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천자 토벌 (3)
멸화급 탑- 그 앞에 조성된 관람석과 중계진은 지금 적막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사람들은 스크린 속에서 검은빛이 번쩍거리며 첫 역할이 부여된 순간에는 다 같이 웅성거렸고, 다시 이어진 생도들의 선택부터는 시합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나르화리얀의 말에 생도들이 행동을 개시한 순간부터는 어느 역할이든 생도들을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미친! 속도가 왜 저렇게 빠른 건데?!]
[잠깐, 저거 페이크야 다가가면··· 미친!]
[디버프! 속박이나 억제기부ㅌ···!]
화면 너머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폭발음과 절삭음. 그리고 생도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화면 속 광경만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걸까?
아무리 등천자라지만 저렇게까지 기량의 차이가 난다는 게 얼떨떨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지를 잃지 않고 싸우려는 생도들의 모습에 감탄했고, 다시 전부 생도라는 걸 알면서도 마인 측에게 당하는 상황이 시민들에겐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 협력전을 기획한 회랑 측의 인사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번 협력전의 테마를 정할 때 회랑 측에선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아··· 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나요?]
[주로 논의된 측면은 마인 측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는데······ 예. 역시 밸런스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수호자급 마수까지 생각하면 아무래도 도시를 지키는 생도들에게 불리하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남자는 그 말과 함께 한쪽 스크린 위에 떠 올라있는 시합의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백색 팀:마인저지 – 111 / 150]
[청색 팀:시민보호 – 081 / 100]
[황색 팀:마수토벌 – 088 / 100]
[흑색 팀:테러시도 – 131 / 150]
10분도 안 지났는데 빠르게 줄어든 숫자.
분명 남아있는 생도의 수는 그래도 충분히 많긴 했지만, 사실상 양측의 피해를 비례해보자면 상당히 큰 차이가 나타나고 있었다.
생도들의 전력뿐만이 아니라 생성되는 마인과 마수들의 피해까지 합산하자면 상당히 많은 수의 개체들이 토벌되었다지만, 그렇다 한들 아직 남아있는 수가 더 많았을 따름.
심지어- 수호자급 마수는 이제 겨우 1개체가 토벌이 완료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흑색 팀과 마인들이 모두 백색 팀과 청색 팀의 생도들에게 발이 묶인 상황이었기에 황색 팀을 선택한 생도들은 현재 온전히 수호자급 마수에만 신경을 쏟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황색을 선택한 100명의 인원 중에서도 분명 유망주는 존재했고 말이다.
[---------------------------------------------!!]
[미친, 저 새끼 마력량 뭐야 도대체.]
[저걸 혼자 잡고 있네. 야 다른 데 가자!]
하지만 시합이 종료되려면, 그리고 공략 측이 승리하기 위해선 수호자급 마수가 모두 토벌되어야 했으니 현재 마인 측의 기세를 생각하자면 서로 아슬아슬한 상황이긴 했다.
당연히 각 팀끼리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었다면 각자의 역할 속에서도 다시 역할을 분배해 체계적으로 접근했겠지만, 사실상 난전에 가까운 규모의 전투였기에 아이들은 서로 기존의 팀원들하고만 손발을 맞춘 채 각자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고 있었을 뿐.
[승부의 관건은 황색에 속해있는 팀들이 얼마나 빨리 수호자급을 토벌하냐에 따라, 그리고 흑색에 속해있는 팀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황색의 토벌을 방해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입니다.]
[예. 동의합니다. 만약 타천자의 역을 맡고 있는 유천하 생도가 수호자급 토벌을 방해하러 가면 균형이 기울 텐데,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남자가 재빠르게 말을 받아 방향을 돌려보았다. 분위기를 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시합을 진행 중일 뿐이지 마인 측도, 공략자 측도 모두 생도들이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힘차게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양측 전부 열심히 노력하고 있군요!]
[정말 모두 다 자랑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렇게 중계를 맡고 있던 이들의 말에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도 이내 정신을 차리곤 다시 열심히 생도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마인 측- 정확히 말하자면 수십 명이 넘는 생도들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유천하의 모습에 잠시 얼어붙긴 했지만, 확실히 중계진이 말한 것처럼 유천하 또한 회랑의 생도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저건 그저 회랑의 생도들끼리 치루는 모의전 시합에 불과하지 않은가?
분명 마인 측이 우세하든 공략자 측이 우세하든 양 팀 모두 현실에선 침식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시금 열띤 목소리로 팀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응원해주기 시작했고, 비록 그 목소리가 탑 내부에 들어가 있는 생도들에게까지 닿지는 않았을지언정 그래도 대신해서 들어주는 사람정도는 존재했다.
[그래도 분위기가 확 기울진 않았네.]
“어느 측이든 생도들인 건 맞긴 하니까.”
[처음엔 마인 측 전력을 늘릴까 싶었는데 그랬다간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그치?]
“동의한다. 지금이 딱 적당해 보이는군.”
루타텔은 단상 위 내빈석에서 영롱해 보이는 구슬을 손에 쥔 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 구슬 너머에선 다시 즐거운듯한 나르화리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솔직히 황색 애들만 규합돼도 상황은 빨리 끝날 거 같아. 유천하 쟤가 문제긴 한데 녀석을 노리는 애들도 많아서 결국 저쪽의 싸움이 어찌 되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겠네.]
“반대로 조금 전 말처럼 유천하 저 아이가 일일이 백팀을 상대해주지 않고 수호자급 토벌을 방해하러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렇기는 한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네 저 녀석. 가까이서 보고 있는데 얘 지금 완전히 신났는데? 장난 아니야 아주.]
“······신났다고? 상상이 안 가는데.”
비록 잠깐이었지만 첫 만남의 인상은 루타텔의 뇌리에도 꽤나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루타텔로선 나르화리얀의 말과 그 상당히 무뚝뚝해 보였던 담백한 인상의 아이가 잘 매치가 되지 않았고, 그 의아하단 반응에 나르화리얀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런 의미로 신났다는 건 아니고, 무슨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거든 그냥.]
아 그런 의미- 루타텔은 그 말에 화면 속에 내비치는 유천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신기할 정도로 대인전 기량이 뛰어나긴 한 것 같군. 경험 자체도 많아 보여.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밀어붙일 수도 있을 텐데 굉장히 영리하게 싸움을 이끌고 있어.”
[그치?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지?]
“수십 명을 상대하는데도 망설임이 없고, 자신에게 불리한 유형의 적부터 제거하는 것도, 서로의 합이 안 맞는걸 이용해 손발이 꼬이게 만드는 것도, 시야의 사각을 이용하는 것도,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법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어야 보일 수 있는 모습이지.”
[누가 보면 집행자인 줄 알겠다 쟤. 정면에서도 기척을 자유자재로 옮겨대고 있네.]
물론 유천하가 집행자가 아니라는 것도, 접경지에서 살아왔던 아이라는 것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굳이 같은 소속이 아니었더라도 그걸 알아내는 게 어렵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의아한 부분은 존재했다.
실력이야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능을 태어났다면, 그리고 여러 우연이 겹쳐 합당한 인과를 거머쥐었다면 저런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경험은 별개의 요소 아니겠는가?
단순히 마수를 토벌할 때는 드러나기 힘든 여러 부분이 대인전에서 드러나고 있었고, 다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것도 능숙해 보였으니 아무리 봐도 저건 분명 재능으로 이야기할 부분이 아니라 경험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유천하는 분명 사람을 상대하는 게 상당히 능숙해 보였고, 유천하 본인 또한 그 사실을 딱히 숨기려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마치 거리낄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물론 순례자의 칭호를 거머쥐고, 연이어 타천자를 토벌해 등천의 업을 달성한 이라면 딱히 의심할 필요는 없을 터. 일반적인 각성자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그들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공략자라면 모두 순례자라는 칭호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순례자의 칭호를 가진 이 중 타천의 마인이 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게 단순히 강함의 유무만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모두 이제 와선 너무나도 명백히 밝혀진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면 과연 유천하의 경험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들은 그것이 흥미로웠다.
그렇기에 나르화리얀은 그런 흥미 속에 유천하의 전투를 모두 심상에 차곡차곡 저장하고 있었고, 루타텔 또한 묘한 감흥 속에 유천하의 전투를 지긋이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할 모양인가 보네.]
“······승산은 어때 보이지?”
[글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들은 하늘에서 송출중인 화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고, 그리고 그건 유천하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건 두 개의 팀- 그것도 상당히 익숙한 아이들로 이루어진 조합이었다.
***
만약 정면에서 상대하는 게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묻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천하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유천하의 전투는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그건 다수를 상대할 때는 특히나 더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것도 이런 환경에서라면 더욱더. 또 이후를 생각하면 힘을 낭비할 이유 따윈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오랜만에 옛 습관을 꺼내 보았다.
“뭐, 뭐야 갑자기 어디 갔어?!”
“······?!”
기척을 가라앉히고, 몸을 숨기고.
상대의 사각에서 틈을 베어낸다.
오로지 살행만을 위해 만들어진 습관.
“아···! 뒤 병신아 두···!”
서걱-!! 사람의 시야는 무척이나 좁았다.
정면을 응시해도 제대로 인지되는 범위는 각도로 따지면 3도에 불과했고, 색채를 인지하는 범위를 따져도 보통은 30도에서 60도 정도가 한계였으니, 아무리 초인이라 한들 시각에만 의존한다면 사각은 충분했을 뿐.
“아니 씨펄! 무슨 지가 귀신이··· 큭!”
경계시의 범위에서만 벗어나도 사람의 감각과 인지는 부조화를 일으키고, 거기에 다시 나머지 감각에도 변주를 주면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게 유천하가 지난 17년 동안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 일련의 과정과 본인의 성향이 맞냐 묻는다면 미묘했다만, 만약 잘할 자신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무척이나. 당연히.
“미친! 범위기! 범위기 없···!”
“······괴물새끼!”
애초에 신교에서의 유천하는 그림자였다.
교내의 배반자들을 죽이고, 율법을 위반한 마인들을 잡아 죽여야 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으니- 어찌 보면 이른 나이에 암영비천대의 대주가 되었던 그는 신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못되었을지언정 분명 가장 뛰어난 살수에는 가까웠다고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의식을 죽이고, 존재감을 죽이고.
무념 속에서 일순간에 발하는 살의.
서걱- 그렇게 유천하가 익숙한 행동을 펼쳐낸 순간 무기질적인 절삭음이 거리를 가로지르며 울려 퍼졌고, 동시에 흐릿해진 아이의 육체가 백색의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
참 신기한 현상이지 않은가- 그게 이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
참고로 그는 전투가 시작된 순간부터 만상의 눈으로 현상을 관찰해보고 있었고, 저건 빛이 결정이 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생도들은 일정 이상의 피해를 받게 되면 그대로 고도의 마력 밀집체로 분해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피해가 누적된 당사자가 탑에게 사망 판정을 받게 되는 순간에 말이다.
“······크윽!”
또한 통증의 재현율도 고통의 선을 넘기지 않았다. 현실이었다면 신경 자체가 비명을 내질렀을 고통마저 지금은 인상을 찡그리는 수준으로 그친다는 느낌. 그렇다면 통증의 기준은 절댓값일까, 아니면 상댓값일까.
유천하는 몇 번의 교전 이후 그 기준 또한 사람마다 상대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면 사망으로 처리되는 기준은?
백색의 빛이 피를 대체하였지만 분명 출혈 또한 사망요인으로 적용되었고, 단순히 피해가 누적된다고 무조건 사망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현실에서와 같은 기준. 목, 심장, 머리. 그 외의 급소 등이 가격당하면 그대로 실체는 허상이 되어 빛무리를 흩날린다.
제대로 된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당사자가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렇기에.
“씨발··· 좀 뒈져···!”
서걱-!! 유천하는 지금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인이 되어 아이들을 베어나갈 수 있었다.
[백색 팀:마인저지 – 102 / 150]
[청색 팀:시민보호 – 071 / 100]
[황색 팀:마수토벌 – 081 / 100]
[흑색 팀:테러시도 – 121 / 150]
지금껏 유천하가 베어 넘긴 생도의 수는 총 45명. 처음 달려들었던 이들은 이미 모두 사망 판정을 받아 빛무리가 되어 흩날린 뒤였고, 전투가 지속되는 와중에 도착한 이들이 전장에 합세해 다시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0명.”
그렇게 전장에 남아있는 이들의 수가 10명이 된 순간- 바로 그 순간 유천하는 다시 전투의 방식을 전면전으로 전환하였을 뿐.
“갑자기 뭔 소··· 아?!”
“조심···!”
애초에 그가 지금 같은 전투를 치렀던 건 그저 상대해야 할 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실력. 상대의 실력. 세부적인 고하를 떠나 특성이란 분명 유의미한 변수였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방심을 하다 발목을 잡히는 건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하물며 그에겐 내력을 아껴놓을 필요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아무런 상관없었다.
유천하는 이 순간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렇기에.
쾅-!! 그의 발이 지면을 내려친 순간- 그의 신형은 이미 다른 이들을 지나쳐 가장 끄트머리에 있던 생도의 앞에 도달하였다. 그야말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해도 무방한 속도.
“······!”
“······.”
급격하게 느려진 세계 속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아이의 동공이 일순간에 수축했고, 그 수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칠흑의 궤적은 그곳을 베고 지나갔다.
검은 실선을 따라 일렁거리는 백색의 빛!
그리고 그 몸체가 빛이 되어 흩날리기 전에 반원을 그리듯 돌아간 궤적은 뒤따라오던 이들의 무기를 튕겨내며 그대로 퀴식- 그들의 심장마저 한순간에 훑고 지나갔을 뿐.
“······.”
뭐가 지나간 걸까- 그게 자신의 몸에서 솟구치는 빛을 목격한 아이가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앙-!! 한순간에 3명이 빛이 되는걸 목도한 생도들은 갑작스레 변화한 유천하의 움직임을 그제야 인지하게 되었고, 뒤늦게 마력을 폭발시키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렁거리는 푸른 검기가 궤적을 그어낸다.
전면에서 3명. 측면에서 2명. 배후의 1명.
그리고- 사라진 1명.
‘······.’
적막의 틈새에서 유천하는 생각해보았다.
분명 이 아이들도 재능은 뛰어났다. 무림의 기준에서도 이런 어린 나이에 검기의 수발이 자유로운 이들을 본다면 기재라 칭했고, 불완전하게나마 검강을 펼쳐낸다면 한 성에서 손에 꼽히는 천재라 칭하며 경탄했다.
허나- 이곳 등천회랑의 아이들은 모두 검기 정도는 자유롭게 다루었고, 불완전하게나마 검강을 뿜어내는 이도 스물이 넘어갔다.
분명 이곳의 아이들은 재능이 있었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의 또한 충분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면- 아직 생도들은 그 재능이 개화되기엔 쌓아온 노력도, 세월도, 경험도 모두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그렇기에.
“조언 하나 하지.”
콰아아앙-!! 일순간 거력이 담긴 발걸음이 그대로 지면을 내리찍었고, 그 속에서 발출된 기의 파문이 그대로 지면을 훑고 그 밑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아이를 강타했다.
콘크리트의 대지를 타고 터져 나온 파동.
금이 간 바닥에서 떠오르는 돌조각.
그리고 지면에서 튕겨 나온 한 명의 신형.
그렇게 바닥에 숨어있던 아이의 특성이 강제로 해제되며 튕겨 나오던 순간, 그리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달려들던 아이들이 몸을 잠시 휘청거린 순간. 떠오른 돌조각이 아직도 중력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던 찰나의 순간.
바로 그 순간.
“특성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려.”
허공에 떠올랐던 수십 개의 조각이 그대로 날카로운 암기가 되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콰과가가가-!!
바닥을 내리찍었던 내력이 그대로 담겨진 돌조각은 유천하의 의념에 사로잡힌 채 하나하나 묵직한 타격을 그들에게 선사했고, 마치 주먹으로 수십 대를 얻어맞은 감각에 아이들이 그대로 몸을 경직시키며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미친···?!”
“······윽!!”
다시 검이 찰나를 베어 갈랐다.
서걱- 순식간에 그어진 궤적이 중심을 잃고 흐트러진 아이들의 몸을 정확히 베고 지나갔고, 그렇게 두 명의 몸에 빛의 실선이 새겨진 순간 다른 이들은 황급히 자세를 다잡고 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는 어느새 칠흑의 검강이 다가와 있었다.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아낸다.
“······!”
카각-! 하지만 별빛이 담긴 궤적은 그대로 검기채로 베어내며 상대의 목을 베어냈고,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특성을 끌어올리며 검의 경도를 끌어올린 생도는 그의 검을 받아낼 수 있었으나,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투웅-!
검을 찔러 타점을 빗겨낸 즉시 극한으로 경화되었던 검은 한순간에 허공을 향해 튕겨 나갔고, 그 틈으로 다시 번쩍거린 검은 빛.
그렇게 일순간에 4명의 신형에는 빛의 실선 그어졌고, 이내 그 몸이 빛무리로 화해 터져나가던 순간- 그 순간 바닥을 구르고 있던 아이의 몸에도, 경악 서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던 아이의 몸에도 빛이 그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진짜 괴물이네.”
“수고했다.”
퍼어엉-!! 허탈한 심경이 가득 담겨진 그 말을 끝으로 그 자리에 남아있던 이들은 모두 백색의 빛이 되어 흩날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제까지 총 55명.
[백색 팀:마인저지 – 092 / 150]
[청색 팀:시민보호 – 071 / 100]
[황색 팀:마수토벌 – 081 / 100]
[흑색 팀:테러시도 – 117 / 150]
하지만 아직 상대해야 할 적은 많이 남아있었고, 그렇게 처음 시작된 자리에서 백색 팀과 청색 팀을 합쳐 수십 명의 생도를 베어낸 유천하는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내력의 소모는 2할··· 딱 적당하군.’
이 정도면 상대했던 적들의 수준과 숫자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경미한 수준이었다.
사실 그것도 첫 교전 시 진형을 흐트러트리기 위해 7성의 내력을 사용하느라 소모된 것이었고, 그 후에는 오랜만에 꺼내 본 습관 덕에 내공의 사용은 거의 없이 효율적으로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바로 전투에 들어가도 전력을 다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유천하가 내력을 아낀 이유.
그것은 모두 지금 이 자리에 찾아온 아이들 때문이었으니. 유천하는 살벌하게 벼려진 주연들의 기세를 느끼며 고개를 돌려보았다.
“······대체 몇 명을 처치한 거야 혼자서?”
“뭐야. 니들 왜 우리랑 동시에 도착하냐.”
서로 반대 방향에서 유천하를 향해 다가온 그들은 현장에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과 유천하의 모습. 그리고 서로의 모습을 의식하며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을 따름.
유천하 또한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씨··· 조금만 일찍 올걸. 겹쳤네.”
“저쪽도 뭔가 준비는 하고 온 모양이군.”
“그럼 이걸 어쩐다. 같이 싸우긴 싫은데.”
“······그냥 하면 안 돼?”
사카타, 리베르테, 마르네, 이솔라.
그리고 그 외 모르는 얼굴이 4명 더.
“으음··· 1분만 더 일찍 출발할 걸 그랬나?”
“아니야. 준비를 제대로 안 하면 일찍 와도 숫자나 더 줄어트렸을거야. 지금이 적기야.”
“······전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린아. 검 꽉 잡아. 정신 집중하고.”
아리엘, 이하린, 남궁설아.
그리고 기원학회의 아이들이 3명 더.
“야!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덤빌래? 응?”
“······우리가 먼저 해도 될까?”
“이왕이면 전력으로 싸워보고 싶은데.”
그 잠깐 사이에 50명이 넘는 인원을 베어낸 걸 생각한다면 14명 정도는 크게 무리가 가는 숫자는 아니었지만, 이들은 그 숫자보다도 구성이 더 위협적인 조합이지 않은가?
애초에 지금 이곳엔 원작의 주연급만 7명.
나머지도 실력만 따지면 상위권 생도는 되었으니, 전체적인 전력을 생각해본다면 유천하에게도 조금 전의 55명보단 지금의 14명이 훨씬 더 조심해야 할만한 상대들이었다.
하물며 이들의 특성 중에는 실력과 상관없이 곤란한 능력들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카룬드정도는 잡겠군.’
유천하의 머릿속에는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는 그 생각을 정정했다.
지금 수준으로 기세가 정돈된 아이들이라면 그 정도는 쉽게 잡아내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몇 가지 조건만 더해진다면 위타극 수준의 마인도 방심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지난 한 달간 자신과 경쟁해서 이겨보겠다고 준비해온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잠시 전력을 가늠해보았다.
조심해야 할 건 아리엘과 이솔라의 특성.
변수로 작용할 건 리베르테와 남궁설아.
이하린은······ 모의전이라 미묘했다.
그래도 이제껏 봐왔던 모습을 생각해보자면 그녀가 아리엘을 지키고, 아리엘에게 시간을 벌어준다면 그것도 분명 위협적일 터.
하지만- 그렇기에.
“야. 그냥 쟤한테 정하라 하자. 괜찮냐?”
“천하한테? 나쁘진 않은데······ 그럼 타천자씨는 어느 팀이랑 먼저 싸우고 싶어?”
유천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해보았고, 이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같이 덤벼.”
그것도.
“안 그러면 5분 내로 끝날 테니까.”
무척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