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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155화 (155/205)

천중무련 (2)

거인巨人-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체격은 평범했다. 조금 왜소하다 봐도 얼추 맞는다는 느낌. 허나 노년에 가까워 보이는 저 중년의 남성이 내게는 마치 거인처럼 느껴졌다.

아니, 내 눈앞에 서 있는 건 검이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두들겨 단조 된 하나의 검. 볼품 있는 모양새는 아닐지언정, 그 속에 응축된 예기는 분명 날카로웠다.

그 속에 잠재된 내력의 양은 적을지언정.

그 기세 또한 부드럽게 풀어졌을지언정.

나는 그 예기의 간극을 느낄 수 있었다.

----------------------------------------------······

한순간에 극한까지 달아오르는 감각.

이곳은 상대의 영역 내. 저자가 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고 한들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순간이었고, 저 정도 수준의 검객이라면 단 한 순간에 내게 공세를 뻗어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온에 접어든 육신은 자연스럽게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며 나의 영역을 만들어냈고, 극한까지 느려진 세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최소 열 합을 막아낼 수 있다고 판단된 순간에야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초절정 고수. 검객······ 검제劍帝!’

물론 딱히 검제의 생김새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선 내에서, 그리고 상식적인 영역 내에서 검을 사용하면서 저 정도 수준의 고수라면 검제 단 한 명뿐.

그렇다는 말은 즉.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네 번째의 초절정 고수를 마주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허···? 이놈 봐라?”

이건 내게 있어서만큼은 단순히 나르화리얀이나 루타텔 같은 초인과 마주했을 때와는 명백히 다르게 다가오는 순간이었고, 내 경험과 감각은 상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검제가 흥미가 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한쪽 입가를 비틀면서 손을 까닥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설마 간극을 가늠하고 있는 게냐?”

나는 한순간에 확장되는 검제의 간극에서 틈을 만들어내기 위해 위치를 조정했고, 탁- 그대로 한 발짝 옆으로 빗겨 섬으로서 다시금 열 합의 간격을 계속 지켜낼 수 있었다.

상대방의 위치, 손의 움직임, 근육의 이완 상태, 시선의 방향. 그 모든 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면서 상대가 어떠한 수를 쓰든 대응할 수 있도록 육신의 감각을 짜 올렸고, 그러면서도 검제와 똑바로 마주하였다.

그 순간- 잠시 방 안에 내려앉는 침묵.

“······.”

“······.”

서로 은밀하게 부딪히는 의념의 파장.

그 사이에서 무형의 경계가 맞물린다.

남궁설아는 갑작스러운 검제의 난입에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지만, 뭐라 말하려다가도 검제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는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내 시야와 기감은 이미 응접실 내부를 온전히 손안에 들여놓은 상태였기에 나는 검제를 바라보면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지금 이곳으로 다른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말이다.

“백리 원로님! 갑자기 사라지시면······!”

검제를 찾아 방안으로 들어온 한 사람.

아마도 검제를 따라온 듯했는데 그 장년의 남자도 이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한순간에 표정이 뒤바뀌었고, 방 내부의 분위기를 느끼고선 남궁설아와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었다.

“······.”

“······.”

무거운 적막이 응접실 내부를 짓누른다.

허나 그 순간에도 나는 검제가 쏘아내는 기세를 파훼하며 서로 가상의 합을 주고받는 중이었고, 마치 내 역량을 시험해보겠다는 듯 은밀하게 쏘아지는 검제의 의념을 틀어내며 나는 상대의 역량을 이해하게 되었다.

기예의 영역에서는 무척이나 평범했다.

의념의 활용 또한 기본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키긱-!

그 기본적인 의념의 맞부딪힘에서조차 상대는 검제의 칭호가 결코 허명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고, 비록 투박하고 단순한 기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수많은 세월과 노력 끝에 쌓인 하나의 일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재능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쌓아 올린 업.

그야말로 무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직-!

마침내 미처 제대로 흐트러트리지 못한 의념이 허공에서 터져 나왔고, 무형의 세계에서 맞부딪히던 기세는 그대로 그 여파를 사방을 향해 퍼트리면서 주변을 뒤흔들었다.

“······!”

“······!”

드드드-! 일순간 흔들리는 주변의 가구들.

창문조차 없는 실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불어닥친 바람에 주변의 사물은 물론이거니와 말없이 상황을 관망하던 남궁설아와 장년의 남성 또한 순간 몸을 움찔하였으니- 그제야 검제는 다시 내게 말을 건네왔다.

“몇 합이더냐.”

“열 합입니다.”

검제의 눈가가 미약하게 꿈틀거린다.

“실로 오만하구나.”

“허나 가능합니다.”

“그게 오만한게다.”

“허나 사실이지요.”

쿠구구구-!!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날카로운 기세가 허공에서 맞부딪히고 사방에 기파를 쏟아냈다. 서로의 사이에서 일그러지는 대기가 신음을 내질렀고, 비록 살의는 뒤섞이지 않았을지언정 기세가 맹렬했던 탓인지 지켜보던 이들이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나는 기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비록 상대는 다를지언정 나는 지금 초절정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와 마주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검을 뽑아 휘둘러보고 싶은 심경이었음에도 간신히 참아 억누르고 있었으니, 나는 그저 조금 더 저 벽 너머의 세계와 간극을 가늠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과연 지금의 내 실력으로 생사결을 치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 희망적인 전망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언가의 가능성 정도는 분명 엿보였다.

이전의 나였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아버지가 쓰러지셨던 그 날- 검혈마제도 처음에는 나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상대로 여겼기에 여유를 부렸다. 교의 중진들을 회유하고, 협박하고, 휘어잡으며 종파의 분열을 강행시키면서도 나를 내버려 두었다.

허나 그 2년의 시간 동안 내가 저와의 간극을 다섯 합으로 늘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놈은 명분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죽이러 왔고, 이 순간- 나는 열 합을 손에 넣었다.

한 합을 버티는 데에서 다섯 합까지 2년.

그리고 다시- 열 합이 될 때까지가 4개월.

하지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대략 3년.

‘가능해. 충분히.’

살벌한 기파가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나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한번 검을 교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열 합의 간격을 더 늘리고 싶었기에, 실제로 그걸 시험해보고 싶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생각을 떠올린 순간.

“······.”

“······.”

바로 그 순간.

“큭··· 흐하하하!!”

검제의 입에서 웃음이 크게 터져 나왔다.

“하하! 재밌군. 재밌어. 이 와중에 표정 한번 살벌하구나. 아주 당돌한 녀석이로다.”

“······.”

“검룡이니 뭐니 하더니 기질은 귀鬼에 더 가까워 보이니 실로 기재라 할 수 있겠군.”

무언가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린 검제는 그리 말하며 서서히 기세를 흩트렸고, 나도 아쉽지만 그에 맞춰서 천천히 기세를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떨려오던 대기도 진정되었으니, 나는 이제서야 입을 열어보았다.

“맞는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하나 묻겠습니다. 검제라 불리시는 선배님입니까?”

“그래! 내가 바로 검제 백리명혼이다!”

그렇게 당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검제는 그대로 흥이 난 표정으로 뒤따라 들어온 장년의 남성을 바라보았고, 그대로 잔뜩 굳어있는 남자를 향해 가볍게 말을 건네었다.

“회주.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한 손님인 듯하오. 물을 필요도 없을 것 같소이다만···?”

“······그렇습니까?”

남자의 반문에 검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금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기척을 흩어놓았는데도 눈치채고, 간극을 간파한 다음에 합을 재본다라······ 아주 살벌해. 그리고 노련해. 실력을 떠나서라도 마치 수년을 넘게 그래온 듯한 행동이로다.”

“감각이 예민할 뿐입니다.”

“잘난 놈인 줄은 알았건만, 이제 보니 단순히 검만 잘 쓰는 놈은 아닌 듯하구나. 아직도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고 있더냐? 하하!”

나는 그 말에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다른 이능을 가진 초인이 아닌, 무의 업을 쌓아 저러한 세계에 발을 들인 이를 오랜만에 마주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떠버리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입가의 곡선이 쉽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잠시 예열된 감각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자니, 이내 실내의 분위기를 살피던 남궁설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궁설아가 백리 어르신을 뵈옵니다.”

“음? 아. 그래그래. 왜 인사를 또 하느냐?”

“실례하오나 인사를 드린 적은 없습니다.”

남궁설아가 평소처럼 다소 차가운 얼굴로 그리 답했고, 그 말에 검제는 그랬었나 싶은 표정으로 눈썹을 휘어트렸지만 아무래도 그런 겉치레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 뒤에서 얼어붙어 있던 남자도 이내 표정을 풀고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제를 향해, 그리고 내게 말을 건네왔다.

“원로님. 이따 일정이 따로 있음에도 이러시면 어떡하십니까? 그리고··· 갑작스러웠을 내객분께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냥 얼굴이나 먼저 봐두려고 온 것뿐이오 회주. 그리고 실례는 저 놈이 먼저 했소.”

“······먼저 말씀이십니까?”

남자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검제를 바라보았고, 그에 검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와 나를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먼저 실례를 저지른 건 사실 내 쪽이 맞았기에 나는 검제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엄청 큰 결례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굳이 이런 거로 곤란하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먼저 조금 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아······.”

“뭐, 나도 흥미로운 첫인상이었으니 상관없다. 그것보다 들어오기 전부터 기척을 느끼고 반응한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던 게냐?”

“큰 차이는 없습니다. 문을 두들기기 직전부터였으니···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호흡이 바뀐 순간 바로 간파했단 말이로구나. 확실히 감각이 예민하다는 건 사실이어도 나도 아직은 수양이 부족한 모양이군.”

내 대답에 검제는 흥미롭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떠오른 듯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입을 다물자 다시금 내려앉는 침묵.

“······.”

“······.”

그러자 당연스럽게도 갑자기 일어났던 이 상황들을 약간 난처해 보이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남궁설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약간 눈치를 보는 듯한 그녀의 표정에 가볍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무래도 남궁설아의 성격상 내게 이 상황이 불편하게 다가올까 염려하면서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으니, 그리고 그건 장년의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난처한 얼굴로 검제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이내 내게 차분하게 말을 건네왔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이따가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라져 버렸군요.”

“······.”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소개를 안 드렸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천중무련 산하에서 정심회란 단체를 맡고 있는 서문옥이라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유천하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신기한 기분입니다. 오늘은 내객분을 안내하는 역을 맡았습니다만······ 원로님이 귀하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이리되었습니다.”

“······.”

관심이 많다 보니라- 승천제 때의 일도 일이었고, 승천제 자체도 세계 곳곳에 송출되는 행사였던 만큼 이해는 되었지만 기분이 조금 오묘하긴 했다. 검제가 정확히 어떤 점에 관심을 가졌을지가 궁금해졌던 탓이었다.

멸화급 토벌에 관한 건일까, 아니면 타천자 토벌에 관한 건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들을 상대로 보여줬던 모습 때문인 걸까? 아무래도 짐작 가는 부분이 꽤 많다는 느낌.

내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자니, 이내 옆에서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남궁설아가 다소 이상하다는 듯 말을 꺼내왔다.

“근데··· 안내는 무슨 말씀이신가요? 오늘 일정상 안내가 필요할 만한 일이 있었나요?”

의아함이 담긴 목소리- 하지만 듣고 보니 나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까지 필요한 일정인가 싶었으니 말이다.

사전에 들은 대로라면 무련의 중진 몇 명만 만나서 절차대로 기보를 수여받으면 끝 아니던가? 애초에 남궁설아는 그 과정에서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따라온 것이었다. 물론 기보의 수여를 요청한 입장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남궁설아의 물음에 서문옥은 오히려 저가 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혹시··· 공지를 못 받으셨습니까? 지급과 관련되어 일정과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

“아무래도 못 들으신 모양이군요. 공개 회의록에는 아직 등록되지 않았나 봅니다.”

남궁설아에 반응에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서문옥은 그녀를 한번 바라본 뒤, 다시 생각에 잠겨있는 검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고르며 덧붙였다.

“사실 기존의 일정이 공개되고 나서부터 어제까지 계속 내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꽤 나왔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던 듯하지만··· 그렇다 보니 하도 요청이 많아서 방식을 약간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식을··· 말인가요?”

“예. 어쩔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다시 되돌아온 물음에 말꼬리를 흐린 그는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으니.

“귀하- 위타극의 토벌자이자 등천자. 그러면서도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다는······ 젊은 천재를 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 많았었기 때문입니다.”

각 문파의 중진들에서도 말입니다-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겐 조금 피곤하면서도, 다시 꽤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

시간이 흘러 우리는 장소를 이동하였다.

검제는 상념에서 깨어난 후 이따 다시 보자며 갑자기 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고, 서문옥만이 자리에 남아 우리를 안내해줬다.

원래라면 우선 천중무련의 련주와 면담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을 수여 절차는 결국 이 거대한 대전 같은 곳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약식의 수여식 같은 걸 치르는 것으로 바뀌게 된 모양이었다.

시간이 단축되어서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불필요한 시선이 늘어서 거슬린다고 해야 할까. 단순한 시선이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확실히 이곳 ‘무련’만큼은 조금 예외였다.

-저 사람이 유천하인가? 진짜 확실히 실물로 보니까 아직 어린 게 티가 나는구려.

-어떻게 저런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갖춘 걸까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재능입니다.

-잘 보거라. 저 분이 그 악적. 위타극을 토벌해 선조님의 원한을 갚아주신 분이다.

-검제님께서도 저 애를 보려고 오셨다며?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도 많이들 모였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흥미는 있었다.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천중무련에 소속된 무인들이었으며, 다시 그 연합을 이루는 각 문파와 세가의 수장들인듯했기에 나는 그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무련의 고수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집단의 명칭으로 괜히 무련武聯을 지칭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까? 저들 대부분이 절정의 영역에 도달한 고수들이었다.

‘그래도 초입이 적지 않고, 완숙이 대다수. 극의에 달한 이들도 몇 명은 있긴 하군.’

이래서야 본단에 들어오면서 훑어보았던 고수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들었다는 느낌이었고, 아까 서문옥이 한 말과 저들의 대화 소리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다들 나를 실제로 한번 보고 싶어 본단에 와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내 얼굴이 아닌, 무인으로서의 내 실력을 말이다.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안정적이더군.

-호흡의 강약도 어마어마하게 일정해.

-이런 자리에 와서도 긴장 하나 하지 않는 것 같으니 심력도 보통은 아닌 듯하고.

-아니··· 그것보다 기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 지금 이거 나만 그런 건가?

-초극에 도달했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

-하. 초극? 저 나이에 련주님과······!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 무련에 소속된 이들이고, 다시 공략자이기도 했기에 전력이 가늠 당한다 한들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 법.

단순히 가십거리로서의 관심이 아닌 무인으로서의 관심을 받는 건 이 세계에 어느 정도 적응한 나로서도 다소 부담스럽다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 실력을 정확히 가늠해낼 만한 사람은 딱히 없어 보였지만 무림에서의 나는 실력의 삼 할을 숨기라는 기본적인 율법을 무척 잘 준수하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이 세계에 와서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운신하고 있을지언정, 그래도 여전히 만상의 눈이나 천마신공에 대한 부분만큼은 이하린이나 아리엘에게도 정확히 말해주진 않고 있었다.

물론 그 두 사람에겐 어느 정도 신뢰가 생겼기에 부분적으로나마 이야기해주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대부분은 숨기는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상황이 실질적인 영역을 떠나, 심리적인 면에서 조금 미묘하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들 하나하나와 한번 대련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소교주 시절의 습관과 무인으로서의 흥미가 충돌하여 기분이 참으로 오묘한 순간이었다.

“저······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예. 안 괜찮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가 미처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은공께서 부담을 느끼실까 봐 걱정이 될 따름입니다.”

“말씀해주신 수준의 귀물이라면 이 정도가 뭐가 대수겠습니까. 그리고 무련의 고수들을 보게 되어 저 또한 나쁘진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눈이 조금 특별하니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해 하던 남궁설아는 내 대답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내 말이 예의상 하는 말로 들렸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주변 사람들의 수준을 만상의 눈으로 관찰해보면서, 그리고 남궁설아는 내 눈치를 계속해서 살피면서 앉아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식이 시작되었다.

“련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대전에 울려 퍼지는 힘찬 목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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