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략의 의미 (3)
지상에서 쏘아진 백색의 포화가 하늘 위에 오선지를 그려내고, 거대한 그림자가 그곳을 휘저으며 불협화음을 자아내고 있었을 때. 아리엘과 다른 아이들이 필요한 마력을 충당하기 위해 3학구를 내달리고 있었을 때.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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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궤적이 잿빛의 대지를 베어 갈랐다.
서걱-! 근원석에서부터 시작된 마력의 흐름이 작디작은 검 한 자루에 맞닿아 끊어졌고, 휘몰아쳤다. 포화를 쏘아내려던 마수의 몸에서 다시금 터져 나오는 그림자의 파동.
아니, 그건 마치 하나의 해일과도 같았다.
수백 미터의 체구에서 끓어오르듯 들끓은 표면은 그대로 팽창하며 다획의 파문을 자아내며 퍼져나갔고, 그렇게 터져 나온 파문의 한겹 한겹에는 막대한 압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곳에서 시작된 여파만으로도 지상에 있던 아이들의 몸이 흔들렸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유천하는 그러한 파동의 여파를 베어내며 계속해서 잿빛의 대지를 내달렸다.
콰과과과과과과과-!!!
그 몸에 안착한 작은 신형은 마수의 거대한 육체를 짓밟아가면서 발을 박찼고, 그러자 마수의 몸뚱어리는 유천하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거리며 수십, 수백 다발의 가시를 뽑아 표면의 모든 걸 휘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울려 퍼지는 투박한 소음.
카가가각-!! 칠흑의 검신은 대지를 내달리며 지면, 아니 그림자에 처박힌 채 그대로 살을 베어 갈랐고, 거기서 꿀렁거리는 그림자가 휘몰아치는 마력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다시 몸체를 구성하고 있던 마력의 흐름이 계속해서 끊어져 버리자 마수는 분노가 가득 담긴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곤 일그러진 울음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마수의 몸이 한 순간에 제자리에서 소용돌이쳤다.
후우우우웅-!!
순식간에 뒤바뀌는 하늘과 땅의 경계.
팽이처럼 돌아가는 거대한 잿빛의 산.
마수의 몸을 내달리던 유천하의 몸이 순식간에 중력에 영향을 받아 허공에 내팽개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천하는 다시금 허공을 박차며 마수의 몸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앙-!! 또다시 터져 나온 막대한 파동에는 그 또한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을 뿐.
마치 누가 폭탄이라도 심어놓은 것처럼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다회의 파동 속에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 있었고, 유천하로서도 발 디딜 공간조차 제대로 없는 곳에서 아무런 손해 없이 그걸 베어내는 건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쾅! 콰과광! 콰아앙-!!
“······.”
그렇게 바람의 결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른 유천하는 끊임없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몸체를 꿀렁거리며 저 자신을 쫒아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그 가운데서 저를 노려보는 잿빛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해보았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마력량- 바로 그게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건 어쩔 수 없는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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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육체는 고작 2m 남짓. 그런 만큼 그 작은 체구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마력의 양은 분명 한계가 있었고, 체적에서부터 나오는 질량의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저 마수는 수백 미터의 몸뚱어리를 갖고도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였고, 그 거대한 산등성이에는 그 크기에 어울리는 마력이 깃들어있었으니 어찌 저걸 보고도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유천하는 저 모습이 믿기지 않았을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만상의 눈으로 마수의 마력량도, 그 속에 있는 근원석의 크기도, 마력의 흐름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그는 그런 부분이 더 믿어지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재해- 저것에는 그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그리고 그렇게.
‘5분.’
유천하는 다시금 허공을 박차 마수를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도 전투에 돌입한 뒤 지나간 시간을 세어보았으니, 그는 그 사실을 되새기며 빠르게 스스로의 상태를 관조해보았다.
우선 소모가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사태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상대했던 적들의 수준이 수준이었고, 타천자를 상대로는 다른 아이들 덕분에 최소한의 피해로 끝낼 수 있었던 덕분이었지 결코 이 대치가 편해서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만상의 눈과 풍결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대치를 이어나가지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유천하는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이대로는 조금 곤란하겠어.’
2획의 업륜과 2번의 에테리얼 크리스탈. 이미 저 자신은 이 세계에 오고부터 가용 가능한 기운의 증가를 빠른 속도로 이뤄냈지만, 무림이었으면 충분하다 느껴졌을 내력이 이 상황에선 너무나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을 상대로 할 때라면 그 체적으로 인해 상대의 강약과는 별개로 한 번의 유효타만으로도 승패가 성립됐을 테지만, 재생력과 거대한 몸체를 갖춘 마수를 상대로는 힘의 소모 또한 필연적으로 동반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개개인의 경지와는 별개의 요소.
순수한 힘의 크기에서부터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고, 기술이 좋다 한들 마수를 상대로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했다. 물론 유천하에게 만상의 눈이 존재하듯 예외는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상의 눈으로 근원석을 들여다본다 한들 분명 그 앞까지 도달하려면 힘이 필요했고, 지금 유천하의 힘으론 조금 모자랐다. 포화를 막음으로써 업륜을 소모했고,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 업륜은 오로지 1획뿐.
그렇기에 유천하는 소모를 줄여야 했다.
이 1획의 업륜과 남아있는 절반의 내력은 모두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마수의 심장을 깨부술 송곳이 되어야 했으니, 사전에 아리엘과 계획을 짜 맞춘 이상 그로서도 더 이상의 소모는 곤란했고, 위험하다 볼 수 있었다.
아무리 풍결의 가호로 기동을 돕고, 만상의 눈으로 흐름을 파악해 최소한으로 대응을 이어나가도 교환비 자체가 달랐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상황.
“······하.”
그는 문득 든 생각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역시 저게 수호자급 마수의 무서움이었다. 사람이 쌓아 올린 기량을 넘어서, 경지와 수준의 차이를 떠나 순수한 힘의 크기에서부터 같은 선상에 도달하지 않으면 교환비에서 승패가 갈린다.
아무리 하나씩 깎아나가도, 기예의 이점으로 해결하려 해도 힘의 차이가 수배를 넘어 수십 배까지 벌어지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실제로 황혼급 정도의 규모라면 그 자신의 힘 또한 최소한의 선상에는 도달한 상태기에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겠지만, 역시 멸화급 정도가 되니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림의 기준에선 자신 또한 상당한 수준의 내공을 쌓았다 할 수 있을 텐데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교전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유천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쁘지 않아.’
지금 이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엔 재밌다는 생각도 들고 있었으니, 그는 이 승산이 희박한 싸움 속에서, 다시 상식을 벗어난 광경을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그에게는 이 비현실의 풍경이 그저 즐겁게만 다가왔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게 허상이란 걸 알고 있기에 그런 걸까? 아니, 현실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천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다시 오히려 이 모든 게 허상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이 모든 게 현실이었다면, 이 모든 게 실제로 들이닥친 시련이었다면, 자신은 여기서 무슨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유천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빠르게 결론을 내려보았다.
자신은 두려움을 느꼈을까? 아니면 막막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유천하는 그 모든 걸 긍정했다.
애초에 주어진 조건과 관계없이 저 자신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 공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스스로 승기를 잡아내는 것- 그게 그가 지난 중간고사에 제출했던 답이었으니 말이다.
저 자신의 힘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했더라도 자신은 방법을 찾기 위해 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쳐서 그러다 다시 무언가를 찾아냈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기에.
“······.”
유천하는 이 순간 갈증을 체감했다.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재능도, 인과도, 기회도 모두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저 스스로가 목표로 하는 곳이 너무나도 드높았기에 유천하는 지금의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아리엘이 뭐라고 말했던가?
목표로 하는 곳이 아직도 너무 높아 보이기에, 그래서 같은 또래인 자신을 상대로도 주저앉게 된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 않았던가?
그건 분명 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아무리 의무를 잠시 내려놓았어도, 스스로의 조급함을 비워두고, 다시 그 속에 여유를 채워놓고 있는 중이라 해도 그 모든 것과 무관한, 그러면서도 중요한 부분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은 무인이라는 것.
유천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유천하는 무인이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는 사실도, 환생자라는 사실도, 소설 속 세계에 들어오게 된 이레귤러라는 사실도 모두 그를 칭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검을 들고 무극에 닿기 위해 나아가는 무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곳에 닿고 싶었다.
어린 날의 기억. 겨울날의 서늘함 속에서 심상 깊은 곳까지 각인된 저 자신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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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것은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었다. 그 체구도, 마력도, 모두 일개 생명체가 대항하기엔 너무나도 비대한 규모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게 저의 아버지였다면 저 거대한 괴물마저도 검으로 베어냈을 거란 걸. 한줄기 마음을 벼려내 그대로 하늘과 함께 그림자를 베어 갈랐을 거란 걸. 아무리 마력이 많더라도, 아무리 괴물의 몸뚱어리가 거대하더라도, 마음으로 벼려진 검은 분명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를 베어냈을 것이란 걸.
고작 3척 남짓한 검만으로도 그렇게 베어갈랐을 거란 사실을 유천하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저를 쫒아 허공을 가로지르는 마수를 바라보면서도 점점 차오르는 갈망을 느낄 수 있었고, 다시 이런 순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번민을 되새겨보았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
유천하는 이내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심검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엔 자신은 아직 너무나도 미약했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선 결국 천마신공의 8성과 9성, 극성에 도달해 진정한 의미로 무의 극의에 도달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저 중원 무림의 지고한 고수들 중에서도 오로지 시조와 당대의 천마인 자신의 아버지만이 도달했던 경지였기에 그 아득한 무의 저편에 닿기 위해선 오히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나아갈 필요성이 있었다.
마음속 번민에 쫒겨, 조급함에 쫒긴 결과가 어떻게 되돌아왔는지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자신이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뼈저리게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직은 갈망할 때가 아니었다.
유천하는 마음속 번민을 가라앉혔다.
“······.”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의 검이 아닌 오로지 제 손에 들린 작디작은 검신으로 녀석의 심장을 베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이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유천하가 쉴 새 없이 허공을 박차며 마수를 이끌고 3학구의 허공을 내달리고 있었을 때. 그리고 아리엘의 메시지를 받은 진시우가 조금씩 쏘아내는 빛의 포화를 줄이고 있었을 때. 마지막으로 같은 메시지를 받은 이솔라와 다른 아이들이 준비를 끝마쳤을 때.
바로 그 순간.
3학구에 하늘 위로 쏘아진 빛이 있었다.
슈우우··· 퍼어엉-!!
마치 축제의 밤을 축하하듯, 다시 이 갑작스러운 재해의 두려움을 희석 식히듯. 3학구의 한구석에서 쏘아 올려진 빛은 무채색으로 뒤덮인 하늘에 맞닿아 색채를 자아내었다.
다채로운 빛으로 마력의 문자를 그려내며.
다시 그렇게 공략의 불씨를 피어 올리며.
[33°24'51.4"N 126°40'44.1"E]
[모두 이곳으로! (★≧▽^))★☆]
정말 어처구니없는 모양새로 말이다.
계획 자체야 탈출하기 전에 미리 이야기된 부분이긴 했지만 저렇게 쏘아 보낼 줄 몰랐던지라 유천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발을 박찼다.
“······하.”
그녀에겐 이 상황이 현실일 텐데도 저런다는 게 참 그녀다워서 웃음이 나왔고, 또 오히려 현실이기에 저러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분명히 저렇게 화려하게 터트리면 이곳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을 터. 안 그래도 이 모든 걸 현실로 느끼고 있을 아이들에겐 멸화급 마수의 존재는 분명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을 터였고, 아무리 올곧은 마음가짐으로 몸을 움직여본다 한들 그러한 두려움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빛은 어둠이 있기에 밝아 보이는 것이며, 그러한 위험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불태우며 두려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공략자였고, 다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게 바로 승천제의 의의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아리엘이 진실을 알 리는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고 저런 건 아니겠으나, 적어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환기해주려고 저러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자신도 그에 발을 맞춰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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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천하로서도 그녀의 계획이 무조건 성공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본 결과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무모한 시도에 기대를 걸어볼 뿐이지.
만약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래서 생도들끼리의 토벌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유천하는 왠지 모르게 정답을 알 것만 같았다. 적어도 이번 축제에 굳이 두 명씩이나 되는 승천자가 방문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시련이라 한들 마지막엔 결국 희망을 보여줄 생각이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그건 좀 마음에 안 들어.’
유천하 또한 아리엘과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들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에, 이런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도 저런 멍청한 마수 하나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질 터였다.
그리고 유천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비록 이런 상황을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축제의 클라이막스가 어떻게 되든 그런 건 중요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이 실패한 마당에 남의 손으로 해결되는 모습을 순순히 맞이해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다시금 발을 박찼다.
저를 쫒아 공중을 헤엄치는 마수를 이끌고선 그대로 지상을 향해서. 아리엘과 사전에 이야기해둔, 동시에 이제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3학구의 한 숲속을 향해서.
그곳에서 이 축제를 끝내버리기 위해서.
***
하늘에서 거대한 섬이 떨어져 내린다.
아니, 대기를 가로지르며 하늘을 헤엄치는 잿빛의 고래는 자신의 온몸을 난자해놓고 도망가는 작디작은 개미를 집어삼키기 위해 분노 어린 포효를 토해냈고, 끊임없이 마력의 파동을 터트려대면서 산등성이를 헤집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느덧 상당히 지상에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마수는 유천하를 뒤쫒아가면서도 지느러미를 채찍처럼 휘둘러 지상을 계속 난타해댔으니, 지금 그들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숲이 파헤쳐지고, 산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 콰아아앙-!!
-아니 시발···!! 저걸 어떻게 피하는 거야?!
-당연히 하늘을 뛰댕기니까 피하는 거지!!
-야야! 위위!! 산사태 산사태! 일단 뛰어!
-나도···! 제발 누가 나도 가호 좀 주세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지상을 헤엄치는 마수의 행태에도 정작 유천하는 이리저리 허공을 박차며 피해 없이 하늘을 내달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점점 그곳으로 모여들어 동선이 겹쳐지게 된 아이들은 기겁하며 무너지는 흙더미를 피해 발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도들의 숫자는 점점 갈수록 무시 못 할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니, 그렇게 유천하를 뒤쫒으면서도 마수는 이 상황에 의아함을 느끼게 되었다.
잿빛의 눈동자가 혼탁하게 일렁거린다.
하지만 마수는 이내 생각을 거두고 제 시야에 들어오는 찬란한 색채들을, 잿빛의 세계속에 유일하게 색을 갖고 있는 작은 불덩이들을 향해 마력의 파동을 쏟아내며, 제 몸의 형상을 채찍처럼 변환시켰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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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를 갖지 못한 채 부정의 사념이 그러모아 만들어진 반푼이는 이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그러한 색채를 질시할 수밖에 없었다.
침식의 구렁텅이에서 생명을 질시하고, 부정하여,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을 짓밟고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무언가- 그것이 바로 그림자 마수였으니 그들은 그 등급과, 종류와, 다시 지성과는 별개로 모두 생명을 향해 돌진하고, 죽는 순간까지 빛을 꺼트리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본능을 갖추고 있었을 뿐.
그러니 자신을 화나게 한 개미가, 그런 빛이 모여들고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면 마수로서도 당연히 그것을 뒤쫒아야만 했다.
제 마력의 십 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이나 간신히 넘기는 개미들의 능력으로는 어떠한 짓을 해도 자신을 해칠 수 없을 테니, 마수는 유독 눈에 띄는 몇몇만을 주시하면서 그 외에는 그저 본능적으로 생명을 죽이기 위해 팔을 휘저으며 대기를 헤엄쳐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덧 유천하를 뒤쫒아온 마수의 몸체가 기어코 지면에 근접한 곳까지 내려온 순간. 그리고 아리엘이 쏘아 올린 메시지를 보고 달려온 생도들이 얼추 모두 모여든 순간.
바로 그 순간.
“이제 곧 도착하겠어. 자, 다들 준비하자.”
“저걸······ 진짜로 끌고 오고 있네. 시발.”
“그냥 저대로 때려 박으면 안 되는 건가?”
“당연히 안 되겠지. 때려 박기는커녕, 그랬다간 다가가기도 힘들걸? 지금 저기 도망 다니는 애들 얼굴 안 보임? 답 나오잖아.”
“······먼저 땅에 떨어트려야 해. 일단은.”
유천하가 내달리는 방향에 앞서, 그곳에 있던 탑의 관리 시설- 그 거대한 첨탑 위에서 갖가지 보호 마법이 걸린 상태로 그 살아 움직이는 재앙을 기다리는 이들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