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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183화 (183/205)

1학기의 끝자락 (4)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일까? 이하린의 말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새 조용히 가라앉은 실내의 분위기.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

“······.”

“······.”

다소 복잡해 보이는 두 사람의 시선에 담겨 있는 것은 분명 약간의 놀람이었고, 다시 걱정 어린 시선이었으니- 어느새 차가워져 버린 공기가 조금 전까지의 들뜬 분위기와 대비되어 내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너무 상념에 매몰되었던 걸까?

이 분위기도 그렇고, 두 사람의 행동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기세가 흘러나갔던 모양.

하지만 방금 이하린이 직접 나를 건드려 의식을 자극하기 전까진, 나도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조금 전 나는 생각에 너무 깊게 빠져버렸던 듯싶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위험했나···.’

이 순간, 나는 그러한 사실에 약간이나마 기분이 섬찟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에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실수를 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한순간에 감각이 흐트러질 정도로 상념에 잠겨버렸다는 점이, 그로 인해 의식의 경계가 옅어졌었다는 점이 중요했으니- 조금 전 상황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상당히 명확했던 탓.

왜냐하면, 저 말은 즉-

‘···심마가 올뻔했군.’

-조금 전의 나는, 미약하게나마 순간 심마에 사로잡힐 뻔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난데없는 순간에 말이다.

아무래도 분위기에 휩쓸려 신경이 너무 풀어졌던 걸까, 아니면 너무 조여졌던 걸까. 주말의 상황과는 다소 대비되는 순간이었던지라 그게 오히려 더 신경을 자극한듯싶었다.

자칫하면 사뭇 곤란해졌을 상황.

“······.”

물론 심마라고 한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게 무조건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천마신공은 분명 ‘나’ 자신에 대해 번뇌하고 깨우치며 나아가는 천도였기에, 비틀린 마음이 자아내는 의식의 힘은 내가 무엇을 깨우치냐에 따라서 심상의 매듭이 되어 길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고, 혹은 말 그대로 나를 옭아매는 심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번뇌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그게 꼭 위험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 봐야 할 터.

하지만- 스스로 제대로 된 답을 깨닫지 못한다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몰아는 분명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으니 솔직히 말해서 방금은 위험한 게 맞긴 했었다.

그러므로.

“······천하 씨?”

비록 그녀가 내 상태를 정확히 눈치채고 그런 건 아니었을지언정- 조금 전 이하린이 나를 잡아당겨 의식을 자극한 것은 분명 좋은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아마 그녀로서는 내가 갑자기 말없이 기세를 흘려보내니 걱정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니, 이하린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든, 지금까지도 소매를 붙잡고 있는 손이나, 그와 함께 올려다보는 눈빛도, 그리고 작게 달싹거리는 입술도. 이하린이 지금 내 상태를 염려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 잠시 딴생각에 빠져버렸나 봅니다.”

“······.”

“그런데, 무리··· 라는 건 무슨 말인가요?”

그에 고마운 마음이 들긴 했으나, 그 부분을 언급하기엔 상황이 다소 미묘했을 뿐.

그건 심마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자 어떠한 반응을 보여줄지도 뻔했고, 다시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차마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곤란했던 탓이었다.

애초에 원작의 변수도, 무공의 경지도,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니 말이다.

“······.”

“······.”

그리고 물론- 그런 내 태도에 이하린은 무언가를 말하려 잠시 입을 오물거렸지만, 이내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도 약간은 서운함이 담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담담해 보이려고 애쓰는 표정으로.

솔직히 말해서 이하린 또한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련에 갔다 온 이후- 정확히는 아크샤와의 만남 이후에 계속 고민에 빠져있던 내 상태를 꽤 신경 쓰는 중이기도 했고, 근래의 외출에 대해서도 묘한 의심을 하고 있는 듯했으니, 내가 무언가 말하고 싶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당연히- 직접 물어본다 한들 내가 화제를 돌리리란 것도 분명 알고 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지난주 내내 그러기도 했고, 주말의 전화 속에서도 이하린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를 염려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태도가 그녀로선 썩 달갑지는 않을 터였다.

“방금······ 표정이 힘들어 보이셔서요.”

“아마도 요리하느라 피곤했나 봅니다.”

“···힘들면 먼저 말해주셔도 괜찮아요.

“그 정도로 힘들진 않은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다시 입을 꾹 다무는 그녀.

이하린은 내 대답에 소매를 잡고 있던 손을 꼭- 움켜쥐었으나,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마주하면서도 별다른 말을 꺼내진 않았다.

물론 승천제 이후 불안해진 이하린의 멘탈이 다소 걱정되긴 했지만, 실질적인 위험성을 생각해보자면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는 쪽이 더 위험해 보였기에 어쩔 수 없었을 뿐.

하물며 요즘은 아리엘이 이하린을 잘 케어해주고 있기도 했고, 최소한 회귀자나 원작에 대한 걸 숨긴다 한들 그림자 교단 추적건만 알게 되어도 괜히 걱정된다며 따라오겠다고 할 게 너무나도 빤히 보였던 탓이었다.

아니, 승천제 때의 행동만 보면 아리엘까지 같이 슬그머니 따라올 것 같았을 정도.

허나 아직 그림자 교단의 위험성이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은 만큼, 만약의 경우 멸화급 마수와 조우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만큼, 나는 이 두 사람을 굳이 그런 위험한 곳으로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다.

이하린에게도 아리엘에게도 고마운 구석은 있었으니, 둘이 나를 걱정하는 만큼, 나도 두 사람을 어느 정도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3월 밤 마주쳤던 피투성이가 된 이하린의 모습을, 굳이 다시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이건 그러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

“······.”

그리고 그렇게- 미묘한 속내를 그대로 덮어 둔 채, 우리는 서로 시선을 바라보았고, 그에 부엌에는 점점 적막이 내려앉았으니.

이하린과 비슷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아리엘의 표정도 점차 곤란한 느낌으로 변해가고, 조리 중인 음식이 발하는 소음만이 실내를 울리며 그러한 침묵을 내리누르던 순간, 그 사이에서 이하린이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바로 그 순간.

띠리릭-! 띠리릭-!

갑작스레 들려온 시끄러운 인터폰 소리가 적막을 깨트리며 울려 퍼졌을 따름이었다.

***

“진짜 다들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다소 불편했던 우리의 대화는 결국 다른 이들의 방문으로 인해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어찌 보면 꽤나 시기적절했던 타이밍.

하지만 어색해질 뻔한 실내의 분위기도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소란스럽게 변해갔으니- 애초에 지금 우리가 있던 곳은 이하린의 숙소였기에, 이 시점에서 이곳을 방문할만한 사람은 정해져 있었기에,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요리를 만들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내게도 다행인 부분이었고 말이다.

아니, 그렇게 느낀 건 아리엘도 마찬가지인 듯했으니, 오직 이하린만이 그리 넘어가게 된 상황에 약간의 서운함을 내비쳤을 뿐.

하지만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분명 아직도 해야 할 게 많이 남아 있기도 했고, 내가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건 그녀도 충분히 느꼈을 테니, 이내 이하린도 알겠다며 힘없이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직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다 모였네.”

그 어색했던 분위기 속에서도 점점 요리의 준비가 끝나감과 동시에, 아리엘이 초대한 아이들도 점점 더 찾아오기 시작했으니-

“오! 뭐야뭐야! 생각보다는 제대로 했다?”

“음··· 고맙긴 한데 생각보다는 빼줄래?”

“원래 요리를 하는 취미라도 있던 건가?”

“응? 아니. 그냥 이번에 한번 해보고 싶어서 천하랑 하린이한테 도움을 좀 받았지.”

“아··· 정말? 은공도 같이 만드셨구나.”

-그렇게 어느덧 하나둘씩 도착한 아이들은, 지금에 와선 모두 준비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서로 소란스레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예를 들면, 여전히 시끄러운 리베르테라든가, 옆에서 과묵하게 입을 여는 사카타라든가, 이런 상황이 낯선듯한 남궁설아라든가.

아니면 드디어 요리가 모두 완성되었던 순간, 방금 막 도착한 마르네와 이솔라라든가.

“쯧쯧. 하여튼 무례하기는. 기껏 해준 걸 보고 생각보다는 뭐냐? 예의 없는 새끼.”

“와씨? 나 지금 마르네한테 무례하다는 소리 들은 거임?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근데 마르네도 아까 그랬었는데.”

“나··· 나는 이솔라 너한테만 말했으니까.”

“음··· 뭐, 그래! 만든 사람 앞에서만 안 하면 되지. 근데······ 결국 들어버렸네 이젠?”

혹은, 거기에 더해-

“맞아! 우리 아리는 태어나서 요리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으니까 이것도 잘한 거야!”

“근데 여기가 우리 막둥이 숙소인 건가?”

“하린이는 생각보다 깔끔한 걸 좋아하네.”

“일단 오긴 왔는데··· 어째 조금 어색하다.”

“와, 지금 여기 조합이 엄청 이상한데?”

-그 밖에도 여태 몇 번 얼굴을 본 게 전부인 아리엘의 친구들이라든가, 사카타네 팀으로서 활동했던 낯선 아이들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이 순간- 어느덧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주홍색 노을빛과 함께 실내에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고, 기어코 부랴부랴 음식을 다 만들어낸 우리도 이제 와선 그 분위기 속에 같이 녹아들게 되었다.

애초에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건 아리엘이었고, 이 집의 주인은 이하린이었으니,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난 이상 그건 당연했을 뿐.

물론- 나는 다소 예외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유천하 넌 웬일로 이러고 있음?”

“아리엘이 나도 불렀으니까.”

“뭐야. 평소에는 수업 때 말곤 코빼기도 안 보이면서, 아리엘이 부르면 걍 오는 거냐?”

“그건 지도 마찬가지면서! 내가 뒤풀이하잘 땐 거절해놓곤 여긴 쫄래쫄래 왔잖아.”

“뭐 인마? 쫄래쫄래? 애초에 내가 뭣 하러 리베르테 니랑 같이 밥을 먹어? 미쳤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 피곤한 느낌이라 쓸데없이 떠들고 싶진 않았기에, 내게 직접 건네오는 말에만 적당히 대답을 돌려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심마가 슬슬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며, 동시에 아까 전 이하린이 지어 보였던 표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며.

어떻게 할지 다시금 고려해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한- 애초에 그런 내 태도와는 상관없이도, 다른 아이들은 지금 서로 친한 이들끼리만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어찌 되었든 비슷하긴 했을 거란 생각도 들긴 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되게 많다 어째?”

“그거야··· 그때 직접 도와줬던 애들은 다 불렀으니까 그렇겠지? 물론 그래 봤자 우리 애들이랑 너희 팀에, 천하만 낀 거지만.”

“직접이면··· 뭣이냐, 걔 진시우 그놈은?”

“부르긴 했는데 올 생각은 없다더라구.”

“하긴, 왔어도 말할 상대도 없긴 했겠네. 나도 어색해 뒤지겠다 여기 있으려니까.”

왠지 모르게, 다른 아이들도 서로 생각보다는 그렇게 잘 섞여들진 못한다는 느낌.

그나마 아리엘이나 리베르테 정도가 여기저기 한 명씩 말을 걸어가면서 가교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 나머지는 구색만 맞추며 서로 같이 온 사람하고만 대화를 나눴으니- 약간은 미묘한 벽이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색해? 그럼 이 기회에 한번 친해져 봐.”

“우리가 애냐 무슨? 그리고 이미 괜찮아진 게 이 정도지, 승천제 전이었으면··· 어휴.”

애초에 나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선, 등천회랑의 생도들은 대부분 이곳에 오기까지 각자의 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어린 시절부터 같은 아이들하고만 어울리며 자라왔을 테니 친밀도에서부터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저건 일부러 저런다기보다는 그저 각자 편한 대로 행동하는 것에 불과했다.

당장 소란스러운 실내를 둘러만 봐도 기원학회의 아이들은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이하린이나 아리엘에게만 말을 건넸고, 사카타와 남궁설아는 평소처럼 조용히 있었으며, 마르네는 이솔라에게만 말을 걸고 있었다.

물론 리베르테 녀석은 여기저기 대화에 끼어들며 신나게 떠드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우리 하린이. 집에 인형 같은 건 없어?”

“어, 없어요···! 저, 그런 거 안 좋아해요.”

“어라? 그런 거라니? 내 방엔 침대만 한 인형만 4개인데··· 나 취향 무시당한 거야?”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그냥······.”

“좋아하면 하나 주려고 했는데··· 슬퍼.”

“이, 인형 좋아요! 인형 귀여워요···!”

나와 아리엘을 제외하고선 다른 주연들과는 아직도 제대로 친해지지 못한 이하린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는 것도 오직 기원학회의 아이들뿐이었으니- 그렇게 이하린은 지금 이곳에서 유일하게 저를 반겨주는 이들 사이에 끼어 열심히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었다.

물론 진짜 괴롭힌다기보다는 승천제 때 그녀와 친해졌던 아이들이 이하린을 굉장히 귀엽게 여기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아까의 대화 이후로, 이하린은 요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래도 아까보단 그녀의 기분이 꽤 나아진 것 같아 보였기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근데 저는 취향이 조금 달······ 아.”

잠시 당황하는 이하린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열심히 눈을 데굴거리던 그녀와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고, 그런 내 시선을 발견한 이하린의 두 눈이 천천히 깜빡거렸다.

잠깐이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뭐라 하려던 말까지 멈추며, 약간 멍한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이내.

“······.”

“······.”

이하린은 이내 조금 토라진 모양새로 바로 홱- 고개를 돌려버렸으니, 나는 그 순간 빠르게 돌아간 이하린의 옆모습 속에서도 삐죽 튀어나와 있던 입을 목격했을 뿐이었다.

약간 울상을 짓듯 시무룩해지던 입 모양과 무언가 꽤나 불만이 깃들어 있던 눈꼬리.

조금 전까지 다른 아이들과 나름대로 잘 떠들고 있던 그녀였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의 표정 속에는 서운함이 깃들어버렸으니 아무래도 이하린은 지금 상당히 기분이 토라진 듯싶었고, 나는 그 잠깐 동안 그 표정의 변화를 똑똑히 마주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해 보이는데, 내가 자꾸만 잡아떼며 선을 그어버리자 조금 서운했던 모양.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나는 대놓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고, 그러자 이하린은 내 시선을 눈치채고선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고개를 홱 돌린 채 나를 외면하였으니 순간적으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무언가 그녀에게 미안하면서도, 저런 모습이 참으로 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응···? 하린이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왜긴. 다 티나 네가 괴롭혀서 그렇겠지.”

“바보들. 나는 왜 그런지 방금 다 봤지롱.”

“뭐, 뭐를요?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본 아리엘의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에 이하린은 더 당황하여 허둥대었으니- 참으로 이하린답다는 느낌.

막 진지해졌다가도, 다시 한순간에 저리 풀려버리니 그게 다소 웃긴다고 해야 할까?

아까는 이하린과 아리엘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너무 흐물흐물해 상념이 깊어졌었다면, 왠지 지금은 다시 저러한 행동이 너무 둥그스름해 상념이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런 모습들이 참 평온해 보이기에 둘에겐 만약의 일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해서 고민이 깊어졌었으나, 그러면서도 이 순간 자체가 조금 유쾌하게 느껴져 허탈해진 탓이었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어렵군··· 어려워.’

마음이란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온이 낯설었을 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이 번잡했고, 평온에 익숙해졌을 땐, 그게 깨지지 않았으면 해 다시 번잡해진다.

걱정되어 걱정을 시키고 있었고, 그러한 걱정이 다시 내겐 걱정이 되어 되돌아온다.

차라리 모든 게 감흥이 없었던 시절이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이었으나, 이제는 많은 일에서, 다시 많은 걸 느껴가는 중이었기에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하고 싶은 걸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신경 쓰이는 게 단 하나뿐이었다면 그것만을 바라보면 그만이었으나, 그 하나를 위해서 신경 써야 할 게 늘어가다 보니 왠지 모르게 원래의 목표와는 다른 다채로운 생각들도 작게나마 같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무림에 돌아가 그 노괴에게 천마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고, 그걸 위해 다가올 심연을 기다리며 수양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돌아갈 순간이 찾아온 미래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대는 저 작디작은 애가 무사히 살아있었으면 했고, 다시 이하린이 저 스스로가 원하는 걸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저, 부디 그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란 건 불가능하단 걸 알고 있었기에, 차마 그걸 위해 내가 같이 노력해줄 수는 없었을지언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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