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천자 토벌 (4)
5분만에-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흘러나온 유천하의 말을 들은 순간. 그 순간 아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다른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오만하다.
바로 그런 생각만이 떠올랐을 따름.
물론 그들이 유천하의 실력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누가 나서더라도 제대로 된 상대조차 안 될 거라는 사실은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다시 단순히 다른 이들과 함께 힘을 합쳐 합공하더라도 제대로 된 타격조차 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점은 지금의 그들은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는 것.
승천제를 준비해온 지난 한 달의 시간 동안 그들은 모두 유천하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량을 갈고닦고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으니, 지금의 이 구성은 분명 절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만한 조합이었다.
하물며 확실한 전위가 존재하고, 언령사가 포함된 무리라면 더욱더 조심해야 했을 뿐.
하지만.
그들은 이어진 상황에 그 생각을 깔끔하게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오로지 본능이 발하는 경고 속에서.
“······.”
“······.”
일순간- 주변의 대기가 모두 사라졌다.
아니 공기는 존재했지만 서늘했고, 숨이 막혀왔으며,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차가운 금속이 목을 베고 지나간 감각이 들었다. 섬찟해진 대기가 그들의 폐부를 들쑤신다.
눈 한번 깜빡일 정도의 찰나의 시간.
그 잠깐 사이에 새어 나온 식은땀이 등을 훑고 흘러내리며 서늘한 감각을 선사했다.
압도적인 살의가 한순간에 전장을 휘감고 숨을 옥죄였고, 손끝 하나라도 까딱하는 순간 온몸이 난도질당할 것 같은 맹렬한 기세가 그들의 정신을 무차별적으로 찢어발겼다.
부드러운 미소만을 그 입가에 머금고.
그러면서도 형체마저 일렁거릴 정도로 흉포한 살의를 저 자신의 몸에 휘감은 채.
무기질적인 눈빛이 그들을 응시했으니.
그렇게.
쿠구구구구구구-!!
그 순간 유천하로부터 흘러나온 흑색의 기류가 한순간에 넘실거리며 일렁거렸고,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부터 터져 나온 기파에 대기가 일그러지며 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전력을 원한다고 했으면. 전력으로 와.”
순식간에 풀려나온 일곱 갈래의 매듭.
만상의 눈에 풍결의 가호가 더해진다.
주변에 몰아치는 마력과 대기의 흐름을 느끼면서도 유천하의 시야는 저들의 호흡과 기세, 마력의 유동까지 모두 들여다보았다.
완전하게 접어든 전력의 임전 태세.
유천하가 다른 생도들을 상대로 힘을 아꼈던 이유는 오직 이들의 도전에 진심으로 답해주기 위해서였으니,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중간하게 굴다가 실망시키지 말고.”
그렇게 단 한 순간에 만전의 상태로 접어든 유천하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기세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부드러운 미소에 아이들은 순간 소름이 끼치는 기분 속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들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한가지 단어.
타천의 마인.
공교롭게도 지금 유천하의 모습은 그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상태였고, 소름 끼치는 미소와 살의 속에 일렁거리는 형상을 바라보며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
“······!”
얼어붙은 이성과는 별개로 그에 대한 대응 또한 본능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
----------------------------------------------······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던 찰나의 틈새에서 유천하의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직 절반가량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을 때- 바로 그 순간 검을 빼고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 이들이 있었다.
퀴이잉-!! 백색의 검신이 별빛을 머금고 뻗어져 나간다. 이하린이 자리를 박차고 흑색의 머리카락을 늘어트리며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시.
우우웅-!! 순식간에 최속으로 가속된 남궁설아의 신형이 군청색의 잔향을 허공에 새긴 채 패도의 궤적을 허공을 향해 그려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어진 검격.
백색과 청색이 교차하는 이중의 실선.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앙-!!!!
그렇게 찰나를 격하고 그어진 칠흑의 궤적은 남궁설아와 이하린의 검격에 가로막혔고, 그 즉시 그녀들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일순간 대기를 가로지르는 청백의 검신.
하지만 그녀들은 당황하지 않고 다시 다음의 일격을 뻗어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것도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눈빛으로.
애초에 위타극과 상대했던 경험도, 유천하와 싸워봤던 경험도 존재했기에 그녀들은 처음부터 제대로 막아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하린의 검로는 모든 게 수비를 위한 궤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남궁설아의 검로는 다시 압도적인 속도를 통해 최대의 패격을 그를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세 개의 검이 교차했고,
흑색의 검신이 두 검을 흘려낸 순간.
“······!!”
페이크- 그 순간 한계까지 가속된 남궁설아의 인지능력이 그 사실을 깨달았고, 유천하의 검은 그녀들의 검을 부드럽게 흘린 채 그대로 허공으로 인도하였다. 한순간에 강에서 유로 변화한 움직임. 흐르는 물처럼 휘둘러진 검은 그대로 거대한 틈을 만들어냈다.
거기까지가 1초를 세 번 쪼갠 시간- 그렇게 두 사람이 황급히 검로를 뒤틀어낸 순간.
바로 그 순간.
‘다시 페이크.’
그대로 하나의 흐름으로 원을 그려낸 유천하의 검 끝에선 칠흑의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는 순식간에 이 초속의 격전을 뒤늦게 인지하기 시작한 마르네 일행을 향해 칠흑의 반월을 뿜어내었을 뿐이었다. 소름 끼치는 예기를 벼려내어, 모든 것을 베어낼 듯이!
콰가가가가가-!!
이제껏 다른 생도들을 상대하는 동안에는 사용하지도 않았던 탄검의 강기.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이 순간 제대로 공격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혹은 인지하더라도 방어조차 못 하고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콰과가가가가-!!!
일점으로 쏘아진 푸른 마력의 파동이 그대로 흑색의 반월을 흐트러트렸고, 그 즉시 번갯불이 튀어 오르며 쏘아진 리베르테의 검이 백열의 섬광을 그 속에 머금은 채 유천하의 참격을 그대로 받아쳐 허공으로 튕겨냈다.
“어딜···!!”
“너무 얕보지는 말자고 그래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앙-!!
남궁설아와 이하린.
사카타와 리베르테.
네명의 검격이 유천하를 향해 뻗어졌고, 다시 그를 향해 푸른색의 파동이 몰아쳤으며, 그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유천하를 향해 속박의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정도로는 붙잡을 수 없었을 뿐.
콰직!
마법이든 이능이든 저항력의 수준은 서로 간의 마력의 격차, 정신력의 차이 등에서 벌어지는 것이었으니- 현재 내력도 의념도 모두 최상의 상태로 활성화되어있는 유천하에게는 어지간한 마법 정도로는 피해를 줄 수 없었을 따름이고, 유천하 스스로 지금이라면 아리엘의 언령 또한 아무런 지연 없이 튕겨낼 수 있을 거란 판단마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동결. 정지. 족쇄. 중압. 압박. 차단.”
그 순간 흘러나온 아리엘의 목소리에 그는 자신이 착각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언령의 마력이 유천하의 몸을 구속하기 시작한다. 단 한 순간에 읊조림을 통해 흘러나온 6 중첩의 언령은 지금의 유천하에게도 확실한 압박을 선사했고, 유천하는 이 순간 마치 심해 너머로 가라앉은 기분을 체감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족쇄가 된 기분.
멈춰서고, 묶이고, 내리눌렸으며, 전신이 한순간에 푹 꺼지는 감각을 느꼈다. 사방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기감마저 흐트러진다.
허나- 그런 상황임에도 그를 향해 네 갈래의 방향에서 검이 쏘아지고 있었고, 푸른 파동이 머리를 덮쳐왔으며,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이 다시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
그 즉시 유천하는 모든 의식을 가라앉히고 본격적으로 일념을 벼려내었을 뿐. 그와 동시에 일곱 갈래의 매듭이 흩날리며 그의 몸은 한 자루의 검으로 화해 예기를 벼려냈다.
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일순간 눈앞에 검이 서 있다고 착각할 만큼 완벽한 일념.
찰나를 가로지르고 뻗어져 나가는 기세!
그야말로 신검합일의 극의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에 검을 다루던 아이들은 순간의 상황을 잊고 감탄이 서린 탄성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입에서 그 탄성이 제대로 토해지기도 전에 칠흑의 궤적은 그어졌다.
“미이이이이치이이이이이이이인······”
백색의 수실을 흩날리며 그어진 궤적.
칠흑의 검신이 만들어낸 일격의 살의.
그리고 그 검신이 시간을 베어가르며 아리엘의 심장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낙뢰.”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입이 달싹거렸다.
쿠루룩- 츳.
“······.”
도대체 어떻게 이런 속도로 언령을 제대로 완성해낼 수 있는 걸까- 그 찰나의 세계에서 유천하가 그런 감상을 떠올림과 동시에.
콰아아아앙-!!
백열의 나뭇가지가 푸른 하늘을 가르고 떨어져 내리며 그를 내리쳤고, 그와 동시에 칠흑빛에 휩싸인 유천하의 몸이 호신강기를 통해 그 벼락을 흘려내며 다시 검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다른 이들도 정신을 차리고 그 앞을 막아서고 있었을 따름.
카가가각-!! 그렇게 한순간에 앞을 가로막은 백색의 검신을 바라보며 유천하는 가볍게 손목을 튕겨냈고, 흘러가는 궤적을 지나쳐 옆에서 쏘아지는 두 개의 검격을 그대로 이하린의 검으로 하나, 자신의 검으로 하나 얽어내며 그대로 검을 허공에 튕겨버린 채.
그 즉시- 아리엘을 향해 맨손을 뻗어냈다.
당연히 별빛처럼 단조 된 강기를 손에 머금은 채, 그녀를 꿰뚫어버리겠다는 듯이.
하지만.
“저항. 감속. 정지.”
‘빨라.’
우웅-! 다시 한번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흘러나오는 언령의 현상을 관찰하며 유천하는 지금 이 순간의 전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가 바로 아리엘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유천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려보았다.
아무리 순독술이 있다 한들 지금 이 속도는 비현실적이었다. 언령은 단순히 말을 내뱉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화자가 원하는 심상을 그대로 세계에 말로서 주장해야 했다.
그런 만큼- 단순히 껍데기뿐인 말은 빠를지언정 제대로 된 위력을 머금을 수 없었고, 그것은 언령이 갖는 한계이자 단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리엘이 사용하는 언령은 속도와 위력 두 가지를 모두 제대로 갖춘 상황.
분명 이솔라와 마르네의 조합도 거슬리는 변수였지만, 이솔라는 의욕이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지금 같은 속도의 격전에서 팀원들과 그 자신을 구분해 타격하기에는 이래저래 거슬리는 조건이 많을 터. 사실상 지금처럼 얽혀있으면 발동이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이솔라의 특성이 증폭되는 것만 아니라면 마르네의 파동은 그에겐 그저 거슬리는 요소일 뿐이지 그리 큰 타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신경 써야 할 건 오직 하나였다.
“······.”
유천하의 눈- 만상의 눈은 이 순간에도 세계와 동화되어 전방위를 인지하고 있었고, 이미 그녀의 언령이 평소에 비해 말도 안 되게 강화되어있는 까닭을 해석해낸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지를 말이다.
“업화.”
다시- 부드럽게 언령을 읊조리는 그녀.
그와 동시에 계속 남궁설아와 이하린의 뒤쪽에 위치해 있는 그녀의 팀원- 기원학회 출신의 3명의 마법사가 끊임없이 스펠을 외우며 아리엘의 언령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마법이란 세계에 각인된 만상의 현상과 염원을 기원으로서 불러오는 하나의 의식.
그런 만큼 스펠- 주문의 형태로 다듬어진 인과의 업은 분명 같은 마법사들끼리 공유되는 부분이 충분히 많았고, 언령마법은 염원만으로 현상을 체현시키는 비정형의 의식인 만큼 스펠마법과 병행될 수 있는 힘이었다.
아리엘의 특성 <심적권령>을 기반으로 다른 아이들이 쌓아낸 마법의 인과를 그녀가 말로서 묶어내 하나의 현상으로 체현시킨다.
그럼으로써 언령을 더 빠른 속도로, 더 강한 강제력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된 모양.
화르륵-!! 그렇기에 원래라면 한계가 존재했을 언령도 즉효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저렇게 강력한 위력의 현상까지 그 속에 머금은 채 한순간에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또한.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유천하는 만상의 눈에 들어오는 무언의 잔재를 확인하였고, 그는 저게 무엇인지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검격과 마력의 파동을 가볍게 흘려내면서, 사이사이의 틈새에서 일어나는 마력의 변형을 끊어치면서, 유천하는 주변에 몰아치는 마력을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기억.
-실체가 없지만 본질마저 무는 아니지.
-세계를 인지하는 관점만 돌리면 의식의 힘이라 할지언정 보는 게 불가능하진 않아.
분명 나르화리얀이 했던 말은 그에게 깊은 화두를 던져주었고, 비록 유천하가 그 말에 바로 깨달음을 얻어 현실에 체득시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에겐 만상의 눈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유천하의 정신은 그 즉시 유식을 되새겼고, 그는 만상의 눈을 통해 정신의 세계를 인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한 잔재뿐만이 아니라 무형의 힘. 언외언의 흐름을.
그리고 이내.
“멈춰. 그대로. 그 자리에서. 가만히!”
“······.”
유천하는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파악을 하는 와중에도 다시 아리엘을 향해 그어지던 검은 이하린의 검에 가로막힘과 동시에 4중의 언령에 사로잡혀 멈춰 섰고, 유천하의 몸이 멈칫한 찰나의 순간. 이미 그 주변에 있던 이들은 모두 물러난 뒤.
그 순간- 지면에서부터 가시가 솟구쳤다.
카가가가가각-!!!
하지만- 내력의 흐름을 분해시키는 콘크리트의 창을 그대로 다시, 연결된 흐름을 끊어냄으로써 박살 낸 유천하는 제자리에 선체로 그대로 허공을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저를 응시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다른 아이들을 그대로 무시한 채. 다시금 자신의 몸을 휘감는 언령을 의념으로 파괴하면서.
“저걸 저렇게 쉽게···!”
“······핵. 파악 당했어.”
그렇게 그는 멍하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시야로 들어오는 광경이, 전투가 시작되고부터 계속해서 관측하고 있던 광경이 관점을 달리하자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유천하가 발견한 것은 분명 마력의 문자였고, 그것을 목도한 유천하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그 한마디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경이롭군.”
오직 순수한 감탄만이 담겨있는 한마디.
너무나도 미세하게 형상을 이루고 있어서 그저 몰아치는 마력의 격류로만 인지하고 있던 것들이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니 그것이 의미하는 뜻으로 명확히 인지되기 시작했다.
세계를 뒤덮은 거대한 마력의 흐름.
그 흐름을 이루고 있는 문자의 형상.
그것이 그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었다.
휘몰아치는 마력의 형상이 언어를 조립하고, 다시 언어가 하나의 기원이 되어 현상을 낳는다. 마력과 의식의 연쇄는 끊임없이 분열하며 하나의 원을 그려냈고, 하나의 염원은 그대로 끝없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만 따지자면 별거 없는 마력의 흐름이 그 일부를 모아 전체를 이뤄내고 있었으니- 분명 그것은 하나의 세계.
-----------------------------------------------!
아리엘은 지금 미약하지만, 어거지에 가까웠지만 세계에 동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
도대체 한계가 어디까지인 걸까- 아리엘은 멍하니 멈춰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이제야 20초가 지났다.
하지만 쌓아놓은 힘도 1할이 소모됐다.
‘역시······ 저항력이 너무 강해.’
언령의 골자를 짜 올리는 건 사고를 동조시킨 그녀의 친구들이 대체할 수 있었고, 언령을 발동시키는 건 그녀의 정신이 해결할 수 있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제어하는 것도 그녀의 역량이었다.
허나- 염원의 힘만큼은 어쩔 수 없었을 뿐.
지난 한 달간 하루에 한 시간 남짓한 수면만을 취하며 쌓아온 축언의 힘과 다시 3명의 친구들이 계속해서 동조시켜놓은 기원의식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정신력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증폭되어있는 상태였다.
그 덕분에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마력의 범위도, 마력의 제어도, 그런 기반이 다져져 있었기에 가능한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천하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
이 수많은 인원이 합공을 하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사용한 언령만으로도 힘은 빠르게 소모되어버렸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1명은 확실히 리타이어했을 터.
속도도 판단력도, 그리고 강함 자체도.
유천하는 분명 명백한 이레귤러였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유천하의 신위에 다시 한번 경악과 감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건 유천하로서도 마찬가지였을 뿐.
“······정말로 경이롭군.”
그렇게 유천하는 감탄을 토해냈고 다소 멍해 보이는 표정 속에 흘러나온 감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함부로 유천하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경이는 지랄하고 있네 미친!”
“대체 기세가 어떻게 더 저렇게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정말.”
유천하의 표정이 다소 멍해진 순간- 그 순간부터 유천하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살기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더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숨이 턱하고 막혀올 정도로!
다가가는 즉시 베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름 끼치는 기세에 아이들은 일순간 감각이 둔해지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유천하의 상태에 천천히 극한까지 긴장을 끌어올리며 굳은 신경을 풀어냈다.
“······.”
이하린은 저도 모르게 처음 의념을 깨우쳤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을 정도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유천하는 그저 저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던 광경에 정신의 한구석이 각성하는 기분을 체감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건.
어젯밤 시작된 화두- 그로부터 새벽 내내 이어졌던 의식의 고찰. 비록 조금 다를지언정 그 현상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던 탓.
그렇기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보았다.
“저것도 특성의 범주 안에 있는 건가?”
“······무슨 소리야?”
“입으로서 언령을 구축하고, 마력을 제어해 문자를 구축하고, 심상을 제어해 다시 현상을 만들어낸다······ 한 번의 현상에 대체 몇 개의 마법이 겹쳐지는지 모르겠을 정도야.”
지금 유천하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
그것은 정말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그림자의적현현해라태양의아이일륜······]
[벼락처럼내리치는거인의발걸음번뜩······]
[얼어붙은동토분리된세계겹쳐지는시······]
이제껏 아리엘이 내뱉은 언령, 그리고 앞으로 사용할 언령, 그녀의 팀원들이 같이 주언을 외우고 있는 마법의 요소들이 마력의 문자로 조형되어 주변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을 땐 그저 몰아치는 마력으로만 느껴졌지만, 저 마력의 격류는 하나하나가 결집을 이루고 있었고, 다시 그 결집은 저마다의 언어를 내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곳에서 오로지 유천하와 아리엘만이 인지할 수 있는 광경이었을 뿐.
물론 아리엘의 마력 제어능력이 무척 뛰어나단 건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세밀하게 복합적으로 행한다는 게 놀라웠다.
저게 그녀 혼자서, 아니 3명의 아이와 의식을 동조시켰다 한들 어떻게 한 번에 저렇게 많은 사고가 가능한 걸까.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세밀하게 마력을 제어해 내는 걸까.
유천하는 그것이 정말 감탄스러웠다.
“세계에 의지를 동화, 아니······ 각인시킨 건가? 마력의 제어는 순수한 네 역량이고?”
“······너무 빠르게 알아맞힌 거 아니야?”
하지만 더 놀랐던 건 바로 그녀였을 따름.
당연히 평소의 유천하가 마력의 문자를 손쉽게 알아채는 만큼, 그리고 마력을 가시화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갖고있는 만큼, 끝까지 들키지 않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간파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사기적인 눈이다- 그녀는 허탈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5분··· 허세가 아니었네. 미안. 인정할게.”
“······나야말로 사과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걸 준비해왔어.”
하지만- 전투는 이제야 막 시작되었을 뿐.
“아직 다 보여주지도 않았어. 얕보지 마.”
“······그거 마음에 드는 소리네.”
유천하는 그리 대답하며 검을 들어 올렸고, 빠르게 살기에 적응한 채 다가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도대체 저건 얼마나 언령의 힘을 축적해온 걸까- 아무리 그녀의 특성이 언령에 특화되어 있다 한들, 그리고 지속적인 힘이 아니라 일시적인 힘의 증강이라 한들, 그렇다 한들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저 자신에게 만상의 눈이 없었다면, 7성에 올라선 게 아니었다면 승산이 희박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지금의 그가 내린 판단.
그렇기에 유천하는 지금 이 순간에 무척이나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한다 해서 기대했더니, 정말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들고 온 게 아닌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마당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자극을 가지고 왔다.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체감했다.
그렇기에 그 순간.
“대화는 이따가··· 하라고!”
“······방심하지 마세요.”
유천하의 살기가 다소 흐트러짐과 동시에 다시금 아이들이 달려들어왔고, 그는 그들을 향해 그저 즐겁게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천하의 손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