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조류 (4)
아크샤의 두눈이 천천히 깜빡거린다. 물론 겉으로 둘러진 허상만이 아니라, 그 속에 자리한 그의 얼굴까지도 유천하의 말을 듣자 마찬가지의 반응을 내비쳤을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회귀가 아니라 환생이라는 말.
“······환생? 다시 태어났단 말입니까?”
그 말이 무척이나 뜬금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크샤는 자신이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비틀림인 유천하를 회귀자라 가정했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엿보았던 지나간 세계의 멸망을 막아내고 싶었기에, 그는 고민 끝에 희망을 품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환생이라니?- 아크샤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순간적으로 의아했다.
하지만.
“예. 저는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
“제가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고, 말씀하신 인과의 비틀림이 있다면 그게 가장 근본적이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유천하는 조금 전까지 그렇게 당황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모습이 되어서는,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을 당황시키고 있었으니 아크샤는 ‘환생자’라는 유천하의 말에 빠르게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보았다.
그 자신이 목격했던 시간선과 달라지면 흐름에 대해서, 비틀림에 대해서, 저 말이 진실이라면, 거짓이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그리고.
“······.”
“······.”
그렇게 잠시 적막이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유천하 또한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우선- 그가 한 말은 진실이되 거짓이었다.
유천하라는 인물의 인과를 설명해야 한다면 그 근본에 자리한 건 분명 ‘환생’이라는 이적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크샤가 목격한 비틀림은 분명 그가 원작을 읽고 이 소설 속 세계에 편입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일 테니 아주 정확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천하는 그걸 밝힐 수 없었다.
물론 그가 아크샤를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야 할 인물이라면 만상세계는 승천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원작과 이 세계의 상식을 통해 그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스스로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지금의 그가 알 수 없는 변수- 회귀자라는 요인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점도, 그리고 유천하 저 자신이라는 변수까지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을 뿐.
최종적으로 그의 목적은 무림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원작과 이하린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가장 안전하게 성사시키기 위해 그는 원작의 미래까지 이곳에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크샤의 개입도, 회귀자라는 개념도 모두 유천하가 이제껏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였으니,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이건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유는 한 가지 더 존재했고 말이다.
‘원작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숨기려 해도 이하린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겠지.’
이 상황의 원인- 소설 속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했다면 유천하 자신이 이곳에 와있는 까닭을, 그 맥락을 이야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그 가운데에 놓인 이하린의 존재가 아크샤에게도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과연 어떠한 변수로 이어지게 될지 까진 잘 가늠이 되지 않았으니- 유천하는 그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본능과 이성, 모든 측면에서 그러했다.
그 자신은 원작에 대해 알고 있고,
이하린은 ‘원작’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저가 읽은 원작 <소설 속 주인공>의 묘사를 통해 유천하는 이하린의 ‘원작’에 대해서도 대략적이나마 윤곽을 알고 있었고, 회귀라는 변수는 적어도 그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걸 밝힐 수는 없었다.
아크샤라는 인물이 원작에서도 공인된 선인이라 할지언정, 현실의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는 드러난 부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러니 그에게 사실을 밝히는 게 회귀자라는 변수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모르기에 아직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이야기한다면 추후 이하린에게.
주관적인 신뢰도와 객관적인 요소를 생각해보자면 그게 유천하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그러한 이하린에게조차 당장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성급한 결정일 터. 확실과 불확실의 경계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는 아직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었으니 섣부른 도박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우선 여기까지만.
비록 처음 듣는 이야기와 진실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 순간 유천하는 차분해진 정신 속에 빠르게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아니, 조건이 하나 부족합니다.”
물론, 그런 만큼 이것만으로 아크샤를 납득시켜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조금 더 진솔해질 필요성이 있었을 뿐.
유천하는 차분히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어떠한 부분이 그러한지 말해주시지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그게 시간선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변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이점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인과가 변화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세계선에서 독립된 변수여야 제가 관측한 부분에 대한 조건이 성립하게 됩니다.”
“······.”
사실 이 부분은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도 언급했어야 했을 테니 미묘했지만, 유천하에게는 크게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다.
무림이었다면 모를까, 이곳에서 중요한 정보는 환생보단 원작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유천하는 간단히 대답했다.
“아마도 그건 제가 다른 세계에서 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본래부터 이 세계에 속해있던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지금··· 다른 세계······ 라고 하셨습니까?”
“예. 저는 원래의 세계에서 죽은 뒤, 눈을 뜨니 새로운 세계에 환생해 있었습니다. 변수가 있다면 그것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
전생의 현대와 무림, 그리고 다시 이곳.
주어가 달랐을 뿐 유천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크샤가 언급한 부분에 대한 사유가 될 수 있는 요소였다.
물론 유천하도, 아크샤도 만상세계의 인과에 대해서는 확신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제가 그 누구에게도 밝힌 적 없는 사실을 처음 보는 당신에게 밝히는 이유는,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제게 한 사람이 당신, 승천자 아크샤라는 점도 있겠지만, 동시에 제가 환생을 겪었기에 당신의 말을. 회귀라는 이적을 무시할 순 없었던 탓입니다.”
“······.”
“하니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환생자이며, 평범하진 않을지언정 당신이 들려준··· 멸망과 회귀는 제게도 무척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유천하는 그 말과 함께 아크샤와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하였다.
진실이되 진실만은 아닌 이야기를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이 아크샤 당신이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거란 어조로 그는 그렇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유천하의 대답에-
“······직접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아크샤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그러한 대답을 되돌려주었을 따름이었다. 아까 유천하가 그리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아크샤의 표정 위로 당혹스러운 심경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유천하를 바라보았으니, 유천하는 물론 그 말에 흔쾌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애초에 그는 정말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확인할 방법이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군요.”
“······방법은 있습니다. 만상세계에 당신이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물어보면 됩니다.”
“만상세계에··· 말입니까?”
아크샤는 그 말과 함께 제 손을 들어 올려 업륜을 드러냈고, 그리고는 마력을 움직여 그것을 그대로 유천하의 손에 갖다 댔다.
그러자 그 순간.
우웅-!! 아크샤의 손등에 새겨져 있던 10획의 업륜 중 하나가 스르륵 흩어지더니, 그대로 유천하의 손등 위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업륜을 사용한 게 아니었으니, 유천하는 그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바로- 아크샤의 업륜 중 하나가 그대로 추출돼서 저에게 새겨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건?”
정말이지 갑작스러운 행동-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는 둘째치고서라도, 이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유천하는 얼떨떨한 얼굴로 아크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크샤는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제 마력을 끌어올렸다.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제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상세계라면 다르겠지요. 그것을 축으로 삼아 당신이 쌓아온 시간에 한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
“지금 하는 대답이, 당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 속에서 한순간이라도 거짓이 된다면 만상세계의 인과는 그에 반응할 것입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 말에 유천하는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지 못했고, 잠시 말없이 아크샤와 제 손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거··· 영구적인 소모 아닙니까?”
자신의 업륜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도, 그걸 통해서 만상세계의 인과를 이용한다는 것도 놀라웠으며, 그 무엇보다도 그 질문을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이 정도의 수를 사용한다는 게 그로서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10획이나 있다면 하나쯤은 괜찮겠다 싶을 수도 있었지만, 분명 조금 더 난폭하게 행동하려 했다면 아크샤에게는 더 효율적인 수단도 존재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예. 영구적입니다. 그래야 제가 만상세계의 인과를 당신에게 엮을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만큼 제게 이건 중요한 사안입니다. 아니, 이건 세계의 구원과 직결된 사안입니다.”
아크샤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단순히 무력으로 겁박하고, 말로 강압하는 것은 그의 성정에도 맞지 않았을뿐더러-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만상세계는 침식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회귀자를 찾아야 한다고 그에게 속삭였고, 아크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확실하게’ 회귀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 이후는, 그때가 돼서야 생각해볼 일.
그러니 효율적이지 못할지언정, 아크샤로선 가장 객관적이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 만상세계의 인과를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애초에 그는 처음 비틀림을 감지한 순간부터 최대한 모든 상황을 가정해왔으니, 지금처럼 별다른 반발 없이 업륜의 인과를 상대에게 박아넣을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아크샤로서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리고- 그런 손해를 감수한 만큼.
“하니,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
“당신은 정말 회귀자가 아닙니까? 당신이 이야기 한 모든 것은 진실한 것입니까?”
만약- 유천하가 거짓을 말했다면, 아크샤로서도 부득이하게 안 좋은 선택지를 고를 생각이었다. 그가 회귀자가 맞았다면, 그런데도 숨기는 거라면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 뒤에 어떠한 진실이 숨어있을지라도.
그러니 유천하가 환생자라면, 아니 정확히 뭐든 상관이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회귀자인지 아닌지는 제대로 확인해봐야 했을 뿐.
아크샤는 그러한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예. 아닙니다. 제게도 사정이 있기에 모든 걸 말씀드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당신에게 말한 건 모두 사실이며, 저는 다른 세계에서 죽고 새롭게 환생하게 된 사람일 뿐입니다.”
“······.”
“이것만큼은 이 순간이든, 제가 지나온 과거에서든 절대 변하지 않을 진실입니다.”
유천하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순간에도, 아크샤가 그의 왼손에 새겨놓은 업륜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만상세계가 그 말을 인정했다는 것.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
그에 아크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업륜을 소모하면서까지 만상세계의 인과까지 엮어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아크샤로서도 이제는 유천하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내용이 의외라 할지언정, 정황과 근거, 그리고 확증이 모두 그것을 향해 있었으니 말이다.
아크샤의 마력이 파도처럼 요동친다.
쿠구구구구-!!
백 년의 세월 동안 처음으로 발견한 존재.
비록 심연을 억눌러야 하기에 제대로 시간을 쏟을 수는 없었지만, 유천하는 아크샤의 눈에 들어온 가장 확실한 비틀림이었다. 그것도 다른 무엇보다 선명한 특이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천하마저 회귀자가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걸까?
다음 세계침식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크샤는 저도 모르게 깊은 탈력감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와 동시에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려보았다.
“······하··· 하하··· 이게 무슨······.”
이 순간 아크샤는 무척이나 복잡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고, 그걸 드러내듯이 이제까지 줄곧 왜곡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허상 위로도 물결치듯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아크샤는 무언가를 되뇌었다.
유천하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면, 아니, 사실인 이상- 그가 이제껏 만상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근간부터가 달라져야 했다. 유천하의 존재는 다시 무언가를 의미했으니까.
“······그렇다면 가능성은······ 닫힌 세계가 아니었다는 말, 세계는 열려······ 평행, 아니야. 그럼 만상의 의미는···,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한순간에 밀려오는 피로와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아크샤의 머리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유천하의 존재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그리고 끽해야 10년, 아니 5년도 남지 않았을 심연의 도래까지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또한 만상세계가 제시한 해답- 회귀자의 존재는 어떻게 찾아내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아크샤는 말없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다른 세계에서 도달했다는 영혼을 바라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당신··· 유천하 당신이 찾아야 합니다.”
유천하를 향해 천천히 말을 건네었다.
“······제가 회귀자를 말입니까?”
“예···! 시간의 흐름에서 당신만이 벗어나 있다는 건, 당신만이 회귀 이후의 시간선에서 이곳에 도달한 특이점이라는 소리입니다. 아직 회귀의 인과에 휩쓸리지 않은 존재. 그렇다면 당신에겐 분명 길이 있을 겁니다.”
아까보다 다소 멍해 보이는 표정으로, 유천하의 눈을 마주 보며 아크샤는 되뇌었다.
“원인이 있다면···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고, 인과는 그렇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인과가 비틀려있다면, 그것에도 이유가 있을 테지요. 당신이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제게 관측된 것에도 이유가 존재해야 합니다.”
“······.”
“그러한 인과가 만상세계의 뜻이라면··· 분명 당신의 존재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유천하의 손을 부여잡는 아크샤의 손.
“그러니 당신이 찾아야 합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기회가 몇 번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저희는 회귀자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대체 어떻게 말입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만상세계가 제게 속삭이고, 제게 이러한 능력을 주고, 이 능력이 저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인과입니다. 그것도 세계의 벽을 넘어설 만한 인과 말입니다!”
세계의 벽을 넘어설 만한 인과- 유천하는 갑작스러운 아크샤의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그 말이 강하게 박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천하 스스로도 저 자신이 환생한 것에, 그리고 이 세계에 오게 된 모든 것이 마냥 다 우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이제까진 더 중요한 일들이 계속 지나갔었기에 고민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얼떨떨하기는 했다.
“······방법은 둘째치고, 회귀자를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만상세계는?”
“그것 또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상세계는 제게 회귀자를 찾으라고만 이야기했고, 제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 그자가 이미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해왔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에 우선 찾아야 합니다. 그 목적이 멸망을 향해있는 건지, 아니면 구원을 향해 있는 건지.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아크샤는 그 말을 하며 자신의 손을 다시금 유천하의 손등으로 가져갔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찾아주십시오.”
그리고는.
“이 세계에 예비된 단 하나의 열쇠를.”
조금 전 유천하의 왼손에 새겨넣었던 업륜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댄 아크샤는, 그대로 그 업륜에 한정해서 시간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인과가 얽혀있기에 그로서도 많은 소모를 감수해야만 했지만, 아크샤의 손은 이 순간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였다.
그것은 저 자신에게 주어졌던 만상세계의 인과를, 온전히 벗겨내기 위해서였으니-
“저는 당신에게 희망을 걸어보겠습니다.”
-아크샤의 손이 훑고 지나간 순간, 유천하의 손등에 새겨졌던 업륜이 새롭게 우화하며 유천하의 마력과 천천히 연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세찬 마력을 그곳에서 토해내며,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그 색을 드러내며, 그렇게 아크샤의 기대는 그곳에서 빛을 뽐내었고 유천하는 그 광경에 잠시 멍하니 입을 다물었으니.
[업적의 각······ 오류가 발생합니다.]
[인과율의 특이점이 갱신되었습니다.]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는 업이 일륜을 이루었습니다.]
[업적 양도 – 업륜이 각인됩니다.]
그렇게 유천하는 아크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