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19화 (119/205)

승천제 개막 (3)

[······이로써 준비된 예식행사가 전부 종료되었습니다. 앞으로 3일 동안 모두 축제를 기쁘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펑-!! 퍼펑!! 사회자의 말과 함께 하늘 위로 쏘아져 터져나가는 마력의 축포. 그렇게 장장 1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승천제의 개막식 행사는 열띤 환호성 속에 종료되었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짧게 끝났다는 느낌.

아니, 1시간이 짧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체감상 금방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막식이 하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보니, 처음에는 별 감흥 없이 서 있던 나도 축사부턴 상당히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는 했다만 일반적인 축제가 아니다 보니 확실히 예상보다도 더 진지하게 진행되었단 기분.

아, 물론.

-아, 좋았다 좋았어. 라이브 쩔었다.

-아씨, 이따가 또 공연한다는데 하필 우리 개인전이랑 겹친다. 나 진짜 찐팬인데.

-그럼 승천제 참여하지 마시던가요~

-헛소리 하고 있네. 참가는 하고 놀아야지.

그렇다 해도 우선 축제인 건 맞았기에, 마지막 축하 공연을 거치면서 아이들의 상태도 대부분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 상태였다.

처음 루타텔의 축사로 인해 고양되었던 분위기는 개회사와 생도들의 선서가 끝날 때까지만 그대로 유지되었고, 경건하게 가라앉아있던 분위기는 결국 마지막 순서인 축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다행히 처음의 활기찬 축제 분위기 그대로 다시 전환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던 생도들도, 지금만큼은 축제를 즐길 생각에 다소 풀어진 모양.

뭐······ 솔직히 말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직 성인도 안된 아이들에겐 아까의 진지했던 얼굴보다는 지금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가지 조금 신경 쓰였던 부분이 떠올랐다.

“······.”

아까 전, 루타텔의 축사가 끝난 뒤 이어졌던 개회사와 생도들의 선서. 그리고 그때 1학년을 대표해 선서했던 아리엘의 모습.

-저희는 침식 저항 초인양성 교육 시설, 등천회랑의 생도로서 세계 인류를 위하며 최선을 다하고 역량을 갈고닦아 부여된 의······

그 순간- 담담하게 공략자로서의 의무를 읊조리던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나는 아리엘의 목소리 속에서 미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언뜻 보면 긴장해서 그런 거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게 아니었을 뿐.

아까 전, 그녀는 아마 루타텔의 축사를 듣고선 조금 감정이 북받친 게 아니었을까?

루타텔의 축사 아닌 축사 속에는 그의 마음가짐이 담겨 있었고, 아리엘에게는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의 아버지도, 그가 한 말 자체도 남들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터였다. 저 모녀는 티를 안 낼 뿐이지 평소에도 서로를 무척이나 걱정하는 듯싶었으니 말이다.

아니, 사실 루타텔의 축사를 들으며 깊은 감흥을 느낀 게 그녀뿐만은 아니긴 했다.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진중하게 흘러나온 말 속에는 분명히 많은 세월과 진심이 녹아 들어있었고, 일생을 침식과 맞서 싸운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지켜보고 있던 이들에게 먹먹한 기분을 선물해주었으니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아, 승천자가 되고 싶다고?

-응. 아까 루타텔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들었더니 조금··· 기분이 심란하네.

-뭐······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건. 루타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침식이 끝날 때까지 우리도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 뭐.

아까 전- 묵념 뒤에 이어졌던 루타텔의 축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화인을 새겨놓았고, 축제에 앞서 들떠있던 생도들의 마음속에도 분명 기이한 열기를 지펴주었다.

물론 지금이야 대부분 원래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눈빛이나 들려오는 대화를 보면 지금도 어느 정도 여파가 남아있는 모양이었고, 그건 저 멀리서 심란한 얼굴을 한 채 서 있는 아리엘 또한 마찬가지였을 따름.

아무래도 심경이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가 잠시 아리엘과 루타텔에 대한 생각 속에 사열대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나는 관중석을 스쳐 지나가던 중 순간적으로 강렬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에 담긴 감정이 호기심과 신기함이었다면 정말 순수하게 호의만이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따가울 정도의 시선.

그 묘한 감각에 나는 곧바로 시선이 전해져온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아··· 봤다! 봤다 봤어!! 엄마!”

나는 그곳에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방방 뛰어오르는 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아이는 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여성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입을 벌려왔다.

그리고는 내게 밝은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양손을 훙훙 휘저으며 인사를 건네오는 작은 아이- 이제 한 7살쯤 돼 보이는 꼬마의 얼굴 위로는 격한 반가움이 서려 있었고, 그 옆에 서 있던 여성은 마찬가지로 반가움이 서린, 그러면서도 약간 난처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왜 저렇게 반갑다는 듯 인사를 하나 순간 의아했지만, 이내 그 모습에 한가지 기억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등천도시. 3월?”

내 입에서 흘러나온 되물음- 그러자 내 말은 들은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제 옆의, 그러니까 모친에게 의기양양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아 기억한다 기억한다! 거봐···! 내가 그랬짜나 우리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내가 저번에 오빠한테 사탕도 줬었단 말이야!”

“아니, 얘가··· 부끄럽게 엄마가 언제 안 믿었다고 그러니. 알았어 알았어. 쉿!”

사탕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날의 광경이 더욱 선명하게 기억났다. 평온과 여유가 어색해 심란했던 그 날의 순간도, 내게 인사를 건네오던 사람들의 표정도, 그 낯선 기분도, 그리고 저들의 앞에서 일어났던 상황까지도.

‘생각해보니 얼마 안 지났네.’

고작 두 달쯤 더 지난날의 일이었지만 그때와는 내 심경이 조금 달라져서 그런지 저 모습이 어째 조금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행렬에서 빠져나와 모녀를 향해 다가가 보았다.

“아! 왔다! 여기로 왔어! 저, 저 기억나요?”

“그래. 그때 받은 선물은 잘······ 먹었어.”

내 말에 아이가 다시 배시시 웃어 보였다.

“히히. 잘 먹었대, 그거 제가 아끼던 거였는데 회랑 오빠라서 특별히 드렸던 거에요!”

“아이참··· 얘 그렇게 말하면 오빠가 당황스럽겠다. 그리고 먼저 인사부터 해야지.”

“인사? 인사 아까 했는데에.”

“그거 말구, 여기 오고 싶다고 한 이유.”

“······아!”

아이는 모친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듯 입을 벌려왔다.

그리고는.

“그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를 향해 꾸벅- 배꼽 인사를 건네왔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감사에 순간 뭐라 대답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옆에 있던 아이의 어머니가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날부터 계속 생도분께 고맙다 인사하고 싶다고, 인사하고 싶다고 그랬었거든요.”

“······그런가요?”

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 속에 되물었다.

그러자 다시 부드러운 대답이 되돌아왔다.

“네. 그리고 사실······ 그건 저도, 아이 아빠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날 생도분 덕분에 테러에 휘말리지 않고 무사히 피할 수 있었잖아요? 정말 만약,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기분이에요. 저 하나면 모를까 딸아이도 있었으니까요.”

“오빠가 구해줬어요!”

“그날의 배려 덕분에 저희가 무사할 수 있었다 생각하고, 그래서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어요. 그때는 미처 경황이 없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드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래서 찾아와써요!”

“그러니 저도 인사드릴게요. 그날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원래는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이런 일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등천회랑이 개방되는 날을 기다리느라 힘들었네요.”

아이의 어머니는 그 말과 함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고, 아이는 이제 속이 후련하다는 듯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모녀의 반응에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잠시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난데없이 건네진 진심 어린 감사에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대놓고 티가 났던 걸까?

“아··· 혹시 저희가 갑자기 찾아와선 부담스럽게 한 걸까요? 불편한 건 아니시죠?”

“······어? 부담스러웠어요? 그랬어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던 모녀는 내 표정을 보고선 순간적으로 두 눈을 깜빡거렸고, 이내 혹시 자신들이 실례를 끼친 거냔 표정으로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건네왔다.

그에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아니야. 그냥 어색해서 그래.”

“정말요···?”

“그래. 인사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야.”

“그러시다면 다행이네요. 인사를 드리려고 와놓고선 정작 폐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조심스레 말을 건네오는 모녀의 말에 나는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부분을 입에 올려보았다.

“······너무 조심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말 정도는 편하게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참고로- 만상세계의 번역은 사소한 어조나 느낌, 말투까지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편.

그렇기에 나는 아까부터 지나칠 정도로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오는 아이 어머니의 태도가 조금 신경 쓰였고, 그런 내 대답에 여인은 손사래를 치며 작게 웃어 보였다.

“아니에요. 당연히 조심해야죠. 생도분은 저희 가족에겐 영웅이나 다름없는걸요? 테러를 저지해주신 것도, 저희가 미리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것도, 모두 생도분, 아니 천하씨가 해주신 일이었어요.”

“······.”

“물론 생도분들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희는 덕분에 안 좋은 일을 피할 수 있었고, 그건 정말 몇 번을 감사드려도 부족한 일이에요. 만약 여기에 남편이 있었더라도 똑같이 말했을 거에요.”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조금 미묘했다.

테러를 저지한 건 원작의 사건이 관련돼있다는 이유에 내 기분이 더해진 결과였고, 이들 모녀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건 그저 그날 받은 친절의 대가를 돌려준 것에 불과했다.

그저 내가 받은 알사탕 하나만큼의 친절.

하지만 그때와는 마음의 기질이 조금 달라져서 그런 걸까? 이미 머릿속에서 잊어버렸던 일로 이런 상황을 겪게 되니 그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기분이 심란하단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드러났던 모양.

“아! 그런데 혹시 저희가 생도분 시간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닌가요? 지금 다들······”

“아니요. 괜찮습니다. 개막식도 끝났고, 개인전 시련은 오후에 있을 예정입니다.”

“아이 참··· 일정이 있긴 있으시네요. 모처럼의 축젠데 좋은 추억 만드셔야죠. 저희는 인사드린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

아까부터 내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던 모양인지 아이 어머니는 내 얼굴을 살피면서 그렇게 말해왔고, 그 말에 잠시 고민해본 나는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딱히 더 할 말도 없었고 말이다.

“······예.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다음에 뵐 때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맞아요. 나중에 또 인사하러 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선 나는 퇴장 중인 행렬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러자 이내 얼마 안 가 뒤에서 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그거 안했다···! 오빠 잠깐만요!”

“그거? 아, 맞네. 그걸 안 했네.”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한 목소리.

그에 나는 다시 등을 돌려 모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벌려오는 모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당신의 의무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싸움에 평온을 기원합니다.”

“당신의 의······ 어······ 감사드립니다!”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묵례를 건네오는 모습에 나는 걸음을 멈춘 채 모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이내 그들은 고개를 들어 올리곤 이젠 정말 됐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기에.

“······감사합니다.”

나 또한 짧게 묵례를 건네 보인 뒤, 다시 빠르게 뒤돌아 그곳을 빠져나왔을 뿐이었다.

***

행렬을 빠져나온 뒤- 다시 평소의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해 화이트라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조금 전의 일을 되새겨보았다.

3월에 겪었던 일과 비슷한 경험이었지만 어째 감흥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

물론 어색한 건 둘 다 마찬가지긴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느낀 기분이 불쾌한 거북함이었다면, 방금 느꼈던 기분은 다시 미묘한 간질거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것도 일종의 심마가 아닌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소리군.’

그렇게 멍청한 생각은 빠르게 털어내버린 뒤, 나는 변화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이 세계에 적응했다는 것도 그 이유일 테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조금씩 여유를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게 더 큰 요인일 터. 분명 여유 자체를 거부했던 그때의 나와 여유를 받아들이기로 한 지금의 내게는 큰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를 인지하는 건 온전한 ‘나’의 관점.

그렇다면 결국- 스스로의 인식이 뒤바뀐다는 건 하나의 세계가 통째로 변화한다는 걸 의미했고, 어쩌면 무림에서 살아왔던 소교주 유천하는 근래에 와서야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말······ 참으로 새삼스럽게도 말이다.

왠지 모르게 자꾸 심상의 매듭이 간질거리는 기분이었고, 당장에라도 검을 휘두르며 이 번민을 검 끝에 실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탕 또한 떠올랐다.

하지만.

“아까는 되게 멋있던데?”

나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하던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부러우니까 하는 소리지.”

“······도대체 뭐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긴? 다 봤는데 무슨.”

바로 그녀- 아리엘의 얼굴을 말이다.

“우리 천하······ 여태까지 대단하다 대단하다 하긴 했어도, 부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들었는데, 너 아까는 쪼오금 부럽더라?”

그녀는 능청스러우면서도, 조금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옆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에 끝나고 나올 때. 그 사람들이 등천도시에서 네가 구했던 사람들인 거지?”

“아··· 아까? 뭐, 그렇긴 하지.”

“그냥 유명해서 인사를 듣는 게 아니라, 생도라서 듣는게 아니라, 직접 네 손으로 구해서 그런 인사를 들었다는 게 대단해. 정말.”

아무래도 아리엘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부러워 하는 것 같았고, 나는 답지 않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아리엘의 모습에 조금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아까 마음이 심란하긴 했던 모양.

“뭐가 부러워. 너도 언젠가는 듣게 될 말인데, 솔직히 지금 당장도 들을 수 있잖아.”

“······치. 그거랑은 느낌이 다르다구.”

그렇게 평소보다 한껏 풀어진 아리엘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말을 듣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행동하다 듣는 거랑, 정말 불가피한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해줘서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거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란 말이야.”

“적어도 도움을 받은 사람한테는, 둘 다 구해줬다는 사실 자체는 똑같지 않을까.”

“아니야··· 전혀 다르단 말이야. 정말루.”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어째 아리엘보다는 이하린에 가까운 소극적인 모습이었기에 나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 의문을 느꼈는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가 질문을 건네왔다.

“천하 너는 누구한테 구해진 경험 없어?”

“구해진 경험···? 아예 없지는 않지.”

“그럼 넌 그때 무슨 기분을 느꼈는데?”

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무림에서의 기억을 되새겨보았고,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수치스럽다는 생각.”

“······.”

그 순간- 아리엘은 나를 바라보며 굉장히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고,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는 정말 언제나 한결같이 유천하구나?”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갑자기.”

“그냥. 대단한 것 같아서 그렇지 뭐.”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잠시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입을 꾹 다물었고, 우리는 그렇게 잠시 말없이 공원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짐작되었던 나는 그녀에게 되물어보았다.

“그럼 너도 경험이 있기는 있다는 거네.”

“응? 아, 있지 당연히. 이런 시대에 그런 경험 한번 없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걸? 서로 돕고, 도와야 하는 시대잖아. 다른 누군가한테 구해지는 경험도 몇 번쯤은 겪게 돼지.”

“······.”

“애초에 나는······ 당장 두 달 전만 해도 너랑 하린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었는걸?”

아리엘은 그 말과 동시에 다시 기가 죽은 듯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당당히 선전포고를 했던 그 날 이후로 아리엘은 항상 결의에 가득 찬 모습을 보여줬던지라, 나로서는 이렇게 갑자기 다가와서 쭈굴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물며 그녀가 이런 태도를 내비치는 건 원래라면 보기 힘든 모습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개막식 때 멘탈이 더 흔들렸던 모양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는 반대의 질문을 건네보았다.

“그럼 누군가를 구해줬던 경험은?”

“구해줬던 경험? 그것도 당연히 있기야 하지. 그때의 경험이··· 참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그래서 여기 와있는 이유도 있으니까.”

그러자 역시나- 잠시 무언가를 되새기듯 미간을 찌푸리던 그녀는 이번 대답에는 조금 기가 되살아났는지,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한번 더 질문을 꺼내봤다.

“그때가 언젠데. 어떤 상황이었어?”

“어? 너가 웬일로 이런 걸 궁금해 하네.”

아리엘은 조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는 했던 모양.

“그때가, 내가 처음 특성을 개화했었을 때인데 5살이 되던 해··· 6월이었나? 갑자기 지내던 곳 주변에서 역류가 터져버렸었거든?”

“······.”

“난 그때 한창 마력 수련을 하고 있었을 때라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었는데, 하필 그때 역류가 터지고, 마수가 뛰처 나오고, 그리고는······ 눈 앞에서 마수가 사람을 집어삼키려고 하더라구. 그래서 어린 마음에 무섭기도 하고, 눈앞에서 누가 죽는 게 싫기도 해서 막막 마력을 담아 소리치다 보니까······”

“특성을 각성하게 된거야?”

“응! 물론 그때는 각성한 줄도 모르고 그냥 마구잡이로 소리친 거였지만, 정말 약하고 별거 아니었지만, 마수가 저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양손을 휘휘 저으며 설명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째 생각보다 더 신나 보였다.

“바람 자체는 약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덮치려 했던 마수가 슝- 날아갔고, 그사이에 끼어든 공략자가 우리를 구해주고, 나 때문에 살았던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응.”

“······.”

“사실 그전에는 솔직히 공략자들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감흥이 없었거든? 아니, 애초에 5살짜리 꼬마애가 뭘 얼마나 알았겠어.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일을 겪고, 내 손으로 누군가를 구하고, 그렇게 모르는 사람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까··· 그게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너무 뿌듯했던 거 있지?”

“뿌듯할 만하지. 그 정도면.”

“그치? 그 정도면 뿌듯해도 되는 거지?”

내 반응에 아리엘이 해맑게 웃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 그때 그 기분을 못 잊어져서 공략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긴 하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줬을 땐 그게 너무 고맙고 멋지다고 생각했고, 내가 누군가를 구해줬을 땐 다른 누군가를 구해냈다는 게 너무 기쁘고 뿌듯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TV 너머의 공략자들이 엄청 대단해 보이더라구.”

“······.”

“겨우 한 명을 구했을 때도 이렇게 뿌듯했는데,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사람들처럼 수많은 사람을 구해내면 어떤 기분일까 싶기도 했고, 그리고······”

하지만 이어지던 그녀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갑자기 너한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래? 오랜만에 어렸을 때 생각해서 그런지 기분이 이상하네.”

“······.”

“아! 그러고 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아 우리? 천하 너는 숙소 들리려고 가는 거였지? 나는 개인전 준비하러 가봐야겠다. 애들이랑 미리 마력 좀 풀어놓기로 했거든.”

그렇게 아리엘은 깜빡했다는 듯 두 눈을 깜빡거렸고, 그리고는 자연스레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왔던 곳으로 뒤로 돌아섰다.

“그럼 이따 봐 천하야! 오늘··· 은 조금 힘들 것 같구, 내일 밤에는 같이 놀아줄게!”

“필요 없어.”

“그래그래! 내일 협력전 끝나고 나면 하린이랑 같이 축제 구경이나 하러 가자!”

“······.”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굉장히 어색해 보이는 몸놀림으로 도망치듯 걸어 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다시 사탕이 떠오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닌 모양.

그렇기에- 나 또한 묘한 기분 속에 다시 원래대로 숙소를 향해 걸어 나갔을 뿐이었다.

축제가 끝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억지로라도 아리엘을 루타텔 앞에 데려다 놓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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