말이다.

“약간 이상한 비유긴 한데··· 둘 다 뭔가 다른 세상에서 온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세상···?”

그러자 순간 움찔거리는 이하린의 어깨.

“응. 그래서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애들이 나를 그냥 평범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약간은 부끄럽지만··· 어쨌든 평범한 생도로만 봐주니까 그게 좀 달랐던 것 같거든.”

“······.”

“기대받는 유망주로서의 위치도 보람차긴 한데, 그래도 매번 그런 취급만 받아오다가 천하나 하린이랑 있을 때면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된 것만 같았으니까.”

물론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었기에 나는 담담히 듣고 있었지만, 나는 저 말이 꽤나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처음엔 아리엘을 원작의 인물로 바라보았지만, 그건 얼마 안 가 사라졌고, 이제 내게 아리엘은 원작의 아리엘이 아닌, 내게 장난치는 말괄량이 아리엘이 되었으니 저 말도 나름 정확하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젠 내게도 아리엘은 아리엘이었을 뿐.

비록 맥락은 달랐을지언정 너무나도 엉뚱하게 적중한 말에 나 또한 작게나마 웃음이 나올 뻔했고, 건너편에 있던 이하린의 표정도 상당히 어색하게 변해버렸을 정도였다.

이하린도 아리엘과 아이들을 그저 소설 속 인물로만 여기고 있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물며 둘 다 내 생명의 은인이잖아?”

“생명···? 아, 3월?”

그리고-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아리엘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었다.

“응. 그때 하린이는 나를 지켜주려고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타천자랑 싸웠잖아. 천하는 그런 하린이랑 나를 구해주기도 했고.”

“······.”

“그러니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태도로 나를 대해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구해줬으니까 말이야. 나 그때, 기절하면서도 진짜 무서웠었거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날의 사건에 지켜보던 아이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고, 열심히 그녀를 놀리던 티나마저도 그에 미안해졌는지 말꼬리를 흘리며 눈을 데굴거렸다.

그러자 그에 피식- 웃어 보인 아리엘은 이내 고개를 돌려 이하린을 바라보았을 뿐.

그리고는.

“그래서, 그때 나도 모르게 뛰어들었던 이유엔 그것도 있었어 분명. 소중한 친구기도 하지만, 내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때 같은 상황에 처했던 게 하린이었어도 난 똑같이 뛰어들었을걸?”

“···저, 저도요?”

“응. 하린이도 나한테 똑같이 해줬잖아. 그러니까 나도 너한테 똑같이 해줄 수 있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하린에게 저런 말을 건네주었으니, 지금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누가 들어도 진심이 담긴 말이었기에, 아리엘과 눈을 마주한 이하린의 귓가가 한순간에 붉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무척이나 부끄럽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저건 상당히 낯간지러운 말이었으니, 하물며 그 대상이 이하린이라면 당연한 일.

그렇기에 이하린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푹 숙여 보였고, 그렇게 이하린을 가볍게 침몰시킨 아리엘은 그에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또 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친해진 이유가 있다면 이걸 거야. 별거 아니라 하면 별거 아니지만, 그런 게 나한테는 나름대로 큰 영향을 주었으니까.”

그것도 무척이나 온화한 미소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 저런 말을 건네오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고 물론, 느낌이 다른 거지 당연히 나한텐 너희들도 소중한 친구야 이 바보들아.”

“······.”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나는 너희가 그랬어도 똑같이 뛰어들었을 테니까.”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도, 표정도, 분명 누가 봐도 애정이 가득한 모습이었고, 그 모습에 괜히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까지 덩달아 민망해져 얼굴을 붉혔을 정도였으니, 지금이 어떠한 분위기인지는 말 다 한 셈이었다.

부드럽고, 화사하게 미소 짓는 얼굴- 지금 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엘의 표정은 분명히 그런 말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만큼- 서운함을 내비쳤던 아이들 또한 아리엘의 얼굴을 보고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툴툴거리며 입만 삐죽거렸으니, 실제로 위험했던 3월의 일까지 언급한 마당에, 아리엘이 저렇게까지 나오니 더 이상 장난스레 투정 부리기도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이 없잖아.”

“···나도 똑같이 해줄 수 있었는데.”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미안!”

기어코 그런 아이들의 항복을 받아낸 아리엘은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장난스레 웃어 보였고, 내 눈엔 정확히 그게 들어왔으니-

‘쉿.’

-아리엘은 비밀로 하라는 듯 나를 향해 습관처럼 또 눈을 찡긋거렸을 따름이었다.

***

아리엘의 고백 아닌 고백으로 시작된 분위기이긴 했으나, 역시 아무래도 말은 진심이었으되 아리엘이 일부러 더 골탕을 먹이려고 저렇게 진지하게 말했다는 느낌이긴 했다.

괜히 민망한 소리를 해서 곤란하게 했으니, 똑같이 만들어주었다는 느낌이라 할까?

그렇기에.

“······.”

“······.”

진담 반, 장난 반인 듯했던 아리엘의 말이 끝나자, 실내에는 적막이 내려앉았을 뿐.

그리고- 그런 상황을 이제껏 다른 아이들은 마치 관객이 된듯한 모습으로 열심히 지켜보고 있던 만큼, 정작 그 대화의 당사자들이 이젠 다 입을 다문 상황에 적막이 찾아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리엘 얘. 원래 성격이 이랬었나···?”

“원래도 나긋한 느낌이긴 했는데··· 참.”

“몇 번 안 본 사이에 되게 솔직해졌네.”

아리엘 혼자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상황에서, 아이들도 어색해진 분위기는 싫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적막을 깨트렸으니- 다들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모양.

하물며 항상 맥락 없이 까불거리던 리베르테도 지금의 상황에선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아니면 이런 분위기에는 약했던 건지 말없이 눈만 데굴데굴 굴려댔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은데··· 저어기이······.”

아리엘의 말에 달아올랐던 귓가가 이제야 진정이 됐는지, 푹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하린이 어느새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이내 입을 열어왔다.

“그래도··· 실제로 그러지는 말아주세요.”

그것도 난데없이 아리엘을 만류하면서.

하지만 물론, 조금 전의 대화가 대화였던 만큼 나는 저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고, 아리엘 또한 이하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잠시 눈을 깜박거리곤 입을 열어왔다.

“응? 다른 사람 대신에 그러지 말라구?”

“넵··· 그, 무, 물론 마음은 감사하긴 한데,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아리엘 씨가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그냥 하는 말로 넘기기에는··· 이미 전적이 있으셔서···.”

이하린은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듯 눈을 힐끔거리며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런 이하린의 말에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들도 다시금 그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건··· 나도 하린이 말에 완전 동의!”

“맞아. 바보야. 넌 진짜 그럴 것 같아.”

“축제 때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러자 이제껏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었던 마르네도 가볍게 말을 툭 던져왔을 따름.

“나도 그땐 진짜 놀라긴 했지. 넌 그때 그게 뭔 줄 알고 대신 뛰어들었냐? 적어도 너보단 유천하 저 녀석이 튼튼할 게 분명한데도.”

“내 말이 그거라니까? 우리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응? 아주 그냥 바보처럼.”

“아니, 대체 누가 누굴 키웠다는 거니? 그리고 아까는 그렇게 말했으면서··· 갑자기?”

“마음은 고맙긴 해도, 실제로 그러진 말라고 바보야. 아까는 그냥 한 말이었으니까.”

어느새 아이들이 저마다 말을 던져대기 시작했고, 그렇게 은근슬쩍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던져대자, 아리엘은 질린 기색을 내비치며 제 귀를 틀어막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하나 해결했다 싶었더니, 다시 이러는 게 그녀로서도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아, 알았으니까 다들 일단 쉿!”

우웅-! 한순간에 퍼져 나가는 언령.

그렇게 아리엘로부터 퍼져 나간 마력의 파문이 한순간에 짹짹거리던 아이들의 입을 붙들어버렸으니, 졸지에 몇 마디 하지도 않은 이하린과 마르네까지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러자 이하린은 빠르게 의념으로 언령을 깨트렸지만, 다른 아이들은 상성이 안 좋았는지 그대로 아리엘을 노려만 보았을 뿐.

물론- 아리엘은 그에 개의치 않고 아무렇지 않게 차분히 대답을 돌려주었고 말이다.

“저기··· 얘들아? 그때 일에 대한 건 이미 여기 당사자한테도 한 소리 듣고, 아빠한테도 한 소리 들었으니까 충분하단 말이야.”

“······천하 씨랑, 루타텔 님에게요?”

“응! 그것도 그때 바로 혼났고, 아빠한테도 마지막 날에 혼났으니까 너희까지 안 그래도 돼. 나도 그냥 마음을 얘기해준 거니까.”

그에 이하린은 살며시 나를 바라보았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피해버렸다.

그리고는 소심하게 다시 대꾸했다.

“그래도··· 다시 그럴 거 같단 말이에요.”

“아니, 하린아. 근데 그건 너도······ 아.”

“저도···?”

아리엘은 순간 이하린을 향해 뭐라 대꾸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다물었고, 그리고는 무언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왠지 끊긴 시점을 생각하면 이하린 또한 같은 상황에선 똑같이 그럴 거 아니냐 말하려던 게 아닐까 싶었으나, 승천제 때의 상황, 그때 이하린의 상황이 뒤늦게 기억났는지 아리엘도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근래 이하린의 멘탈이 미묘해졌던 건 그때의 영향이 컸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았던 걸까?

“아, 아니! 어쨌든, 근데 왜 자꾸 아까부터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너희? 이, 이젠 나도 얘기했으니까. 하린이 너두 얘기해야지.”

“······네?”

“하린이 너는 천하랑 어떻게 친해졌는지. 나한테도 아직 자세히 안 말해줬었잖아.”

오늘 본 모습 중에 가장 당황한 표정을 한 아리엘이 재빠르게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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