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천자 토벌 (1)
개인전과 협력전, 마지막으로 집단전.
승천제의 일정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그리고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각각의 시합은 전투의 규모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었는데, 일대일로 저 혼자의 기량만을 보여주면 되는 개인전과는 별개로 협력전은 다대다 전투에서의 협동심과 역량. 집단전에서는 대규모 난전에서의 판단력과 활약을 보기 위해 그렇게 따로 구분했다고 들은 바였다.
그 이유가 아마- 수많은 이능의 숫자만큼 다른 이들과 합을 맞췄을 때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던가?
드물지만 치유나 버프 같은 능력도 혼자보단 공략대를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을 테고, 여타의 특성 중에는 분명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많았으니 그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나만 해도 무공을 익힌 게 아니었다면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기까진 분명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단순히 보는 것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토벌의 성공유무.
그리고 특성이란 분명 개개인의 역량과는 별개로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권능이었다.
만약 내가 아무 능력 없는 일반인이었다 한들 만상의 눈만 있다면 근원석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을 테고, 그걸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공략을 단축시키는데 기여 할 수 있었을 터.
그런 만큼- 당연히 개인으로서의 기량과 다수일 때 발휘되는 기량이 다른 이들도 분명 존재했고, 다시 그렇기에 승천제의 일정이 이런식의 절차로 구성되어있는 것이었다.
개인전에서는 오로지 저 자신의 역량을,
협력전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시너지를,
집단전에서는 그 모든 부분에서의 총합을.
그렇게 최대한 다양한 조건에서 각자의 역량을 파악하고, 혼자서 수련할 때는 느끼기 힘든 역할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각각의 구분을 통해 일정이 짜여진 것이었으니 실로 합리적이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으로서 뛰어난 사람뿐만이 아닌 공략대에 속했을 때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을 찾아주는 것도 중요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럼 모두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이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되는 걸까- 나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속닥거림을 흘려들으며 워치에 표기된 걸 다시 확인해보았다.
[협력전 A조 – No. 74 / 입장인원 500]
하지만 역시 숫자는 확인했던 그대로.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첫 번째 조에 속해있었고, 번호가 74인 거로 봐선 최소 73개의 팀이 나와 같이 입장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를 포함 총 500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 번에 입장한다는 말. 협력전의 평균적인 팀 구성이 2명에서 12명을 기준으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기이할 정도로 많은 입장 인원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무래도 당황스러운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
-뭐야 시발. 집단전도 아니고 왜 이래.
-입장 수가 500? 몇 팀이야 이게. 풀로 계산해도 거의 50팀 가까이는 들가는데 이럼?
-규모만 따지면 사실상 집단전인데 이거.
-뭐지? 대체 올해 룰이 어떻게 되길래?
협력전의 시작을 앞두고 시합순서를 배정받은 아이들은 일제히 그 내용에 웅성거리는 중이었고,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분명 상당히 당황스러워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싶어 현재 탑 옆에 세워져 있는 관객석과 중계 단상을 바라보니 회랑 측 직원들은 이런 우리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오늘만큼은 직접 경기를 관람하러 온 두 명의 승천자- 루타텔과 나르화리얀 또한 그저 담담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
물론, 협력전의 기본 골자는 각자 팀을 이뤄 공략을 시도하는 것을 메인으로 세부적인 상황과 규칙은 매번 달라진다고 듣긴 했다.
그러니 이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단순히 여명급 한두 마리로 끝나지는 않겠는데···? 들어가는 수만 생각해도 황혼급은 기본으로 나와야 할 것 같잖아.
-미친. 왜 황혼급으로 안 부르고 멸화급으로 부르나 싶었더니 이렇게 욱여넣으려고!
-이해가 안 되는군. 밸런스가 이상해.
-그래. 몇 팀이 경쟁하는 거면 모를까 500명이나 들어가는 거면 이건 좀 이상한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대로, 내가 생각해도 이건 기존에 들었던 협력전의 의의를 생각하면 조금 미묘한 밸런스라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집단전이 없다면 모를까 내일 대규모 난전이 예정되어있는바. 굳이 오늘까지 이렇게 할 필요는 없기도 했고, 협력전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숫자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야 단순 마수를 상대로는 균형이 맞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승천제의 목적 자체가 생도들의 역량을 보여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긴 했다.
그러니 경쟁 자체보다는 토벌을 훌륭하게 성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그건 단순히 승승장구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고난 속에 드러나는 의지.
그런 만큼 그저 500명의 각성자라면 모를까, 공략자로서의 역량을 교육받고 있는 500명의 생도라면 분명 황혼급도 합을 맞춰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고, 그 숫자가 숫자인 만큼 어지간해선 도전이라 말하기에도 미묘할 정도로 수월하게 성공할 수 있을 터였다.
당연히 몇 개의 팀이나, 소수의 인원만으로 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성공 못 하겠지만, 저 정도 숫자의 생도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 마력방벽을 깎고, 유망주 아이들이 근원석을 노린다면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아무리 경쟁이라고 해도 그저 더 빨리 잡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하지. 마수 토벌을 앞두고 서로 방해할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도, 아이들도 이 상황에 다소 의아하단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자! 그러면 이제 시작에 앞서 협력전의 테마를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생도들이 모두 번호를 확인했다 생각했는지 회랑 측에선 기다렸다는 듯 활기찬 목소리로 다시 설명을 해오기 시작했고, 그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근래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흘러나온 말은 이 상황에선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당장 얼마 전, 이곳에도 타천자의 침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등천도시와 중국 합비시에서는 테러가 일어났고, 남미에서도 마인들의 준동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자연스레 묘한 생각이 떠올랐고, 동시에 몇몇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걸 떠올렸는지 주변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도 사회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분명 인류는 하나의 뜻을 갖고 싸워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마주하기 어려울 뿐이지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자들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들은 분명 여러 형태로 세계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악의를 그 속에 숨긴 채, 저들의 추악한 욕망을 끊임없이 쌓아가면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승천제에서 저희는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생도 여러분이 공략자로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마수의 위협뿐만이 아니라 마인의 습격, 반체제 인사들의 테러, 갑작스러운 역류 등 진정한 공략자라면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협력전의 테마는 바로!]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서도 왠지 이번 협력전의 내용을 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역시나 이어진 내용은.
[대항전! 대테러 대응 모의전입니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
세계를 뒤덮은 채 휘몰아친 오색의 빛.
그 휘황찬란한 색채가 사그라듦과 동시에 나는 탑 속의 세계에 발들 들이게 되었다.
[등천자 유천하가 몽련에 입장합니다.]
몽련夢戀- 그런데 역시 아무리 회랑이어도 멸화급탑마저 단순 시험용으로 개조해놓은건 아니었는지 이곳에는 이름이 존재했다.
그것도 다소 미묘한 이름이 말이다.
지난 번 남궁설아를 통해 경험했던 황혼급 탑의 이름은 환몽의 숲이었는데, 등천회랑의 유일한 멸화급 탑의 이름은 몽련이라. 물론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원작에서도 회랑에 설치된 백색 탑 중에는 이런 류의 탑이 많다고 나오기는 했었다. 생도들의 실전연습을 위해 일부러 긁어모은 것이라 했던가?
하지만 이곳의 기능이 어떤 것이었는지까지는 당연히 나도 잘 몰랐고, 그렇기에 나는 우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이질적인 형상으로 소용돌이치는 마력.
현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짙은 농도.
마치 순례자의 길 때 같다고 해야 할까.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도, 다소 미묘한 기시감이 드는 것도, 그리고 주변에 자리한 분위기도 그렇고 확실히 비슷했다.
-와··· 멸화급. 나 지금 기분이 이상해.
-한 번쯤은 들어올 거라 생각했어도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여기, 마력이 진짜 어마어마한데? 와.
-진짜 마력 농도가 장난 아니다 어우.
아, 참고로 우리는 본격적인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대기실 같은 곳에 들어온 모양이었는데, 현재 이 광활한 공간에는 총 500명에 달하는 생도들이 들어찬 상태였다.
그러니까, 같은 A조의 인원들이 말이다.
-아 머리 띵해. 왜 하필 여기서 한데?
-그래도 예상했던 데로 쟤랑 같은 조에 걸리긴 했네. 아니, 조금 미묘하긴 하다만······
-그런데 대테러 대응 대항전? 그거면 아예 우리들끼리만 싸우라는 건가? 아니, 세부적인 룰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이게.
-그 정도론 테러 대응이라기엔 애매하지.
확실히 500명에 달하는 인원수라 그런지 사전에 나와 같이 경쟁을 뛰고 싶다고 했던 아이들은 대부분 같은 조에 속해있는 모양.
하도 신청했던 인원이 많았던지라 모두 같은 판에 배정되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한 인원이 한 시합에 배정됨으로써 결국 전부 다 같은 판에 들어왔다.
예상했던 것과는 꽤나 다르다 해야 할까?
하물며 대테러대응 대항전이라 말한 이상 일반적인 마수공략전하고는 다른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도들끼리의 전투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만큼 이 순간 내 머릿속으로는 사전에 나를 한번 이겨보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을 따름이었다.
아니, 나로서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유천하 쟤는 진짜 혼자서 참여해버렸네.
-팀이고 뭐고 혼자가 편하다는 건가?
-쟤는 그래도 알아서 잘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거슬리긴 하네. 자존심 상하잖아.
-설마 이렇게까지 해놓고 뭐 가상의 적이랑 싸우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나 진짜루 유천하 쟤 딱 한 대만 때려보고 싶은데.
실제로 아이들은 협력전의 테마를 들은 뒤부터 계속해서 나를 힐끗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곳곳에서 전달되는 시선들 속에 상당히 묘한 감정이 겹쳐져 있는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다들 경쟁의식의 발로였기에 딱히 악의라든가 적의 같은 수준까진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만 엿들어보아도 어째 한방정도는 먹여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은 걸 보니, 확실히 나와 싸워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내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는 건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특히 그중에서도 유달리 강한 호승심을 내비치는 아이들도 몇몇 존재하고 있었다.
“······.”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각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고, 그러자 이쪽을 힐끗거리던 아리엘과 사카타의 팀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다들 나처럼 어제 하루종일 수련에 매진했던 모양이었는데, 그래도 실력이 있는 아이들이다 보니 피로 섞인 얼굴 속에서도 예리하게 곤두서있는 기세를 내뿜고 있었고, 그중에서 특히 아리엘. 그녀로부터는 상당한 수준의 마력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아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어느새 그 옆에서 갑자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온 이하린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
그 순간 허공에서 맞닿은 서로의 시선.
이하린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고, 그리고는 이내 곧바로 해맑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오기 시작했다.
-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떽! 시합 끝날 때까지는 인사 금지!
-네? 그, 이, 인사도요···?
이하린은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바로 제지당해버렸고, 그녀를 둘러싼 그녀의 팀원들은 일제히 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을 뿐이었다.
-인사하다가 긴장 풀어지면 어떡해? 그러면 제 실력 안 나올 것 같다고 걱정했잖아.
-저기 서 있는 건 적이라고 생각해. 적.
-자자. 따라 해봐.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다. 유천하는 나쁜 사람이다. 유천하는······
-아, 그··· 바, 반갑지 아, 않······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아무래도 저 아이들도 지난 한 달 동안 이하린에 대해 꽤 깊게 이해하게 된 모양.
그래도 확실히 멘탈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시합 전에는 저렇게 케어를 해주는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하린의 실력은 실전이냐 아니냐, 마음가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만큼 괜히 시합 전에 나와 반갑게 인사했다간 저번 대련 때처럼 싸우는 도중 멘탈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사이로 열심히 동공을 떨어대는 이하린의 모습이 엿보였지만, 그녀도 이내 그 사실을 받아들였는지 조금은 시무룩한 기색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녀 스스로도 내게 말했던 것처럼 오늘만큼은 진지하게 임하고 싶은 듯했고, 그렇기에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눈인사를 보내오는 아리엘과 남궁설아에게 마주 인사를 건네주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주었다.
‘다들 확실히 엄청 진지한 분위기네.”
그 잠깐 사이에 엿보인 그녀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침착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것만 보아도 그녀들이 지금 얼마나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와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아이들도 똑같았다.
-오늘은 제발 제대로 한방만 먹이자.
-시발? 무조건 재끼고 이겨야지. 쪽수가 얼만데. 그걸로 만족하려고 그 개고생했냐?
-둘 다 맞는 말이지. 당연히 어렵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으니까.
-근데 대체 룰은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대항전이라고 같은 편 걸리는 건 아니겠지?
-······다들 힘내.
-힘내야 하는 건 이솔라 너도 마찬가지다.
평소답지 않게 차분한 표정의 리베르테가 내뱉은 말에, 반대로 평소보다 더 달아올라 있는 마르네가 말을 받았고, 차갑게 가라앉은 사카타가 그들을 다잡으며 내 쪽으로 잠시 시선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빛 속에는 분명 상당한 호승심이 담겨 있었다.
사실상 멍한 상태의 이솔라나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진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협력전에 참여한다는 느낌.
그렇기에- 나 또한 그들에게 진지한 마음으로 임해주기 위해 점점 고양되어 가는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럼 잠시 후 협력전이 시작되겠습니다.]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련이 시작될 시 각 팀들에게는 각각의 역할이 제시될 예정이며, 어떤 역할이 존재하는지는 입장 후에 밝혀질 것입니다. 생도 여러분은 어떠한 역할이 주어지든 각자의 룰을 수행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역할이 제시된 다라?
대테러 대응 모의전이라는 테마를 생각해보면 테러를 벌이는 측과 막아내는 측으로 나뉜다는 걸까, 아니면 전부 가상의 적으로부터 테러를 막아내는 측이되 별도의 역할이 주어진다는 걸까- 나는 그게 조금 의아했다.
솔직히 말해서 구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조성되는지 모르는 만큼, 분명 어떤 역할이냐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할지 애매할 수도 있었고, 사람에 따라선 부여된 역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부분도 이미 예상했던 모양.
[물론 역할의 구분은 회랑의 교수님들과 승천자분들의 의견도 반영해 최대한 알맞게 이루어졌지만, 아마 누군가는 제시된 역할이 마음에 들 수도, 안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판단력과 결단력. 그리고 올바른 협력!]
[하물며 이번 협력전의 규칙은 실제 집행기관의 훈련요소를 도입한 것이오니, 생도 여러분께선 각자의 역할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지실지라도 그 역할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제 집행기관의 훈련요소를 도입했다라- 그렇게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이 떨떠름한 표정 속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대체 어떤 역할이 주어질 예정이길래 저렇게 말하는 건가 싶은 거겠지.
어쨌든 나름대로 의의도 있고 목적도 있는 협력전인 만큼 아이들도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어 보였고, 이미 탑안에 들어온 이상 시합을 치르는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이들도 이 상황을 받아들인 채 이내 천천히 시합을 준비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럼 첫번째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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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찌르는듯한 기이한 파장과 함께 빛이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세계를 뒤덮었다.
***
나는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기감을 일깨웠고, 동시에 시야를 만상과 동화시켰다.
왜냐하면.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번쩍거린 빛이 미처 사그라들기도 전에 사방에서 상당한 수준의 마력의 격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그 마력이 이내 곳곳에서 기이한 형체로 뭉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역할은? 역할 준다며.
-마수···? 테러 대응이라 하지 않았냐.
-아 일단 혹시 모르니까 준비부터 해.
한순간에 감지되는 기척은 대략 24명.
무리를 보아하니 대충 나까지 5팀 정도.
하지만 만상의 눈으로 원경을 투시해보니 우리는 상당히 넓은 구역에 들어온 모양이었고, 수백 명의 생도들이 도시 곳곳에 팀별로 조금씩 떨어진 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지금 이 도시에 말이다.
‘멸화급 정도면 별세계나 다름없군.’
지금 내 눈앞에는 이제껏 입장해본 탑들을 생각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현실과 유사한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중심으로부터는 대략 반경 10KM. 직경으로 따지면 20KM에 이르는 광활한 세계에는 실제 현실의 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빽빽한 콘크리트의 숲이 솟아나 있는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만상의 눈으로 들어오는 세계 속에선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이 그 범위를 휘감고 순환하는 게 눈에 들어왔고, 다시 기감속에선 혼란스러운 감각이 느껴져 왔다.
이런 것도 순례자의 길과 유사하단 느낌.
다른 탑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일정 규모 이상의 탑은 다 이런 환경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내 그 생각을 털어내고 내력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찐득한 마력.
-크르륵··· 크라아아아!!
-키햐악···! 키햐아악!!
어느새 주변에서 뭉쳐지고 있던 회색빛의 마력이 점차 뚜렷한 형상으로 꿈틀거렸고, 점점 익숙한 울음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우선 마수부터 잡아야겠다- 그런 생각 속에 내가 검을 들어 올렸던 순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제 1항. 침식역류 중첩. 황혼급 1개체. 여명급 3개체. 수호자급은 순차적 해방.]
[수호자급 전 개체 토벌시 상황 종료.]
허공에서 안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 2항. 마인 테러 발생. 마인 100개체.]
그렇게 나는 그 안내를 듣고 나서, 그러면서도 다시 주변에 솟아나고 있는 마수와 마인의 형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지금의 상황이 조금씩 이해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변수라 한 건가.”
아까 전 회랑 측은 단순히 마수의 위협뿐만이 아니라 마인의 습격 같은 변수가 더해져도 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던가? 어떤 식으로 진행할까 싶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변수를 전부 더해버린 모양.
확실히 마수를 토벌해야 하는 와중에 마인들의 테러까지 곁들어진다면 경험이 미숙한 생도들에겐 큰 페널티로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총인원 수에 비해 생성되는 적의 규모가 작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긴 했다. 아니면 혹시 부여된다는 역할이 전부 토벌에 치중되어 있는 건 아닌 걸까.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한순간.
[제 3항. 백색, 청색, 황색, 흑색 구분.]
그에 대답하듯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각 팀은 역할을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각 역할들은 인원이 제한되어있습니다.]
[표시된 내용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역할 선택은 선착순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차례대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는 사색의 선택지가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머나먼 상공 위에도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와 동일한 내용이 표시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상황판이라도 주어지는 모양.
그렇기에 나는 표기된 메시지를 바라보며 빠르게 숫자를 가늠해보았고, 사전에 제시된 조건에 더해 각 역할이 어느 정도 적절하게 분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백색 - 침식 마인 테러 저지 / 150]
[청색 - 시민 대역 개체 보호 / 100]
[황색 - 수호자급 마수 토벌 / 100]
[흑색 - 침식 마인 테러 시도 / 150]
물론- 그 기준이 미묘하긴 했지만 말이다.
‘······저걸 직접 선택하라는 건가?’
허공에 떠오른 숫자는 정확히 500명.
하지만 그중에는 마인의 역할도 존재했고, 그것도 다른 색의 인원과 비교하자면 흑색의 숫자는 고작 150명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350명의 역할은 마수 토벌과 마인 저지, 시민 보호로 나누어지니 곳곳에서 생성되는 침식 개체를 생각하면 밸런스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아니긴 했다.
대부분의 팀은 흑색을 고른 상대뿐만이 아니라 자동으로 생성되는 마수와 마인, 수호자급 마수까지 격퇴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침식과 맞서 싸우기 위해 등천회랑에 온 아이들 중 자발적으로 흑색 팀을 선택할 아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감상을 느꼈고, 다시 그런 흑색 팀과 전면으로 부딪혀야 할 백색 팀 또한 과연 제대로 된 선택이 이루어질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색 팀:마인저지 – 000 / 150]
[청색 팀:시민보호 – 000 / 100]
[황색 팀:마수토벌 – 000 / 100]
[흑색 팀:테러시도 – 000 / 150]
내 생각을 긍정하듯- 허공에 떠오른 상황판은 마치 시간이라도 멈춰버린 것 마냥 아무런 변화 없이 고정되어 있었으니, 아마 다른 아이들도 선택을 고민해보고 있는 모양.
당연히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얼굴을 살펴봐도 팀마다 어떤 역할을 선택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되는 기색이 엿보였고 말이다.
-이거··· 황색? 골라야겠지? 마수 토벌?
-그게 깔끔하긴 한데··· 테러 모의전이라.
-근데 백색은 흑색이랑 싸워야 하는건가?
-대항전 형식은 맞는데 뭔가 미묘하네.
아무래도 무엇을 선택하냐에 따라 시합의 내용이 꽤 달라지리라 예상하는 모양이었는데,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나도 어느 색을 선택해야 할지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아이들이 최대한 많이 고를 것 같은 역할을 선택하려고 한 순간.
바로- 그 순간.
[제 4항. 타천자 침입. 타천자 1개체.]
[특수 룰 – 밸런스 페널티 규칙 생성.]
아직 안내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다시 한번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그 내용에 잠시 선택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저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떨떠름한 가능성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특수 룰 – 등천자 페널티. 타천자 위임.]
[등천자 유천하 → 타천자 역할 배정.]
설마 했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븨이이이이잉-!!
안내음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내 몸에서부터 솟구친 흑색의 빛은 세차게 저 위로 뻗어 나갔고, 어느 곳에서도 확연히 인식될 만큼 화려한 족적을 허공에 새겨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변화하는 숫자.
[흑색 팀:테러시도 – 001 / 150]
“······.”
그렇게 드디어 처음으로 변화한 숫자에 내가 잠시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잠시후 갑자기 하늘 위의 숫자가 빠르게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빛의 확산.
븨이이이이잉-!!
븨이이이이잉-!!
사방에서 서로 상반된 색채가 세차게 뻗어져 나왔고,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나간 빛의 기둥들은 그대로 허공을 수놓았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백색 팀:마인저지 – 023 / 150]
[흑색 팀:테러시도 – 021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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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팀:마인저지 – 073 / 150]
[흑색 팀:테러시도 – 077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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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팀:마인저지 – 150 / 150]
[흑색 팀:테러시도 – 150 / 150]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