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72화 (172/205)

헌팅시즌 (3)

접경지에서 태어나, 신원조차 없는 난민들의 삶은 대부분 두 가지 길로 나누어진다.

그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여 하루하루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침식에 휘말려 죽든지, 혹은 각자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그곳을 탈출해 제대로 된 삶을 거머쥐든지.

물론 접경지라 해도 국가의 관리하에 들어와 있는 곳도 적지는 않았고, 언제 생긴 접경지냐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는 편이었지만 적어도 1차 세계침식 때부터 침식이 확장되어온 곳들에서는 그런 걸 기대할 순 없었다.

“하··· 씨펄. 언제까지 처박혀있어야 해?”

“몰라 이 새끼야. 지금 같은 상황에선 뒤지기 싫으면 쭉 사려야지. 개 같은 새끼들.”

“개 같은 노랭이 새끼들은 그냥 거기서 뒤질 것이지 뭣 하러 여기까지 시발! 안 그래도 좆같은 집행자 새끼들이 넘쳐나는 판국에.”

“······시발 우리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

하지만 미비한 기반 속에선 꽃피울 수 있는 재능과 능력 또한 한정되었기에 결국 존재하지 않는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선 그들은 탑에 뛰어듦으로써 능력을 각성해야 했다.

법보다는 개인의 힘이 우선시 되는 세계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결국 초인이 되는 길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서 길은 다시 또 갈라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사용하냐에 따라 그들의 삶은 각기 나아감에 따라 공략자가 되기도 하였고, 안주함에 따라 헌터가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욕망만을 추구하는 마인이 되기도 하였으니······.

“아······ 사람 좀 죽이고 싶습니다 슬슬.”

“손에 묻은 피나 닦고 얘기해라 새끼야.”

“요즘 따라 충동이 잦아지는 기분인데, 이러다 세계침식까지 팍 터지는 거 아닙니까?”

“터져서 우리 빼고 다 뒤졌으면 좋겠다.”

“그럼 담배랑 피자는 누가 만들어 시발.”

이 순간이 바로- 이들의 선택이었을 뿐.

이들에게 주어진 방법이 하나였을지언정, 걸어갈 수 있는 길에는 분명 여러 가지가 있었다. 허나 이들의 선택은 획일적으로만 이어져 왔기에 결국 이곳을 향해 수렴되었다.

사람들을 위해 힘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으되,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삶 또한 아무렇지 않게 망가트릴 수 있었기에 마인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사람을 죽였고, 힘을 쌓기 위해 사람을 죽였으며,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였기에 그들은 이곳에 와있었다. 열대우림 깊숙한 곳까지 숨어들 정도로 악업을 쌓아놓고도, 저들의 욕망을 불태우면서.

그렇게 이들은 타천의 마인이 되어 살아가는 중이었다. 힘을 얻어, 욕망을 추구해, 그 결과 윤리와 존엄을 벗어던진 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닥치고 시체나 치워라 이······ 어?”

“거 천천히 좀 치우면 안······ 아?”

마인의 삶이 그러하듯, 그들은 이 순간 저가 쌓아온 인과의 대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태양이 숲속을 파고들어 햇볕을 내리쬐는 대낮의 가운데, 그 햇빛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눈부신, 한순간에 떠오른 백열의 파도를 마주함과 동시에 그들의 사고는 정지했다.

저게 뭘까- 오직 그 생각만을 떠올리며.

그렇게 잠시 멈춰버린 마인들은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멍하니 그들 사이, 한복판에 떨어지는 빛의 파동을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

콰과과과과-!! 그렇게 인지의 속도를 추월해 순식간에 발현된 빛의 파도는 그대로 마인들이 자리하고 있던 임시 주거지를 강타했고, 물결치듯 수십 미터 반경을 그대로 강타한 마력 파동에 마인들의 몸이 흩날렸다.

온몸이 불타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사방을 향해 튕겨 나가기 시작한 잿빛의 형상들.

븨이잉··· 콰아앙-!! 콰과과가-!!!

처음 시작된 파동이 미처 사그라들기도 전에 후속으로 연이어진 빛의 포화는 그대로 흩어진 마인들의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생존본능이 발현된 마인들은 빠르게 마력을 끌어올리며 특성을 발현시켰다.

얼어붙었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갑작스럽게 시작된 습격에 도주해야 할지 교전을 시도해야 할지 고민해보면서, 그리고······.

“씨발!! 갑자기 이게 뭔······.”

그 판단을 위해 압도적인 광량에 순간적으로 맛이 갔던 시야를 재생시키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시 그 순간.

“······개 같은······ 어?”

시각을 되찾은 마인들의 눈에 들어온 건 빛이 지나가고 찾아온 밤의 형상이었으니, 시커멓게 일렁거린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그 검디검은 선이 그들의 몸을 훑고 지나갈 때까지도 눈치 못 챌 만큼 고요하게.

서걱- 마인들의 시야를 다시 암전시켰다.

쏟아지는 백색의 포화 사이에서, 소리마저 사라진 세계를 만들어내며 그렇게 말이다.

“······.”

후두둑- 물론 그것은 아까처럼 단순히 시각의 상실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으니,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 사이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던 마인들은 저들이 행했던 대가 그대로, 제 손이 만들어냈던 풍경 위로 몸을 뉘었을 뿐.

그리고.

“······컥.”

“흡······.”

그렇게 마인들이 채 제대로 무언가를 인식하기도 전에 멀쩡히 서 있던 이들이 한순간에 그림자를 토해내며 허물어졌고, 그들 사이에는 어느새 모르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반사되는 빛 한점 없는 검디검은 옷을 걸친 채로, 그 옷만큼이나 짙은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

무기질적인 시선이 마인들을 마주했다.

“······이게··· 무슨?”

찰나의 순간- 울려 퍼진 경악 어린 적막.

분명히 42명이었던 숫자가 32명으로 줄어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에 불과했으니- 흑백의 색채가 휩쓸고 지나간 난데없는 상황은 그들의 이성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지금 이 순간이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광경처럼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공상보다는 악몽에 더 가까운.

“······.”

“······.”

마인들의 이성과 본능이 빠르게 충돌한다.

적어도 마인들의 입장에선 갑작스럽게 시작된 기습보다도,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나갔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본능이 만들어낸 주마등의 순간 사이에서, 한없이 느려진 세계에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도 당장 자리를 박차버리고 싶었기에.

하지만.

“씨발···!! 뭐, 뭐야 가, 갑자기?!”

“지, 집행자다! 집행자가 떴다!!”

“일단 조지기나 해 병신들아···!!”

콰과과-!!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을 외면할 정도로 멍청했다면 이제껏 살아남지도 못했을 터. 마인들은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았다.

비록 첫 기습으로 인해 시각을 빼앗겨 한순간에 다수가 죽어 나갔을지언정, 그들도 그리 보잘것없는 실력을 지닌 초인은 아니었으니- 마인들은 한순간에 달아오른 직감 속에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곤 몸을 움직였다.

근접계열의 특성을 지녔거나 무공을 익힌 놈들이 재빠르게 앞으로 나섰고, 원거리에 적합한 능력자나 화기를 지닌 이들은 갑작스럽게 솟아난 적을 향해 공격을 쏘아냈다.

그러나.

“이, 이 미친··· 씨발!!”

단 5초- 그 정도에 불과했을지언정, 그들의 본능은 난데없이 나타난 적들을 마주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계속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으니- 특히 저 흑색의 검객을 본 순간 마인들은 마치 겨울이 찾아온듯한 싸늘한 감각 속에 소름이 돋는 걸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저 포화 속에서도 욕 나올 정도의 마력량이 느껴졌지만, 저 남자는 그것과도 궤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가 되어버린것마냥, 본능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상대의 위험함을 감지하고 그들의 심장을 두들겨댔다.

싸우면 죽을거라고, 어서 도망치라고.

그러니까 마치··· 그들이 아직 평범한 사람이었던 시절, 처음으로 수호자급 마수를 마주했을 때 두려움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어, 어떻게 여기에 이, 이런 놈이······.”

서걱- 하지만 그 사실을 마인들이 인지했다 한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다.

키잉··· 콰아앙-!! 콰과과과-!!!

상대의 무력을 직감하곤 도주를 시도하려는 순간, 내비친 빈틈 사이로 칠흑의 별빛이 그대로 궤적을 그려냈고- 다시 외곽으로 튕겨 나갔던 이들이 자리를 박찬 순간 압도적인 빛의 포화가 망치처럼 그들을 내리쳤다.

검은 선이 그어지는 순간 사지가 베여나갔고, 빛이 내리치는 순간 몸이 타올랐으니.

“······씨발!!”

그렇게 이 순간- 멀쩡히 서 있는 이들의 숫자가 20명에 더 가까워진 순간이 되어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도주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했고, 결국 죽고 싶지 않았던 마인들은 기어코 저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 결사항전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주, 죽여!! 어떻게든 죽여 시발···!!”

“포, 폭탄! 누, 누가 폭탄부터 들···!”

하지만 그들에게 강요된 유일한 선택지는 명백한 사석死石이었고, 지금 그들의 행동은 어찌 보면 발버둥에 더 가까웠을 따름.

가만히 죽어줄 수는 없다는 절박함과 새하얘진 의식이 자아내는 두려움이 뒤섞여, 탁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으니- 마인의 손에서 쏘아진 전격에도 상대는 그저 담담했다.

아니, 그는 그 공격들을 피하지도 않았다.

남자- 유천하의 몸은 가뿐하게 그것을 흘려내며 나아갔고, 저 멀리서 몸을 숨기고 있는 진시우를 대신해 공세가 그를 향해 집중되고 있음에도 유천하의 움직임은 평온했다.

그저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밤하늘과도 같은 색채가 한순간에 그를 감싸며 다가오던 이능을 모두 집어삼켰고, 빛마저 집어삼킬 검은 그림자는 짙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한순간에 그 형상을 변화시켰다. 마치 저 옛 시대의 존재하던 의복과도 같은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그 뜬금없는, 그러면서도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고아한 자태에 마인들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겨버렸던 순간.

바로 그 순간.

“······아?”

코앞에서 그 광경을 목도하며 이능을 쏘아 보내던 마인은 세상이 스르륵- 미끄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세계의 높이가 변화하기 시작했으니, 마인은 그때 깨달았다.

미끄러지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는 걸.

“······대체··· 언제?”

그렇게 마인은 잘려나간 제 다리를 인지함과 동시에 주변에 같이 널브러지기 시작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고, 육안으론 제대로 엿보이지도 않았던 뭔가가 자신들을 스치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쿵-!! 물론 바닥에 입을 맞추면서 말이다.

그리고 한발 늦게 밀려오는 아찔한 통증 속에 마인의 정신이 암전되기 직전, 그는 흙바닥에 구르면서도 검을 휘두른 남자- 유천하의 손등에서 빛나는 업륜을 목격하였으니.

그 순간 암전되는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

다시금 공간을 가르며 펼쳐지는 얇디얇은 실선과 함께,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단 한 순간에 마인들을 베어낸 채 담담히 미소 짓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였을 뿐이었다.

***

상황이 시작되고부터 고작해야 단 3분.

“하.”

그것이 이 자리에 서 있던 42명의 마인들이 모두 쓰러지기까지 걸렸던 시간이었다.

처음 마인들을 발견하고 10분 내로 끝내자는 소리를 했던 것과는 반대로 유천하는 그야말로 빛살처럼 즉시 전투를 끝내버렸다. 그것도 별다른 위험도 없이, 무척이나 쉽게.

물론 거기에는 서로의 역량에 비해 마인들의 수준이 쉬웠던 탓도 있었지만, 반대로 유천하의 마무리가 깔끔했던 덕도 있었다.

그렇기에.

‘······하이랭커급이란 건 부정 못 하겠군,’

탁- 진시우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올라가 있던 나무에서 내려오며 혀를 내둘렀다.

저 혼자서 사냥하러 다닐 때와는, 그리고 이면순례자의 다른 집행자들과 사냥을 다닐 때와도 비교하기도 힘든 속도로 전투가 종결된 것에 다소 질린 기분을 느꼈던 탓이었다.

라피냐보다는 대인전에 더 치중된 느낌이었지만, 이 정도 규모의 전투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타난다는 느낌도 안 들었을 뿐.

확실히 유천하의 실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전투나 강한 근접계 마인과의 전투를 상정하고 그의 협력을 원했던 것인데, 저 녀석- 유천하는 단순히 일대일 대인전만이 아니더라도 분명 여러 방면에서 그 실력을 빠르게 증명해냈다.

저보다 먼저 마인들을 발견했다는 것도.

기척 하나없이 기습을 성공시키는 것도.

다수의 적을 상대로도 가뿐했다는 것도.

현직 집행자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역시······ 협력을 구하길 잘한 건가?’

만약 그 자신이 혼자서 여기를 습격했다면, 이 정도 속도로 전투를 끝내기 위해선 최소 다섯 개의 원을 그려내야 했을 테니 확실히 유천하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협력자였다.

특히나- 상정 가능한 변수들을 가정해본다면 사실상 거의 필수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걸 그나마라 해야 할지, 안타깝다 해야 할진 모르겠으나 이곳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저 자신의 능력을 생각해본다면 꽤나 피곤한 전투를 치를 뻔했다. 진시우 자신의 제어력으론 피아를 구분해 공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

상황이 종료된 터라 다소 여유롭게 마인들이 있던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진시우는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순간 눈을 깜빡였다.

왜냐하면.

“······잠깐··· 갑자기 뭐 하는 거지?”

서걱-!! 쓰러진 녀석들을 둘러보고 있던 유천하가 난데없이 이미 의식을 잃은 마인들의 몸을 베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제 할 일을 한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이다.

“침식 마인은 이 정도로 안 죽으니까.”

“아니··· 정보를 캐려고 일부러 안 죽이고 살려둔걸, 왜 네가 죽이고 있냐는 말이다.”

“침식 마인이라 이 정돈 상관없을 텐데.”

“아니, 그러니까 마인이라 죽이는 건 상관없는데, 왜 벌써 죽이려고 그러냐······ 음?”

말을 하던 중에 위화감을 느낀 진시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선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천히 교차하는 서로의 시선.

“······.”

“······.”

진시우의 표정과 태도를 바라봄과 동시에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마인들의 상태를 바라본 유천하는 고민 끝에 의아한 듯 되물었다.

“······심문하는 데 다리가 필요한가?”

말문이 막힌 진시우가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 모습에 유천하는 여러 부분을 고려해본 뒤, 정론- 그러니까 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문제없겠다 싶은 부분을 설명했다.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죽이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힘줄이 끊긴 정도로는 금방 재생할 테니까 만약을 대비하는 것뿐이지.”

“······틀린 말은 아닌데.”

“그리고 애초에 사람도 아니고, 마수 같은 녀석들이라 이 정도로는 죽지도 않을 거다.”

유천하의 말은 분명 타당하였으나 진시우, 정확히는 생도로서의 진시우는 저 말에 어느 정도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집행자로서 움직일 때는 우선 사지부터 불태우고 보는 편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천하는······ 일반 생도이지 않은가?

실력과는 별개로 지금 유찬하의 저 행동에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을지언정 마인을 사람으로선 취급조차 안 한다는 게 물씬 묻어나오고 있었으니- 그 태도에서 마치 오랫동안 마인을 사냥하고 다닌 집행자들의 사고방식이 엿보여, 미묘한 기분이 든 탓이었다.

그리고 물론.

‘어쩔 수 없지.’

유천하로서도 이 정도까진 기본적인 수준이라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었기에, 진시우의 반응에도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을 따름.

물론- 마인을 제압한 후 사지 멀쩡하게 내버려 두는 걸 당연시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과한 수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움직임 자체를 봉쇄하는 수준의 조치정돈 취해놓는 게 맞는지, 과연 그 적정선이 어디냐에 대해서는 그로서도 여러 번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 정도는 괜찮았다.

딱히 무림의 기준이 아니더라도,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세계라는 건 똑같았으니 상대가 평범한 범죄자도 아니고 침식마인이라면, 심지어 주변에 시체까지 이렇게 널려있다면야 굳이 사릴 이유가 없었다.

그건 너무 안일하단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앞으로 그림자 교단의 주교까지 추적을 이어나가려면 이런 순간이 꽤 자주 찾아올터였기에, 유천하는 그냥 처음부터 확실하게 이미지를 설정해두기로 결정했을 뿐.

물론- 나름대로 구실 또한 존재했다.

“인도적인 부분이 거슬려도 어쩔 수 없어.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나서 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불만이면 지금 말해.”

“······아니, 딱히 불만은 없다.”

“그렇다면 일단은 계속 하지.”

서걱-!! 그렇게 핑계 아닌 핑계에 진시우는 미묘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 말을 들은 유천하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곤 다시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놈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먹물처럼 그림자가 터져나왔으니, 그걸 바라보며 진시우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의 가치관으로선 문제없을지언정, 평범한 생도 진시우로서는 여기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으며, 다시 집행자 진시우로서는 저러한 유천하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내.

‘······확실히 접경지 출신이라는 건가?’

연맹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정보를 떠올려 본 진시우는 빠르게 납득할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간 유천하가 토벌한 타천자의 숫자도 숫자였고, 침식 지역의 공백에서 살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저렇게 행동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기는 했다.

그저 나이와 이제껏 지켜본 모습 때문에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던 것뿐이지, 그런 환경에서 저런 실력을 갖추고 자라왔다면 일반적인 이들과 똑같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최적의 인선을 골랐다는 느낌.

“······.”

서걱- 그러므로 진시우는 제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저러고 있는 유천하를 바라보며 자신은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고, 이내 약간의 고민 끝에 그 또한 가볍게 마력을 끌어올려 마인을 향해 쏘아냈다.

진시우 자신이 평소에 하던 것처럼, 마인의 사지를 마력으로 불태우기 위해서였다.

븨이잉··· 콰앙-!!!

그러자 유천하가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진시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시간 아까우니까.”

“······죽이진 마라.”

애초에 진시우 또한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고, 상대 쪽이 먼저 저렇게 선을 넘나들고 있는 이상 굳이 저 혼자 조심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고, 어차피 마인들을 심문하긴 해야 했으니까.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그렇게.

“······.”

“······.”

두 사람은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로도 어느 정도 기준선의 타협을 이뤄냈고, 간단한 핑계 속에 각자가 지니고 있는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마인들을 제압해나갔다.

죽이지는 않되, 심문하기 좋은 모습으로.

서로 미묘한 속내는 그대로 숨긴 채로.

빙의자가 보았다면 안색이 창백해졌을 광경을 만들어나가며, 그렇게 환생자와 전생자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나갔을 뿐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