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시즌 (4)
결과부터 말하자면 심문 과정이 그리 인도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은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증명해주고 있었을 뿐.
“······끄륵··· 끄르륵.”
아예 초점이 나가버린 듯한 마인의 동공.
즐비하게 늘어져 있던 마인들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뒤였고, 현재 우리의 앞에 남아있는 건 단 한 명의 마인 뿐이었으니- 이 녀석도 지금에 와선 흐리멍덩한 얼굴을 한 채 입에서 거품을 흘려대는 중이었다.
물론 이놈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각각 비슷한 과정을 거친 끝에 한줄기 마력으로 화해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간 상황.
“······이젠 더 해봤자 무의미하겠군.”
그렇게 우리는 교단의 정보를 누가 지니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 정보를 찾기 위해, 또한 그 정보가 정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정보는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놈들의 증언을 교차적으로 계속 검증해나갔다.
그리고 필요 없어진 놈들은 그대로 마무리하였으니- 확실히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다소 거북해할 만한 시간이 지나갔다는 느낌.
그나마 녀석들 중 상당수가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던 부분이었다. 굳이 하나씩 잡아다 너저분한 광경을 보지 않더라도, 마인이라면 얼마든지 정신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방법도 그저 겉으로 보기에나, 직접 칼질을 하는 것보단 비교적 나았을 뿐. 딱히 깔끔하고 인도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끄륵··· 사, 살······.”
이건 그저 대가를 치른 것에 불과했을 뿐.
“사람을 죽이는 건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대면서, 그게 본인한테 되돌아오면 항상 똑같이 행동하지······ 머저리 같은 새끼들.”
그렇게 널려있던 시체들, 그러니까 원래 이 근처에 살고 있었을 이들의 흔적을 정리해주고 돌아온 진시우가 마인을 비웃었고, 이곳까지 오면서 다소 풀어졌던 그의 말투도 어느새 평소처럼 냉소적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이곳의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나 또한 그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는 바였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놈을 마무리했다.
방금 한 말처럼 이젠 의미가 없었으니까.
콰직··· 퍼어엉-!!
검극이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와 동시에 정신이 나간 채로 침을 흘려대고 있던 마인의 몸이 그대로 한줄기 그림자의 파동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니, 이제 이곳엔 온전히 ‘사람’들의 시신만이 남게 되었다.
마인들의 충동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 혹은 혈마공의 수련을 위해 사용된 흔적만을 곳곳에 어렴풋하게 남겨둔 채로.
“······.”
어찌 보면 참으로 허망한 광경이었다.
정작 이 광경을 만들어낸 놈들은 이렇게 모두 마력으로 화해버렸기에, 이런 허깨비 같은 놈들에게 일상이 침탈당한 사람들에게도, 조금 전까지 시체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대로 똑같은 꼴이 된 놈들에게도 이러한 결말은 예기치 못한 재앙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온전한 모습조차 남기지 못했던 이들에게 애도를 표해주었고, 그리곤 이내 침묵 속에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조금 전 들었던 내용이 정말 타당한지 한 번 더 맞춰 볼 필요성을 느꼈던 탓이었다.
“······그나저나.”
그런데 그 순간.
“조금 전의 그건 무슨 기술이었지?”
마찬가지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던 진시우가 뜬금없이 저런 말을 건네왔다.
물론 나로서는 저게 전투를 마무리할 때 보여줬던 검사劍絲의 응용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심문을 하면서 보여줬던 금제를 말하는 건지가 애매했기에 그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진시우는 이내 담담히 말을 덧붙였다.
“심문할 때, 마력을 조작했던 건가?”
“아, 금제··· 맥락이야 그렇긴 하지.”
내 대답에 진시우는 다소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아무래도 녀석은 이런 기술을 별로 접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집행자라는 걸 생각하면 의아하단 느낌.
솔직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상승 무학에 닿아있는 무문이라면 딱히 희소한 기술도 아니었기에 저 반응이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내 이 세계의 환경을 떠올려보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애초에- 사실 금제라고 해봤자 신교처럼 긴 시간 동안, 오랜 사례를 연구해온 게 아니라면 점혈에서 조금 더 발전한 수준일 터.
하물며 근 백 년간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로 싸워온 적은 마수였으니. 오직 사람에게, 그것도 익힌 무공의 종류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기술이 그리 널리 전수되고 보존되었을 것 같진 않았을 따름이었다.
마법이든 주술이든, 혹은 특성이든 대체할 수단이야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조건이 많아서 자주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만, 오래된 무문이라면 이런 기술 한두 개쯤은 있을 거다. 물론 차이는 있겠지만.”
“······마력만으로 그러는 건 처음 보는데.”
“말했듯이 활용이 까다로워서 그렇겠지. 그리고 배운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테고.”
나는 그리 대답하며 잠시 계산해보았다.
전 세계의 각성자들 중에서도 표현만 다를 뿐 무공을 익힌 이들은 수없이 많이 있겠지만, 그들 중에서도 상승 무학의 세계. 즉- 의념에 닿은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전에 병원에서 라피냐가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42억의 인구 중에서 대략 400만 명의 각성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그중 무공을 익힌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아무리 많아도 100만 명이 안 될 터였다.
물론 그것도 많다면야 많은 숫자겠지만 그중에서도 제대로 된 무문에 속해, 제대로 무공을 배운 자들을 생각해보고, 다시 등천자의 수를 생각해본다면야 대략 감이 잡힌다.
중원에서도 절정의 영역에 닿아 있는 수는 끽해야 천명이었고,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곳 또한 천명 안팎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을 터였으니- 그중에서도 점혈과 의념의 복합 활용을 연구하고 전수해온 무문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 또한 그 일부가 실전에서 이런 걸 쓸 일이 생길 확률까지 고려해본다면······.
집행자들도 적진 않았지만 공략자의 대부분이 침식을 공략하고 마수 저지에 앞장선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희박했을 뿐.
하물며 더 효율이 좋은 수단이 있다면야- 나는 그 부분을 생각해보며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내가 배운 금제법도 대부분은 마공을 익힌 놈들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거라, 상대가 어떤 부류의 마공을 익혔냐와 수준이 어떻냐에 따라 효율이 꽤 달라지는 편이지. 그러니 실제로 쓰는 걸 보기 힘들 수밖에.”
“효율? 꽤 쓸만해 보이는 기술인데, 마력의 기질 차이라는 게 그 정도로 중요한가?”
무공을 배우진 않았더라도 각성자라면 기본적인 이론 정도는 배워서 알고 있을 터였기에 진시우 또한 내 말을 얼추 이해한 모양.
하지만 확실히 이해도가 깊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외적인 힘을 다루는 다른 이능과는 달리 무공은 내적인 영역이니까. 단순히 타고난 신체의 마력과 체질에 따라 갈리는 이능과는 달리, 무공은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기를 쌓고, 어떤 방식으로 정양하냐에 따라서 기질도 큰 폭으로 변화해나가지.”
“······.”
“그렇기에 정공과 마공이란 분류가 생기는 거고, 육신의 체질, 마음의 성향, 쌓아온 방법. 변수가 많은 만큼 그게 다 달라지는데, 그걸 다른 이에게 적용하는 게 쉬울 리가.”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치곤 솔직히 조금 전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마인들의 심령을 뒤틀어낸 감이 없잖아 있었기에, 나는 적당한 설명을 덧붙이며 빠르게 말을 끝맺었다.
“물론··· 그래도 마공, 특히 혈마공처럼 저질의 마공을 익힌 놈들이라면 상대적으로 의지도 빈약하고, 기운의 질도 저급해서 뒤탈만 무시한다면 방금처럼 간단해지긴 하지.”
“······그래?”
“그래. 그저 이런 잡기는 어떤 무문이든 주류가 아니고, 그걸 익힌 사람이 있더라도 굳이 마인을 잡아다 심문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 이제껏 볼 기회가 없었을 거다··· 아마.”
내 설명에 진시우는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애초에 방금 한 말처럼 진시우도 이런 활용은 처음 보는 모양이었고, 내가 하는 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무공도 익히지 않은 놈이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당장 이하린에게 말했어도 그냥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번 놀라곤 그냥 납득했을 터.
사실상 내가 한 짓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남궁설아 쯤은 되어야 할 테고, 무련의 상층부나 검제는 되어야 그게 그리 쉽게 설명할 만큼 만만한 것이냐며 어이없어할 터였다.
그러므로.
“한데, 그것보다 지금은 우선 녀석들에게 들은 내용부터 정리해봐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빠르게 화제를 다시 돌려보았다.
딱히 문제 될 구석은 없었을지언정 귀찮아질 구석은 있는 주제기도 했고, 납득한 진시우의 표정이 이번엔 약간 탐이 난다는 듯한 기색으로 변했기에 꽤 거슬렸던 탓이었다.
누가 마인에 집착하는 녀석 아니랄까 봐 이런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게 탐이 났던 모양.
안 그래도 지난번 라피냐- 이면순례자의 부단장까지 직접 찾아와 집행자로 영입하려고 했던 만큼, 협조 정도면 모를까 굳이 이 이상 집행기관의 관심을 끌고 싶진 않았다. 딱히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진 않기도 했고, 마인 사냥은 혼자서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쨌든, 진시우도 내 말을 듣고서는 흥미가 어리던 기색을 빠르게 가라앉혔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딴 길로 빠지긴 했어도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애초에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정보가 사실이면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글쎄··· 조금 미심쩍은 구석이 있긴 해.”
우선- 심문을 얻어낸 정보는 꽤 많았다.
“이 녀석들이 그 상태에서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진 않지만,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구분할 수 있더라도 정확성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 정보가 다소 의아하기는 했다.
그림자 교단에 대한 단서뿐만이 아니라, 이 녀석들이 왜 이런 곳에 숨어들어와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마인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나, 근래 일어났던 사건은 무엇이 있었는지 등등. 깊진 않을지언정 꽤 넓은 범주의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으나 그 조각들을 정리해볼 필요 또한 있었던 것이다.
하나, 예를 들어 보자면······.
“아시아 쪽 정세가 흔들리니 집행자들이 나서고, 집행자들이 나서니 그걸 피해 여기까지 도망쳐오고, 그걸 따라 집행기관의 활동이 더 늘어나고······ 결국 그로 인해 그림자 교단의 활동까지 줄어든 상태라는 건가? 타천자급 마인까지 위장하고 숨어들 정도로?”
“일단 정황만 놓고 보자면 그렇겠지.”
“4월의 일이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알고 보니 이놈들의 반절 정도가 아시아에서 시작된 집행자들의 토벌을 피해 도망쳐 온 것이었다는 점이나, 그로 인해 남미의 정세 또한 변해버렸다는 부분 정도가 있었다.
물론 모른 채 말하긴 했어도, 앞의 내용- 아시아 마인들의 동향 정도는 이미 하오란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네가 그날 적원회의 수뇌부를 모두 죽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 그림자 교단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할 뿐이지, 적원회도 아시아에선 나름대로 규모가 컸으니까.”
“그렇다기엔 생각보다 보잘것없던데.”
“쯧. 교단이 예외인 거지, 일개 마인들에겐 하이랭커급의 초인도 충분히 규격 외의 재앙이다. 그리고 애초에 놈들은 무력보단 마공을 기반으로 한 영향력의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점을 제외하고서 생각해보자면 나로서도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을 따름.
“아무리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집행자들의 활동이 조금 늘었다고 해서, 그게 그림자 교단의 잠적까지 이어졌다는 건 좀 의아한데.”
“······그 점은 나도 의아하긴 하지만, 시기가 맞아떨어졌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조각이 안 맞는 건 아닌데······ 이상해.”
차라리 방금 토벌한 마인들 정도라면 이해가 되었다. 아니, 다소 규모가 있는 조직이라 한들 집행자들과 무턱대고 맞서려 하진 않을 테니 분명 저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집행자라면 최소 등천자 급의 무력을 지녔을 테고, 공략 활동조차 안 하는 마인들의 능력엔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녀석들이라면 그 정도 힘은 있을 텐데.”
원래부터 등천자급의 무력을 지녔던, 그러면서도 침식을 받아들여 마인이 된 타천자들이라면 집행자를 두려워할 것 같진 않았다.
하물며 그림자 교단은 어느 정도 이 세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인 집단인 만큼, 지난 승천제에서 직접 겪어봤듯이 적지 않은 타천자가 그곳에 속해 있었다. 승천자와 집행기관이 꾸준히 놈들을 죽여도 계속해서 주교의 자리가 채워질 만큼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전부 쥐죽은 듯이 잠적을 해버렸다라··· 조금 의아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아마 승천자의 영향도 없진 않을거다. 남미로 복귀한 루타텔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집행자들의 행적과 맞물렸다면 녀석들이라고 해도 마냥 무시할 순 없었을 테니까.”
“······.”
“그리고 이건··· 블랙마켓에서 얻었던 정보지만, 루타텔은 승천제 이전부터 남미에서 집행기관과 협업을 진행 중이었다고 들었다. 그 협업의 방향이 근래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면야 어지간해선 몸을 사리겠지.”
그에 나는 말없이 진시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건 블랙마켓이 아니라 실제 이면순례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보를 이야기하는 듯했기에 조금 미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캐물을 수는 없었을 따름.
우선은 이면순례자와 루타텔이 마인 사냥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그 정도로 진시우의 말을 기억해두었다. 그런 규모의 토벌 협력이라면, 어쩌면 그림자 교단의 마인들을 쫒다가 마주치게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뭐 그렇다면야··· 그럼 일단 여명급 주교나 되는 녀석이 도시에 쥐죽은 듯 숨어 있다는 것도 아예 이상한 소리는 아니란 말이군.”
“설령 그게 틀린 정보라 해도 우선은 찾아가 봐야 할 거다. 정말 이 녀석들 말대로 도시에 숨어있다면··· 그건 너무 위험하니까.”
진시우는 그 말과 함께 미간을 찡그렸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접경지에서까지 충동을 유지할 만큼 멀쩡한 놈들은 아니다. 만약 그 정보가 진짜라면 조만간 테러나 학살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
“······그건 너무 비약적인 것 같은데?”
“아니, 이놈들이 엮였던 게 여명급 한 명인거지, 정말 상황이 위험해져서 숨은 거라면 혼자 숨어 들어가지는 않았을 거다. 분명.”
무언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동시에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인 녀석은 그 말과 함께 워치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거래했다는 마석과 물자의 양이면 적어도 원래는 서른은 넘는 숫자로 움직이고 있었을 텐데, 파린칭스의 위치를 생각하자면 빠르게 확인해보는 게 좋겠지.”
“······.”
“거기도 마인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니까.”
진시우는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우며 그리 말했고, 지금 녀석이 띄운 지도 속에는 총 10개에 달하는 붉은 점들이 아마존의 중심을 크게 빙 두르듯이 원을 그리며 찍혀 있었다.
물론 저 지역들이 어디인지는 나도 잘 몰랐지만, 적어도 세로데파스코는 진시우가 언급했었던 곳이기에 대략이나마 감이 잡혔다.
“파린칭스··· 라는 곳도 거점도시였나?”
“그래. 마인을 탐지할 수 없는 곳이지.”
“확실히, 그러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어.”
침식 영역에 뒤섞여서 마인의 탐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라면 진시우의 걱정도 이해가 되었다. 접경지의 난민과 공략자, 그리고 헌터에 마인까지 뒤섞여 있는 곳인 만큼 몸을 숨기기에도 좋은 곳이니 말이다.
물론 그만큼 무언가 일이 터졌을 때 대처할 이들도 많다는 거지만, 잠시 정비를 하러 들린 공략자를 제외하곤 실질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은 헌터일테니 무슨 일이 터지면 제 몸부터 숨기고 볼 터.
타천자급 마인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일을 저지르고 도망칠 만한 수준일 테니, 진시우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쉽게 이해되었다.
마인들 때문에 제 손으로 도시까지 날려버리게 되었던 녀석인 만큼, 진시우는 그런 테러에 상당히 민감한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직접 가서 살펴보는 게 좋겠어.”
더 이상 고민하는 것도 비효율적이었다.
어차피 아직 주말은 많이 남아있었고, 정보가 사실이라면 빠르게 타천자를 하나 찾아 사냥할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애초에 침식 영역이든 말든, 감지가 불가능하든 말든 나하곤 상관없는 문제였으니까.
왜냐하면.
“일단 가서 훑어보면 바로 알게 되겠지.”
“훑어보면 바로? 그게······ 아, 그렇군.”
내게 이 눈이 존재하는 한, 어차피 마인들은 내게서 몸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
우리가 놈들이 말했던 장소- 파린칭스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아침에는 진시우가 주워온 정보를 따라 열대우림을 헤치며 몇 시간을 돌아다녔고, 다시 마흔이 넘어가는 놈들을 일일이 심문한 다음 다시 그대로 정글을 빠져나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던 탓.
그렇다 보니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도시, 아니 도시라기에는 조금 추레했지만 파린칭스의 분위기는 다소 시끌벅적했다.
물론 그건 일반적인 도시의 소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시끌벅적함이었지만 말이다.
약간의 퇴폐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 씨버럴, 오늘 마석캐다 뒤질뻔했네.
-안 뒤졌으면 뒤질때까지 마셔야지! 크!
-F급만 쫒아다니는 새끼가 뒤질뻔하기는.
-하하! F급만 쫒아다니는 놈이 B급을 마주쳤으니 당연히 뒤질뻔하지. 안 그렇습니까?
대기 중에서 느껴지는 퀴퀴한 땀 냄새, 매캐한 화약 냄새, 그리고 약간의 피 냄새까지.
거리 곳곳에 쫙 늘어져 있는 위생이 의심스러운 노점상들 앞에는 각종 총기나 무기를 지닌 채 술을 들이붓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엿보였고, 헌터로 보이는 이들이 각자 자잘한 돌조각을 주물럭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마력이 담긴 걸 보아하니 마석인 모양이었는데, 항상 마수의 내부에 박혀있는 것만 보다가 저렇게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마석을 보게 되니 어째 약간은 색다르다는 느낌.
나는 이제껏 마석이고 근원석이고 한번도 빼낸 적 없이 그냥 다 베어내 버렸기에 저런 상태의 마석은 처음 보게 된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B급? 이 새끼 어떻게 살아 돌아왔냐.
-아, 거 지나가던 공략자들이 살려주더라.
-씁, 마석이고 뭐고 걍 죽였겠네 그럼. B급 마력량이면 그래도 값이 좀 나가는데.
-부정형이라 그냥 통째로 구워버리던데?
-허, 씨펄 아주 대단하신 양반들이야.
-대단하지 아주, 제정신도 아닐 테니까!
거리를 지나가는 중 들려온 헌터들의 대화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발견했나?”
“아니, 다른 이유야.”
그러자 후드를 푹 눌러쓴 채 내 옆에서 같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진시우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저 별거 아니라는 듯 다시 주변을 둘러봤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정말 별거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말하자면 그저 웃음이 나왔던 탓.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게 이하린이었던데다가, 다시 그녀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던 곳이 등천회랑이었다 보니- 내게 있어선 지금의 이 풍경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오고, 또 조금 우스웠던 것이다.
물론 저 대화가 한심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내게는 색다르게 느껴졌을 뿐.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바치겠다는 듯 행동하고, 자신의 삶보단 타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만을 만나오다가, 지금은 저런 대화를 듣고 있으니 그러한 차이가 어떻게 웃기지 않겠는가?
줄곧 말로만 듣던 헌터들의 모습을, 사실상 현장에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니 그게 참 내게는 새삼스러운 기분을 선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