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22화 (122/205)

기적의 세대 (3)

개막식이 개최되었던 1학구의 대광장.

승천관 앞에 놓여 있는 그 널찍한 공터에는 어느새 기존의 시설 위에 쭈르륵 좌석이 덧붙여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설치된 간이 스테이지와 대형 스크린 속에선 다시 끊임없이 승천제의 영상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바로- 생도들의 개인전 영상이 말이다.

[이건 정말··· 놀라울 정도군요! 대격변! 예 그 말 밖에 안 나옵니다. 대격변입니다!!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광장의 한가운데서 울려 퍼진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 속에는 누구나 확연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열띤 흥분이 서려 있었고, 그런 중계자의 말에 다 함께 모여 개인전 영상을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많은 분들의 예상을 뒤엎고 계속해서 엄청난 활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학년별 수호자급 마수 토벌 개체 수는 3학년 7개체, 2학년 3개체, 그리고······ 1학년 9개체!!]

[예! 모두 19개체입니다! 무려 19개체!]

그 말과 함께 우레와 같은 환호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동시에 총 19개의 영상을 띄어둔 채 수호자급 토벌 영상을 재생하고 있던 스크린 위로 기록 통계가 떠올랐다.

그러자.

[1위 – 유천하]

[최종기록 - 여명급 / 00:46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2위 – 진시우]

[최종기록 - 여명급 / 04:32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3위 – 아리엘 화이트]

[최종기록 - 여명급 / 04:33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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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 남궁설아]

[최종기록 - 여명급 / 08:57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7위 – 이솔라 프라엔]

[최종기록 - 여명급 / 10:01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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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 리베르테 베르미용]

[최종기록 - 여명급 / 45:26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16위 – 마르네 아일리시]

[최종기록 - 여명급 / 47:41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17위 – 사카타 렌]

[최종기록 - 여명급 / 49:39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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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 – 이하린]

[최종기록 - 여명급 / 1:00:04초]

[소속 – 1학년 화이트라인]

그 스크린 속 리스트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1학년 생도들의 이름.

심지어 1위부터 3위까지는 아예 1학년 유망주들이 독차지한 상황이었기에 개인전이 시작되고부터 연이어서 울려 퍼진 소식은 승천제를 관람하던 관중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리고 그건- 중계를 해주기 위해 와있던 공략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 상황도 어찌 보면 당연했을 뿐.

[정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버렸습니다! 어느 정도는 활약을 예상하긴 했으나, 이렇게 1학년 생도들의 수호자급 단독 토벌이 연달아 성공하는 건,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그 말밖에 안 나오는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기적입니다! 등천회랑의 의의가 무엇입니까? 등천자! 차세대 최선두 공략자를 양성하기 위해 이곳은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등천자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 수호자급의 단독 토벌입니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토해내는 중계자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공략자 또한 빠르게 말을 덧붙여주었고, 다시 중계자는 잔뜩 달아오른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예! 물론! 어디까지나 그건 최소한의 기준에 불과합니다! 등천의 업은 절대 가볍지 않으며, 그걸 위해선 정말 많은 마수를 토벌해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아직 성인도 안된 아이들이, 이제야 막 어린 나이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벌써 그 최소한의 기준점에 닿아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승천제의 목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군요. 희망입니다! 저희는 오늘 이곳에서 차세대의 희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흥분 속에 쏟아져 나오는 말은 다소 두서없었고, 들쭉날쭉했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도 그리고 채널을 통해 같이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도 왜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저 말에 담긴 내용은 사실이었다.

등천회랑이 왜 등천회랑이란 말인가?

그리고 등천자가 왜 등천자란 말인가?

하물며 다년간의 커리큘럼까지 모두 거치고 난 뒤, 현장에서의 실습을 뛰며 기량을 갈고닦은 졸업생이라면 모를까 저학년의 생도가 수호자급을 단독으로 토벌하는 경우는 어지간해선 불가능에 가깝다 해도 무방했다.

끽해야 한두 명의 천재들이 유망주란 이름하에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 되었을 뿐.

그렇기에 오늘과도 같이 다수의, 그것도 다른 고학년들보다도 더 많은 수호자급 토벌을 기록한 1학년 생도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건 원래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등천회랑이라 한들 원래라면 500명의 생도 중, 졸업 시점에서라도 단독 토벌이 가능한 이들은 평균적으로 10명을 못 넘기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입학한 아이들이 그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건······ 이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저들이 입학한 지 과연 얼마나 지났던가.

그런데 벌써 수호자급 마수를 토벌한다?

사람들은 그 고무적인 사실을 목도하고는 저마다 자연스레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약 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그리고 더 많은 경험이 쌓이게 된다면 저들은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될까.

그야말로 생각할수록 설레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1위의 기록은···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요! 과연 현장에서 활약하시는 분 중 몇 분이 저같은 기록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일단 저는 확실하게 불가능합니다!!]

[등천자 유천하. 예. 안 그래도 요즘 뜨거운 화제가 되었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뜨거워질 이름이라 확신합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어쩌면 지금 차세대 승천자라는 희망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해당 생도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생도분들 또한 마찬가지로 훌륭히 자신들의 가능성을 입증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리 들뜨는 것도 어찌 보면 그저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이미 한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존재감을 통해 차세대 승천자의 자질을 보여주었고, 다른 아이들도 차차 등천자의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저들은 분명 승천제의 의의에 걸맞게 미래를 위한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었다.

[최종기록 - 여명급 / 45:26초]

[최종기록 - 여명급 / 47:41초]

[최종기록 - 여명급 / 49:39초].

[최종기록 - 여명급 / 1:00:04초]

물론······ 세부적인 부분을 살펴보자면 수호자급을 토벌했을지언정 제대로 역량을 갖춘 이들은 절반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사실 일 대 일이라는 상황과 백색탑이라는 환경을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에 가깝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토벌 자체는 토벌.

비록 온전한 실력으로 해낸 이도, 누군가에게 자극받은 상태로 억지에 가깝게 달성해낸 이도 존재했지만 그 결과의 가치는 분명 모두에게 동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예상치 못한 이변을 만들어낸 원인도 분명히 존재했고 말이다.

진시우야 원래부터 휘말릴 사람이 없어야 제 능력이 나오는 사람이었다 쳐도, 남궁설아의 기량은 온전히 유천하로 인해 개화하게 된 것이었고, 아리엘의 축언은 오로지 유천하를 이기기 위해 쌓아낸 하나의 인과였다.

그 밖에도 한 사람에게 상대조차 안 된다는 사실에 자존심에 타격을 받았던 아이도, 언젠가는 그 사람의 등을 지켜주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아이도, 그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 마음먹었던 아이도 모두 지난 한 달 동안 자신들의 재능을 최대한 가다듬었으니. 그렇게 특출난 한 사람의 존재감은 같은 학년의 아이들에게 큰 자극을 선사했고, 그 자극은 원래라면 적당히 물러섰을 아이들도 저 자신의 한계까지 도전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심지어 원래라면 아무것도 안 한 채 조용히 축제를 관망했을 이하린까지도 말이다.

물론 아무런 생각 없이 되는대로 행동한 사람도 존재했지만, 그렇게 대부분은 누군가의 존재에 큰 자극을 받아 분발하였으니. 그 결과- 승천제 첫날의 주인공은 1학년 유망주들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 뿐.

하지만- 그렇기에.

[진짜 이젠 완전 들러리 다 돼버렸네.]

ㄴ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시발.

ㄴ기록 갱신하고 신나서 타코야끼 사 먹다가 바로 집어 던지고 수련실 옴 ㅅㅂ ㅋㅋ

ㄴ저 미친 새끼들 갑자기 왜 저러냐.

ㄴ아리엘 님까진 글타쳐도 다른 애들까지 성공하면 어떡하자는 건데요 ㅠㅠㅠㅠㅠ

그 결과에 세계가 환호했을지언정, 정작 생도들의 체면은 몹시 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생도들끼리의 경쟁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고, 개인전 기록은 말 그대로 개개인의 실력이었기에 그들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사자들에겐 그게 아니었을 뿐.

[실력 차야 그러려니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벌어지니까 좀 그르네.]

ㄴ누군 B등급 아등바등 잡을 때 누군 수호자급도 잡고··· 재능, 노력 뭐가 문제일까요.

ㄴ둘 다. 걔네 요새 잠도 거의 안 자더라.

ㄴ협력전 준비한다고 불타더니 그냥 독기 한번 오지게 품고 왔네; 미친놈들;

ㄴ첫날부터 이러면 들러리 확정인데 ㅋㅋ

[솔직히 3학년은 체험 나간 애들만 다 불러왔어도 1학년한테 지는 일 없었다 ㅇㅈ?]

ㄴ 그딴 게 중요하냐 지금 ㅋㅋㅋ

ㄴ응~ 수호자급 46초 컷~

ㄴ응~ 여명급 5분 컷만 3명~

ㄴ혹시······ 랭커라고 들어보셨는지^^?

ㄴ이 새끼들 다 같은 처지면서 왜 이럼.

[이거 선배 체면이 말이 아닌데 ㅋㅋ;]

ㄴㅎㅎ 괜찮습니다 슨배림. 걔네 빼곤 다 똑같이 고만고만한 수준이에용 ㅎ;

ㄴ고만고만하기는 ㅋㅋ 1학년 평균 컷도 2학년 재꼈던데 기만하냐고 ㅋㅋㅋ 시발.

ㄴ2학년은 패배자다,,, 2학년은 패배자,,,

ㄴ아니 근데 이러면 진짜 패배자야 우리;

[진짜 존나 짜증나고, 한심하네.]

ㄴ갑자기 누가 짜증나. 설마··· 2학년?

ㄴ당연히 나지; 뭔 개소리야 시발 ㅋㅋ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세월을 겪어왔다.

재능의 차이는 알고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노력마저 게을리한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이걸 어찌 순수히 납득하겠는가?

적어도 등천회랑에 온 생도들 중에선 다른 누군가에게 뒤처지는걸, 다른 이를 띄어주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는걸, 그걸 순수히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천하의 등천 소식에 아이들은 서로의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최대한 뒤쫒아가려 노력해봤지만, 아무래도 단순히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던 모양.

재능의 차이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다들 그 사실만큼은 겸허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 다 됐고 내일은 무조건 설욕전이다. 수호자급은 못 잡아도 밥값은 해야지 ㅅㅂ]

[기량 좀 후달리면 어떠냐 ㅋㅋ 공략을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협력전 간다 기기.]

[누가 걸리든 제발 쪽팔리지만 않게 하자.]

[진짜 내일 다 조진다. 진짜 다 조질 거야.]

그게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유천하에게 자극을 받았던 아이들은 모두 개인전보단 협력전을 위주로 칼을 갈아온 상태. 물론 유천하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덩달아 뛰어올랐기에 박탈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뭐 포기라도 하겠는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당연히 최대한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했을 뿐.

그렇기에.

[내일 유망주 애들이랑 같은 판 되면 무조건 한 놈은 재낄 거다. 진짜 무조건 ㅋㅋ]

[제발 협력전 룰로 대항전 나와라. 제발.]

[대항전 뜨면 무조건 유천하 만나러 감.]

첫날이라 다소 풀어졌던 아이들의 마음도 어느새, 다시금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1일 차의 일정이 모두 끝나버린 시각.

활기참 속에 무거운 긴장감 또한 맴돌았던 등천회랑의 분위기도 이젠 저물어가는 노을 아래 온전히 축제의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거리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 냄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밝은 웃음소리.

그렇게- 온종일 진지한 표정으로 개인전에 임했던 생도들도 어느덧 노을빛 아래 각자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다들 눈빛은 이글거리는 게 식사 후 수련이라도 하러 갈 것 같았지만 우선은 찾아온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양.

누군가는 기존에도 운용되던 학식당에서.

누군가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군것질로.

누군가는 공원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그리고 다시- 나는 그런 거리를 지나쳐 아무도 없는 3학구의 숲속에서 조용히 칼로리 바로 끼니를 때워버렸고, 가볍게 저녁을 해결한 뒤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물론, 당연히 손을 쓰지 않고서 말이다.

스르릉- 먹고 남은 쓰레기를 손으로 뭉쳐 삼매진화로 불태우면서도 의념으로는 칠흑의 검을 뽑아내 들어 올렸고, 나는 그대로 검신을 허공에서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검극.

쏘아지다 멈췄다, 다시 빙글 회전한다.

그리고는.

“애매해.”

순간 그런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물론- 말로는 애매하다 했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매끄러웠다. 단순히 의념으로 검을 들어 올리고 끝이 아니라, 그 검 속에 제대로 의지가 실리기 시작했다 해야 할까?

지난 한 달 동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나는 남는 시간을 모두 수련에 투자하였고, 일상 속에서도 의념을 가다듬었다. 그렇다 보니 점점 깨달음도 갈무리되어가고, 상승절학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그래도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의념에 발을 들여 나는 검이 될 수 있었다.

의기상인에 익숙해져 검에 의를 담아냈다.

검에서 의를 쏘아 보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마음 자체를 휘두르려면 어찌해야 할까?

세계에 나를 녹여내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근래 그것을 고민해보는 중이었다.

‘어렵군.’

물론- 벌써 심검을 논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7성마저 아직 차차 적응해나가는 중이었으니 벌써 그것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나는 그저 다음으로 도달해야 할 영역이 어디인가를 조금 고민해 보았을 따름.

‘담아내는 게 먼저냐, 내보내는 게 먼저냐.’

분명- 나는 지난 위타극과의 생사결을 통해 관념을 버려 7성, 유식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천마신공은 결국 깨달음의 무학. 광활한 대지를 제시할 뿐 그 방향만큼은 오로지 내가 선택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자신을 버려 ‘나’를 세웠으면 다시 세계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나는 아직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니 유식의 관점도 제대로 정립하지 않아놓고 하사도로 나아가는 건 성급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지금 내가 고민하는 건 깨달음보단 조금 더 실질적인 무학의 영역이었다.

‘이기어검, 무형지기, 격공, 심검.’

마음으로 검을 펼쳐내려면 검에 마음을 담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육신과 별개로 마음만으로 기를 온전히 사역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진정한 의미의 의기상인이나 다름없었고, 그건 곧 무형지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검과 격공의 묘는 어찌 보면 같은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봐도 되는 걸까?

물론- 그 무엇도 확신하기는 어려운 부분.

애초에 내가 직접 목도했던 초절정의 고수들은 모두 절기를 아끼는 편이었다. 아버지 또한 어지간해선 손으로 검을 휘두르시는 편이었고, 심검을 사용하셨던 적도 극히 일부에 심지어 어검과 제대로 된 격공의 묘를 사용하는 걸 목격했던 적마저 손에 꼽혔다.

‘정확히는 사용할 일이 없었던 거겠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한 일-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아버지의 이름은 중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천하제일인이자 천마의 이름은 무거웠으니 그 이름에 대항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누가 그런 아버지께 제대로 된 싸움을 걸어오겠는가?

그저 상대적으로 만만한 나를 노리거나 뒤에서 치졸한 암투를 걸어왔던 게 전부.

뭐··· 덕분에 나도 빠르게 경험을 쌓으며 성장할 수 있었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 부닥치고 나니 상승 무학을 견식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게 다소 안타깝기는 했다. 그나마 눈이 좋았기에 몇 번 본 것만으로도 감을 잡는 거지, 하마터면 어두컴컴한 길을 손으로 헤집으며 나아갈 뻔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나는 불확실한 길을 단편의 기억에 의존해 더듬어가는 중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육감은 미약한 단서를 통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길이 많이 달라지리란 걸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게 참으로 어렵다는 느낌.

무언가 감이 잡히는 듯하면서도, 영감이 어렴풋한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으니 나는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초절정에 이른 고수와 비무를 한번 해본다면 무언가 감이 잡힐까?

물론 승천자중에서도 초절정의 무인은 단 세 명에 불과했으니 실질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나는 차라리 다른 이들하고라도 대련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는 했다.

이전에 등천의 구도자에 갔을 때 루타텔하고 대련을 치렀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빨리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토벌로 측정을 대체한 게 지금 와서는 조금 섣부른 선택이지 않았나 싶을 뿐이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성과가 있긴 했지만······’

잠시 그날의 광경을 되새겨보니 내 생각은 자연스레 두 명의 승천자를 향해 이어졌다.

한순간에 세계와 동화되어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자유자재로 다뤄냈던 루타텔과, 그 내면의 본질 자체가 자연의 현상이 밀집된 것 같은 형상을 띄고 있었던 나르화리얀.

어찌 보면 그들 모두 세계를 받아들이는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었고, 그러한 깨달음은 분명 어느 정도는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 하고도 합치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한번 그들을 찾아가 봐야 할까.

답답한 기분에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작스레 기감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바로 그 순간.

“······.”

나는 순식간에 인적없는 숲속 사이에 녹아들어 있던 존재감을 감지해낼 수 있었고, 그 즉시 만상의 눈을 열어 이질감이 전해져온 곳- 숲속 너머를 투사해 상대를 응시했다.

그러자.

“와··· 이게 들키네?”

내 눈에 들어온 건 숲속 한가운데 녹아들어 나를 훔쳐보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었고, 그는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만개한 미소 속에 이쪽으로 걸어왔다.

***

나르화리얀이 그를 발견한 우연이었다.

확인할 구석이 있기에 루타텔과 3학구에 방문했던 그는 용건이 끝나자마자 회랑을 구경하러 돌아다녔고, 기척을 숨긴 채 배회하는 그를 감지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니 나르화리얀은 온종일 자유롭게 등천회랑 내부를 돌아다녔을 뿐이었다.

때로는 군것질을 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생도들의 개인전을 관람하면서,

그리고- 회랑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렇게 등천회랑 내부의 구조를 하나씩 직접 살펴보던 그는 결국 광활한 3학구도 빠르게 훝어보기 시작했고, 그러던 와중 나르화리얀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왕성하게 몰려드는 지맥의 흐름.

땅의 정기가 모여 만들어내는 마력의 강.

나르화리얀은 용맥에서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에겐 그런 자연의 기운이 무척이나 친숙하게 느껴졌고, 몸을 회복하는 데도 좋은 효과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물론- 지난번 심연의 영역에서 침식에 휩쓸린 여파는 이미 털어낸 뒤였지만, 그래도 용맥은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으니 그로서도 이곳을 찾아온 건 본능적이었을 뿐.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 신기하네.”

“······눈이 조금 특별해서 그런가 봅니다.”

“너, 눈으로 보기 전에도 감지한 거잖아.”

나르화리얀이 용맥에 왔을 땐 이미 그곳에선 누군가가 열심히 수련을 이어나가는 중이었고, 마침 유천하에 대해 흥미가 있었던 그는 말없이 수련을 훔쳐보고자 했었다.

물론- 보기도 전에 들켜버렸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르화리얀도 진심으로 몸을 숨기려 한 게 아니긴 했다. 당연히 마음먹고 자연체 상태에 들어갔다면 그로서도 이렇게 바로 들키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그렇다 한들 기척을 가라앉히고 몰래 훔쳐보려 한 건 맞았기에 그는 이 상황에 흥미로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감? 육감? 아니면 가호의 영향인가?

아무래도 이 아이는 특성을 제외하고서라도 감각 자체가 예민한 모양이었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육감 자체가 남들보다 더 발달해있다는 게 아닐까- 그리 추측해보았을 따름.

그렇게 나르화리얀이 잠시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던 유천하가 자연스레 다른 쪽으로 화제를 틀어왔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 말에 나르화리얀은 잠시 고민하였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 나야 그냥 오게 된 김에 구경이나 하고 있었지. 여기저기 재밌는 게 많더라고.”

“······3학구에 말입니까? 이런 곳에요?”

“응. 사람은 없어도 ‘이런 곳’이 있잖아?”

나르화리얀이 자신의 손가락을 지면을 가리켰고, 그 행동에 유천하는 바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또한 그런 이유로 이곳에 와서 수련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승천자쯤이 돼서 마력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리도 없을 테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그 사실을 뒷받침하듯 나르화리얀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어왔다.

“상당히 터가 좋네. 이런 곳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야. 너도 운이 좋구나?”

“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런 수준의 맥은 흔치 않으니까.”

나르화리얀이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은 지맥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곳. 이 정도로 마력이 몰려들어 있는 곳이라면 가만히만 있어도 마력의 회복이 빨라질 터였고, 마력을 사용하는 모든 행위가 다른 곳에서보다 조금 더 수월해질 터였다.

원래라면 어지간한 오지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곳이지만, 이곳은 아마도 백색탑이 기이할 정도로 밀집된 지역이었기에 이런 흐름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나르화리얀은 지맥을 관찰하며 그리 추측해보았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주변에 퍼져있던 자연의 마력을 내부로 순환시켜보며, 매우 상쾌하단 표정으로 유천하를 향해 다시 말을 건넸다.

“마력의 기질도 좋은 느낌이네. 수련하기에도 다른 용도로도 정말 괜찮은 곳이야.”

물론- 그리고는.

“축제 때까지 이런 곳에 와서 혼자 이러고 있는 건 조금 웃긴 것 같지만 말이야.”

“······.”

이내 히죽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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