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에서 (2)
“나를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해서 뭐하게. 승천제에서 상대해야 할 건 마수일 텐데.”
그렇게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작게 터트리고는 그들을 향해 말을 건네보았고, 그러자 아이들은 내 말에 순간 움찔하더니 일제히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맞네? 문제점 얘기하다가 왜 뜬금없이 쟤 공략 방법이나 찾고 있냐 우리.”
“이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이겠지.”
“전력조차 못 끌어냈다 생각하니까 저희도 모르게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갔네요. 아무래도 공략하는 수준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면 방법이 안 보여서 그랬나 봅니다.”
남궁설아가 조금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미안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내게 한가지 질문을 건네왔다.
“그럼 혹시······ 은공께서 보시기에는 저희의 문제점이 뭐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호칭 또 실수하셨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깜빡했네요.”
나는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남궁설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아까 전의 대련을 되새겨 보았다. 아이들이 보여줬던 기량과 거기서 부족하다 느꼈던 부분들을 말이다.
말 몇 마디 해주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나는 우선 남궁설아가 보여줬던 문제점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럼 설아씨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좋았던 부분부터 말씀드리자면 제왕검형을 이젠 제대로 체화시키신 듯 합니다. 검에서 망설임이 사라졌고, 가속된 신체로 패검을 뻗어내는데도 검이 흔들리지 않더군요.”
“다 천하씨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이제는 다시 그 부분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 이요?”
내 말에 기쁘다는 듯 웃어 보이던 그녀는 이어진 지적에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물론 속도와 위력 자체가 뛰어난 만큼 어지간한 상대라면 딱히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허나 이전에 하린씨가 말씀하셨던 내용처럼 설아씨의 검은 너무 올곧습니다.”
“······.”
“검이 시작되는 방향만 알면 어디를 목표로 하는지 간파하기가 너무 쉬워요. 물론 그걸 상쇄할 만큼의 속도와 위력이 중점이 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움직임에 조금씩 변화를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라면······ 혹시 둔검말인가요?”
우리의 대화에 구석에서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던 이하린이 순간 흠칫하며 이쪽을 바라보았고, 남궁설아 또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듯 조심스레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미묘해진 그녀들의 시선이 잠시 교차한다.
“······.”
“······.”
하지만 이하린은 이내 부끄러운 듯 다시 빠르게 고개를 숙였고, 남궁설아 또한 그날의 패배가 떠올랐는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서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예. 둔검을 수련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아, 물론 그렇다 한들 설아씨에게 가장 적합한 건 패검이 맞고, 둔검을 수련하면서 특성을 가속뿐만이 아니라 감속의 방향으로도 응용하시면 조금 더 감이 잡히실 겁니다.”
“혹시 까닭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패검에 유流나 환幻이 섞이긴 힘들지만, 둔검의 묘리를 응용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흡과 흐름을 파악하고 간극을 제어하는 것. 둔검의 묘는 대련에서 충분히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아.”
내 말에 남궁설아는 조금 전 있었던 대련- 그 마지막 순간에 휘말렸던 공세의 흐름이 왜 그렇게 된 건지 이제서야 깨달은 듯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깜박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예. 알겠습니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녀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리베르테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방금의 내용을 듣고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가 되었던 모양인지 눈을 반짝거리며 시시덕거렸다.
하지만 이내.
“오? 내 차례임? 나는 어땠는데?”
“간단하게 말해줄게. 경박했다.”
이어진 대답에 쩍- 하고 얼어붙었을 뿐.
“검의 형세나 몸의 움직임만 보자면 나쁘진 않았지. 하지만 집중력이 너무 산만해. 성격인 건 알겠지만 주위의 변화에 둔감하고, 수를 길게 보지 않고 지르는 경향이 있어.”
“······.”
“특성은 일부러 숨긴 건지 모르겠지만, 뇌력을 사용하는 무공은 본디 쾌와 패가 중심이야. 하지만 네가 익힌 건 아마 쾌와 환을 중점으로 발전되어온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순간순간의 임기응변은 있어도 수가 약해. 수를 더 길게 보고, 힘과 체격을 제대로 살리려면 조금 더 집중력과 안목을 가다듬어.”
“······.”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게 끝이야.”
내 지적에 리베르테는 다소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못하고 뭐라 입만 뻐금거렸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언은 해줄 수는 있어도 그걸 받아들이고 체득시키는 건 스스로의 몫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카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나와 시선이 마주친 녀석은 내가 방금 리베르테에게 한 말을 들어서인지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카타 넌 리베르테와 반대야.”
“······반대라면?”
“집중력과 안목은 괜찮았어. 쓰러트리려고 가격했는데 버티고 오히려 공격을 해온 것도 근성이 보여서 나쁘지 않았지. 하지만 수는 있어도 갑작스런 임기응변에 취약해.”
“······.”
표정이 조금 굳어있던 사카타는 제 생각보단 평가가 괜찮다 느꼈는지 다소 안도를 내비쳤고, 나는 그 모습에 질문을 건네보았다.
“너. 특성이 질량을 변화시키는 건가?”
“아니, 정확히는 중량이다. 다루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은··· 중력조절이니까.”
“그래. 다루기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어. 특성이 발현되는 시기를 짐작하는 것도 기운의 유동을 느끼면 충분히 가능했고 말이야.”
물론 나는 만상의 눈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특성이 발현될 때 느껴졌던 전조를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간파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경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모든 수에 특성을 활용하려고 하니까 제어에 집중력이 쏠리고, 계산된 수가 빗나가니까 변화되는 상황에 취약해지고··· 생각해보니 둘 다 주위가 취약하다는 건 같네. 제어력을 기르던지 순발력을 조금 더 높여봐.”
“······끝인가?”
“어.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은.”
“그렇군. 조언에 감사한다.”
그렇게 내 조언에 사카타는 약간 씁쓸해 보이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는.
“······.”
“······.”
마지막으로 살며시 이하린을 한번 쳐다보았는데 역시 아까 대련에서 조금 밀접하게 붙어있던 게 아직 회복이 안 됐는지, 그녀는 붉어진 귓가를 머리카락으로 숨긴 채 내 눈치를 보며 양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말을 걸까 조마조마한 모양.
그래도 계속 검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그녀 나름대로는 빠르게 회복하려고 노력 중인 것 같았기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주었다. 사실 애초에 이하린에 대해서는 대련 중 지적했던 마음가짐에 관한 부분 말고는 딱히 말해줄 만한 사항이 없기도 했고, 겨우 그걸 다시 말해주려고 자극을 주고 싶진 않았다.
이하린에게 중요한 건 기본기를 쌓는 것.
의념을 가다듬고, 육체를 발달시키고, 마력을 더 쌓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이하린의 재능과 특성은 그녀를 언젠가는 승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었고, 그런 만큼 그녀의 성장을 위해서는 특별히 뭐를 개선해주기보다는 그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성장을 다독여주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자연스레 화제를 돌려보았을 따름.
“그나저나 이제 볼일은 끝났지?”
“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줘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니, 딱히 너희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내 말에 남궁설아는 다시 한번 더 고개를 숙이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왔고, 그러자 이제는 리베르테도 슬슬 충격에서 헤어나왔는지 갑자기 그녀에게 말을 건네었다.
“남궁쓰? 너도 아리엘네 들어갔다 했지?”
“······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친한 척 불러대는 리베르테의 호칭에 남궁설아는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지만, 리베르테는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히죽 웃으며 말을 건네오는 그.
“그런데······ 유천하 너는 아직도 혼자고?”
“아직이 아니라 아예 그럴 계획이지.”
“아이고 저런! 왜 그렇게 된 거래? 혹시 아리엘이 다 뺏어가서 그런 건 아니겠지? 너 이하린 쟤랑 아리엘 말고는 친구 없잖아. 거기서 아리엘이 남궁설아까지 뺏어갔······”
사카타가 리베르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미안하다. 죽어도 입은 둥둥 떠다닐 녀석이라 그렇게 얻어맞고도 주체가 안되는 듯 하니 내가 대신 사과하지. 신경 쓰지 마라. 경박하단 소리 좀 들었다고 이러는 거니까.”
“······.”
“그리고 네가 팀을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다른 애들도 알고 있을 거다. 그저 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구하는 거겠지. 네 실력을 생각하자면 팀까지 꾸리는 건 사실상 반칙 수준이니까 말이야.”
내가 리베르테의 말에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사카타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는데, 나는 혼자 알아서 내 행동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 다소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니까 음······ 신경 쓰지 마라.”
별로 신경 쓰이는 부분도 아니었는데 대신 변명하듯 구는 게 더 신경에 거슬렸고, 그 내용이 조금 미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솔직히 말하자면 팀을 구할 생각이 없다는 건 맞았다. 기본 규칙이 협업이라 하지만 혼자서도 토벌할 자신만 있다면 상관없다 하니 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도 맞았고, 굳이 협력전 하나를 치르는데 모르는 이들을 구해 합을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5월도 벌써 절반이 넘게 지나간 이 시점이었기에 나는 사카타의 저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들러리가 되고 싶진 않을 테니까.
지난번 아리엘이 내게 그런 말과 함께 경쟁을 선언한 것도 벌써 2주 전의 일. 하지만 나는 승천제가 점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녀의 말을 충분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요즘 회랑을 거닐다 보면 내게 경쟁심을 내비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중에는 직접 협력전의 상대가 되고 싶다 하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하물며 그럴 실력이 없는 아이들이라도 최대한 활약을 보여주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저런 말을 한 사카타 녀석 또한 이렇게 전력을 파악한답시고 대련을 요청해왔을 정도니, 지금 생도들의 마음가짐은 나와 팀을 이루고 싶다는 것보다는 나와 경쟁해서 이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확연히 더 커보였을 뿐.
그러니- 얼마든지 팀을 구할 수 있다?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물론 결과 자체는 내 선택인지라 별로 불만이 없었지만, 만약 협력전이라고 반드시 팀을 짜야만 했다면 나는 사실상 진시우 같은 녀석이랑 팀을 하게 됐을 테니 나로서는 저 말이 참으로 미묘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말하기도 조금 뭐 했기에 나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고,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자니, 이내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던 리베르테가 입을 열어왔다.
“씁··· 나도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거든? 아리엘이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있으니 한번 꺼내 본 말이지. 이 진지충아.”
“아리엘이 선전포고는 무슨.”
“사실상 그게 선전포고지 뭐야 그럼? 10위권 유망주는 사실상 우리 팀이랑 아리엘팀으로 갈린 셈이고, 진시우 녀석 빼고는 전부 유천하랑 경쟁 뛰려는 게 딱 보이는데.”
리베르테는 그렇게 잠시 툴툴거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을 보내왔다.
“지금 상위권 팀은 다 협력전에서 너랑 같은 판에 들어가려고 쏠리고 있는 거 알지?”
“신청이 몰린다고 듣기야 했지.”
“그래서 말이야. 솔직히 난 너도 팀을 꾸렸으면 좋겠거든? 지금 내가 아는 것만 7팀인데 그렇게 방심하다간 너 큰일 날거야. 사카타 말대로 실력이야 아니까 참견 안 하겠는데, 그래도 너무 설렁설렁하진 마. 다들 너 한 명 재껴보겠다고 칼을 갈고 있으니까.”
오키?- 리베르테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에는 다시 장난스레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나는 녀석의 말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의아하기는 했다.
“어차피 직접 싸우는 게 목적도 아니고 누가 더 토벌을 많이 하냐인데 의미가 있나?”
“쯧··· 여유롭구만, 여유로워. 그래도 팀 경쟁인데 우리가 다 같이 방해하면 어쩌게.”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 한들 몇 명을 제외하곤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아리엘이나 이솔라같은 애들의 특성은 강약을 떠나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언령을 걸고, 마력을 분해하고, 거기에 남궁설아가 가속까지 걸고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문제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겉으로 드러났던 모양.
“······아, 글렀네 글렀어. 상대 취급도 안하고있네. 이래서 한방은 먹였어야 했는데.”
“그래. 한방도 못 먹여놓고 그런 소리 해봤자 우리만 비참해지지. 헛소리 좀 그만해라.”
쯧쯧- 나를 바라보고 있던 리베르테는 이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툴툴거렸고, 그런 녀석의 행동에 옆에서 지켜보던 사카타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
***
우리가 3학구에서 벗어난 건 다시 1시간 정도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이하린이 내려온 시각이 그러했다.
사카타와 리베르테는 대련이 끝나고 얼마안가 바로 내려갔고, 남궁설아 또한 이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뒤 먼저 숙소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1시간 정도 더 수련을 했을 뿐. 그렇게 나는 개별적으로 이하린을 조금 더 지도해준 뒤, 이제서야 그녀와 함께 3학구를 나와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서로 기숙사가 달랐기에 진작에 헤어져야 했겠지만, 이제는 둘 다 같은 화이트라인이었기에 이렇게 같이 돌아가는 것도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따름.
그리고 당연히- 수련을 하는 사이에 이하린의 상태도 다시 진정되었기에 그녀는 지금 내 옆에서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통통 튀듯 걸어 나가는 중이었고, 그녀는 선선한 밤공기가 시원했는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머리를 양옆으로 살며시 흔들거리고 있었다.
은은한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달빛을 머금은 검디검은 장막이 부드럽게 늘어졌고, 그녀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이하린이 고개를 돌려왔다.
“······이제 곧 승천제가 다가와서 그런지 다들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그쵸?”
그녀는 그렇게 새하얀 미소가 엿보이는 얼굴로 지나가며 보이는 건물들을 가리켰고, 그녀의 작은 손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는 2학구의 공용 수련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 늦은 시간인데도 열심히 하는군요.”
확실히 승천제가 다가오기는 하는 모양.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에도 불구하고 수련실 창문 곳곳에 들어와 있는 불빛은 낮의 풍경과도 그리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렇게 화려한 색채를 뽐내오고 있었다.
당연히 창문 곳곳에선 수련중인 아이들의 음영마저 엿보이는 중이었고 말이다.
물론 등천회랑인 만큼 밤늦게까지 수련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까지 저렇게 많은 인원이 수련을 이어나가는 건 이곳에서도 분명 특별한 풍경이라 볼 수 있었을 따름.
“이제 다음 주면 승천제니 다들 몸이 달아오르는 모양입니다. 수요일이라 했나요?”
“네! 이제······ 딱 10일 남았네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체감상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지만, 다음 주가 승천제라 생각하니 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리엘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 승천제가 다가오고 있었으니 기분이 조금 묘하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뀌어가는 풍경은 그 사실을 빠르게 체감시켜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3학구에도 직원들이 많이 돌아다니구, 여기저기에 가판대 같은 것도 들여놓구, 다들 많이 바빠 보여요.”
“사전에 준비해야 할게 많을 테니까요.”
“그렇겠죠? 하긴 일반인들한테도 개방되니까 신경 쓸 부분이 많을 것 같긴 해요. 안 그래도 3월엔 그런 일도 있었잖아요······”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그녀는 카룬드 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한순간에 시무룩해져서는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혹시··· 테러가 일어나는 건 아니겠죠?”
물론 그때의 테러는 규모에 비해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등천도시에서는 수십 명이, 그리고 회랑에서도 한 명의 가드가 사망했던 만큼 그녀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안쓰러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몰래 은은한 바람을 떠밀어주었고, 그와 동시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당연히 신경 쓰기야 하겠지요. 3일 내내 개방해야 하니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을 테고요. 하지만 우려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치마안······ 뭔가··· 걱정이 돼서······”
“걱정하지 마세요. 마인들이야 원래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런 시기에 쳐들어올 정도로 대단한 놈들도 아닐 테니까요. 그런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침식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렇겠죠? 별일 없겠죠 이번에는? 원래 이럴 때 무슨 일이 생기는 게 클리······ 아니, 뭔가 있을 법한 일이라 신경 쓰여요.”
역시 멘탈이 흔들리면 바로 말실수가 튀어나오는 게 참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걱정이 많은 것도 이하린다웠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걱정하는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부드럽게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마세요. 테러를 올일도 없고, 와도 전부 죽이면 되니까요.”
“······뭔가 그런 표정으로 아무렇지않게 그런 소리를 하시니까 조금 무서운거 아세요?”
“······.”
이하린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기에 저 말에 뭐라 대답해야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자니, 이내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이더니 나를 보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래도오······ 천하씨가 그렇게 말해주시니까 되게 안심되는 기분이에요.”
마인 퇴치 전문가 같으셔서- 이하린은 그 말과 함께 조금 민망하다는 듯 살포시 웃으며 내게 감사를 표해왔고, 나 또한 그녀의 농담에 이내 말없이 마주 미소를 지어주었다.
순간 단어선택을 잘못했나 싶긴 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한- 한 가지 더 재밌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하린이 말한 마인 퇴치 전문가라는 말이 내게는 조금 미묘하게 다가왔다.
당연히 그녀가 말한 마인은 타천의 마인이었겠지만 내가 신교에서 맡았던 암영비천대의 역할은 주로 교내의 집행 임무였고, 내가 죽여왔던 인물들 또한 대부분은 신교와 관련된 마인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저런 말을 교내에서 심심치 않게 들었던 편이었고, 그런 마당에 이곳에 와서도 저런 말을 듣게 되니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 전문가라 생각하시고 믿어주세요.”
“······넵! 전문가의 말을 믿겠습니당!”
그리고 또한- 솔직히 말하자면 그날 만큼은 테러를 걱정할 필요가 정말로 없었다.
물론 그 판단의 근거에는 원작이 무사했다는 것도 존재했지만 그것만으로 방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마인들에겐 승천제 때 테러를 벌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승천제 기간 동안에는 경비도 강화되는 판국에 회랑에 거주 중인 생도들은 물론이고, 현직에서 뛰는 공략자들까지 방문하니 그때 회랑을 테러하려면 어지간한 타천자급이어도 최소 죽을 각오 정도는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배짱이 있는 놈이었다면 말한 것처럼 애초에 마인이 되지도 않았을 터.
대부분의 공략자들은 부상을 입어 침식에 저항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죽음을 선택하면 선택했지 절대 침식을 받아들이진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타천의 마인이 되었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는 것이었고,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녀석들에겐 절대 신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만큼 대단한 행동을 할 결단력 따윈 없었다.
당장 이제껏 있었던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카룬드 녀석 자체도 고작 생도 한 명을 납치하려고 그런 짓까지 벌였을 정도로 저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했고, 위타극 또한 지닌바 본신의 무력 자체가 높았던 것이지 정신은 심마에 잡아먹힌 광인이었을 뿐이었다. 녀석들이 죽은 건 그 자리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없었다면 별 피해 없이 목적을 이루고 도망갔을 테니- 그저 나라는 변수에 우연히 토벌당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런 추잡함 속에 삶을 택한 녀석들이 무슨 거창한 신념이 있다고 목숨까지 버려가며 테러를 시도해 오겠는가? 그게 가능한 녀석이었다면 이미 진작에 죽었겠지.
나는 그러한 마인들의 추잡함을 신뢰했다.
물론 신념도 없고 욕망만이 자리한 추악한 녀석들이었기에 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 벌이는 행동에는 바닥이 없었고, 신념을 가진 광인보다 신념 없는 밑바닥의 충동이 더 경계해야 할 요소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하오란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아시아 쪽의 마인들은 이미 이면순례자의 손에 초토화 당한 뒤였고, 남미와 아프리카로 도망간 녀석들도 각각 기존 조직들과 마찰을 빚는 중이라 하였으니 원작을 기반으로 생각해도, 현실의 사정을 고려해도 당분간 마인이 일으킬만한 문제는 전혀 없었을 뿐.
하물며 안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 또한 존재했기에 나는 이하린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