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23화 (123/205)

기적의 세대 (4)

나는 나르화리얀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 말이 그냥 친근하게 대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장난을 치고 싶은건지 애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나르화리얀은 다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게 한 번 더 말을 건네왔다.

“남들은 다 가족이랑 친구랑 돌아다니면서 놀고 있던데, 혼자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수련 중이지 않습니까.”

“내 말은 왜 이런 날까지 수련을 하고 있냐는 거지. 혹시 친구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다.”

단호한 대답에 그의 미소가 더 짙어진다.

“그래?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번잡한 걸 싫어하기도 하고, 원래부터 남는 시간에는 항상 수련을 하는 편입니다.”

“음. 그럼 요즘 말로 아싸? 뭐 그런 거네?”

“······.”

“그래그래.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해해.”

아무리 봐도 대놓고 장난을 쳐온다는 느낌이었지만, 차마 아이들한테 하는 것처럼 승천자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릴 수도 없는 노릇.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라면 한번 정돈 가능해 보였지만, 나는 반백 년을 살아왔다는 세월의 깊이를 존중해주기로 결정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둘째치고서라도.

그렇게 내가 말없이 저 능청스러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내 나르화리얀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혼자서 수련하고 있는 게 기특해서 그런 거니까. 표정 풀어.”

“······표정은 평소에도 이렇습니다.”

“그것보다 넌 평소에도 여기서 수련해?”

정말이지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느낌.

갑작스레 찾아와선 뜬금없는 소리만 해대는 나르화리얀의 태도에 나는 계속 상대해줘야 하나 고민됐지만, 그래도 승천자는 승천자였으니 이내 그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안 그래도 조금 전 그나 루타텔을 한번 찾아가 볼까 고민해보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예. 다만 때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때? 주로 어떤 때에 오는데?”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정확히는- 손등에 있는 칠흑의 업륜을.

“업륜이나 내력의 회복이 필요한 때, 혹은 조금 더 감각을 갈고닦을 때 오곤 하지요.”

“예를 들어 아까 하던것 처럼?”

“······아까?”

그러나 나는 이어진 나르화리얀의 말에 순간적으로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까 하던 것이라면 하나뿐이지 않은가?

나는 조금 전 허공에 검을 둥둥 띄워둔 채 다음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해보던 중이었다. 검에 제대로 마음을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마음만으로 검을 펼쳐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면 의지를 세계에 어떻게 녹여내는지- 뭐 그런 생각을 말이다.

“검을 띄어두고 있던 거 말입니까?”

“아니, 그거 말고 하려던 거 있었잖아.”

하지만 그건 오로지 의념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니 나르화리얀의 말은 그 순간의 의념을 관측했다는 말과도 같았을 뿐.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되물어보았다.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셨습니까?”

“정신을 녹여내려 한 것까진 보았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들켜버리긴 했지만 말이야.”

“······그럼 의념을 느끼셨단 말인가요?”

“뭐야 그 말? 설마 그걸 못 느꼈을까 봐?”

의아함이 담긴 물음에 나르화리얀은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내비쳤고, 그 대답에 나는 다소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의념- 그것은 규정되지 않는 힘이었다.

물론 의념 또한 실체에 작용하는 힘이긴 했지만 그 본질 자체는 실체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 구체화하지 않는 힘이었고, 자연과 세계의 기운을 사역하여 다루는 여타의 이능과는 조금 궤가 다른 방향성의 힘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의식의 힘 또한 강제로 가시화시킬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감지하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건 의념 자체에 담긴 기세를 읽어내는 것이지 의념 자체를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잠깐만에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까지 간파해냈다는 그의 말이 나로서는 무척이나 흥미로웠을 뿐이었다.

“그게 실체가 있는 기운이 아닐 텐데요.”

“실체가 없지만 본질마저 무無는 아니지. 무형의 힘이라 할지언정 의식의 파문은 세상에 족적을 남기고, 마력처럼 가시화··· 아니 그것도 가시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뚜렷한 흔적을 남기진 않더라도 파장은 남기니까.”

“······.”

“세계를 인지하는 관점만 돌리면 의식의 힘이라 할지언정 보는 게 불가능하진 않아.”

예를 들어-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야.”

우웅-! 그의 손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풀려나온 마력의 바람은 그대로 나를 향해 들이닥쳤고, 그대로 내가 허공에 벼려낸 의념의 밀집을 한순간에 휘감고 몰아치기 시작했다.

허공에 띄어내고 있던 의념의 검형.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바람.

콰가가가가-!!

그렇게 나르화리얀을 떠보기 위해 표출했던 의념의 결집은 한순간에 가시화된 마력에 휘감겨 윤곽을 드러냈고,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즉시 아무렇지 않게 집중을 풀어냈다.

훙- 그러자 그와 동시에 흩어지는 마력.

“바로 시험해보려는 건 괘씸하지만 이렇게 수련을 하는 것도, 그리고 적극적인 것도 나름 마음에 드니까 한 번만 봐줄게.”

오키?- 아무렇지 않게 장난스레 말해오는 나르화리얀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확실히 승천자가 괜히 승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분명 조금 전 나는 아무런 전조 없이 의념을 표출해냈다. 어떠한 현상을 일으키지도 않고 무의와 무념에 가까운 형상만 말이다.

하지만 나르화리얀은 그걸 즉시 잡아챘다.

그것도 무척이나 손쉽다는 표정으로.

“······.”

“······.”

그렇기에- 나는 방금 나르화리얀이 했던 말이 사실에 기반한 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잠시 그가 말했던 내용을 되새겨보았다. 저 말을 허투루 흘려들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의식의 파문이 세계에 족적을 남긴다.

세계를 인지하는 관점을 돌려 인식한다.

어찌 보면 그건 내가 깨달아가고 있는 식의 관점과도 같다 볼 수 있었고, 다시 그건 그가 근래에 들어 계속 고민하고 있던 세계와의 동화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잠시 침묵 속에 그 말을 계속 되새겨보고 있자니, 말없이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나르화리얀이 이내 입을 열어왔다.

“너, 아까 번잡한 걸 싫어한다고 했지?”

“······예.”

무언가 어렴풋한 느낌이 들던 와중에 갑작스레 집중을 깨트리며 건네진 말. 그에 나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번잡한 걸 싫어하는 건 너의 성격이겠지. 넌 그게 편했을 테고, 축제라고 무조건 사람들과 어울려 놀 필요도 없을 테니까.”

“······.”

“사람들이 다 축제를 즐기며 놀고 있을지언정, 너는 이걸 원했기에 이런 곳에서 혼자 이렇게 수련을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나르화리얀의 얼굴은 분명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푸른 눈동자만큼은 바다와도 같이 깊은 빛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올곧은 눈빛으로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점점 노을마저 사그라들고 어둑해져 가는 어중간한 경계의 시간에서, 나르화리얀은 조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게는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말을.

하지만.

“왜 의지는 세상에 동화시키려는 거야?”

이내 나는 이어지는 그 말에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너한테 맞는 방법이라면 모르겠는데 역시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닌 것 같거든.”

“······.”

“아, 그러고 보니 눈이 특별하다고 했지? 그럼 혹시 루타텔이나 내가 하는 걸 봐서 그랬던 거라면 이 말을 해줄게. 육체를 기반으로 나아가는 길과 정신을 기반으로 나아가는 길은 달라. 그 길이 온전히 같을 수는 없어.”

그렇기에- 나는 잠시 멍하니 얼어붙은 표정으로 나르화리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음에 세계를 담아내게 될지언정 그것도 축이 되어 뒤흔드냐와 축 자체를 뒤틀어내느냐는 당연히 다른 길이지 않겠어? 마법사들이 나아가는 길과 나 같은 사람이 나아가는 길.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이 나아가는 길이 모두 동일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하지 마. 세계와 같은 선에 자리하지 않더라도, 세계를 휘두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니 말이야.”

그건 그 잠깐동안 엿본 것만으로도 내가 하려고 한 일을 정확하게 간파했다는 사실이 조금 당혹스러웠던 탓도 있었고, 다시 나르화리얀이 건네준 조언의 내용이 무척이나 정확한 지적이었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왜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보통 몸을 쓰는 애들이라면 그런 발상을 떠올리진 않을 텐데, 혹시 주변에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었니? 내가 아는 놈도 너랑 비슷한 접근을 했었거든.”

그렇게 나르화리얀이 흥미 어린 눈빛으로 물어왔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

확실히 나르화리얀의 말대로 내가 그런 방식으로 접근을 했던 이유에는 이전에 비슷한 경지에 올라섰던 사람을 본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연구하는 자가 아닌, 무공을 수련하는 자. 오로지 육신으로 만물의 기운을 받아들여 무를 펼쳐내는 경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자연스레 루타텔이 보여주었던 이적이나, 나르화리얀의 본질이 띄고 있었던 모습에 그 경지를 동일시했고, 그 결과 지금의 착각으로 이어지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저 말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순간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안개가 일부 걷혀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그렇게 다소 멍해진 정신 속에 또렷해진 이성으로 그에게 한가지 질문을 건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건네보려 했다.

“그럼 하······”

삐빅 삐빅-!

바로 그 순간- 나르화리얀의 워치에서 시끄러운 알림음이 울려 퍼지지만 않았더라도.

“어? 뭐야. 갑자기 왜 부른대.”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무슨 일 있냐고···? 어······ 잠깐만.”

내 물으에 나르화리얀은 빠르게 손목을 들어 올려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해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용을 확인하고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오늘은 뭐 할 일도 없다더니··· 쯧.”

“······.”

“조금 더 놀아줄라 했는데 가봐야겠다.”

나르화리얀의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둘째 치고서라도 가봐야 한다는 말에 다소 안타깝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르화리얀은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빠르게 뒤돌아섰을 뿐.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그리고 수련도 좋지만 이왕 축제인 거 좀 나가서 놀기도 해. 방금 말해줬던 건 그냥 천천히 생각해보고.”

“······예.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언은 무슨.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고개만 쓱 돌린 채 손을 내젓는 그의 모습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해보았지만······

“······.”

이내 이런 부분까지 바로바로 물어보기보다는 조금만 더 스스로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따름이었다.

결국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고뇌해 깨우쳐내는 것이 중요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잠시 복잡한 심경 속에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발걸음을 떼려던 나르화리얀이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그럼 내일 재밌는 모습 기대할게! 수고!”

후우웅-!! 그렇게 나를 보며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한순간에 마력으로 화해 허공에 저 자신의 몸을 녹여냈고, 순식간에 마력마저 자취를 감추며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정말 단 한순간에 말이다.

“······.”

그렇기에 나는 방금 만상의 눈으로 목도한 현상을 되새기면서, 동시에 텅 빈 허공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목격했던 현상이 내겐 무척이나 신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망설임 없이 생각을 털어내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는 걸 선택했다.

지금 중요한 건 저런 게 아니었으니까.

“······.”

비록 아직 의아한 부분도 하나 남아있긴 했지만, 나르화리얀이 말해준 내용은 내게 분명 또 하나의 화두를 제공해주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저 스스로의 몫이지 않겠는가?

착각을 바로 잡아준 것만으로도 도움은 충분했고, 무武의 세계는 쉽게 가고자 하는 이에게 빛을 내려줄 만큼 어설픈 곳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앞의 세계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을 만한 경지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저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경지였기에 나는 이내 천천히 의식을 가라앉혀보았다.

조금 전- 세계의 축을 뒤틀어낸다는 말.

그 말에서 느꼈던 부분을 되짚어보면서.

그렇게 나는 나르화리얀의 말에서 느꼈던 어렴풋한 깨달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제까지 고민했던 걸 모두 비워냈고, 이내 다시 머릿속에 한가지 의지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무아의 세계에 접어들어, 무념을 향해.

***

다음 날- 어느덧 2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새벽 늦게까지 떠들썩하게 북적거렸던 회랑의 시설들도 다시 오늘의 일정을 준비하는 중이었고,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축제를 만끽했던 아이들도 곳곳에서 2일 차의 일정을 준비하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아··· 1시간만 더 잘걸. 좀 에반데 이거.

-컨디션 조절은 하면서 해야지 병신아.

-이해해줘야지 뭐 어쩌겠니.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이 벼락치기로 밤새는 거잖아?

-아씨. 니들 눈에 다크서클이 치우고 말해.

-걱정 마. 다 똑같으니까. 다인용 수련실은 그냥 새벽 내내 전부 꽉 차 있었다더라.

대체 뭘 했는지 하루 만에 퀭해진 안색으로 피로회복제를 들이키는 모습들이 말이다.

‘······다들 밤이라도 샌 건가?’

아무래도 들려오는 대화나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을 봐선 밤새 수련이라도 한 모양.

안 그래도 나 또한 밤새 깨달음을 잡아내기 위해 무아지경에 가까운 정신으로 명상을 하고 온 상태였고, 그렇기에 축제 첫날부터 수련을 하느라 밤을 지새는건 조금 과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은연중에 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저런 생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소 안심이 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축제라고 마냥 즐기기만 한 아이는 역시 한 명도 없어 보였고, 대부분은 나와 마찬가지로 수련을 하면서 새벽을 지새운 듯 했다.

물론 아이들이 진심으로 승천제에 임하고 있다는 것 정도야 나도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설마 저렇게 다들 첫날부터 밤새 협력전을 준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첫날 정도는 어느 정도 분위기에 휩쓸려 축제를 즐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다들 이미 마음을 제대로 다잡았나 보다.

하긴- 이곳이 괜히 등천회랑이겠는가.

어제 개막식에서 보여줬던 모습도 그렇고, 평소에도 은연중 계속 드러났던 마음가짐도 그렇고, 비록 나이가 나이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생도들은 다들 진지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을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피로감을 얼굴에 드러내면서도 눈빛만큼은 불태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

-와··· 다들 되게 의욕이 넘쳐 보이는데요?

-그러게? 피곤해 보이는데 엄청 활기차네.

-어제 SNS에 뜬 거 봤는데 생도분들 대두분 새벽 내내 수련하고 장난 아니었다더라.

-협력전 준비하려고 그런 거겠지? 쩐다.

-어우씨··· 누구는 밤새 술 마시고 놀았는데 바로 옆에선 그랬다니까 괜히 민망하네.

-민망하면 기부라도 하고 가든가.

-이번 달 조금 빠듯한데··· 씁.

2일 차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 회랑에 방문한 사람들은 곳곳에 돌아다니는 생도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그들 또한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된 생도들의 모습에서 열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 미친! 저기 유천하 지나간다!!

-야야 목소리 목소리. 너무 크잖아.

-쟤가 어제 수호자급을 한 방에 죽였다고?

-차세대 승천자 후보라던데요 아주.

-그러고 보니 승천자분들은 어디 가셨지?

-이따가 협력전 보러오지 않으실까?

-아··· 기대된다. 어제 진짜 꿀잼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곳곳에서 1일 차의 이야기가 들려왔고, 승천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오늘 예정된 협력전에 대한 기대까지 들려오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이따 협력전이 시작될 때가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오리란 것도 쉽게 예상해볼 수 있는 노릇.

안 그래도 2일 차가 시작된 만큼 아침부터 전날보다 더 많은 사람이 회랑에 들어온 것 같았는데, 1일 차의 진행된 개인전과는 달리 협력전은 어떤 룰이 적용되든 간에 한곳에서 시합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리고- 아마 내일이 되면 집단전을 보기 위해 오늘보다도 더욱더 많은 사람이 올 터.

내일이 되면 정말 어디 한구석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하고, 거리를 지나갈 때는 무조건 마스크라도 껴야 되는 게 아닌가- 순간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도 협력전 장소로 가기 위해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곳곳에서 상당히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으니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기척을 죽인 채 빠르게 시험장으로 향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협력전 시합이 예정되어 있는-

[미리 오신 생도분들께서는 팀원들과 서로 함께 학년에 맞춰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탑의 마력을 조정 중이니 근방 30m로는 접근을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천회랑의 멸화급 탑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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