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28화 (128/205)

타천자 토벌 (5)

백열의 섬광이 쏘아지고 칠흑이 내달린다.

청색과 백색이 교차하며 파도가 몰아친다.

단 한 명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그 즉시 누군가가 백색 빛으로 흩어져나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었지만 그곳에 서 있는 이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면서도 계속해서 그를 향해 공세를 쏟아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패도의 강격으로.

누군가는 중압의 일격으로.

누군가는 변화의 쾌격으로.

그리고 다시.

카가가가각-!!!

그 대상- 유천하는 그저 만검의 변화를 그 검 끝에 담아내면서 그들을 자유자재로 농락해 나갔을 뿐이었다. 패검에는 마주 패검으로. 중검에는 유검으로. 환검에는 쾌검으로.

콰앙-!! 그야말로 숨 막히는 공방의 연속!

하지만 전장의 상황은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순간에는 14명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5분이 지나가는 이 시점까지 남아있는 건 겨우 8명에 불과했을 뿐.

첫 탈락자는 유천하의 손등이 빛을 발한 순간 생겨났다. 순식간에 그어진 거대한 참격은 그대로 뒤에 있던 2명을 베어냈고, 그렇게 유천하가 본격적으로 업륜을 활용하면서부터 전장의 흐름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5분 동안 퇴장당한 게 총 6명.

허나 인원이 줄어들었을지언정 전장의 템포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빈틈을 메꾸기 위해 더, 더 빨라졌고 지금에 와선 호흡마저 멈춘 채 쉴 새 없이 검을 부닥치며 붉은 불씨를 허공에 흩뿌려 나가는 중이었다.

전위의 4명이 계속해서 검을 얽어내고,

후위의 4명이 빈틈을 노리며 준비한다.

단 한 명이라도 뒤처지는 순간 빈틈이 생겨나고, 빈틈이 드러날 때 그들이 유천하를 타격하는 것보단 유천하가 그들을 베어내는 게 더 빨랐으니 현재의 싸움은 그야말로 각자의 한계에 도전하는 격전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금속의 비명.

쉴 새 없이 쌓여나가는 강철의 화음.

키이잉-!! 카가각-!! 콰앙-!!

“······.”

“······.”

하지만 지금 전장에는 분명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을 열 시간이 없었기에,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쓰러진다는 사실을 지난 5분 동안 깨달았기에, 그들 중 그 누구도 결코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숨이 막혀와도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빠르게, 더, 더 빠르게- 이성과 직감의 선상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네 사람의 손.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검격의 소용돌이!

비록 누군가는 온전했고, 누군가는 불완전했을지언정 사색의 빛을 머금은 파도는 칠흑의 선을 깨트리기 위해 흩날렸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유천하는 그저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부드럽게 공세들을 받아쳐 나갔다.

그렇기에 모두 저 평정을 깨트려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지금 유천하는 마치 바다와 같은 기세를 내비쳤고, 그들이 던지는 조약돌은 아무런 파문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그대로 물결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아니, 오히려 바다에 내던져진 조약돌은 파도에 휩쓸려 점점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흡!”

무호흡의 세계에서 벗어난 리베르테의 검이 흔들린 순간- 고요했던 유천하의 움직임 또한 다시 한순간의 변화를 보여주었을 뿐.

그 순간- 순식간에 느려지는 세계.

“!”

“!”

아니, 느려진 건 유천하의 움직임이었다.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빈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을정도였지만, 초속의 공방을 이어나가던 중 감속된 움직임은 그들의 연계를 한순간에 꼬아버리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리베르테의 호흡이 흐트러진 걸 감지한 아이들은 이미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거해 최대한 감각을 곤두세운 상태였고, 그 덕분에 그들은 그 전초를 감지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거기서 다시 선택지가 갈렸다.

‘속임수. 위험해.’

‘그래도 노려야 해.’

일부러 드러낸 틈새라 한들 분명 공략의 여지는 있었고, 그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자신의 직감을 더해 각자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틈을 향해 두 명이 검을 쏘아넀고, 나머지가 다가올 반격을 대비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유천하의 손이 흐릿해졌다.

---------------------------------------------······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이.

물론 이 순간에 어울리는 비유는 아니었지만 그 손이 자아내는 움직임에는 분명 바람결에 흘러가는 구름의 부드러움과 다시 변화하는 자유로움이 담겨 있었다. 유流와 환幻. 한순간에 흘러간 유천하의 검신은 두 명의 검과 맞닿은 순간 그대로 흐름에 뒤섞인 물결이 되어 다른 이들의 경로에 겹쳐졌다.

그리고, 다시 그 속에서 변화하는 검형.

아직 만검을 담아낼 순 없었어도 유천하의 검은 분명 그 갈래의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찰나의 시간.

천마신공 天魔神功

일천검결 一天劍結

우웅-!! 그 틈새에서 움직임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응을 펼쳐낼 수 있었던 건 오직 최고속으로 가속된 남궁설아밖에 없었을 뿐.

섬혼마검 殲魂魔劍

퀴이잉-!!

한없이 가속하고 가속하여, 끝없이 늘어지는 인지의 영역에서 그녀의 육체가 그 쾌속의 세계에 그대로 접어들며 유천하의 검을 향해 군청색의 섬광을 뻗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 또 분기점이었다.

남궁설아는 유천하의 두 눈을 마주했다.

허공에서 교차하는 서로의 시야.

“······.”

“······.”

한 번의 변화에 한 번의 기회- 극한으로 압축된 세계 속에서 남궁설아는 움직임을 읽어내야 했다. 이 다지선다의 갈림길에서 그녀가 선택을 실수하는 순간 그대로 그 결과는 다른 누군가의 퇴장으로 이어져 버린다.

현재까지의 전적만을 따지자면 6전 6패.

그나마 2번의 실패는 이하린이 벌충해냈지만, 4번의 실패는 결국 4명의 퇴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인원이 줄었다간 균형이 흔들린다. 이미 위타극와의 교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기에 그녀는 지금 이 선택의 중요성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순간을 되새겼다.

유천하의 검은 분명 수십 갈래의 움직임을 자아낼 수 있었지만, 대치상황의 흐름을 깨부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건 바로 그의 움직임이 가속과 감속을 행한다는 것.

마치 그녀 자신의 특성과 비슷했지만 유찬헤의 특성은 관찰계열이었으니 저건 분명 무언가의 방법을 통해 재현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궁무애검법 蒼穹無碍劍法

제왕검형 帝王劍形

그래도 속도만큼이라면 역시 자신이 더 빠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도 한순간에 검에 감속을 걸어 낼 수 있었다- 남궁설아는 그 사실을 똑바로 인지했고, 검을 뻗어냈다.

창천검뢰 暢天劍雷

순식간에 쏘아져 나가는 극한의 쾌격!

다른 이들의 검이 채 절반도 휘둘러지기 전에 청색과 흑색은 소리를 두고 지나쳤다.

그리고는.

픽- 뒤늦게 새어 나오는 가벼운 소리.

하지만 그 결과마저 가볍지는 않았다.

“······흐름.”

“예. 흐름입니다.”

푸슉-!! 빈틈을 향해 달려들던 리베르테의 팔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갔고, 피 대신 흩날리는 백색의 기류 속에 그녀는 자신의 검이 사카타의 검에 가로막힌걸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사카타는 그에 눈을 부릅떴을 뿐.

만약 타이밍이 0.1초 만이라도 어긋났다면 그대로 목이 꿰뚫렸을 텐데도 유천하는 그 공격을 무시하고 리베르테를 베어냈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저래서야 사실상 예지에 가깝지 않은가? 남궁설아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휘둘러진 유천하의 검격에 뒤로 튕겨 나가면서도 다시금 경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유천하의 판단에도, 담력에도, 그리고 저 통찰력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유천하의 손이 다시 흐릿해지며 순식간에 반원을 그려냈고, 균형이 깨진 대치상황은 유천하의 손짓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그들을 강타한 칠흑빛의 참격!

콰과과과과과-!!!

“큭···!”

“···윽!”

그렇게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유천하를 마크하고 있던 인원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아이들의 자세가 일제히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도 아이들은 묵묵히 유천하를 응시하였다.

애초에 전위의 역할은 앞을 막아서는 것.

그 역할의 의미는 제대로 된 반격을 위해 시간을 벌어내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한 명의 팔이 날아갔어도 2분을 버텨낸 시점에서 그들은 어느 정도 임무를 완수한 셈이었다.

그러므로.

“수고했어.”

“잠깐 빠져.”

그들이 튕겨 나감과 동시에 유천하를 향해 마력의 파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을 따름.

우웅-!! 아리엘의 입이 달싹거린 순간 유천하의 몸에 이전보다도 더 큰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고, 둔해진 순간 푸른 파동은 한줄기 창이 되어 유천하의 심장을 강타했다.

물론 그 순간 발해진 칠흑의 강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즉시 공격을 튕겨냈지만······

콰아아앙-!!

당연히 마력을 쏘아낸 마르네도, 기회를 노리던 아리엘도 그 정돈 이미 예상한바.

쾅-!! 그렇기에 튕겨 나간 아이들이 자세를 가다듬고, 팔이 잘려나간 리베르테가 지혈을 하는 사이- 그 사이 유천하의 신형이 어느새 마르네와 이솔라의 앞에 도달했어도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나갔다.

마력을 머금은 마르네가 달려들어 온다.

반대편에서 아리엘이 마력을 그러모은다.

그 모습을 보며 유천하는 잠시 생각했다.

“······.”

원래대로라면 그는 아리엘부터 베어낼 생각이었지만, 튕겨 나가면서도 아리엘을 향한 동선을 지키고 있는 이하린의 기세를 본 순간 우선순위를 잠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하린의 임전 태세는 실전에 가깝게 기세가 가다듬어진 상태였고, 저 상태의 그녀가 공격이 아닌 방어에 진심으로 전념하면 그로서도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다소 비효율적인 소모를 감수해야 했던 탓이었다.

물론- 그래도 얼마든지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뒤져!”

“······.”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걸 놔두고 굳이 그런 선택을 할 필요 없었기에 그는 우선 마르네와 이솔라를 처리할 계획이었을 뿐.

짐승과도 같이 흉흉한 눈빛을 드러내며 손을 뻗어오는 마르네의 행동은 무모했지만, 저 행동이 이솔라와의 연계로 이어졌을 때 어떤 결과로 되돌아오는지는 이미 파괴된 반 획의 업륜이 고스란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바로 그 뒤에 있는 이솔라를 향해 검을 쏘아냈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대응은 단순했다.

푸슉-! 마르네는 이솔라를 향해 쏘아진 공격을 저 자신의 팔로 막아냈고, 그녀는 그대로 제 팔에 검을 박아넣은 채 팔이 갈라지든 말든 그를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뻗어왔다. 어떻게든 그 몸에 손을 갖다 대겠다는 듯이.

“쫄?”

정말 천성 자체가 사파인 녀석- 유천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한쪽으로 올라간 마르네의 입꼬리를 바라보며 그런 감상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아. 닿았다.”

피 대신 백색 빛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팔. 그 손의 끝부분이 유천하의 몸에 맞닿았다.

그와 동시에.

“······마르네 무모해.”

우웅-!! 마르네의 어깨에 맞닿은 이솔라의 손에서부터 한순간에 일련의 흐름이 생겨났고,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간 무언의 파동은 다시 그녀의 몸에서 수배로 증폭되며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대로 유천하의 몸에 맞닿아 이질적인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카득-! 신체의 구성이 변질되는 기분.

그에 유천하는 그 즉시 의념의 축을 몸 안에 세워냈고 내부로 흘러들어온 이질적인 흐름을 자극, 그대로 손등을 향해 뒤틀어냈다.

그러자- 그 순간.

콰과가가가가-!!

유천하의 손등에 자리하고 있던 업륜의 마력이 일순간에 깨져나가며 마력의 폭발을 토해냈고, 그 폭발의 잔재는 이내 허공에서 순식간에 날카로운 비수로 변해 내력이 흐트러진 유천하를 향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미친! 이걸 버티네!!”

“······마르네. 뒤로.”

그렇기에- 몰아치는 마력을 만상의 눈으로 바라보며 유천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거슬리는 특성이야.’

이솔라의 특성 <세계천칭>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능이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마력도, 물질도 그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무언가로 변질되었다. 그건 마력의 저항마저도 강제로 뚫어내는 특성이었고, 사실상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방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봐야 할 수준이었다. 업륜이 아니었다면 막아내기 번거로운 공격.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지.’

서걱-!! 흐트러진 내력으로도 유천하는 마르네를 향해 검을 내질렀고, 비록 아무런 통증은 없었지만 마르네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시발!”

그렇기에- 그녀는 마력을 폭발시키며 마지막으로 유천하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최대한 특성을 폭주시키는 걸 선택했을 뿐.

그리고 물론.

유천하의 눈은 그 모든 흐름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칠흑의 검신이 그녀의 마력이 증폭되는 구심점을 꿰뚫어 끊어친 순간- 허공에 새겨진 칠흑의 선을 따라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늦었어.”

“······!!”

퍼어엉-!! 터져나가는 빛의 입자 속에서 유천하는 다시금 이솔라를 향해 검을 그어냈고, 이솔라는 흔들린 한점 없는. 그러면서도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르네의 퇴장에 꽤나 화가 나버린 모양.

동시에- 이솔라는 손이 꿰뚫리더라도 검을 잡아채겠다는 듯 마주 손을 뻗어왔다.

“······.”

저 손에 닿는 즉시 검이 파괴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대신 이솔라는 확실히 처리할 수 있을 터였기에 그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질렀다.

생각해보면 이하린이 선물해준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었고, 그건 단순히 강도만을 일컫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새카만 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력을 베어낼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병기였고, 일반적인 금속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만큼 저항력도 강한 편이었다.

하물며 튕겨 나갔던 아이들이 어느새 다시 자세를 잡고 달려오고 있었으니, 그로서도 우선 한 명 더 처리할 필요가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의 검이 별빛을 뿜어낸 순간.

바로 그 순간.

“반으로.”

우우웅-!! 한없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 오직 저만이 그 세계에서 벗어난 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아리엘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유천하의 귓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마력을 그 속에 머금고서.

설마 지금 승부를 걸어온 것일까.

유천하는 얼어붙은 세계에서 그녀를 응시하였고, 분명 내지른 검이 아직 제대로 뻗어 나가지도 않았건만 말은 빠르게 이어졌다.

그리고.

“갈라져서.”

저건 방심하면 안 된다- 저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이 본능적으로 유천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말의 담긴 마력의 양도 그렇지만, 조금 전 이솔라와 마르네의 특성에 그의 내력이 흐트러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리엘은 전투가 시작된 직후부터 오로지 유천하의 내력이 흐트러지는 순간만을 노려온 것이기에, 7명의 리타이어 속에 찾아온 이 순간은 분명 확실한 빈틈이었을 따름.

그러니 이건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렇기에.

[죽어.]

훙- 그녀의 말이 전부 흘러나온 순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던 마력이 이솔라로 인해 흐트러진 내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그대로 유천하의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의 육체와 의식을 헤집고, 그대로.

----------------------------------------------!!!!

마치- 그 몸을 찢어발기겠다는 듯이!

***

아리엘은 증명해내고 싶었다.

자신을 만류하던 아빠- 루타텔에게 다짐했던 노력의 결과를. 그리고 자신의 친구- 유천하에게 약속했던 제 마음가짐의 결과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서.

그녀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이 전투에서 이긴다 한들 무언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터였다. 그녀는 분명 유천하보다 나약했고, 지금의 대치 또한 기나긴 준비와 다른 이들의 도움 속에서만 간신히 성사될 수 있던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

그럼에도 그녀는 이겨보고 싶었다.

유천하가 천재라 해도, 자신의 재능 또한 부족하지 않았다. 유천하가 노력했다 해도, 자신 또한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설령 유천하에게 강해져야 할 사연이 있었다 해도 자신의 마음가짐 또한 가볍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저걸 납득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모자람을 웃어넘길 수 있겠는가.

당연히 현실적인 차이는 그녀도 충분히 받아들였기에 혼자서 넘어서는 것 까진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준비와 조건 속에서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천하를 이길 수 없다면······ 아리엘로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와 같은 곳에 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그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되어서.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고, 걱정시키고.

그것밖에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결국- 그렇게 되버릴것만 같다는 생각에.

[언령의 저항을 금한다.]

우우우웅-!!

그렇기에 아리엘은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아리엘에게 이 싸움은 유천하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었으되, 동시에 그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정말 이런 조건 속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 한 명도 이길 수 없다면, 겨우 그런 재능으로는 절대로 승천의 업까지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것이 그녀의 생각이었고, 다짐이었다.

[마력의 사용을 금한다.]

우우우웅-!!

흘러나간 목소리가 세계에 녹아든다.

녹아든 염원이 심상과 형상을 조립한다.

세계와 동화된 의식의 흐름은 그대로 마력을 분열시키며 연쇄되는 기원을 자아냈고, 끝없는 파문은 말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그대로 현실의 법칙을 뒤틀어내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과-!!!

지금 이 순간 흘러나오는 말은 분명 이제까지처럼 가벼운 견제가 아닌 음절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 읊조리고 있는 언령이었기에 아리엘은 입술을 달싹거릴 때마다 뇌가 타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었을 뿐.

의식의 동기화를 도와주며 보조해주던 이들도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죽어 퇴장당해버렸기에, 아리엘은 지금 억지에 가깝게 제어를 붙잡고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로지 저 자신의 제어력만을 믿고서 말이다.

하지만.

유형화될 정도로 휘몰아치는 강대한 마력의 폭풍- 그 한가운데서 유천하는 움직였다.

“진짜 말도 안되는 저항력······.”

“대체 저걸··· 어떻게 버티는거야?”

정작 시전했던 당사자는 그 여파만으로도 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규모의 마법이었음에도, 온몸이 빛에 휩싸인 채로도 다시 검을 들어 올리기 시작한 유천하의 모습에 아리엘 또한 다시금- 언령을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아리엘은 본능적으로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제발 마지막으로.]

마음으로 바라는 심상을 빚어내고,

언어로서 현실에 그것을 내세운다.

그 말에 담긴 힘에 그대로 세계의 마력이 한마디 말에 담겨 현상으로서 그녀에게 동화되어 깃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아리엘의 손이 유천하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그리곤 그 모습을 제 손으로 움켜쥐었다.

비록 언령과는 상관없는 행위였지만, 이건 그녀가 바라는 구체적인 심상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에 가까웠으니- 아리엘은 그렇게 마지막 언령을 내뱉었다.

[그대로 저항하지 말고 죽어!]

----------------------------------------------!!!!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몸까지 일순간 휘청거렸을 정도로 강렬하게 터져 나오는 파동.

비록 몇 분에 걸쳐 정립해냈을지언정 아리엘의 한마디 속에는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인과의 업이 깃들어 있었으니, 어찌 보면 지금 그녀가 펼쳐낸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언령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

하물며 이솔라의 특성이 유천하를 흐트러트리기를 기다렸고, 그가 약화된 순간을 노린 언령 속에는 분명 그녀가 지난 한 달 동안 쌓아온 시간이 담겨있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했는데 아무리 유천하라도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콰직-!! 그 생각은 이내 빗나갔을 뿐.

“······!!”

유천하의 몸에서 피- 아니 피를 대체한 백색의 빛이 솟구쳐 나왔지만 그는 그대로 언령의 주박을 깨트렸고, 그와 동시에 유천하의 몸에선 제어되지 않는 칠흑의 마력이 실타래처럼 넘실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과-!!!

그리고는.

온몸이 백색의 빛에 휩싸인 채로도.

다시- 흉흉한 칠흑빛을 뿜어내면서.

서걱-!! 유천하의 손이 번쩍거렸다.

퍼어엉-!! 그렇게 순식간에 이솔라가 빛이 되어 터져나갔고, 유천하는 이내 부상에도 개의치 않고 거칠게 대지를 박차고는 그녀를 향해 흑색의 참격을 내질렀을 뿐이었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전신이 피로 물들었을 모습으로, 일렁거리는 살기를 몸에 두른 채.

하지만 모두가 굳어버린 찰나의 순간- 아리엘은 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짙디짙은 검강을 응시하면서도 그 뒤에 서 있는 유천하의 얼굴을 똑똑히 마주할 수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무기질적인 눈빛을 보내오면서도, 작게 달싹거리는 그 입모양을.

‘잘했어.’

“······.”

그리고- 그 순간 칠흑빛의 참격이 그녀를 덮침과 동시에 아리엘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