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 (2)
사전에 이야기된 시간은 단 20초.
허나 유천하가 마인들을 모두 처리해낸 시간은 그것보다 일렀으니- 난데없이 빛이 번쩍거렸던 광장의 한가운데서, 타천자가 그 소란을 뒤늦게 눈치채게 된 시점에선 이미 모든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서걱-! 타천자가 유천하의 접근을 인지하고 이능을 펼쳐냈을 땐, 이미 그의 팔은 단번에 베여나가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을 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타천자는 그렇게 순식간에 한쪽 팔을 상실했고, 그 사실에 그가 경악과 분노를 토해내기도 전에 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퀴잉-! 한순간에 뻗어 나오는 검극.
──────────────······
하지만 첫 기습이면 모를까 이것까지 그대로 허용한다면 타천자의 이름이 아까울 터.
난데없는 기습일지언정 중요한 건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저 자신의 팔이 이미 단칼에 베여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크, 크윽··· 이 새끼가!!”
타천자, 아니 그림자 교단의 여명급 주교 주세페 베르디는 그대로 이능을 발현함으로써 공세를 막아냈고, 그와 동시에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마력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카지직··· 콰아아앙-!!!
서로의 마력이 충돌하며 몰아치는 격류!
-뭐, 뭐야 갑······?!
-흡!! 으, 으아악!!
콰과과과-!! 그렇게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이 갑작스러운 마력의 해일에 몸을 휘청거리며 튕겨 나가기 시작했고, 타점을 중심으로 막대한 충격파가 퍼져 나왔지만 지금 마인에게 중요한 부분은 그딴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
분명 공간의 격리를 발동시켰음에도 그 이능이 깨져나가며 파동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으니, 그와 동시에 능력을 꿰뚫은 검력이 고스란히 팔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마인은 경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키이잉-!! 다시 한번 더 공간 단면에 방벽을 설치한 타천자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집행자!’
어떻게 이곳에서 자신들을 감지해낸 건지는 몰라도, 같이 은신 중이던 수하들은 그 잠깐 사이에 이미 모두 살해당한 뒤. 상대의 실력은 분명 최소 등천자급의 실력자였다. 아니, 저 정도면 사실상 상위권 랭커의 수준.
칙칙한 로브를 걸친 채 암습을 한 만큼, 상대의 정체는 집행자일 가능성이 컸으나 그 무력의 수준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저건 일개 집행자의 실력이 아니었다.
공간의 간섭마저 강제로 뚫어내고, 일격으로 여명급 주교인 자신의 팔을 잘라내는 게 일개 집행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렇다면 눈앞의 괴인은 최소한 상위권의 랭커라는 말이었으니, 그 사실은 오싹한 소름이 되어 타천자의 척추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
“······.”
한없이 느려진 세계 속에서 마인의 감각은 암야의 너머, 그림자 속에 가려진 유천하의 두 눈을 응시할 수 있었으니- 타천자 주세페는 한 번 더 오한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마인···?’
눈을 마주한 순간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인의 눈에 비친 상대의 검은 눈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마주해온 그 어떤 마인보다 더 마인과 같은 색채를 품고 있었다.
단순히 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설령 태양이 만연한 낮에 조우했다 하더라도 그 빛마저 모두 흡수할 것처럼 검디검은 상대의 두 눈동자 속에는 오로지 차갑게 벼려진, 무기질적인 살의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소름이 돋았을 만큼.
“넌 대체 뭐 하···!”
하지만.
퀴잉-!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말든 유천하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고, 지금 그가 원하는 건 오직 최대한 별도의 소란 없이 마인을 제압해 납치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특성을 파훼하는 과정에서 마력이 터져 나왔다는 게 유천하로서는 꽤나 거슬렸을 뿐.
그런 만큼.
──────────────!!
는?- 타천자의 입에서 채 말이 흘러나오기도 전에 뻗어 나간 참격은 그대로 허공에 솟구치던 그를 강타했고, 뿜어져 나오는 그림자를 억누르며 마인도 이능을 발현시켰다.
허공에서 맞부딪히는 공세의 격돌.
카각··· 콰아아앙-!!! 콰과과과과-!!
그리고 한순간에 휘몰아치는 마력의 파도 사이에서, 연이어 뻗어 나온 극한의 쾌격.
만상의 눈을 극성으로 전개해낸 유천하의 시야는 이 순간 타천자의 마력에서부터 짜여지는 이능의 구조를 파악했고, 그대로 그 마력의 변형되는 시작점을 그대로 꿰뚫었다.
아니, 공세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퀴잉-! 공간을 격리해 방어하려 해도 특성이 베여나갔고, 서걱-!! 마력의 발현이 늦은 순간 그대로 육체에선 그림자가 터져 나왔다. 3초도 안 지난 순간에 이미 그의 육신엔 여덟 개의 자상이 더 추가되었을 정도.
허나 그에 경악하기도 전에 유천하의 검에선 다시금 칠흑의 참격이 쏘아져 나왔다.
──────────────!!
“이런 미친···!”
그러자 다시금 발현되려던 이능의 마력이 그대로 그 구조 채로 베여나가며 터져 나갔고, 마침 허공으로 뛰어올랐던 그의 몸은 그대로 혼자서 그 여파에 휘말렸을 뿐이었다.
-가, 갑자기 무, 무슨 일이야 이게?!
-싸, 싸움? 저, 저것들은 뭐야 시발!
콰과과과과-!!
“큭··· 크윽!!”
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한순간에 베여나간 이능의 여파를 제어해내면서도 주세페는 경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력에 휩쓸리는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허공을 튕기며 도주하려던 그를 따라 유천하의 신형도 허공을 박차고 달려 나오기 시작했으니- 그 결과 타천자의 눈앞에는 다시 순식간에 유천하의 검극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
그야말로 그에겐 한 치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게 느껴지는 맹공의 연속이었다.
허나- 고스란히 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
“씨발···!!”
상대가 괴물 같은 자라는 건 이 짧은 교전 속에서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주기에는 그 또한 등천의 업에 이르렀던 선두 공략자였던 몸. 하니 벌써 패배를 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도주가 가능하다면 모를까, 이 상황에선 자칫 까딱하다간 바로 죽어버릴 터.
그렇기에 저 자신의 특성에 교주에게 양도받았던 특성까지 혼합시키며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린 타천자는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치는 유천하와 맞찌르는 걸 선택했다.
이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뒤져라 이 새끼야!!”
키잉-!!
그렇게 잿빛의 마력에 물든 타천자의 팔이 유천하를 향해 나아갔고, 교차하는 듯했던 공격이 한순간에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서로가 신기루라도 된 것마냥.
이것은 사실 공간 단면의 격리와 왜곡을 응용한 한 수였으니, 이 순간 마인은 유천하의 빈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심한 것.”
-이건 유천하가 일부러 허용해준 것일 뿐.
아무리 공간의 형세를 왜곡시켜서 속여넘긴다 한들 그의 감각을 속여넘길 순 없었고, 만상의 눈과 풍결의 가호. 거기에 그 스스로 단련해온 기감과 직감이 빚어진 이상 유천하의 감각은 무결無缺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므로- 마인의 팔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던 유천하의 검신은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궤도를 틀어냈다.
극의에 달한 유검, 그리고 이어진 쾌검.
그리고.
서걱-!
찰나를 베어 가르며 그어지는 궤적!
순식간에 변화한 검격은 그대로 뻗어 나오던 타천자의 팔을 단번에 잘라냈고, 그와 동시에 졸지에 양팔이 모두 떨어져 나가게 된 마인이 두 눈을 부릅뜨던 순간- 바로 그 순간 유천하는 그대로 마인의 몸통을 걷어찼다.
우드득-!! 마인의 육신이 튕겨 나간다.
사람의 육신이 부딪혀서 만들어냈다기엔 살벌한 소리와 함께 타천자의 육체가 인급 해있던 허름한 건물에 내팽개쳐졌고, 타천자의 입에서 질척한 피가 토해져 나왔다.
“크흡···!!”
그리고 다시.
콰과과과과-!!
마찬가지로 허공을 박차며 옥상에 도달한 유천하가 폭주하듯 쏟아져 나오는 타천자의 마력을 꿰뚫고선 검을 그어냈으니, 휘몰아치는 격류 속에서 타천자가 베여 나갔다.
서걱-!! 일격에 마력을, 이격에 시야를 절단해버린 칠흑의 검극은 양팔에 이어 오감이 흐트러진 마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이미 승패가 갈려버린 상황.
“크윽··· 크아악!!”
아무리 기습으로 시작했다지만 고작 20초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결정 난 승패였고,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검을 뻗어냈다.
흐트러진 정신으로 발악하듯 이능을 발현해내는 타천자의 발버둥을 가뿐히 베어 넘기며, 모든 경우의 수를 차단하겠다는 듯이, 그대로 마인를 완전하게 제압해나가며 말이다.
카가각···!! 콰과과과과-!!!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마력의 격류.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 격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진시우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어느덧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마력이 휘몰아치는 그곳을 바라보며 숨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기겁하며, 동시에 휘몰아치는 살기와 마력의 여파 속에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저, 저기 저,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마력이··· 잿빛? 자, 잠깐 잿빛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콰아앙-!!
빠르게 몰아쳤던 격전의 시간은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끝이 났고, 전신의 관절이 모두 베여나간 마인의 육체가 그대로 한 번 더 발에 걷어차여 지상으로 튕겨 나왔으니.
그러자 그곳에 있던 이들이 기겁하며 도망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그림자에 뒤덮인 자가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것도 온몸에서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림자의 혈류를 쏟아내면서 말이다.
-······.
-······.
광장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적막.
비록 눈 몇 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상황이라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반인은 일반인대로, 헌터들은 헌터들대로 아무 소리도 내뱉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아니, 몇 안 되는 공략자들도 마찬가지였고, 그건 조금 전까지 마력을 뿜어내며 제 실력을 과시하던 진시우 또한 그러했을 뿐.
“······마인?”
물론 진시우는 그저 뒷일을 생각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듯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고작 1분 만에 타천자를 정말 저런 모양으로 만들어버린 유천하의 실력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기습으로 한 방 먹이고 시작했을지언정, 과연 누가 저런 걸 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거라면 가능한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저건 그런 부류가 아닌 순수한 실력의 발로였으니 확실히 유천하의 대인전 기량은 최상위권에 가까웠다.
그리고 물론.
탁- 대단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고 말이다.
“······.”
지금 이 순간, 단 1분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무법 도시의 광장은 소름 끼치는 적막 속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그 침묵의 한가운데로 유천하의 발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무척이나 평온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미 정신을 잃어버린, 자신이 패대기친 타천자의 몸통을 짓밟으면서. 뽑아 들었던 검도 어느새 검집에 집어넣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는 이내.
저벅.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마인의 육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광장에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잔잔한 발걸음을 따라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이미 암야를 변형시켜 얼굴을 가려버린 유천하의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저 밤과 같은 짙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걸어 나가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전부 호흡마저 멈춰,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멈춰버린 세계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굳어버린 정신 속에서도 서서히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림자를 뿜어내는 마인, 마인을 사냥한 정체불명의 실력자, 그리고 조금 전 휘몰아쳤던 마력의 수준. 그 세 가지의 퍼즐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불을 밝혀주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으니까.
“서··· 설마?”
그렇기에.
“······.”
“······.”
마침내 광장에서 빠져나간 유천하가 본격적으로 발을 박차며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린 순간,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 누군가가 재빠르게 어딘가로 연락을 넣은 순간.
바로 그 순간.
“······지, 집행자!! 타천자랑 집행자···!!”
“지, 집행자다!! 슬, 슬레이어 떴다!!”
“미친!! 마, 마인이 있었어! 타천자가!!”
그때까지 계속 참아왔던 호흡과 함께 사방에서 경악과 흥분에 휩싸인 사람들의 외침이 소란스럽게 터져 나왔을 따름이었다.
멈춰있던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듯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대한 심경을 뒤늦게 쏟아내면서.
***
후웅-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사전에 약속했던 장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도심에서 빠져나와, 야밤의 정글로 들어오니 생각보다 공기의 체감이 다르다는 느낌. 침식 영역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일을 진행하기에는 나쁘지 않은듯한 환경이었다.
계획대로 타천자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심문을 할 차례였으니 말이다. 어째 신교에서의 시절이 생각나는 하루 일과.
‘쓸데없이 익숙하군.’
잠시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다만 미끼 역을 맡았던 진시우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간단한 밑준비,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익숙한 짓을 하며 녀석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연기 잘하더군.”
“······.”
뒤늦게 풀숲을 가르고 나타난 진시우가 다짜고짜 건네온 말이 저것이었으니, 나는 그 말에 순간적으로 헛웃음을 터트렸을 뿐.
나로서는 다소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연기는 내가 아니라 네가 했을 텐데.”
조금 전 내가 한 일은 그저 암야를 푹 뒤집어쓴 채 마인들을 잡아 죽인 게 전부였다. 물론 타천자는 반쯤 살려 납치하긴 했지만, 말없이 검을 휘두르고 온 게 전부였으니 딱히 연기라 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
아니, 오히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쪽이 원래의 나와 더 부합된다는 느낌이었다.
그저 회랑에서의 행동이 다를 뿐이지.
하지만 처음부터 모습을 숨긴 채 진행한 나와는 다르게, 저 녀석은 누가 봐도 수상쩍은 타이밍에 나서고 사라졌을 테니 그 과정에서 여러 밑밥을 깔면서 오게 됐을 터였고, 애초에 마인을 패대기친 순간 녀석이 놀란 듯 흘렸던 목소리는 내게도 잘 들렸었다.
-······마인?
약간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때 진시우의 표정만큼은 정말 누가 봐도 놀랐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저 말처럼 연기를 한 건 내가 아니라 저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조용히 마인을 잡은 게 전부였다.
“무게 잡는 게 누가 봐도 집행자였는데 무슨··· 기계처럼 마인을 썰어대는 솜씨가 상당히 익숙해 보이더군. 아주 잘 어울렸어.”
“······.”
“그게 연기가 아니라면 넌 공략자보단 집행기관에 들어가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
다만- 잠시 생각해보니 굳이 이제 와서 그걸 떠들어봤자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일단 하던 거나 하지.”
그렇게 나는 진시우의 말을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녀석이 오기 전까지 하고 있던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해보았다.
그러니까.
푹-
마인의 몸에 칼을 밀어 넣는 짓을 말이다.
“······크··· 크으윽!!”
그러자 다시 또 정신이 혼미해져 가던 타천자가 두 눈을 부릅뜨며 깨어났으니, 그 모습을 지켜본 진시우가 다시 말을 건네왔다.
“잠깐······ 그러다가 죽을 것 같은데.”
“근원석은 안 건드렸으니까 괜찮겠지.”
“아니, 제압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게 들쑤셨으면서, 조금 위험한 거 아닌가 그건.”
나는 그 말에 잠시 마인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양팔이 잘리고 관절까지 다 끊어진 상태였기에 지금도 타천자는 계속 온몸에서 그림자를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녀석의 심장에 박혀 있는 근원석은 놈의 몸을 끊임없이 재생시켜주고 있었을 뿐.
이미 관절은 서서히 재생되어 가는 중이었고, 안 그래도 의식이 깰 때마다 발악하려고 마력을 끌어올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상대는 타천자였으니 말이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군. 마력을 봉인할 아티팩트라도 들고 왔다면 모를까, 타천자인 이상 마력의 흐름은 계속 방해해야 돼.”
“······검을 박아 넣는다고 그게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하지. 이것도 평범한 검은 아니라 일종의 아티팩트에 가까우니까.”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 아무래도 장비를 보는 눈은 별로인 모양.
그렇기에 나는 잠시 검, 정확히는 검을 건네줬던 날의 이하린의 얼굴을 떠올리며 간략하게나마 검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검신 내부는 마력에 동화하고, 외부는 마력에 반발하는 성질을 가졌거든. 이거.”
“······생각보다 훨씬 비싼 무기였군.”
검에 대해 잘 모를 게 분명한 진시우에겐 이 정도의 설명으로 충분했고, 그에 되돌아온 녀석의 대답이 그러한 판단을 긍정했다. 비록 표현이 다소 직설적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사실상 정확한 표현이기는 했다.
이하린의 마음, 그러니까 기대와 염려가 담긴 이 검은 내가 살면서 본 검 중에서도 무척 뛰어난 보검이었다. 들어간 재료도, 소요된 공정도 모두 평범하지 않을 게 분명한 검이었기에 이 이름 없는 검은 솔직히 말해서 금액으로 따지자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일 터.
이건 원작자 이하린이 아니었다면 일개 개인이 선물할만한 수준의 물건이 아니었다.
“대체 그런 걸 어디서 구한 거지? 설마 등천의 구도자에서 그것까지 후원해준 건가?”
“······비슷해.”
하지만 그걸 일일이 설명해주기에도 조금 그러했으니 나는 대강 얼버무렸고,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더 검신을 꾹- 밀어 넣었다.
“······크··· 크윽!!”
그러자 정신을 차린 녀석이 끅끅거리며 몸을 비틀기 시작했으나, 방금 한 말처럼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기 위해선 검을 박아둘 필요성이 있었기에 나는 생명에 지장이 가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칼을 그곳에 꽂아버렸다.
그러자 슬슬 제대로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타천자가 분노가 뒤섞인 비명을 토해왔다.
“끄읍······ 이, 이 개 같은 새끼들이···!!”
굉장히 평온하게 오고 가는 우리의 대화와는 다르게 녀석의 상태는 꽤 살벌했다만, 어차피 죽여야 하는 녀석인 만큼 진시우도 나도 저 반응에 대해서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우스웠을 따름.
“닥치거라.”
“크흡···!!”
아무리 이 녀석들이 사람의 탈을 쓰고, 다시 사람처럼 행동한다 한들 내게는, 아니 만상의 눈에는 녀석들의 본질이 엿보였다.
사람의 자아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마수에 가깝게 변질되고, 그 심상의 뿌리가 그림자에 맞닿아있는 녀석들을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다였을 뿐.
차라리 평범한 범죄자나, 마공을 익힌 녀석들이라면 상황에 따라 사람 취급 정도는 해줄 수 있었지만 그림자가 충동한다면 언제든지 마수처럼 굴 수 있는 녀석들의 자아는 분명 사람이라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었다.
그러니- 굳이 신경 써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네가 입을 열 때는 교단에 대한 정보를 말할 때뿐이다. 알겠느냐?”
“······!! 그, 그게 무슨 소······!”
나는 가볍게 검을 잡고 흔들었다.
“그림자 교단. 여명급 주교.”
“크, 크흡···!! 아, 아니··· 큭!”
“너를 왜 잡아 왔다고 생각했더냐.”
“끄으윽··· 대, 대체 어디서··· 흡!”
이건 이미 낮에 마인들을 심문하면서 알고 온 부분이었기에 심드렁하게 대답해주었더니, 타천자는 경악한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확신하듯 말하는 내용 때문인지, 아니면 통증 때문인지 둘러댈 정신도 없는 모양.
사실 녀석이 마공, 아니 평범한 무공이라도 익혔다면 어떻게 금제를 가해보겠으나 이 녀석은 순수한 이능을 사용하는 녀석이었던데다가 타천자씩이나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원초적인 방식으로 심문해야 했다.
녀석의 심장에 근원석이 존재하는 이상 일반적인 생명의 마력 흐름과는 궤가 달랐고, 점혈조차 먹히지 않는 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너··· 말투가 갑자기 왜 그러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진시우가 미묘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건네왔으니,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방금 말투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순간 나도 모르게 중원에서의 말투로 말을 했던 모양. 아무래도 언어 동기화의 범주가 워낙 넓다 보니 잠시 섞여버린 것 같았다.
사실 상황에 따라 조금 더 신경 쓸 뿐이지. 전생과 현생의 언어를 둘 다 구사하다 보니 평소에도 서로 자주 뒤섞이기는 했다.
다만- 이런 일을 할 때면 중원에서의 기질이 더 드러나는 편이었기에, 이제까지는 항상 이렇게 마인을 잡고 심문할 때에는 하오란 녀석하고만 다녔더니 나도 모르게 그때의 페이스에 적응을 해버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심문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마.”
“······.”
진시우가 쓰는 언어의 베이스가 한국어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또한 전생의 기억이 있는 만큼 내 말이 녀석에게 어떤 식으로 들렸을지는 나 또한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조금 거슬리는 주제였을 뿐.
아니, 사실 진시우도 그리 제 나이에 맞는 말투를 쓰는 편은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녀석이 저런 말을 하는 게 어이없기도 했는데- 그 말을 꺼내기도 애매한 노릇이었으니 나는 그냥 화제를 돌려보았다.
애초에 다른 때도 아니고 굳이 이런 상황에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 중요한 건 이거니까.”
“그래요.”
하지만 그 순간.
“마인을 잡아놓고선 뭐 하는 건가요?”
분명 진시우와 나, 그리고 이 반쯤 죽어가는 타천자밖에 없어야 할 공간에 난데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니- 나는 첫 마디가 들려온 순간 즉시 오온에 접어들게 되었다.
──────────────······
목소리가 들려온 곳- 대략 100m 너머의 숲속을 바라보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는 생각과 함께 그대로 검을 뽑아 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