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48화 (148/205)

공략의 의미 (5)

시작은 하늘에서 내리꽂힌 빛이었다.

지잉··· 콰아아아아앙-!!!

언령에 사로잡힌 채 추락하던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백색의 기둥이 그어졌고, 그 빛의 포화는 마력을 토해내며 떨어지던 마수의 거체를 그대로 다시 지상을 향해 내리찍었다.

막대한 마력을 머금고 내뱉어진 언령.

비록 잠시지만 깨져나간 마력의 방벽.

다시 그곳을 향해 쏘아져 온 포화까지.

그렇게 여러 요소는 저항하는 마수의 몸을 기어코 지상으로 인도하였고, 방벽을 복구하기 위해 휘청거리던 마수의 몸은 언령에 사로잡힌 채, 전력으로 뿜어진 빛의 포화에 내리 찍힌 채 그대로 지면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것도 대지를 그대로 뒤집어 엎으면서.

------------------------------------------------!!!

쿵-!!! 쿠구구구구-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육체가 지면에 추락하자 일순간 그 일대의 땅이 진동하며 막대한 양의 토사가 그대로 솟구쳐 올라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령을 유지하고 있는 아리엘과 빛을 쏘아내던 진시우는 그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계속해서 마수를 향해 마력을 쏟아내었다.

더는 그로서도 거리낄 게 없는 상황.

마수의 정신이 온전히 유천하에게만 쏠릴 수 있도록 공격을 멈춘 사이에 진시우는 이미 다른 아이들이 휘말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벌린 뒤였고, 그의 영혼에는 여섯 번째의 원이 새겨졌으니 그렇게 이 순간 진시우는 저가 낼 수 있는 전력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이솔라가 한순간이지만 마수의 마력 방벽을 깨트리고, 아리엘이 그런 마수를 지상으로 떨어트리며, 떨어진 놈의 마력을 진시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일제히 깎아나간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계획의 골자.

콰과과과과과과-!! 지금도 마수의 몸에선 회복되기 시작한 방벽이 그대로 다시 깎여나가며 마력의 격류를 일으켰고, 용맥에서 끌어 올려진 막대한 마력은 그대로 언령의 사슬이 되어 그림자를 붙잡았으니 다시 저항하는 마력이 푸른 스파크를 사방에 토해냈다.

잿빛의 하늘과 대지를 잇는 백색의 창.

그림자를 휘감고 휘몰아치는 푸른 마력.

그리고 추락하는 마수의 몸 위에서 떠올랐다가 다시 바람을 휘감고 그 몸에 안착한 생도들이 쏟아내는 공격까지. 흐트러진 마력이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연이어 겹쳐진 공격에 마수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

대기와 지면마저 떨릴 정도의 포효소리.

산이 떨릴 만큼 광대하게 터져 나온 놈의 일그러짐 외침 속에는 분노와 당황, 그리고 괴로움이 담겨져 있었고, 마수는 지면을 내리치며 자신을 옭아매는 근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도 저 멀리서 마력을 제어하며 언령을 유지하고 있는 아리엘을 말이다.

애초에 아무리 대지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끌어다 썼다 한들, 아무리 방대한 마력을 쏘아내고 있다 한들, 그 출력의 주체가 고작 사람인 이상 결국에는 멸화급 근원석이 토해내는 마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은 마력 방벽이 깨진 여파로 인해 언령에 사로잡히고 말았지만 이 정도의 공세로는 어차피 마수의 재생속도를 넘어서지 못했고, 그 말을 즉. 이대로는 얼마 안 가 마수의 마력이 온전히 회복된다는 말.

그렇다면 그 순간이 바로 분노를 쌓아온 마수가 그 대가를 돌려줄 시간이 될 터였다.

하지만.

-떨어졌다!! 어떻게든 깎아내!!

-시발 진짜 오지게도 크네···!!

-서포트할게! 뛰어! 달려들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한계에 불과했으니- 일개 생명체의 한계로는 멸화급 마수의 마력량을 넘어설 순 없었을지언정 그 개인이 다수가 되어 수십, 아니 수백이 된다고 하면 이야기는 분명 달라지는 법이었다.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생도들의 모습.

비록 사전에 얘기된 좌표와 온전히 동일한 곳에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3학구에 있던 생도들의 대부분은 이곳을 향해 몰려온 상황. 수백 미터의 거체였던 만큼 마수의 낙하지점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어떻게 마수를 떨어트렸는지, 어떻게 마수를 묶어두고 있는 건지는 그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분명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마수의 방벽을 깨트리는 것.

-재생 못 하게 막아!! 오래는 못 갈 거야!

-뭔진 몰라도 최대한 마력을 긁어낸다!!

그렇게 이미 근처에 있던, 그리고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던 생도들이 하나둘씩 마수가 떨어진 곳으로 나타났고, 다시 달려들었다.

당연히 그런 생도들의 등장에 마수는 그림자의 형상을 변화시키며 가시를 쏘아내듯 사방을 향해 마력을 터트려대기 시작했을 뿐.

허나 비록 세부적인 계획이 모두 짜여 있던 것은 아니었을지언정, 이미 테러가 일어났던 시점부터 대부분의 생도들은 각자 협력전에서 팀을 이뤘던 이들과 합을 맞추고 있었기에 마수를 향해 달려들면서도 그들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세를 쏟아낼 수 있었다.

거칠게 쏘아지는 잿빛의 마력을 부러트리며,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마력을 휘둘렀다.

지상에서 솟구친 빛의 사슬이 마수를 옭아맨다. 누군가의 능력이 마수를 몸체를 후려쳤고, 어떤 이의 특성은 그대로 마수의 꼬리를 내리찍었다. 최대한 마수를 억누르기 위해서, 또한 마수의 마력을 갉아내기 위해서.

누군가는 가까이 다가가 검을 휘두르며, 누군가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해 마법을 짜올리며, 다시 누군가는 이능을 발현시킴으로써 마수를 공격했고, 그런 공격이 모여듦으로써 점점 마수의 재생마저 느려지기 시작했다.

-------------------------------------------------!!!

비록 어떤 이는 접근하는 것 조차 버거워해 간신히 마수의 표피에 생채기를 내는 게 전부였지만, 또 다른 이는 거침없이 달려들어 마수의 살점을 짓뭉갰으며, 누군가는 그대로 멀리서 마력의 포화를 쏟아내었다. 각자의 결의를 담아, 전심전력을 쏟아내면서.

색채가 터져 나올 때마다 그림자가 흩날리며 거친 격류를 토해낸다. 휘몰아친 잿빛의 마력이 그대로 파동이 되어 터져 나간다.

아리엘이 마수를 억누르고 있을지언정 그 몸과 마력을 온전히 제재할 순 없었고, 그렇기에 지금도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마수의 몸체에선 막대한 부정 사념을 머금은 그림자의 파동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발을 멈추진 않았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파동에 휩쓸려 바닥에 몸을 눕히더라도, 가시처럼 쏘아진 그림자에 꿰여 쓰러지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저 마수를 잡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것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생도들은 계속 나아갔다.

한순간에 쏟아져 나오는 가지각색의 색채.

수십, 수백, 천에 가까워진 마력의 물결.

그렇게 점점 깎여나가는 잿빛의 형상.

색색들이 몰아치는 각색의 결의와 그곳에서 몰아치는 파란은 분명 그들이 약속했던 다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있었고, 승천제의 시작을 알리며 피어올랐던 색채는 이렇게 다시 종막을 끌어 내리기 위해 각자의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하하!! 이게··· 이게 뭐야 도대체!]

그런 생도들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나르화리얀은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으니, 그건 옆에 있던 이 또한 마찬가지였을 뿐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고작 생도들이, 제대로 현장에서 뛰어본 적도 없는 애들이 저걸 떨어트렸어?]

[말은 안되지만··· 실제로 일어나버렸군.]

[최대한 버텨주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오히려 저딴 걸 잡아내려고 하다니······ 하하!!]

그렇게 나르화리얀은 이 상황에 계속해서 씰룩거리는 입가를 억누르지 못하고 웃음을 토해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아니, 애초에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필요성은 이해했을지언정 나르화리얀은 멸화급 마수라는 개체가 생도들에겐 분명히 불가능에 가까운 시련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에 안들어 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테러와 역류, 그리고 그것을 해결했다 여겨졌을 때- 그 모든 일을 지나쳐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 그 순간 마주한 재앙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무력함과 절망감을 심어줄 터였고, 나르화리얀은 그러한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생도들의 대부분은 두려움에 빠졌고, 겁에 질리며 몸을 떨어댔을지언정.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도 검을 부여잡고, 떨리는 발로도 마수를 향해 나아가며 기어코 지금은 그 불가능해 보이던 시련을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저 모습이 기특하지 않을까.

저 옛날. 처음 심연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절망 속에 저항을 포기하였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론 저걸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건 보기만 해도 두려워지고 무력해지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기에.

[대단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야.]

허나 그런 절망의 벽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 희망의 불씨를 피어올린 자들이 있었다.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불가능을 떨쳐내서, 앞으로 나아가 희생과 헌신 속에 세계에 희망을 보여준 이들이 있었다. 인류는 그들을 보며 희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순간의 의미를 되새겨 앞으로 다가올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 빛을 밝힐 수 있도록, 불가능해 보이는 위험마저 언젠가는 헤쳐나갈 수 있으리란 의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승천제라는 축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두렵고 힘든 순간이 올지언정 그 어두운 벽을 넘고 앞으로 나아가, 어떠한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피어 올리는 모습을. 생도들은 보여주었다.

--------------------------------------------------!!!

덕분에 나르화리얀은 계속해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터트렸고, 그는 결국 처음 시작할 땐 생각하지도 않았던 결과를 무심코 기대하게 되고야 말았다.

[과연 저 애들이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바로- 저 아이들의 노력이 정말 끝까지 도달해, 마수를 무너트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원래라면 그건 불가능한 일일 터였지만 아직 밑 작업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저들은 분명 그 가능성을 피워내고 있었고, 지금만큼은 그게 결코 불가능한 가능성이 아니었다.

[아직까진 알 수 없는 일이지. 저······ 아이가 얼마나 더 마수를 붙들고 있을 수 있을지, 다른 아이들이 과연 마수의 마력을 얼마나 깎아낼 수 있을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기에 그들은 전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 속에서도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 사람을. 이 계획에 가장 중요한 역을 맡은 한 사람을.

그리고 이 순간.

[결국 그사이에 저 아이가 마수를 베어낼 수 있냐 없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테니까.]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흑색의 궤적을.

***

가지각색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마수를 난타하고, 백색의 포화 마수를 내리찍으며, 다시 아리엘이 그 마력의 여파에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마수를 붙잡아 나가던 순간.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

서걱-! 아니, 그것은 한 명의 사람이었다.

한순간에 허공을 박차고 떨어져 내린 유천하의 내면에선 이미 일곱 갈래의 매듭이 모조리 풀려나온 상황이었고, 만상의 눈을 전면으로 개방해낸 그는 혼란이 휘몰아치는 전장 사이에 생겨난 틈. 그 빈틈을 순식간에 비집고 마수의 미간에 검은 궤적을 그어냈다.

키잉- 일순간 주변을 휩쓸며 퍼져 나가는 무형의 압력. 참다못해 마력의 포화를 쏘아내려던 마수의 입에서 흐름이 끊어지며 그대로 어긋난 마력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 콰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마수의 머리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그 마력에 휩쓸려 튕겨 나갔지만, 유천하는 그러한 그림자의 폭포마저 거스르며 다시금 마수를 향해 달려나갔다.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 전율을 되새기며.

기어코 만들어진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각- 하지만 마수의 감각은 유천하의 접근과 동시에 그를 감지하였고, 이런 상황에서도 마수의 무의식은 저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게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마수의 눈이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

“······.”

10m 크기의 소용돌이치는 잿빛 기류가 유천하의 모습을 그 속에 담아냈고, 그와 함께 유천하 또한 마수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

카가각-!! 흉포한 외침과 함께 마수의 몸은 한 차례 더 꿀렁거렸고, 그를 향해 그림자의 채찍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 갈래로 분열시켜, 그를 잡아내기 위해서.

하지만 이미 진작에 만상의 눈으로 그러한 전조를 간파해낸 유천하는 바람의 결을 박차며 공격을 회피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마수는 다시금 마력의 파동마저 토해냈지만 그 순간 유천하는 이미 마수의 앞에 다가온 뒤.

그리고- 순간 서늘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서걱-!! 피륙이 잘려나가는 섬뜩한 절삭음이 대기를 타고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대로 그림자가 되어 터져나가는 마수의 한쪽 눈.

카륵··· 콰과과과과과과과-!!!

고작 1m 남짓한 검. 하지만 그 검은 10m에 달하는 마수의 눈을 망설임 없이 베어냈고, 마력의 흐름마저 꿰뚫고 그어진 궤적에 마수는 다시금 일그러진 비명을 토해냈다.

물론 근원석이 토해내는 막대한 마력은 그러한 부상마저 순식간에 재생시켰지만, 마력의 흘러 들어가는 연결마저 잘려나간 터라 그 속에 담긴 마력만큼은 현저히 낮아졌다.

애초에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천하의 검은 이하린의 걱정과 기대가 담겨 만들어진 검으로서, 여러 가공을 거친 그 검은 분명히 그 자체만으로도 마력을 베어내는 기병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만상의 눈을 통해 마력의 흐름마저 베어낼 수 있는 이가 사용했으니 당연히 멸화급 마수라 한들 손실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저 이제까지는 지닌바 힘의 차이 자체가 너무나도 컸기에 유천하 또한 이런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마력 방벽이 흐트러진 이상. 그리고 마수의 마력이 깎여나가고 있는 이상. 그로서도 이제는 더 이상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근원석으로 향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칠흑의 궤적이 잿빛을 베어 갈랐고,

다시 그림자의 채찍이 그를 튕겨낸다.

다른 이들이 마수의 몸에 생채기라도 내기 위해 마력을 깎아내려 하고 있을 때.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유천하는 그렇게 찰나의 틈새에서 마수와 빠른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그림자의 방벽을 뚫어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카가가··· 콰아아아앙-!!! 콰광!!

유천하의 접근에 분노한 마수의 눈동자 폭발하듯 터져나감과 동시에 이전보다도 더 강대한 마력 파동이 쏟아져 나왔고, 거친 하울링과 함께 터져 나온 유천하는 그대로 허공을 박차 잠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유천하는 차분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폭음이 울려 퍼지며 대지가 뒤집혔고, 흙먼지가 피워 오르는 가운데 마수의 몸에선 해일과도 같은 마력이 계속해서 토해졌지만, 그럼에도 다른 아이들이 같이 마력을 분산시켜주고 있는 만큼 이 정도론 문제가 없었다.

그러므로.

유천하는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마수의 마력을 베어 넘기며 다시 마수를 향해 달려나갔고, 동시에 잠시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리며 묘한 감흥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

아까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언령이 마수를 옭아매었을 때- 바로 그 순간 유천하는 등을 스치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순간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했다.

우선 지난 시간 동안 아리엘이 쌓아온 축언과 용맥의 힘. 거기에 다른 아이들의 도움까지 모두 받아서 만들어 낸 그 광경은 분명히 충격적이었고, 거대한 산과도 같은 마수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그야말로 비현실의 극치와도 같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웠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건.

그것은 바로- 조금 전 그가 흘러나온 언령속에서 그녀의 심상을 엿보았다는 점이었다.

-떨어져. 저 밑으로.

‘······.’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목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엿보였던 한 광경.

솔직히 말해서 유천하로서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천하는 분명히 3학구에 울려 퍼진 그 작고 여린 목소리 속에서 아리엘이 마음속으로 그려냈던 심상을, 다시 그녀가 끊임없이 염원했던 바람을 그대로 목도할 수 있었다. 바로 저 거대한 마수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그렇게 자신이 마수의 심장을 베어내 주었으면 하던 그녀의 염원을 말이다.

아리엘의 특성이 마음을 현실에 강요하는 이능이기에 그랬던 걸까, 아니면 현상의 규모가 규모였던 만큼 그 속에 담긴 무언가가 현실 자체에도 새어 나오게 되었던 걸까?

조금 의아함이 들었지만 유천하의 직감은 그 모든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인지의 관점.’

식識 그것은 인식의 작용.

지난번 유식唯識의 세계에 도달함으로써 유천하 자신은 천마신공의 7성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환생을 통해서, 다시 이 세계로의 전이를 통해서, 소설 속 세계라는 특이점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만상의 눈과 업륜을 통해서 끊임없이 그간의 상식이 무너지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해 겪어왔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깨달을 수 있었다.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상식은 실유實有가 아니고, 그 실상은 공空이란 것을. 만유는 식에 의해 현현한 것에 불과하며 결국 세계의 본질은 마음에 자리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것은 분명 ‘나’가 세계를 지각하며 자아내는 관계의 작용이었으며, 다시 만상의 모든 것 또한 마음이 만들어낸 표상에 불과하단 사실을 유천하는 알고 있었다.

육체를 관조하고,

세상을 지각하여,

표상을 받아들여,

의지를 관철한다.

그런 만큼-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으니, 결국 그 자신이 한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듯이 어찌 보면 이 만상이 공허한 세계에서는 분명 심상의 편린을 엿보는 것마저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몰랐다.

계속해서 세계를 인지하는 관점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던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에서, 이 현실에 진정으로 불가능한 일이 없다면 왜 자신의 마음은 세계를 베어낼 수 없는 걸까.

모든 것이 그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면 왜 자신의 바람과 염원은 그저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끝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유천하는 이내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 하면, 오히려 그렇기에 자신은 이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나’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그 세계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결국 ‘나’는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유천하는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유천하 자신은 분명 지나온 생애 동안 많은 것을 비워냈고, 다시 지난번 일을 겪으며 조급함도, 편견도, 의무도 모두 비워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고민해왔다.

‘······.’

세상의 모든 건 인지함으로써 확립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속엔 이제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모든 것을 비워온 삶에 다시 내용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바로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고민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뇌는 지금의 감흥과 만나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만상의 눈은 분명 그에게 만상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인지가 우선이 되어야 하고, 다시 그는 어찌 보면 저 자신이 받아들인 세계만큼만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다시.

------------------------------------------------!!!

자신의 세계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자신이 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 부분부터 먼저 제대로 정립해내야 한다- 유천하는 이 순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자신이 천마신공의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끝에서 저가 바라는 고지에 도달해- 마음으로 세계를 베어내기 위해서는 그 부분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

이 순간 유천하는 엿볼 수 있었다.

아리엘이 그려낸 심상을 곱씹으면서, 이 세계에서 겪어왔던 일들을 되새기면서, 그러면서도 눈앞의 거대한 괴물을 베어 죽이기 위해 검을 들고 하늘을 내달리면서도. 저도 모르게 입가에 짙은 미소를 그려내면서도.

바로 그곳.

‘보였어.’

다음의 고지- 하사도로 나아갈 길을.

***

그렇게 유천하가 지난 한 달간 고민해왔던 부분에 대해 소정의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을 때. 정신은 점점 무아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을지언정 그의 육체만큼은 망설임 없이 마수를 향해 나아가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찰나를 가로지르는 흑색의 검.

무아에 도달해가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예리하게 가다듬어지는 유천하의 정신은 살벌한 의념을 머금고 칠흑의 궤적을 그어냈고, 한순간에 수십의 가시를 베어내며 다시 한번 더 마수의 미간을 갈라내었다.

서걱-! 쏘아지는 채찍을 베어낸다. 훙! 그 형상이 그림자로 화해 터져나가기도 전에 다시금 검극이 쏘아진다. 콰직-! 그리고 마수가 그걸 인지해냈을 땐 이미 별빛을 머금은 검이 그림자를 꿰뚫어버린 뒤였을 뿐이었다.

수백 미터의 거구를 난자하는 작은 검.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빛이 뻗어진다.

그와 동시에 지면에 몸부림치던 마수는 다른 생도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그를 향해 마력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이미 마력 방벽마저 무너져 가는 마수의 공격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못하고 있었다.

만상의 눈이 세계를 바라본다.

풍결의 가호가 대기를 관조한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 녹아든 의념의 실타래는 기감과 뒤섞여 그에게 무결의 감각을 선물해주었다.

훙- 마수가 무언가를 행하기도 전에 유천하의 감각이 그것을 먼저 간파한다. 마수의 공격이 유천하에게 닿기 전에 그의 몸은 이미 한 발짝 먼저 그곳을 벗어난다. 한치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기필코 그 미간의 심장을 베어내겠다는 듯이.

-------------------------------------------------!!!

만약 마수가 지면에 처박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수의 각성자들에게 마력이 깎여나가 버린 상황이 아니었다면 분명 지금 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을 터였다.

서로 간 압도적인 마력의 격차와 형체의 격차가 존재하는 이상. 기량과는 별개로 그저 그 힘의 규모로 찍어눌렀다면 교환비만으로도 유천하의 내력이 말라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게 아니었고, 결국 마수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유천하는 그 하나의 선택지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허공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다. 더 넓게, 더 깊게, 더 많은 것을 감각 속에 받아들이며, 저런 마력량이라면 한 번의 타격만으로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는 앞을 내다보았다.

상대보다 무조건 한 발짝 앞의 세계를 내다보고, 그곳에 발을 내딛기 위해. 아직은 저 자신이 부족한 만큼 그 격차를 메꾸기 위해 그는 더, 더 앞의 미래를 내다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그에겐 익숙한 일이었을 뿐.

흐름을 읽어내고, 그 흐름을 베어낸다.

가속을 발현한 채 그사이를 내달린다.

우웅-!!! 한계까지 강화된 육체가 마수를 베고 지나간다. 쏘아지는 공격을 피하고, 피하면서 막아냈고, 결국에는 다시 베어냈다.

마수가 지면에 떨어지고 고작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에서, 그리고 유천하가 마수의 미간에 처음 칼을 박아넣은 순간부터 이제야 3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는 마치 춤을 추듯 마수의 마력을 끊어나갔다.

그렇게 펼쳐진 무아지경의 검로에 그를 돕기위해 달려오던 이하린도, 남궁설아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유천하는 계속해서 궤적을 그어나갔다.

허공을 수놓으며, 그림자를 가로지르며.

사고의 한구석에선 저 자신의 세계를 고뇌하며 미약한 깨달음의 뒤를 쫒아갔고, 다시 한구석에선 마수의 형상 그 깊은 곳에 박혀있는 근원석으로 향하는 마력의 흐름을 하나씩 베어내기 위해 그는 계속 몸을 움직였다.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더 스스로의 내력을 한계 너머까지 끌어올려 보면서.

또한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부족해진 긴박함에 대해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그리고는- 결국.

퀴이이잉-!!

칠흑의 궤적은 기어코 길을 만들어냈다.

마수의 미간, 그 깊은 곳에 박혀있는 그림자의 본질. 멸화급의 근원석. 그곳으로 이어지는 막대한 마력의 흐름. 그리고 그사이를 끊어내 만들어낸 작디작은 본질의 틈새를. 근원석을 베어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그렇게 그 순간.

-------------------------------------------------!!!

빛살처럼 나아간 검극이 마수의 미간에 자리하고 있던 마력을 끊어냈을 때. 기어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수는 여러 심경이 담긴 거친 포효를 토해냈다.

분노와 당황, 이제는 두려움까지 담아서.

어떻게든 유천하를 날려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마수는 전신에 자리한 마력을 미간으로 끌어올렸고, 그렇게 거대한 마력의 포화를 준비하면서도 끊어진 마력의 흐름을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마력을 머리로 밀어 넣었다.

키이잉··· 우우우우웅웅-!!!

거대한 마력 파동을 터트려 유천하의 신형을 강제로 뒤로 밀어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제대로 시간을 벌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시점의 중요성을 깨달은 유천하의 정신 또한 드디어 현실로 되돌아왔다.

“······.”

포화가 완성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찰나.

하지만 이걸 회피했다가는 모여든 마력이 다시 마수의 육체를 복구해낼 터였고, 그렇다면 다시 저런 틈새를 만들어낼 때까지 아리엘이 과연 버텨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저걸 막아내기 위해 업륜을 소모했다가는 확실한 마무리가 불분명해진다.

그런 만큼 어떠한 선택을 하냐에 따라 이 전투의 결말이 달라지리란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다시 허공을 박차며 마수의 미간을 향해 달려들어 갔다.

막대한 마력이 모여드는 정면을 향해서.

그 포화의 방향이 조준되는 곳을 향해.

그리고 그렇게.

슈욱- 콰아아아아아아앙-!!!!

마수의 포화가 기어코 그를 향해 발사된 순간에도 유천하는 상관없다는 듯이 마수의 미간을 향해 나아갔다. 이미 그의 감각 속에는 이 전장의 흐름이 담겨오고 있었기에. 그렇게 그가 무아에 빠진 사이에 주변으로 다가와 있던 다른 이들의 판단을 믿었기에.

그렇게 유천하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퀴잉-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포화와 저 뒤에서부터 뻗어져 나온 쌍색의 색채를. 아무런 말 없이 쏘아진 백색과 청색의 검강이 반월을 그리며 포화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온 힘을 짜내 탄검강을 쏘아낸 이하린과 남궁설아가 뒤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끝내··· 주세요!”

비록 두 사람의 검강은 이제야 막 검을 벗어난 수준이었기에 그리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업륜을 머금고 쏘아진 이하린의 검강과, 다시 남궁설아의 검강은 그대로 잿빛의 포화에 맞닿아 막대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카가가가각-!!!

물론 마력의 격차가 격차였던 만큼 청백의 색채는 이내 순식간에 격류에 휩쓸려 흩어져 버렸지만, 잿빛의 포화는 한순간에 처음의 기세를 잃어버린 채 흐트러져 버렸을 뿐.

하지만- 유천하는 그렇게 흐트러진 포화마저도 무시한 채 그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다시.

“씨발!! 가서 족쳐 빨리!”

그의 등 뒤에서 수십 개로 중첩된 푸른 빛의 파동이 막대한 마력을 머금고서 마수가 쏘아낸 포화를 강타했으니 그 즉시 상쇄된 파동이 그대로 허공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백색과 군청색, 푸른 파동과 다시 잿빛.

각각의 색이 깨져 흩날리는 마력의 편린.

콰아아아아아앙-!!!

그런 순간에도 유천하는 달려나갔고, 동시에 마수의 미간을 바라보면서도 만상의 눈으로 마력을 쏘아낸 마르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이솔라를 뒤에 업은 채 뛰어내린 마르네가 핏발선 눈으로 다시금 마력을 쏘아내는 모습을 말이다.

아니, 지금 이곳을 향해 마력을 쏘아내고 있는 건 그녀- 마르네 한 명만이 아니었다.

마수의 몸을 두들기던 아이들도, 멀리서 마법을 쏘아내던 아이들도, 피를 흘리는 아이들도, 몸을 휘청거리는 아이들도 마수의 상태를 통해 본능적으로 상황을 깨닫고선 마력이 몰려드는 곳을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유천하의 검이 다시금 마수의 미간을 베어 가를 수 있도록, 마수를 방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파동에 밀려 나갔던 유천하의 신형이 휘몰아치는 마력의 격류 속에 기어코 다시 마수의 눈앞에 도달했을 때. 그리고 별빛을 머금은 칠흑의 검신이 그림자를 베어냈을 때.

바로 그 순간.

-----------------------------------------------!!!!

콰과과과과-!!! 마수의 온몸이 폭발하듯 팽창함과 동시에 그 몸이 전부 그림자의 파동으로 변해 터져 나왔고, 그렇게 순식간에 휘몰아친 잿빛의 폭풍 사이로 흐릿한 무언가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천하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거대했던 몸을 모조리 마력으로 터트린 채, 고작 수십 미터 크기로 줄어든 마수의 초라한 도주를. 다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간에 새겨진 검흔과 그 틈새로 엿보이는 짙디짙은 마수의 근원석을 그는 발견하였다.

그리고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그렇게 하늘로 솟구치면서도 마수의 입에선 계속해서 포효가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외침 속에서 이제는 분노보다는 두려움과 절망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 순간.

“······.”

쾅-!! 유천하는 그대로 몰아치는 마력의 격류를 넘어, 허공을 박차고 그대로 마수를 쫒아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땐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 그에겐 하늘을 내달릴 힘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시. 지금의 자신에겐 저런 몰골로 변한 마수 정도는 한 번에 베어낼 힘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유천하의 눈은 마수의 움직임을 뒤쫒았다.

세상에 몰아치는 바람이 그를 가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마수의 거대한 몸체가 파괴되면서 도주를 한 순간 유천하의 눈은 그와 동시에 그것을 옭아매고 있던 언령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표 잃은 염원이 그대로 허공으로 흩어져 나가는 것과 그렇게 흩어지고 남은 마력의 흐름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저 멀리서 바라보는 아리엘의 모습을.

***

마수의 형상이 터져나간 순간 아리엘의 몸은 세차게 휘청거렸다. 아니, 같이 의식을 유지하고 있던 친구들과 뒤이어 보조를 하러 온 이들마저 한꺼번에 그 여파에 휩쓸렸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비록 마수가 제 몸의 대부분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기에 언령 자체가 깨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언령의 규모가 규모였던 만큼 되돌아온 미약한 일부의 반동만으로도 그들의 상태를 뒤집어 놓기엔 충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혼미해진 정신 속에서도 아리엘은 타오르는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마지막 마무리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무의미한 일이 돼버릴 터였기에, 아리엘은 입술까지 깨물면서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들어냈다.

‘마무리··· 까지 끝내야 해.’

물론 아리엘은 유천하를 믿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된 상황에서도 그라면 분명히 마수를 쫒아가 죽일 수 있을 거란 사실을. 아니, 오히려 저렇게 된 상황이기에 이제는 유천하 혼자서라도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음을.

그러니 아리엘 자신이 이대로 기절해버린다 한들 분명 유천하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이 길고 길었던 밤을 끝내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그녀는 지금 같은 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비록 완벽하진 못했고, 실수도 잦았고, 우연이 기댔고, 다시 어설펐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무언가를 해낸 기분이 들었다. 마수를 떨어트림으로써 아리엘 화이트는 저 자신의 자리를 찾아낸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만큼- 아리엘은 이대로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이 상황이 제대로 끝날 때까지 계속 그와 함께 같이 싸우고 싶었다.

그게 도움이 되든, 도움이 되지 않든.

그녀 자신의 최선을 전부 쏟아부어서.

그렇기에.

우우우우우웅-!!

아리엘은 깜빡거리는 세계를 느끼면서도 마지막 남은 마력과 정신력을 모두 끌어모았다. 마수를 붙잡으면서 한계까지 타올랐던 염원과 의식의 잔재를 긁어모아.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감싸 안아가면서.

그렇게 염원을 빚어내, 의식을 기원했다.

지금 유천하에게 가장 도움이 될만한 말을 내뱉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이 상황을 끝내주길 바라는 강렬한 바람을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 끝내버려.]

우웅-! 그렇게 유천하는 저 멀리서부터 들려온 작은 목소리, 아니 귓가로는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염원에 담긴 심상이 그대로 현실에 덧씌워지는 걸 바라볼 수 있었다.

“······.”

아리엘이 기원하는 염원이.

다른 이들의 바라는 결말이.

막대하게 몰려든 염원의 힘이 마력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의 검에 깃들었고, 그것을 느낀 유천하는 그대로 남아있던 자신의 모든 내력과 반 획의 업륜까지 전부 검으로 쏟아부으며 그대로 하늘을 박차고 내달렸다.

쿠구구구구구-!!!

일순간 바람의 흐름마저 일그러질 정도의 기운이 그 작은 검신에 모여들었고, 유천하는 그것을 일념으로 벼려내며 생각해보았다.

축제의 마무리는 화려한 게 좋겠지- 라는 정말이지 뜬금없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는.

업륜도, 내력도, 가호도 모두 깃들어진.

더는 뒷일 따윈 고려하지 않은 일격을.

오로지 이곳이기에, 지금 이런 순간이기에 내지를 수 있는 저 자신의 최선의 일격을.

그렇게.

-------------------------------------------------!!!

그림자의 심장을 향해 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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