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17화 (117/205)

승천제 개막 (1)

20세기- 그 시대는 격변의 시기였다.

서구 열강의 침탈로 시작된 세계의 변화와 그로 인해 시작된 무림의 몰락. 음지에 숨어들어 있던 여타의 초인들도 그 흐름 속에 조금씩 자취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곧이어 전 세계는 거대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결과 세계는 피폐해졌고, 미처 여파가 회복되기도 전에 거대한 이변이 발생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세계침식, 그리고 세계승천.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인류의 역사는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갑작스레 솟아나 잿빛의 재앙은 그림자의 해일을 토해내며 전 세계를 휩쓸었고, 전쟁으로 소모되었던 인류는 쏟아지는 마수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음지에 숨어있던 초인들까지 모두 전면에 나선 뒤에야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 음성은 세계에 울려 퍼졌다.

[만상세계가 세계를 주시합니다.]

[세계가 승천합니다.]

세계를 가로지르며 울려 퍼진 목소리.

그와 동시에 곳곳에 솟아난 사색의 탑.

백색의 탑은 필요한 기회를.

주색의 탑은 잠재된 능력을.

황색의 탑은 올바른 시련을.

청색의 탑은 새로운 희망을.

그렇게 사람들은 사색의 탑을 통해 새로운 힘을 손에 거머쥐었고, 기존의 인류가 쌓아온 마법, 무공, 초상능력 등- 수많은 이능에 새로운 가호까지 더해지고 나서야 인류는 비로소 침식과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계속되는 심연의 침식과 잿빛의 재앙.

그리고 그 속에서 쌓여가는 인과의 업.

이전까지의 상식이 부정당하고, 시대의 흐름이 변화하는 과도기의 가운데-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의 각성자가 탄생했고, 죽었으며, 그 속에서 새롭게 등천자들이 나타났다.

그렇기에 인류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침식은 무엇이며, 만상세계는 무엇일까.

등천은 무엇이며, 다시 승천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침식을 끝낼 방법은 무엇인가?

세계승천은 분명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으나 확신할 수 없는 희망이란 밤하늘의 별처럼 허망했을 뿐이었다. 침식에 대해, 만상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인류에게는 모든 것이 미지의 두려움에 불과했으니까.

분명 수많은 희생 끝에 잿빛탑을 무너트려도 그사이에 더 많은 재앙이 솟아났고, 쉴새 없이 새로운 초인이 탄생해도, 다시 끊임없이 그들은 생명을 불태우며 스러져나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심연의 탑으로 부터 시작된 침식의 파동은 심연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스러지지 않았고, 하물며- 당장 세계 곳곳에 솟아난 멸화급 탑만 해도 국가가 나서야 할 재앙이었으니, 도대체 어찌 심연을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인류에겐 항거할 수 없는 절망이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다가오는 몰락은 필연에 가까웠고, 닿을 수 없는 희망이란 밤하늘에 별처럼 덧없는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덧없을지라도 희망은 찬란했고,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주었으니.

세계침식이 시작되고 2년이 지난 시각.

생명이 모두 스러진 잿빛의 대지 위에서.

[새로운 승천자의 탄생을 축복합니다.]

그 목소리는 그렇게 세계에 울려 퍼졌다.

스스로를 희생하며 심연에 뛰어들었던 위대한 초인의 이름이 인류에게 각인됨과 동시에 솟아났던 세 개의 심연 중 하나가 기능을 잃고 무너졌으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초의 희생을 본받아 새로운 승천의 목소리 또한 연이어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걸 위해 누군가는 제 목숨을 바쳤고,

다시 누군가는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그 결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인류 역사에 처절한 족적을 새겨버린 멸망의 가능성에도 그렇게 끝이 찾아오게 되었다.

불가능했던 위업을 달성해낸 이들 덕분에,

심연 속으로 나아간 이들 덕분에 말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일개 사람의 몸으로, 어찌 육신만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을까-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이 가진 한계였으니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심연에 맞서는 것 또한 불가능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평범한 잿빛탑 하나마저 절망스러운 재앙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에 도전했기에 등천자였고,

한계를 넘어 도달했기에 승천자였으니.

인류는 그렇게 그들이야말로 세계에 주어진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세계는 희망이 시작된 순간을 간직해 앞으로도 그 등불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최초의 승천자가 탄생했던 날을.

인류에게 희망이 주어졌던 날을.

그리고- 그 순간의 의미를 되새겨 앞으로 다가올 어둠 속에서 희망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불가능해 보이는 위험마저 언젠가는 헤쳐나갈 수 있으리란 의지를 심어주도록.

***

5월의 끄트머리- 봄이 끝나가는 시기.

그리고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의 빛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한 어느 날의 아침.

[아아, 대기 중인 생도 여러분들께서는 모두 10시 30분까지 사열대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사전에 공지된 대로 학년별, 등급별로 맞춰 서주시길 바라며. 다시 한······]

우리는 지금 의전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어우씨··· 맨날 TV에서만 보던 곳에 직접 서려니까 왤케 떨리냐. 어우, 어우···

-쫄지마 인마. 우리는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걸 네가 왜 그럼? 쫄 거면 앞에 나가야 할 진시우나 아리엘 같은 애들이 해야지.

-아이씨. 내가 얼마나 승천제를 좋아했는데. 지금 진짜 심정이 말이 아니야. 진짜.

물론- 의전 행사라 해도 별건 아니었다.

그저 전 생도들이 모여 사열식을 치르고, 학년별 대표생들이 나가 선서를 하고, 다 같이 송사를 듣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승천제의 개막을 알리는- 그저 그런 행사였을 뿐.

어찌 보면 그냥 일반 시민들에게 생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만큼 현재 우리는 각 학년별 라인에 맞춰서 생도용 예식복을 입고 승천관 내부 대강당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평소에는 따로 복장 규정이 없었기에 그런지 이처럼 전 학년의 생도가 각 예식복을 갖춰 입고 모여있으니 조금 신기하단 느낌이 들기는 했다.

원래는 많이 모여봤자 학년별 공통 수업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전 생도가 각각 라인에 맞는 복장을 갖춰 입고 모여있으니 새삼스레 등천회랑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소에는 생활용, 그것도 블랙 라인 시절의 생도복을 즐겨 입는 편이었는데 오늘만큼은 화이트라인의 예식복을 갖춰 입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화이트라인의 복장은 지급받고 나서 오늘에야 처음 입어봤다.

물론 그에 별다른 이유가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흰색옷은 조금만 피가 묻어도 티가 나니 거슬렸고, 검은색은 몸을 숨기기에도 용이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무림에서의 습관이 취향이 된 것에 불과했을 뿐.

그래서일까.

“아. 천하씨 옷 흐트러지셨어요···!”

지난번에도 느낀 바지만 예식복은 무척이나 불편했고, 역시 움직임에 그리 용이한 복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잠시만요··· 제가 정리해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코앞으로 다가온 이하린- 마찬가지로 백색의 예식복을 입은 그녀에게 자연스레 몸을 내맡겼고, 이내 작은 손이 옷깃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어째 상당히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황.

그런데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천하씨는 예식복이 많이 불편하신가 봐요? 저번에도 그렇구, 오늘도 그렇구요.”

“······그런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사이에 뭐 이런 걸로요.”

평소라면 부끄러워했을 말도 서슴지 않게 내뱉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흐트러진 내 복장을 정돈해주었고, 결국에는 메고 있던 넥타이까지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풀어헤쳐 새롭게 다시 묶어주기 시작하였다.

웅성대는 소음속에서도 선명히 들려오는 사그락거리는 소리. 간질거리는 목덜미.

“······.”

그렇게 이하린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기에 내 시야로는 그녀의 정수리가 들어오는 중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은은하게 풍기는 복숭아 향 속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잠시 무슨 말을 건네야 하나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던 생각을 부드럽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예식복,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

내 말에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손끝.

하지만 그녀에게도 이제는 조금씩 내성이 생기는 모양인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정돈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렇다 한들 이하린은 아직까진 이하린이었지만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처, 천하씨도 잘 어울리세요! 맨날 검은색만 입고 다니시다가 밝은 걸 입으시니까······ 되게 잘 어울리세요!”

동그랗게 깜박거리는 흑요석같은 눈동자.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조금씩 붉어지는 그녀의 귓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역시 저보다는 하린씨에게 더 잘 어울리네요. 저는 흰색보단 검은색이 조금 더 편한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아···”

이하린은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그렇게 넥타이까지 매듭을 꼼꼼히 맺어둔 뒤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을 통해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고개 숙인 이하린의 옆모습 속에서 그녀의 시선이 저 자신의 복장을 확인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고, 그 입가 위에 떠오른 부드러운 미소를 엿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그냥 벌써부터 축제네, 축제. 어?”

“······그러지 마. 마르네.”

이하린이 떠나자마자 앞에 앉아있던 마르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고, 그러면서 꿈틀거리는 자신의 양손을 들어 올렸다.

“넌 갑자기 또 왜그러는데.”

“야이씨! 여기에 너네만 있냐? 공공장소 네티켓. 응? 네티켓 모르냐고 이 시끼들아. 아주 그냥 손이 응? 오그라들어서··· 응?!”

“마르네······ 네티켓 말고, 에티켓.”

“······뜨, 뜻만 통하면 됐지! 어쨌든! 연애질은 나중에 단둘이 있을 때나 해라 인마!”

그렇게 옆에 있던 이솔라로부터 지적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나는 참으로 녀석답다는 생각을 하며 헛소리를 건네온 그녀에게 가볍게 대답을 돌려줬다.

“멍청하기는.”

“······!!”

뭐, 뭐 이 빡대가리가!- 물론 내 말에 마르네는 광분해서 뭐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중간고사에서 시험 성적은 실기나 필기나 모두 내가 더 우세하였기에 저건 그저 부질없는 반박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겨우 두 달 만에 이론을 따라 잡히다니··· 참 멍청한 아이 아닌가?

“너, 너 그 표정 뭐야? 중간고사 한번 잘봣따고 지금···! 내가···! 이번에는 응?!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지 원래대로면··· 시발!”

“······마르네 이번 시험 잘 봤다 했잖아.”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마, 말을 했다고.”

어쨌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녀석의 말을 무시했고, 혹시나 이하린이 방금 저 말을 들었을까 잠시 살펴보았는데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팀원들에게 붙잡혀버린 상태였다.

-하린이 모야. 방금 모하구 온 거야···?

-우리 막둥이. 왤케 얼굴이 빨개졌어.

-무슨 말을 듣고 왔길래 그렇게 헤실거려?

-아, 그, 그냥 인사만 나누고 온 거에요!

아무래도 마르네의 말은 못 들은 모양.

만약 저 헛소리를 들었다면 괜히 승천제 동안 어색해졌을지도 몰랐으니 다행인 부분이었다. 물론 아리엘의 친구들도 짓궂은 성격의 소유자들이었기에 저들 나름대로 그녀를 놀리는 모양이었지만, 그간의 경험상 직접적이지만 않는다면 이하린도 빠르게 회복해내는 편이었으니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내가 다음번에는 반드······!!”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차악-! 나는 가볍게 업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마르네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을 뿐.

“······읍읍?!”

“공공장소 에티켓, 모르나?”

말 그대로 시끄럽기도 했고 아까부터 녀석의 말소리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조금씩 수군거리는 게 다소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읍읍! 읍읍읍···!!”

물론 마르네는 첫 만남 때와는 다르게 바로 마력으로 입가를 틀어막은 물질을 떼보려 하였지만, 이번에는 반 획의 업륜을 그대로 쏟아부었기에 파괴하는 게 쉽지가 않을 터.

오후에 개인전 시련을 치러야 할걸 생각하면 불필요한 낭비긴 했지만, 어차피 여명급이 상대인 이상 업륜은 1획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잠시 이후의 일정을 생각을 해보고 있자니 멍한 표정으로 마르네를 바라보고 있던 이솔라가 내게 작게 말을 걸어왔다.

“······마르네 너무 괴롭히지 마.”

“괴롭힌 게 아니라 조용히 시킨 거야.”

“······그럼 내가 떼줘도 돼?”

“상관은 없는데 그럼 시끄럽게 굴겠지.”

내 말에 그녀는 잠시 흥분한 마르네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안 할래.”

“읍?! 읍읍!”

“이따가 풀어줄게··· 미안.”

“······.”

그 말에 마르네 녀석은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솔라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머리를 토닥거려주었고, 그러자 잔뜩 마력을 그러모으던 녀석은 나를 한번 쏘아보고는 이내 얌전히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이솔라의 말은 참 잘 듣는다는 느낌.

원작에서도 둘의 관계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기는 한데, 마르네의 비중은 그리 높진 않았다 보니 나로서는 둘의 긴밀함이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도 뭔가 사연이 있었던 것 같기는 했다만 이야기에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는지 그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야 할까.

하지만- 저 둘이 딱히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내 생각을 털어냈을 따름이었다.

내게 중요한 건 이하린이었으니 말이다.

***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음악 소리.

축제를 즐기라는 것처럼 맑은 하늘 아래.

사열대 앞에 쭉 도열해 있는 삼색의 색채.

그렇게 우리는 사열대의 관중석에서, 승천관의 건물 속에서, 혹은 세계 어딘가에서 방송을 통해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담담히 흘려내면서도 시간이 멈춰서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모여서 있었다.

바로- 희망을 기원하는 세계의 축제.

승천 대축일을 기리기 위한 기원제.

승천제의 개막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그리고 그 순간.

삐이익-!

짧게 대기를 가로지르는 노이즈.

이제 슬슬 행사가 시작될 모양인지 회랑의 직원들은 분주히 장비들을 체크하고 있었고, 다시 그런 직원들과 늘어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민들 사이에선 방금의 노이즈마저 순식간에 묻힐 정도로 상기된 목소리가 사방에서 토해져 나오는 중이었다.

아니, 사실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지 생도들 또한 조금씩 흥분 되는 모양인지 입만큼은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고,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열기 속에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

나는 그런 와중에도 단상의 대기실 너머에서 포착되는 익숙한 기척과 존재감에 조금 흥미롭다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한 명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설마 두 사람이 함께 올 줄이야? 이건 예상 밖의 상황.

아무리 승천제라지만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었고, 실질적인 위상과 영향력을 생각해봤을 때 과연 저렇게 두 사람이 함께 올 만한 이유가 있나- 그게 조금 의아한 기분이었다.

-어? 저기 저기 그 사람 아니야?

-누구? 어···? 어?! 유천하다. 유천하!

-와······ 뉴스에서 볼 땐 살벌했는데, 실물은 또 느낌이 되게 다르네. 훨씬 잘생겼다.

-아! 저기, 저 앞에는 진시우? 걔지?

-머리카락이 진짜 새하얗네. 신기하다.

-아리엘 저 아이는 진짜 예쁘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인형 같더니 실물이 아주······

-등천회랑이 괜히 등천회랑은 아니라 그런지 확실히 유명한 사람들이 많긴 하구나.

또한 아무래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을 하나씩 들어보고 있자니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들리는 게, 두 사람의 방문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인 모양.

승천제의 일정과 그 위상을 생각하면 조금 번잡한 3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씨··· 사람 존나 많이 왔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많이 오면 2일 차나 3일 차엔 진짜 미어터지겠다.

-창룡무관 승천제에는 문파 어르신들밖에 안 왔는데 온도 차 뭔데 이거.

-마! 이게 등천회랑 아이가, 마!

-이 새끼 또 이상한 말투 배워왔네.

그리고- 그렇게 경쾌하게 울려 퍼진 음악소리와 군중들의 대화 소리, 마지막으로 생도들의 속닥거림까지 뒤섞여 점점 뭉개지는 웅성거림이 공터를 가득 메워져 가던 순간.

바로 그 순간.

단상 위에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훅훅. 아. 아. 이제 개막식의 시간이 되었으니 방문객 여러분들께서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내빈 여러분께서도 자리에 위치해주시기 바라며, 생도분들도 제 위치에 자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작아지는 음악 소리.

들려오던 웅성거림 또한 서서히 멎어간다.

생도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던 시민들도 다들 제자리로 돌아갔고, 조금 흐트러진 상태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생도들도 일제히 자세를 바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적막이 내려앉은 뒤.

[그럼······ 지금부터 등천회랑의 승천제 개막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승천제의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이 자리까지 와주신 시민 여러분, 공략자 여러분, 그리고 수고해주시는 생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짝짝-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곳곳에 설치되어있던 스크린 위로는 손뼉을 치는 시민들의 모습과, 긴장한 체 차려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학년을 대표하여 나가 있는 6명의 생도- 그중에서도 진시우와 아리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크린 너머에 자리한 두 명의 남녀.

다만-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면 아리엘은 긴장했는지 굉장히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머금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와 반대로 진시우는 번잡함이 짜증 났는지 미미한 불쾌감을 미간에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 두 사람 다 행동이 성격 그대로라는 느낌이 들었고,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단상 위에서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우선 첫번째 순서입니다.]

그리고.

[먼저- 침식과 맞서 싸워, 세계침식을 종식시킨 최초의 승천자분께 대하여, 그리고 세계 시민 여러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순직하신 영령들을 위하여, 시작에 앞서 존경과 감사의 묵념을 갖는 시간이 있겠습니다.]

그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일동 묵념.]

이곳에는 한순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수천 명의 인파는 다 함께 고개를 숙였고, 그 순간 곳곳에 위치해있던 스피커에선 잔잔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음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낮게 울려 퍼지는 묵직한 음악 아래.

가만히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는 사람들.

그리고 호흡 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 기이한 분위기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으니, 이 광경에 나는 조금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

이 순간- 만상의 눈에 엿보이는 광경이 그야말로 하나에 장관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세계와 동조된 내 눈은 사람들의 의식이 자아내는 무언의 흐름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시야에 담기고 있는 의식의 물결 속에선 애도와 경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바로- 이 수많은 사람이 감사함을 느끼고, 또 진심으로 그것을 기리고 있다는 것.

“······.”

그렇기에 모두가 경건해진 가운데 어쩐지 별 생각 없이 예식만 맞추고 있는 내 모습이, 혼자 다른 차원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기에 기분이 조금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 가 그 기분을 털어냈다.

이게 내가 뭐 어쩔 수 있는 부분이겠는가?

사실 이 세계에서 나고 자라온 사람들과 이제야 막 녹아들기 시작한 내가 같은 시야를 갖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했고, 저들과 같은 감흥을 느끼기엔 나는 아직 이 세계에서 직접적인 비극을 마주한 적 또한 없었다.

끽해야 등천도시나 합비의 테러가 전부.

그것도 그저 마인들의 난동이었고, 희생자들에게 안타까움 정도는 느꼈을지언정 마인들은 죽였으니 그걸로 충분하단 생각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내게 토벌과 공략은 결국에는 나를 위한 행위에 불과했으니, 아마 나는 이 세계에서 몇 년을 더 생활하게 되더라도 이 기묘하고도 대단한 일체감에는 끝까지 녹아들진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게 어찌 보면 내 위치였으니 말이다.

[바로.]

그렇게 잠시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사이 짧고도 길었던 시간이 끝이 났고, 다시 하나의 흐름을 자아내던 의식의 잔재도 어느새 점점 무질서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럼 이어서 승천제 개막을 축하하고, 승천을 기원하는 축사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승천제를 위해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신, 그리고 항상 세계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위대한 초인- 승천자 루타텔님과 승천자 나르화리얀님의 방문을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단상 너머의 대기실에서 두 명의 승천자가 적막을 가로지르며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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