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세대 (2)
기본적으로 공식기관에서 개최되는 승천제의 영상은 모두 연맹이 운영하는 공립 사이트와 채널을 기반으로 송출이 진행된다.
그리고- 당연히.
[와씨; 개막식 영상 지금 봤는데 뭔가요.]
└13:48 ㄹㅇ 개 미쳤다 진짜.
└ㅗㅜㅑ 저게 뭐임? 저거 다 마력이야?
└와··· 마력이 원래 저렇게 쉽게 내보낼 수 있는 거였음? 승천자는 그냥 말이 필요 없는 것 같고, 생도들도 괜히 생도는 아니네.
└당연한 소리를 ㅋㅋㅋ ㅋㅋ ㅋㅋㅋㅋ
└좌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퓨ㅠㅠㅠ
└항상 노력하는··· 생도들··· 멋집니다^^
└아르파냐 학원 개막식도 지금 막 시작했습니다. 마법진 라이브 보러 오세용!
시대가 시대인 만큼 승천제의 영상은 일반 TV에서는 물론이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기에 대부분은 승천제를 즐길 때 특정 채널을 고정해두기보다는 실시간으로 뜨는 영상을 보면서 댓글과 채팅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편이었다.
예를 들어- 어느 중계 채널에서 어떤 장면이 나오고 있다든가, 누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든가, 올해에는 어느 기관의 승천제도 볼만한 편이라든가, 뭐 그런 걸 말이다.
애초에 세계연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육성기관만 해도 총 12곳에 달하는 상황.
그런 만큼 승천제의 영상을 송출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하물며 그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등천회랑의 승천제는 생도들의 수만 해도 대략 1,500명에 달했기에 중계 채널도 수십 개로 분할된 상태였다.
차라리 협력전이나 집단전이 벌어지는 2, 3일 차의 경우에는 채널도 어느 정도 통합되는 편이었지만, 1일 차는 개인전 시합이었던 만큼 그런 분할도 불가피한 일이었을 뿐.
그렇기에- 사람들로서도 효율적으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승천제의 진행 정보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 등천회랑 D 채널에 유망주 떴다!]
└유망주? 누구? 누구누구누구누구눅?
└우 윳 빛 깔 킹. 시. 우!
└네다헌. 유망주 아님 ㅅㄱ
└뭐야 벌써 1학년 시합 시작했어요?
└ㅅㅂ ㅋㅋ 진시우가 죽인 마수가 몇 마린데 마석 몇 개 좀 캐다 판다고 취급 봐라;
└그거 캘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죽여야 공략자 아님? 사익 추구는 취급 안 함 ㅅㄱ
└공략대 후원은 하고서 하는 말이지?
물론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의견충돌이나 트러블도 발생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영상을 시청하는데 집중하는 편이었고, 서로 응원하는 생도나 볼만한 장면이 나오면 SNS나 커뮤니티에 공유하며 승천제를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응원하는 유망주가 나오는 채널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실력자를 발굴하기 위해, 아니면 그저 순수하게 구경하면서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속보@@@ 유천하 개인전 영상 뜸 ㄱㄱ]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전에 먼저 툭 던져지듯 올라온 짤막한 영상은 사람들에게 의아한 기분을 선사해줄 수밖에 없었다.
[와 ㅅㅂ 유천하 뭐냐. 개 미쳤네.]
└공략잔데 님 붙이세요 ㅡㅡ
└아니 근데 유천하는 언제 떴대? 5분 단위로 중계 채널 돌았는데도 본 적 없음 ㅋㅋ
└영상길이 43초? 낚시네. ㅅㄱ
└아 닥치고 좀 보세요. 일단 ㅋㅋㅋ
유천하가 중계 채널에 잡혔던 건 약 1분.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라이브로 상황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고, 하물며 올라온 클립 영상의 길이도 1분이 안 되었다.
그리고 또한- 지난번 유천하의 중간고사 기록은 분명 생도들 사이에선 뜨거운 이슈였지만, 당연히 그건 등천회랑 커뮤니티를 구경하는 공략자들 사이에서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일반인은 접할 수 없는 정보였을 뿐.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천하가 이전에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대부분은 처음 유천하의 개인전 영상이 떴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 내용을 가볍게 무시했을 따름이었다.
애초에 43초가 말이나 되는 소리겠는가?
중도 포기를 했을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미친 이거 빨리 보세요 ㄹㅇ 지금 당장.]
└[A조 유천하 개인전 클립]
└이거 아까부터 왤케 꾸준히 올라옴. 나만 낚일 수 없다. 뭐 그런 거예요 이거?
└진짜니까 올라오지 븅신아!!!
└미친; 속는 셈 치고 40초만 투자해라.
어느 순간부터 마른 들판에 뿌려진 기름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그 화제는 점점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 도배되듯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쯤 되니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한 번씩은 영상을 확인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하게 된 건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마수가 생성됩니다. 등급 B. 5, 4, 3······.]
[서걱-! 퍼어엉-!!]
화면 속에 서 있는 검은 색채의 남자.
그리고 그의 손이 꿈틀거리는 순간.
[마수가 생성됩니다. 등급 A. 5, 4, 3······.]
[서걱-! 퍼어엉-!!]
흐릿해진 잔상 속에 그림자가 터져나간다.
F급 마수부터 시작했을 때는 시청하던 사람들도 그저 약간의 감탄사를 흘리는 게 전부였지만, 점점 등급이 올라가고 기어코 A급 마수에 도달했을 때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자 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수호자급이 아닌 일반 규격의 마수라 할지라도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하물며 A등급의 마수는 결코 저렇게 쉽게 처리할만한 개체가 아니었다. 지닌바 재생력만 해도 일반 군부대로는 처리할 수 없고, 공략자가 아닌 일반적인 각성자라면 집단을 이뤄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는 그런 개체.
하지만- 그는 일격으로 토벌하고 있었다.
제대로 식별되지도 않는 극한의 쾌속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영상의 재생속도를 0.25배속으로 낮춰보았지만, 그렇다 해도 엿보이는 건 한순간에 일어난 번뜩임뿐이었으니. 일반 동영상 사이트의 프레임으로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별격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호자급 마수가 생성됩니다. 대상 등급 여명. 마력 파동에 주의하세요. 5, 4, 3······.]
그건 이내, 커다란 충격으로 뒤바뀌었다.
[-----------------------------------------------!!!]
생성된 마수는 분명 작디작은 개체였다.
수호자급이라기에는 작은, 그러면서도 화면에 표시되는 마력의 유동을 보자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마력을 간직한 아인형 마수.
비록 대형종이나 다른 개체처럼 까다로운 속성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저 작은 동체로 수호자급의 마력을 구사하는 만큼 제대로 된 실력이 없는 이들에겐 아인형의 수호자급 마수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개체였다.
하지만.
유천하의 대응은 무척이나 간단했을 뿐.
[······.]
마수가 온전히 구체화되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이미 그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검극을 뻗어냈다.
마치, 밤하늘을 그대로 머금은듯한 검신.
그 속에서 일렁거리는 칠흑의 별빛.
그렇게 그 찬란한 색채가 영상 너머에서도 확연히 엿보였던 순간, 그 순간의 일렁거림이 무척이나 확연한 형상으로 스크린 속 세계를 가로질러 번뜩거렸던 그 잠깐의 순간.
[콰과과과가가가가-!!!]
이미 유천하의 검에선 거대한 규모의 참격이 튀어 나간 뒤였고, 세계를 가로지른 칠흑의 별빛은 그대로 아인형 마수의 온몸을 난도질하듯 뒤덮어 그대로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충격적인 장면으로 되돌아왔다.
공략자에 대해 잘 알고, 눈썰미가 좋았던 사람들은 그 미약한 영상 속에서도 유천하의 손등이 빛을 발하고 있는걸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고, 상식이 파괴되는 장면이었다.
‘수호자급을 저렇게 간단히 죽인다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한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유천하가 해낸 일들- 그가 이제껏 무려 세 명의 타천자를 베어냈던 것도, 역류 현장에서 일격에 수호자급 마수를 토벌했던 것도, 그리고- 등천의 업을 달성했던 것도.
모두 온전히 그의 실력이었다는 사실을.
공략자들이 진작에 받아들였던 사실을 사람들은 이제서야 제대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
스크린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
담담한 표정으로 빛에 휩싸이는 한 사람.
“······진짜. 대단하네.”
그 영상을 확인한 순간 아리엘은 허탈한 심경 속에 그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난번 중간고사 때 기록을 알고 있었던 만큼, 유천하가 다시 또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놀라운 건 아니었지만 시험 때의 영상은 생도들에게도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
정말 유천하 얘는 항상 대단하구나.
특성도 그렇게 엄청난 걸 갖고 있었구나.
실력도 생각보다 더 뛰어난가 보구나.
놀랍지만, 딱 그 정도의 감상.
하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되니 그 막연함이 조금 더 구체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괴물.”
지난번- 유천하가 대규모 역류 현장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티르유의 도움도 분명 컸을 터였다. 일격으로 해내기엔 황혼급의 마력방벽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을 테니까.
그러나 중간고사 때의 기록에, 이미 한번 영상으로도 본 모습을, 이렇게 다시 또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로 확인하게 되니 그녀로서는 정말 뭐라 말이 안 나오는 기분이었다.
한 번이라면 우연이라 볼 수 있었다.
두 번까지도 우연이라 우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세 번이나 일격에 보내버린다?
아리엘은 뻔한 사실을 부정할 만큼 멍청이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상향조정되는 유천하의 실력에 참으로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공략자로서 그의 실력이 기쁘기도 하고,
생도로서 그의 실력에 기가 죽기도 하며,
다시- 친구로서 그가 걱정되기도 했다.
‘이 바보는··· 자기도 숨기고 싶다더니.’
물론 아인형 마수였던 만큼 문제 될 부분은 없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유천하의 손등에서 번뜩인 빛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테고, 전신을 뒤덮었던 참격이었던 만큼 근원석의 위치를 간파해 죽였다기보단 그저 범위로 밀어붙였다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벌써 세 번째이지 않은가?
계속 이렇게 수호자급을 만날 때마다 일격으로 토벌해버리면 아무리 여명급이라 한들 의아함을 느끼는 사람도 생길 터였고, 큰 문제는 아닐지언정 딱히 좋은 일도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당장 현장에 뛰어들기보단 회랑에 다니는 걸 희망했고, 이하린도 그와 같이 있는 걸 원했으며······ 그리고 그녀 자신 또한 그런 일상이 좋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에 대한 복잡미묘한 심경 속에 잠시 고민을 해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이걸 왜 자기가 고민하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걔가 애도 아닌데.’
바로 다음 순번이었기에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분 만에 현장을 초토화시키고 쿨하게 자리를 떠나버린 유천하를 생각하며 아리엘은 잠시 고개를 내저었다.
유천하는 언제나 한결같은 유천하였으니 자신이 걱정해줄 필요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복잡했던 머릿속을 비워내며 같은 순번이라 옆에서 함께 대기 중이던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눈빛을 반짝거리며 들뜬 표정으로 열심히 워치를 만지작거리는 이하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열심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타닥타닥 워치를 두들기는 모습. 그에 아리엘은 순간 그녀가 뭐 하나 싶어 슬쩍 화면을 엿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댓글.
[유천하 오졌다. 등천자 클라쓰냐 저게?]
└앞으로는 유천하 ‘님’ 붙여라.
└아니 저게 어떻게 가능해요? 원래 등천자급이면 수호자급 일격사도 가능한 건가?
-그럴 리가. 역류 한번 일어나면 수호자급 때문에 도시가 개판이 되는 판국에 ㅋㅋ
-생도인 사촌한테 들었는데 공략자들 사이에선 이미 하이랭커급으로 추정 중이래.
-유천하 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등록- 이하린의 작은 손가락이 그 버튼을 누르자 마지막 댓글이 등록되었고, 그 순간 시선을 느낀 이하린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
“······.”
물론- 아리엘은 그 즉시 아무것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시치미를 떼었을 뿐이고, 그러자 이하린은 다시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워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 하린이도 한결같은 아이구나.’
아리엘은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어보았다.
“아, 하린아?”
“······아, 넵?”
워치에 몰입 중이던 이하린이 고개를 들어 올리곤 해맑은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오늘은 협력전 연습 때문에 힘들지만, 내일 밤에는 천하랑 같이 돌아다닐래? 1학구에 야시장도 열린다 하더라구. 괜찮지?”
“······! 넵! 저는 좋아요!”
“그래. 요새 셋이서만 만난 적은 별로 없으니까 내일은 오랜만에 천하랑 놀아주자.”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헤실거리는 이하린을 바라보곤 마주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리고는 이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내일 마음 편히 놀려면 오늘하고 내일 일정만큼은 제대로 해내야겠지?”
“······?”
그리고- 그 순간 울려 퍼지는 안내음.
[잠시 후 1학년 개인전 F조 시합이 진행될 예정이니, 해당 생도분들께서는 모두 백색탑 입구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안내음과 아리엘의 말에 가만히 앉아있던 이하린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리곤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에 내려놨던 검을 패용했다.
“하린이는 어디까지가 목표야? 저번에는 A급에서 멈춘 것 같던데 여명급··· 할 거야?”
“으음······ 노력은 해보겠는데 개체가 어떤 개체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대형종이라도 나오면 상성이 너무 안 맞으니까요.”
“하긴, 그런 건 천하 걔가 특이한 거지.”
그렇게 그녀들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서히 마력을 가다듬으며 상태를 점검했고, 이내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아리엘씨! 힘내세요!! 아자아자 화이팅!
-아씨 깜짝이야.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관중석을 지나던 순간 옆에서 들려온 응원의 외침에 아리엘은 잠시 눈을 깜빡거렸고, 이내 자신을 향해 으쌰으쌰 거리는 한 사람을 발견한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곳을 향해 고맙다는 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기쁘다는 듯 옆에 있던 친구의 팔을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지만, 그녀들은 그 모습을 뒤로하며 걸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아리엘은 그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도 방금까지는 개인전에 대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쌓아온 축언은 오로지 협력전에서 유천하를 이기기 위해서 준비한 패였고, 아무리 일부라 할지언정 이곳에서 힘을 소비했다간 내일 협력전 경기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은 대충하면 안 되겠다- 그녀는 조금 전 들려온 응원을 되새기며 다시금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최대한 열심히 해봐야겠네.’
자신이 아리엘 화이트인 이상,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를 내비치는 이상, 자신은 그에 최대한 부응해줄 수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고, 그건 지금 이 순간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백색탑- 시험장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아리엘은 복잡했던 심경을 한순간에 모두 비워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진지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개인전에 돌입했다.
***
시야를 가득 메운 오색찬란한 빛.
그 빛무리가 서서히 사그라듦과 동시에.
“사고가속”
[마수가 생서어어어어어어어어······.]
아리엘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정신 속에 온몸에 자리 잡은 마력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극한으로 느려지기 시작한 세계.
그 사이에서 흘러가는 마력의 흐름.
“사고분할. 제어강화. 심상구축. 증폭.”
지난 한 달간 매일같이 쪽잠을 자며 쌓아온 축언의 업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고스란히 실려 아리엘에게 평소보다도 더 거대한 염원의 밀집을 선사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
“······.”
점점 차갑게 벼려지는 정신을 느끼며 아리엘은 다시, 지난 한 달간의 시간 동안 연습해왔던 대로 마력의 흐름을 조율해보았다.
분명 그건 어지간한 마법사를 데리고 와도 대부분은 난색을 보이고 물러날 만큼의 세밀한, 그러면서도 대규모 마력 운용이었지만, 제대로 된 지식보다 마력을 다루는 법을 먼저 깨우쳤던 그녀에게 마력의 제어는 그 무엇보다 익숙한 일에 불과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천하에게 그리 장담한 이상, 그리고 그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이상,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기대를 보내오는 이상. 그녀로서도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지난번 기록에선 16분이나 걸렸던가?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비록 그녀가 유천하처럼 1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수호자급을 토벌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또한 그때의 결과도 유천하의 등천에 자극받아 며칠 밤을 새워서 축언을 쌓았던 결과였지만, 그렇다 한들 그녀로선 한번 마음을 정한 이상 유지에 만족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렇기에.
“세계동조.”
우우우우웅-!!
휘몰아치던 마력이 그녀와 공명한다.
물론 반강제적인 행위였고, 편법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쌓아온 축언과 정신력, 그리고 제어력만으로 찍어누른 그녀는 그렇게 천천히 정신의 고삐를 움켜쥐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생각했다.
루타텔- 그녀의 아빠는 유천하를 통해 승천제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말··· 별거 아닌 한마디.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입에서 그 가벼운 한마디가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루타텔이 그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 자신도 충분히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보여줘야만 했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오고 있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이제는 마냥 어린아이처럼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자신도 침식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
이미 자신과 같은 또래인 유천하가 그와 같은 전장에 서서 맞서 싸웠다. 그리고 인정을 받았다 한다. 자신은 이제껏 계속해서 그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멍하니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당연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생 뒷모습만 바라보고 싶진 않으니까.”
다른 누군가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언정 그건 싫었다.
자신도 유천하와 같은 곳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곳에 서고 싶었다.
그의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시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언젠가는 그녀도 그렇게 되고 싶었으니까.
그렇기에 아리엘은 지난 한 달간 승천제를 준비해 왔다. 항상 걱정 속에 외면했던 루타텔이 그녀에게 말을 건네왔으니까. 그리고 이미 자신의 목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룬 친구가 그녀의 옆에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흘러나오는 마력이 세계에 녹아든다.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말이 새어 나온다.
그와 동시에 몰아치던 마력은 일정한 형상으로 조율되며 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그리고.
아리엘은 지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오로지 그들과 같은 곳에 서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