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52화 (152/205)

중망소귀 (3)

한 남자가 굳은 얼굴로 복도를 내달린다.

불만이 서려 있는 미간을 찡그린 채 그 끝에 존재하는 방- 련주의 집무실을 향해 달려간 남자는 그대로 문을 박차듯이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런 남자의 시야에 들어온 건 업무를 보고 있던 한 사람의 얼굴이었으니.

그렇게 연맹으로부터 공인받은 연합기관- 천중무련의 7대 련주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련주님!!”

그리고 지금 그러한 련주의 집무실을 아무렇지 않게 박차고 들어온 장년의 남성은 무련의 주축을 이루는 단체- 정심회의 수장이었으니 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련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불만 어린 음성을 토해냈다.

물론 그런 남자의 반응에도 련주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여다보았을 뿐.

“귀청 떨어지겠소이다. 서문회주.”

“지금 그런 말씀 하실 때입니까···!!”

그렇게 담담히 흘러나온 련주- 현원학의 대답에 서문옥은 다시 한번 더 미간을 찡그리고는 이내 제 스승, 그러니까 현원학을 향해 따지듯이 외쳤다. 마치 지금 자신이 듣고 온 이야기가 사실이 맞냐는 듯이 말이다.

“암야! 암야를 정말 외인에게 수여하기로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분명 마지막 회의 때는 다른 물건으로 좁혀지지 않았습니까!”

“허. 언제 결정 났는데 이제 와 난리인지.”

“언제기는··· 고작 이틀 전이지 않습니까!! 공략을 다녀왔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쯧쯧.”

현원학은 서문옥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물론 그로서도 제자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그렇게 결정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저 녀석은 잔뜩 흥분해버려선 이 방에 또 누가 앉아 있는지도 눈치 못 채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현원학은 천중무련의 련주로서 정심회의 수장을 향해 나직하게 대꾸했다.

“대가는 남궁세가에서 지불했소 회주. 남궁세가가 쌓아온 공적을 무시할 생각이오?”

“아니···! 도대체 누가 남궁세가의 공을 무시한단 말입니까?! 저 옛날 창천검황께 빚을 진 건 저희 서문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납득이 안 가는 게요.”

“외인이지 않습니까! 차라리 설아. 그 아이한테 주는 거라면 저 또한 흔쾌히 동의했을 겁니다. 허나 정작 유천하라는 아이는 저희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아이지 않습니까···!”

“허. 검을 휘두르고 무를 수양하는데 어찌 무련과 상관이 없더냐. 이 편협한 녀석아.”

“······스승님!!”

서문옥이 다시금 현원학을 향해 외침을 토해냈고, 그에 련주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암야를 만드는데 들어간 업륜에는 서문세가의 몫도 있다고 한들 분명 명분도 대가도 충분하다는 건 서문옥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녀석이 저리 흥분한 데는 정심회 수장이라는 입장 또한 있었을 터.

그러므로 뿔난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뛰는 녀석에겐 자신이 백날 말해봐야 의미가 없었고, 가장 빠른 해결책은 바로 옆에 존재했다.

“명분도 대가도 승인이 되었고, 회의에서도 제안은 일찌감치 통과되었지. 그래놓고서도 정작 수여품의 종류를 변경하자는 네 놈들의 말에 지지부진하게 끌어왔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의결권자가 승낙해버렸구나.”

“다른 의결권자······ 라 하시면 서, 설마?”

“그래. 내가 승인했다. 무엇이 그리 불만이길래 내 얼굴은 본체도 안 하는 것이더냐.”

“······사, 사백師伯님!!”

그렇게 서문옥은 구석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순간 얼어붙었고, 이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를 깨닫고는 크게 움찔하며 그대로 경악 어린 목소리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검, 검제 어르신께서 어찌 본단에···?!”

“이놈이 이제는 인사조차 안 하는구나.”

검제劍帝 백리명혼百里明混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천중무련의 원로임과 동시에 당대 무련주 현원학의 사형. 그러면서도 그 본인 자체만으로도 세간에서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권황 악무제와 더불어 천중무련의 원로로서 존재하는 두 명의 승천자중 한 명임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저 지고한 경지- 초절정의 대지에 발을 들인 검객이었으니 당연히 서문옥은 그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니 뒤늦게 저가 이곳에 와서 보인 태도를 떠올린 서문옥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빠르게 제 사백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이 서문옥. 사백 님께 인사 드립니다!”

“쯧. 참으로 빨리도 하는군. 아무리 본단에 있더라도 기감을 너무 닫아두지 말거라. 현실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테니.”

“······예. 명심하겠습니다!”

가르침에 감사하다는 듯 검제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그는 그렇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다소 억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기척을 죽인 채 자연을 받아들이고 계시는데 저가 어찌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자신의 실력이 아직 절정의 극의에 불과하다고 한들 저가 눈치 못 챌 정도라면 솔직히 말해서 무련에서 저 존재감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손에 꼽힐 터였다.

하물며 승천자라는 호칭이 이야기해주고 있듯이 검제는 침식과 정면에서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고, 다른 이들을 위해 평소에도 항상 침식영역을 배회하는 공략자였으니 이렇게 본단 집무실에 평화롭게 앉아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하다 한들 서문옥은 분명 검 하나만으로 저 지고한 경지에 도달한 검제를 존경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검제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와 별개로 대체 왜 검제가 이곳에 와있는지는 의문스러웠기에 서문옥은 조심스레 제 사백을 향해 질문을 건네보았다.

“······한데 사백 님께선 어찌 여기에?”

“내가 여기 오면 안 될 일이라도 있더냐?”

“아, 아닙니다! 그, 그런 게 아니고 그저.”

“지렁이 녀석의 휴가가 끝나서 잠시 시간이 났다. 안 그래도 요즘엔 아프리카보단 남미 쪽의 상황이 이상해지고 있는 판국이니 굳이 그곳에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을 테지.”

“아··· 나, 나르화리얀님 말씀이십니까?”

순간 지렁이라는 표현이 누굴 가리키는 건지 의아했던 서문옥은 이내 나르화리얀의 이명을 떠올리고는 황급히 되물어보았다.

그러자 검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들 축제라고 투덜거릴 땐 언제고 막상 복귀할 땐 잔뜩 신나서 돌아오더구나.”

“······아. 승천제.”

쯧쯧- 그 말을 하면서도 검제는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지만, 그 말이 향하는 대상이 대상이었던 만큼 서문옥은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속에 담긴 내용에 그는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왜냐하면- 애들 축제라 말한 그 승천제.

올해만큼은 아이들의 축제라 칭할 수준을 벗어나 버렸던 등천회랑에서의 사건은 아직도 수많은 이의 입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그 파란의 주인공이 바로 그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마, 맞습니다! 사백 님! 대체 어찌하여 암야의 반출을 승인하신 것입니까? 특별 의결권까지 쓰셨다는 건 저로서는 도무지···!”

“뭘 그리 어렵게 생각 하는 게냐.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했다 생각하면 그만이거늘.”

“가치··· 라 하면 그 아이에게 말입니까?”

서문옥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물론 그로서도 그 아이- 유천하가 분명 뛰어난 초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나이에 이룬 경지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업적도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으니 두 눈이 있다면 그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과 암야- 그 무혼의 결정체를 수여하는 건 분명히 별개의 영역이었을 뿐.

그것은 무武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앞서나간 무련의 선배님들께서 후대를 위해 남겨놓은 업적의 증거였으니, 그건 분명히 무련의 인물이. 그것도 올바른 무의 가치를 숭상하는 이에게 주어져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그런 만큼 그걸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누군가가 요청했다고 해서 어찌 외인에게 함부로 넘길 수 있단 말인가? 남궁의 소녀는 아직 어리기에 그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요청을 넣었다고 해도 제 스승과 사백. 천중무련의 련주와 원로마저도 그걸 승인했다는 게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심경은 이 순간- 분명히 그 표정 위로도 드러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검제는 그런 사질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하였고, 그렇기에 그는 서문옥. 아니 순수한 무의 가치를 부르짖는 정심회의 수장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옥아. 천중무련의 의의가 무엇이더냐.”

“무를 숭상하고, 무를 갈고 닦는 이들에게 무의 업을 이어주기 위해서 존재하옵니다.”

“하면 너희 정심회의 의의는 무엇이더냐.”

“······이 혼탁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무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존재하옵니다.”

“한결같이 올곧은 대답이로구나. 너는 처음 본 시절부터 항상 그리 올곧은 아이였지.”

갑작스러운 칭찬에 서문옥이 감사를 표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와중, 구석에 앉아있던 검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되물었다.

“그럼 너에게 무武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

그것도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을 말이다.

무의 세계는 심오하였고, 그건 너무나도 광대한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서문옥은 이 사술이 판치는 세계에서도 그러한 무의 세계를 숭상하였고, 다시 정심회를 맡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저 말에 가볍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서문옥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으니, 그 모습을 보며 검제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쉽게 답하긴 어려울 테지. 하면 다시 물으마. 네게 검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제가 흠모하는 저의 동반자입니다.”

“그래. 뭐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검의 재능은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검의··· 재능 말씀이십니까?”

뜬금없는 선문답에 서문옥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앞에 앉아있던 련주도, 그곳으로 다가온 검제도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이내 제 검을 들어 올려보았다.

“내게 이 검은 그저 검에 불과하다. 3척 남짓한 길이에 금속으로 이루어진 날붙이지.”

“······.”

“하지만 나는 이걸로 태산을 가르고, 해일을 베어 넘길 수 있다. 비록 재능이 일천하여 그것밖에 못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날붙이로 하늘마저 베어 넘길 수도 있겠지.”

“······그건 너무 허황된 말씀이십니다.”

“아니, 그것 또한 필히 가능한 이야기다.”

서문옥은 저 ‘검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조금 머릿속이 알쏭달쏭해지는 기분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검객의 재능이 일천하다 하는 것도, 그러한 이가 말하는 경지도 다소 허황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제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건 결코 쉬운 길이 아니겠지. 이렇게 모자란 재능으로는 영원히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될 정도로 그건··· 너무나도 아득한 너머의 경지이니 말이다.”

“어찌··· 재능이 부족하다 말씀하십니까?”

“어찌 부족하지 않을까? 나는 분명 강한 검객이라곤 할 수 있을지언정 완벽한 검객하고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지. 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베기밖에 못 하니 제帝보다는 치癡에 가깝다고 봐야 되지 않겠느냐?”

“누가! 감히 누가 그리 말한단 말입니까!!”

“바로 내가 하는 말이다 이 녀석아. 내가.”

초절정에 도달해 있는 유일무이한 검객이 검치라면 이 무련에 존재하는 수많은 검객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서문옥은 당혹스러운 마음에 제 스승, 현원학을 바라보았다.

허나 련주는 그런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가볍게 긍정해 주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사형께선 검에 재능이 없으셨지.”

“아, 아니···!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명백한 사실이거늘 그럼 뭐라 하겠느냐.”

제 스승, 천중무련의 련주도.

제 사백, 천하제일의 검제도.

모두 아무렇지 않게 재능의 부족함을 논하고 있었으니 서문옥은 당황스러웠다. 왜 저 두 사람이 저리 얘기하는지. 그리고 어쩌다 이렇게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손한 기분이 드는 주제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검의 재능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검제가 말하는 재능이란 게 무엇이길래 일 검에 산을 베어 가르는 고수의 입에서 저러한 말이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 사안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검을 이해하고, 검을 휘두르는 것.”

“······.”

그 물음에 되돌아온 답은 무척 간단했다.

“그것이야말로 내게 부족하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부족한 재능이라 할 수 있겠지.”

너무나도 당연한 말- 하지만 검제는 그 당연함이 저 자신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부족하다 말하고 있었고, 그에 서문옥은 더욱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런 서문옥의 얼굴을 바라보던 검제는 피식- 실소를 머금더니 이내 제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시 물어보았다.

“너는 유천하 그 아이의 검을 보았느냐.”

“······승천제의 영상이라면 보았습니다.”

“그래. 그리 화제가 되는 만큼 당연히 보았겠지. 그럼 그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더냐.”

“······.”

서문옥은 검제가 저에게 건네준 물건- 마법이 각인되어 있는듯한 투명한 수정구슬을 한번 내려다본 뒤,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뛰어난 아이였습니다. 위타극을 토벌한 것만 봐도 저보다 강할지도 모르겠지요. 멸화급이란 괴물을 향해 단신으로 맞섰던 모습은 제게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정심회주 서문옥은 대답했다.

“저희는 무를 숭상하는 것이지 단순히 강함만을 숭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대들의 무혼이 쌓여 만들어진 업을 계승하려면 무를 숭상하는 자여야 합니다. 그저 천재라는 이유로, 강하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말입니다.”

“······.”

“그것이 저희가 무혼- 업륜을 후대를 위해 남겨놓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지 않습니까?”

그건 분명히 정론에 가까운 말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이능과 신비가 도사리는 세계 속에서 저런 생각을 갖춘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련주도, 검제도 서문옥을 존중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경우가 달랐기에 검제는 그저 손으로 그를,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건네준 물건을 가리켰을 따름이었다.

“협력전의 영상까진 미처 못 봤나 보군.”

“······협력전 말씀이십니까?”

“내가 지금 네게 건네준 그거. 그건 바로 나르화리얀 녀석이 탑에 동화된 상태로 유천하 그 아이를 엿보았던 기억이지. 나는 그걸 보고 바로 녀석을 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

그 말에 서문옥은 제 손에 들린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멸화급을 내보낸 집단전이라면 모를까 아이들끼리 치고받았다는 게 전부였던 협력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저 말을 들으니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체 무엇을 보여주었길래 승천자가 침식영역을 벗어나 이곳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그리고- 그러한 의문을 해소해주겠다는 듯 검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네 말대로 단순히 강하다의 문제였다면 나 또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 아이는 분명 수많은 변화를 하나의 검 끝에 담아내고 있었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만검을 담아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과연 진정한 검의 극의가 어떤 모습을 자아내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검은 바람과도 같았고, 다시 물줄기와도 같았다.”

그 말에 서문옥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과연 단순히 강하다, 재능이 있다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느냐? 고작 약관에 이르지도 못한 나이에 만검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고작 ‘천재’라는 같잖은 이유 하나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어림도 없는 소리지- 검제는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이 작게나마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그리 쉬웠으면 위타극 그 머저리가 100년의 세월 동안 살아있지는 못했겠지. 비록 나나 악가놈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무도 그 놈의 검을 당해낼 수 없었기에 위타극은 이제껏 그 목숨줄을 연명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

“그 자라 같은 녀석에겐 재능이 있었고, 다시 그런 놈을, 그런 나이에 검으로 베어낸 유천하란 아이에게는 더한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지.”

검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세계는 신비롭기에 나이에 맞지 않는 강함도, 인세의 상식에서 벗어난 재능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무의 영역만큼은 결코 아무에게나 길을 보여주진 않아.”

“······.”

“천재적인 재능과 무수한 노력. 그리고 여러한 요소가 겹쳐지고 겹쳐졌을 때. 그리고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가 검을 이해하고 휘둘렀을 때. 그제야 길은 열리는 게다.”

그러하니- 검제는 서문옥을 바라보았다.

“저 자신의 검이 그걸 증명하고 있는데 어찌 그 아이가 무인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느냐? 녀석에겐 검의 극의를 향해 나아갈 재材가 존재하지. 바로 내겐 없는 재능이 말이다.”

“······.”

“그래서 승인했다. 그 씨앗이 제대로 개화하기 전에 꺾이지 않도록, 공략자가 되어 멸화급 같은 괴물들과 싸우더라도 그 몸통을 지지해줄 버팀목이 필요하다 느꼈으니까.”

서문옥은 검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의 눈으로 그 재능을 아직 온전히 보지 못했기에 그러했고, 또한 저가 존경하는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대감 어린 목소리가. 그 사실이 그에겐 조금 얼떨떨하게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이 검으로 하늘을 베어내는 모습을. 내 손으로 하늘을 베어낼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라도 내가 닿지 못한 길이 아직 펼쳐져 있다는 걸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었지.”

“······.”

“그리고 내 눈에는 유천하 그 아이가 내게 그 모습을 보여줄것처럼 보이더구나. 만상세계가 주시하고, 아크샤가 꺼내든 시련을 타파하고, 제 실력을 세계에 증명해낸 모습에서 나는 그 가능성의 씨앗을 엿보았다.”

검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는 들려오지 않는 서문옥의 대꾸에도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허심탄회한 심경을 읊조리며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니 납득이 안된다면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거라. 그래도 납득이 안된다면 유천하 그 아이가 왔을 때 검으로 확인해 보거라. 무인의 업을 증명할 방법은 하나뿐이니.”

“······.”

“네가 쌓아온 무로서 물어보거라. 과연 그 아이에게 무武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것도 무척이나 짙은 미소를 말이다.

***

어느덧 적막이 내려앉은 회랑의 밤거리.

“수고하셨습니다···! 아, 안녕히 주무세요!”

“응! 하린이도 수고했어. 잘 자고 내일 봐.”

“예. 편안한 밤 되세요. 아리엘 너도.”

그렇게 오늘도 늦은 시각까지 3학구에서 함께 수련했던 우리는 자정이 완전히 넘어간 뒤에야 숲에서 빠져나와 2학구로 내려왔고, 나는 해맑게 손을 흔드는 두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를 돌려준 뒤 숙소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등 뒤에서 너무 칼 같다고 투덜거리는 아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오늘 온종일 같이 있었다 봐야 할 정도로 오래 붙어있었기에 나는 가볍게 무시했을 뿐.

아직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았던 만큼 이제는 다시 혼자 생각을 가져볼 시간이었다.

물론 요즘 따라 상념이 많아졌다는 느낌이긴 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련만큼이나, 끝없는 번뇌가 필요했다.

애초에 천마신공은 깨달음의 무학.

벽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번뇌의 타파였고, 그걸 깨트리기 위해서는 결국 꾸준히 길을 닦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이치는 간단하지 않았고, 업은 나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랬다.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했다.

그 겨울을 베어냈던 아버지마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는데, 이제야 겨우 벽 앞에 놓인 내가 어찌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

그렇기에 나는 밤길을 걸어 나가면서도 잠시 손등을 들어 올려 업륜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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