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곡유아 (2)
근원적인 목적이라- 나는 검제가 한 말을 곱씹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보았다.
물론 저 말을 한 번 들었다고 그 심상이 갑자기 명확해지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건 어떻게 보면 7성에 도달한 이후부터 나 스스로도 계속 고민해오던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나’에 대해 고민하고, 다시 많은 것을 비워냄으로써 유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고민한 점은 비워냈던 것을, 그러니까 ‘나’를 어떻게 새롭게 채워가느냐에 대한 부분이었으니. 결국 그건 내게 이 세계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난 소교주 유천하였되, 지금은 아니었다.
난 무림의 유천하였되, 지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스스로를 무인이 아니라 여긴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내가 검을 들고 서 있는 이곳 또한 나의 무림이었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게 아니라, 평온과 호의 속에 둘려 쌓여있을지언정. 암습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상일지언정. 마법이, 이능이 펼쳐지는, 그런 복잡하고도 낯선 세상일지언정.
나는 여전히 검을 들고 서 있었다.
“······.”
그렇다면 내 검의 의미는 무엇일까.
검제는 제 검의劍意를 ‘베기’라 하였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제껏 무언가를 베기 위해 검을 휘둘러왔다. 내 검은 나의 적을, 신교의 위험을, 불화의 싹을 베어내기 위한 무기였고, 나는 그것으로 나 자신의 미혹마저도 떨쳐왔다.
무림에 환생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던 내가, 온전히 소교주 유천하가 되기까지 나는 검을 휘둘렀고, 그 궤적을 올곧게 그려냄으로써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내게 검은 베어내기 위한 무기였고,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나아갈 길이었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만들어낸 축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게 검은 그저 검이었을 뿐.
“······.”
의미를 찾아보자면 떠오르는 것이 많았고, 많았기에 다시 모두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분명 검劍이란 개념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는 검을 휘두름에 있어서 그런 걸 추구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생각해볼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
고뇌 속에 머리가 지끈거리니 저도 모르게 3월의 기억이 떠올랐고, 동시에 그때 이후로 머리가 복잡할 때 마다 이따금 생각나는 알사탕의 단맛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음? 뭔가 고민해보는 것 같아 놔뒀더니만 뭔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느냐?”
그러자 가만히 내 침묵을 지켜보고 있던 검제가 왜 뜬금없이 혼자 웃냐는 듯 이상한 놈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전해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쯧. 이상한 녀석 같으니.”
마음이란 정말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두 번의 세계를 지나쳐 다시 접했던 초콜릿의 텁텁함은 내게 번민을 되새겨주었고, 그 속에서 한 어린아이에게 건네받은 사탕은 이렇듯 내게도 강렬한 화인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번민의 끝에 나는 위타극을 베어내고 유식에 올라었으니, 어찌 보면 그 호의가 위타극이란 마인을 베어낸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심검이지 않을까.
저 옛날 시조께서 무림에 나선 것도 결국 길가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한명의 아이때문이라 하였으니, 그 결과 무림은 사람의 업이 하늘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것 또한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마음이 결국 하늘을 베어낸 것일지도 몰랐다.
하니- 내 검에 의미를 찾기 위해선, 결국 나는 그러한 마음에 대해 조금 더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내가 어째서 이러한 검을 들어 올리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다는 게 영 쉽지가 않군요. 참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처음의 고민으로 되돌아온 생각을 잠시 구석에 밀어두고선 검제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검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리며 내게 대꾸했다.
“그럼 그게 쉬운 줄 알았느냐? 그랬으면 이미 개나 소나 다 초절정에 이르렀을 터.”
하지만 검제는 그러면서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듯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니 너 또한 너무 급하게 떠올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 쉽지 않은 길이기에 억지로 찾아 헤매기보다는, 어느 순간 너의 밑바닥에서 너 자신이 직접 깨닫게 될 터이니.”
“그 순간이 늦게 찾아온다면 어찌합니까?”
“허. 늦어봤자 얼마나 늦게 온다고 그러냐? 네 나이를 생각해봐라 이 맹랑한 녀석아.”
검제는 재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17살짜리 애송이 주제에 벽을 넘어서려 하고 있으나, 원래대로라면 네가 살아온 인생만큼 배는 더 살아왔더라도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 세상엔 수두룩하다.”
“······.”
“앞으로 네가 지내온 인생의 두 배는 더 헤매어, 오십 줄이 넘어 그곳에 도달한다 해도 나보단 젊을 터인데 뭘 그리 조급해하느냐?”
“아니··· 그건 조금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에 검제의 손이 순간 까닥거렸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의념을 가볍게 피해냈다.
“하여튼 재수 없는 녀석 같으니··· 쯧. 말했듯이 너는 다른 건 모두 충족시키고 있으니 결국 그것만 깨달으면 심득에 도달할 터. 애초에 내가 보기엔 네 무문은 그 지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니 오래 걸리진 않을 게다.”
“······그렇습니까?”
“물론 쉬이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허나 네 걱정만큼 오래 헤맬 것 같진 않구나. 네 성격을 보아하니 그때까지 가만히 있을 리는 없고, 무모함을 생각하면 한계에도 쉽게 도달하게 될 터. 만약 거기까지 가놓고 벽 앞에서 그리 오랫동안 헤맬 거였으면······.”
처음부터 거기에 도달하진 못했을 테니까.
나는 검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담담한 말을 들으며 잠시 고민해보았고, 이내 수긍했다.
비록 문제가 있다면 해결되기를 기다리기보단 직접 마주하는 것을 선호하기에 저리 말하였으나, 나 또한 이 물음의 해답을 찾기까지 그리 오래 걸릴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그의 말처럼 분명 지반은 마련되어 있으니.
천마신공은 깨달음의 무학.
나의 번뇌와 고민은 모두 심상의 매듭이 되어 내게 힘을 실어주었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무너트린 마음의 절학은 언제나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해주었다.
생멸 변화의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니 오온이고, 그러한 마음을 되새겨 바라보고자 하는 것을 찾아 헤매는 게 유식이니 나의 번민이 해소된다면 다시 나는 나아가게 될 터.
그런 만큼 내가 해야 할 것은 그저 끊임없이 고뇌하고 번민해, 그 끝에 찾아올 돈오를 마주하기 위해 그릇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내가 아무리 늙었어도 죽으려면 한참은 남았으니, 30년 안에만 심검의 세계에 도달해 보거라. 그때까진 그것을 보기 위해 기다려줄 터이니.”
“그리 오래 걸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쉬웠으면 내가 너 같은 어린애에게 이렇게 애걸복걸 하고 있겠느냐? 쯧쯧.”
나는 그저 내 다짐을 말했을 뿐인데 검제는 다시 한 번 재수없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저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시간은 단 3년이었고, 그 이후의 나는 무림에 돌아가 있든지, 아니면 세계침식이 시작된 세계에서 심연에 맞서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초절정에 이르고 나서라면 나도 심연이 시작되기 전에 이하린에게 돌아갈 방법을 듣기 위해 조금 더 신경을 기울이겠지만, 그건 분명 조심스레 접근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하니 30년이란 세월은 단순한 기분의 영역을 떠나서도 곤란한 이야기였을 뿐.
타인에게 선뜻 가르침을 내려주고 있는 검제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며, 다시 허리춤에 메인 검이 이따금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기에 이것도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 심검에 도달한다면야 많은 것이 해결될 테니 말이다.
그게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둘째치고서라도 일단 목표로 할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도달해보겠습니다. 급해 보인다 하셔도 이제껏 지나온 길이 그러했으니, 제게는 이게 맞는 속도 같습니다.”
“······거참 당돌한 녀석 같으니라고.”
내 대답에 검제는 또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코웃음을 흘려냈지만, 그래도 눈빛을 보아하니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니, 항상 급하다 급하다 말하면서도 검제는 은근히 내 이런 태도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 확실히 그도 느긋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쯧쯧. 그래. 그리 급하게 가다 죽어봐야 정신을 차릴 터. 허나 그래서야 네게 소모한 시간만 아까워질 테니 조금 더 투자해주마.”
“······?”
“아직 네 검결에 대해선 이야기를 안 하지 않았더냐? 그것만 파헤쳐보고 나도 이제는 슬슬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봐야겠다.”
여러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검제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흘러나왔다.
***
한 번쯤은 물어오리라 생각하긴 했다.
“검의를 찾고자 한다면 우선 네 뿌리가 자라온 과정을 생각해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
“제 검결의 뿌리에 대해서 말입니까?”
“이미 심공과 무학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얼추 들었으니, 이번엔 그 경계가 뒤섞인 이상한 검결에 대해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지난 며칠간 검제는 내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 내가 익힌 심공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문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도, 내 전반적인 경지의 성취에 대해서도 확인했었다.
물론 천마신공이니, 오온이니 하는 것들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기반이 되는 불가의 가르침이나 심공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 정도는 이야기했으니- 검의를 논하고자 하면 당연히 검에 관해서 이야기해야겠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만큼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애초에 승천자가 이렇게 공략 활동마저 멈춘 채 특정한 개인에게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게 흔했다면 지난달에 마주했던 루타텔과 아리엘이 괜히 그렇게 서로 어색해했을 리 없었을 터.
다만- 설명을 해주려니 난감하긴 했다.
“···첫날 말씀하셨듯, 제가 익힌 검결은 일반적인 형식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다 이 녀석아. 검의 기본적인 흐름부터가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단순히 초식의 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초식이란 경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거이지 않더냐?”
“예. 정확합니다.”
검제도 어느 정도 내가 익힌 검- 일천검결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사실 그렇기에 더욱 할 말이 없다고 해야 할까.
나는 검결의 핵심을 되새기며 덧붙였다.
“우선, 먼저 말씀드리자면 제가 익힌 검공의 이름은 일천검결一天劍結이라 합니다.”
“일천이라···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는가?”
“예. 일 검의 시작에 천 갈래의 형을 담아내, 다시 일 검으로 하늘에 닿고자 합니다.”
“참··· 들을수록 오만한 무문이로다.”
검제가 질린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허나 시작부터 그만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으니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광오하나 실로 어울리는 이름이니. 하늘조차 못 베는 몸이 함부로 말하기는 힘들겠구나.”
“······.”
“그 이름에 비해 행보가 아쉽긴 하지만.”
나는 검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불만 아닌 불만을 무시하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 됐든, 하여 이것은 사실 특정한 묘리나, 깨달음을 전제로 한 무공은 아닙니다.”
“······음?”
“초식을 쪼개 무로 접어들고, 다시 무너진 경계 속에서 무결의 극의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 일천검결이 추구하는 바인 만큼 사실 이건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게 전부입니다.”
말 그대로 일천검결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저게 전부인 무공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형화된 무공이라 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냥은 이걸 이해하기 힘들겠지.
그래서 검제는 내 설명에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고,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하더니 내게 한가지 질문을 건네왔다.
“그러면 너는 검을 어떻게 익혔느냐?”
“말했듯이 그저 계속 휘둘렀습니다.”
물론- 내 대답은 그저 간결했을 뿐.
“······.”
“······.”
검제는 내가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거짓을 말한 게 아니었던 만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눈을 마주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내가 이 검- 일천검결을 익혀온 과정이 그러했었기 때문이었다.
“······특정한 묘리도, 깨달음이 필요하지도 않고, 그저 휘두르기만 해서 만검의 씨앗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영 믿기지 않는구나.”
“물론 어느 정도 절차가 있긴 했습니다.”
“하면 그 절차가 무엇인지 말해 보거라.”
원래대로라면 이건 굉장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둘의 관계가 그러하고, 또 일천검결의 본질이 본질인 만큼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에게 답을 돌려주었다.
“우선··· 제가 처음 검을 잡았던 게 3살이었습니다. 물론 작은 목검에 불과했지요.”
“허. 참 일찍도 잡았구나. 도대체 무슨 3살 때 검을 휘두를 수가 있다고 그때부터······.”
“처음은 검에 익숙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간 저는 몸에서 검을 떼놓지 않고 생활하는 법부터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검이 참 무거웠고 걸리적거렸지만 항시 그것을 소지해야 했습니다.”
“······음?”
검제가 제 두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그렇게 검의 무게와 형상에 익숙해지고, 5살이 되던 해부터 저는 본격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특별한 초식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베기, 다음에는 찌르기, 그리고 올려치기 등등. 그저 기본적인 휘두름을 매일 같이 반복했습니다.”
“······.”
“처음에는 궤적이 무척이나 흐트러졌지만 그걸 계속 반복하니 어느 순간부터 올곧게 그어지던 순간이 오더군요. 그럼 그땐 다른 검형으로 바꿔서 휘두름을 반복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휘둘러도 궤적이 흐트러지지 않게 될 때까지가 다시 3년 정도 걸렸습니다.”
“······.”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며 잠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되새겨보았다.
새로운 삶이 주어진 것도 당황스러웠고, 그 삶이 무림에서 시작되었단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확실히 그 무엇보다 내가 그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의 작은 시야로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을 만큼 신교 내에는 하나같이 다 기이한 분위기를 지닌 자들만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 또한 제대로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전에 검을 받고, 이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상에 적응하는 나날이 시작되었을 따름.
내 검의 시작은 분명 그곳에서부터였다.
“그렇게 8살이 된 이후부터는 진검을 받아 휘둘렀고, 제 성장에 맞게 검의 크기도 계속 새롭게 바뀌었기에 다시 궤적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시 2년을 그리 반복했습니다.”
“······.”
“아, 그때부터 심공 또한 같이 배우기 시작했으니, 내공의 수련도 그때 시작됐습니다.”
검제의 표정이 굉장히 오묘하게 바뀌고 있는 게 엿보이긴 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그저 담담히 계속 말을 덧붙여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10살이 되던 해. 그제야 스승님께선 제게 검을 가르쳐주시더군요.”
“······그, 어떤 검을 말이더냐?”
“이것 또한 초식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검으로 펼쳐낼 수 있는 묘리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검의 움직임이 빠름을 추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검에 무거움이 담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검을 변화시키고, 예기를 집중시킬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허리춤의 검을 뽑아내었고, 그대로 허공을 향해 퀴잉- 그어내었다.
“쾌快, 패覇, 강强, 유流, 환渙, 변變, 둔鈍, 중重, 흡吸, 곡曲, 충衝, 탄彈, 경輕.”
입으로는 각각의 묘를 설명하면서도 나는 순서대로 한가지 자세에서 계속해서 검형을 변화시켜보았다. 그 속도도, 위력도, 움직임도 다 달랐을지언정 자세는 똑같이 말이다.
큉-! 퀴잉-!! 훙-!! 후웅-! 쉭-! 슥-!
그러자 허공에선 끊임없이 각기 다른 파공성이 울려 퍼졌지만, 나는 그렇게 검을 펼쳐내면서도 검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검으로 펼쳐낼 수 있는 모든 묘를 배우고, 다시 몸에 체득시키기까지 4년이 걸렸습니다. 그러자 절정에 도달하더군요.”
“······이 미친.”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이 가장 편했습니다. 눈이 좋다 보니 몇 번만 봐도 움직임을 알아내는 것이 쉬웠고, 이전에 5년 동안 반복했던 일련의 경험이 생각보다 검형을 펼쳐내는 데 유익하게 작용했습니다. 어떤 자세에서 펼쳐도 검형이 흐트러지지 않더군요.”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당연히 차근차근 소교주로서의 역할도 같이 배워나갔다.
교의 세력에 대해서 배우고, 교의 역사에 대해 깨우치고, 교가 추구하는 방향성. 그곳에서 천마라는 이름이 갖는 역할. 그렇기에 내가 짊어져야 할 의무 등. 나는 하루의 반 이상을 검을 휘둘렀으면, 남은 시간은 모두 소교주 유천하가 되기 위해 사용했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의 암행이 있었고, 흔들리는 검 속에서 나는 갈라진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미혹을 벗어 결국 벽을 넘어섰다.
“그렇게 14살에 절정에 도달하고 나서는 실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스승님과 시간이 날 때마다 검을 나눴고, 비무를 하였습니다. 동시에··· 마수도 조금씩 잡아보기도 했지요.”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14살이 되던 해- 그때의 내게 아버지는 암영비천대를 맡겼다.
규율을 어긴 마인들을 사냥해보라면서.
그리고 14살짜리 소년이 저들의 상관이랍시고 찾아온 걸 못마땅해 하던 대원들의 기강을 다지기 위해 나는 녀석들과 비무를 겨뤘고, 대부분은 일류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경지에 절정의 고수들마저 섞여 있었을지언정 나는 녀석들을 모두 꺾을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엔 비무라서 죽을 일이 없었다는 점도, 소교주라는 부담스러운 상대로 녀석들도 어느 정도 조심했다는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내게는 녀석들이 펼치는 움직임을 파악할 눈과 그것을 파훼할 기예가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들과 처음으로 제대로 싸워보면서 내 검이 다른 이들에 비해 자유롭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 하나의 자세에서 무수한 변화를 펼쳐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16살이 될 때까지 실전을 겪으면서 저는 제가 펼칠 수 있는 자세와 형. 그리고 묘리를 조합하여 제 기질에 가장 효율적인 것을 묶어 따로 식을 사용하듯 펼쳤습니다. 그제야 검결을 쓴다 칭한 것 같습니다.”
“······식을?”
“예. 모든 자세에서, 모든 검을 펼쳐낼 수 있어도 육신이 존재하는 이상, 가장 효과적으로 펼쳐지는 형은 따로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마검형이었다.
7성에 도달하고부터는 다시 내가 펼쳐낼 수 있는 최적의 식이 바뀌고 있기에 근래에 들어서는 사용 빈도가 다소 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확실한 일격을 뻗어내고 싶을때는 아직도 꽤 사용하는 중이었다.
쾌를 중점으로한 섬혼마검이라든가.
패와 쾌를 반쯤 섞어낸 파천이라든가.
물론 검결의 최종적인 도달점은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었지만, 아직 온전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내게는 다시 유초승무초有招勝無招가 더 효율적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꽤나 자주 찾아오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처음부터 식을 없앤 상태로, 식이 아닌 묘를 배워왔기에 일천검결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추구하는 바도, 이것의 핵심을 관통하는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허면 너는 그 과정을 거쳐서 그, 일천검결이라 칭할 만큼 검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걸 또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펼쳐내고 있다는 말이로구나. 검의 변화를 담아내면서?”
“예.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이걸론 부족했던 걸까- 나는 조금씩 이상하게 변해가는 검제의 표정을 바라보며 잠시 그런 생각을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반대로 검제의 표정은 이내 굉장히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 마냥 굳어지더니, 이내 무언가 고민이 되는듯 인상을 잔뜩 찡그렸고, 그리고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왔다.
“우선······.”
그것도 다소 뜬금없는 소리를 말이다.
“······일단 네가 아동 학대를 당해왔다는 건 알겠다만, 정녕 그것만으로 익혀지더냐?”
“······? 예. 되더군요. 선대들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익혀왔다고 들었습니다.”
아동 학대라는 말이 실로 어울리면서도 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고, 그러자 검제는 이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이 재수없는 무문 같으니.”
그것도 다소 허탈한듯한 목소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