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82화 (182/205)

1학기의 끝자락 (3)

시험이 끝나고 두 사람이 원하는 대로 얌전히 따라와 주었더니 이게 뭐 하자는 걸까.

나는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아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그런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아리엘은 화사한 미소와 함께 저 나름대로 진지한 이유를 내게 설명해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그때 도와줬던 사람들한테?”

“응! 사실 예전부터 해보고 싶기도 했고.”

1학기의 끝을 기념하며 승천제 때 도움을 받았던 이들에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일단··· 그 마음은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승천제의 마지막 시련 당시- 아이들은 그때의 상황이 모두 현실인 줄 알았음에도 아리엘이 제안했던 위험한 계획을 망설임 없이 행해주었고, 그 결과 본인은 업륜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게 얼마나 고맙겠는가?

애초에 다른 이들의 입장에선 그건 오로지 아리엘의 말만을 믿고 목숨을 걸었던 것.

물론 그 선택에는 아리엘이란 사람에 대한 신뢰도 있었겠지만, 그 상황에 대한 무력함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도,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아이들의 책임감도 모두 뒤섞여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그 당시 상황에서 아이들은 아리엘의 말에 목숨을 건 도박에 뛰어들었다는 것이고, 아리엘은 그에 생각보다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만큼- 아리엘로서는 위험한 계획이었음에도 흔쾌히 따라준 자신의 팀원들에게도, 사카타네 팀원들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이렇게나마 여유가 생겼을 때 조금 더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때 같이 싸웠던 아이들 모두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나, 생도 전체는 아무리 아리엘이라 한들 영 엄두가 안 나는 모양이었고, 그렇기에 아리엘은 일단 자신이 직접 부탁했던 이들에게만이라도 이렇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하였다.

물론- 그러면서도 하루만 같이 떠들면서 쉬어보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고 말이다.

하지만.

“일단 이··· 종강 파티인지, 홈 파티인지, 뭔지 모를 파티를 왜 하는지는 이해했어.”

“응. 그런데에?”

“그래서··· 우리는 대체 왜?”

도대체 그게 왜 내 손에 앞치마를 쥐여주고, 이하린이 프라이팬을 들어 올리며 나를 기다리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는 걸까?

아리엘의 말대로라면 분명 이하린과 나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을 텐데, 아무래도 지금의 모양새로 봐서는, 아니 그냥 대놓고 지금 이 상황은 같이 요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부분이 약간 어이가 없어 아리엘에게 되물었고, 그런 내 물음에 아리엘은 무척이나 간단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으음··· 친구니까?”

“······.”

그것도 차마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대답을.

“뭐야··· 설마 천하는 싫어? 나는 너 때문에 몸까지 내던졌었는데······ 싫은 거야···?”

“······아니.”

“정말? 우리 사이에··· 진짜 그런 구야?”

아리엘은 양손의 손가락을 두 개씩 펴- 그러니까 T자로 만들더니 눈가에 거꾸로 가져다 대고선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어 보였고, 혀 짧은소리까지 내며 애처롭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이하린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짓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뭐라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뭐라 해야 할까- 약간 기분이 이상했던 탓.

사실 이전에 루타텔에게 아리엘을 친구라 이야기했을 때도 미묘하긴 했고, 승천제 때 이면 세계에서도 같은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평범한 상황에서, 당사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시 또 듣게 되니 기분이 미묘했다.

애초에 무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이후로는 소교주로서의 신분과 교내의 정세상 전혀 들을 일이 없었던 말이었기에, 이곳에서도 저렇게 대놓고 말을 해오는 사람은 아리엘뿐이었기에 더 그러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천하는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을까?”

“······아니, 알았으니까 시끄러워.”

아까부터 계속해서 우스갯소리를 해오는 아리엘을 향해 잠시 입을 달싹거린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선 부엌으로 다가갔을 뿐.

정말 한치의 타산 없이, 그저 순수하게 친구라 말해오는 아리엘의 태도가 내게는 너무나도 낯간지럽게 느껴졌던 탓이었고, 다시 약간은 뭔가 기분이 민망해졌던 탓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약간, 조금··· 찝찝했다.

[고마웡! ヽ(๑╹▽╹๑)ノ]

그러자 내 앞으로 마력이 몰아치며 문자가 만들어졌으니, 난 그것을 대충 손으로 휘저어버린 뒤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런 내 태도에 앞치마를 두른 채 기다리고 있던 이하린은 살며시 격려의 말을 건네왔고, 아리엘은 그저 재밌다는 듯이 해맑게 웃으면서 양손을 흔들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 히, 힘내세요···! 그래도 이렇게 같이 만들면 나름 재밌을걸요···? 아마두······?”

“맞아! 아까 말했듯이 나도 이런 건 해본 적 없어서, 너희랑 같이 요리한다 생각하니까 지금 좀··· 되게 두근두근하고 있는걸?”

[ (ว • ∇ • )ง (ง • ∇ • )ว ]

이 순간- 두 사람은 그저 태평하고 근심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에 괜히 나까지 물렁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들떠서 같이 요리해보고 싶었다 말하는데 고작 그거 한번 같이 해주는 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이하린 또한 은근히 이 상황을 즐거워하는 게 엿보였기에, 나도 이내 얌전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물론- 작게 헛웃음을 터트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게 뭔데?”

“와! 넘어왔다!”

“와··· 와아···!”

그러자 열심히 내 표정을 살피고 있던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주먹을 꾹 쥐었으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리엘의 행동에 이하린이 소심하게 맞춰주기 시작했으니- 그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을 뿐.

하여, 나는 아리엘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일단 시작하자. 그냥 빨리하고 끝내게.”

“응! 잠깐만. 아··· 근데··· 호옥시이··· 억지로 하는 건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하긴 했어도 정말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은데······.”

그런데- 그 순간 열심히 기뻐하던 아리엘이 약간 미안해진 표정으로 늦게나마 저런 말을 건네왔으니, 아무래도 말은 장난스럽게 하긴 했어도 미안하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허나 약간 어이가 없을 뿐이지 딱히 불쾌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아리엘의 말이 낯간지러운 거지 이 상황 자체가 떨떠름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가볍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계획이나 말해봐. 요리 한번 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정말···? 진짜루?”

“어. 상관없으니까 빨리 시작하자 그냥.”

그리고는 이내- 미묘한 표정 속에 거듭 내 의사를 확인해본 아리엘은 단호한 내 대답에 안도한 듯, 이내 천천히 숨을 내쉬었으니.

그리고 그렇게.

“휴··· 너가 싫다고 했으면 언령으로라도 시키려구 했는데. 괜찮다니 다행이다 정말.”

“······.”

“아! 혹시··· 내가 한 말 들은 건 아니지?”

언제 미안해했냐는 듯이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그 행동에 나는 다시금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괜한 미안함에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더 화사하게 웃으며 저렇게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오는 그녀의 행동이 내게는 참으로 아리엘다웠고, 아리엘다워 보였던 탓이었다.

“너도 참··· 대단한 것 같아.”

“그치? 나 대단하지 정말?”

그렇기에 나는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그녀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고, 이내 손에 들린 앞치마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말을 하며 이하린이 손을 뻗어왔으니, 나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허리에 끈을 묶어 고정했고, 그 상태로 앞에 놓여 있던 식칼을 들어 보았다.

사실 앞치마를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들 하고 있으니 따라 해보았을 뿐.

어쨌든, 그렇게 나는 암야 대신 앞치마까지 두른 채로, 다시 손에는 검 대신 식칼을 들고서는 기어코 부엌에 서게 되었으니-

[ヽ(๑╹▽╹๑)ノ (*´︶`*) ٩(๑•̀o•́๑)و ]

-나는 허공에 쏘아지는 아리엘의 기분을 바라보면서 문득 한 질문을 떠올려보았다.

왜냐하면, 일단 둘 다 의욕이 넘쳐 보이기는 했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직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단 뭐 좀 확인하고 싶은데.”

“응? 확인···? 뭔데?”

그리고 그렇게.

“아리엘 너, 혹시 요리해 본 적은 있어?”

“아하.”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기관의 시설에서만 자라왔을 아리엘에게 그 부분을 물어보았으니, 그에 아리엘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간단히 대답을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나··· 사실 요리 할 줄 몰라!”

무척이나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말이다.

***

한바탕 잔소리가 지나가고 난 후, 나는 계속 양파를 썰어대며 아리엘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옆에다가 레시피를 잔뜩 띄워둔 채 열심히 언령을 구사하고 있던 아리엘도 이내 그러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잠시 울상을 지으며 이하린 뒤로 제 몸을 숨겨 보았을 뿐.

[( •́ _ •̀ )(。•́︿•̀。)( ᗒᗣᗕ )]

“너··· 정신 사나우니까 그것 좀 그만해.”

“하지만··· 아까부터 너무 뭐라 하는걸!”

그러나 이하린의 체구는 아리엘을 숨겨주기엔 다소 작았으니, 나는 이하린의 머리 위로 튀어나온 아리엘의 눈을 다시금 바라보고는, 이내 의념으로 문자들을 없애버렸다.

그에 아리엘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나로서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한 거야? 안 도와줬으면 어쩌려고···?”

“그거야··· 도와줄 거라 믿은 게 아닐까?”

“사실 처음에 아리엘 씨가 고민하실 때··· 제가 도와줄 테니 한번 해보자고 해서···.”

“우리 하린이가 역시 제일 착해. 그치?”

이제 더는 뭐라 할 말도 없다는 기분.

아리엘은 해맑게 웃으며 저리 대답했고, 그런 아리엘의 태도에 열심히 재료를 굽고 있던 이하린은 그저 이 상황이 마냥 즐겁다는 듯 웃어 보였으니- 내가 뭐라 하겠는가?

하물며 그러면서도 처음 우려했던 것보다는 요리가 꽤나 수월하게 진척되고 있었기에, 기분 자체도 상당히 미묘했던 탓이었다.

그러므로.

“······대단해 정말.”

고마워!- 나는 다시 또 눈을 찡긋거리는 아리엘을 무시한 채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 그나마 다행이었던 부분은 말이 파티지 실상은 그냥 아리엘이 몇몇 아이들에게 밥 한 끼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뿐인지라-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들고 온 레시피가 대부분 간단한 편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라든가, 리조또라든가, 샐러드라든가, 뭔지 모를 디저트라든가?

물론 무슨 음식이든 제대로 하는 건 꽤 어려운 법이었지만, 우리는 요리에 관해 초짜에 가까운 세 명이었기에 그냥 주워온 레시피만 충실히 따르기로 타협을 본 상태였다.

그러니까.

“어디보자 어디보자··· 다음 순서가······.”

정말 말 그대로 레시피대로만 말이다.

“중불에서 3분··· 3분 뒤에 꺼져라 얍!”

“이거··· 조금 더 넣어도 되지 않을까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냥 레시피대로만 하시는 게··· 예.”

“설탕이 두 스푼··· 소금이 한 스푼······.”

애초에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평생 제 손으로 요리라고는 해본 적 없는 사람 한 명과 간단한 요리만 몇 번 해본 적 있는 사람 한 명에, 마지막으로 직접 요리를 해먹을 일이 없었던 사람 한 명이 우리의 구성이었으니- 요리를 뭐 얼마나 잘하겠는가?

지금 이곳에서 에이스가 있다면 새내기 대학생 출신인 이하린이었으니 말을 다 한 셈.

‘애초에··· 요리를 할 일이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소교주씩이나 돼서 요리를 하고 다니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었고, 암행을 나간다 한들 아무 준비도 없이 나가는 건 아니었으니, 야생에서 직접 동물을 잡아 식량을 보충하는 경우는 거의 없던 편이었다.

물론 장기간의 암행일 경우 그런 적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사전에 챙겨간 주화와 식량이 다 떨어질 정도라면 솔직히 말해서 거의 갈 데까지 간 상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으니- 그런 순간에 맛을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러니, 근 17년간 내가 해본 요리라고는 그저 급할 때 몇 번 내장과 피만 빼버린 채 불에 태우듯이 구웠던 게 전부였을 따름.

‘······더럽게 맛이 없었지.’

게다가 지금도 그러한데, 하물며 중원에서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사소한 부분에서 무신경한 편이었기에 맛 같은 걸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대부분은 수하들이 처리했기에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환생하기 이전의 삶이라고 그다지 요리를 많이 했던 것은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어? 천하 씨 지금 검기 쓰고 계세요?”

“······식칼이 잘 안 듣는 것 같습니다.”

“와! 누가 칼 쓰는 애 아니랄까 봐 칼질도 되게 잘하는구나? 역시 차세대 승천자···!”

“아리엘 너. 진짜 시끄러워 지금.”

“하린아··· 천하가 자꾸 나만 뭐라 해!”

그렇다고 해서 레시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조차 못 하는 건 요리 실력보다는 다른 문제라 볼 수 있었으니- 일단은 큰 문제 없이 하나둘씩 요리가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거는, 그저 썰어달라는 대로 썰어주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동안 나는 얌전히 준비된 재료들을 썰어만 주었고, 아리엘이 언령까지 구사해 음식별로 타이머를 맞춰가면서 조리를 했다면, 이하린은 레시피나 이것저것을 확인해보며 전체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조율해나갔으니- 나름대로 분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는 기분.

‘······지금 이게 뭐 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나는 손으로는 계속 잡다한 야채들을 썰어대면서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아리엘 씨 그쪽은 이제 빼야 해요···!”

“응! 그럼 일단 이건 식지 말고 그대로 있고, 이건 조금만 더 차가워지고, 또······.”

우웅-! 해맑은 표정으로 레시피를 한 구절씩 읽으면서 제각기 냄비나 프라이팬에 언령을 부여하고 있는 아리엘이라든가, 꽝꽝 언 고기를 잘라보겠다고 나를 따라 식칼에 마력을 밀어 넣고 있는 이하린이라든가, 한쪽에 완성된 채 마찬가지로 언령을 토해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몇 가지 음식들을 말이다.

아직 반도 안 만들었는데 많아 보이는 양.

“······.”

사실- 애초에 아리엘은 사카타네 팀과 아리엘 본인의 팀을 다 초대했다고 하니, 우리가 만들어야 할 양이 적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진시우 녀석한테도 메시지를 보내봤다는데, 녀석에게 단칼에 거절당해 한 사람 몫이 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

만약 다른 이들이 우리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다면 상당히 어이없어할 게 분명했다.

애초에 주먹구구식으로 빠르게 요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각자의 능력까지 써가며 조리를 진행하게 되었고, 기어코 만상의 눈으로 고기의 결까지 들여다보며 검기로 빠르게 썰어대고 있었으니- 이런 상황이 어이없지 않다면 뭐가 어이없겠는가?

인건비만 따지면 호텔에 가야 할 급인데, 결과물은 학교식당이었으니 더 그러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생각 속에 다시 한번 더 차분한 목소리로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아리엘에게 약간의 잔소리를 건네주었다.

“다음부터는 좀 계획부터 제대로 세워.”

“응! 그래도 이것도 나름 재밌지 않아?”

물론- 그게 별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 저, 저는 조금 재밌기도 하고, 약간 정신없기도 하고, 그렇긴 한 것 같아요!”

“그치? 그래도 한 번쯤은 이렇게 해보길 잘했어. 친구들이랑 같이 해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문득- 즐거운 듯 웃고 있는 아리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처음과는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도 처음부터 장난을 쳐오긴 했었지만, 그 당시엔 나름대로 이미지를 신경 썼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가면 갈수록 애가 더 명랑해진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나쁜 변화는 아니었으나, 어째 이제 와선 원작의 아리엘이 어땠는지도 가물가물해졌을 정도였으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그 루타텔의 딸이라기엔 아리엘의 성격은 그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순간 아리엘의 어머니는 어떤 성격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떠올랐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고 보니··· 조만간 루타텔도 보겠군.’

아리엘에 관한 생각은 이면순례자와 협업 중이라는 루타텔의 행적으로까지 이어졌으니, 나는 잠시 앞으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제 1학기가 곧 끝나고 계절학기로 들어서면 생도들의 활동도 자율 학습으로 전환될 터- 물론 그렇다 한들 원래대로라면 생도들에겐 보충 수업이 계속 주어질 예정이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등천회랑이었으니까.

허나- 나는 이면순례자의 인턴 자격으로 그걸 빠질 생각이었으니, 이 둘이 회랑에서 이렇게 해맑게 돌아다니고 있을 때 최소한 멸화급 주교까진 토벌해내고 싶었을 뿐.

왜냐하면- 2학기를 멸화급 마수의 습격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승천제 때처럼 토벌에 성공한다 한들, 피해가 없을 수는 없으니··· 안 좋은 변수야.’

물론 회랑이 직접 습격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었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무언가 잘못돼서 이하린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승천제 때처럼 괜한 행동으로 아리엘이 죽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다른 아이들까지 전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도들의 무모함, 그중에서도 주연들의 무모함은 충분히 실감하였기에 그때 이면 세계의 틈새에서 그림자 교단을 사냥해야겠다 마음먹었던 것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멸화급을 조우할 수도 있겠어.’

루타텔에서 시작된 생각이, 이면순례자를 지나 멸화급마수로 이어지자 내 머릿속에선 잠시 주말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예. 침식이란 현상을 강제로 발생, 아니 정확히는 자극하는 법을 알아낸 듯합니다.

원작에서의 습격은 분명 그림자 교단이 벌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습격이 정말 평범한 습격이었을까?

나는 그 부분이 조금씩 신경 쓰였다.

이제까지는 교단의 마인들에겐 마수를 제어할 방법이 있어 바다에서 역류한 마수를 유도했다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라피냐에 들은 대로라면 그게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정말로 녀석들에게 근원석으로부터 마수를 만들어낼 방법이 존재한다면, 녀석들은 분명 그걸 최대한 활용할 게 분명했다.

하물며 그게 테러에만 국한되진 않을 터.

‘고작 타천자라면 하이랭커급까진 괜찮겠지만··· 마수라면 멸화급은 확실히 위험해.’

만약 진시우와 팀을 이뤄 멸화급 주교를 추적하던 중, 라피냐가 제시했던 가정처럼 거기에 난데없이 멸화급 마수가 끼얹어진다면 과연 무사히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아무런 피해 없이 토벌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대답은 아직 불가능하다였다.

물론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토벌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탈출은 가능할 것 같으나 다른 이들과 동행하고 있다면 조금 곤란했다.

만약 협업 중인 승천자, 루타텔이 동행하고 있으면 모를까 하이랭커인 라피냐가 있다 해도 조금 아슬아슬했고, 진시우는 더 애매했으니- 가정만으로도 곤란해진다는 느낌.

역시 아직은 내가 너무 약했던 탓이었다.

‘어서 초절정, 그곳에 올라야 할 텐데.’

하물며 지금의 수준으로 안일하게 있기에는 회귀자도 그렇고, 원작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내용들도 그렇고, 아직도 이 세계에는 내가 모르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변수에 완벽하게 대처해내기에는 내 무력의 수준이 미약했을 따름.

애초에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고, 당장 승천제 때의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혹은 난데없는 변수로 인해 내가 알지 못하는 사건이 불현듯 이곳을 덮쳐올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물론.

“와···! 색이 너무 예뻐요! 마··· 이야르?”

“어? 이거 진짜 잘 구워진 거 같은데···?”

“저희 생각보다 요리 잘하는 거 같아요!”

그 결과가 누군가의 미래에 암막을 씌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노릇이었고 말이다.

“천하 씨도 한번 보세요. 이거 잘··· 아.”

그러므로 나는 최대한 빨리 변수들을 제거하고, 또한 스스로의 경지를 올려놔야만 했다. 만약의 상황이 일어난들 나 혼자서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우연이라는 요소를 내 힘으로 필연이라는 결과와 바꿔낼 수 있도록.

내가 강해져야 할 이유는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짝, 무언가 크게 한번 내딛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걸음을 디뎌야 할 발판이 눈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

분명 저번에 검제는 내게 생사를 가늠하지 말라고 했다. 내 재능이 그걸 가능케 하기에 그건 내게 독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분명- 가장 좋은 깨달음은 생사가 흔들리는 무아의 순간에서 찾아오는 법이었고, 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내 심상 깊은 곳에 있는 본질도 그러한 무아의 세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쉽게 낚아챌 수 있을 터였으니, 그게 이제껏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천마신공의 경계가 가장 극한으로 스러져내리는 세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생사의 갈림길일 테니까.

‘역시··· 직접적인 긴장이 부족해.’

어쩌면 지금의 번뇌는 위타극 이후로 제대로 된 생사투를 겪지 못해서 내 의식이 깊게 가라앉지 못하고 있는 탓일 수도 있었다. 차라리 승천제 때 그게 허상인 줄 몰랐다면 멸화급 마수를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초절정에 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분명- 한 걸음을 잘못 내딛는 순간 줄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경계라면, 그 실이 놓인 길도 또렷이 보일 터였다.

그렇다면 내게 놓여진 길은 무엇인 걸까.

내게 검劍은 무엇이며, 무武는 무엇일까. 내게 검은 무엇을 의미하길래 내 마음은 제대로 된 검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내게 놓인 길은 붓다佛陀인가 마라魔羅인가.

그리고 도대체.

무武는 무엇이라 생사를 가늠하는가?

‘······.’

당장 주말까지만 해도 마인을 베어내고, 다시 조만간 마인을 베어내러 가고, 언젠가는 또 검혈마제를 베어내러 가야만 했으니. 평온 속에 자리한 지금의 나와 그러한 길을 걷는 내게는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지금 식칼에 검기를 담아 양파를 썰어댈 때가 아니었고, 검을 들고 남미들 뒤적거리며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휘몰아쳤다.

근래 계속되어왔던 고민이,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가장 평온해진 순간에 넘실거린다.

그리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피어나는 번뇌 속에 의식이 가라앉으려던 순간, 왠지 모르게 심상의 매듭이 거칠게 일렁거리기 시작하려던 순간. 복잡하게 꼬여 들어가는 생각이 조금씩 무거워져 마음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던 순간.

사그락-

바로 그 순간.

“아.”

나는 소매를 잡아당기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고, 그와 함께 상념에서 빠져나온 내 시야 속에선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이하린이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걱정이 담겨있는 눈빛으로.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무언가 여러 감정이 담긴듯한 얼굴로, 나를 염려하며, 우물쭈물하는 입을 달싹거리며, 갑작스러운 말을 내게 건네오면서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