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84화 (184/205)

마음과 마음 (1)

경지에 관한 생각, 미래에 관한 생각. 그리고 거기에 이하린과 무림에 대한 생각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지만, 내가 그러든 말든 파티, 아니 파티라고 하기에도 뭐한 이 저녁 식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이들이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노을빛이 넘실거리던 창밖에서는 어느덧 푸르고 어두운 빛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중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내의 분위기도 점점 생각보단 조금 더 유순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꽤나 달아오른 분위기.

아직 다들 미성년자였던 만큼 딱히 알코올 같은 건 없었으나, 무알코올 샴페인과 탄산음료, 오렌지 주스만으로도 혈기왕성한 아이들의 기분이 들뜨기엔 충분했던 걸까? 시작할 땐 약간의 어색함 속에 각자 편한 이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도 이제 와선 분위기에 적응해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모두가 같이 대화에 참여할만한 주제 거리가 있는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정말, 다시 말하지만 다들 너무 고마워.”

그 주제- 승천제 때의 감사가 아리엘이 아이들을 이곳에 초대한 이유기도 했던 만큼, 아리엘은 지금 승천제 이야기로 떠들썩해진 분위기에 힘입어 인사를 건네는 중이었다.

처음에 어색했을 때는 열심히 눈치를 보더니, 기어코 저 말을 해주고 싶었던 모양.

“너희가 아니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하지만 그런 아리엘의 말에도 아이들은 다들 조금 민망하다는 듯 실없이 웃어 보였고, 마르네는 됐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뭔 낯간지럽게 인사는···. 거 대충 넘겨.”

“그래도 사실인걸? 그리고 원래는 바로 이러고 싶었는데, 축제가 끝나자마자 또 놀자고 부르는 건 좀 그래서, 이렇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을 때를 기다린 거란 말이야.”

정말 고마웠으니까-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제 손, 정확히는 손등의 업륜을 내비치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고, 그에 아이들은 제각기 묘한 표정으로 그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리엘의 말에 오그라든다는 듯 손을 내저었던 마르네도 업륜만큼은 흘깃거렸으니,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뿐.

물론 아리엘로서는 그저 고마움의 근거를 내비친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선 업륜이 꽤 부러웠던 모양이었고, 이어진 아이들의 말이 그 판단을 긍정해주었다.

“아, 저거 진짜 다시 보니까 너무 부럽네.”

“아··· 부럽다 부러워. 나도 좀 갖고 싶다.”

“아리엘도 업륜 있고, 유천하도 업륜 있고, 쟤 이하린도 있고, 나만 업륜 없··· 어라?”

그리고는 이내.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여기에 지금 업륜 소유자만 3명이 있는 거네 따지고 보면?”

“응? 아 맞네? 쟤도 업륜 있었지? 맞아.”

“와, 쟤는 또 업륜을 어떻게 얻은 거래?”

이하린까지 언급하며 아이들은 황당하다는 듯 차례대로 우리를 바라보았으니, 승천제 때의 활약으로 이하린의 업륜도 이미 생도들에겐 알음알음 퍼져 있는 상황인지라 이하린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아리엘은 그저 자랑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물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싶었을 따름.

하지만 그런 내 반응에도 아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고, 나는 당연스럽게 약간 별개의 무언가로 취급한 아이들은 마냥 부럽다는 듯 그녀들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생도들답게 그러면서도 마냥 그저 부러워하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신기하긴 하네 1학년에만 업륜이 3명. 아니다, 진시우 걔도 왠지 있을 것 같긴 하고··· 왠지 우리도 한번 노려볼 만하지 않냐?”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1획이면 그래도 여명급 탑 단독 공략 정도면 될 거 아니야.”

“오키오키! 그럼 나도 방학 때 무조건 여명급 솔플 도전해봐야겠다. 왠지 될 것 같음.”

마르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리베르테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에 옆에 있던 사카타가 고개를 내저었다.

“단독 공략 정도면··· 이라니, 그렇게 까불다가 죽지 말고 천천히 해라. 나도, 너희도 수호자급 하나만 상대하는 것도 변수가 있을 텐데, 단독 공략이면 아예 난이도가 달라.”

“그렇긴 해. 결국 그런 업이라는 거니까.”

“맞아 이 새끼야. 그러다 훅 간다 아주? 업륜은 내가 먼저 얻을 테니까, 너는 걍 나대지 말고 다른 애들이랑 같이 도전해 짜식아.”

“응? 내가 못하면 너도 훅 가는 거 아냐? 와씨. 마르네 뒤지면 장례식에낰··· 야잌?!”

파앙-! 욱한 마르네의 손에서 가볍게 마력이 쏘아지고, 그에 얻어맞은 리베르테가 길길이 날뛰며 시끄럽게 굴어댔지만,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어차피- 1시간 동안 저 두 사람의 유치한 투덕거림도 벌써 6번은 더 있었던 탓이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가면 업적 쌓이는 게 엄청 줄어든다고 들었는데, 아냐?”

“그치? 일단 ‘업’ 자체가 분산될 테니까.”

“그래도 제대로 1인분만 하면, 차라리 여럿이서 10번~20번 도는 게 더 안전하긴 하지. 혼자 무리해서 도전하다 죽는 것보단.”

“현실이라 생각하면 난이도가 확실히 어렵긴 하네. 우리 아리는 어떻게 얻은 거래?”

가만히 듣고 있던 아리엘의 친구- 티나 아라하가 아리엘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그리 물어보았고, 아리엘은 뭐라 말하려다 잠시 고민해보더니 이내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일단··· 업의 기준에는 주관적인 요소도 중요하니까 그런 거겠지? 아빠, 아니 아버지는 만상세계가 우리의 업을 인정해준 거라 하셨었는데, 그때 조건이 열악하긴 했잖아.”

“아··· 루타텔 님이? 뭐, 그렇긴 했지.”

“응. 허상이긴 했어도, 일단 그때의 우리에게는 그 상황이 전부 다 현실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고맙다는 거고-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더 자신의 계획에 따라줘서 감사했다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아리엘의 말에 다들 그 당시의 일이 기억이 났는지 같이 작게 웃어 보였고, 마찬가지로 리베르테와 투덕거리던 마르네도 그녀를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뭐··· 그건 그렇지. 나도 솔직히 그땐 뒤지는 줄 알았으니까. 현실인데도 그런 계획이라니? 난 아리엘 얘가 미친 줄 알았잖아.”

그리고 물론- 그때의 다급했던 상황을 되새기자 다들 공감이 갔는지, 가만히 있던 이들도 이내 그때의 일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진짜 무서워 뒤질 뻔했지 그때는. 어떤 미친놈들이 멸화급 위로 다이브를 하냐고.”

“사실 나는 아리엘 네가 그걸 성공할 거란 것도 못 믿었다. 방벽을 잠깐 깨트렸다고 멸화급 정도의 마력체를 떨어트린다니··· 허.”

“그래놓고 목숨 걸고 뛰어들었으면서 뭐.”

“그야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담담하게 흘러나온 사카타의 말에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는 듯 일제히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이제껏 가만히 듣고 있던 이솔라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히 입을 열어왔다.

“······그래도 성공했어. 다.”

이솔라는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고, 그에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리엘과 합을 맞췄었던 기원학회의 아이들과 그 자리에 있었던 이하린도 미묘한 표정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으니, 결국-

“뭐, 그렇지. 다 성공했지. 계획대로.”

“그래그래. 아리엘의 계획대로긴 했지.”

“괜히 업륜을 얻은 건 아니란 말이야.”

“···뭐, 뭐야 갑자기. 다들 민망하게.”

-그 계획의 입안자였던 아리엘은 그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보였을 뿐이었다.

어째 상당히 쑥스러워 보이는 듯한 모습.

아마도 다들 에둘러 불만처럼 이야기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결국 다 칭찬이었기에 아리엘로서도 꽤 부끄러웠던 게 아닐까?

아리엘은 본인이 장난치는 거엔 강하면서, 저런 거엔 의외로 약한 구석이 있긴 했다.

물론 그런 아리엘의 모습에 아이들은 그저 웃기다는 듯, 그러면서도 훈훈한 눈빛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기에 실내의 분위기는 조금 더 부드럽게 풀려나갔고, 그에 나는 순간적으로 손끝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상당히 낯간지러웠던 탓이었다.

그리고 물론.

“어우씨. 근데 갑자기 뭐야 이 분위기···?”

그렇게 느낀 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이내 리베르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쿡쿡거리며 웃음을 흘려보냈고, 그에 다들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보이며 민망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하하! 누가 보면 뭔 다 같이 은퇴해서 추억이라도 회상하는 줄 알겠다 이거. 그치?”

“아아- 이것이 전우애라는 것이로구나.”

“미친 새끼. 말투 왜 이래? 토 나와 임마.”

“···그런 느낌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어이없기는 하군.”

그런데 다만.

“······.”

아무래도 이하린으로서는 주연 아이들이 저렇게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

저런 아이들의 반응에 조금 전의 분위기를 굉장히 뿌듯한 표정이 되어서,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이하린의 귓가가 빠르게 붉어졌으니,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이내 다시금 고개를 휙- 숙여 보였다.

그것도 누가 볼세라, 황급하게 말이다.

물론 나는 이하린이 왜 저러는지 짐작이 갔기에, 저 모습을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도, 혼자만 생각이 다르자 부끄럽다는 듯 저러는 것도, 아직도 토라져서 저러는 것도 참 이하린답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일부러 어색함을 털어내려는 듯 리베르테가 다시금 그 주제를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뭐··· 오그라들긴 해도, 그래도 아리엘이 대단한 일을 하긴 했잖아? 그니까 업륜을 받은 거지? 솔직히 신기하긴 했어.”

“괘, 괜히 민망하게 진짜··· 어쨌든, 말했듯이 너희가 안 도와줬으면 나도 불가능한 일이었어. 방벽을 깨준 것도, 시간을 벌어준 것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녀석을 마무리한 것도··· 특히 천하 도움이 엄청 컸었는걸?”

하지만- 자신이 화제가 되는 게 부끄러웠는지 아리엘은 내 이름을 언급하며 화제를 휙 돌려버렸고, 그러자 아이들도 자연스레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공로만 따지자면 요놈이 컸지.”

“시간을 벌고, 장소로 녀석을 유인한 것도 얘가 한 거고, 떨어트리고 방벽이 완전히 깨질 때까지 뚝배기 깨고 있던 것도 얘고······.”

“결정적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도 얘잖아.”

“아주 그냥 지 혼자 다 해 먹었네 그냥.”

마르네는 그 말과 함께 히죽거리며 고개를 내저었고, 이내 무언가를 떠올려보는 듯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타천자 새끼 때문에 사라졌던 니네가 난데없이 공중에서 나타났을 때만 해도 진짜··· 어휴. 니들이 안 나타났으면 정말.”

“아! 맞아 맞아! 그때 갑자기 튀어나와선 포화까지 막아내고, 나 엄청나게 놀랐잖아.”

“하린이도 완전 화들짝 놀라던데 그때?”

“······노, 놀라기는 했죠.”

“그때 대체 둘이서 뭐 하고 온 거였어?”

마르네의 말을 받은 티나가 궁금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 아리엘을 향해 질문을 건넸고, 물론 아리엘은 그 물음에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래도 아리엘로서는 그때 안에서 있었던 대화들이 다소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면 세계 안에서의 일은 나르화리얀이 막아줬는지 따로 중계가 되진 않았기에 우리가 안에서 무슨 일을 겪고 왔는지는 당연히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고, 그러므로 굳이 의뭉을 떨 이유도 없었다.

사실 무슨 일이라기엔,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엔 내가 대답을 돌려주었다.

딱히 서로 친한 건 아니었으나 아리엘 친구들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친하든 말든 건수만 생기면 귀찮게 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어쩌다 보니 둘이 갇혔고, 그때 탈출했다. 그게 전부였으니까.”

“응? 아··· 그래? 정말?”

“···응!! 천하 말이 맞아! 처음부터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 일도 없었는걸?”

그러자 의뭉스럽게 넘기려 했던 아리엘도 냉큼 내 말을 받고 말을 덧붙였고, 그에 몇몇 아이들이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사실이기도 했고, 저 아이들이 그걸 알 방법도 없었을 따름.

물론, 사적인 대화의 내용이, 조금, 약간이나마 미묘하긴 했지만 사실 다른 아이들의 입장에선 그리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고, 딱히 이상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주스를 홀짝거려보았다.

다만, 태연했던 건 나뿐이었던 모양.

“흐음··· 뭔가 수상한데 둘이.”

“왜 거기만 중계가 안 된 걸까?”

“둘이 이상한 행동이라도 했어?”

“아니, 진짜 이상한 소리 할래?”

“···아, 아닐 거에요 그런 건!”

“하린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게 역시라고 해야 할지, 재밌는 가십거리를 물었다는 듯 반응한 아이들은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 우리- 그러니까 나와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그런 다른 이들의 반응에 오히려 이하린이 대신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모야 모야. 하린이는 반응이 왜 그래···?”

“아, 아니. 그, 그냥 말한 건데 이거······.”

“혹시 둘이서 너만 따돌렸을까 봐?”

“제가··· 무슨 어린애예요? 그게 무슨···!”

“하긴 나도 평소에 얘네 셋이 수상했어.”

“아, 맞아. 맨날 셋이서만 같이 다니고!”

커뮤니케이션 먹이사슬의 최약체였던 이하린의 행동에 아리엘의 친구들은 신나서 말을 걸기 시작했으니, 이하린과 친하지 않았던 사카타네 아이들까지 옆에서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하린의 반응이나, 이하린을 놀리는 아이들의 태도나, 그런 게 제삼자의 눈엔 굉장히 유쾌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여러모로 놀리기 쉬운 타입이라는 느낌.

“수상해 정말. 대체 너희 뭐야 진짜?”

“뭐, 뭐긴 뭐야? 그냥 다 친구지 그냥!”

“아리는 왤케 당황해? 이거 수상해.”

“맞아. 너희 셋은 어쩌다가 친해진 건데?”

“아리는 그렇다 치고 유천하 쟤랑 하린이는 맨날 둘이서, 혹은 셋이서만 다니잖아.”

“그건··· 그냥 천하가 친구가 없······.”

“아리엘 시끄러워.”

하지만 농담의 주제가 나와 아리엘이기도 했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이하린의 눈이 미묘하게 느껴졌던 탓에 나는 마시던 주스를 내려놓고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입을 열어보려고 했다.

“아, 근데 말이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바로 그 순간.

“너희 셋은 진짜 어쩌다 친해지게 된 거야? 전부터 궁금했거든? 이거 되게 궁금해.”

“···응? 우리?”

“응. 너희. 셋.”

열심히 이하린을 놀리던 아리엘의 친구- 티나 아라하가 그 순간 우리를 향해 다소 미묘한 질문을 건네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어쩌다 셋이서 친해지게 됐냐라- 솔직히 말해서 이건 상당히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도대체 우리의 관계가 어쩌다가 지금 이렇게까지 된 건지 설명하기에는, 나로서도 자세히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아! 맞아! 나도 이거 궁금해! 너희 때문에 아리가 예전에 비해 우리랑 잘 안 놀잖아.”

“···아니, 얘들아? 나 원래 잘 안 놀았어.”

“쉿! 쨌든! 나도 이건 진짜 궁금하거든?”

“하린이랑 유천하는 다른 애들이랑은 안 어울리는데, 너는 3월부터 잘 어울렸잖아.”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을지언정 그 내용에 다른 아이들도 무척이나 큰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건 굳이 아리엘의 친구들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야, 근데 아리엘 얘는 원래 여기저기 잘 말 걸고 다니지 않냐? 나나 남궁설아 쟤한테도 친한 척하는 거 보면 원래 저런 애잖아.”

“······쟤한테도··· 친한 척···?”

“오우. 너도 네가 어떤 이미지인지 아는구나? 역시 자기 객관화는 참 뛰어난 친구야.”

“누가 누구보고 친구래 뒤지고 싶냐?”

“확실히 이건 나도 조금 궁금하긴 하군. 유독 셋이 빠르게 친해진 것 같기는 하니까.”

물론 중간에 이상한 녀석이 하나 껴있었지만, 기원학회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사카타나 리베르테 같은 아이들도 궁금하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았고, 이제껏 조용히 있던 남궁설아 또한 우리를 향해 흥미를 내비쳤다.

그러자 난데없는 질문에 이하린과 아리엘은 서로의 시선을 바라보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으니- 나와 눈이 마주친 이하린은 움찔하며 고개를 되돌렸고, 아리엘은 당황스러운 듯 입술을 달싹거렸을 뿐.

잠시 고민하는 듯했던 아리엘은 이내 천천히 입을 열며 주변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음··· 질문이, 뭔가··· 쪼오금 그런데?”

“왜? 너희 셋이서 친한 건 맞잖아.”

“응? 아, 그렇긴 한데··· 어, 그, 그냥?”

“뭐야. 아리 너··· 혹시 말해줄 수 없는, 무슨 굉장히 낯부끄러운 이유라도 있는 거야?”

“아니··· 티나야? 그런 거 아니거든?”

우웅- 그 대꾸와 함께 아리엘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마력의 느낌이 아무래도 제 친구들의 입을 언령으로 막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는 느낌이었으니, 고개를 돌린 아이들이 이번엔 나를 쳐다봤다.

뭐 얘기할만한 거리가 있냐는 듯한 시선.

“······.”

“······.”

하지만 나는 정말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아리엘하곤 3학구의 인연이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친밀하게 이어져 오는 중이었고, 이하린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던 편이었기에 그런 걸 설명할 순 없었던 탓이었다.

하물며 이하린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게 큰 호의를 보이며 계속 내게 다가왔고, 아리엘 또한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있긴 했으나, 나도 그 이유만큼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만약 짐작을 해본다면 이하린은 내가 그녀 앞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기에, 아리엘은 내가 그녀를 구해준 적이 있었기에··· 정도?

물론 어디까지나 짐작이었지만 말이다.

“얘는··· 물어봐도 소용없을 것 같네.”

“그냥 쟤 이하린이나, 아리엘한테 묻는 게 빠를걸? 얘도 약간 사카타나 진시우과잖아.”

“잠깐, 나랑 진시우과가 뭐지 대체.”

“사카타 지도 알면서 괜히 되묻기는.”

어쨌든,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가만히 다시 주스를 홀짝거리고 있자니 애들도 알아서 지레짐작 포기하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보았다.

“······!”

“······.”

그러자 또 열명이 넘는 아이들의 시선을 받게 된 이하린은 부끄러운 듯 자신의 주스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려보았고, 신기하게도 잔 하나로 얼굴의 대부분이 가려진 이하린의 모습에 아이들은 그냥 다시 시선을 돌렸다.

놀리기에는 좋은 모습이나, 아무래도 제대로 된 답을 듣기는 힘들 거라 생각한 모양.

그리고 그런 만큼.

“아니··· 진짜 별거 없거든 얘들아?”

졸지에 다시 또 청문회 아닌 청문회의 당사자가 된 아리엘이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았으나, 그럼에도 나는 주스나 홀짝거렸을 뿐.

솔직히- 진짜 해줄 말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친해진 거란 말이야.”

“그렇다기엔 생각보다 너무 친하잖아.”

“맞아. 3월 초부터 너 유천하한테 자꾸 마력 문자 보내고 그러는 거 우리도 다 봤어.”

“워치 냅두고 아주 알콩달콩하던데···?”

“······너희 진짜, 나 화낸다?”

그에 아리엘은 너무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나를 한번, 제 친구들을 한번 노려보고는 이내 그럼 말해주겠다는 듯 입을 떼며 제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그래. 말해줄게. 뭐.”

그런데 다만.

“근데··· 이게 말하기가 좀··· 으음.”

“응? 무슨 말을 하려고 말하기 그래?”

“뭐야 너 그 반응? 진짜 수상하잖아.”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리엘에겐 진짜 무슨 이유라도 있었는지 생각보다 더 민망하다는 듯 입을 우물거렸으니, 이내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펴보았다.

물론 나로서는 대체 왜 저러나 싶어서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아리엘은 무언가 부끄럽다는 듯 작게 웃어 보였을 뿐.

“아니, 잠깐만, 얘 진짜 이상한데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 들여?”

“오우. 이거 느낌이 이상한데 약간···?”

“뭐야, 뭐 첫눈에 반했다 뭐 이런 거야?”

“으음··· 그러니까··· 그게에··· 음······.”

그리고는- 계속되는 주변의 재촉에 아리엘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으니.

그렇게 그 순간.

“그러니까? 그게 뭔데?”

“빨리 말해봐 바보야.”

아리엘의 한쪽 눈이 장난스레 찡긋거렸다.

“그냥, 신기해서?”

“······.”

그것도 무척이나 상쾌한 눈빛으로 말이다.

물론, 그 윙크가 향한 대상은 당연히 나였고, 나를 바라보며 혹시 무슨 말을 기대했냐는 듯 장난스레 웃어 보인 그녀는 그대로 화사한 미소와 함께 주변을 바라보았으니, 그런 그녀의 태도에 다들 인상을 찡그렸을 뿐.

아까부터 당황했던 상태인지라 장난을 치는 게 티가 안 나서 다들 속은 모양이었고, 그 모습에 아리엘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아리야? 신기해서는 뭔데. 대체?”

“너··· 괜히 말 돌리려고 끼 부리는 거지?”

“시아야? 끼 부린다니. 정말 너무해···.”

“야, 너··· 진짜 자꾸 그럴래?”

그렇게 아리엘은 시무룩한 척 울상을 짓더니 제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본 뒤에야 한 번 더 즐겁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되돌아와서는 새침하게 말을 덧붙였고 말이다.

“하지만··· 진짜 신기해서였는걸?”

한데, 이번에는 진심인 듯한 얼굴이었고, 눈빛 속에도 딱히 장난기는 엿보이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저건 거짓말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만큼- 당연히 나로서는 아리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가 그저 의아했을 따름.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신기해서는 뭔데.”

“음··· 평생 이름 한 번 못 들어본 애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내가 손도 쓰기 전에 앞질러 나가질 않나, 나름대로 나도 유명한데 나한텐 관심도 없다는 듯 굴지를 않나,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눈치채지를 않나··· 3월에 처음 봤을 때는 진짜 엄청 신기했었단 말야.”

“······.”

“배치 고사 때부터 완전 예상외였다구.”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살짝 입술을 삐죽거리며 나를 노려보았고, 그런 그녀의 태도에 다른 아이들은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뭔 소리를 하는 건지는 알겠네.”

“그러고 보니 배치 고사 겹쳤었지 둘이?”

“맞아. 얘, 실기개론 때 유천하한테 A급 2개나 뺏겨서 멘붕한 모습 틀어줬었잖아.”

“······아니 그건 기억하지 말아 줄래?”

리베르테의 해맑은 회상에 아리엘이 끄응- 소리를 내며 제 손으로 이마를 되짚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그래서 처음부터 약간은 흥미가 있었는데, 마침 수련하기 좋은 환경을 찾다가 3학구에 가게 됐고, 거기서 있다 보니 우리 눈 좋은 유천하 씨도 오게 됐고··· 응!”

“아니, 응은 뭐가 응이야. 그래서?”

“그래서는 뭐, 친해졌지 뭐기는 뭐야.”

아리엘은 그때의 일을 되새겨보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재밌었다는 듯 눈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런 아리엘의 태도에 아이들은 당연히 시시하다는 듯 혀를 찼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 아쉬웠던 건지 티나는 다시 아리엘에게 질문을 건네었다.

“그게 다야? 친해진 이유는 더 없어?”

그러자 그 질문에 아리엘은 고민된다는 듯 이마를 되짚었고, 잠시 입술을 오물거린 끝에 아리엘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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