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33화 (133/205)

거울의 양면 (5)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빛을 발하는 적색의 눈동자와 달빛마저 가라앉힌 검디검은 눈동자- 다소 거리를 두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시야는 서로의 모습을 정확히 담아내었다.

분명 사방에선 튕겨 나간 마인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녀석들의 존재감은 무척이나 미미했을 뿐이고,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서로의 존재만을 의식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유.”

유천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한마디-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그는 길게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거기에 더해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당연히 불필요한 겉치레 따윈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백 미터의 거리를 격하고 진시우의 귓가에 그대로 박혀 들어갔으니, 그도 상대와 마찬가지의 판단을 내렸을 뿐.

“확인할 게 있었으니까.”

그렇게 짤막한 대답을 돌려준 진시우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빛을 쏘아냈고, 픵-! 적의 한점 실리지 않은 빛의 탄환은 그대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마인 몇몇을 가격하였다.

그러자 녀석들의 몸이 한순간에 뒤집힌다.

“얼굴을 확인해 봐.”

“······.”

상당히 자신 있게 건네진 말이었기에 유천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방금 몸이 뒤집힌 마인들의 얼굴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하지만 만상의 눈으로 확인해봐도 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마인으로만 느껴졌다. 진시우 공격 한 번에 저 꼴이 될 정도로 허약했고, 타천자급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그저 흔하디흔한 조무래기. 접경지를 넘어가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마인들. 유천하에게는 딱 그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모르는 건가?”

그러나- 진시우에겐 그게 아니었던 모양.

“구르베니 엘랑고.”

“······!!”

어느새 그곳으로 걸어온 진시우가 손가락으로 누워있던 마인을 가리켰고, 그 말에 마인은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금 그 손가락으로 옆에 있던 마인들을 차례대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들의 이름까지 언급하면서 말이다.

“노티아 릴넬. 네스탄 게웬도스. 염조경. 류이친첸. 페이들루 그렌스. 카로일라 타윈. 베세니야. 파른 타일러. 룩스멜 바질······”

“······뭐야 저 새끼.”

“갑자기 뭐래 시발.”

녀석의 손가락과 입이 움직일 때마다 그 대상이 된 마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내비쳤는데, 어떤 녀석은 놀랐다는 듯 흠칫거렸고, 어떤 녀석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으며, 또 어떤 녀석은 저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물론 바닥에 몸을 뉜 채 표정만 꿈틀거리는 것에 불과했으니, 두 사람은 그들의 표정만 살피고 바로 시선을 거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닐 테니 지금 진시우가 말한 내용에는 근거가 있을 터였고, 그렇다면 녀석의 소속과 언행을 봐선 출저가 될만한 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전부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어 있는 건가.”

“그래.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방금 보니까 그렇더군. 그래서 확인해보려 멈춰 세웠다.”

그런 생각에 유천하는 그리 되물었고, 그 물음에 진시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조금 아쉽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블랙리스트 정도는 외우고 다닐 줄 알았는데 내가 조금 착각했나 보군.”

자신이 그걸 뭣 하러 외우고 다닌단 말인가?- 판단의 근거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진시우는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모양.

그에 유천하는 잠시 의아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내 진시우가 한 말과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기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진시우라도 설마 저렇게 블랙리스트의 조무래기들까지 모두 외우고 다닌다는 점은 신기하긴 했지만, 지금 그것보다는 아까 전 하오란부터 시작된 이 의문투성이 상황에 대한 이질감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거기에 더해 지금 진시우가 했던 말과 행동에 마인들이 보여줬던 반응이 상당히 거슬렸다는 것 또한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단순히 등재되어있다고 멈춰 세운 건 아닌 것 같은데. 특이사항이라도 있는 건가?”

“······있지. 그것도 상당히 이상한 부분이.”

그 말과 함께 진시우는 조금 전 언급했던 마인들을 다시 하나하나 손으로 가리켰고, 그러면서 그는 아는 대로 정보를 덧붙였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온 정보대로라면 구르베니 엘랑고, 저놈은 검은 여명 소속이지만 현재는 앨커트래즈에 수감된 상태여야 돼.”

“노티아 릴넬은 통상 분류상으론 마공을 익힌 범죄자는 맞지만 침식 마인은 아니고, 네스탄 게웬도스는 작년에 죽은 녀석이지.”

“염조경과 류이진첸은 적원회 소속으로 얼마전 집행기관의 수감시설에 잡혀들어갔고, 페이들루 그렌스는 작년에 사망, 카로일라 맥웬은 원래 검은 여명 소속이었지만 그림자 교단으로 넘어간 거로 파악 중이······”

그렇게 빠르게, 그러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흘러나온 진시우의 말에 마인들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그들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큭··· 씨발! 누구 멋대로 뒤졌다는 거야!”

“그림자 교단? 저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잡혀들어갔다고? 병신인가?”

“내 이름이 언제부터 노티··· 뭐? 시발?”

하지만 마인들은 일제히 광분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는데, 누군가는 이름은 긍정하였고, 누군가는 소속을, 다시 누군가는 진시우가 말한 행적을 부정했으며, 마지막엔 이름까지 부정하는 놈도 존재했다.

솔직히 정보의 신뢰성이 의심 가는 상황.

그러나 유천하는 이 순간 녀석들이 보여준 반응과 진시우의 태도에 그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그리고는 조금 전 하오란을 보며 느꼈던 의문점의 가능성을 검토해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그래. 이상한 일이지.”

우선- 하오란도 그에게나 조무래기일 뿐이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마인은 맞았다.

하물며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대다수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마인들로만 이루어진 듯싶었는데,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 부분에 대해 사뭇 의아하단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인의 정보야 진시우의 착각이라 넘길 수도 있었지만,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진시우의 모습과 녀석의 소속을 생각해봤을 때 착각일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았으니 말이다.

또한 하오란의 등장에는 그로서도 아까부터 충분히 의아함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저 당연한 의문이었을 뿐.

녀석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연락했던 시기는 대략 2주 전. 그때까지만 해도 녀석은 남미에서 도피 겸 마인들의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그럼 그사이에 하오란이 침식이 마인이 된 상태로, 그것도 기억까지 소거된 상태로 변질되었다는 것보단 녀석이 가짜라 여기는 게 더 합리적인 판단이지 않겠는가?

물론 하오란의 안위 따윈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침식 마인이 될거였다면 시기부터 조금 모호하기도 했고, 놈은 기억 소거 같은 수고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없는 놈이었다.

하물며 지금 눈앞의 마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진시우의 말만 조합해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진다는 느낌- 유천하는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 말한 정보··· 틀리진 않았겠지?”

“······어이가 없군.”

그러나 만약의 가능성도 있었기에 한 번 더 확인해볼 겸 질문을 건네었고, 그 태도에 이제껏 담담해 보였던 진시우가 평소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범죄자의 수는 겨우 4,323건. 그 정도도 못 외울 만큼 멍청하진 않다고 말해주지. 그리고 리스트의 정보가 잘못되었다 한들 적어도 2명은 확실해.”

“그 판단의 근거는.”

“둘 다 내가 잡아넣었으니까.”

“······.”

그 말에 유천하는 곧바로 판단을 내렸다.

저 녀석이 왜 그 자신에게 저런 사실까지 망설임 없이 밝히는지는 둘째치고, 그렇다면 이 상황이 이질적이라는 건 확실했을 뿐.

“그럼 특성인가?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살아 있는 녀석들도 껴있는 것 같으니 사령 마법은 아니야, 자아까지 독립되어 있는데 저런 게 있었다면 진작에 난리 났겠지.”

“······마력의 흐름 또한 상당히 평이하고.”

“특성의 주체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

“주체인진 모르겠지만 거슬리는 건 있어.”

그렇게 그들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마인들은 어느새 재생되었는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악문 채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듣자 듣자 하니까 무슨.”

“대체 누구 마음대로 멀쩡한 사람을 허깨비 취급하는 거냐 이 좆같은 애새끼들아···!!”

“특성? 하! 우리를 뭘로 보는 거냐 시발.”

물론- 두 사람의 반응은 그저 간단했다.

“마지막으로. 죽이면 문제 되는 부분은?”

“없어. 더 확인해야 할 부분도 없고.”

애초에 진시우가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유천하는 이미 마인들을 죽이고 있었을 터였고, 진시우 또한 지금의 의문점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 상황에 끼어들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

“뒤져라 이 새······”

“너희부터 죽······”

더 이상 지체할 이유 따윈 없었을 뿐.

쾅-!! 유천하가 발을 박차고 뛰어나감과 동시에 하늘에서 번뜩인 빛의 다발이 순식간에 수십 갈래로 갈라지더니 지면을 내리 찍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을 향해 발을 박차던 마인들이 한순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크륵··· 크아아아악!!”

“키햐악! 크으··· 크악!!”

누가 마인 아니랄까 봐 마수의 울음소리와 뒤섞인 하울링을 토해낸 녀석들은 일순간에 백색의 빛에 산산이 조각났고, 그렇게 수십 마리의 잔챙이들이 모두 터져나가던 순간.

바로 그 순간- 유천하의 검은 엉뚱한 곳을 향해 칠흑의 참격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것도 아무도 없는 텅 빈 허공을 향해서.

퀴이이잉-!!

전장에서 떨어진, 어두컴컴한 그림자만이 내려앉아 있는 숲의 한구석- 그리고 그곳을 향해 순식간에 뻗어져 나가는 칠흑의 궤적.

당연히 달려들던 마인들은 물론이고, 그런 마인들을 향해 공격을 내질렀던 진시우도 미처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지만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천하는 찰나의 순간 동안 이미 허공을 베어낸 뒤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크윽!!”

푸슉-!! 그렇게 허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림자와 함께 허상처럼 일렁거리는 괴인 하나가 현실에 몸을 드러냈고, 경악스러운 표정과 함께 제 몸을 휘청거렸다. 베인 어깨에서 꿀렁거리는 그림자를 토해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안보일 줄 알았던 건가?”

“괴물 자식 같으니···!!”

지면에 도달한 마인이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전에 이미 유천하의 검은 다시 한번 더 그 목을 향해 한순간에 뻗어 나가는 중이었다.

그것도 단 일격에 베어 죽이겠다는 듯이.

위잉-! 그러나 마인 또한 이제껏 숨어있던 게 괜한 요행은 아니었는지 유천하의 검이 뻗어진 순간 다시 허공으로 녹아들었고, 마치 투명도가 가해진 그의 몸은 일시적으로 분리된 공간에 접어들며 공격을 회피하였다.

바람을 베어 가르듯 스쳐 지나가는 검신.

그리고 신기루처럼 일렁거리는 마인의 몸.

“······.”

그러나 유천하는 그 즉시 만상의 눈을 전환함과 동시에 검과 하나가 되었고, 마인을 베어낼 수 있는가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직 마인의 몸이 흐릿해지고 있는 순간.

뿜어진 피가 땅에 떨어지지도 않은 순간.

진시우가 다시 빛의 마력을 쏘아낸 순간.

바로 그 순간.

“허상 차원을 네까짓 게 베······ 어?”

서걱-!! 소리를 두고 그어진 초속의 궤적과 함께 흐릿해지던 마인의 팔이 허공으로 떨어져 나갔고, 흑색의 빛이 뒤늦게 그곳을 따라 번쩍거리며 마인의 팔을 조각내버렸다.

그건- 정말 단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부실해.”

“······!!”

그렇게 제대로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쇄골과 팔이 베어져 나간 마인은 이를 악물고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그런 마인의 움직임에 기다란 잿빛의 잔향이 밤길을 수놓았다.

허공을 수놓은 그림자에 침식된 혈류.

그리고 그걸 따라 늘어지는 놈의 잔향.

물론 그 순간에는 마인도 제대로 특성을 발현하며 물러섰기에 이번에는 틈을 내주지 않았고, 그런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유천하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타천자인가.”

“······.”

마인은 입을 다문 채 으드득- 소리를 내었지만 유천하는 빠르게 수준을 가늠해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마력의 질, 기세의 수준을 보아하니 타천자인 모양이었는데 객관적으로 수준 자체는 카룬드 녀석보다도 낮아 보였다. 물론 카룬드도 나름대로 중상위권 등천자 수준은 되었으니 무시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태 상대했던 타천자들에 비하면 솔직히 말해서 한심하다 할 수 있는 수준.

그렇기에 그가 녀석의 본질을 들여다보며 잠시 궁리를 하고 있자니, 이내 마인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카득··· 카드득!! 카드득!!

녀석의 마력이 어딘가로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주변에서 늘어져 있던 그림자에서부터 아까와 같은 마인들이 하나씩 흐물흐물 솟아나기 시작했고, 이전과 동일하지만 색채만큼은 그대로 빠져나가 잿빛이 된 그림자의 마인들이 한순간에 그들을 둘러싸 버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타천자는 이를 악문 채 분노가 뒤섞인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와 같은 요행은 더 이상 없을 거다.”

“······.”

“너희는 두 사람인데 나 혼자 싸우는 건 불공평하잖나? 그렇다고 설마 마인한테 정정당당함을 바라는 병신은 아닐 테고 말이야.”

“······.”

“아무리 강해도 체력이 무한하진 않겠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에 유천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옆을 쳐다봤는데, 그러자 마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잔뜩 미간을 찌푸리는 진시우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유천하는 질문을 건네보았다.

“한 가지 묻지. 저 녀석도 알고 있나?”

“······알고는 있지. 알고야.”

어딘가 미묘한 반응- 유천하는 그 대답 속에서 조금 의아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살려야 할 필요성이 있는 녀석인가?”

“아니 죽여도 상관없어. 아니 죽여라.”

“그럼 저 녀석이 주체일 가능성은.”

“그럴 일은 전혀 없다고 말해두지.”

그렇게 두 사람이 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자 팔을 재생시키고 있던 타천자가 버럭 소리를 내질러왔다.

“이 애송이 새끼들이 아주 사람을 물로 보는군!! 내가 누군지는 알고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냐? 내가 평범한 마인이라 생······”

하지만.

“그림자 교단. 여명급 주교. 카샤스 리델.”

“······!!”

“아니까 닥쳐 머저리 같은 새끼야.”

타천자는 이어지는 말에 눈을 부릅뜨며 말을 멈추었고, 그 모습에도 진시우는 그저 녀석을 무시한 채 1학구를 바라보았다. 아니, 유천하 또한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콰과과가가가-!!!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선명히 느껴질 정도의 마력 파동이 1학구의 경계에서 터져 나왔고, 위치상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간단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잿빛탑의 역류가 일어났다는 것.

“혹시 지금 내 감각이 잘못 느낀 건가?”

“아니, 마력 파동··· 침식역류가 일어났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보니까 불가능하진 않나 보군.”

그것도 무려 백색탑의 위치에서 말이다.

‘백색탑의 변질··· 이게 왜 지금 나오지?’

그렇기에 유천하는 만상의 눈으로 원경을 투시하며 기억을 되짚어 보았고, 아까부터 조금씩 거슬리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라면 백색탑이 잿빛탑으로 변해 역류를 일으키는 건 작중 후반부, 그것도 세계침식이 가까워졌을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 저런 게 일어나는 건 말도 안 되었을 뿐.

아니, 아까부터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에서 계속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짜증 나는 건 그럼에도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려 하면 자꾸만 정신이 느슨해지는 기분이라 피로도만 늘어난다는 것.

마치- 일순간 잠이 들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네 놈이 나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의 교전정도로 이 몸을 얕본 것 만큼은 철저히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하지만 갑작스러운 마인들의 테러도, 난데없는 침식 역류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현장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을 시민들도 거슬렸으니 그들이 처리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그렇기에.

“시간이 없으니까. 나눠서 맡지.”

“그럼 내가 저 녀석, 네가 나머지.”

“호신강기. 얼마나 두를 수 있지?”

“기준이 얼마냐에 따라 다르겠지.”

“2천 AC. 방사형. 조금 전의 3배.”

두 사람은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그들은 짧은 몇 마디만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그럼 바로 쏴. 1분 정돈 상관없어.”

“1분 만에 가능··· 아니 괜한 소리군.”

물론 이 상황이 위험한 순간은 아니었지만 유천하는 원작을 통해, 진시우는 그간의 활약을 통해 서로의 실력을 알고 있었고, 다시 어떤 부류의 기량인지도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해결할 방법을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틈 정도는 만들어주지.”

그렇게 점점 늘어나는 잿빛의 마인들을 바라보며, 그와 동시에 흉흉한 살의를 토해오는 타천자를 바라보며 진시우가 입을 열어왔고, 유천하는 만상의 눈과 풍결의 가호를 같이 발동시키며 전장의 흐름을 관측해보았다.

상대의 실력이 하수라 한들 타천자는 타천자였고, 하물며 특성이 이질적인 만큼 실수 했다간 괜한 시간만 다소 빼앗기게 될 터.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무언가 벌어지는 중이었고, 그는 비효율적인 짓을 싫어했다.

그러므로 그는 타천자에게 말을 거는 진시우의 행동에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인을 바라보았고, 그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노리며 일념의 살의를 벼려내 검 끝에 실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거기 머저리.”

진시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뜬금없는 말.

“한가지 말해주마. 그림자 교단의 주교는 교주의 특성을 부여받아 특수한 마력 패턴이 나타난다. 우리는 그걸 표식이라 부르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 꼬마야.”

“표식은 유동적이며, 주교가 교체되는 순간 당연히 표식도 교체된다. 알고 있겠지?”

그와 동시에 진시우의 몸에서 상당히 거대한 마력의 파문이 흘러나왔고, 녀석은 타천자를 바라보며 허공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한테 지금 표식이 존재한다 생각하냐?”

“······뭔 개소리를 하려는 거지 지금?”

“그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나 보군. 머저리라도 내 말은 이해하겠지. 이해가 빠르니 상으로 한 가지 더 알려주마. 그니까···”

유천하로서는 그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진시우의 발언에 타천자의 심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

웅- 진시우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파문. 유천하는 발을 박참과 동시에 만상의 눈으로 그 현상을 흥미롭게 관찰하였고, 진시우는 그것도 모른 채 순수히 제 능력을 펼쳐 보였다. 영혼에 그려지는 1개의 원형. 그와 동시에 안 그대로 비대한 마력이 한 번 더 증폭되듯 터져 나오며 확산되기 시작한 영의 파동.

“너도 옛날에 이미 뒤진 새끼라고.”

이 병신새끼야-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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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에 백야가 찾아왔고, 그 순간 칠흑의 참격이 빛을 가로지르며 뻗어 나갔다.

***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축제를 즐긴다.

2일 차 밤에 접어든 만큼 승천제의 분위기도 완숙하게 달아올랐고, 곳곳에 펼쳐져 있는 노점상도, 그리고 갖가지 구역들도 사람들의 기분을 무척이나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만큼- 마찬가지로 축제를 즐기고 있던 1학년 생도. 황찬룡은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크륵··· 크라아아!!

“닥쳐 이 새끼야!!”

이 순간 이미 평화로웠던 축제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마인과 마수가 뒤엉킨 광란의 학살극으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서걱-!! 다급하게 뻗어져 나간 검이 마수의 몸통을 베어 갈랐고, 그 사이로 엿보인 핵을 바라보며 그는 다시 한번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콰직-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핵.

카륵··· 퍼어엉-!!

-꺄아아악···!!

다급하게 내질렀던 터라 마수의 폭발과 함께 몰아친 마력의 바람에 그의 몸이 잠깐 흐트러졌다. 하지만 황찬룡은 그 순간 귓가에 들려온 외침을 놓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는 다시금 발을 박차며 거리를 내달렸다.

그러면서도 마치 북을 치듯 둥둥거리는 심장 소리를 억누르며 황찬룡은 생각해보았다.

‘씨발 이게 무슨 일이야.’

처음엔 전부 회랑의 이벤트인 줄 알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그는 그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분명 승천제인 이상, 그리고 이곳이 등천회랑인 인상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걸 믿을 바엔 이 모든 게 전부 허상이었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사, 사람 살려··· 마, 마수가··· 마수가!!

-으아악!! 파, 팔··· 내, 으아아악!!!

-마, 마인이 나타났어요! 저, 저기!!

하지만 지금 사방에서 흩뿌려지고 있는 건 백색의 가루가 아니리 짙디짙은 붉은 피였을 뿐이었고, 비명과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분명 현실이었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던 그는 제 옆에 있던 사람의 피가 얼굴에 튄 순간- 바로 그 순간 느껴진 피의 온기를 통해 도피하고 있던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으니. 그 즉시 정신을 차리게 된 그가 맨 처음 선택한 일은 생도로선 무척이나 당연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 살려주세요···!! 사, 사···!’

“숙이세요!!”

서걱-!! 온몸을 던져 사람을 구하는 것.

-크륵··· 크라아아!!!

“큭···!!”

비록 축제를 즐기던 와중이었기에 장비라고는 칼 하나가 전부였고, 지난밤 밤새 수련을 한 여파로 아직도 피로가 남아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데 망설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망설임 없이 전투에 난선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축제를 즐기고 있던 아이들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이들도, 수련을 하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생도의, 그리고 다시 공략자의 본분을 망설임없이 행하는 중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의무였으니 말이다.

달려오는 마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마인들을 죽이며,

다시- 오로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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