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시즌 (5)
마인을 잡으러 왔다가 보게 된 새로운 풍경- 이걸 대체 어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거리를 지나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헌터들이 떠들어대는 대화 소리가 끊임없이 귓가로 들려오고 있었으니, 그 내용 하나하나가 내게는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을 따름.
나는 눈으로는 계속 거리를 훑어보면서도 그 소리들을 모두 머릿속에 새겨보았다.
-아, 델로 놈한테 들은 건데 낮에 하류 쪽으로 수호자급 하나 지나갔다며? 진짜냐?
-말도 마라. 여기로 올까 봐 개쫄렸으니까.
-아까 멀리서 마력량만 계측했는데도 진짜 장난 아니더군. 값을 보니 황혼급인 것 같던데 여기로 왔으면 수십은 그냥 죽었겠지.
-지금 와있는 등천자가 그렇게 없나······?
-그 정신 나간 인간들이 그 시간에 도시에 있었겠냐? 가끔 정비할 때나 들리는데.
정신 나간 인간들- 그 말에 나는 잠시 시선을 돌려 떠들고 있는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리 곳곳에 널려있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평범한, 내 기준에선 미약한 마력을 지닌 이들이 바닥에 무기를 던져놓은 채 술을 들이켜고 있는 게 엿보였다.
그리고.
-거, 나라면 그 실력으로 빠짝 일하고 집이나 사서 놀았을 텐데. 그 인간들은 뭣 하러 맨날 그리 사서 고생을 하는지······ 참나.
-쯧쯧. 그 양반들이 나서서 고생해주니까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거지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럼 뭐해? 걔네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당연시하는데······ 시발, 개좆같은 특례법!
-좆같은 주제 꺼내지 말고 술이나 처마셔.
그런 헌터들의 모습과 대화를 보고 듣고 있자니 내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기에- 나는 잠시 생각해본 후 입을 열어보았다.
“여기서 전투가 벌어지면 다 도망가겠군.”
“······헌터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평소에는 B급만 떠도 도망 다니는 놈들이니까.”
-나도 손짓 하나로 마수 좀 죽여보고 싶다.
-그럼 공략이나 뛰러 가든가. 안 말린다.
-하하! 내가 미쳤냐? 자살하러 가게?
진시우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쓸데없는 말할 시간에 마인이나 빨리 찾아보자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진시우의 대답과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다르구나- 딱 그러한 생각이 말이다.
“······.”
물론, 타인을 위해 싸우는 이와 자신을 위해 싸우는 이의 행동이 같을 수는 없었다.
공략자- 아니, 아직 정식으로 공략자라 하기 힘든 생도들이라 해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땐 목숨을 걸고 그에 맞서 싸우겠지만, 저들은 분명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도망부터 갈 터. 어떤 이들이 매일 같이 자신의 한계를 두들기며 역량을 쌓아나가려 할 때, 누군가는 눈앞의 광경처럼 손쉬운 목표만을 찾아 하루하루를 가볍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째 매일 같이 보던 풍경과는 꽤나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물론.
-이짓도 딱 5년만 더하고 때려칠건데 공략은 무슨··· 하하!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그게 딱히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어찌 보면 저런 모습들이 더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광경일지도 몰랐다.
이타심과 이기심 중 조금 더 생물의 본성에 들어맞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었으니, 대부분은 타인을 생각하는 신념으로 자신의 삶을 위험 속에 내모는 이들이 더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물론- 그게 흔치 않은 것이기에 공략자들이 그리 존중을 받는 것이었을 테고 말이다.
그렇기에.
“······네 눈에도 아직 안 보이나?”
“아직은. 더 안쪽에 숨어 있거나, 정보가 잘못되었던 모양이야. 일단은 더 봐야겠어.”
나는 아직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마인들을 찾아 시선을 옮겨보면서도, 잠시 이제껏 만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중심엔 사람이 많을 터라 곤란한데.”
“여명급 하나뿐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기도 전에 죽일 수 있으니까 상관없어.”
“쯧. 혼자일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된다고.”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마주했던 이들은 대부분 이타심으로 인해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당장 내 옆에서 마인들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리고 있는 진시우만해도 무언가의 보상을 바라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니었고, 이하린이 항상 일이 터질 때마다 그렇게 무리하며 몸을 내던지는 것도, 승천제에서 아리엘이 타천자와 멸화급을 상대로 분투했던 것도 모두 사실상 그런 이타심의 발로에 가까웠다.
애초에- 당장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이들 또한 모두 저들에게는 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고난에 맞서 싸웠으니, 분명 이제껏 만났던 이들은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래서일 터였다.
나는 지금 각각 정반대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색다름에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낯선 기분이군.’
이제껏 매일 같이 마주해온 이들 덕분에 그러한 분위기가 어느새 내게는 이 세계의 인상으로 남아있었는데, 고작 게이트 좀 몇 번 타고 넘어와 돌아다니니 이제껏 마주하지 못했던 풍경과 분위기가 펼쳐진 탓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직도 고작 반년 정도인가.’
문득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삼스럽게도 처음 이 세계에 오게 되었던 날이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절하면서 마주하게 되었던 이하린의 얼굴이 떠올랐고, 순례자의 길과 3월에 겪었던 고뇌가 생각났으며, 그 고뇌 끝에 찾아왔던 깨달음의 순간까지도 빠르게 뇌리를 스쳐 갔다.
하지만- 그렇게 이곳에 온 뒤부터 이제껏 여러 일을 겪은 듯한데, 확실히 나는 아직도 이곳에선 이방인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러했다.
새로운 세계에 도달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적응하며 변화하는 중이었지만 역시 아직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히 어려워.’
나는 반년- 정확히는 아직 반년도 되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마음을 비워낸 끝에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고, 다시 새롭게 채워감으로써 이제는 다음의 고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떠한 곳에 도달해야 하는 지를 말이다.
오온과 유식을 거쳐 현실의 공空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삼사도三士道- 그중에서도 우선 하사도下士道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이 다변의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의 세계를 확립해야만 했다. 마음을 세계에 각인시키기 위해선, 그 기반이 먼저 존재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또한.
이제껏 생각해본 결과- 검제가 말했던 검의도 어찌 보면 그러한 개념에 가까웠다.
‘나’ 자신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고, 다시 그것을 바로 세움으로써 아득하리만치 광활하고도 허무한 이 세계에서 나의 마음을 올바르게 그어낼 수 있게 될 터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우선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 앞에 놓인 풍경도,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도, 모든 번뇌를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경험하고, 이해하고, 다시 적응해나감으로써.
하지만.
-그러니 당신이 찾아야 합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기회가 몇 번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저희는 회귀자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희망을 걸어보겠습니다.
적응하려 할수록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조금씩 흔들렸으니 그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생각해보면 그러한 곤란함이 꼭 근래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내가 지나온 삶은 언제나 흔들림이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도 전에 나는 검을 들어 올렸고, 그에 적응하니 새로운 시련 사이로 내던져졌으며, 그것을 받아들였더니 어느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게 되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의무, 새로운 환경. 다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위협, 새로운 변수.
소교주 유천하는 어찌 보면 이미 무언가의 흐름에 올라탄 상태였고, 내가 원하는 하나의 길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 중이었다. 회귀자도 찾아야 하고, 경지도 넘어서야 하는데 역시 아직도 내게 이 세계는 낯설었을 뿐.
고작 거니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나는 아직 이 세계에 대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런 무지 속에서도 나는 내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나의 검, 나의 세계, 다시 나의 목표.
이 다변의 세계에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과연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내게는 그 아지렁이 같은 저편이 너무나도 아득해 보였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떠한 문제가 되었든 그곳에서부터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마음속 번민이 되었든,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변수가 되었든 말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찾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분명 검을 휘둘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북적거리는 광장을 가로지르며 돌아다니는 한 마인과 그런 녀석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돌아다니는 자잘한 녀석들.
마인들이 뱉어냈던 정보는 사실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선 어떻게 할지부터 정해봐야겠어.”
그렇기에 우리는 일단 숨어서 시야를 확보한 뒤, 곧바로 놈들의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물론- 나는 암야의 변형을 통해서, 진시우는 처음부터 왜곡이 걸린 후드를 뒤집어쓴 상태로 제 모습을 숨긴 채 움직이고 있었기에 녀석들은 우리가 저들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눈치도 못 채고 있었을 따름.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생각들을 모두 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고, 바로 이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력량을 보면··· 잔챙이가 아홉. 타천자가 하나. 일단 여명급 주교는 맞는 것 같군.”
“······쯧. 다 같이 행동하고 있는 건가?”
“아니, 2명은 아무래도 그림자 교단이 아니라 그냥 숨어든 마인들 같고, 타천자를 비롯한 나머지 8명이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상당히 많은 인파가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보니, 허름한 건물들과 어우러져 육안에는 제대로 엿보이지 않았지만 문제없었다.
만상의 눈이 자아내는 시야가 한순간에 사방의 건물과 사람들을 투과하며 뻗어져 나갔고, 그 시야에 기감과 풍결의 가호까지 결합하며 나는 그렇게 반경 200m 내에서 인지되는 정보를 한순간에 짜 맞추기 시작했다.
마인들의 숫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숫자.
녀석들의 수준, 다른 이들의 수준까지도.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위치가 너무 애매한데. 만약 타천자를 죽인다면 다른 놈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얼마나 빠르게 죽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2분, 아니··· 대강 1분 내로 죽인다면?”
내 물음에 말없이 시선을 보내오는 녀석.
그 시선의 의미를 알 것 같았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녀석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기습한다면 가능해. 저 정도 수준이면.”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헛소리하지 말라 했을 텐데, 일단은 가능할 것 같긴 하군.”
하지만- 진시우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왜 녀석부터 죽이려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가능하다면 녀석은 생포해야 돼. 아까처럼 팔다리 좀 잘라내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주교들을 찾으려면 정보가 필요하니까.”
“······.”
“물론 생포할 수 없을 것 같다면야 다른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당연히 다 죽이는 게 우선이겠지만··· 적어도 일단은 최대한 생포하는 걸 목적으로 계획을 짜보는 게 좋겠어.”
그에 나는 빠르게 상황을 계산해보았다.
우선- 확실히 나도 모르게 죽인다는 생각부터 먼저 떠올리긴 했으나,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가 주말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 잔챙이들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그림자 교단의 상층부를 추적해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잔챙이라면 모를까, 주교급이라면 다짜고짜 죽이는 건 조금 비효율적인 짓.
하지만.
-허, 헌터 님들! 제가 총 닦아드릴게요!
-꺼져 새끼야. 어디서 부품 빼돌리려고.
-자자! 마석 탐지기 팝니다! 기원학회 출신 마법사님이 만들어주신 아티팩트로서···!
-저 새끼 또 저기서 사기 치고 있네. 기원학회 출신은 개뿔. 정회원 것도 아니면서.
-오늘 그래서 내가···! B급 마수를···! 어?
지금 타천자가 서 있는 곳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복작거리는 광장의 한 가운데였으니, 녀석은 광장에 벌어져 있는 도떼기시장을 거닐면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상당한 난장판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대답을 돌려줬다.
“그러면 놈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살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생포라면··· 타천자가 허튼짓 못 하게 무력화시키는 사이에 다른 놈들이 도망치든 난동을 부리든 할 것 같으니까.”
“······그게 정론이긴 하지만 얼마나 더 기다리게 될지는 모르니 애매해. 최소 2주 가까이 잠적 중인 만큼 조만간 충동이 올라오긴 하겠지만, 그게 당장은 아닐 것 같아서.”
확실히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도 마냥 녀석들을 감시하며 기다리고 있기도 곤란했고, 그렇다고 2주나 잠적하고 있었던 만큼 녀석들이 하루 만에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한답시고 그러지는 않을 터.
그럼 기다려봤자 끽해야 이 도시 내에서 돌아다니는 수준이었는데, 이 도시라 말하기도 뭐한 도시는 면적도 좁으면서 어딜 가나 사람들이 복작거렸으니 조금 애매하긴 했다.
적어도 저 8명의 마인들을 단번에 같이 제압해버리지 않는 이상, 주변에 돌아다니던 이들이 휘말릴 가능성이 컸으니 말이다.
차라리 공략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대처능력을 믿어볼 테지만, 헌터들에겐 그런 걸 기대할 순 없었다. 하물며 저곳에는 이 도시에 사는 일반 난민들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타천자를 제압하든, 잔챙이들부터 제압하든 한쪽을 처리하는 잠깐 사이에 난동을 부리면 최소 두 자릿수는 죽게 될 터.
이곳에 아리엘이나 남궁설아 같은 조력자가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았다만, 진시우 이 녀석은 그런 쪽으론 꽝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만··· 너. 흩어진 마인들을 한 번에 정리하라면, 가능하겠어?”
“······지금은 불가능해. 마인을 태워버릴 정도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여파만으로 위 험해질 테니까. 휘말릴 사람이 너무 많아.”
잠시 순간적으로- 지금만큼은 이 녀석이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것을 티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부터 진시우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내게 협력을 의뢰했던 것이기도 했고, 이 녀석은 침식영역에서 수호자급 마수를 때려잡을 때는 꽤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테니 불필요한 핀잔을 주고 싶진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가능성이 없진 않은데······ 미묘하군.’
녀석들이 다 같이 행동하는 것 같긴 해도, 최소한 각각 20~30m 정도의 거리는 벌리고 있었으니 아무런 소란 없이 잔챙이들을 죽인 다음 여명급 제압에 나서면 그럭저럭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행동해도, 주변의 사람들이 소리치고 반응할 걸 생각한다면 반을 채 죽이기도 전에 다 이변을 눈치챌 터.
나는 그 부분을 진시우에게 말해주었다.
“일단 전부 생포는 불가능해. 다른 조력자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 조건에선 마인들을 다 죽이고 타천자만 생포하는 게 최선이야.”
“······타천자의 생포는 가능한가?”
“시간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대략··· 20초? 그 정도면 자잘한 녀석들은 일단 다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사이에 타천자가 도망치지만 않는다면야.”
솔직히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녀석이 미쳐서 날뛰면 그건 그것대로 약간 곤란해질 뿐.
가장 좋은 건 마인들의 정신이 딴 데 쏠려있는 사이 빠르게 주변을 끊어내고, 타천자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제압해버리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 최소한의 시간마저 부족했다.
그런 만큼- 누군가 놈들의 시선이라도 끌어준다면 모르겠으나, 경계를 사지 않고 시선을 끌 만한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회랑에서 이하린을 괴롭히고 있을 아리엘이라도 불러와야 하나 고민될 정도.
분명히 아리엘의 언령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생포 후에 벌어질 광경을 생각해도, 아직 생도에 불과한 그녀를 이런 곳에 불러오는 것 자체도, 약간 거부감도 없잖아 있었다. 또한 아리엘을 부르면 자연스럽게 이하린도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알게 될 테니 그건 그것대로 조금 곤란했다.
그런데 그 순간.
“20초. 시선만 끌면 가능하다는 건가?”
진시우가 정말 그 정도면 충분하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왔다. 마치 그 정도 시간 정돈 벌어줄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이내.
“······아.”
하루종일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 인지 왜곡이 걸려 있던 옷을 벗어 던지더니, 그대로 그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드러낸 채 제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