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20화 (120/205)

기적의 세대 (1)

개막식이 모두 끝난 뒤- 현재 두 명의 승천자는 3학구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승천자의 위상이 위상이었던 만큼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무척이나 많았지만, 이제 겨우 승천제의 1일 차가 시작되었던 만큼 두 사람은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나중으로 미루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3일이란 시간은 충분히 길었고, 그들은 그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했으니까.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3일은 조금 아닌 것 같지 않아? 이거 너무 시간이 아까운데. 그냥 마지막 날에 돌아오면 안 되나?”

“어쩔 수 없지. 이미 결정된 일이니.”

“쯧. 그놈의 휴식은 무슨. 이런 데 붙잡아놓고는 어차피 그런 일이나 시킬 거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금 어이가 없네.”

“아크샤 님이 발의하신 일이다.”

“알아. 그나마 아크샤 말이라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검제나 네가 제안한 거였으면 그냥 무시하고 침식영역으로 달려갔을걸?”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툴툴거리던 나르화리얀은 그 말과 함께 다시 히죽거렸고, 루타텔은 그저 담담히 그 말을 흘려넘겼다.

그러자 나르화리얀은 잠시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뭔가 떠올랐다는듯 미소와 함께 한 가지 질문을 꺼내왔다.

“그나저나 아까는 어땠어?”

“······아까?”

“개막식에서 얼추 훑어봤을 거 아니야. 어차피 3일 동안 눌러앉아 있을 거 그냥 멍하니 있을 생각은 아닐 텐데? 소감 좀 말해봐.”

그 말에 루타텔은 피식- 웃어 보이더니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대답을 돌려주었다.

“훌륭했지. 기량도, 마음가짐도, 다들 생도로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더군.”

“그래? 뭐, 그렇긴 하지. 사실 실력은 하도 현장에서 뛰는 놈들만 봐서 그런지 감이 잘 안 온다만, 마음가짐은 좋아 보이더라 다들.”

“당연한 말이지. 여기는 등천회랑이니까.”

루타텔은 그 말과 동시에 나르화리얀을 보며 잠시 머릿속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혹시 등천회랑에는 처음 오는 건가?”

“응? 아, 예전에 언제냐. 30년 전? 초기에 잠깐 1학구인가 거기에만 들려본 적 있긴 한데 이렇게 안까지 들어와 생도들을 직접 본건 처음이긴 하지. 애초에 내가 여기 다녔던 사람도 아닌데 올 일이 뭐가 있겠어?”

“그렇긴 하겠군.”

사실 매년 열리는 승천제의 문제도 있고, 기본적으로 등천회랑 자체가 유망주들을 양성하는 곳인 만큼 어지간한 공략자라면 이곳에 몇 번쯤 방문한 경험이 있을 터였다.

애초에 회랑이 설립된 지도 벌써 40년.

그런 만큼 당연히 최선두 공략자의 대부분은 등천회랑 출신이었고, 승천자 중에서도 등천회랑 출신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르화리얀만큼은 예외였을 뿐.

공략자로서의 성향도 성향이지만 나르화리얀의 존재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으니 어찌 보면 저게 당연한 일이었을 터였고, 그렇기에 루타텔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이번엔 나르화리얀이 되물었다.

“넌 어떤데? 루타텔 너도 여기 다녔었나?”

“아니, 나는 조부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회랑도 아직 초창기라 제대로 체계가 자리 잡히기 전이었으니까.”

“뭐야, 결국 둘 다 똑같네 그럼. 쯧.”

“······이곳에 다닌 게 아닌 거지 방문 경험마저 없는 건 아니다. 가끔은 너도 이곳에 들려보는 걸 권하지. 굳이 승천제 같은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다들 오늘 같은 마음가짐을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루타텔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나르화리얀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물끄러미 루타텔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담담한 목소리.

“그런 녀석이 왜 지 딸 보러는 안 갔데.”

“······.”

물론- 갑작스레 비수처럼 찔러진 말에 루타텔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나르화리얀은 그저 이죽거렸을 뿐이었다.

“그간은 바빠서 그렇다 쳐도, 오늘은 시작 전에 얼굴 한번 보러 가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잖아? 아니면 개막식이 끝난 뒤라던가.”

“그야 우선은 이것부터 해······.”

“변명은. 무서우니까 안 만나는 거면서.”

분명 입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하는 나르화리얀의 눈빛만큼은 무척이나 잔잔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다른 애들이 나한테 부탁하더라. 등천회랑 가는 김에 너희 좀 신경 써달라고.”

“도대체, 누가.”

“모두, 이 멍청한 녀석아.”

“······.”

작게 한숨을 내쉬는 루타텔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르화리얀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뭐, 남의 가정사에 깊게 신경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는 너무 무신경해. 오죽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걱정할까.”

“······.”

“아까 연설 때 걔 표정 봤어? 난 네가 아리엘 그 아이부터 만나보자 할 줄 알았는데.”

“아리엘은··· 천천히 만날 생각이다.”

“왜. 부담스러워서, 아니면 부담될까 봐?”

“······서로에게, 둘 다라고 하지.”

조금 착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두 눈을 감는 루타텔의 모습에 나르화리얀은 작게 고개를 내젓고는 그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나야 당연히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애들 얘기 들어보면 그럴수록 오히려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더라.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이대로 애가 다 클 때까지 계속 그러면 나중에 가선 진짜 한마디도 못 하게 된다 너?”

“······.”

“아, 뭐 어쩌면 이미 다 컸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 예전에 봤을 땐 진짜 땅꼬마였는데 언제 그렇게 컸는지······ 참 인생이란.”

“······아리엘도 많이 크긴 했지. 이젠 더는 마냥 아이라고는 못하겠을 정도니까.”

“그래 잘 자랐더라. 외모야 어릴 때부터 워낙 예쁜 상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마력의 기세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났어. 마력 쏘아 보낼 때 보니까 제어력 하나만큼은 어지간한 애들은 상대도 안 되겠던데?”

자연스레 흘러나온 자식의 칭찬에 루타텔의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조금 꿈틀거렸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근래 축언을 더 열심히 쌓은 것 같더군.”

“솔직히 말해서 생도가 잘나 봤자 아직 꼬맹이들이란 생각이었는데, 몇 명 정도는 당장 현장에 던져놔도 잘할 것 같더라. 특히 1학년. 거기 좀 몰려 있던데 원래 이런 건 고학년일수록 실력이 높아야 하는 거 아니야?”

“가끔··· 이런 경우가 있긴 하지.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재능마저 몰려드는 경우가.”

루타텔은 그 말과 함께 조금 전 개막식에서 목격했던 광경을 되새겨 보았다.

그 나이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정련된 마력과 기세를 그 속에 품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던 아이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유독 눈에 띄었던 몇 명의 아이들을 말이다.

“등천자하고도 어떻게 해볼 만하겠다 싶은 애가 3명에, 어지간해선 이기겠다 싶은 놈 1명. 하지만 역시 제일 눈에 띄는 건······.”

“유천하. 그 아이겠지.”

“그래. 바로 그 녀석.”

물론- 다른 아이들도 분명 뛰어나긴 했다.

특히 상위권 유망주인 아이들은 세간의 소식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그들조차 지나가다 뉴스에서 이름 한 번씩은 들어본 바였고, 당연히 그중에서도 실제로 보니 확연히 눈에 띄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유천하.

그 기가 찰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분명 직접 본 게 고작 몇 주 전이었는데··· 대체 재능이 말도 안 되는 건지, 아니면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기세가 그때하고도 또 다르더라. 대체 뭐 하는 녀석 이래 걔는.”

“······재능도 있고, 마음가짐도 있고, 어찌 보면 그럴만한 인과도 갖추고 있는 거겠지.”

“하긴, 너도 저번에 봤을 때 꽤 요란하게 인사했다며. 첫인상도 꽤 좋았나 보네?”

“나쁘지는 않았지. 아니, 좋았다 확실히.”

그날 보여줬던 기량도, 판단력도,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을 이겨 먹겠다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 마음가짐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루타텔 저 자신의 감으로 함부로 논할 만큼 승천의 업이 가벼운 건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 유천하와의 첫 만남 속에서 그 아이가 언젠가는 승천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분명 더 빠른 속도로 말이다.

“어찌 보면 녀석이야말로 이번 승천제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아이라 봐도 되겠지? 실력으로 보나, 가능성으로 보나.”

“의견에 동의한다만, 마음가짐은 다른 아이들도 분명 나쁘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될 정도야.”

“뭐, 그렇긴 했지. 그러니까 우리가······.”

탁-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그들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걸 깨달았고, 이내 천천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지금 여기에 와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들의 앞에 세워져 있는 백색의 기둥.

두 사람은 거대한 탑을 올려다보았다.

***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탑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의념을 다시 거둬들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허공에 띄어두고 있던 가상의 검형을 그대로 다시 풀어낸 것에 불과했다. 물론 이제는 기세가 그리 자주 새어나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 한들 아직 완벽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래도 근래 수련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지 빠르게 가다듬어져 간다는 느낌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오, 개인전 1위님 오셨다.

-응? 아 유천하··· 하긴 1위는 당연하겠네.

-쟤는 중간고사에서도 스피드런 찍었잖아. 다른 애들도 개인전은 내려놨다더라.

-마르네 애들도 협력전만 노린다던데.

-어? 그래도 기록경신은 할 거랬음.

······이걸 역시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개인전 시합이 치러지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저들끼리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확실히, 생각했던 대로 다들 시합 결과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

그래도 아리엘이 말한 것처럼 개인전 시합에서까지 이겨보겠다고 타오르는 아이들은 딱히 없는듯싶었는데- 협력전처럼 특성의 조합으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모를까, 이런 건 순수한 역량이 중요한 판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에 불과했다.

아니, 사실 중간고사 실기시험 방식이 개인전 방식과 동일하지만 않았어도 상위권 정도는 도전 의식을 불태웠었겠지만··· 그건 이미 생도들 사이에선 유명해진 일이었을 뿐.

그렇기에 아리엘도 사카타도 그 외의 다른 녀석들도 모두 개인전은 나와 경쟁하는 것보다는 각자 중간고사 때의 개인 기록을 경신하는 게 목표라고 들었고, 나 또한 아이들보단 다른 데 신경이 쏠리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내 시야가 바라보고 있는 곳.

[크르륵··· 크라아아아!!]

[그만 좀···! 뒈져라!!”

그곳에 위치한 거대한 스크린에 말이다.

‘생각보다도 더 본격적이네.’

널찍한 공터 한가운데에 있는 기둥.

그 거대한 백색의 탑은 평소였다면 허허벌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겠지만, 지금 그 주변에는 시험 때처럼 이런저런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지난번엔 없던 거대한 스크린마저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전선과 마력의 흐름은 그대로 주변에 있는 기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 결과 원래라면 엿볼 수 없었던 내부의 풍경도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그대로 현실의 미디어로 송출되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게끔 말이다.

[---------------------------------------------!!]

[아, 개시끄럽네······ 진짜!!]

-와···! 저걸 저렇게 피하네? 누구시지?

-왜 있잖아. 창월에서 인턴 뛴다는 선배.

-아 그분? 맨날 모자 쓰고 다녀서 몰랐네.

-저 정도면 1년 안에 등천자도 찍겠다.

지금은 아마 3학년 생도들의 개인전 시련이 치러지고 있는 중이었는데, 수십 개의 스크린 속에선 각각의 생도들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따로 재생되고 있었고, 그건 다시 탑에 붙은 스크린뿐만이 아니라 워치나 웹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게 송출되는 모양이었다.

-아 CEC는 왤케 중계 버퍼가 심하냐.

-연맹 공립 채널이 아니니까 글치 멍청아. 공식 채널 놔두고 왜 해적 채널을 보고 있음.

-저번에 댓글로 드립쳤다가 차단당해서?

-아······ 멍청이가 아니라 등신이었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네. 실망이다 너.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방문객과 생도들은 탑 자체에 붙은 스크린을 보기보다는 편하게 구경하라고 설치된 관람석에 앉아서 구석에 설치된 스크린을 보거나, 각자 소지하고 있는 기기로 방송을 엿보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신기하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광경이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뿐.

백색탑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따로 녹화할 수 있다는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또 그걸로 우리들의 모습을 내보낸다는 게 조금 미묘했다.

물론,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캬! 와, 특성 뭐야. 바람인가? 원소계열?

-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인데?

-그러니까 초인이고 각성자라는 거지.

-생도분들은 저런 게 가능하니까 저런 나이에 마수랑 싸운다고 고생하시는 거잖아.

승천제의 의의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

비록 지금 당장은 승천의 업을 논할 만큼 뛰어나진 못할지언정, 그래도 인류를 위해 싸워나가며 언젠간 그 지고한 영역에 도달하겠다는- 일종의 다짐을 보여주는 축제였다.

물론 승천제 자체는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만큼 초인과 관련된 시설이 아니라면 그저 모여서 공략자들을 응원하는 게 전부였지만, 등처회랑처럼 초인과 관련된 시설이라면 각자의 기량을 뽐내는 게 관례긴 했다.

우리들의 기량이 이렇게나 탁월하다.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확고하다.

그러니- 우리를 믿고 희망을 잃지 마라.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축제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었다.

“······.”

그런 만큼 어린 시절부터 매년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느끼며 자라온 이 세계의 사람들에겐 승천제는 어찌 보면 전생의 올림픽과도 같은 느낌일 테고, 그 의도 자체가 조금 더 현실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는 만큼 이 광경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긴 했다.

당연히 나로서야 그냥 그렇구나 싶을 뿐이었지만, 이곳의 시민들에겐, 그리고 아이들에겐 승천제는 무척이나 중요한 행사일 터.

‘하긴··· 그러니까 그렇게들 불타오르지.’

하물며 등천회랑은 희망의 등불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갖고 있는 만큼, 승천제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또 기대하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매년 수많은 사람이 생도들의 시합을 구경하러 온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다던 말도 이제는 조금 더 명확히 실감이 나는 기분.

단순히 같은 생도인 내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마음도 꽤 크게 작용하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물론.

[잠시 후 1학년 개인전 A조 시합이 진행될 예정이니, 해당 생도분들께서는 모두 백색탑 입구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그렇다 해서 살살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물론 내가 갑자기 승천제의 의의를 지키고 싶어서 그러겠다는 건 아니었고, 단순히 방송으로 송출되니 사람들에게 잘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유가 있다면, 오직 하나뿐.

-뭐 그런 걸 물어. 이유야 하나밖에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네! 꼭 보여드릴게요. 반드시요. 꼭이요!

실력의 격차를 알면서도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듯이 도전해오는 아이들의 태도가 즐거웠고, 최선을 다해 덤비겠다는 이들에겐 나도 진지하게 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런 마음가짐으로 도전 의사를 밝혀온 이상 설렁설렁해 봤자 실례밖에 더 되겠는가?

물론 제대로 노리고 있는 무대는 협력전인 듯싶었지만, 나로서도 아이들이 승천제에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전부 최선을 다해줄 생각.

그 결과에 아이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되든 간에, 나는 이번 승천제에서 그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줄 예정이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다소 강한 자극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올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분명 패배 정도는 얼마든지 딛고 혼자서도 잘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1학년 개인전 시합 A조 준비 바랍니다.]

나는 그런 생각 속에 탑을 향해 걸어갔다.

***

승천제 1일 차, 개인전이 진행되는 곳.

물론 생도들의 숫자가 숫자인 만큼 총 다섯 군데로 나눠서 진행되는 모양이었지만, 그렇다 한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건 매한가지.

그리고.

“와······ 이제 점심 좀 지났는데 사람들 진짜 많네. 등천회랑 승천제는 원래 이래?”

“당연하지. 등천회랑이 괜히 등천회랑이겠냐 그럼? 이것도 1일 차라 이 정도지, 여러 명이 싸우는 2일 차나 3일 차면 진짜 숙소는커녕 입장해서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걸.”

“어후, 난 그냥 마이너 리그나 봐야지.”

“인마. 그걸 마이너 리그라 표현하면 다른 기관 생도분들한테도 실례지 이 자식아. 그분들도 다 공략자 되려고 노력하는 건데.”

“음? 아, 아 말실수 말실수. 실례했네.”

그중에는 당연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천회랑의 승천제에 방문한 사람도 존재했다.

“맨날 승천제는 웹 중계로만 봐서 그런지 이상하게 참 스포츠 경기 같단 말이지?”

“참나······ 뭐, 승천제야 비슷하긴 하지. 어찌 보면 그런 느낌으로 개최되는 거니까.”

“그렇지?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는 청년.

항상 승천제의 연휴 기간에는 집에서 뒹굴거리거나 인터넷으로 소규모 육성 기관의 시합만을 즐겨봤던 그는 친구의 권유에 처음으로 직접 승천제 현장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등천회랑 승천제에 말이다.

“확실히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뭔가 분위기가 다르긴 하네. 인터넷 기사보니까 개막식에서 개쩌는 장면 하나 나왔다던데.”

“쓰읍······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그것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네 새끼만 아니었어도.”

“어허. 방에 처박혀있겠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와놓고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입감?”

“입감은 지랄. 가서 자리나 잡자.”

그렇게 한결 뒤늦게 회랑에 들어오게 된 그들은 북적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옆에 설치되어 있던 관람석으로 향했고, 그중에서도 백색탑의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주저앉았다.

“오. 여기 좋다 좋아. 딱 잘 보이네.”

“입구? 근데 어차피 볼거리는 내부에서 싸우는 모습인데 입구를 봐서 뭐 하게.”

“쯧쯧. 이래서 방구석 뉴비는 안 돼요. 시련에 입장하기 전에 긴장한 표정. 결의에 찬 얼굴! 그리고 힘껏 싸우고 나와서 힘이 풀린 모습으로 주저앉는 모습까지···! 크!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맛이 있는 거라고. 오키?”

“······이 미친 변태 새끼. 내 옆에서 꺼져.”

“옘병. 너도 보다 보면 똑같아질 거다.”

뭘 모른다는 식으로 되돌아온 대답. 하지만 청년은 제 친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당당한 말에 조금 게슴츠레한 눈을 떠 보였다.

왜냐하면- 녀석이 응원하는 유망주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네가 한 말에 17살짜리 여자애를 대입하면······ 이거 좀 손절각 아니냐?”

“······아니! 이 미친 새끼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시발?! 그런 의미 아니야 새끼야!!”

“네 워치 배경화면부터 바꾸고 말해.”

청년의 말에 남자는 광분하여 씩씩거렸지만, 그는 제 친구의 배경화면이 오로지 아리엘이라는 유망주로 도배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억울하다는 듯 항변해오는 남자.

“아니, 다 깊은 사정이 있다고 이건! 그리고 나도 아리엘만 응원하는 건 아니거든?”

“그럼 다른 유망주들도 똑같이 응원해?”

“당연하지! 이게 사람을 진짜 무슨···!”

“아, 그러면 저기 저 사람은 누군데.”

“저 사람? 어디, 아, 저기 저 사······ 아?”

그렇게 청년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남자는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곤 멍하니 입을 벌렸고,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이 미친 문찐 새끼 같으니.”

“응? 뭐야. 유명한 사람이냐?”

얘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표정으로 질문을 건네온 청년을 바라보았고,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니, 이 새끼 무슨 몇 달 동안 어디 산속에 처박혀있다 나왔냐? 유천하도 몰라?”

“엥? 그 저번에 등천했다는 사람?”

“그래 인마. 너 뭐야. 혹시 마인이냐? 아니, 요새 유천하는 마인도 다 알고 있겠다!”

“아니, 이름이야 들어서 알고 있지. 근데 생도 얼굴 하나하나 어떻게 알고 있겠냐?”

“이번 달 내내 어디를 가도 저 사람 뉴스랑 사진만 보일 정도였는데 도대체 어떻게 모르는지 내가 더 신기할 정도야 이 자식아. 너 SNS도 안 하더니 이번 달 내내 게임만 했냐?”

“오. 어케 알았냐. 나 이번에 승급했잖아.”

“······.”

자신의 친구가 이런 데 관심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청년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데리고 나오길 잘했다는 기분.

이런 시대에 살아가면서 공략자들에게 최소한의 관심도 없다는 건 그만큼 친구가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와 반대로 남자로선 그렇게 일상을 누리게 해준 이들에게 시큰둥한 저 태도가 여러모로 조금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넌 내가 책임지고 3일 내내 여기 처박아 둘 거다. 피곤하다고 튀기만 해봐.”

“······씁. 레이드도 돌러 가야 하는데.”

“응. 3일 동안은 닥치고 구경이나 해. 아, 마침 저기 들어가네. 봐봐. 유천하면 근래 유망주 중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니까, 싸우는 모습도 존나 간지나고 그럴걸?”

“글켔지···? 오! 들어간다.”

그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백색탑의 입구를 바라보았고, 그곳에 서 있던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빛에 휩싸여 사라짐과 동시에 바로 그곳을 중계하는 채널을 틀어보았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건 캄캄한 화면.

“이거 딜레이가 어느 정도랬지?”

“1분? 거의 그쯤 가깝다고 들었는데.”

백색탑과 현실의 차원이 다른 만큼 당연히 내부의 광경을 송출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지연되는 시간이 존재했고, 그렇기에 지금 막 입장한 유천하의 모습은 아직 화면에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야 할 터.

그렇기에 그들은 잠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송출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근데 등천자급이면 수호자급도 쉽나?”

“쉬울 리가 있겠냐. 찐 괴물들이네 그건. 그게 쉬웠으면 매년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겠냐고 이 새끼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래도 등천자 정도면 이기기는 하잖아.”

“그야 이기기는 하겠지. 근데 쉽다기······.”

그런데 그 순간.

“······엔······ 뭐야? 왜 다시 나와?”

“뭔 소리야 갑··· 어? 뭐야. 사곤가?”

아직 화면이 재생되기도 전에 탑으로 들어갔던 유천하가 다시 빛에 휩싸이며 밖으로 튕겨 나왔고, 그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시험장의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문제 없다는 것마냥 말이다.

“······?”

“······?”

그렇기에 그들은 물론이고, 유천하의 시합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의문이 가득 서린 눈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러가자.

바로 그 순간.

[서걱-! 퍼어어엉-!!]

뒤늦게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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