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 (4)
그 말과 함께 진시우를 바라보는 라피냐.
“어디 한번 변명해봐요. 할 말이 있으면.”
내게 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한, 허나 그러면서도 어딘가 약간의 질책까지 담긴듯한 말에 진시우는 미간을 찌푸렸고, 녀석은 심경이 불편한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어쩌면 좋을까요?”
그리고- 그런 진시우의 대답에 라피냐는 다시금 부드러운 어조로 되물었으니, 그 속에선 한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을 따름.
내게 질문을 건넸을 때는 그냥 약간 짓궃은, 그러면서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듯한 느낌으로 말을 건넸다면- 지금 진시우를 향하고 있는 라피냐의 말속에는 분명 아까와는 달리 미묘한 감정이 담겨있단 느낌이었다.
“저쪽은 특수한 경우라 치고, 원래라면 이건 징계위원회가 열려야 하는 일이에요.”
“······.”
“사건에 휘말린 게 아니라 각성자가 직접 고의적으로 마인을 찾아서 사냥한다······ 마인의 인권이야 이미 20세기에 사라졌으니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왜 미성년 각성자에게 그걸 금지하는지 아시나요?”
라피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위험하기 때문이에요. 실력이 되든, 안되든, 다치든, 안 다치든, 단순히 물리적인 위험만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한 것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마모될 테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저희, 집행자들 사이에서도 활동량이 과하다고 판단되는 이나,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에겐 곧바로 휴식 권고가 내려집니다. 그러니까, 생도가 아닌 ‘집행자’에게도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
“그런 만큼- 미성년 생도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는 부분이겠지요.”
휴식 권고, 활동량, 정서, 집행자에게도.
나는 다소 미묘하게 강조되는 라피냐의 어조와 그걸 듣고 있는 진시우의 표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보를 조합해보기 시작했다.
사실 진시우 또한 실제 직위는 집행자일 테니 원래부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내 앞에서야 그걸 숨기고 있으니 명목상으로는 핑곗거리가 없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한들 마인사냥 자체는 라피냐가 저렇게 감정을 담아 질책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말했듯이 생도에게는 끽해야 징계위원회가 열릴 테고, 집행자인 녀석에게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사안이었을 뿐.
하지만 저렇게 진지한 어조로 혼내듯 잔소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로서도 약간은 그 배경이 짐작되었던 것이다.
‘휴식 권고를 받은 상태였던 건가.’
어쩐지 아까 이면순례자의 작전내용에서 제외된듯했던 녀석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단 느낌이긴 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진시우의 역량은 제한적이나마 어지간한 등천자보단 뛰어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의 멘탈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기에, 저러한 이유에서 제외된 거라면 나름대로 납득이 간다는 느낌.
그리고 물론.
“솔직히 말해서 만약 휴식 권고를 받은 집행자가, 혼자 이러고 돌아다녔다는 걸 알게 되면 저는 무척이나 기분이 안 좋을 거예요. 이건 분명 중요한 일이니까요. 진시우 씨.”
“······죄송합니다.”
“물론 우리 시우 씨는 집행자가 아니라 일개 생도니까 제가 화낼 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그만큼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걸 시우 씨도 조금은 주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제3자인 내가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사실상 저 대화를 듣고도 그걸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그러했다.
라피냐는 지금 너무 대놓고 나와 진시우를 다르게 대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진시우 씨도 분명 아직 생도니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등천자인 내겐 뭐라 하긴 힘드니 생도인 진시우를 질책하는듯한 느낌이었으나, 사실 반대로 말하자면 저렇게 티가 날 정도로 라피냐는 진시우의 행동에 불만과 걱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게는 그저 뭐 그렇다면야- 정도의 느낌으로 말했다면, 지금 진시우에게 하는 말은 꽤나 신경을 기울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나도 저런 식의 대화를 경험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보니 그 속에 담긴 염려를 참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고, 내 머릿속엔 잠시 이하린과 아리엘의 얼굴이 떠올랐을 따름이었다.
‘······애초에 그 두 사람도 내가 이러고 다니는 걸 알게 되면 분명 한소리씩 꺼내겠지.’
물론 그래놓고 정작 정말로 위험한 일은 자기들이 저질러버리니,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내가 마인을 잡겠다고 나섰다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
“······.”
차분한 어조로 흘러나온 라피냐의 질책은 진시우의 입에 굳게 자물쇠를 걸어버렸으니, 주변의 소음도 차단한 상황에서, 나도 뭐라 끼어들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버리자 우리 사이에는 한순간에 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약간 부외자가 된 느낌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고, 진시우는 잔뜩 인상을 쓴 채 바닥을 보고 있었으며, 라피냐는 그런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을 뿐.
그리고 그렇게.
내 생각이 기어코 이 상황- 그러니까 마인사냥에 대한 걸 그 두 사람에게 들켰을 때로 이어져, 결국 이하린과 아리엘이 그럼 걱정되니까 본인들도 같이 따라오겠다고 삐약거리는 떨떠름한 광경까지 이어져 버린 순간.
바로 그 순간- 그 적막 속에서 나는 라피냐와 눈이 마주쳤고, 라피냐는 잠시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 이러한 분위기가 멋쩍었던 모양.
그녀 스스로도 진시우에게 조금 더 감정을 담아 말했다는 걸 깨달았던 거지, 아니면 그냥 눈이 마주쳐서인지 라피냐는 나를 향해 멋쩍게 웃어 보이곤 다시 말을 건네왔다.
“이거 참··· 분위기가 이상해졌네요. 졸지에 이 나이에 학부모가 된 기분이에요 아주.”
“······고생이 많으십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 나이에 무슨 짓이냐고 단단히 혼내주고 싶은데, 둘 다 제가 어린아이 취급할 사람은 아니라······ 에휴.”
그 말과 함께 라피냐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명색이 집행자인데 현장을 목격해놓고 그냥 없던 일로 치기도 그렇고.”
“······.”
“근데, 또 뭐를 어떻게 하자니 실제로 타천자 납치까지 성공한 마당에 이런 일로 진짜로 처벌하기도 애매하고, 이대로 그냥 보내주기에도 참··· 신경 쓰이는 상황이네요.”
그렇게 라피냐는 혀를 차며 내 눈을 바라보았고, 다시 시선을 돌려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진시우를 바라보았으니. 그녀는 잠시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을 감았을 뿐.
아무래도 우리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제재할 방법까진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계속 생각해봤자 골치만 아파지는군요.”
“······.”
“우리 솔직하게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그래서 제가 그냥 보내드리면 그만할 건가요?”
라피냐는 이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대로 보내주면 다음번엔 더 살금살금 똑같은 일을 벌일 것 같고, 그렇다고 처벌을 해봤자 이런 일로는 두 사람의 행동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러니 한번 들어나 보고 싶네요. 대체 왜 이러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
“만약 다시는 이렇게 무단으로 현장에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한번 믿어줄게요.”
대신 약속을 했다가 다시 적발당하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요- 라피냐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리 덧붙였으니, 나는 그 말에 잠시 진시우를 바라보았다.
“······.”
우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진시우든, 이면순례자든 상관없이 처음부터 그림자 교단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그런 만큼 라피냐의 예상대로 그녀가 어떤 피드백을 내놓든 마인사냥을 멈출 생각은 없었고, 애초에 라피냐가 말한 이유에 딱히 공감도 안 되었고 말이다.
정신의 마모가 무엇을 걱정하는 말인지는 알겠으나 내게는 부질없는 이야기였을 뿐.
애초에 3살부터 검을 잡고, 10살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데다가, 14살 이후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마인을 죽여온 마당에. 이제 와서 고작 그런 게 신경이나 쓰이겠는가?
심지어 내가 무림에서 벌였던 살행의 대상들은 전부, 침식마인 같은 어정쩡한 생명체가 아닌 마공을 익혔으나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으니- 지금으로선 그깟 마인 좀 베어낸다고 감흥이 생겨나진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에 파문이 일어나는 경우는 그 반대의 일상에서 피어나는 게 대부분이었고, 이 모든 건 전부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물론.
“······.”
“······.”
저 척 봐도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진시우의 얼굴만 봐도, 녀석도 나와 마찬가지인 듯했으니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을 뿐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진시우의 표정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었고, 나 또한 이 상황에서 괜한 말을 덧붙이고 싶진 않았던 만큼- 우리는 그대로 말없이 라피냐의 시선을 마주하였다.
거짓말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치 무슨 말이 필요하냐는 듯이.
“······하.”
그러자- 당연히 그런 우리의 대답 없는 대답을 알아들은 듯 라피냐는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으니,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차례대로 우리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이내, 약간 피곤하다는 듯 제 손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을 꺼내왔다.
“대체 이유가 뭔가요? 그래요. 우리 진시우 씨는 뭐··· 저와 이전에 이야기했던 이유라 치고, 유천하 당신은 왜 굳이 나서서 그렇게까지 마인을 잡아 토벌하려는 겁니까?”
“······필요성을 느꼈을 뿐입니다.”
“필요성이요? 마인을 잡아 죽여야 할?”
의아한듯한 라피냐의 반문에 나는 잠시 고민해보고는 사실대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침식영역과 접경지를 오가며 살던 시절에도, 세상에 나와 회랑에 나온 뒤에도, 솔직히 말해서 항상 마인들과 엮이게 되더군요.”
“······그런가요?”
“예. 3월에는 카룬드, 4월에는 위타극, 5월에는 뭐··· 허상이었지만 예전부터 저는 마인과 자주 엮이는 편이었고, 녀석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다시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
“제가 하는 고생이,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당연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고, 그 고생이 고생처럼 안 느껴진다면······ 구태여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못 느끼겠습니다.”
물론- 내 대답은 자주 그러하듯 진실 속에 거짓을 조금씩 뿌려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라피냐 씨, 당신이 그때 이야기했던 대로 제 실력은 아마 전 세계를 기준으로 해도 분명 뛰어난 편일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제게는 이게 그렇게 위험한 일처럼 느껴지진 않고, 솔직히 말해서 어지간해서는 문제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
“자만이 아닌, 객관적인 판단으로요.”
애초에 내가 잡던 마인들과 침식 마인들은 조금 다른 느낌이긴 했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나를 곤란하게 만들만한 위협이 되는 요소들이 그렇게까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그림자 교단의 교주라든가, 하이랭커급 타천자라든가, 멸화급 마수라든가.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위험이었고, 감수해야 할 위험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니, 굳이 이하린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닥쳐올 위험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이유 또한 없었을 뿐.
달라질 미래나 불확실한 위험이 무섭다고 쭈그리고 있는 것보단, 직접 앞으로 걸어 나가 흐름을 잡아내는 게 내겐 더 편안했다.
하물며, 다시 또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올 이하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야 더더욱 그러했으니··· 이제는 회귀자란 변수까지 추가된 상황에 나로서는 최대한 빨리 잡다한 변수들을 미리 없애놓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원작처럼 2학기의 시작을 멸화급 마수의 습격과 함께 맞이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찌 됐든 나는 그런 생각으로 마인 사냥을 계속할 생각이었고, 정 뭐하다면 등천자의 자격으로 정식 인가를 얻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당한 태도로 라피냐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는지 미묘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마주하였으니, 그녀는 어떻게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고민되는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러트렸다.
그리고는 이내- 작게 혀를 차왔을 뿐.
“쯧···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대견하다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저희가 제대로 일을 못 해서 애들이 이러고 다니는 걸 한탄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위타극까지 죽인 사람의 말이니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할지······.”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적어도 저는 정식으로 인가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거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아요. 뭐만 하려고 하면 쉴 새 없이 협조 요청도 날아들 테고, 회랑 생활에 지장 갈걸요? 말 그대로 생도가 아닌 등천자로 취급받는 거니까요.”
물론 저건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등천자가 되고 난 뒤 아리엘이 괜히 그런 걱정을 했던 게 아니었고, 내가 인가를 받지 않았던 이유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도 굳이 인가를 받을 생각이 없긴 했지만, 그림자 교단을 쫓기 위해선 이면순례자와 활동 범위가 앞으로 계속 겹치게 될 테니 일단은 그저 어물쩍 둘러대면서 적당히 넘어가려는 게 목적이었을 따름.
이미 한번 당한 이상, 이런 경우가 설마 또 생길 것 같진 않았고, 또 적발당한다 해도 말했듯이 처벌 수위는 애매한 편이었으니- 마인을 좀 잡았다고 무슨 처벌을 하겠는가?
나는 그저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이거 참··· 아무리 봐도 끽해야 봉사활동에 정학으로는 효과도 없어 보이고, 괜히 빈축만 사고 막지도 못할 거 시간 낭비하는 것도 번거롭고······ 그냥 안 하시면 안 돼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예.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기야.”
하지만- 이전에는 직접 스카우트까지 하려고 했으면서 라피냐에게 나는 등천자라기보다는 생도로서의 인상이 더 강한 모양인지, 그녀는 내 대답이 그리 탐탁지 않은듯했다.
아니, 비록 지금은 휴식 권고를 받은 모양이었지만 진시우는 원래 집행자였으니, 단순히 미성년자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느낌.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라피냐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듯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염려가 담긴 눈으로 진시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가 굉장히 고민이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물론- 진시우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무언의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런 녀석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는 듯했던 라피냐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이래서야 어쩔 수 없겠네요.”
라피냐는 무언가 포기한 듯 입을 열어왔고, 그 말에 담긴 미묘한 체념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의아해 라피냐를 바라보았으니.
“두 사람. 그럼 인턴 한번 뛰어볼래요?”
이 순간 라피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생각보다 상당히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
인턴- 과연 어디에서의 인턴인지는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라피냐의 말에 순간적으로 조금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만류했으면서, 이런 타이밍에 저런 제안을 건네왔다는 게 내게는 다소 미묘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그리고.
“······인턴··· 이라고?”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입에 자물쇠를 걸어놨던 진시우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은 순간 컨셉조차 잊고선 라피냐에게 되물었다.
애초에 저 말은 즉- 마인사냥을 하고 싶으면 나와 진시우 둘 다 자신들과 같이 움직이라는 말과 동일했기에, 저런 말을 할 거면 왜 조금 전 저에게 그런 말을 했던 건지 진시우로서는 다소 이해가 안 갔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게 무······.”
“예. 인턴이요. 후배님.”
“······슨 말이십니까?”
라피냐는 그런 진시우를 향해 담담히 대답을 돌려줬으니, 이 순간 그녀는 무척이나 불만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띠고 있었을 뿐.
“무슨 말이긴요. 이게 누구 때문일까요?”
“······.”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만류한다 한들 시우 씨도, 천하 씨도 둘 다 마인사냥을 한다고 여길 들락날락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시야에는 둬야 그나마 안심이 될 것 같네요.”
약간은 가시가 돋친 말-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앉은 채로 진시우를 향해 손을 뻗어냈고, 움찔하는 걸 무시한 채 그대로 진시우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듯 가볍게 쓰다듬었다.
마치 말 안 듣는 어린애라도 다루듯이, 약간은 무척이나 익숙한듯한 태도로 말이다.
“······.”
하지만 그런 라피냐의 태도에도 진시우는 뭐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으니, 잠시 녀석의 머리를 토닥거린 그녀는 이내 손을 떼고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마인사냥을 법으로 금지된 이유는, 그리고 제가 지금 계속 두 사람을 만류했던 이유는 말했듯이 그게 위험하니까에요.”
“······.”
“물론 시우 씨도, 유천하 당신도 어지간해서는 위험할 일이 없겠지요. 둘 다 기본적인 실력은 있고, 어지간한 마인한테 당할만한 실력이 아니란 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특히 유천하 당신은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이번에는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마인을 검으로 쑤시고 있던 걸 생각하면, 유천하 씨는 정신적인 타격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 음······ 좀 그렇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생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 웃기지만, 능력이 있다는 건 알지만. 성인도 안 된 아이들이 너무 본격적으로 현장에 뛰어드는 게 저로서는 솔직히 조금 그래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손을 들어 올렸는데, 조금 전의 광경을 목격했던 만큼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뒤로해 거리를 벌려보았다.
“······그런 건 저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치곤, 지난번엔 직접 스카우트까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음··· 집행자로서 스카우트한다고, 다 똑같은 임무가 부여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짜고짜 타천자를 납치해서 칼로 고문하게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허들이 많이 높지요.”
“······.”
나는 할 말이 없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물며 말한 대로면 둘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오늘이 처음이었다니··· 첫날부터 그러면 앞으로는 무슨 짓을 저지를까 싶기도 하고, 반대로 처음이 아니었다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을까 좀 의심스럽거든요?”
“······첫날은 맞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둘이서 얼마나 위험한 시국인지도 모른 채 그러고 돌아다니는 걸 보느니, 차라리 직접 케어해주면서 협조를 구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시국?”
이 순간 라피냐의 입에서 언급된 말속에는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니, 나는 의아한 심경을 담아 그 점을 되물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기에 저런 표현을 쓸만한 사건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의아했던 건 진시우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도 무슨 소리냐는 듯 라피냐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런 우리의 반응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을 들려주었다.
“2월, 예. 2월 초쯤이었던 것 같네요. 연맹 소속의 집행기관끼리 연계해 그림자 교단의 연구시설을 습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희는 이상한 걸 발견했지요.”
“이상한······ 거?”
“예. 아마도 유천하 당신한테도 익숙한 걸 거예요. 직접 눈으로 본 적 있을 테니까요.”
“직접 말입니까?”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고, 라피냐는 담담히 대답했다.
“정지된 근원석. 거기서 일어났던 침식. 4월에 그것 때문에 수고 좀 하셨잖아요?”
그것도 다소 뜻밖의 기억을 언급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