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의 끝자락 (2)
“아니, 솔직히 이게 말이 돼 천하야···?”
살며시 미간을 그러모으며 건네진 말- 아리엘은 다소 벙찐 표정으로 그리 말해왔고, 그와 동시에 이하린도 같이 말을 덧붙였다.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황.
“맞아요. 여명급도 아니고 황혼급을······!”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제 와선 그렇게까지 놀랄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실력은 아는데··· 마력은? 마력 방벽 생각하면 이건··· 화력이 너무 이상하잖아.”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두드렸고, 잠시 무언가 생각해보는 듯했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해왔다.
그것도 상당히 예리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천하 네 마력이 4000쯤에··· 업륜 2개까지 합해야 5000AC인데··· 무공이면 한곗값이 있을 테고, 황혼급의 최소가 1만이니 방벽은 최소 5천에 재생한계는 2만으로 잡는다 생각해보면······ 뭔가 수치가 안 맞는데?”
“······4분이나 걸렸잖아 그래서.”
“4분이나··· 라는 말을 그렇다 쳐도 재생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잖아. 수호자급 토벌엔 순간 화력도 중요할 텐데.”
아리엘은 어이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러면서도 약간은 수상쩍은 기색을 그 눈에 띄어 보이며 고개를 내밀었다.
눈앞에서 깜빡거리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그렇게 이하린 옆에 찰싹 붙어있던 아리엘의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내 두 눈을 빤히 들여다봤지만,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의아해하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몬가 수상한데 너. 혹시 주말에 어디 가서 업륜이라도 하나 얻어왔어? 아니면 뭐 좋은 영약 같은 거라도 하나 받아온 거야?”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네.”
“그야 실력이랑 별개로, 천하 너 마력량을 생각해보면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그렇지!”
“맞아요···! 원래보다도 더··· 빠르세요!”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실수했단 기분.
아니면, 내 생각보다도 두 사람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그냥 내가 했다 하면 유천하가 또, 혹은 그럼 그렇지 하고 넘겼을 테지만, 아무래도 하도 같이 어울리다 보니 아리엘과 이하린은 내 내력의 양을 꽤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 빠르게 마력량을 도출해 시간을 계산해본 모양이었다.
확실히 기존의 화력이었다면 여명급이면 모를까, 황혼급은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황혼급을 이렇게 썰어낸 것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아크샤가 준 업륜으로 인한 화력의 증가였으니, 역시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둘 다 꽤 예리하다는 느낌.
괜히 현재 이론 1위와 차기 이론 1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딱히 설명할 방도가 애매해 숨기고 있는 거지 그렇게까지 곤란한 일도 아니었고, 저렇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응을 보일 정도로 내 전력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약간이나마 유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확실히 이 두 사람과는 생각보다도 가깝게 지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물론.
“이상하기는 뭐가, 요새 연습 중인 기술이 있어서 순간 화력이 조금 올라간 것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황혼급의 마력 방벽을 깎아내는 건데···? 일반적인 여명급이야 업륜 2개로 뚫어낸다 쳐도 이번엔 황혼급인데···?”
“그래서 이번에는 일격에 토벌하진 못했잖아. 눈도 있고, 기술도 있고, 할 수 있어.”
그렇다고 아크샤와의 일을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업륜에 대해서는 숨긴 채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때의 일은 그럴만한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대답하면 약간 미심쩍을 수는 있겠으나, 내가 그렇다는데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러한 행동은 나름대로 자주 보여주었던 지라 영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 뭔가아··· 수상한데에에······.”
“으음··· 뭔가 천하 씨라니까 그럴듯하기도 하구우··· 근데 너무 빠른 것 같기도 하구···.”
“여명급 단일이면 모를까, 황혼급은······.”
그리고 그렇게.
“자꾸 이상한 소리 하면 이만 돌아가고.”
“······!”
탁- 내가 대놓고 우기기로 결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순간 두 사람이 한쪽씩 손을 뻗어 소매를 붙잡아 멈춰 세웠으니. 둘은 서로의 시선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잡은 채로 뭐라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내 귀에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정말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크기로 말이다.
“······뭔가 수······ 말 안······ 왠지······.”
“요······ 이거 왠······ 맞는······ 치···?”
그리고는 이내.
“알았어 알았어. 자리에 앉아 바보야.”
“더 얘기 안 할 테니까 가지 마세요···.”
무언가 굉장히 수상쩍은 느낌으로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으니, 나는 그 미묘한 태도에 순간적으로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대놓고 모른 채 해주겠다는 듯 저러고 있으니 약간은 어이가 없었던 탓.
물론 나도 조금은 그런 느낌으로 잡아뗀 감이 없진 않았으나, 그래도 저렇게까지 대놓고 티를 내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작게 속닥거리기는 했으나 왠지 모르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으니- 저렇게 눈앞에서 대놓고 수상쩍어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모습이 다소 웃기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애초에 나도 일단은 잡아떼는 상황이었던 데다가, 근래 여러모로 고민에 빠져있던 동안 수상쩍은 시선을 받고 있었던 만큼, 내 입장에서 먼저 저걸 지적하기도 뭐 했기에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였다.
그리고 물론.
“······.”
“······.”
“······.”
호로록- 지금 우리의 모습은 서로 머리를 굴리는 게 대놓고 눈에 엿보이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내려앉았고- 그렇게 이곳에는 이하린이 음료수를 빨아들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이하린은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고, 아리엘도 나를 구석구석 훑어보았을 따름.
다친 곳이 없나 살펴보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 수상한 구석이 없나 살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저 둘은 말만 저렇게 하고선 나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입을 열어보았다.
“······자꾸 이러시면 저 진짜로 갈 겁니다.”
“네? 왜, 왜요···? 아, 아무 말 안 했는데.”
“혹시 천하··· 요새 우리랑 잘 만나지도 않더니··· 이젠 마음이 식은 거야? 그런 거야?”
“······일주일에 반이면 자주 보는 거지.”
“하지만 원래는 매일매일 만났었는걸?”
곤란해하는 것치곤 참으로 상반되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이 순간 건수를 잡았다는 듯 울상을 지어 보이며 헛소리를 시작한 아리엘의 행동에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들의 몸이 움찔거리는 걸 목격하였기 때문이었으니, 괜한 소문이 도는 것도 번거로웠을뿐더러 이 상황 자체가 다소 우스웠던 탓이었다.
물론- 아리엘은 모르는듯했지만 말이다.
“참고로 너 지금 소리 차단 안 해놨어.”
“······응? 그게 무슨 소······ 아.”
우웅-!! 그렇게 내 말이 흘러나오자마자 아리엘은 황급히 주변에 마력을 두르며 뒤늦게 소리를 차단하기 시작했으니, 나는 살며시 빨개지는 그녀의 귓가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작게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예리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어설픈 게 왠지 모르게 조금 웃긴다고 해야 할까?
“······이런 건 빨리 말해주란 말이야.”
“처음부터 이상한 말을 안 하면 되지.”
그러자 그런 내 반응에 아리엘은 너무하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정말 민망해졌는지 장난스럽게 울상을 짓던 표정에서, 진짜로 약간은 울상이 되어버렸기에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는 가볍게 화제를 전환해주었다.
지금의 상황도 나름대로 재밌긴 했지만 주제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도 생각보다 잘 봤네.”
“······으, 응? 아, 나? 내 꺼 시험 기록?”
“그럼 누구 거일까. 아, 하린 씨는 이번엔 어떻게 하셨나요? 혹시 여명급까지······?”
“아, 넵! 저도 이번에는 도전해봤어요···!”
“마, 맞아 하린이 이번에 엄청 올랐다?”
그리고 물론- 화제를 돌려야겠다 싶은 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에 답하며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다만, 그러면서도 이하린은 내심 본인의 기록이 자랑스러웠는지 눈을 반짝이며 내게 손목을 내밀었고, 그런 이하린의 작은 워치 속에 이번에는 그녀의 기록이 떠 있었으니-
“이번 시험에서는······ 이렇게 나왔어요!”
[7위 - 이하린 900점]
-최종기록 여명급 마수 17:48초
-그렇게 나는 팔을 쭉 내밀어온 이하린을 바라보며 작게나마 미소를 지어주었을 뿐.
“잘하셨습니다. 열심히 하셨네요.”
“······그쵸? 저··· 열심히 했어요!”
“예. 점점 빨라지고 계시는군요.”
당연히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비록 마수의 종류나 상성 문제도 있을 테고, 여전히 그녀의 성격상 마음가짐에 따라 기복이 있긴 하겠지만- 중간고사나 승천제 때보다 이하린의 기록이 좋아진 부분에는 분명 그녀의 노력이 깃들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하물며 실전도 아니고, 공격에는 다소 취약한 이하린이 이제는 여명급 정돈 어떻게든 혼자 토벌하는 걸 보니 참 미묘한 기분.
사실상 의념조차 몰랐던 3월의 그녀를 생각하자면 왠지 모르게 뿌듯했던 탓이었다.
“천하 씨가 맨날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빨리 배우고 있으십니다. 노력을 많이 하시는 것이겠지요.”
“감사합니다아······.”
이하린은 분명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가는 중이었고, 그녀의 재능과 특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본다면 분명 3년 뒤, 아니 당장 1년 뒤의 이하린만 해도 어디 가서 곤란한 일을 겪진 않을 실력까진 쉽게 도달할 터였다.
애초에 이하린은 그녀가 이 세계에 왔던 순간- 고작해야 2년 전에 처음 검을 든 사람.
그 짧은 시간 내에 벌써 절정의 완숙, 그 어림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하린의 성장 속도는 빠른 편이었고, 원작의 지식과 그녀의 특성 <검의 반려>가 도움을 주었다 한들 이하린 스스로의 재능도 분명했으니 확실히 그녀는 기대가 되는 재목이었다.
내가 무림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왔을 때, 그녀는 내게 마지막으로 어떤 검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해질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네! 진짜,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그렇게 내가 미약하나마 교사로서의 감흥을 느끼며, 또한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며 이하린을 향해 칭찬을 거듭 건네주고 있자니, 아리엘도 이제 아까의 상태에서 되돌아왔는지 다소 새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왔다.
“근데 이러면 하린이도 성장하구, 천하 너도 더 강해지고······ 나만 제자리걸음이네?”
“제자리걸음이라기엔··· 아리엘 너도 이젠 업륜도 있고, 중간고사 때보단 빨라졌잖아.”
“하지만 승천제 때보다는 느려졌는걸?”
나는 잠시 그때의 기록을 떠올려보았다.
승천제 때의 아리엘은 아마 여명급을 5분 내로 토벌했던 것 같긴 했다. 생각보다 높은 기록을 선보였기에 눈여겨보았었는데, 다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승천제의 준비로 아리엘의 기량이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리엘의 언령은 그 마력과 정신력만큼이나 꾸준히 쌓아온 축언 또한 중요한 요소.
그런 만큼- 비록 다른 도움들을 받긴 했으나 멸화급 마수까지 떨어트릴 정도의 언령을 구사하던 때와 일상 시의 기량이 계속해서 동등하리라 바라는 건 분명 욕심이었다.
“그때랑 비교하면 안 되지 너는. 하린 씨나 나하고는 다르게 너는 준비가 중요하니까.”
“······그으건··· 그러어키인 한데에에······.”
“그리고 중간고사 때보다는 더 빨라졌잖아. 그때보다 아마··· 1분 30초 정도 빨라진 거 아니야? 업륜도 생겼고, 충분하다고 봐.”
“······정말? 진짜루?”
“네! 아리엘 씨는 지금도 충분히 강해요!”
그렇게 다소 기죽은듯한 아리엘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이하린이 해맑은 목소리로 끼어들며 그녀의 손을 꼭 부여잡았고,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덧붙여주었다.
“마법사는 준비가 중요하다며. 네가 필요할 때 더 제대로 준비하면 되지. 그리고 네 능력은 화력보다는 지원에 더 어울리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아빠처럼 혼자서도 막막 다 잘하고 싶은걸?”
“너희 아버지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17살짜리 어린애 주제에. 너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직은 아닐 뿐이야.”
“······자기도 17살짜리 어린애면서.”
잠시 어린애처럼 굴었던 아리엘은 내 말에 입술을 꼭 오므리고는 작게 속닥거렸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밝게 웃어 보였다.
“그래···! 뭐, 어차피 시험일 뿐이니까.”
“그래 실전에서 잘하면 되지. 지금도 화력 말고는 솔직히 다재다능에 가까운 편이고.”
“맞아! 난 대단해. 이론도 제일 잘하구!”
“······.”
또 승천제 때처럼 축 처질까 봐 달래주었더니 한순간에 멘탈을 회복한 아리엘은 가슴을 쭉 펴며 과장스럽게 턱을 추켜 올렸다.
그리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를 향해서 한 번 더 생긋 웃어 보였을 뿐.
“실기랑 필기 합치면 내가 너보다 높아!”
“······와, 와아···! 대단하세요!”
“저런 거에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해주시면 오히려 괜히 더 부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아, 안 부끄럽거든? 하린이 고마워!”
내 말에 아리엘은 짓궂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그 말과는 반대로 그녀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지는 게 시야에 들어왔으니- 나는 그냥 말없이 그걸 못 본 척해주었다.
근래 아리엘의 텐션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렇게 느슨해진 만큼 반대급부로 감정의 폭 또한 이전보다 넓어졌다는 느낌이라 이전보다 조금 더 쉽게 토라지기도 했던 탓이었다.
물론 그래도 솜사탕 멘탈의 소유자인 평상시 이하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뭐,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순간 내가 잠시 다른 생각- 쪼그라든 이하린을 떠올려보고 있자니 저에게 호응해준 이하린을 열심히 칭찬해주고 있던 아리엘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을 꺼내왔다.
그것도 다시 원래대로 약간은 차분한, 그러면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뭔가 아까부터 자꾸 이야기가 새서 말을 못 꺼냈는데, 이러려구 부른 게 아니거든?”
“······너랑 하린 씨가 시작한 거잖아.”
“쉿! 어쨌든···! 내일 시험도 준비해야 하니까. 빨리 이야기하구 스터디실이나 가자.”
한데, 어째 느낌이 장난스러운 말이 아니라,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였기에 나도 생각을 밀어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의아했던 탓이었다.
그러자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네오는 그녀.
“천하 너도 주말에 하린이한테 들었지?”
“······주말에? 뭐를?”
“시험 끝나구, 하루만 다 같이 놀자는 거.”
아- 나는 그때의 통화를 떠올려보았다.
-그··· 그으러면 호옥시··· 뭐 하나만······.
-아, 아리엘 씨가 시험 끝나면 하루만 다 같이 놀자고 하셨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네엡··· 안 그래도 요새 천하 씨도 근심이 많아 보이고, 1학기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냥··· 소소하게 같이 하루만 쉬······.
한창 진시우와 우림을 뒤적거리던 도중 걸려온 전화 속에 이하린은 내게 그리 말했었고, 아리엘이 했다기엔 상당히 의외의 제안이었기에 나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근래 두 사람이 나를 묘하게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종종 보였기에, 그리고 자리도 자주 비웠었기에 승낙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리엘이 무엇을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가 다소 의아하기는 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이야기해주려는 모양.
“어. 들었어. 그래서 뭐 할 생각인데?”
“응! 그걸 말해주려고 지금 부른 거야.”
그러므로 나는 아리엘에게 질문을 건네보았고, 아리엘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선 화사하게 웃으며 그에 대답을 돌려주었으니.
그렇게.
“우리··· 시험 끝나고 내일 미리 종강 파티나 할래? 다른 애들까지 불러서··· 어때?”
이 순간-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겐 다소 뜻밖의 제안이었을 따름이었다.
***
일단, 우선적으로 말하자면 필기시험 또한 실기와 마찬가지로 별거 없이 지나갔다.
애초에 중간고사 때는 승천제 때 아이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실제 그 답대로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멸화급에 대한 다소 기묘한 문제가 나왔지만- 이번 시험은 평범한 문제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을 뿐.
물론 평범한 문제라 한들 상당히 복잡하고, 풀기 번거로운 부류가 꽤 많았지만 말이다.
‘그놈의 이면세계 차원 분화 현상.’
어쨌든, 이번 시험 결과는 아직 나오진 않았으나 내가 예상하기에 점수 자체는 중간고사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긴 했다.
물론 그때보다 수업을 더 들었기에 새로 알게 된 지식들이 없진 않았지만, 솔직히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고 나 스스로가 필요한 지식 이외에는 이론 커리큘럼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딱히 그때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고 그러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아니, 사실 아리엘 때문에 하는 스터디를 제외하고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 할 수준.
하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선은 원만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화이트라인의 등급컷이었으니, 실기를 만점으로 맞아온 이상 필기는 500점만 넘어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1위니, 2위니, 10위권이니··· 그런 건 솔직히 말해서 중요치 않은 요소였으니 말이다.
사실 애초에 내가 그런 등수에 연연할 수준이 아니라는 건 회랑의 교수들도, 생도들도, 솔직히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뿐.
그렇기에 나는 저번 시험에 비해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복잡한 건 적당히 넘겨버리면서 시험을 치르는 중간중간에도 나름대로 다른 생각을 할 만큼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런 내 머릿속에 시험 대신 들어찼던 것은 어저께 아리엘에게 들었던 말이었고, 덕분에 나는 시험을 보는 와중에도 아리엘이 무엇을 하자는 건지 예상해보고 있었으니-
그렇게 나는.
“······파티를··· 여기서 하자는 거였어?”
지금 이하린의 숙소에 와있는 중이었다.
“응! 사실 파티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냥 이건··· 음······ 일종의 감사 인사 겸 뒤풀이 같은 거거든. 근데 여기가 내 숙소보다 더 넓어서 내가 하린이한테 부탁했어!”
“근데 지, 집에 가구가 별로 없어서······.”
“괜찮아 괜찮아. 빌려줘서 고마워 하린아. 역시 나한테는 우리 하린이밖에 없어!”
열심히 집주인, 이하린을 비행기 태워주고 있는 아리엘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집안- 그러니까 준비되어 있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이하린의 말대로 집안에 딱히 가구가 없었고, 아니 오히려 처음 배치되어 있었던 걸 따로 빼버린 모양인지 상당히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모습으로 인테리어가 꾸며져 있었다.
뭔가, 편견이지만 다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의 모습.
‘······이쪽이 더 어울리긴 한가?’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하린은 하는 행동이 몽실거릴 뿐이지 평소에도 노트북이나 워치 같은 걸 최대한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긴 했다. 내가 쓰는 워치를 골라준 것도 그녀라 들었고, 내게 준 검도 불필요한 장식은 하나도 없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깔끔하게 배치된 실내를 둘러보면서, 동시에 구석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하린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모야. 우리 천하 뭐가 그렇게 신기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하린이 집을 왜 그렇게 열심히 둘러봐?”
다만 그렇게 구경을 하는 모습이 티가 났던 모양인지 아리엘이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늘리며 질문을 건네왔고, 그 말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이하린이 잠시 움찔했을 따름.
하지만 둘러댈 요소는 충분히 많았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되돌려주었다.
아니, 사실 거짓말이라기엔 아까부터 굉장히 신경을 쓰이게 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나는 기어코 그것을 입에 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집을 둘러본 게 아니라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둘러본 건데···?”
“응? 그래? 뭐가 이해가 안 가는데?”
“대체 나한테 이거를 왜 준 건데. 지금.”
이곳에 오자마자 내 손에 쥐어진 이 앞치마라든가, 아니면 주방에 널려 있는 상당한 양의 식자재라든가, 그 와중에 대체 뭐가 좋은지 방실방실 웃으며 후라이팬을 꺼내는 이하린이라든가- 뭐 그런 요소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