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77화 (177/205)

집행자 (3)

아직 고개가 돌아가지도 않은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

목소리가 들려온 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100m 너머였으니 일부러 의식한다면 모를까 평상시의 기감으로는 범위가 닿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감각으로 눈치채기에도 상대의 접근은 너무나도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수풀을 헤치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호흡 소리 등등. 우림의 한가운데임에도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인기척이 없었으니 상대의 실력이 충분히 짐작 가는 상황.

곧바로 검을 뽑아 든 건 그러한 이유였다.

──────────────······

하지만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방문에 즉각적으로 검을 뽑아 들면서도, 나는 상대의 목소리에서 미묘한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친근하진 않았으나 몇 번 들어본 느낌- 그 부드러우면서도 정중한 목소리에선 왠지 모르게 서늘함마저 느껴졌고, 범상치 않은 상황과 느낌이 겹쳐지니 내 머릿속에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던 것.

그리고 마침내 고개가 돌아가 상대를 시야에 담게 된 순간, 나는 내 직감이 들어맞았다는 걸 깨달았으니-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당황하고야 말았다.

“음···? 아, 혹시 제가 놀라게 한 건가요?”

왜냐하면.

“상황이 너무 흥미로워서 실례했네요. 오랜만에 보니까 조금 반가웠거든요. 둘 다.”

이곳에서 마주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을,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약간은 곤란한 타이밍에 마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회색빛 단발을 치렁거리는 연상의 여인이자, 미소를 머금고 있음에도 그 내부에선 흉흉한 기세가 느껴지는 하이랭커급 초인. 동시에 4월의 끝자락에서 미묘한 제안을 건네왔던 날카로운 인상의 공략자를. 바로 이렇게 난데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또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 있었으니-

“······트리난 라피냐?”

-그건 바로 지금 나타난 그녀, 라피냐가 이면순례자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곧바로 그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고, 내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라피냐의 입가에 띄어져 있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라피냐는 나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기억하시네요?

“······.”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라피냐는 반갑다는 듯이 그리 대답했고, 동시에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전혀 경계할 이유가 없다는 듯이, 무척이나 여유가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물론 만상의 눈으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갑작스러웠을지언정 진짜였고, 환상이나 변장이 아닌 진짜 라피냐 본인이었기에 나는 오히려 더욱더 어이없는 기분을 느꼈을 뿐.

그렇기에- 나는 점차 싸늘해져 가는 공기를 느끼며 진시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애초에 다른 걸 다 떠나서라도 라피냐가 이면순례자의 부단장인 이상, 일단 그녀는 진시우의 직장 상사였던 탓이었고, 그리고 또한 이전에 했던- 그러니까 위장 신분 상태로 내게 했던 말들을 생각해보자면 진시우와 꽤나 친분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조우하게 되었다는 점이 그리 쉽게 납득가지는 않았으니, 순간적으로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던 것.

그러나.

“어··· 째서······ 여기에?”

이 순간 진시우의 얼굴에 떠오른 건 무척이나 선명한 당황스러움이었으니, 진시우 이 녀석은 지금 평소답지 않게 진심으로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떠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이.

순간 아까처럼 연기하는 건가 싶어 의심스러웠으나, 아무래도 저 동공의 떨림이 거짓 같진 않았기에 나는 이 상황이 정말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란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약 진시우가 했던 제안이 정말 이면순례자 차원에서 계획된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이.

“그나저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조합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이는 맹랑한 생도들을 만나버린 상황에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솔직히 저도 너무 놀랐거든요 지금.”

라피냐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우리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시우를 바라보며, 그 담담한 목소리 속에 질책을 담아 건네왔다.

마치 네가 지금 왜 이러고 있냐는 듯이.

그리고 그건 단순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었고, 라피냐는 실제로 그 부분에 대해 추궁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생도 둘이서 뭘 하고 있던 걸까요 대체.”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한데 이건······.”

“오해라 하기엔······ 우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그 병신 같, 아 죄송합니다. 그 혐오스러운 마인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명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리는듯한 말투였으나, 그 말과 표정에서 드러나는 가시에 나는 작게나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잡아떼기에는 이미 그른 모양.

“······끄읍··· 새, 생도···? 크윽!”

이게 다 정말 너무나도 절묘한 상황에 마주친 탓이었으니, 조금 전까지 마인의 등에 검을 꽂아 넣고 있었던 만큼 도저히 말로 어떻게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긴 했다.

하니- 깔끔히 포기하고 입을 열어보았다.

“이래서야 변명한다고 될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예··· 이상한 질문만 아니라면요.”

나는 그녀의 대답에 말을 정리해보았다.

물론 남미에 있는 거점 도시의 수가 한정된 만큼 앞으로 이곳을 뒤적거리는 와중 집행기관의 인물과 조우할 가능성 정돈 나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진시우와 마인들로부터 들었던 정보가 그걸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고작 하루 만에 이 정도 거물을 만난다는 건 역시 이상했을 뿐.

아무리 근래 이 근방, 남미에서 집행기관의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한들, 이렇게 곧바로 마주쳤다는 게 의아했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입니까, 아님 꼬리가 밟힌 겁니까?”

“반반이요. 아니, 그것보다 꼬리라 말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돌아다녔다는 건가요.”

“······.”

미심쩍은 심경을 담아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더니, 라피냐 또한 괜한 연기는 집어치우겠다는 듯 곧바로 대답을 돌려줬으니. 나는 결국 한 번 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반반이라니- 이래서야 지금 라피냐가 나타난 게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지 않은가?

아니, 이 넓은 남미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는 것보다는 우리를 찾아왔다는 게 더 말이 될 테니 그건 그렇다 치겠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왔다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 속에 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진시우를 바라보았는데,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얼어붙은 채 라피냐를 바라보며 굳어 있었으니- 똑같은 이면순례자면서 뭐 하고 있는 건지 어이가 없다는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생각보다 쓸모가 없다는 느낌.

하지만 내가 그런 기분을 느끼든 말든 라피냐 또한 마찬가지로 약간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리고는 굳어있는 진시우를 향해 말을 건네었다.

“그것보다 우리 시우··· 씨는······?”

어째 약간 말꼬리를 흐리는 느낌이 마치 무언가를 확인해보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아마도 라피냐로서는 진시우 녀석이 집행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움직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생도의 입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지를 확인해보려는 게 아닐까 싶었을 따름.

“······예.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아, 선배. 예. 무척 오랜만이지요.”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는지 진시우는 내게 따로 그 부분을 밝히지 않았던 만큼 거리를 두듯이 대답했고, 그에 라피냐는 눈을 한번 깜빡거리고선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스카우트 건으로 만났던 것 같네요. 시우 씨도. 그쵸?”

“······예.”

“다행히 맞나 보네요. 살짝 가물가물해서.”

그렇게 진시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반응을 확인한 라피냐는 아무래도 진시우와 내 상황을 약간 이해한 모양인지 다소 흥미롭다는 표정 속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왜 녀석이 집행자가 아닌 생도의 신분으로서, 마찬가지로 생도의 신분인 나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지 의아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왜 이러고 있는 건가요 두 분은? 이제 기말고사 아닌가요?”

“······그런 것도 외우고 다니십니까?”

“예. 회랑에는 관심 있는 분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정을 알게 되더군요. 그래서 더 궁금하네요. 대체 뭘 하고 있던 건지.”

“······.”

하지만 나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이곳에 와있는 건지도 의아했고, 지금 라피냐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범주가 대체 어디까지인지를 몰랐으니 말을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전 그녀가 대답했던 내용에 대해서 다시금 언급을 해보았다.

“······그것보다 방금 말씀하신 반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추적을 당했다기엔 저희가 이걸 시작한 건 고작 오늘 낮이었습니다.”

“굳이 거짓말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따로 캐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저희가 이런 건 정말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요.”

“······흐음.”

우선 이 부분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을 돌려주었고, 그에 따른 반응을 통해 진시우가 이면순례자에 따로 행적을 공유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실과 반반이라는 대답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정말 우연이 겹쳐버렸던 모양.

하지만- 그런 만큼 의아한 점이 있었다.

“대체 여기엔 어떻게 찾아오신 겁니까?”

“끄윽···!! 크읍···!!”

그렇기에 나는 몇 가지 정황을 생각해보며 우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뽑아 들었던 검을 다시 마인에게 꽂아 넣었고, 그러자 푹-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마인이 몸을 비틀어댔으니 그 모습을 바라본 라피냐가 미묘한 표정 속에 천천히 두 눈을 깜빡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내 행동이 조금 놀라웠던 게 아닐까?

사실 안 그래도 스카웃 제의까지 받았던 마당에 그녀 앞에서 이러고 싶진 않았으나, 이미 타천자까지 잡아다가 이러고 있는 걸 들킨 이상 억지로 숨겨봤자 소용없는 노릇.

애초에 반반이라는 말과 오늘 하루 동안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라피냐는 최소 도시에서의 사건까진 알고 왔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 그렇게 화려하게 일을 벌여놓은 사람이, 이렇게 살벌한 행동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건네오니 저도 조금 당황스러운데요.”

“······.”

“설마 안 들킬 거라 생각했었던 건가요?”

내 생각을 긍정하듯 라피냐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으니,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담담히 대답했다.

“의심은 할 수 있어도, 이렇게 곧바로 쫓아올 정도로 흔적을 남기진 않았습니다. 하물며 추적했다기엔 너무 빨리 오신 듯합니다.”

“······우연히 저도 그 광경을 목격했다가, 빠져나오던 시우 씨를 따라온 거라면요?”

“그랬다면 제가 먼저 눈치챘겠지요.”

내가 봤을 때 라피냐는 분명 진시우를 쫓아온 게 아니었다. 정말 녀석을 쫓아온 거라면 진시우가 도착했을 때, 만상의 눈에 그녀가 안 보였을 리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그때 광장에는 그녀는커녕, 등천자급의 초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방금은 심문을 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감각을 원래대로 되돌려서 미리 눈치채지 못한 것이지 굳이 만상의 눈이 아니었다 한들, 다시 아무리 그녀가 하이랭커라 한들 암행과 은신의 영역에서 나를 속일만한 수준까진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 건 아닌가요?”

“과신이라기엔 실제로도 그럴 겁니다.”

객관적으로도 명백한 사실이었을 뿐.

“음······ 저를 조금 무시하는 것 같은데?”

“무시라기엔 익힌 기예가 다르잖습니까. 하물며 특성에서부터 큰 차이가 납니다.”

분명 기세와 마력의 수준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나, 애초에 기본적으로는 초상 능력에 기반한 라피냐의 움직임이 무공을 익힌 내 감각을 웃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물며 그녀와 가까워질 때마다 느껴지는 온도의 변화와 마력의 기질은 라피냐가 지닌 능력이 어떠한 계열인지를 알려주고 있었으니 나는 그 부분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마수를 토벌하는 거라면 모를까, 이 정돈 객관적으로 내린 판단이었고, 내 말에 라피냐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잠시 입을 다물었으니, 약간의 억울함과 흥미를 그 얼굴에 띄우던 그녀는 이내 작게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런 말을 하는 게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우스웠을 텐데, 위타극까지 죽이는 걸 직접 목격했으니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

“좋아요. 대외비긴 한데 말해줄게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만- 사실 이걸 물어보면서도 이렇게 쉽게 대답해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나는 순간 조금이나마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라피냐로서는 굳이 말해줄 이유가 없을 텐데도 생각보다 친절하다는 느낌. 그녀의 행동이 아직 스카웃 욕심이 남아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진시우가 껴있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게도 나쁘진 않았다.

그러니 현장을 적발당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선은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나 보자는 느낌으로 나도 그녀의 말을 경청해보았다.

하지만.

“일단 우연은 맞았어요. 저희가 따로 마킹을 해놓고 있는 마인들이 몇몇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중 하나를 납치해버렸으니까요.”

“······마킹?”

“예. 아까 들어보니 그림자 교단 이야기가 나오던데······ 사실 처음부터 저희, 이면순례자는 이 녀석이 교단의 주교란 걸 알면서 내버려 둔 거였거든요. 몇몇 마인을 미끼로 교단의 녀석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습니다.”

이걸 시우나 당신이 알 순 없었겠지만요- 이 순간 라피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로 근처에서 잠복 중이었는데 갑자기 납치를 해버렸으니 어쩌겠나요? 바로 누가 그랬나 확인하러 달려올 수밖에요.”

“······그러니까 반반이라는 말은.”

“예. 쫓아온 건 마킹 덕분이지만, 제가 오게 된 건 솔직히 말해서 그냥 우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도 놀랐다 말한 거였고요.”

“······.”

“정말 시우··· 씨까지는 설마 했는데, 유천하 당신까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요. 왜 하필이면 오늘 이 녀석을 잡으러 왔는지.”

나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진시우를 바라보았으니- 녀석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눈을 깜빡거리더니 내 시선을 피하였을 뿐.

순간 꽤나 어처구니없는 기분이었다.

“······.”

“······.”

나름대로 원작에선 신비주의 컨셉으로 활동하고, 이면순례자의 집행자로서 하도 무게를 잡아대길래 그럭저럭 입지가 있는 줄 알았더니 실제는 뭐 이렇게 허술하단 말인가?

그게 사고를 쳐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지금의 진시우는 기관의 상세한 정보까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면순례자가 아닌 나와 같이 움직이자고 할 때부터 들었던 의심이었지만, 아무래도 지금 녀석은 이면 순례자의 작전 구성에서 아예 제외되어있는 모양.

나는 이 순간 마음속에서 진시우의 이미지가 한 단계 하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

나는 순간적으로 지나쳤던 그녀의 말 속에 담겨있는 맥락을 유추해낼 수 있었으니-

“잠시, 그럼 혹시 라피냐 씨 외에도···?”

-그 생각이 든 순간 곧바로 만상의 눈을 발동시켜 원경을 투시하자마자 내 시야에는 다소 떨떠름한 광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바로.

“예. 어느 정도 분산돼있기는 하지만, 우선 여기에도 저 혼자 온 건 아니긴 합니다.”

“······.”

“범인을 확신하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요.”

기이한 마력을 자아내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상당히 먼 곳에서, 이곳을 빙 둘러싸고 있는 몇몇 집행자의 모습들이 말이다.

***

그 뒤에 이어진 일들은 무척이나 간단했고, 다시 되돌아온 파린칭스의 거리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란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다.

-아니 씨펄! 장난 아니었다니까 그러네?

-그걸 영상으로 찍은 새끼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뭔 집행자는 집행자야.

-그거 찍다가 뒤질 일 있냐 이 븅신아!

-광장에 있던 놈들은 다 봤다던데 그거.

사실 생각해보면 아까 그 일로부터 1시간조차 안 된 시점이니 어찌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 한가운데서 마인들이 적발되고, 타천자가 토벌당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이곳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버려진 도시라 그런 거지, 다른 접경지거나 일반 도시였으면 이미 진작에 연맹에서 사람이 나와 사건을 조사하고 있을 상황이지 않은가?

아니, 연맹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는 사실상 공식 기관에게 적발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솔직히 말해서 어이가 없는 상황.

“난데없이 이렇게 크게 일을 벌였으니, 저희도 당연히 깜짝 놀라서 조심할 수밖에요.”

“······.”

“만약 사람들이 당신 얼굴이라도 봤으면, 정말 일주일은 뉴스에서 볼 수 있었겠지요.”

진시우는 물론, 나도 이렇게 곧바로 이곳에 되돌아오게 될 줄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맥이 빠진다는 느낌.

기껏 마음을 먹고 아침부터 우림을 헤집으며 마인을 찾고, 토벌하고, 심문하고, 다시 여기까지 와서 찾고, 토벌하고, 심문하고- 길었던 하루의 끝은 결국 포획했던 타천자가 집행기관에 양도되는 것으로 끝맺음 되었으니 굉장히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이 법이다 보니, 상대가 상대다 보니 딱히 따질 만한 명분이 없었을 뿐.

솔직히 말해서 라피냐 한 명과 등천자 몇 명까지는 무력으로 해결하자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살짝 들긴 했지만, 상대가 마인이나 범죄자도 아니고 정식 공략자들인 이상 그렇게 해봤자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얌전히 그녀를 따라오는 수밖에.

물론 약간 법의 범주를 넘어서긴 했으나, 마인 사냥이었던 만큼 크게 문제가 될만한 소지는 없겠단 판단도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인가요 둘은?”

그렇게 잠시, 거리 한구석에 있는 너저분한 벤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보고 있자니- 마찬가지로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라피냐가 바로 건너편에 앉고선 말을 건네왔다.

우웅-! 그것도 손등의 업륜을 사용해 마력 방벽까지 주변에 둘러버리면서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을 건네보았다.

“······보안이 중요하면 아까 그곳에서 이야기하면 됐을 텐데요. 그리고, 별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마인을 사냥하려고 한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아까 거기가 이야기할만한 곳은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실력과는 별개로 특례법 5조에 의거해, 미성년 각성자는 마인 사냥이 불법인 걸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러자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역시나 그녀가 특례법을 이야기할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 부분은 나나 진시우에게 크게 해당되지는 않는 것이었기에 나는 담담히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3조에 따르면 저는 미성년 각성자가 아니라 등천자로 취급받을 테니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활동 인가를 얻을 경우지요. 그건. 이론에 약하신 건 여전하신 것 같네요.”

“······.”

“아, 필기시험은 여전히 4점이신가요?”

그 순간- 되돌아온 라피냐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으니, 그런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작게 웃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잠시 말문이 막혔다는 느낌.

당연히 회랑에선 중간고사 이후론 저 주제에 관한 언급이 쏙 들어가 버렸기에 오랜만에 저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지금은 그런 점수 안 나옵니다.”

이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으나 정정할 필요성이 느껴져 나는 빠르게 대답했고, 그러자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다시금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갔다.

“예. 사실 알고 있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은 이미 들었으니까요. 장난 좀 쳐본 거예요.”

“······.”

“눈독 들이고 있는 대상이라 정기적으로 활약이나 성적은 확인해보고 있습니다. 회랑의 정보는 대부분 오픈되어 있으니까요.”

이건 이것대로 또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였기에 고개를 내젓고선 화제를 돌려보았다.

“······어쨌든, 규정은 우선 인가를 얻어야 하지만 선조치 후보고로 절차를 거쳐도 문제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등천자의 자격을 지닌 것은 맞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보고할 생각은 없지 않았나요?”

“그건 억측입니다. 다 끝나면 연맹에 보고할 생각이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타천자를 양도한 건 그렇다 치고, 다른 절차까지 거치게 되는 건 귀찮았기에 나는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였고, 그런 내 태도에 라피냐는 잠시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 하는데 어쩌겠는가.

“······뭐.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럼.”

어차피 마인을 사냥한 거로 나를 처벌해봤자 큰 의미도 없었고, 아직도 내 숙소에는 그녀에게 받았던 은색의 명함이 남아있었으니 그녀가 이런 걸 따질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저 타천자 건은 이면순례자의 계획과 얽혀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물론.

“그러면 유천하 당신은 그렇다 치고, 우리 진시우 씨는··· 따로 변명할 말이 있나요?”

내가 한 변명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생도에 불과한 진시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고, 집행자란 사실을 숨겨야 하는 녀석으로선 써먹을 수 없는 핑계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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