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략의 의미 (4)
그들은 그렇게 첨탑 위에서 몸을 숨긴 채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질린 기색을 내비쳤고, 이내 사뭇 긴장된 모습으로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시작될 상황을 대비하면서.
반드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점점 가까워질수록 더 실감이 나고 있는 마수의 존재감- 그 말도 안 되는 크기와 마력량을 보며 세차게 뜀박질하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잠시 계획을 재고해볼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일단 하기는 하는데, 이거 암만 생각해도 미친 짓 같은데. 아니, 미친 짓이야.”
마르네는 욕설을 내뱉으며 잠시 생각했다.
유천하와 아리엘의 등장까진 괜찮았다. 눈앞에서 타천자의 능력에 휘말렸던 그들이 왜 거기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안심이 되었고, 포화를 막아내며 등장한 그들은 분명히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될만한 전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날아왔던 메시지.
[우선은 마수를 떨어트려야 해. 그리고 마력 방벽에 한 번이라도 틈이 생긴다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어. 떨어트리는 건 내가 하겠지만 틈이 필요해. 그래서 부탁할······.]
아리엘로부터 쏘아진 마력이 자아낸 내용을 확인한 순간 마르네 자신과 이솔라는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소린가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무척이나 도박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저런 계획이 가능하긴 한 걸까?
아니, 일단 아리엘이 말한 대로 저 괴물을 공략하기 위해선 저 녀석을 먼저 땅에 떨어트릴 필요성이 있긴 했다. 그건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자신들이 클리어해야 한다는 조건이 조금 어이가 없었고, 그 행위의 위험성이 너무나도 높았다.
하물며 그렇게 자신들이 제 역할을 해낸다 한들 반대로 아리엘은 정말로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도 떠올랐으니, 애초에 한눈에 봐도 저렇게 어마어마한 마력량을 품고 있는 마수의 몸을 언령으로 강제하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마력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물론 마르네도 아리엘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 그렇다 쳐도 그와 별개로 그만한 마력이 필요하다는 부분만큼은 현실적인 조건이었으니 그건 당연한 의심이었다.
“그걸 이제 알았어? 하지만 방법이 없어.”
“미친 짓이라기엔 동감하는데··· 이런 상황인 만큼 일단은 믿고 뭐라도 해봐야겠지.”
“상황이 미쳐 돌아가니 같이 미쳐줘야지.”
하지만- 그런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마르네 자신과 이들이 이곳에 와있는 이유는 저 괴물 같은 마수 새끼를 상대로는 도대체 저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고, 다시 그렇게 도박이라도 시도해보지 않으면 가망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상황이 암울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아무리 무모해 보여도, 결국 그러한 도박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에 욕설을 내뱉으며 심장을 가라앉히고 있던 마르네는 고개를 돌려 이솔라를 바라보았고, 이내 무척이나 복잡한 심경이 담긴 얼굴로 이솔라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근데······ 정말 괜찮겠어?”
“······.”
그러자 고개를 들어 올리는 그녀.
“힘들면 차라리 내가······.”
“······아니. 해야 돼. 이거.”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그러나 그 순간- 마르네는 속삭이듯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조금씩 떨리고 있는 이솔라의 손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그걸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에서 이솔라가 맡은 역할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차마 그 대답에 이의를 돌려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마음 같아서는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들, 당장 이 좆같은 상황에선 이 막돼먹은 계획만이 그나마 유일한 타개책이었으니 자신이, 그리고 이솔라가 공략자를 자처하는 이상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르네는 이내 착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해보자.”
“······응. 할게.”
그렇게 그녀들이 번잡해진 마음을 억누른 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마수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나자, 같이 마수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도 한마디씩 말을 꺼내왔다.
“어. 해야 돼. 아무리 위험해도 이 역할은 네 특성밖에 못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
“그래. 위험해도 해야지. 저 거지 같은 마수를 땅에 떨구든, 죽이든 해야 할 테니까.”
“대신 네가 무사히 위에 안착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든 지켜줄 테니 안심해라.”
“너는 터트리는 것만 생각하면 돼. 오키?”
애초에 시간이 급박했던 만큼 이 역할을 맡게 된 이들은 이솔라와 합을 맞췄던 팀원들과 각성자 협회에서부터 같이 지내온 아이들이었으니, 그들은 그녀의 상태를 이해하고는 그렇게 담담한 척 격려를 보내주었다.
“시발··· 내가 꼭 지켜줄게.”
“······응. 마르네가 지켜줘.”
그리고 그렇게.
-------------------------------------------------!!
마르네도, 이솔라도, 다른 이들도 모두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순간. 그들은 어느새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와 그림자의 채찍을 휘두르며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몸체를 마주할 수 있었고, 그 소용돌이치는 격류를 바라보며 그들은 그대로 발을 떼었다.
마력 파동에 맞닿아 무너져내리는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내려, 멸화급 마수를 향해서.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단 한 순간. 그 잠깐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멸화급 마수라는 이름의 댐에 구멍을 뚫어내기 위해서, 그리고는 저 거대한 괴물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그렇게 공략의 불씨를 피어 올렸다.
***
거대한 몸체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형상을 변화시킨다. 어느새 진시우의 공격은 아예 끊겨버린 뒤였고, 덕분에 마수의 신경은 이제 와선 온통 유천하를 향해서만 쏠려있는 상황. 그렇게 마수는 그를 쫓아 지상을 휩쓸며 헤엄치면서도 마치 바다와 같은 마력을 꿀렁거리며 사방을 공격했을 따름이었다.
마력을 파동으로 변환시켜 터트리고,
몸체를 그림자로 변환시켜 휘두른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어지간한 마수였다면 지닌바 마력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까지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을 수는 없었겠지만, 멸화급의 근원석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마수에게 마력을 선물해주었고, 멸화급의 마수는 그 마력을 아끼지 않고 고스란히 사방을 향해 쏟아내었다.
생도들을 상대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처럼, 유천하를 쫓아가면서도 다른 이들을 죽이는 것쯤은 문제없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쉴 새 없이 허공을 박차며 마수의 공격을 피하고, 다시 베어낸 유천하가 계속해서 용맥이 위치한 숲속을 달려나가던 순간. 바로 그 순간- 그는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수의 몸에 맞닿아 무너져내리는 첨탑처럼 생긴 건물과 그 위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을. 그리고 그 순간까지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마력을 끌어올리는 그들의 모습들을.
그리고- 다시 그와 동시에.
“······.”
“······.”
마수를 향해 뛰어내리던 이솔라는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하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녀는 이런 순간에도 평소와 같이 멍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이 이후의 일은 맡기겠다는 것처럼.
아니, 지금 이솔라는 분명 그런 의미로 그를 바라본 것이 맞았다. 애초에 이 계획의 키맨은 결국 유천하였으니, 자신과 다른 아이들이 이런 무모한 도박을 성공시켜도 결국 마수의 방벽에 잠깐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 정도밖에 안 될 터. 모든 상황을 끝내기 위해선 유천하의 마무리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도, 마르네도, 사카타도, 리베르테도 모두 그걸 위해 뛰어내린 것이니까.
------------------------------------------------!!!
그렇기에 이솔라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다시금 포효를 터트리는 마수의 몸체를 바라보며 대기의 마력을 조립해 바람을 일으켰고, 유천하가 계속해서 보여준 모습을 따라서, 그녀는 한순간에 허공을 박찼다. 바람을 박차서라도 빠르게 마수에게 도달하기 위해. 그렇게 한순간에 그림자를 향해 쏘아졌다.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마력의 돌풍.
그리고 빠르게 뻗어 나가는 신형.
키기긱··· 카샤사샥-!!
하지만 마수가 형체를 변환시키는 데 소요된 시간은 그야말로 단 찰나에 불과했으니, 허공을 가로지르며 쏘아진 분홍빛의 소녀는 금세 잿빛의 가시에 둘러싸이고야 말았다. 빠져나갈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말이다.
하지만.
“······.”
그런 상황임에도 이솔라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마수를 향해 뛰어내린 건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고, 뛰어내리기 전 마르네와 아이들은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말했으니까.
그렇기에 이솔라는 저를 향해 쏘아지는 공격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마력을 재조립하여 허공에 바람의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녀 자신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마수의 몸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혹여나 마수의 움직임을 놓쳐 계획이 실패하는 일은 없도록.
카카칵··· 후우우웅-!!
그리고 그렇게.
서걱-!! 이솔라는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신형을 볼 수 있었고, 허공을 내달리던 사카타와 리베르테의 검에서 별무리가 솟구침과 동시에 잿빛의 세계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오케이. 그대로 계속 가.”
“신경 쓰지 말고 쭉 가!”
솟구치는 그림자의 채찍을 베어 가르며, 이솔라가 무사히 마수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검은 순식간에 궤적을 그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딜··· 감히!!”
콰과과과-!! 그녀의 뒤에서부터 솟구친 푸른 파동은 마력의 해일이 되어 그대로 마수가 쏘아낸 가시들을 집어삼켰으니, 그렇게 이솔라의 신형은 등 뒤에서 들려온 마르네의 목소리 속에 한 번 더 앞으로 떠밀렸을 뿐.
푸른 파도를 타고 허공을 유영한다.
잿빛의 대지를 향해 흘러가는 신형.
그렇게 이솔라는 그 마력의 해일을 날개로 삼아, 저 자신이 만들어낸 바람을 발판으로 삼아 계속해서 마수의 등을 향해 나아갔다.
그 누구보다 빠르고, 평온하게.
후웅-! 같이 뛰어내린 서른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일제히 표적이 되어 마수의 신경을 분산시켜주고 있는 사이에, 다시 협력전에서 한 팀을 이뤘던 아이들이 그녀의 주변을 지키며 그림자의 가시를 쳐내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그렇게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탁.
그림자의 대지에 내디뎌진 그녀의 발.
무너지는 건물에서 뛰어내린 지 고작 3초가 지났을 시점에서, 이솔라는 그렇게 아무런 피해 없이 목표했던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짧은 시간 동안 같이 뛰어내렸던 이들 중 3분의 1이 마수의 그림자에 꿰여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해버렸지만, 그래도 그녀만큼은 무사히 그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
다른 이들이 아직 허공에서 가시를 쳐내던 순간에도, 유천하와 다른 이들에게 정신이 팔린 마수가 등에 내려앉은 그녀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여유를 부리고 있던 순간에도 그녀는 제 일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아리엘이 그녀에게 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이유. 다른 이들이 시선을 끌기 위해 가시에 꿰여 나가면서도 그녀를 지키고자 했던 이유.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던 역할을.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우웅··· 카각.
잿빛의 대지를 분해하기 시작했다는 말.
-----------------------------------------------!!!
콰과과과과-!!! 그렇게 이솔라가 마수의 등위에서 무릎을 굽힌 채 땅, 아니 마수의 형체를 짚은 순간. 바로 그 순간 손에 맞닿은 모든 게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애초에 이솔라의 특성 <세계천칭>은 그녀 자신이 원하는 이상 모든 것을 치환시키는 힘이었다. 마력도, 물질도 모두 그녀가 생각하는 동등한 가치로 변질되었고, 그것은 분명히 그 특성의 대상이 되는 개체의 저항력이나 방어력과는 별개로 적용되는 힘이었다.
그러니- 그림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을 뿐.
콰과과과과과-!!!
비록 이솔라 본인의 신체적 기량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에, 그리고 전력으로 능력을 개방할 시 조절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특성이기에 평상시라면 이렇게 발동하기가 힘든 능력이었지만, 분명 조건만 갖춰진다면 그녀의 특성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도, 그림자 마수도 모두 분해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분해가 아닌 치환이었지만 그림자의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던 마수의 몸체는 그대로 대기 중의 순수한 마력으로 교체되고 있었으니 사실상 말 그대로 분해에 가까운 현상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잿빛의 색채가 다시 푸르게 휘몰아친다.
꿈틀거리는 형상이 허공으로 흩날린다.
그렇게 그 손에 닿는 모든 게 바스러지고, 흩어지며 마력도 형상도 색채도 모두 뒤섞여 가시화된 마력의 탁류를 자아내기 시작했으니- 이걸 위해 그녀는 이곳에 온 것이었다.
막대한 마력의 격차와는 상관없이 이 방벽에 잠시나마 이렇게 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등천회랑의 천이 넘는 생도들 중에서도 오직 그녀만이 가능한 행위였으니 말이다.
-------------------------------------------------!!!
그렇기에.
“······.”
푸슉-!! 이솔라는 그림자로부터 쏘아져 나온 잿빛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능력을 발현시켰고, 뚫린 살결은 흐르는 피를 경화시켜 메워버렸다. 아프다는 생각도,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이 지금 이걸 하지 않는다면 분명 다른 누군가가 더 아프고 무서운 일을 겪게 될 테니까.
지금 좀 아프다고 멈췄다간 아무도 이걸 죽이지 못할 테고, 그럼 이게 자신도, 마르네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죽일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솔라···!!”
그녀보다 한발 뒤늦게 마수의 등에 도달한 마르네가 사방에 마력을 쏘아대며 이솔라를 향해 달려왔고, 능력을 발동시키느라 무방비해진 이솔라의 전신이 피로 물든 것을 바라보고는 이를 악물며 특성을 발현시켰다.
이솔라를 향해 쏘아지는 가시를 모두 부러트리면서, 다시 그녀의 능력을 돕기 위해서.
그렇게 마르네가 제 몸의 반동 따윈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특성 <파동증폭>을 최대로 발현시키며 이솔라의 특성을 한계까지 증폭시켜준 순간, 그리고는 뒤이어 무사했던 다른 아이들까지 그곳에 도달했던 순간, 마수의 마력 방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
바로 그 순간.
-----------------------------------------------!!!!
콰직-! 그 마력 방벽의 일부가 순식간에 깨져나가며 흩날렸고, 터져 나오는 그림자의 파동 속에 허공을 유영하던 잿빛의 고래는 허공에서 멈춰 선 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마력 파동.
중력을 거스른 채 부유하던 수백 미터의 성채가 서서히 진동하며 사방에 막대한 마력을 토해내기 시작한 순간, 동시에 유천하를 쫓아가던 몸을 멈춰 세운 마수가 허공에서 휘청거리며 사방에 마력을 터트려대던 순간.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속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존재했다.
“······돼, 됐다!!”
“응. 시작할게.”
드드드-!! 분명 저 멀리서 터져 나온 여파에 그곳에 있던 이들의 몸마저 한차례 떨려올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그곳에 서 있던 그녀- 아리엘은 지면의 떨림을 느끼면서도, 몸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면서도 그녀의 의식은 끊임없이 사방의 마력을 제어해 조율해나가는 중이었으니, 아무리 지금 터져 나온 마력의 여파가 거세다 하더라도 지금 그녀가 제어하고 있는 이 마력의 흐름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아리엘은 저 하늘 위에서 들려오는 마수의 포효소리를 들으며 생각해보았다.
‘역시··· 부족해.’
지금 이 순간 마수의 마력 방벽이 깨져나갔지만, 저건 온전히 공략해낸 게 아니라 편법을 통해 잠시 구멍을 뚫어낸 만큼 이대로 내버려 두면 다시 순식간에 재생이 될 터였다. 아니, 이미 마수는 일부나마 깨져나간 마력의 방벽을 빠르게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세계와 동화되어 있던 그녀의 감각은 마수의 몸 위에서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이솔라와 마르네의 마력을 관측할 수 있었고, 그 찰나를 틈타 마수를 향해 검을 그어낸 유천하가 썩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저만큼 흔들린 정도로는 그 내부의 마력과 재생력까진 어찌할 수 없었고, 마수의 체구가 체구인 만큼 제대로 마력 방벽을 거둬내고 토벌을 시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애초에 다른 등급이면 모를까 아무리 유천하라도 멸화급을 일격사 시킬 순 없는 노릇.
그렇기에.
----------------------------------------------······
아리엘은 끊임없이 심상을 그려냈다.
이미 한계까지 느려진 사고의 속도를 체감하면서도,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부족했던 시간만큼 그녀는 더 강하게 염원하였다.
무의식의 깊은 영역까지 모두 끌어올려서.
자신의 정신력을 바닥까지 긁어내서라도.
그렇게 두 눈을 반개한 채 하늘을 바라보는 아리엘의 주위에는 그녀와 지난 한 달 동안 합을 맞췄던 그녀의 친구들이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의식을 동조시키고 있었으니, 그렇게 겹쳐지고 겹쳐진 정신 속에서 아리엘은 점점 세계가 멈춰 서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저가 바라는 심상을 완성해 나갔다.
저 거대한 마수가 땅에 처박히기를.
그 몸체가 지면 위에 짓눌리기를.
아리엘은 끊임없이 그려내고 염원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렇게 심상을 완성해 나갈수록 점점 용맥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그녀가 제어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사방을 뒤흔들기 시작했지만, 아리엘은 그럼에도 계속 마음을 그려냈다.
지면의 흐름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리며.
다시 마력을 하나의 현상으로 자아내며.
단 한마디- 그 한 번의 읊조림이 오기 전에 그녀의 몸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아리엘은 계속해서 그 마력을 붙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당연히 이미 한계까지 끌어 올려진 그녀의 정신은 마법의 심상을 그려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에 접어들어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해나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리엘은 마력을 제어해나가며, 다시 언령의 심상을 그려내며, 마력의 문자로 흐름을 만들어내며, 여러 갈래로 분할된 사고 속에서도 잠시 그 부분을 되짚어보았다.
우선 이 시도가 실패하면 같은 수법은 더 이상 안 통할 터. 이 순간 이솔라의 시도가 성공한 것도 마수가 방심한 덕분이었지 결코 그 행위의 난이도가 간단해서는 아니었다. 지금도 마수가 빠르게 마력 방벽을 회복시키고 있는 만큼,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이들을 죽이기 위해 몸을 변형시키고 있는 만큼, 다음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저들을 구하기 위해선 자신도 빨리 언령을 읊조려야만 했다.
그러므로.
‘무조건 성공해야 돼.’
분명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저 살아 움직이는 재앙을 잡아내기는 힘들었다. 지금의 이 시도만이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런 시도마저도 오직 유천하가 있기에 주사위를 던져볼 수 있는 도박이었다.
그리고 마수를 공략하기 위해선 근원석을 깨트려야 했다. 하지만 근원석을 깨트리려면 우선 근원석을 찾아야 하고, 그걸 위해선 마수의 마력 방벽을 깨부수고 재생력을 깎아내며 차근차근 마수를 공략해 나가야만 했다.
저 수백 미터의 달하는 거대한 괴물을.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물로부터 말이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렇기에- 이것이 최선의 가능성이었다.
아리엘은 다시금 그 점을 되새겨보았다.
유천하라면 마력 방벽이 파괴되고, 약간의 시간만 주어져도 충분히 마수를 공략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에겐 근원석을 바로 파악해낼 눈과 마수의 마력을 뚫고 근원석을 향해 나아갈 실력과 결정력이 존재했으니까. 그에게 필요한 조건의 기준은 분명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기준보다 훨씬 더 간단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러한 차이는 확실히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가능성이었다.
또한 원래라면 그런 절차조차도 자신들의 능력으로 해결하기엔 버거웠겠지만, 승천제를 위해 준비해왔던 일들은 이 순간- 미미할지언정 분명 공략의 불씨를 지펴주었다.
그러니 한번 도박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
유천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클리어해야 하는 조건은 분명히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하나를 위해선 결국 다시 세 개의 조건을 클리어해야만 했다. 방벽을 깨트리기 위해선 생도들이 마수를 공략할 수 있도록 녀석을 땅에 떨어트려야 했고, 땅에 떨어트리기 위해선 다시 녀석의 방벽을 깨트리고 막대한 마력을 때려 박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그렇게 모순이 발생한다.
만 단위가 넘어가는 마수의 마력량으로 인해 방벽을 깨트리려면 적어도 수백의 생도들이 모여서 두들겨야 할 테지만, 저 마수가 드높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땅에 마수를 떨어트려야 했지만, 다시 저런 규모의 마력 방벽이라면 어지간한 마법은 먹히지도 않을 터.
그러므로 우선은 이솔라가 필요했던 것이다. 언령을 읊조려서 녀석을 떨어트릴 그 잠깐의 순간. 그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방벽이 사라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솔라는, 아니 다른 아이들까지 저들 모두는 분명 제 역할을 훌륭히 완수해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할 차례야.’
그렇다면 다시 마수를 떨어트리기 위해 남은 문제는 그런 규모의 언령을 자아낼 막대한 마력을 보충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됐다.
마수가 역류한 위치가 이곳이었다는 점.
바로 3학구에서 역류했다는 점 덕분에.
땅의 정기가 모여 만들어진 마력의 강.
기나긴 세월 동안 쌓여온 지맥의 흐름.
이곳에는 그러한 장소가 존재했으니까.
그런데 문득.
‘······.’
잠시 그 부분을 되짚어보고 있자니 아리엘의 무의식 속으로 갑작스럽게 유천하와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마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
물론 이곳에선 유천하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지금 그에게 판을 만들어주기 위해 심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조금 전 그에게 그간 쌓아왔던 감정을 모두 쏟아내었다는 점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분명 여러 이유가 있긴 했을 터. 아리엘은 무의식 속에서도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문득 떠올랐던 그 생각은 계속해서 꼬리의 꼬리를 물고 뻗어져 나갔다.
‘······.’
아리엘이 기억하고 있는 유천하의 첫인상은 두 가지였다. 입학식 날 마주쳤을 때와 그다음 날 3학구의 이곳에서 마주쳤을 때.
그중 가장 첫인상은··· 사실 좀 미묘했다.
배치 고사에서 마수를 빼앗겼을 땐 참 얄미웠고, 끝나고 나서 그를 찾아갔을 땐 무신경한 눈으로 단답만을 되돌려주는 그의 태도가 무척이나 차갑게만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대하긴 했지만, 얘랑은 친해지긴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이곳에서 유천하를 다시 마주쳤을 땐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 야심한 시각에, 인적 하나 없는 숲속에서 여전히 무기질적인 눈을 하고 있는 그가 나타났을 땐 얼마나 놀랐던가? 그러나 더욱더 당황스러웠던 건 그렇게 차갑게만 보이던 그가 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까 그걸 풀어주려고 어색하게나마 장난을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왜 우울해했는지 알아서 그랬던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울리지 않게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오던 그날 밤의 유천하는 분명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첫인상과 그날 밤의 모습이 뒤섞인 채로, 이곳에선 유천하와 많은 일을 겪게 되었다.
같이 수련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그러다가 어느 날 이하린까지 와서 다시 셋이서 수련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말이다.
이곳에서 카룬드를 마주쳤을 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고, 다시 조금 무서웠지만 기절한 자신을 지키려고 분투했던 이하린이 고마웠고, 위험한 순간에 나타나 아무렇지 않게 타천자를 베어내던 유천하의 뒷모습이 또 대단해 보였다. 이하린과 남궁설아가 같이 나타났을 때도 당황스러웠지만, 유천하가 그사이에 끼어들어 무학에 관해 이야기할 땐 아무것도 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도 자신들은 다시 이곳에 모여 여전히 같이 수련을 했고, 떠들었고, 그러다가 문득 나무에 옹기종기 걸터앉아 달을 구경하며 바람을 쐬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곳에선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많았고,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고, 슬펐던 적도, 위험했던 적도, 무서웠던 적도, 짧은 시간 동안 어느새 이런저런 기억들이 촘촘히 쌓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
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하나씩 떠올려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곳에 용맥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려줬던 건 바로 유천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마력을 제어해낼 수 있게 된 건 오직 유천하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축언의 힘을 쌓고, 의식의 동조를 준비해왔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자신은 유천하를 믿고, 오직 그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기에.
“······.”
아리엘은 이 찰나의 순간 속에서도, 하늘 위에서 휘청거리는 마수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유천하의 얼굴을 떠올렸을 따름이었다.
이 모든 인과의 흐름이 전부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일인 것만 같이 느껴졌기에. 이 순간의 주인공이 마치 그처럼 느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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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리엘은 이내 심상이 완성됨과 동시에 현실로 되돌아오기 시작한 의식 속에 다시금 작게나마 웃음을 터트렸을 뿐이었다.
주인공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떨까. 아까 유천하와 단둘이 있을 때 이런저런 속마음을 쏟아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이 순간만큼은 가슴 한구석이 후련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지난 몇 달간 그녀를 괴롭히던 조급함과 열등감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 그가 자신에게 뭐라 말했던가?
유천하는 분명히 그 자신한테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리엘 자신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각자의 역할이 존재하니까 완벽해지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줬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맞는 말이었다.
같은 곳에 서서 싸우고 싶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그러다가도 스스로를 자책해선 바보처럼 울며 어리광을 피우는 자신이라 해도 분명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역시.
쿠구구구구구구구구-!!!
“아리엘! 시간이 없어 빨···!”
“응. 다 끝났어 이제. 괜찮아.”
자신이 못 하는 일에 자책하며 바보처럼 울며 주저앉기보단,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점을 찾아 나서는 게 제게는 더 어울렸다.
비록 그처럼 전면에서 모든 걸 해결해주는 초인이 되어줄 순 없더라도, 저에게도 저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지금처럼 분명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
아리엘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보았다.
다른 아이들과 동조된 의식 속에서, 용맥의 마력을 뽑아내 만들어낸 주언의 골자를 다시금 되새기며, 주변에 몰아치는 마력의 문자와 그녀의 마음속에 그려진 단 하나의 심상을 끊임없이 현실에 합일시키면서.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것만 같은 육신과 타오르는 뇌를 억누르며, 언령을 내뱉는 순간 사라져버릴 막대한 흐름을 그대로 제어하며. 풀려나오는 마력의 잔재마저 그걸 그대로 제어력을 통해 게걸스럽게 모두 그러모아서.
그 작고 가냘픈 손은 하늘을 움켜쥐었다.
훙- 그리고는.
[떨어져. 저 밑으로.]
평온하게 울려 퍼지는 작은 목소리.
분명 그 목소리의 울림은 미약했다.
하지만 속삭이듯 흘러나온 부드러운 목소리는 대지와 하늘을 내달리며 3학구에 똑똑히 울려 퍼졌고, 그 작디작은 목소리 속에는 분명히 방대한 마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 근방에 자리하고 있던 수백 명이 바라디 바라는 염원이 그려져 있었다.
--------------------------------------------------!!!
거대한 마수를 지상으로 끌어내려서.
그 심장을 물어뜯고 싶다는 바람이.
***
분명 세상에는 많은 단어가 존재했다.
어쩌면 그들은 사냥을 했기에 헌터라 불릴 수도 있었고, 다시 이능에 눈을 떴기에 각성자라 불릴 수도 있었으며, 또 사람의 한계를 넘어섰기에 초인이라 불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공략자를 자처하는 이유.
-------------------------------------------------!!!
그것은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아무리 그들 앞에 고난이 닥칠지라도, 그들이 맞서야 하는 게 항거할 수 없는 절망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에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그저 두렵고 절망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공략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는 마음가짐을 담고, 그것을 공략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처음 그림자를 마주했던 순간부터 그에 맞서기로 다짐한 이들은, 심연이라는 거대한 절망을 마주하고도 그에 맞서기로 다짐한 이들은 스스로를 공략자라 자처했다.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기 위해 도전하겠다고 다짐하며.
저 혼자서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서라도, 해내겠다 맹세하며.
그렇게 그들은 헌터가 되지 않았다.
다시 일개 각성자로는 남지 않았다.
초인이라 불리어도, 계속 정진했다.
오로지- 그림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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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찌 맨몸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불가능한 위업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기에 등천자라 불리었다.
그리고 다시- 그렇게 나아간 끝에 마침내 불가능의 위업을 넘어서, 두려움의 벽을 넘어서 하늘에 도달했기에 승천자라 불리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공략자를 자처해왔다.
불가능과 두려움, 한계와 조건.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 모든 것을 끝내겠다 다짐했던 이들만이 등천의 업을 달성하였고, 그걸 이뤄낼 수 있으리라 증명해낸 이들이 승천의 업에 도달하였다.
일신의 재능과 무력만을 믿어왔던 자는 두려움 앞에서 뒷걸음질 치게 되었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도 나아가려 하는 자는 그렇게 업이란 인과 속에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왜··· 모이라 하나 했더니.”
“···저걸 어떻게 떨군 거야?”
“미쳤네. 진짜. 개 미쳤어!!”
부족함 속에서도 언젠가의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기 위해 이곳에 와있던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추락하는 거대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푸른 마력과 잿빛의 그림자를 온몸에서 토해내며 추락하는 그 성채를.
그 말도 안 되는 비현실의 풍경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짙어져 가는 마수의 마력과 그 거대한 체구를 바라보며, 두려움과 저걸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을. 다시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슈우우······ 콰과과과과과광-!!!!
“떨어졌네 이제. 가자. 마무리하러.”
“마무리라니? 시작부터 방심하냐?”
“뭐래. 마무리 역은 따로 있으니까. 열심히 마력이나 긁어내. 이왕이면 죽지 말고, 죽을 것 같으면 한 대라도 더 때리고. 오케이?”
“멸화급이 대수냐. 쑤시다 보면 죽겠지.”
그렇게 굉음이 울려 퍼지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지금 아이들, 아니 공략자들은 거대한 재앙을 공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