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 (5)
4월의 끝자락- 그때 합비에서 나는 분명 2명의 타천자와 싸웠고, 다시 살해했다.
하지만 그중 마율령은 원래 타천자가 아니었으니- 평범한, 아니 마공을 익혔으니 딱히 평범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사람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녀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끊어지기 직전에 녀석은 난데없이 침식을 받아들여 타천자가 되어버렸을 따름.
그것도 침식 영역이 아닌 곳에서, 침식 역류조차 일어나지 않은 도시에서 말이다.
그건 원래대로라면 말이 안 되는 현상이었기에 그때의 나는 심장이 꿰뚫린 녀석의 죽음을 확실시하고 있었으나, 놈은 저가 갖고 있던 근원석에서 새어 나온 침식을 통해 타천자로 변하더니, 그대로 근원석을 흡수해 마인과 마수 사이의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후에 찾아왔던 라피냐가 내 얘기를 듣고 무언가 아는듯한 뉘앙스를 풍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말해주려는 기색도 없었기에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던 부분.
그런데 그때의 일이 지금 이렇게 언급된다니? 나는 약간의 흥미를 담아 되물어보았다.
“······그럼, 4월의 사건이. 그것도 그림자 교단하고 관련 있는 일이었다는 말입니까?”
“아니요. 그건 관련이 없어요. 다만 적원회주의 타천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자 되돌아온 건 다소 모호한 말이었지만, 나는 조금 전 라피냐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어느 정도 그림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테러는 무관하나, 녀석의 타천··· 그러니까 그 근원석하곤 관련이 있다는 말이군요.”
“예. 적원회의 테러는 위타극과 관련된 일이겠지만, 적어도 저희가 발견한 자료대로면 그 현상을 일으켰던 근원석은 그림자 교단의 손에서 개량되어 만들어진 것일 겁니다.”
“놈들이··· 그걸 만들어냈다는 것입니까?”
“예. 우선 저희는 그렇게 추측 중입니다.”
사실이라면 이건 상당히 뜻밖의 이야기.
일단 이러한 내용은 원작에선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침식과 관련된 요소는 원래 사람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나, 그저 그림자 교단에선 이따금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던 정도. 2학기에 예정된 멸화급의 습격도 그러한 범주였다.
녀석들에겐 그림자 마수를 다룰 방법이 있다는 게 은연중에 묘사되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피냐의 설명대로라면 그림자 교단은 단순히 마수의 행동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침식이란 현상 자체에 손을 뻗을 수 있었다는 말이니,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림자 교단의 연구시설에서 발견한 흔적과 일지, 그리고 적원회주의 일처럼 이따금 들려오는 그러한 특이 케이스들을 종합해보면- 녀석들은 이제껏 침식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어요.”
“······.”
“특이현상을 일으키는 근원석··· 그러니까 정지된 상태임에도 그림자를 품고 있는 근원석은 분명 녀석들로부터 시작됐으니까요.”
그리고- 저 말은 즉.
“하지만 녀석들이 그런 걸 만들어냈다는 건, 결국 그것은 하나를 의미하는 바에요.”
“교단의 녀석들은 그럼······.”
“예. 침식이란 현상을 강제로 발생, 아니 정확히는 자극하는 법을 알아낸 듯합니다.”
“······.”
교단이 침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확실히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던 탓에 잠시 묘한 기분에 휩싸인 나는 말없이 라피냐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원래라면 근원석은 공략이 완료된 이상, 수호자급 마수에서 뽑혀져 나온 이상, 그저 불순한 마력 덩어리에 지나지 않아요. 그걸 정화하고 정제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가공하면 흡수할 수도 있겠지만요.”
“······.”
“그리고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그림자- 그 침식의 마력입니다. 인류가 파악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그 거지 같은 현상이요.”
“하지만 그렇다면······.”
“예. 그림자 교단은 그 거지 같은, 전인미답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것이겠지요.”
나는 머릿속의 기억들을 되짚어보았다.
원작에서도 분명 침식, 그러니까 그림자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난 부분은 없었다. 그저 이하린이 무언가를 짐작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사건에 부딪히고, 그러면서 그녀 자신이 써 내려간 설정들 사이사이에 존재하던 현실의 개연성을 계속해서 파악해나갔을 뿐.
거기엔 서술상으로 숨겨지는 부분도 있었으나, 그녀가 모르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설정 밖에서 파생되는 것들엔 취약했지.’
아마 이하린은 정답을 알고 있을지언정 그사이의 과정의 대해서는 면밀히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을 테고, 그녀의 지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건 이미 나와 그녀의 관계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애초에 이하린이 전지하지 않았기에, 우리의 관계도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아무리 이하린이 원작자라 한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십억의 생명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 그 모든 부분의 개연성을 하나하나 설정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원작에서도 그 요소들을 다 묘사할 순 없었을 것이다.
이하린이 만상세계와 침식에 대해 알고 있다 한들, 그게 발생하고, 또 이용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전부 파악하진 못했을 테니까.
하니, 이건 내게도 새로운 정보였을 뿐.
“······얼마만큼 확실한 추측입니까? 아니, 그러한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만큼 라피냐, 아니 기관에서 추측한 정보가 사실인지, 또한 그러한 추측의 근거가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라피냐의 말은 아까부터 다소 모호하게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의아한 심경을 담아 되물어보았더니, 라피냐는 차분히 입을 열어왔다.
“뭐, 이것도 대외비긴 한데······ 두 사람도 알아둘 필요성은 있으니 설명해드릴게요.”
그것도 생각보다 더 자세히 말해주면서.
“처음에는 그저 변질된 마석에 대한 제보였어요. 1월 중순쯤- 등천의 구도자 측에서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았다며 연맹에 협조를 요청했고, 그걸 파고들어 가다 보니 그림자 교단의 연구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누군가의 제보?”
“예. 아, 유천하 씨도 등천 소속이니까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네요. 당신네 선배인 티르유 씨가 어디선가 제보를 받았다며 페루의 마인들을 뒤적거렸고, 그 라인을 타고 가다 교단의 연구시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티르유가 어디선가 제보를 받아왔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잠시 기록을 확인해보는 듯 제 워치를 두들겨보기 시작했다.
“저희와 몇몇 기관의 등천자들이 협업해서 황혼급 주교 1명, 여명급 2명을 발견해 토벌했고, 거기서 저희는 그것들을 보았지요.”
“······.”
“여타의 마석과는 달리 그림자의 마력이 짙게 남아있는 마석이라든가, 방금 말한 이상한 근원석이라든가, 특정 지역에 중첩되어 있던 역류의 흔적이라든가··· 그런 것들요.”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워치에선 간단한 홀로그램이 떠올라 사진 몇 개를 띄어 올렸고, 무언가 보안이 걸려있는 듯한 문서 사이에서 나는 그녀가 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상으로도 구분될 만큼 그림자가 흘러나오는 마석이라든가, 침식 영역 중심부에나 가야 보일듯한 풍경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저 모든 게 일반적으로 발생하긴 힘든 일이었으니, 추측이 납득이 가는 상황.
물론 그러면서도- 침식에 대해서는 분명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진 부분이 없던 만큼, 대체 그림자 교단이 무슨 방법으로 저런 짓을 시도하고 있는 건지가 의아해지긴 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질문을 건네보았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지는 파악됐습니까?”
“아니요. 방법까진 아직 저희도 모릅니다. 그저 시설에 남아있던 자료와 흔적이 그걸 암시하고 있었기에, 관련된 흔적들을 쫓아 열심히 퍼즐을 맞춰보고 있는 중이지요.”
“퍼즐이라면······?”
그러자 내 물음에 라피냐는 워치를 조작하더니 새로운 사진을 허공에 띄어 올렸고, 그러면서도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으니-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마석과 근원석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 시설이 발견된 곳 근처에서 근래 잿빛탑의 역류가 늘어났었다는 것, 갑작스러운 수호자급 마수의 출몰이 제보되었던 것. 그것들에 알아냈던 정보들까지 합쳐지니 여러 그림이 나오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녀석들이 근원석을 활성화시키는 걸 넘어서, 역류의 빈도나 수호자급의 생성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예. 최종적으론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기분.
잿빛탑의 강제 역류와 수호자급 마수의 돌연 출몰-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도 절대 가볍지 않았으니, 그 사실에 조금 얼떨떨해졌던 탓이었다.
하여- 잠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니, 이내 라피냐가 내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네왔다.
“그리고- 강제 역류인지, 생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이 근원석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것 정돈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니, 그렇다면 원래부터 마수들을 유도해 활용해왔던 마인들에게 그런 수단이 있다면 과연 녀석들이 그걸로 무슨 짓을 할 것 같나요?”
그것도 내가 떠올렸던 부분에 대해서.
그렇기에 나는 지체 없이 대답을 돌려줄 수 있었다. 마인들이 과연 무슨 짓을 할 것이냐- 그건 놈들에게 수호자급 마수를 만들어낼 수단이, 하다못해 잿빛탑을 역류시킬 수단이 있다고만 해도 뻔한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침식 마인이 원하는 건 단 하나.
“······테러. 도시 한가운데서 잿빛탑이 전부 역류하거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점에 멸화급 마수가 뛰쳐나올 수도 있겠군요.”
“예. 정답입니다.”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림자의 침식에 본질을 내어준 것들은 분명 언제나 생명의 찬탈을 원하였고, 그런 녀석들을 말려주는 것은 오직 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집착이었으니. 저런 수단이 생긴다면 녀석들은 분명 마음껏 활개를 칠 터였다.
침식 역류의 트리거와 수호자급 마수의 실체화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만 있다면 위험성은 최소한으로 낮추면서도, 동시에 테러의 규모는 압도적으로 키울 수 있을 테니까.
하물며 그런 수단을 얻게 된 게 그림자 교단이라면야 더더욱 그러할 터였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렇게 될 확률이 높겠지요. 녀석들이 마인인 이상, 분명 그리 할 테니까요.”
그렇게 내 말을 라피냐가 긍정한 순간.
“······그걸.”
바로- 그 순간 이제까지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시우의 마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으니, 녀석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입을 열어왔다.
“그걸 왜 여태 얘기해주지 않은 거지···?”
그것도 무척이나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이야기하냐는 듯이, 정확히는 왜 자신에게 이제껏 말해주지 않았냐는 듯한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위험하니까요.”
“······.”
그런 녀석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라피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대꾸를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마치 그런 진시우의 반응 정도는 예상한 바라는 듯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뭐···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말했듯이 이미 연맹 산하 기관들에겐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사안이 사안인 만큼, 확실해지기 전에는 밑에서만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지요.”
“······.”
“함부로 퍼져나가기엔 위험한 내용인 만큼, 열람하려면 어느 정도 각 기관에서도 높은 보안 레벨이 필요할 터라··· 생도나 일반 공략자라면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겠네요.”
후배님- 라피냐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러면서도 가라앉은 눈으로 녀석을 응시했다.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진시우의 태도에 불쾌하다는 심경을 드러낸다는 느낌이었지만, 이곳에는 현재 속이는 사람들만 있었고, 속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그 말 속에 담긴 뉘앙스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말해주면 위험한 짓을 할 것 같았기에,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는 듯한 느낌을 말이다.
그리고 물론.
라피냐의 말에 진시우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가라앉았고, 이내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가워진 목소리로 대답했을 뿐.
“······그 정도 사안이면, 가려서 공개하는 게 아니라. 모두, 아니 최소한 공략자들에게만큼은 제대로 공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했듯이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허나- 라피냐는 그저 생긋 웃어 보였다.
“정보통제가 풀리려면 최소한 증거라도 마련되고, 그에 맞는 대책이 나와야 사람들에게 흘러나가도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불필요한 피해와 변수를 막으려면요.”
“······.”
“하물며 공략자들에게만 공개가 되어도 분명 대중들에게도 알음알음 소식이 전해질 텐데, 그럼 녀석들도 같이 알게 되겠지요.”
그러니 실무자들만 알고 있을 수밖에요- 담담한 목소리로 라피냐는 그 말을 덧붙였고, 그에 진시우도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내.
“애초에 그런 증거들을 찾아내고 잡기 위해서 저희가 이렇게 열심히 잠적하고 있던 건데, 안타깝게도 교단의 상층부를 사로잡기도 전에 중요한 미끼만 날리게 되었네요.”
두 분 덕분에요- 라피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우리를 바라보았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상황을 몰랐을 때야 그냥 운이 안 좋았구나 싶었을 뿐이지만, 저런 배경까지 듣게 되니 뭐라고 해야 할까- 비록 일부러 라피냐를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론 모양이 이상해졌다는 느낌이 든 탓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
“······.”
-할 말이 없어진 건 진시우녀석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순간 뭐라 대꾸하려던 녀석의 입은 나와 똑같이 다시 꾹 다물어졌을 따름.
하물며 녀석은 직접 조직에서 휴식 권고를 받아놓고도, 괜히 나섰다가 일을 방해해버린 셈이 되었으니 더더욱 뭐라 할 말이 없었을 터였다. 그게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간에.
물론 라피냐는 우리가 그러든 말든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이래서 아까 위험한 시국이라 말했던 거에요. 과연 교단의 연구가 어디까지 진척돼있을지 모르겠지만, 방법은 모르지만, 적어도 근원석의 강제 각성과 역류에 대한 단서를 잡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위험하진······.”
“해요. 혹시나 녀석들이 근원석 하나만으로 수호자급 마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잿빛탑의 역류마저 자극할 수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것도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이다.
“만약- 둘이서 타천자를 납치했을 때, 갑자기 수호자급 마수가 나타났다면 과연 아까처럼 수월하게만 상대할 수 있었을까요?”
“······.”
“물론 두 사람의 실력을 알고 있어요. 승천제에서의 활약만 봐도 유천하 당신은 서포터만 받쳐준다면 하이랭커급도 확실히 이길 수 있을 테고, 화력 포대만 마련된다면 멸화급 마수를 상대로도 역할을 맡을 수 있겠죠.”
하지만- 라피냐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결국 혼자서, 혹은 시우 씨랑 둘이서만 돌아다니면 분명 한계점이 있을 거예요. 그런 만큼··· 솔직히 승천자쯤은 되면 모를까,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 걸 방치하기에는 역시 아무래도 너무 위험해 보이거든요.”
“······.”
“안 그래도 당장 이번 작전 중에 실종된 집행자만 벌써 3명이나 있어서 말이에요.”
그렇게 라피냐는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에 나는 다시 할 말이 없어졌다.
왜냐하면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제로 생각보단 변수가 더 많았고, 라피냐의 판단도 그리 틀리진 않았으니- 그녀가 왜 계속 만류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일단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물론.
진시우 또한 라피냐의 마지막 말에 이를 꽉 깨물고는 그대로 계속 입을 다물었을 뿐.
“······.”
이래서야 조금 난감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딱히 그럴 생각은 아니었고,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라피냐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사고라도 친 아이들을 상대하는 느낌이란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비슷한가?’
그렇게 할 말이 없어진 내가 잠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라피냐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을 건네왔다.
“어쨌든···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돌려보내고 싶긴 하지만, 이런 소리를 들었어도 둘 다 얌전히 회랑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네요. 혹시나 해 물어보는데 그대로죠 아직?”
물론 다소 미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고작 이 정도로 생각이 바뀌었을 리도 없기에 나는 바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건 이해한다만, 반대로 내가 우려하는 사람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예. 설령 멸화급 마수가 나오더라도 저 혼자라면, 제 한 몸 건사할 자신은 있습니다.”
“참··· 오만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승천제 때 활약을 봐서 혼내지도 못하겠네요.”
“혼낸다는··· 표현이 조금 그렇습니다.”
“충분히 혼날만한 상황이에요. 후배님.”
“······.”
생전 처음 당해보는 어린애 취급에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는 사이, 라피냐는 이번에는 진시우를 바라보며 똑같은 질문을 꺼내었다.
“그럼 시우 씨도 계속 그렇게 할 건가요?”
“······방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오히려 더 해야겠습니다. 어떤 입장에서든지요.”
“참, 말 안 듣는 건 한결같네요··· 아주.”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어떤 입장에서든지- 라는 말이 내게도 미묘하게 들렸으니, 아까부터 계속 대놓고 진시우를 신경 쓰고 있던 라피냐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 말이 떨떠름하게 느껴졌을 터.
하지만 나도 그렇고, 진시우도 그렇고 딱히 이걸로 마인 사냥을 멈출 생각은 없었고, 그건 대답을 통해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쯧. 이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우리의 대답을 들은 라피냐도 이내 다시 마음을 정했는지 짝- 손뼉을 치더니 아까 했던 제안을 다시금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둘 다 아까 제안한 대로 합시다.”
“아까··· 아, 인턴 말입니까?”
“예. 그렇게 저희랑 함께 움직이는 거로 해요. 일단 어지간한 어른들보단 도움이 되는 꼬마들이라는 건 분명하니, 괜한 고집부리지 않고 저도 이 정도까진 양보해드릴게요.”
“······호칭은 그렇다치고, 필수입니까?”
“예. 무조건이요. 물론 인턴이라고 해서 불러만 놓고 본부에 박아둘 생각은 없어요. 그냥 그렇게 막무가내로, 무식하게 움직이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니까 최소한의 지시만 백업받으면서 움직이라는 것뿐이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면순례자에 정식으로 속하는 것도 아니면서, 정규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확실히 편리해지긴 할 터였다. 적발당한 장면부터가 미묘했던 만큼, 이제 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다 해도 생각보단 리스크가 적을거란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다만- 말만 저렇게 하고 실제의 취급이 어떻지는 애매했고, 지시의 범위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다소 미묘하단 느낌이었을 뿐.
물론 어지간해선 이득이 되는 부분이 더 많을 거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지시의 내역이야 상황에 따라 태도를 정하면 그만이지만, 적어도 정보나 여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무시할 순 없는 요소였으니까.
“아.”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이.
“만약 필요하다면 취업계도 내드릴게요.”
“······취업계?”
“예. 이것도 나름 정식 활동이라서 간간이 발생할 출석 처리는 저희 쪽에서 해드려야 할 테니까요. 인턴시간으로 땜빵해주면 문제 없을 테고, 성적도 뭐······ 중요하잖아요?”
이 순간 라피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꽤나 달가운 것이었으니, 그에 나는 한순간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은 얼마든지 빠져도 될 겁니다.”
그것도 꽤, 생각보다 빠르게 말이다.
***
워치로부터 울려 퍼지는 낮은 목소리.
[그래서··· 결국 그 애가 합류했다는 건가?]
“예. 그렇게 됐어요. 하도 고집이 세기도 하고, 일단 확실하게 도움은 될 테니까요.”
그렇게 라피냐는 조금 전 게이트를 넘어 회랑으로 되돌아간 두 발랑 까진 꼬맹이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동시에 워치 너머에서 묘한 반응을 전해오는 상대에게 답하였다.
물론 진시우는 약간 별개의 문제였기에 따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유천하라면 서로 안면도 있는 상태일 테니 상대에게도 말해둘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안 그래도 그들은 지금 그림자 교단 토벌을 위해 함께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물론.
[도움은 될 테지만 당황스럽군. 정말로 돌아다니면서 마인 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그렇다니까요. 뭐 하는 녀석인가 싶어서 갔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태연하게 마인을 칼로 찌르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실력이나 행동으로 보나 평범한 생도는 아니에요.”
[확실히 미묘한 구석이 있는 아이긴 하지.]
상대- 승천자 루타텔 또한 생각보다 쉽게 유천하의 갑작스러운 합류를 받아들였다.
[그 아이가 협력전 시합 때 보인 움직임만 해도 영락없는 집행자였으니까. 저 스스로도 경험이 풍부하다는 걸 아예 안 숨기더군.]
“실력만큼이나 얼굴도 좀 뻔뻔하더군요.”
[뻔뻔··· 은 모르겠지만, 내 앞이나 나르화리얀 앞에서도 꾸준히 당차긴 했던 것 같군.]
루타텔은 지난번 스페인에서 만났던 유천하의 모습을, 다시 승천제 때 보았던 유천하의 행동들을 떠올리고는 그리 대답하였다.
안 그래도 제 소중한 아이- 아리엘을 구해준 데다가 무척이나 친해 보였기에 조금 더 시선이 가는 편이었는데, 유천하 자체의 성격이나 실력도 꽤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생도들을 상대로 할 때에도, 타천자를 상대로 할 때에도, 마수를 상대로 할 때에도.
물론 집단전 시련에서의 그 광경만큼은 아직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리엘의 선택이었기에 루타텔 자신이 참견할 구석이 아니었으니, 그로서는 그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딸아이와 약속을 하나 나누는 게 최선이었을 뿐이었다. 그저 너무 무모한 행동만은 하지 않도록.
그런데 문득.
[······.]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다소 미묘한 기분이 든 루타텔은 질문을 하나 건네보았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본다만··· 다른 생도까지 끌어들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생도를 말인가요? 그 햇병아리들을 제가 미쳤다고요? 모르시나 본데 전 미성년자가 공략에 나서는 거 자체를 싫어해요.”
라피냐는 루타텔이 왜 저런 질문을 건네는지 알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진시우야 어린 시절부터 기관에서 맡아서 키운 아이라 치고, 유천하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 쳐도, 정말 이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가씨까지 이런 전장으로 끌어들일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던 탓이었다.
지금 말한 것처럼 라피냐는 원래부터 아이들의 공략 활동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녀가 진시우를 회랑으로 휴가 보낸 데에도 분명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저 그 더럽게도 말을 안 듣는 하얀 꼬맹이나, 고집 센 검은 아이는 말린다고 해서 될 게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리되었을 뿐.
아무리 침식 마인이라 한들, 사람을 상대 해야 하는 건 아무나 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같은 입장이니까.]
그리고- 그에 루타텔은 조금 전과 같이 담담한, 허나 그러면서도 약간은 안심이 된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으니, 라피냐는 안심하라는 듯 말을 덧붙였을 따름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진 않았으니 말이다.
“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평범한 생도가 이곳에 올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긴 하겠지만··· 일단 알겠다.]
“와도 돌려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기에 그녀는 차분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당당한 태도로, 절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듯이. 그렇게.
라피냐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