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30화 (130/205)

거울의 양면 (2)

주변의 소곤거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시끌벅적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 찬 야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와중에도 우리를 발견한 사람들은 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그 소곤거림에 악의는 없었을지언정 나는 아리엘의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분명 우리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면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력의 동요 또한 빠르게 가라앉히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리엘로서도 순간순간 드러나는 동공의 떨림마저 어찌할 수는 없었던 모양.

그런 게 몇 번 반복되고 나자 이하린도 아리엘의 상태를 알아차렸지만 그녀도, 나도 서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눈 대로 각자 야시장을 구경하면서 봐두었던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흩어졌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음식을 들고 모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너··· 솜사탕은 왜 사 온 거야 대체?”

“······먹고, 후식으로 또 먹으라고.”

아리엘은 나,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걸 발견하자마자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로서는 그저 원작의 이하린도 떠올랐고, 아리엘의 기분도 당분이 들어가면 조금이나마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사 온 것이었지만 막상 저런 반응을 보니 뒤늦게 조금 아차 싶었다. 무슨 어린애냐는 듯 쳐다보는 아리엘의 표정에 딱히 할 말이 없었던 탓.

그래도······ 이하린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그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와···! 솜사탕 되게 오랜만에 봐요!”

“······뭐··· 후식 좋지. 그래! 잘했어.”

그 덕분에 아리엘도 이내 방긋거리는 이하린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고, 살며시 작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대로 광장 한구석에 있는 벤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무릎 위에 먹을거릴 올려둔 채로 그곳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선선한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간다.

-님님! 이따가 기원관 공연 보러 가실?

-공연? 오늘 라인업 구성 어케 되는데?

-라인업? 나도 몰라. 걸그룹 오는 건 앎.

확실히 축제라 그런지 신나서 돌아다니는 생도들의 모습이 시야에 자주 들어왔고, 그렇게 우리는 슬슬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곳곳에서 주홍빛 불씨를 밝혀오는 야시장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 온 먹거리로 가볍게 저녁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그러고 있자니 이내 시끌벅적한 거리를 바라보며 입을 오물거리고 있던 아리엘에게서 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축제 같다.”

“그쵸? 뭔가 정말 축제 같아서 좋아요.”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그녀들의 대화.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축제 맞아.”

나는 그녀들의 반응에 말을 덧붙였고, 내 말에 둘은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론 나도 그녀들의 기분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승천제는 일반인들이라면 모를까 생도들에게는 평범한 축제라기보단 조금 더 부담스러운 행사에 가까웠을지도 몰랐고, 그 사실은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재생되고 있는 시합 영상들이 증명해주고 있었을 뿐.

[아니 무슨 혼자서 저걸···!! 자, 잠···!]

[간격 안에 들어가지마 이 빡대가리들아!!]

[미친···! 누가 둔화 좀 걸어봐. 빨리!]

[저항력이 너무 높아서 안 걸려 멍청아!!]

방문객들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생도들이 보라고 틀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전 영상도, 협력전 영상도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었던 장면들은 온종일 여기저기 설치된 스크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기기엔 이런 분위기가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이 모든 것이 생도들에겐 당연한, 저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다른 애들도 엄청 열심히 했었네.”

“다들 열심히 했죠. 아까 새벽에 나올 때만 해도 수련실이 전부 꽉 차 있었으니까요.”

“그랬지. 모두 다··· 열심히 준비했었지.”

스크린을 보고 있던 아리엘의 입에서 갑자기 붕 뜬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에 그녀를 바라보니 내 눈에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리엘의 얼굴이 들어왔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시선에도 아리엘은 여전히 어느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지금 그녀가 멍하니 보고 있는 건 바로 우리가 치렀던 시합 영상이었다. 그것도- 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영상.

그래서일까?

“나도······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건 분명 담담하게 흘러나온 말이었지만, 나는 그 속에 담긴 그녀의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후회, 실망이 뒤섞인 심란한 감정이 말이다.

“······.”

“······.”

그렇기에- 나와 이하린은 차분해진 아리엘의 목소리에 잠시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우리의 시선에 아리엘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아차 싶었는지 눈을 빠르게 눈을 깜박거렸다.

“······아.”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 맞다! 천하 너 혹시 그거 알아?”

“······뭐가?”

“애들이 다들 너보고 진짜 마인같았대.”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정말이지 말 그대로 뜬금없는 소리. 솔직히 그냥 농담으로 말을 돌리려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녀의 기분이 이해되었기에 나는 그저 평소처럼 말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못 들은 척하기는. 아까는 나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거기서 너 표정 보고 깜짝 놀라서 몸이 안 움직였을 정도였단 말이야.”

“유난 떨지 마. 그 정도까진 아니었잖아.”

“유난이라니? 너가 그 기분을 알아?”

그리고- 이하린 또한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우리를 바라보았고, 이내 작게 웅얼거렸다.

“사실······ 그때는 저도 조금 무서웠어요.”

“그치? 아까 돌아다니면서 들었는데 다른 애들도 다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하더라구. 솔직히 누가 봐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을걸?”

아리엘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인씨는 그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인 역할이었으니까 마인 같았겠지.”

내 말에 아리엘은 그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고, 그리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며 밝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진짜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정말이지 밝아 보이는 목소리로 말이다.

“아··· 나 탈락하고 나서 저렇게 됐구나? 저기서 저걸 막았네? 와··· 어떻게 한 거야?”

“······.”

“그래도 움직임이 달라진 걸 봐선 언령이 소용없진 않았나 보다. 다행이야······ 아이구. 설아는 너무 아깝다··· 버틸 수 있었을 텐데.”

“······.”

“하린이도 대단하네. 혼자서도 버티고.”

하지만 그녀의 손은 음식을 콕 찍어놓은 그대로 멈춰있었고, 이내 그 손에 들린 꼬치에선 미끄러진 음식이 툭- 흘러 떨어졌을 뿐.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저걸 보니까 다들 열심히 한 보람은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않아 하린아?”

“······네. 이길 수 있었는데 아까웠어요.”

이걸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아이 같다고 해야 할지- 그런 아리엘을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속상한 게 빤히 보이는데도 이런 거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도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다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어지간해선 그녀의 태도에 말을 맞춰주고 싶었지만, 일부러 밝은 척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내겐 너무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굳이 억지로 안 그래도 돼.”

“······.”

“멀쩡한 척 안 해도 괜찮아.”

그렇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아리엘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얼어붙고야 말았다.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물론 그녀는 다시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 반응에도 말없이 계속 그녀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

“······.”

나는 그렇게 담담히 그녀의 눈을 마주하였고, 그런 내 태도에 옆에서 아리엘의 말을 받아주고 있던 이하린도 이내 입을 꾹 다물고는 염려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후- 흘러나온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침묵이 내려앉았던 벤치의 공기가 살며시 깨져나갔고, 잠시 고개를 휘저은 아리엘은 우리를 향해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 많이 티 났어?”

“아니, 많이는 아니고.”

내 말에 그녀는 조금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이내 민망하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럼 모른 척 좀 해주지 그랬어.”

“계속 그러기에는··· 조금 많이 났고.”

“······뭐야 그게. 바보야.”

고개를 푹 숙인 채 끙끙거리는 아리엘의 모습에 이하린은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그녀의 등을 살며시 토닥거려주기 시작했고, 평소였다면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왔을 그녀도 지금만큼은 말없이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이 일렁거리는 걸 보니 그녀도 마음을 내려놓은 모양.

그렇게 우리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리엘이 갑작스러운 말을 꺼내왔다.

“미안해.”

그것도 다소 바보 같은 소리를 말이다.

“네가 사과를 왜 해. 뭐가 미안하다고.”

“그냥······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어서. 괜히 너희까지 신경 쓰이게 만들었으니까.”

“안 이상해. 상관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애도 아니고······ 뭐야 이게.”

“착각하는 모양인데 너 아직 애 맞아.”

그 순간-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리엘이 묘한 표정과 함께 나를 올려다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고개를 수그리며 한숨을 내쉬었고, 마치 자신이 이하린이라도 된 것처럼 팔로 다리를 감싸며 움츠러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단했다고 생각해.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험했고, 기대 이상이었어. 진심이야 이건.”

“······.”

“만약 조금만 더 기울어졌어도 내가 졌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는 마.”

당연히 이건 단순히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시합에서 아리엘이 보여줬던 광경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고, 그건 지금 말한 것처럼 내게도 정말 위험한 공격이었다.

근래 의념에 대한 수련을 늘리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

하지만 아리엘에겐 그게 아니었던 걸까?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아리엘의 손이 조금 움찔거렸고, 그녀는 무언가 고민이라도 되는 듯 잠시 말없이 호흡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결심한 듯 천천히 말을 꺼내왔다.

“······응. 알아. 분명 조금만 더 강했으면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 정도면 너한테 말했던 목표치는 달성했다고 봐도 되겠지.”

“······.”

“근데, 이렇게 됐으니까 하는 말인데······”

아리엘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나와 시선을 마주하였다.

그리고.

“나······ 아까 진짜 너무너무 분했다?”

이 순간 마주한 아리엘의 눈동자- 그 녹색의 색채는 분명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 정도로 준비했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른 애들이랑 힘을 합쳐서, 그렇게까지 해서야 간신히······ 간신히 그 정도라서.”

“······.”

“그렇게만 해도 만족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밖에 못 한 게 너무 분하고, 내가 너무 약한 것 같아서 그게 내 스스로 너무 분했어.”

그리 말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가다듬으려 하는 그녀였지만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아리엘의 얼굴 속에는 분명 복잡해 보이는 감정이 잔뜩 떠올라 있었을 뿐.

“그니까 이건 그냥··· 나한테 실망한 거야.”

한심함과 미안함, 슬픔과 자기혐오, 분함, 그녀는 그러면서도 이러고 있는 자신이 민망했는지 입술을 깨물었고, 이내 우리를 걱정시키고 싶진 않다는 듯 괜찮은 척 웃어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그 표정이 내게는 그저 슬퍼보이기만 했다.

“······.”

“······.”

그렇기에- 처음 보는 아리엘의 모습에 나도, 이하린도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만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고, 분명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시끄럽고 활기찬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와 대비되는 적막이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항상 남들 앞에선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아리엘이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니야. 칭얼거려서 미안해. 정말.”

다시 한번 사과를 건네며 침묵을 깨트린 아리엘은 그대로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리고는.

“나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올게. 미안.”

우리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고개를 숙인 채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을 뿐이었다.

***

나는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고로- 이하린도 지금 아리엘을 따라간 상황이었는데 아리엘이 저러는 이유도 어찌 보면 내게 있었으니, 지금으로선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그다지 위로가 안 될 것 같았기에 나는 침울해진 이하린에게 그럼 아리엘을 따라가 보라는 말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나야 위로 같은 건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이하린이라면 뭐 어떻게든 하지 않겠는가?

물론 평소에 아리엘이 나를 신경 써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그리고 그런 얼굴을 한 아리엘은 처음 보는 만큼 나 또한 그녀가 신경 쓰였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이곳에 남아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수련이나 하러 갈까 싶었지만, 역시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서마저 그러기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렇기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수련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마냥 두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에도 미묘했으나, 혼자 축제를 즐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을 해야지 내게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잠시 궁리해보았다.

어쩐지 머리가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

“······.”

하지만 이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먹다 남은 쓰레기들을 모두 옆에 있던 통에 쑤셔 넣은 뒤,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바로- 루타텔을 찾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제 2일 차가 지나가고 있는 만큼 그가 이곳에 있는 시간도 어느덧 하루밖에 안 남았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리엘의 상태를 보아하니 당장 오늘 내로 회복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렇다면 이렇게 멍하니 있을 바에야 그냥 루타텔이나 찾아가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그녀에겐 나보다는 루타텔의 한마디가 더 필요해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저 어림짐작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아리엘이 이번 승천제를 진지하게 준비했던 이유에는 나에 더해, 루타텔의 기대도 큰 영향을 끼쳤으니 그런 아리엘에게는 그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탓.

솔직히 말해서 조금 번거롭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저 이하린보다 아닐 뿐이지 아리엘도 분명 평상시에 내게 많은 신경을 기울여주는 아이였고, 아리엘에게는 아까처럼 잔뜩 기죽은 모습보다는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얼굴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걱정시키는 건 평소의 이하린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그리고 또한.

‘안 그래도 한 번 만나볼 생각이었으니까.’

지난번부터 그들 부녀가 조금 신경이 쓰였기에 한 번쯤 만나서 이야기를 꺼내 볼 생각도 있었고, 아리엘의 부친이 아닌, 승천자 루타텔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당장 아리엘이나 이하린에게 연락이 오는 것만 아니라면 루타텔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고, 회랑 어딘가에 있을 그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어디에 가야 있으려나.’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조금 애매하긴 했다.

애초에 내가 1일 차에 나르화리얀과 마주쳤던 건 그저 그가 용맥에 찾아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어제도, 오늘도 행사가 있을 때 말고는 따로 승천자와 마주쳤다는 이야기가 한 번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나는 첫날부터 그게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승천제라 아예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2명씩이나 되는 승천자가 발이 묶여 있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휴식을 겸한 일이라지만 승천자라는 위치와 그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다소 미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을 따름.

안 그래도 사석에는 얼굴 한번 안 비추는 만큼 그렇다면 그들도 나름대로 이번 승천제에 온 이유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래도 우선은 그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그들을 찾든 말든 할 것 같다는 느낌.

하지만.

“······전혀 모르겠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전혀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고, 안 그래도 이제껏 주변의 소식엔 신경을 끄고 살아왔던 만큼 무언가를 추론할 만한 정보마저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이런 경우에 내가 기대볼 만한 건 기껏해야 원작의 지식과 이하린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승천제와 두 명의 승천자만큼은 원작과는 달라진 부분이었기에 그것도 지금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할만한 방법은 단 한 가지- 하나씩 훑어보는 것밖에 없었을 뿐.

허나- 명색이 축제였던 만큼 지금 회랑 내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상태였고, 아무리 나라도 이 넓은 곳에서 그 많은 사람을 일일이 확인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후우우웅-

나는 우선적으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승천관의 옥상으로 올라왔고, 그곳에서 사람이 바글거리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그대로 만상의 눈을 최대한 전개해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

나는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정신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한순간에 잡념이 사그라듦을 체감함과 동시에 빠르게 내 상태를 관조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후우웅-! 망설임 없이 지상을 향해 뛰어내렸고, 순식간에 뺨을 스쳐 가는 바람결을 짓밟으며 그대로 밤을 박차고 달려나갔을 뿐.

왜냐하면- 지금의 광경 속에서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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