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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138화 (138/205)

광란의 축제 (5)

그것은- 분명 불가피한 일격이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마력과 터져 나오는 폭발이 뒤섞여 시끄럽게 뭉개지는 소리, 그러면서도 꼬일 대로 꼬여 공간의 구분마저 허물어진 혼란의 한가운데서 눈치채기엔 유천하의 기척은 너무나도 미미했으니 말이다.

마치 유령과도 같이 흐릿해진 존재감.

“무······”

타천자 베헤딕트의 감각은 유천하의 검에서 참격이 터져 나온 뒤에야 그의 접근을 인지할 수 있었고, 만상의 눈으로 타천자의 영역을 파악한 유천하는 분명 상대의 감각- 그 틈새를 가로질러 완벽한 기습을 가하였다.

심지어 그 순간까지도 살기와 기척, 그 무엇하나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러니 저걸 어떻게 눈치챌 수 있겠는가.

지금 유천하의 이 일격은 그가 지나쳐온 세월 속에 쌓아온 경험과 인과의 결과물이었고, 다시 타천자의 감각과 전장의 흐름을 간파해낸 뒤 한순간에 빈틈을 비집고 찔러 들어온 날카로운 비수였으니 그 기습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순간 마인에게 가해진 기습은 그 누구를 데려와도 감탄을 토할 만큼 완벽했을 뿐.

그렇기에 빛살처럼 뻗어 나간 칠흑의 참격은 그대로 잿빛의 그림자를 베어 갈랐다.

“······슨?”

서걱- 담백하게 울려 퍼지는 서늘한 소리.

하지만 그 소름 끼치는 차분함이 전장의 웅성거림을 꿰뚫고 퍼져 나간 순간, 그 순간 뒤늦게 그의 난입을 알아차린 타천자 베헤딕트와 유천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늘어지기 시작한 찰나의 순간.

---------------------------------------------···

아직 다른 이들이 그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그 틈새에서 그들은 생각했다.

유천하는 상대의 심장에 닿기 전에 왜곡에 뒤틀려 휘어져 버린 검로를 되새기며 상대가 특성을 발현해내는 속도를, 그리고 외부와는 달리 신체 내부에 발현되었을 때 왜곡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빠르게 도출해내었고- 다시 타천자는 그런 유천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무수한 생각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을뻔했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그곳에서 비롯된 두려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작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사실에서 다가오는 수치심과 분노를.

짙은 그림자를 흩날리며 허공에 나부끼고 있는 자신의 한쪽 팔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타천자의 대응은 간단했다.

“사지를 찢어 죽여주마.”

콰과과과과과곽-!!! 단 한 순간,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100m 가까운 범위를 뒤틀어내고 있던 수십 갈래의 마력의 선이 순식간에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다른 이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압축된 왜곡은 그 즉시 그를 중심으로 반구의 형태를 그려내며 단 5m 내의 범위를 그대로 감싸 안기 시작했다.

그대로 유천하의 몸을 짓뭉개버리기 위해.

끔찍할 정도의 부정 사념을 그 속에 담아.

한순간에 풀려버린 왜곡으로 인해 전장의 지형은 다시 한 번 더 대대적인 붕괴를 맞이했지만, 그와 별개로 소용돌이치듯 꼬여가는 타천자의 주변에선 공간이 뒤틀리고, 모여 들은 채 압축돼 마력의 철퇴를 내리찍었다.

그렇게 터져 나오는 막대한 마력의 파동!

------------------------------------------------!!!

콰아앙-!! 생도들을 상대로는 여유를 부리던 타천자의 태도가 그렇게 순식간에 변화하였고, 인자하게 웃어 보이던 그의 표정은 어느새 추악하게 일그러진 상태로 유천하를 향해 악의 어린 살의를 토해냈을 따름이었다.

자신의 팔을 잘라낸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당장 사지를 찢어 발기겠다는 듯이.

그리고 물론.

“할 수 있다면야.”

유천하는 이미 일격에 죽이는 걸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상대의 반격을 예상하였으니 그는 휘몰아치는 공간의 역류에서 벗어나 가뿐하게 뒤로 물러났을 따름.

아니, 오히려 저를 향해 다가오는 공간의 뒤틀림을 그대로 피해내고는 풍결의 가호로 허공을 박차며 다시 중심을 향해 다가갔다.

후우웅-!! 뭉쳐진 바람을 박차는 신형.

육안 속에 엿보이는 뒤틀린 공간의 풍경 사이에서, 만상의 눈으로 올바른 길을 찾아낸 유천하의 발걸음은 그대로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허공을 넘나들며 무수한 궤적을 그어내었고, 칠흑의 색채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대기를 밟고 다시 뒤틀린 공간 너머로.

하늘과 지면을 발판삼아 교차하는 선.

비현실의 경계에서 펼쳐진 쾌속의 진격!

피하고, 피하며 순식간에 복잡한 궤적을 그려낸 유천하의 신형은 단순히 회피에 만족하지 않고 그대로 검디검은 별빛을 그 검신에 머금은 채 타천자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천마신공 天魔神功

일천검결 一天劍結

제마검형 際魔劍形

퀴잉-! 순식간에 그어지는 칠흑의 참격.

섬혼마검 殲魂魔劍

찰나를 격하고 쏘아진 검디검은 별빛은 그대로 구름을 가르듯 공간의 왜곡마저 베어내며 나아갔고, 그 섬뜩하리만큼 살의가 흘러나오는 일격을 마주하게 된 타천자는 광기 어린 미소와 함께 남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이내.

카드드득-!!! 뭉쳐질 대로 뭉쳐진 왜곡의 권능은 그대로 강기를 박살 내며 검은 핏물을 토해냈고, 부서져 버린 마력의 파편이 사방에 흩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타천자는 유천하를 향해 다시 손을 뻗어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

그 순간 유천하는 이미 그의 앞에 도달한 뒤였고, 그곳에선 다시 검이 뻗어져 나왔다.

쾅-!! 초속의 세계를 넘어선 채 쏘아진 유천하의 검극이 칠흑의 불씨를 터트리며 그림자를 집어삼켰고, 연이어 휘둘러진 검격에 마인의 몸에선 다시금 마력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과과과-!!!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그림자의 파동.

일렁거리는 형상으로 화한 마인의 몸.

그렇게 잿빛의 마력으로 변질된 타천자가 막대한 마력의 파동을 터트렸지만, 그 파동마저 베어낸 유천하의 검은 틈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그를 향해 연격을 그어냈다. 업륜으로 가속마저 발현해낸 채, 이대로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퀴이이잉-!!

현상으로 발현되기 전의 마력을 베어내고,

다시- 왜곡된 공간의 흐름마저 베어낸다.

서걱! 오로지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 아래 벼려진 흑색의 검은 이 순간 그 모든 것을 베어내며 쉴 새 없이 뻗어 나가는 중이었다.

물론 공간의 왜곡을 베어내는 건 유천하로서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현상이 되기 이전의 마력을 베어내는 것이라면 만상의 눈을 지니고 있는 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반대로 특성의 힘이 작용해서 발현되는 권능을 베어내는 건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공간의 왜곡은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현상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난해했을 뿐.

애초에 조금 전까지 원작의 주연들이 실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타천자의 특성에 대항할 수 있었던 건, 그 비중만큼이나 그녀들의 이능이 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격을 갖추고 있는 특성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타천자의 공간 왜곡이 약한 능력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러니- 오히려 지금 아무런 백업 없이 순수한 본신의 기량만으로 그런 특성을 베어내는 유천하가 이상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의식의 결집을 벼려내어 강제로 이능을 베어내는 것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큭! 아주 개나 소나 공간의 간섭을 베어내는구나···! 너는 또 뭐하는 녀석이더냐?”

그러므로.

“너를 죽일 사람.”

“······오만하도다!”

키이잉-!! 콰과과과과과-!!

되도록 전투를 빨리 끝내야 한다- 그게 이 순간 유천하의 뇌리를 강타한 생각이었다.

물론 이대로 격전을 이어나가도 자신에게 만상의 눈이 있는 한, 그리고 녀석을 죽일 역량을 갖추고 있는 한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정도는 쉽게 예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간단하지만은 않을 터.

조금 전 유천하의 본능은 계속되던 위화감 속에서 일말의 전조를 낚아챘고, 그의 직감은 살며시 꿈틀거리는 분위기를 끊임없이 감지해내고 있었다. 무언가 육신의 감각을 넘어 영혼 자체의 직감이 간지러워지는 기분.

그리고 그가 확신하는 건 아무래도 지금의 이 느낌은 단순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드는 기분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유천하로선 자신의 직감이 보내오는 경고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싸움에서 위타극 때처럼 전력의 소모가 발생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손실 없이 끝내야 한다.

유천하는 그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하물며 상대의 특성이 까다롭다 한들 지금의 조건은 분명 그에게 유리한 편이었으니, 그것도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따름.

그렇기에.

‘빠르게 끝낸다.’

유천하의 내면에선 다시금 일곱 갈래의 매듭이 넘실거리기 시작했고, 칠흑의 운무에 휩싸인 그의 눈은 그림자를 꿰뚫어 보았다.

***

아리엘은 지금 마력을 제어하면서 뇌가 타오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의식은 이미 격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계속해서 가열되고 있었고, 타천자의 이적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와 동조를 유지하면서 그녀의 의식은 점점 더 뜨거운 열기 속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타천자를 잡아내기 위한 스펠을 완성해냈을 때 더욱 심화되었을 뿐.

그렇기에 아리엘은 당장에라도 준비한 언령을 내뱉고, 의식의 끈을 풀어 정신을 가다듬고 싶었지만 그녀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서는 저 격전을 제대로 해석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육안 속에 관측되는 건 그저 끊임없이 일그러지며 왜곡되는 풍경뿐이었고, 그 사이에선 흑색의 잔향만이 간간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감각과 감응력은 시야가 아닌 마력의 유동을 통해 저곳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었다. 고작 10m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타천자가 다루는 마력의 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압축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깨트리며 조금씩 타천자의 몸을 깎아나가는 유천하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말이다.

그야말로 격이 다른 세계- 오로지 그런 생각만이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생각은 아리엘의 머릿속에만 떠오르고 있는 게 아니었고, 전투가 시작된 지 이제 막 1분이 지나가는 지금 이 시점에선 전장에 자리하고 있던 생도들도 모두 저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경악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시발······ 하여튼 저 괴물 같은 새끼들.”

“······나 잘 안 보여. 위험하지는 않아?”

“조금, 아니 유천하가 분명 더 우세해.”

타천자의 마력을 깎아나가던 이솔라와 마르네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고, 다시 그 전장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이하린은 입술을 깨문 채 서늘한 눈으로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분해보이는 표정으로.

아니, 이하린은 아리엘 자신과 마찬가지로 저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다시 마찬가지로 함부로 개입했다간 오히려 유천하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충동을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연히 아리엘 또한 그런 이하린의 기분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분명 전투가 시작될 때도 그녀들은 이런 상황을 예견하였고, 그가 올 때까지만 버티자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그 말처럼 이렇게 도움조차 되지 못하고 뒷모습만을 바라보는 상황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러므로 아리엘도, 이하린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유천하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순간에,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하지만.

‘······타이밍을 못 잡겠어.’

애초에 아까 말했듯 아리엘이 지금까지 동조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으니- 지금 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에선 말도 안 되는 규모로 휘몰아치는 마력이 공간을 왜곡시키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마치,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것처럼.

그렇다 보니 왜곡을 인식하는 것마저도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진 상태였고, 조금 전까지 그런 왜곡을 베어냈던 이하린조차도 지금은 그 경계에서 가만히 기회를 엿보는 게 최선이었을 정도였다.

차라리 저 공격이 가해지는 대상이 유천하가 아니라 이하린이었다면 조금 다른 상황이 연출되었겠지만, 유천하의 전투는 분명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도 치러지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단순히 왜곡을 빗겨내거나 베어내는 것 정도로는 섵불리 저 흐름에 끼어들 수 없었고, 유천하와 같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면야 제대로 타이밍을 잡아채기도 힘들었을 뿐.

만약 억지로 끼어들었다가 유천하의 움직임에 방해라도 되어버린다면 어찌하겠는가?

지금 저곳에서는 멀리서도 확연하게 느껴질 만한 압력이 휘몰아치고 있었으니, 아무리 유천하가 강하다 한들 피륙으로 이루어진 몸에 저러한 왜곡이 직격당하게 되면 분명히 크게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될 터였다.

그렇기에- 다시.

‘그래도 내가 틈을 만들어내야 해.’

언령을 통해 타천자를 강제하는 게 가능한 아리엘만이 이 상황에서 그러한 리스크를 줄이며 유천하를 도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존재였고, 그녀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언령을 제대로 얽어만 낸다면 유천하는 분명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녀석을 베어낼 것이란 사실을. 단 한 번의 기회만으로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유천하는 분명 그러한 판단력과 결정력을 갖추고 있는 뛰어난 실력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녀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아리엘의 언령은 분명히 다른 이들의 능력과는 달리 그녀의 특성과 만나 저런 난전 속에서도 한 사람만을 확실하게 특정해낼 수 있었고, 그것도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만이 아닌 다채로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 위해서는 아리엘 스스로 그 현상을 정확히 심상에 그려내야만 했을 뿐.

애초에 그녀의 특성 <심적권령>은 그녀가 바라고 염원하는 심상의 이미지를 언어를 통해 현실에 강제하는 것이었으니, 언어의 표현 자체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을지언정 반드시 정확한 이미지 메이킹이 되어야 했다.

타천자를 멈춰 세우고 싶다면 그녀는 그것을 정확하게 인지해내야만 했고, 현실의 풍경과는 별개로 내면의 심상 속에선 타천자가 멈춰 선 장면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마치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듯이, 현실과 심상의 경계를 지워내듯이.

자신의 말이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처럼 그녀의 인지와 감각을 벗어나는 상황에선 언령의 정확도를 높이기가 어려웠고, 타천자의 전력은 분명 그녀의 감각을 벗어난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차라리 아까처럼 방심하고 있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마인은 지금 온몸에 마력의 방벽을 두른 채 제 주변의 공간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리고 있었으니 자칫하다간 기껏 준비한 언령을 아무 의미 없이 날려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또한.

솔직히 말하자면 아리엘이 협력전에서 유천하의 속도에 맞춰 모든 상황에서 언령을 읊조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가 지난 한 달 동안 쉴 새 없이 유천하를 떠올리고, 되새기며 그가 만들어낼 모든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거쳐왔던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아리엘로서도 지금처럼 처음 마주하게 된 강자를 상대로 언령의 정확성과 위력을 끌어올리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고, 하물며 저렇게 현실의 풍경부터가 시야만으로는 식별이 안 갈 만큼 왜곡되어 있다면야 그러한 난이도는 더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

차라리 제 친구들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래서 의식의 동조를 이뤄낼 수 있었더라면 분명 더 쉽고 간단히 해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그러니- 한 치의 실수 없이 해내야만 했다.

타천자의 마력량를 생각하자면 이번 기회를 날렸다가는 축언의 힘도, 시간도, 정신력도 너무 많이 소모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 아리엘은 타천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바라는 심상을 그려냈다.

지금 그녀는 혼자서 저 타천자를 잡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말 한마디. 저런 괴물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유천하에게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는 단 한마디를 내뱉는 게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의 전부였을 뿐.

그런데 고작, 그런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도 못해서 모든 걸 그에게만 맡겨놔야 한다면 자신은 대체 왜 이곳에 서 있단 말인가?

3월의 그녀는 타천자를 상대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간단히 의식을 잃어버렸고,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그녀는 시간을 버텨내는 것마저도 버거워할 정도로 나약했고, 다시금 검을 휘두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니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다른 아이들과 힘을 합쳤음에도 이길 수 없었고, 무력하게 지켜지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이제껏 앞서 나간 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리엘은 그와 같은 곳에 서고 싶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심상에 염원을 담아내었다.

바라는 심상은 시간의 동결.

원하는 결과는 감각의 박탈.

우우웅-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

전장을 응시하고 있던 아리엘은 그 찰나의 틈새에서 자신을 향해 눈길을 돌려오는 유천하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고, 정말 잠깐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스쳐 지나간 유천하의 시선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그 즉시 입을 열었다.

------------------------------------------------!!

아리엘이 입을 달싹거린 순간, 그렇게 그녀는 의식을 제어해내면서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던 마력이 순식간에 파랑을 자아내며 마인을 강타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정지된 시간 속에서 저 혼자 살아 움직이듯 그어진 검은 선. 한순간에 얼어붙어 버린 세계의 모습과 그 속에서 뻗어 나가는 칠흑빛의 궤적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

단 1초- 그것이 멀쩡히 붙어있던 타천자의 머리가 분리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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