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략의 의미 (1)
+143화 마지막 부분이 수정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멸화급이 역류한 것일까- 이하린은 아직도 머릿속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아니, 그녀는 아까부터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어도 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도, 그리고 원작의 지식을 기반으로 했을 때도, 그녀에겐 이 모든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콰과과과과과과과-!!!!
“마력 한번···! 진짜······ 장난 아니네!!”
“마력 파동 때문에 자꾸 결집이 흐트러져! 티나 너 이래도 계속 제어할 수 있겠어?”
“되든 안 되든 지금은 일단 해봐야지!!”
“진짜··· 아리만 있었어도···! 제어는 걔한테 맡기면 되는데······ 아리엘 이 멍청이!!”
대기를 타고 전해져오는 떨림도, 터져 나오는 마력의 파문도, 저 하늘 위에서 흘러나오는 악의 어린 사념까지도 모두 그녀의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으니 이 상황을 어찌 현실이 아니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하린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직접적인 여파는 제가 막아볼게요!”
“첫 파문만이라도 어떻게 좀 부탁할게!”
그리고 그렇게.
카가가각-!! 그녀는 복잡해진 상념 속에서도 저가 할 수 있는 최선- 다른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의식을 준비할 수 있게 검을 휘둘러 지켜주었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퀴이잉-!! 키식··· 콰아아앙-!!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을 베어 넘기면서, 오로지 그 행동만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가라앉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
그리고 그건 다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하린 자신은 너무나도 작았고,
마수가 위치한 하늘은 너무나도 높았다.
그런 만큼- 고작 검 한 자루 휘두를 줄 아는 게 전부였던 자신의 능력으로선 저곳까지 공격을 뻗어낼 수 있는 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상관없이.
그래서일까?
만약 천하 씨가 이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검을 휘두르던 이하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천하 씨도 어쩔 수 없어.’
유천하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하이랭커급에 달하는 실력자라 하더라도 저 마수는 지금 수백 미터 상공위에서 유영 중이었고, 유천하의 강함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작 1m 남짓한 검신에서 펼쳐지는 강함이었다.
그러니 아인형이나 소형종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대형종과 비행종의 복합 마수를 상대로는 유천하가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될 터.
이하린의 이성은 그런 판단을 내려보았다.
“······.”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선 지금도 유천하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중이었고, 덕분에 이하린은 그 막연한 직감을 되새기며 저도 모르게 상황을 잊고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째서 이렇게 신뢰가 가는 걸까.
이하린은 다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항상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 아무렇지 않게 위험을 베어내고 상황을 해결하던 그의 뒷모습. 겨우 두 번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유천하는 항상 자신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구하러 와주었다. 아니, 구하러 온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항상 자신을 구해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유천하를 신뢰하였다.
그는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항상 그녀에게 희망을 선물해주었기에, 자신의 손으로 구해낸 이가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를 되돌려 주었기에, 유천하를 걱정했던 이하린은 그 걱정만큼이나, 아니 그 걱정 이상으로 그에게 과한 기대를 걸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의 결과가 그에게 선물해 주었던 검- 천린穿隣이었으니, 이하린은 분명히 그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다시 그 속에 유천하가 예정된 어둠을 꿰뚫고 길을 밝혀주는 불빛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그에게 검을 선물해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유천하가 떠오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정신 차리자 이하린.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할망정··· 기대기만 하면 어떡하잔 거야.’
그렇게 믿음과 신뢰를 보낸 결과. 그녀는 결국 유천하가 균열에 휘말리는 걸 막아내지 못했다. 아니, 정작 마법사인 아리엘이 그를 향해 뛰어들었던 순간에도 이하린의 반응은 그녀보다도 느렸었고, 유천하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유천하라면 괜찮을 거야- 하던 안일한 마음가짐은 그러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정말이지 멍청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일.
그렇게 제 손으로 지켜야 할 두 사람이 눈앞에서 마인의 능력에 휘말려 사라지는 걸 목도한 순간 이하린은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앞에 있었으면서도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나마 저작권리의 가호를 통해 아리엘의 생존을, 다시 유천하에게 선물해준 수실을 통해 유천하의 생존을 확인하였기에 빠르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지만, 만약 지금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어도 그대로 주저앉아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을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그러니··· 어찌 그에게 기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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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저 거대한 마수가 두렵고 위협적으로 느껴질지라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위험 또한 저것에 못지않을 터. 아니, 세계침식이 시작되는 순간 마주하게 될 시련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섭고 절망스러울 터였다.
그런데 벌써부터 그에게 기댈 생각만 하고 있으면 대체 앞으로는 어찌하잔 말인가?
자신에게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는 아까처럼 안일하게 굴 수는 없었다. 물론 그녀도 이제는 제 행동이 유천하를 걱정시킨다는 걸 알았기에 멍청하게 도움조차 외면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움에만 기댈 생각 따윈 추호도 하기 싫었다.
그렇기에.
‘토벌하려면 우선 땅에 떨어트려야 해. 마력 방벽부터 걷어내고, 전부 다 모여서······.’
이하린은 의식을 준비 중인 아이들을 지켜내면서도, 동시에 저 하늘 위의 마수를 공략할 방법들을 떠올려보았으니- 그녀가 알고 있는 수백 명의 특성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원작의 지식을 통해 그녀는 결국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선 갖춰져야 할 조건이 꽤나 많았기에, 이하린은 다시금 사라진 두 사람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을 따름이었다.
그들의 무사를 바라면서, 다시 그들이 빨리 돌아와 주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그들 없이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서.
그리고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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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려 퍼지는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부터 압도적인 마력의 격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주변에 존재하는 마력이란 마력은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그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마력을 쥐어짜 내는 것처럼. 꿀렁거리는 그림자로부터 가시화될 정도로 뭉쳐진 마력의 파문이 이전보다 더 거세게 퍼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그 압력의 여파는 순식간에 전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무척이나 가볍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물론 그 여파만으로는 지상에 있던 생도들에게 영향이 갈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상황을 관측한 생도들은 그 즉시 하늘을 바라보며 억눌린 신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쿠구구구구구구-
대기가 떨려올 정도로 집속되는 마력의 밀집이 마수의 입 앞에서 모여드는 게 육안으로도 확연히 엿보였고, 현재 그러한 마수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다름이 아닌 1학구의 시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학구···? 아, 안돼! 저긴 아직···!!”
“티나! 구축은 아직이야···?! 준비가 덜 됐더라도 지금은 우선 때려 박든가 해야···!”
“······잠깐만. 저거 마력량 좀 계산해봐.”
차라리 3학구를 향해, 아니 자신들을 향해 쏘아내는 거라면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 정돈 어떻게든 피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혼탁하게 소용돌이치는 마수의 눈동자는 1학구를 향해 있었고, 그곳에는 아직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분명 수없이도 많이 남아있을 게 분명했다.
한마디로-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는 상황.
“마력량···? 대충 봐도 1만은 넘어 보여!”
“격류가 너무 심해서 감지가 어려워···!”
“1만. 1만 AC······ 안 돼. 힘이 부족해.”
하지만 멸화급 마수의 근원석은 그 이름에 걸맞게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마력을 한순간에 집속 시켰고, 생도들 중 그러한 공격을 혼자서 막아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이 순간 그녀들은 모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시선! 시선이라도 돌리는 건?”
“지금 모은 양으로는 끄떡도 안 할 거야.”
“······미치겠네. 진짜!! 어쩌자는 거야!”
그렇기에 티나 아라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지금 자신들을 제외하고 저걸 막아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놈의 주의라도 끌 수 있을 만한 사람은?
그러나 계속해서 되짚어봐도 떠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마수가 그러모은 마력의 양이 너무나도 방대했고, 다시 마수가 위치한 고도는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제대로 마력을 뻗어내기도 힘들 만큼 드높았다.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겨우 진시우 정도.
허나, 그녀가 생각하기엔 아무리 진시우의 마력이 방대하다 해도 수백 미터 너머의 마수에게까지 그렇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기는 힘들 거란 판단이 들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빠르게 가능성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마수의 입에 모여드는 점점 마력의 포화가 점점 뚜렷해지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도, 다시 생도들의 머릿속에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오로지 이하린만이 진시우의 가능성을 믿고서 마음속으로 기원했을 따름이었다.
진시우가 부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를.
겁먹지 말고 제대로 일념을 그려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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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그 기원의 당사자- 진시우가 수백 명의 목숨과 수천 명의 목숨을 저울질하며 순간적으로 얼어붙고, 다른 이들이 시선을 돌려보기 위해 발버둥 치듯 마력을 쏘아냈을 때. 그걸 무시한 마수가 마력의 포화를 모아냈을 때.
바로 그 순간.
절박한 심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수백 명의 생도들은 그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
“······?!”
콰지지직-!!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을 가르고, 갈라지는 공간의 균열을 비집고 튀어나온 두 명의 인영을. 그와 동시에 생도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으로 금빛과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나타난 그들의 등장을.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도대체 저들이 왜 저곳에 나타났는지, 대체 어찌하려고 저곳에 나타난 건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러워진 생각에 그들의 머릿속이 새하얘진 순간.
“······천하 씨!”
두 사람을 발견한 이하린의 눈가가 순식간에 찡해진 순간- 바로 그 순간 마수로부터 쏘아진 수백 갈래의 가시가 잿빛을 가로지르고 뛰쳐나온 그들을 향해서 쇄도했고, 유천하가 한순간에 허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마수를 향해.
아니, 정확히는 마력의 포화를 향해.
흑색의 궤적이 잿빛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
조금 전 유천하가 이면 세계의 특이점을 발견해내고, 다시 그것을 아리엘에게 들려주었던 시점- 그때의 아리엘은 그 말에 긴가민가하면서도 그에게 한 제안을 건네보았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탈출의 타이밍을 이용할 방법이 있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아리엘의 설명과 계획을 들은 유천하 역시 그녀의 말에 동의하였고, 그것이 멸화급 마수를 상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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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화급 마수의 실체화가 완료된 순간. 그리고 연이어 격전이 시작된 순간에 그들이 서 있던 곳은 바로 멸화급 마수가 유영하고 있는 머나먼 상공 위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현실에서 빗겨나간 차원의 틈새에서 그 전투를- 정확히는 마수를 관찰해볼 수 있었다.
“꼭 직접 확인해야만 하는 거야?”
“······말했잖아. 그게 최선이라구.”
당연히 그건 멸화급 마수의 전력을 가늠해보기 위해서기도 했고, 다시 공략의 조건을 마련할 최적의 시점을 찾기 위해서였으니 그녀는 이제껏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리고 이 순간.
“미미하지만 가능성은 분명 있어. 그리고 그걸 낚아채려면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해.”
“말로 설명해주는 거로는 부족하고?”
“응. 내가 심상을 그려내야 하니까.”
유천하의 등에 매달린 아리엘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 대답했고, 그와 동시에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수를 내려다보았다.
“저 정도 마력이면 멀리서 보는 거로는 표층 마력밖에 안 잡힐 거야. 그러니까 아무런 전투 없이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는 탈출 시점이 가장 확실하면서도, 유일한 기회야.”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은 유천하를 붙들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고, 그대로 그 등에 매달린 채로 천천히 마력을 가다듬었다.
“공중전이 가능해도, 잘할 자신은 없어.”
“괜찮아.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테니까.”
“10초. 속도를 봐선 그 이상은 위험해. 끝나도 땅에는 못 내려주니까. 알아서 하고.”
“응. 그 정도면 충분해. 부탁할 게.”
이제 곧 시작될 파란을 대비하면서.
다시 그 순간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근원석은··· 이마 한가운데라고 했지?”
“정확히는 조금 우측에 기울어져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잘해야 땅에 떨어트리는 거야. 그걸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고, 너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줘야 해. 알겠지?”
“단순히 시간만 끄는 거라면 5분 정돈 문제없을 거야. 그 이상은······ 확신 못 하고.”
“5분··· 아슬아슬하긴 한데. 한번 해볼게.”
아리엘은 바람의 결을 박차며 허공을 가로지르는 유천하의 등에 매달려 몸을 기댄 채 잠시 전장의 상황을 빠르게 내려다보았다.
계획에 필요한 이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보면서, 다시 점점 빠르게 뜀박질하는 심장을 천천히 가라앉히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쉽게 진정되지는 않았다.
“······근데 사실 너가 착각한 거면 어떡해?”
“몇 번을 말해야 믿는 거지? 확실한 거야.”
“정말이지···? 믿어도 되는 거지? 그치?”
“시끄럽고 네가 원하는 타이밍이나 말해.”
유천하는 그 말과 함께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뒤에 매달려있는 아리엘을 노려보았고, 그 행동에 아리엘은 그를 바라보며, 그리고 전장을 내려다보며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아리엘은 마수의 입가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마력의 파문을. 가시화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몰려드는 마력 포화의 징조를 발견할 수 있었고, 아리엘은 그 즉시 입을 열었다.
“저거···! 방향이 1학구야. 가능해?”
“한 번 정도라면 문제없어. 가능해.”
“그럼 지금 바로···! 당장!”
후웅-!! 그렇게 그녀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유천하는 그대로 허공을 박차며 마수의 앞에서 신형을 멈춰 세웠고, 그대로 한순간에 의식을 그러모았다.
그러자- 그대로 벼려지는 의념의 검.
-----------------------------------------------······
순식간에 오온에 접어든 유천하는 찰나의 세계 속에서 빠르게 일념을 벼려내었고, 그리고는 그 의식의 검극을 자신과 아리엘- 이 차원에 존재하는 쐐기점을 향해 겨누었다.
원래라면 이건 분명 자해에 가까운 행동.
하지만 나르화리얀이 했던 말과 이 이면 세계의 특징을 교차한 결과 그는 이곳이 의식을 기반으로 한 세계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고, 다시 자신과 아리엘이야말로 유일하게 현실로 통하는 통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곳에서의 피해는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까지도.
그렇기에.
“간다. 꽉 잡아.”
서걱··· 키이잉-!!
의념의 검이 두 사람의 정신을 베어냄과 동시에 그들의 의식이 빠르게 깜빡거렸고, 세계의 균열을 넘어 순식간에 공간의 틈새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은 아무런 딜레이도 없이 현실의 차원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콰지직-!!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을 가로지르고, 다시 공간의 균열을 비집고서, 마력의 포화를 쏘아내려던 마수의 바로 눈앞으로.
그리고 그와 동시에.
--------?
“······.”
한없이 느려진 세계 속에서 유천하는 멸화급 마수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고, 10m를 넘어가는 마수의 동공이 그를 인지한 순간.
바로 그 순간.
-------------------------------------------------!!!
“귀, 귀 아팡!!”
“10초. 시작해.”
마수로부터 흉포한 포효가 터져 나왔고, 그런 그들을 향해 그림자 속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잿빛의 가시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가각-!!!
하지만- 유천하의 신형은 그 순간 이미 그것을 피해내며 다시금 허공을 박차기 시작했고, 그렇게 회피 기동을 펼치는 와중에도 빠르게 마수의 전력을 가늠해보았을 뿐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세를 가로지르며.
순식간에 바람결을 박차나가면서 말이다.
후우웅-!! 뭉쳐진 대기를 즈려밟는다. 잠깐이라도 늦어지는 즉시 그곳을 잿빛의 가시가 꿰뚫었지만, 1초에 수십, 수백 개의 가시를 쏘아내는 마수의 긴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만상의 눈으로 공격의 전조를 파악한 유천하는 아리엘을 등에 멘단 채로도 그림자를 피해 허공에서 무수한 궤적을 그려내었다.
잿빛 세계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색채.
허공에서 흩날리는 금색과 흑색의 빛.
그렇게 쉴 새 없이 위와 아래가 뒤바뀌고 흔들리는 풍경 속에서 아리엘은 순식간에 멀미까지 느꼈을 정도였지만,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정신은 그런 난전 속에서도 빠르게 마수의 마력량을 가늠해보았을 따름이었다.
저 괴물을 떨어트리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를. 저 괴물을 붙잡아두려면 어느 정도의 마력량이 필요한지를. 과연 어느 정도의 힘을 모아야 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끝났어.”
“······.”
휘몰아치는 그림자의 쇄도 속에서 아리엘이 마수의 마력을 명확히 가늠해 낸 순간. 그리고 마수의 입가로 모여들었던 마력의 포화가 서서히 출렁거리며 그들을 향해. 다시 그들 뒤에 위치한 1학구를 향해 겨눠진 순간.
아리엘은 그대로 팔에 힘을 주고 몸을 끌어올려 유천하의 귓가로 얼굴을 갖다 댔다.
그리고는.
“베어버려.”
우우웅-!! 그렇게 그의 귓가에 가호의 언령을 속삭여주었고, 이내 망설임 없이 그가 검을 그어낼 수 있도록 팔을 놓아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마수의 마력을 파악해냈으니 이제 공략의 퍼즐을 짜 맞춰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걸 위해 유천하가 버텨주기를 기원해보면서. 부드럽게 언령을 속닥거리며.
그리고 다시.
서걱-! 유천하는 그런 아리엘을 향해 쏘아지는 가시를 한순간에 베어 가르고는 그대로 마수의 입- 정확히는 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마력의 포화를 향해 검극을 그어냈을 뿐.
멀어지는 아리엘의 신형을 바라보며.
온몸을 휘감는 언령의 힘을 체감하며.
손등의 업륜에서 마력을 풀어내며.
자신들을 향해 쏘아지는 포화를 향해.
그 잿빛의 폭격을 베어 가르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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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어진 칠흑의 참격은 그대로 잿빛의 포화를 베어 가르며 하늘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