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34화 (134/205)

광란의 축제 (1)

모든 건- 그 뉴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긴급속보입니다. 1시간 전 최초로 발생한 강제 역류 현상을 기점으로 시작된 대규모 역류사태는 벌써 세계전역에서 47개에 달하는 브레이크를 일으켰으며, 그중 멸화급 탑의 역류에 긴급히 승천자 루타텔과 나르······]

갑작스레 전 세계 곳곳에서 침식 역류 현상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곳에는 승천제에 방문했던 두 명의 승천자가 멸화급 마수를 토벌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내용마저 담겨 있었으니 그 소식을 들은 생도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멸화급이나 되는 탑이 역류했다는 건 분명 심각한 일이었고, 그에 승천자들이 대응에 나선 건 딱히 이상한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로선 그 내용의 일부분.

단 하나의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강제 역류 현상이라니- 도대체 저 말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이제껏 침식역류의 이유마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마당에 침식역류에 ‘강제’라는 말을 붙인 까닭은 무엇인가?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해 깊게 궁리해보기도 전에 축제 곳곳에 숨어들어 왔던 마인들이 본색을 드러내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은 저 멀리서 터져 나오는 마력 파동을 통해 그 말이 의미했던 바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콰아아아앙-!!

-키햐야아악-!!

등천회랑의 축제는 한순간에 마인과 마수가 들끓는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렸을 뿐.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마수들의 울음소리부터 시작해, 그 속에 뒤섞인 비명. 그와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폭음까지.

쾅-!! 수많은 소리가 뒤섞이며 뭉개진다.

-미친···! 여기엔 내가 남을게. 너흰 가봐!

-일단 사람들부터 지켜야지 이 새끼야!!

-아니, 쪼개지는 게 맞아! 3학구부터 가야 돼! 수호자급이 여기로 오면 뭐 어쩔 건데!!

참고로 조금 전 연속으로 터져 나왔던 마력 파동의 횟수는 총 다섯 번. 그 말은 즉 역류 현상도 그만큼 발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이- 등천회랑의 내부에서 말이다.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미 정화된 근원석이, 그것으로 만들어진 백색탑이 다시금 잿빛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가능하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이 순간 생도들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의문점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호자급만 다섯 마리야. 시가지에 걸맞은 능력 아니면 그냥 다 닥치고 3학구로 가!

-파동의 세기를 봐선 가까운 곳들만 역류했어. 머뭇거리다간 여기서 수호자급 공략을 해야 할지도 몰라!! 머리 좀 굴려 시발!!

-아씨···! 나는 수호자급 조지러 간다!

생도들은 그저 빠르게 마수와 마인들을 토벌하며 3학구를 향해 달려나가는 중이었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을 뿐이었다.

물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마인들 또한 상대해야 했기에 1학구에 남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선택해 각자 거리를 내달렸다.

대인전 전투에 유리한 생도들은 1학구에.

마수전 전투에 유리한 생도들은 3학구로.

그리고.

-미친 개 같은 마수 새끼들!! 존나 많아!!

-전부 다 한길로 몰리니까 아주 그냥···!

그렇게- 두 학구 사이에 걸쳐진 경계.

그 어중간한 위치에 존재했던 백색의 탑들은 이미 짙은 잿빛으로 화해 지금도 끊임없이 마수를 쏟아내는 중이었으니, 분명 생도들의 판단과 선택은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누군가처럼 일격에 수호자급 마수를 순살 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수호자급 토벌에 발생하는 여파만으로도 주변이 파괴될 터였고, 그렇다면 수호자급 마수 토벌은 인적 없는 곳에서 시도하는 게 정답이지 않겠는가?

그런 만큼 시민들의 보호를 위해선 수호자급 토벌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하지만.

쾅-!! 생도들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존재했고, 그것 또한 중요한 변수였으니.

“쯧. 수준 차이를 못 느끼는 건가?”

“닥치고 뒤져···!!”

그것은 바로- 지금 등천회랑에는 총 3명에 달하는 타천자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현시점에서 그중 1명은 그대로 사지가 베여나가는 중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이제야 막 모습을 드러낸 2명의 타천자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생도들이 그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면야 더욱더.

그렇기에.

“꼬마야. 걸리적거리는구나.”

“······!! 크··· 크윽!!”

왜 하필이면 이곳에 이런 괴물이- 그게 이 순간 황찬룡의 뇌리를 스쳐 간 생각이었다.

쿠드드드득-!!

제 친구들이 3학구를 향해 달려간 순간에도 황찬룡은 제 기량이 마수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데 더 효율적이라 판단하였고, 그는 생도들의 발길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최대한 구해주었다.

그러나 1학구의 외곽지역- 그곳에서 들려온 비명에 발을 박찬 황찬룡을 기다리고 있던 건 평범한 마인이 아니라 한 명의 타천자.

“아, 누, 누가 도와주세요···!! 여, 여······!”

“너는 이제 그만 닥치거라.”

“멈춰 이 새······!”

콰직-! 그렇기에 황찬룡은 결국 도움을 요청하던 누군가의 머리가 마인의 손에 터져나가는 순간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로서는 당연히 그걸 막기 위해 타천자를 향해 달려든 것이었지만, 그는 단 한 수조차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 뒤로 튕겨져 날아가 버렸으니 어찌 보면 그의 실력으로는 그저 제 목숨이라도 보전하는 게 최선이라 봐야 할지도 몰랐다. 그에 황찬룡은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을 따름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왜 생도가 되었단 말인가.

비록 단 한 명의 목숨일지라도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그는 다른 이들의 삶을 지켜주고 싶었기에 생도가 된 것이었다. 그랬던 만큼 황찬룡은 지금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사람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원통했고, 다시 그 복수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란 사실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네 새낀 오늘 반드시 죽을 거다.”

“허. 도대체 누가 나를 죽인단 말이냐? 네가 죽인다고? 아니면 너와 다를 바 없이 가소로운 저 거리 곳곳의 꼬맹이 녀석들이?”

“내가. 내가 못 죽이면 다른 누군가가. 네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달려들 테니까.”

그럼에도 그는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본능은 분명 이 자리에서 도망가 다른 사람들을, 유천하 같은 녀석을 찾아가라 외치고 있었지만 이성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피하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이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 넓은 회랑에서, 다시 이 수많은 소란과 인파의 가운데서 눈앞의 타천자를 토벌할 역량을 갖춘 이를 찾기까진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

그동안 저 녀석 손에 몇 명이 죽게 될까.

그 사이에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처음으로 조우한 자신이 되어야 했고,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이들이 이곳에 찾아올 때까지 타천자를 최대한 붙들어 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게 가능한가는 둘째치고서라도.

“해보겠다고? 공략자들은 이게 마음에 안 들어. 제 목숨 귀한 줄 모르는 것들 같으니.”

“귀한 줄 아니까 이러는 거다··· 쓰레기야.”

그렇게 어처구니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타천자의 눈을 바라보며 황찬룡은 천천히 내부를 관조하였고, 순환시키고 있던 내력까지 모조리 끌어올린 채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나마 낮에 있었던 협력전 시합에서 유천하를 상대했던 경험이 워밍업이 돼주었기를 바라면서, 다시 그 순간처럼 일격에 목이 베여나가는 일은 없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쿠구구구구-!!!

가소롭다는 표정 속에 타천자가 일렁거리는 마력을 뿜어내고, 사방에서 솟구치는 잿빛의 사슬을 목도한 황찬룡이 그 흉악한 기세에 죽음까지 각오하며 지면을 박찼을 때.

퀵- 소리를 뒤로하고 끼어든 푸른 궤적은.

“······!!”

한순간에 타천자의 가슴에 선을 그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푸슉-!! 뒤늦게 남궁설아의 기습을 인지해낸 타천자가 몸을 뒤틀어낸 순간 그의 가슴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꿀렁거리듯 터져 나왔고, 남궁설아는 그런 타천자의 모습을 확인하며 다시 또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퀴식-!! 달빛을 머금은 쾌속의 섬광!

“이게 무······!”

당황한 타천자가 손을 뻗어 마력의 사슬을 자아냈지만 카각- 일격으로 그것을 튕겨낸 남궁설아의 검은 이미 네 번째 검격을 상대에게 쏟아내는 중이었고, 순식간에 흐릿해진 잔상은 끊임없이 분열하며 허공을 수놓았다.

휘청이는 그림자를 찢어발기는 푸른 빛.

분명 최대한으로 가속된 남궁설아의 움직임은 일개 초상계 능력자가 인지하기엔 별격의 시간 선에 도달한 속도였고, 그렇기에 타천자라 할지언정 근접전에 취약했던 마인은 순식간에 온몸이 난자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부터 시작된 군청색의 섬광.

시간을 무시하고 그어진 초속의 검격.

“······슨!”

군청색의 쾌격이 끊임없이 뻗어 나왔고,

타천자의 몸에서 그림자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콰과과과과과과과-!!!

결국 한순간에 그림자로 화한 마인의 몸에서부터 그림자의 파동이 터져 나왔고, 막대한 마력을 머금은 물결이 사방을 휩쓸었다.

“이 망할 애새끼가!!”

그런 만큼- 당연히 바로 앞에서 검을 뻗어내고 있던 남궁설아의 신형도 순식간에 뒤로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제서야 남궁설아의 개입을 깨달은 황찬룡도 얼떨결에 그 파동에 휩쓸려 같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감히 주제도 파악 못 하고 칼을 들이대?”

비록 기습을 위해 쾌검을 사용하느라 타천자의 마력을 온전히 뚫어내지 못했을지언정 남궁설아의 검격에 당한 타천자의 표면은 넝마가 되어 그림자를 흘려내고 있었고, 남궁설아는 차분한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였다.

주변에 일렁거리는 마력의 기세.

검격이 닿을 때 느껴지던 반탄력.

또한 지금 사방에서 솟아나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는 잿빛의 사슬을 바라보며 그녀는 빠르게 상대의 전력을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강해. 하지만 근접에는 취약해.’

기감에 꺼림직한 기세가 감지되었기에 끼어들었건만 확실히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상대는 타천자- 그것도 최소 중상위권의 실력은 되어 보였다. 그 정도만 해도 지금 뒤로 튕겨 날아가고 있는 황찬룡으론 제대로 된 상대조차 불가능할 터였고, 자신 또한 혼자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상대는 마력특화형인지 근접전에는 상당히 취약해 보였고, 조금 전 자신이 보여준 속도에는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했었다.

그러니- 공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남궁설아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가서 다른 사람을 불러와 주세요.”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시야는 타천자를 향해 유지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에 뒤로 밀려 나갔던 황찬룡이 잠시 눈을 깜박거리더니 이내 다소 어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저, 저한테 한 말이에요?”

“예. 은공, 아니 천하 씨라면 한 명으로 충분하고, 그게 아니면 아리엘이나 이하린 씨. 다른 유망주라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상위권이 아니면 위험하니 주의 부탁드려요.”

“······.”

평온한 기색으로 흘러나온 그녀의 말에 황찬룡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지만, 이내 그는 자존심을 내던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확답은 못 합니다. 하지만 할게요.”

“······예. 그럼 5분만 버텨주세요.”

애초에 그가 타천자와 맞서 싸우려고 했던 이유는 녀석이 다른 시민들을 학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붙들고 있으려는 목적이었으니,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나타났다면, 그리고 그의 실력으론 이 전투에 도움조차 안 된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그렇기에- 그 대답과 함께 황찬룡은 곧바로 발을 박차곤 다른 길을 향해 달려나갔고, 한순간에 그런 황찬룡의 뒤편에 도달한 남궁설아는 쏘아지는 사슬을 빠르게 쳐내었다.

쾅-!! 손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역시 육체의 반응속도가 느릴 뿐이지 마력의 농도나 공격의 위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그녀는 그 부분을 다시 되새겼다.

“하. 쥐새끼처럼 재빠르구나 아주.”

“······.”

“빠른 건 알겠다만, 방금 있었던 대화··· 그깟 애송이들이 조금 늘어난다고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진심으로? 애초에 네까짓 게 혼자서 버틸 수나 있다고?”

마인들은 왜 항상 저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걸까- 남궁설아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굳이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지만, 빈틈을 유도하려면 도발 정돈 괜찮지 않겠는가?

“착각하지 마. 버틸 생각은 없어.”

“하하! 뭐 그럼 도망이라도 다닐······”

“혼자서 죽일 생각이니까.”

“······뭐?”

그 말과 함께 남궁설아의 눈동자 위로 푸른빛의 살의가 올라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녀가 마인에 대해 갖고 있는 증오와 살의는 절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길진 않았을지언정 일평생을 한 명의 마인을 죽이기 위해 살아온 그녀였기에 남궁설아는 일개 타천자를 상대로 지레 겁먹고 물러설 생각 따윈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불필요한 피해는 줄일수록 좋았고, 토벌의 확률은 높일수록 좋았으니까. 그녀가 황찬룡을 보낸 이유는 오직 그것이었을 뿐.

“그리고··· 너 천하 씨보다 약해.”

“······.”

“이곳에 있는 게 천하 씨였다면 3분 내로 죽었을 테니까 허세 부리지 마. 우스워.”

그렇게 남궁설아는 무덤덤한 얼굴 위로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끝마쳤다.

그러자 그 순간- 내려앉은 싸늘한 적막.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박하게 입을 놀리던 타천자는 이미 그녀의 도발 아닌 도발에 그대로 걸려든 상태였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향해 소름 끼치는 살의를 내뱉으며 사방으로 자신의 마력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도발을 위해 한 말일지언정 남궁설아는 결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일평생은 100년을 살아온 괴물을 베어내기 위해 벼려진 시간이었으니, 비록 혼자서 위타극을 죽이진 못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위타극보다도, 유천하보다도 약한 마인을 상대로 타인의 도움을 바랄 만큼 그녀는 나약하지도 않았다. 상대가 강하다는 건 파악했지만, 그만큼 약점도 뚜렷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선은 한번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만약 유천하가 이곳에 있었다면 아무리 적어도 5분 안에 전투가 끝났을 터. 그렇다면 과연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녀는 그 생각과 함께 자신의 특성 <변속제어>의 가속을 최대로 발현하였다.

그리고는- 빠르게 결론을 내려보았다.

‘5분.’

상대가 죽던, 자신이 죽던 그 안에 끝낸다.

남궁설아가 그런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다시금 군청색의 잔향으로 늘어졌고, 그런 그녀를 향해 사방에서 수십 줄기의 사슬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아리엘은 정신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콰아아앙-!!

그것은 무서워서가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기에 그런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본능적으로 빠르게 옥상을 향해 달려나가면서도 그녀의 머리가 순간 마음속으로 축제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수와 그로 인해 발생할 인명 피해를 계산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

아리엘은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을 입술을 짓씹음으로써 빠르게 내리찍었고, 그렇게 차갑게 가라앉은 정신으로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며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쿵쿵- 분명 심장은 분함 속에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지만, 저 자신이 이성을 유지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리엘은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원인도, 수치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우우웅-!!

그저- 하나라도 더 구하는 게 중요했을 뿐.

그나마 아리엘로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던 부분은 협력전이 허상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덕분에 역량의 소모가 없었다는 것이고,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차원에서 빠져나온 순간 회복된 그녀의 언령 속에는 분명 지난 한 달간 쌓아놓은 힘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것도 그동안 유천하를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수호자급 마수를 빠르게 토벌하기 위해 쌓아놓은 축언의 힘이 고스란히 말이다.

그리고 또한.

아리엘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승천과의 옥상까지 올라온 것이었으니,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시야로는 분명 1학구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 순간-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림자의 움직임을 금한다.]

우웅-!! 쌓여 있던 업은 그녀의 목소리 담겨 수백 미터를 아우르며 뻗어 나갔고, 그 광범위한 전장을 억누른 채 그녀가 바란 심상이 언어를 통해 세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마수들의 움직임이 얼어붙는다.

사람을 살해하려던 마인의 손이 멈춰선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붙잡은 것처럼.

그렇게 끼긱 거리는 잿빛의 형상들이 당혹감을 느끼며 언령에 저항을 시작했고, 그 순간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던 생도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대의 핵을 파괴해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생명의 살해를 금한다.]

아리엘은 또렷한 목소리로 전장에 언령을 구사하였고, 지금 당장 구체적인 결과로 체현되진 않았을지언정 연이어 흘러나온 언령은 가호가 되어 마수들의 몸을 내리눌렀다.

콰과과과과과과-!!!

사람을 해하려던 마수의 몸이 한순간 중력에 내리 찍히듯 납작해졌고, 다시 생도를 공격하려던 마인의 손이 짜부라지며 느려졌다. 전장에 맴도는 무언의 힘이 그녀의 심상에 맞춰 그때그때 현상을 일으켰고, 그녀의 두 마디는 전장의 흐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규모의 현상!

하지만 아리엘은 이 두 마디를 내뱉고선 뇌가 타오를 것 같은 감각에 휩싸여 있었으니, 순간 저도 모르게 휘청거린 그녀의 몸을 옆에 있던 이하린이 빠르게 붙들어주었다.

“······무리하지는 마세요. 위험해요.”

“아니야. 지금은 이 정도로 해야 해.”

그렇게 이하린의 염려를 떨쳐낸 아리엘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동시에 빠르게 상태를 파악해나갔다.

확실히 의식 동조를 보조해주는 이가 없어서 그런지, 쌓아놓은 힘과 마력의 규모를 정신력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 그래도 마력의 제어력만큼은 얼마든지 자신이 있는 부분이었기에 극악의 난이도였을지언정 억지로나마 세계에 동조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수백 미터의 범위에 가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언령으로 소모된 힘은 겨우 1할에 불과했다.

육체가 버티지 못할 뿐이지 힘의 축적은 충분했으니, 그저 다행이라 할 수 있는 부분.

그런데 그렇게 상태를 관조해보고 있자니 아리엘의 머릿속으론 순간 그런 규모의 언령을 사용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튕겨내던 유천하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사실에 그녀는 잠시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물론 언령의 특성이 그렇긴 하지만.’

본디 언령의 강제력은 상대적인 힘이었기에 강력한 개인을 제어하기보단, 미약한 절대다수를 강제하는데 더 압도적인 효율을 보이는 게 맞긴 했다. 그것이 바로 언령이란 힘이 갖는 장점이자 단점이었으니까 말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수십 개체의 마수를 한 번에 제어해내는 힘을 갖고도 유천하의 몸을 한순간 얽어매는 게 전부였으니, 유천하의 정신력이 자신에 비해 얼마나 날카롭게 가다듬어져 있었는지 그녀는 다시 그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대단하면서도, 경악스러웠고, 다시 분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정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에 감사했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기에 그녀는 유천하를 이기기 위해 준비를 쌓아왔고, 그 사이에 놓여 있던 격차를 메꾸기 위해 그녀가 공들였던 노력의 시간은 모두, 지금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중이었다.

단순히 시합을 위해,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실제로 다른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어보았다. 남아있는 힘으로 1학구의 다른 구역들의 전황을 차례대로 조율해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상당히 거슬리는 아해로구나.”

“······!!”

그녀가 다음 언령을 입밖에 꺼내기도 전에 그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퍼졌고, 그 즉시 이하린이 백색의 검강을 그어냈다. 아리엘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말이다.

단 한순간에 뻗어 나가는 백색의 별빛.

아무도 없는 허공을 베어 가르는 궤적.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가각-!! 아무도 없는 허공을 베어내는 듯했던 이하린의 검은 그대로 마력의 불씨를 토해내며 <검의 반려>의 백업을 받아 공간의 은막을 베어냈고, 그 속에서 한 명의, 아니 하나의 그림자가 흐르듯 새어나왔다.

그것도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녀들의 몸에 오한이 돋아났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인물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발을 내디뎠다.

탁- 적막을 가르고 울려 퍼진 가벼운 소음.

“······그쪽도 생각지도 못한 재주를 갖고 있었군. 설마 이걸 바로 끌어내릴 줄이야.”

무척이나 평이한 어조로, 단조롭게 흘러나오는 마인의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은 잠시 호흡이 흐트러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구역질이 날 정도의 부정 사념.

그것은 어떠한 특성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속에 담겨있는 악의 때문이었으니-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닌바 재주가 감탄스러우니 특별히 예를 갖춰주도록 하마. 그림자의 대리인께 직접 멸화의 직위를 하사 받은 자. 그림자 주교. 베헤딕트 휴반. 그것이 나의 이름이니······”

하지만- 마인의 말투와 표정은 그와 대조될 정도로 평온하고, 단조로웠으니, 이 순간.

“너희는 웃으며 죽거라.”

카각- 그녀들을 향해 손을 뻗어오는 마인의 표정은 무척이나 인자해 보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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