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67화 (167/205)

인과조류 (2)

찰나의 찰나-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할 시간의 틈새에서 유천하의 검극은 순식간에 상대를 향해 그어졌다.

그것은 한순간의 판단이 발한 행동.

──────────────······.

어둠을 가로지르며 뻗어 나가는 검극.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인영.

하지만 그는 가만히 서 있는 상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멈춰선 상대의 코앞에까지 도달한 검을 바라보면서도 경계심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으니, 그 또한 분명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마치- 그가 승천자들과 마주했을 때처럼.

‘······달라.’

하지만 결코 그러한 느낌만은 아니었다.

유천하는 한없이 느려진 세계 속에서 빠른 속도로, 그러면서도 육감에 근거해 뻗어낸 검보다는 느리게 상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남자, 아니 그조차도 불분명한 한 사람은 검극이 피부에 닿는 순간까지도 그대로 멈춰 있었고, 제 행동을 바라보면서도 별다른 적의나 경계를 내비치진 않았다.

그리고- 적의 따윈 처음부터 없었을 뿐.

“······곤.”

하지만 상대의 정체를 모름에도 유천하가 먼저 검부터 뻗어낸 것엔 이유가 있었다.

전혀 모르는 이가 제 숙소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러면서도 직접 눈으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척을 못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도, 적의 하나 없는 평온한 태도임에도 인지한 순간 심상치 않은 존재감이 느껴졌다는 사실도, 그의 직감과 본능이 상대의 마력을 감지했다는 사실도.

그 모든 것이 이유였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만상의 눈에 관측되는 한 광경이었다.

“······라안······.”

무수하게 겹쳐져 있는 존재의 잔상- 눈앞에 있음에도 마치 안개가 낀 듯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상대의 모습은 그의 육안으론 그저 흐릿한 인상만이 엿보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만상의 눈은 그 너머를 꿰뚫었다.

흐릿한 안개 너머 자리한 인자한 중년의 모습을, 다시 그 너머에 자리한 미형의 청년을, 겹쳐진 앳된 소년의 모습을, 늙수그레한 노인의 모습을, 어린아이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흐릿함의 너머를.

그렇게- 순간 눈이 지끈거렸을 정도로 몰아친 압도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그는 상대의 본질, 왜곡 너머의 모습을 목격했다.

바로- 그곳에 존재하는 백색의 눈동자와 그 내면에 녹아 들어있는 불쾌한 이질감을.

흑백의 동공에 서로의 모습이 담겨온다.

그리고 그 순간.

“······.”

“······.”

퀴잉-! 허공에 새겨지는 검디검은 궤적.

유천하가 뻗어낸 칠흑의 검신은 눈 한번 깜빡하기도 전에 그대로 상대의 허상을 베고 지나갔으니, 그렇게 남자의 몸체는 백색의 장발을 흩날리며 한순간에 갈라져 버렸다.

그것은 유천하가 뒤늦게 상대를 인지하고, 상대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 뒤 겨우 1초가 채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한 반응이군요.”

스르륵- 칠흑의 검신이 베고 지나간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는 이내 갈라지는 듯싶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듯 그대로 말이다.

저건 도대체 무슨 현상일까- 순간 그런 생각이 빠르게 유천하의 뇌리를 스쳐 간다.

“다짜고짜 공격을 해올······.”

큉- 허나 상대의 입이 열린 순간 유천하는 다시금 검극을 뻗어냈다. 저자의 전력과 태도를 조금 더 파악해볼 필요성을 느꼈던 탓.

그러자 이번에도 상대는 뻗어지는 검을 바라보면서도 적의 한점 없는 표정으로 곤란하단 심경을 내비쳤으나, 유천하는 그저 아무런 흔들림 없이 한순간에 검을 그어냈다.

콰직-! 파열음과 함께 느껴지는 저항감.

이번에는 방어를 하려던 모양인지 검신이 무언가에 가로막히는듯했지만, 한순간에 마력의 흐름을 꿰뚫어 본 그는 그대로 그 마력의 취약점을 깨부수며 상대마저 베어냈고, 흑색의 검은 그 마력의 흐름을 갈라버렸다.

콰앙-! 극점에서 팽창하는 칠흑의 별빛.

마력의 결집을 흐트러트리는 기의 폭발.

하지만- 그 순간.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오는군요.”

유천하는 무언가의 변화를 체감했고, 이내 이질적인 감각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

텅 빈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는 검.

동시에 그의 뒤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오온에 접어든 사고가 빠르게 가속한다.

──────────────······.

남자를 향해 뻗어냈던 검은 빈 허공을 베어 가른 뒤였고, 분명 눈앞에 있었을 남자는 어느새 그 뒤편에 서 있는 중이었으니- 그러면서도 방어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언가의 전조조차 제대로 감지되지 않았던 상황에 유천하는 지금 일어난 상황을 되새겨보았다.

착시? 아니었다. 시각적인 문제는 없었다.

인지 왜곡도 아니다. 느낌이 전혀 달랐다.

공간이동인가 싶었지만, 전조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걸까.

유천하는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정을 하나씩 확인해보며 뒤로 돌아섰다.

그러자 시선을 마주쳐오는 흐릿한 인영.

“제가 무단침입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반응이 생각보다 더 즉각적입니다.”

“······.”

“방금 죽이려 하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여전히 수많은 잔상이 겹쳐져 있는 남자는 그 안개 속에서 새하얗게 물든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만상의 눈으로 상대의 본질을 들여보고 있는 그에게는 그 모습이 실로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저런 사람이, 저런 모습으로 찾아왔는데 어찌 반겨줄 수 있을까. 유천하의 기세가 차갑게 내려앉는다.

“그림자에 침식된 마력.”

“······음?”

“그것만으로 충분할 텐데.”

무척이나 또렷한 존재감을 내비치면서도 정작 겉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하게 여길 만큼 왜곡이 걸려 있는 사람이, 그 마력마저 잿빛에 물들어가는 상태로 찾아온다면 과연 그 누가 멀쩡히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 상대의 존재감이 저렇다면야, 당연히 경계하는 게 우선이었을 뿐이었다.

유천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점점 예리하게 기세를 가다듬었고, 상대의 움직임과 마력의 유동을 관측하며 조금 전의 일어난 상황을 통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건 좀 뜻밖이군요.”

하지만 그 말에도 남자는 그저 약간 놀랍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는 게 전부였으니, 유천하는 그 눈빛에 담겨있는 흥미를 인식하면서도 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관조해보았다.

내력의 상태는 5할. 피로도는 약간.

업륜은 하나만 회복되어있는 상황.

검제와 헤어진 이후로도 그는 침식 영역에서 계속 단초를 잡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돌아온 상황이었기에 만전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평소의 절반. 그러나 유천하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주인 없는 집에, 침식에 물들어가고 있는 자가, 정체를 숨긴 채로, 그것도 본체도 아닌 모습으로 찾아왔다면 어찌 대처해야 할까.”

“······.”

“목적과 정체를 명확히 밝히거라.”

만상의 눈으로 살펴본 침입자는 독특한 형상을 비춰질지언정, 그것마저도 본체는 아니었으니- 지금 그의 눈앞에 서있는건 그림자에 물들어가는 마력의 집합체였을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심상치 않은자라 한들, 경계를 할지언정 패를 논할 이유따윈 없었다.

유천하의 눈이 서늘한 빛을 머금는다.

“······.”

“······.”

하지만 그런 유천하의 기세와 태도에도 정체불명의 남자는 그저 무척 흥미롭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을 뿐. 물론 그건 육안으로 엿보이는 흐릿한 인상에서가 아닌, 그 장막 너머의 얼굴에서 지어진 표정이었다.

“이건······ 의외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생각대로라 해야할까요. 아니, 분명 맞긴 하지만······ 그렇다한들 이걸 들여다본다는 건.”

“셋.”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거실에 놓인 쇼파에 걸터 앉았으니, 유천하는 그 행동에 천천히 검 사이로 업륜을 흘려넣었다.

“생각보다 더 호전적이고, 행동이 앞서는 성격이라··· 무공을 익힌 분들은 다 이······.”

“둘.”

“둘? 갑자기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

“······.”

“지금 숫자는 왜 세고······ 아.”

───────────────!!!

그 순간 실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참격.

그 태연자약한 물음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유천하의 검극에서 뻗어 나온 칠흑의 반월은 그대로 한순간에 남자를 향해 쏘아졌다.

콰가가각-!! 순식간에 펼쳐진 마력의 방벽이 그대로 유천하의 강기를 막으며 막대한 파란을 자아냈지만, 그가 쏘아낸 참격은 제 숙소의 벽을 절단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공간 채 남자가 있던 곳을 베어냈다.

거실에 놓여 있던 소파까지 한순간에 박살이 나며 실내에 검은 실선을 새겨놓았고, 그 광경을 자아낸 유천하는 업륜을 틀어냈다.

바로- 참격을 최대한 결집시키기 위해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결집체.’

‘이어지는 선을 끊어도 회복.’

‘재생, 복원, 회복, 재생성···?’

‘아니야. 전부 달라.’

상대의 이능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으로 이루어진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의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검격에 베여나가도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래대로 되돌아갔을 뿐.

그렇기에 그는 우선 끊어낸 마력의 흐름이 다시 이어지지 않게 방해할 생각이었다.

비록 무형지기의 세계에 발을 들이진 못하였으나, 암야와 검제와의 일을 통해 한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탄검강과 업륜의 활용을 한번 더 비틀어보는 것.

키긱- 공간에 검은 선이 그대로 고정된다.

육신을 떠난 기운임에도 불구하고 업륜을 기반으로 쏘아낸 검강은 그렇게 유천하의 의지를 따라 그 자리에서 멈춰 섰고, 그와 동시에 그 예기를 그곳에 그대로 새겨놓았다.

물론- 아무리 업륜이라한들 오래 붙잡아두기는 힘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군요.”

콰과과과과과-!! 무언가 마력으로 저항하려던 남자는 계속 결집을 방해하는 칠흑의 별빛에 흐름이 흐트러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이내 남자는 씁쓸한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유천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록 그 자신이 하고 있는 일때문에 이런 상태로 찾아왔다 한들- 그 내부를 간파해내고 바로 행동에 들어간 판단력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제대로 대화조차 해보지 않고 마인이라 판단한 즉시 내비치는 망설임 없는 결단에 유천하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로서는 이래선 곤란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러므로 남자는 이내 특성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심연을 억누르고 있어야 하는 만큼 어지간해서는 사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런 분신체로는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기도 전에 격퇴당할 것 같았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그 순간.

“이 상황에선 조금 곤란한 성격입니다.”

키잉- 남자의 입이 열리며 무언가가 일변했고, 유천하는 순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기량은 듣던 대로 뛰어나지만, 판단이 너무 빠릅니다. 제대로 마력을 숨기지 않은 제 탓도 있지만······ 대화를 좀 나누고 싶군요.”

“······.”

“이렇게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분명 그 자신의 손으로 박살 냈을 실내의 공간이 모두 원래대로 되돌아가 있었고, 동 시에 조금 전 소모했을 업륜의 마력까지 전부 원래대로 회복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단 한순간에, 모든 게 변화했다.

평온한 기색으로 되돌아온 남자의 모습.

평상시처럼 멀쩡해 보이는 방안의 풍경.

그리고 회복된 업륜과 내력의 상태까지.

“······.”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설에 유천하의 눈이 더 깊게 가라앉았고, 빛마저 흡수할 듯한 검디검은 눈동자는 그대로 서늘한 기운을 머금고선 말없이 남자를 응시하였다.

인지의 왜곡도, 감각의 왜곡도 아니라면.

단순한 공간의 변화나 회복이 아니라면.

잠깐의 침묵 사이로 유천하의 머릿속엔 수많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지만, 그의 감각과 만상의 눈. 그리고 경계하고 있었던 의식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설마 지금 시간을 조작한 건가?”

“예. 미시적인 시공을 되돌렸습니다.”

실내의 대기가 한순간 크게 출렁거렸다.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리 대답하며 다시 아까처럼 소파에 걸터앉았지만, 그런 남자의 행동을 바라보면서도 유천하는 아까 전처럼 무작정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보기 위해 빠르게 사고를 회전시키며 멈춰 있었을 뿐.

정말 남자의 말처럼 인지 조작도, 단순한 수복도 아닌- 시간 조작이라는 말도 안 되는 권능이라면 눈앞의 상대는 유천하로서도 달리 접근을 해야만 하는 상대였고, 앞서 일어났던 상황에 저항할 방법이 없었던 만큼 생각해봐야 할 구석이 꽤나 많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제야 제 얘기를 들으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아까의 권유를 따르도록 하지요.”

“······.”

“목적과 정체, 우선은 정체가 좋겠군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따로 있었으니- 이 세계에서 시간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는 존재라면, 원작을 읽었던 유천하의 기준에서도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반갑습니다. 등천자 유천하.”

유천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고, 그에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리 대답했다.

“아크샤. 그것이 저의 이름입니다.”

그것도 이 세계의 모두가 알고 있을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칭호와 지위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듯이, 그렇게.

남자- 아크샤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1세대 승천자이자 백 년을 살아온 초인.

그 누구보다 그림자를 종식시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앞서 활동하고 있는 공략자이며, 공략자들을 공략자라 불리게 하고, 다시 등천의 구도자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

이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가장 찬란하면서도, 오래된 불빛.

성신星神 아크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것 같군요.”

“······.”

“이제 대화를 좀 나눠봐도 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지금 유천하의 눈앞에 앉아있는 이를 칭하는 말이었으니, 그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말없이 아크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쉽게 입이 열리지는 않았다.

승천자 아크샤는 원작에서도 몇 번 등장하지 않았던, 그러면서도 이름은 끊임없이 언급되었던 이였기에 유천하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유천하는 여러 가능성을 되짚어보았다.

대체 이 신비로운 인물이 왜 저를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그것도 왜 이런 방식으로 말도 없이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자신이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나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분명 처음 봤을 때는 침식에 거의 사로잡혀있던 아크샤의 본질이, 어떻게 다시 한순간에 깨끗한 상태로 되돌아왔을까에 대해서.

“······의아한 점이 많지만, 우선 이것부터 묻겠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어떻게···?”

이 순간- 유천하는 이 세계에 와서 배웠던 상식이 박살 나는 것을 느꼈고, 만상의 눈의 관점과 인지를 돌리며 바라보아도 여전히 똑같이 엿보이는 풍경에 그리 되물어보았다.

애초에 그가 아크샤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검을 내질렀던 건, 그 광경에 순간적으로 상대가 마인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라··· 시간을 되돌린 것 말인가요?”

“······그것도 그거지만, 당신의 마력. 분명 처음에는 그림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크샤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뒤 그것을 증명해보겠다며 순식간에 그림자에 뒤덮여가던 마력을 되돌렸고, 그와 동시에 제 손에 박혀있는 10획의 업륜을 드러내 보았다.

그러니 어찌 저걸 의심할 수 있겠는가?

시간을 조작하고, 일개 개인으로서 10획의 업륜을 소지한 이는 오로지 그- 아크샤밖에 없을 테니, 한순간에 뒤바뀐 마력의 기질과 드러낸 업륜을 확인한 이상 유천하로서도 상대의 정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 과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 질문이군요.”

“······.”

“하지만 들켜버린 이상 해야겠지요.”

아크샤는 그가 건넸던 물음에 약간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리 대답했다.

“우선, 저는 최초의 심연을 억누르기 위해 항상 심연지대에 머무르는 편입니다. 가장 최근에 나갔던 건 대략 4년 전이군요. 비록 지금은 기동을 멈춘 상태이지만, ‘만약’이 초래할 리스크가 크기에 그리하고 있습니다.”

“······심연을 말입니까?”

“예. 매번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력이 점점 침식에 물들 수밖에 없더군요. 물론··· 타천을 한 건 아니기에 대체 그걸 어떻게 그리 바로 간파해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 말에 유천하는 한 부분을 짚어보았다.

“침식에 물들어가던 이유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되돌린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 간단한 게 아닐 텐데요.”

“예. 승천자라 한들 쉽진 않은 일이지요.”

애초에 유천하로서도 마력이 침식에 물들 수 있다는 것 정돈 이전에 나르화리얀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일로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때의 나르화리얀은 마력이 곪아버렸다며 휴식을 취하러 본부에 돌아온 상태라 말했고, 그 순간 만상의 눈으로 지켜본 나르화리얀의 마력 속에는 불쾌한 잿빛의 이질감이 찐득하게 스며들어 간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유천하 자신이 보자마자 검을 뻗어냈을 정도로 아크샤의 상태는 심각했으니- 사실상 이미 타천한 마인과 별다른 바 없는, 그 정도 수준으로 그림자에 물든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유천하로서도 아까는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린 지금에 와서도 그 부분에 최소한의 긴장과 의문을 놓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허나- 아크샤는 그에 담담히 대답했다.

“그래서 방금,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

그것도 무척이나 간단하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아크샤의 목소리는 그렇게 흘러나왔을지언정, 그는 상반되는 말을 더 덧붙였다.

“물론, 그건 인과의 소모도가 너무 심하기에 저로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나마 저 하나에 국한된 일이면 비교적 소모가 덜하긴 하지만··· 간단하진 않습니다.”

“······.”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당신의 신뢰를 얻기 위해 조금 빨리 되돌려버렸군요. 사실 내부의 침식 정돈 다른 이에게 들킬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당신의 눈은 듣던 것보다 뛰어난 모양입니다.”

그 말과 함께 아크샤는 씁쓸함 속에서도 약간은 흥미가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에 유천하 또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아크샤로서는 설마 유천하가 제 형상에 둘러놓은 왜곡마저 모조리 뚫어내고서, 저 자신의 본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까진 알 수 없었겠지만, 이 순간 유천하는 그가 말하면서 보인 표정의 변화와 마력의 유동을 계속해서 관찰해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말도 안 되지만······ 사실이군.’

아크샤의 본질 구석구석까지 살펴본 후, 그리고 그 손등에 새겨져 있는 업륜과 이야기를 하면서 변화하는 아크샤의 눈동자와 표정까지 살펴본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번, 아니 수없이 타천에 가까워지면서도 한순간에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 동시에 너무나도 쉽게 흘러나온 그 말- 시간을 되돌린다는 아크샤의 대답에 조금이지만 아연해진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천하는 다시 의아해졌다.

“우선 그 부분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른 걸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검을 휘두르는 것만 아니라면요.”

“······대체 당신 같은 분이 왜 그런 모습으로 저를 찾아온 건지, 무슨 목적이길래 이렇게 은밀히 행동한 것인지를 묻고자 합니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말을 저리 간단하게 하면서도, 실제로 그걸 본체도 아닌 허상을 통해 행하는 수준의 능력자이면서도- 도대체 그런 인물이 왜 자신을 찾아왔다는 걸까.

바로 그 부분이 꽤나 의아했던 탓이었다.

지금도 그의 본체가 심연지대에 위치해 있다면, 아무리 아크샤라한들 이렇게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장소에 정신체를 보내놓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였으니 말이다.

유천하는 그 부분이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그리 질문했고,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크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목적이라··· 예. 이젠 그걸 말해야겠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찾아와야 할 정도로, 당신에게 물어봐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보다 무척이나 진지해진 목소리로 그 말을 덧붙였고, 그와 동시에 무척이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유천하를 응시했다.

물론- 유천하로서는 더 의아해졌을 따름.

“중요한··· 질문 말입니까?”

“예. 무척이나, 중요하지요.”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물어보러 왔다는 말인가? 물론 근래 저의 행동이 여러 곳에서 주목 받고 있다는 점은 유천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건 단순히 회랑에서 생활할 때만이 아닌, 등천의 구도자에서도, 천중무련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했다.

설마하니 저러한 수준의 사람이 겨우 승천제의 일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의 활약이 인상 깊었다고 찾아오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우선 묻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은 이 순간 유천하의 표정 위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중이었으니, 아크샤는 그걸 보고서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왔다.

하지만- 그 순간 그에게서 흘러나온 말.

“유천하. 당신은 회귀자입니까?”

그 말은 유천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니, 그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에 순간적으로 멍하니 얼어붙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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