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25화 (125/205)

타천자 토벌 (2)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기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도 곳곳에선 구현된 마수들의 울음소리와 마인들이 테러행위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가상일지언정 시민들의 비명도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선 나도 그렇고,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들도 그렇고 모두 이 난데없는 상황에 가만히 멈춰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일단 충동적으로 누르긴 했는데 그럼 이제 마인 잡으러 돌아다녀야 하는 거야?

-아니! 미친놈아 그걸 왜 충동적으로···!!

-어··· 그게 하, 한 놈이 누르니까 얼떨결에? 아니 그리고, 입장 전에 니들도 한 방 먹이고 싶다며?! 숫자 올라가는 속도 못 봤냐?

아무래도 속닥거리는 대화 소리를 엿들어보니 저 녀석들은 조금 전의 상황에 인원이 다 찰까 봐 다급하게 팀을 선택한 모양이었고, 그런 만큼 백색을 선택했던 아이들은 이쪽을 힐끗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까 들었던 대로 근래 테러가 몇 번 일어났던 만큼 이런 상황이 주어진 것 자체는 의아한 일도 아니었고, 조금 낯설어서 그렇지 대련을 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딱히 이렇게 서로 싸우는 것도 특이한 상황은 아닌 셈.

하지만- 이 세계에서 마인이 차지하고 있는 인식을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생도들이 공략자로서 갖추고 있는 마음가짐을 생각해본다면 마인의 역할을 선택한 이들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그리고 또한.

-야. 일단 쟤 어떻게 할 거냐.

-우리가 백색이니까 일단 마인은 잡긴 잡아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쟤는··· 그······ 지금 역할이 타천자라는 말이었지 아까?

-그럼 쟤는 이제 우리랑 저기 시민···? 같은 거 공격하고 돌아다녀야 한다는 건가?

-어우씨. 서로 존나 찝찝하겠다.

-흑색은 근데 왤케 빨리 찬 거야.

다른 역할을 선택한 생도들이라 한들 그런 아이들을 마인이라 생각하고 공격하는 건 꺼림직할 터였고, 그건 지금 내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

물론 조금 전 빠르게 올라가던 숫자를 떠올려보면 다들 의욕만큼은 충분한듯싶었지만, 그게 실제의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어느 정도 도화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아까의 그 공지처럼 말이다.

‘등천자 페널티······ 타천자라.’

굳이 말하자면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다.

보편적으로 등천자와 생도들의 격차는 큰 편이었고, 이제껏 내가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해보자면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이래저래 시합의 밸런스가 기울긴 했을 것이다.

내가 백색 팀을 선택해 마인을 사냥했다면 흑색 팀이 너무 불리해질 터였고, 황색 팀을 선택해 수호자급 마수를 공략했다면 다른 이들까지 고려해 30분 정도면 수호자급 마수가 모두 공략되지 않았겠는가? 시민들을 신경쓰지않고 토벌에만 몰두한다면 100명이라는 숫자는 절대로 적은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나마 균형을 맞추려면 청색- 시민 개체를 보호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청색팀은 마수와 마인 모두 상대해야 할 테니 그것도 그리 적절한 선택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제 4항. 타천자 침입. 타천자 1개체.]

[특수 룰 – 등천자 페널티. 타천자 위임.]

저렇게 대놓고 토벌대상으로 규정해놓으면 아이들도 대놓고 나를 노리고 달려들 터.

공략자 측이 총합 350명이라는걸, 그리고 마인 측이 150명이란 걸 생각해본다면 아무리 내가 마음대로 날뛰어도 다른 곳에 속하는 것보다는 밸런스가 얼추 더 맞긴 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뒷받침하듯 지금 기감속에는 이곳으로 다가오는 생도들의 기척이 계속해서 감지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전에 솟구쳤던 빛이 상당히 멀리서도 눈에 띄었던 모양인지 우선적으로 이쪽을 향해 접근해오는 팀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우선은 24명에······ 2팀이 더.’

하지만 그렇다 한들- 대부분은 일단 역할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었고, 그들은 이곳으로 다가오면서도 다소 긴가민가한 모양인지 상당히 경직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와는 별개로 분위기가 어째 상당히 묘하다는 느낌.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어차피 가상의 역할인 마당에 마인처럼 행동 못 할 이유가 없었지만, 아이들이 저렇게 미적지근하게 나오는 이상 다짜고짜 내가 먼저 달려가서 칼을 휘두르기도 찝찝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차라리 먼저 공격을 해준다면 모를까 이런 분위기에서는 조금 떨떠름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백색 팀:마인저지 – 150 / 150]

[청색 팀:시민보호 – 100 / 100]

[황색 팀:마수토벌 – 100 / 100]

[흑색 팀:테러시도 – 150 / 150]

어느덧 모두 팀 선택이 끝나긴 한 모양.

적막한 가운데 터져 나오던 빛무리를 생각해보자면 얼떨결에 선택한 팀도, 인원 제한 때문에 마지못해 결정한 팀도 있어 보였지만 어쨌든 이제 와서는 돌이킬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슬슬 행동에 나서는 팀도 있긴 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아이들도 현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고, 그와 별개로 어느 팀이든 먼저 시작을 끊기엔 상황이 부담스러운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일단 그 부분은 맞아 보였다.

-근데 이러면 지금 여기 허상차원인 거지?

-마력만 보면······ 분화된 거 같기도 하고.

-그치? 그러니까 저런··· 걸 시켰겠지?

-그럼 여기선 죽어도 안 죽는다는 건가.

아무래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협력전의 무대가 제대로 실체가 이루어진 곳인지, 아니면 차원 분화 현상이 일어난 허상차원인지 헷갈리는 듯싶었고, 어느 정도로 전투에 임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느낌.

“······.”

우선 결론만 말하자면 이곳은 현재 차원 분화 현상이 일어난 허상차원이 맞긴 했다.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

계속해서 느껴지는 미묘한 위화감.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상의 눈에 엿보이는 이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차원방벽의 중첩까지.

‘전부 허상이야.’

이미 순례자의 길에서 한번 겪어본 적 있는 환경이었기에 나는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지만, 이와 같은 특이유형의 차원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은 지금의 상황에 더해 다소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이내.

[아, 아. 현재 협력전 내부는 허상차원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시합의 피해가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으니 생도 여러분은 각자 역할에 맞는 행동을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도들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다시금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시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주기 시작했다.

[또한 협력전의 테마는 공지된 바와 같이 대테러 대응 모의전이며, 근래 일어났던 사건들을 고려해 회의 끝에 결정된 바입니다.]

[갑작스러운 역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그와 함께 발생한 테러행위를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를, 그 모든 걸 막으면서 어떻게 시민 여러분을 보호할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유린하고자 하는 마인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그 모든 걸 직접 체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모두 시합장 내부에 생성된 대역을 실제 시민 여러분이라 생각해주시고, 다시 생성된 마수와 마인을 실제의 재난이라 생각해주시고, 서로 부여된 역할의 중요성을 실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근래 일어났던 사건들을, 그리고 다시 승천제의 의의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째 목소리가 익숙하단 느낌.

그렇기에 나는 왜 나르화리얀이 대신 안내를 해주고 있나 의아했을 뿐이지만, 한편으로는 저 말을 들은 아이들이 일제히 몸을 움찔거리는 것도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테러는 언제나 갑작스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재난은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일상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순간 어떻게 행동할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합을 관람하고 있는 세계 시민 여러분께,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에게.]

[그럼 이제는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서 울려 퍼지던 목소리가 뚝 끊어졌고, 그러자 웅성거리던 도시에도 다시금 시끄러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오로지- 구현된 마수들의 울음소리와 가상의 시민들이 외치는 비명만을 남긴 채로.

“······저거 실전이었어도 이러고 있을 거냐고 뭐라 하는 거 맞지? 제대로 들은 거지?”

“일단 나도 그렇게 듣기는 했는데······”

“실제 상황이었으면 비명까지 들려오는 와중에 멍때리고 있었던 거긴 하지.”

“아니 미친. 그렇게 말하니까 좆같잖아.”

그렇게 아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얼떨떨해 보였던 아이들의 눈빛은 점점 예리하게 가다듬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하나둘씩 멈춰있던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어떤 무리는 비명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어떤 무리는 포효가 울려 퍼지는 곳으로.

그리고.

어떤 무리는 내가 있는 곳을 향해서.

“일단 쟤. 타천자니까 토벌 대상 맞지?”

“가서 한번 물어볼까.”

“흑색 팀. 등천자 페널티에 직접 이름까지 떴으니 대놓고 잡아보라는 거 아니냐.”

“근데 어쨌든 흑색이면 싸워야 하잖아.”

“실전처럼, 마인으로 생각하고? 묘하네.”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전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그와 동시에 차갑게 가라앉고 있는 생도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주변에 접근 중인 아이들의 숫자를 파악해보았다.

방금까지 있던 24명 중 8명이 떠나갔고, 다시 14명의 생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로만 따지면 모두 합해서 30명.

분포를 보아하니 팀으로는 전부 5팀.

“저기 후배님? 너 잡아야 하는 거 맞지?”

“이 미친놈은 그걸 진짜 물어보고 있냐.”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그들의 전력을 한순간에 파악해보았다.

“쟤는 왜 그걸 또 대답해주고 있어.”

“마! 당연 슨배가 물어보면 대답해야지.”

“선배는 무슨 일 대 일이면 한방 컷인 게.”

“하지만 지금은 너희가 있잖니?”

“닥치고 준비나 해. 지금 슬슬 쫄리니까.”

500명이나 되는 만큼 1학년뿐만이 아니라 타 학년들도 섞여 있는 듯했고, 수준으로 따지자면 대부분은 회랑의 기준에선 최소 중위권에서 상위권에 가까운 실력이긴 했다.

한마디로 무림의 기준에서 계산을 해보자면 일류에서 절정의 입문에 이른 적이 서른.

솔직히 말해서 딱히 위협이 되는 숫자는 아니었지만 단순히 육신의 부닥침이 아닌 뭔지 모를 이능이 튀어나올 걸 생각한다면 방심할 수는 없는 전력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기에.

“······!!”

“······?!”

나 또한 그들에게 맞춰주었을 뿐.

사실상 이렇게 된 이상 승천제의 시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훈련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승천제의 목적을 생각하자면 이런 방식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목적도, 의의도, 명분도 충분했고, 관람하고 있을 관객들도 흥미롭긴 할 테고, 어찌 보면 협력전 자체에 걸맞은 방식이지 않은가.

물론 이성으론 납득해도 다른 이들이라면 마인 취급을 받고, 마인 처럼 행동해야 하는 게 꽤나 거북하게 느껴지긴 할 테지만······

“미친···! 저 녀석 살기 좀 봐라.”

“······진짜 분위기 개 미쳤네. 유천하 저놈 저러니까 진짜 타천자같은데. 어우씨.”

“야. 아무리 역할이어도 그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지 인마. 쟤 손으로 썰어버린 타천자가 몇 명인데 그런 소리를 하냐.”

“아! 미안하긴 한데··· 협력전이고, 이런 상황이니까 대충대충 생각하자고. 오키?”

“상관없습니다.”

의미는 다를지언정 마인이라 불리는 것도 내게는 그저 익숙한 일이었을 따름이었다.

“쿨해서 좋네 후배님. 아니, 타천자 양반.”

“이젠 진짜 닥쳐. 타천자는 상정 안 했지만 일단 아인형 대응 포메이션으로 가자.”

“타천자, 수호자급··· 얼추 맞긴 하네.”

“······.”

그렇게 서늘하게 가라앉는 전장의 기세 속에 어느덧 이곳으로 다가오던 생도들도 모두 도착했고, 그리고 서른 명에 이르는 생도들은 각자 자신의 팀원들과 대형을 이룬 채 나를 둘러싸며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살의 까진 아니어도 적의가 뒤섞인 예리한 기세가 촘촘한 그물이 되어 나를 에워쌌고, 나는 그 사이에서 묘한 감흥을 느꼈을 따름.

참으로 오랜만에 드는 기분이었고, 다시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후우우웅-!!

사방에서 몰아치는 마력의 격류.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한 이능의 전조.

“양심 좀 찔리긴 한데 저놈 괴물인 건 다 알 테니까 적당히 합 좀 맞추자 후배님들.”

“그쪽 팀에 혹시 디버프기 같은 거 있어?”

“저희는 다 무련 출신이라 칼잽이밖에···”

“저희 팀에 간단한 속박 마법 정도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통할지는 모르겠네요.”

졸지에 합공, 아니 공략 대상이 되어버린 게 웃기긴 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별게 아니었다. 그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지금만큼은 다시 생도 유천하가 아닌 중원 무림의 유천하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자. 어쨌든.”

“우리부터 들어갈게.”

그렇기에 이 순간.

‘장단 정도는 맞춰줘도 되겠지.’

한순간에 시작되는 공세를 바라보며 나는 여섯 갈래의 매듭을 풀어냈고,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선 칠흑빛의 기류가 터져 나왔다.

***

[제 4항. 타천자 침입. 타천자 1개체.]

[특수 룰 – 등천자 페널티. 타천자 위임.]

[등천자 유천하 → 타천자 역할 배정.]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아리엘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뿐.

유천하의 역할은 테러를 시도하는 마인.

백색의 역할은 테러 마인을 저지하는 것.

그렇기에 아리엘이 곧바로 백색을 선택한 것도, 그녀의 팀원들이 그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역할 부여 – 팀 No. 12 / 백색 선택.]

[테러를 저지하고 마인을 토벌하시오.]

애초에 지나온 한 달이 유천하와 제대로 된 경쟁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내온 시간이 시간이었던 만큼, 이렇게 대놓고 기회가 주어진 걸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이제까지 상정했던 시합은 일반적인 대항전 규칙에 마수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었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미안하지만··· 경······!”

“예. 죄송합니다.”

서걱-!! 상황을 받아들인 즉시 그녀들은 주변에 자리한 마인들을 빠르게 토벌하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생성되는 마인부터, 흑색 팀을 선택하고 다가온 생도들까지 전부다.

물론 껄끄러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설명도 들었겠다, 그리고 시합도 본격적으로 시작됐겠다. 더 이상은 어느 색을 선택했든 행동을 망설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역할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

하지만- 그녀들은 바로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았다. 이하린도, 남궁설아도 유천하가 대인전에서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고, 아리엘 또한 유천하의 실력을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더 상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괜히 접근했다가 어영부영 전멸당하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준비를 하고 가야 했다.

우우웅-!!

그렇기에 현재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리엘을 필두로 4명의 아이는 가만히 마력을 그러모으고 있었고, 이하린은 그 앞에서 검을 든 채 가만히 그녀들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녀들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은 모두-

“미친··· 저게 무슨 1학······!”

“진짜 들은 대로 오지게도 빠···!”

퀴잉-!! 제대로 접근하기도 전에 군청색의 섬광에 베어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게 바로 남궁설아의 역할이었으니까.

애초에 남궁설아의 경지도 특성도 생도들의 수준에선 대응 불가에 가까운 초속. 유천하조차도 순수한 속도만 따지자면 그녀보다 느렸으니, 이제는 약점마저 보완된 그녀의 검은 보통의 생도들이 제대로 인지하고 대응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엘이 남궁설아를 자신의 팀으로 끌어들인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준비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3분. 출발은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거야.”

사실- 지난 한 달간 아리엘 팀이 짜온 전략은 수호자급 마수를 상정한 것이긴 했다.

전위와 후위의 구분을 명확히 했고, 전략의 핵심은 마력 방벽마저 꿰뚫고 수호자급 마수도 한순간에 강제할만한 마법의 집속.

유천하가 어떤 식으로 수호자급 마수를 일격사 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가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대항전 상황에서 유천하의 속도를 감당하고, 그로부터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전위와 유천하에게 마무리를 강탈당하기 전에 한방에 수호자급을 마무리 할 수 있는 화력을 준비하는 것이 중점이었다.

하지만.

전략의 목표가 수호자급이 아닌 유천하 개인이 되어버린 이상, 그리고 견제가 아닌 토벌이 되어버린 이상 수정이 필요했을 뿐.

[백색 팀:마인저지 – 131 / 150]

[청색 팀:시민보호 – 095 / 100]

[황색 팀:마수토벌 – 100 / 100]

[흑색 팀:테러시도 – 141 / 150]

“지금 한 번에 6명이 깎였어요.”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

“그만큼 처음부터 몰려간 것 같습니다.”

남궁설아는 저 멀리서 풍겨오는 서늘한 향을 맡으며 상황을 추측해보기 시작했다.

근래에 와선 혈향이 꽤 빠져나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후각에 들어오는 유천하의 향은 여전히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구분될 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남궁설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천하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몰려갔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고, 어렴풋이 짐작되는 상황에 묘한 두근거림을 느끼는 중이었다.

“상황만 따지면 지난번과 같네요.”

“······지난번이요?”

“예. 인원은 다르지만 저희가 위타극이랑 싸웠을 때랑 느낌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하린은 아무렇지 않게 위타극의 이름을 꺼내는 남궁설아의 모습에 잠시 뭉클한 감흥을 느꼈지만, 손에 검을 들고 있던 만큼 이내 그녀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예. 그때랑 비슷하네요.”

“그 때만큼 진심으로 임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이겨보고 싶네요.”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남궁설아는 그날의 격전을 떠올려보았다.

지난번 그녀들은 3명의 등천자와 함께 싸워 위타극으로부터 겨우 7분을 버텨냈다.

죽을 각오로 임했고, 실제로 죽기 직전까지 몰렸음에도 고작 위타극의 도를 꺾어낸 게 그녀들의 한계였고, 그녀들은 유천하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위타극의 손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 터였다.

물론 위타극의 경지와 악명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예. 반드시 그러고 싶습니다.”

그날의 결과에 불만은 없을지언정.

유천하에게 감사함을 느낄지언정.

남궁설아는 가문의 은원이 다른 이의 손에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의 불민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 또한 유천하에게 느끼는 감사한 만큼 단 한 번이라도 그를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을 뿐이었다.

이제껏 자신이 유천하와 직접 검을 맞댄 게 몇 번이던가? 하지만 자신은 이제껏 그와 제대로 된 싸움조차 성사시키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아리엘과는 다른 이유일지언정, 이하린과는 다른 사유일지언정, 남궁설아 또한 이번 축제에서만큼은 진심으로 임하고 있었다.

현실이었다면 아무리 실력의 차이가 존재해도 받은 것이 존재하기에 은인에게 진심으로 검을 들이대기는 힘들었지만, 이런 허상 속에서라면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차갑게 가라앉는 기세와는 반대로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는 고양감을 느끼는 중이었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흘려들으며 의식에 날을 세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자. 이제 동조는 완료했어.”

“예. 방향은 저쪽입니다.”

“응. 지금 저기서 마력이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네. 진짜······ 기세가 어마어마해.”

어느덧 필요했던 의식을 마친 아리엘이 다시 마력을 갈무리하며 입을 열어왔고, 그렇게 그녀는 잔잔하게 일렁거리는 눈빛으로 저 멀리- 그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근데 쟤는······ 저렇게 살기까지 내뿜으니까 진짜 마인 같네. 역할에 몰입한 건가?”

“천하씨는 원래 살기가 강하긴 했어요.”

“응. 천하는 기세가 원래 저렇긴 해.”

“아··· 그래? 너희가 그렇다면야 뭐.”

그녀들은 그렇게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천하가 벌써 당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니 오히려 가뿐하게 생도들의 합공을 뿌리치고 다음 상대를 기다리리란 걸 믿고 있었기에 그녀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에게 말했던 만큼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시합에 임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전력을 보존한 채 그를 맞이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흑색 애들은 왜 그걸 선택한 거지?”

“시점을 생각하면 걔랑은 싸우기 싫다거나, 팀 내에서 경쟁해보고 싶었다거나······”

“천하를 노리고 백색으로 가는 애들하고 싸워보고 싶었거나. 뭐 그런 이유 아닐까?”

그렇기에.

“바로 지금처럼.”

후우우우웅-!!

그녀들을 기습하기 위해 건물 속에 숨어있던 흑색 팀의 생도들이 열에 가까운 마인과 함께 뛰쳐나온 순간에도 그녀들 중에선 그 누구도 그 기습에 당황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마친 상황.

그리고 그녀들이 목표로 산정한 이가 절대 만만한 이가 아니었던 만큼, 당연히 그들이 준비한 것도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니었다.

[흑색 팀:테러시도 – 138 / 150]

그렇기에.

[흑색 팀:테러시도 – 131 / 150]

단 한마디- 그것으로 충분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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