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에서 (1)
달빛이 내려앉은 고요한 밤.
인적 하나 없는 적막한 숲 속.
유천하는 그곳에서 가만히 두 눈을 감은 채 서 있었고,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만상의 눈을 일깨웠다. 그러자- 분명 육안은 닫혀있는 상황이었지만 세계와 동화된 그의 감각은 육체의 시야마저 투과해 세계의 현상을 그대로 직시하기 시작했으니, 그는 그 시야를 다시 더 넓은 차원의 관점으로 옮겨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
그곳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감각- 그건 이제껏 만상의 눈을 활용했던 방식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응용이었다. 이건 육안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었고, 스스로의 시야를 전방위로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일정 영역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듯 직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만상의 눈이 세계와 동화되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권능이었기에 가능했던 시도였을 뿐.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후우우- 무공을 갈고닦으며 만들어진 기감에 풍결의 가호로 감지되는 대기의 흐름이 겹쳐진다. 그리고 다시 의념의 실타래가 풀어지며 만상의 눈을 기반으로 복합적인 감각의 감지체계가 한순간에 짜여지기 시작한다.
아무런 사각 없이 감지되는 만물의 흐름.
그리고 그 시야로 들어오는 세계의 풍경.
그야말로 무결無缺에 가까운 감각.
이건 그가 중간고사 때 이하린과 아리엘의 실험에 어울려주다 생각해낸 방향성이었는데, 비록 만상의 눈을 원하는 방향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소모되는 집중력이 적지는 않았지만 분명 꾸준히 갈고닦기만 한다면 상당히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는 응용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언제까지 거기서 눈치나 볼 생각이지.”
지금 유천하의 감각 속으로는 기척을 숨긴 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단순한 기척을 넘어 그들의 외형과 내력의 운용, 호흡의 강약, 움직임의 전조, 미약한 떨림까지도 말이다.
그렇기에- 바로 그 순간.
“잘난 척 하기는···!”
큉-!!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온 금빛의 궤적 또한 유천하는 그 선이 허공에 그려지기 전부터 이미 간판해내 뒤였을 뿐.
어둠을 가르고 그어지는 백열의 섬광!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에선 묵직한 중검이 그를 향해 휘둘러졌고, 다시 측면에선 백색빛의 오러가 찰나를 격하고 궤적을 그려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펼쳐진 합격.
숲 속의 어둠을 틈타 노린 기습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쾅-!! 유천하의 내면에서 다섯 갈래의 매듭이 풀려나옴과 동시에 가볍게 회전한 그는 자신의 목을 향해 그어지는 검날을 흘려냈고, 동시에 중검의 끝 부분을 타격해 빗겨냈으며, 백색의 오러를 그대로 올려쳐 튕겨 냈다.
“······!!”
“······?!”
한순간에 흐트러지는 습격자들의 자세.
그리고 다시······ 반원을 그려내는 궤적!
콰아아앙-!!
그렇게 유천하는 한순간에 튕겨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가볍게 발을 움직였다. 한순간에 몰려든 내력을 담아, 모든 걸 쏟아내듯 지면을 내리찍는 패도의 걸음.
분명- 그 발걸음은 가볍게 움직였으나,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렇기에.
콰아아아앙-!!! 난데없이 울려 퍼진 굉음이 야밤의 숲을 내달렸고, 그와 동시에 지면은 마치 파도치듯 모래의 해일을 자아낸다. 그러니 당연히 그 위에 서 있던 이들이 휘청거리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라 볼 수 있었다.
동시에- 한순간에 몰려드는 유사의 방벽.
“······미친!!”
칼잽이가 칼만 쓰면 될 것이지 뭐 저딴 일까지 벌인단 말인가? 안 그래도 다같이 달려들어도 한칼을 못먹이고 있는데 그냥도 강한놈이 별의 별 수를 다 쓴다는 느낌.
그렇게 입가로 들이닥친 모래를 짓씹으며 리베르테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짜증을 토해내면서도 그 몸만큼은 본능적으로 빈틈을 향해 움직였고, 그건 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휘청거리는 순간 허공으로 뛰어오른 사카타와 그대로 몸을 낮추고 해일을 베어낸 이하린을 바라보며 리베르테는 내력을 터트렸다.
카지직-! 그의 몸에서 전류가 방전한다.
어둠을 가르고 번쩍 튀어 오른 백색의 빛.
그리고 그 순간.
콰가가가-!!! 대지를 박찬 리베르테의 신형이 전격에 휩싸인 채 유천하의 목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그 타이밍에 맞춰 한순간에 중압을 휘감은 사카타의 검이 떨어져 내렸으며, 이하린이 별빛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내리치는 검, 받아치는 검격.
칠흑의 검신은 수직으로 내리 그어지는 검을 흘려내며 반원을 그렸고, 백색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흑색이 검극을 맞대었다. 처음의 검을 받아치는 순간 손을 타고 저릿한 뇌력이 전해졌지만, 그 검을 튕겨낸 즉시 쏘아져온 묵중한 일격마저 그 소리가 터져나오기도 전에 그대로 끊어쳐 허공으로 튕겨낸다.
피어오르는 불씨속에 중첩되는 열기.
서로의 검이 교차하며 울려 퍼지는 화음.
굉음과 기파가 얽혀가며 만드는 파란!
콰아아앙-!!! 카앙-!! 카가각-!!
그렇게 순식간에 교환되는 수십 합의 검격 속에 유천하는 잠시 전력을 가늠해보았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아직 숨어있는 그녀가 끼어들 것 까지 고려하자면 역시 5성의 내력만으로는 다소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천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고,
여섯 갈래의 매듭이 풀려 나왔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그 즉시 접어드는 오온의 세계.
---------------------------------------------······
찰나의 세계에 접어든 유천하는 그대로 뇌력을 머금은 리베르테의 검을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눈 깜빡할 사이에 그어진 쾌격이었지만 이미 오온에 접어든 유천하의 눈에는 그저 한없이 느리기만 한 일격이었다.
그렇기에.
콰앙-!! 칠흑빛을 머금은 흑색의 검신은 백열의 번갯불을 집어삼키며 빛을 깨트렸다.
하지만 내력을 활성화된 리베르테의 반사신경은 그 찰나의 세계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그는 자신의 검강이 파훼 된 즉시 몸을 뒤틀며 유천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검을 내버리고 쏘아지는 맨손의 일격.
물론 그 손에는 노란빛에 가까운 백열이 담겨 있었지만, 유천하는 그 내력의 유동을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던 만큼 가볍게 손을 털어 녀석의 공격을 흘려냈을 따름. 가볍게 흘려내는 공격. 그리고 그는 연이어서 그대로 위에서 내리 그어진 검을 쾅-! 튕겨냈고, 사카타의 검을 빗겨낸 유천하는 다시 중심이 흐트러진 리베르테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렇게 순간 흐릿해지는 발의 잔상.
그리고는······ 쾅!!
“웁!!”
한순간에 하복부를 걷어차인 리베르테는 헛구역질 속에 숲 너머로 패대기치듯 날아가 버렸고, 기습이 실패한 사카타의 검이 땅에 틀어박힘과 동시에 유천하는 그대로 연이어서 사카타의 옆구리까지 후려쳐 버렸다.
“···크윽!!”
그리고 그 순간.
“조심하세요!”
말과는 다르게 살벌한 예기를 그 검에 그러모은 이하린이 한순간에 그를 향해 쏘아지며 검을 내질렀고, 그에 유천하는 그대로 회전하듯 몸을 돌리며 그 공격을 흘려냈다.
제자리에서 돌아가는 두 사람의 신형.
그리고 서로의 몸이 춤추듯 교차한 순간.
퀴이잉-!! 이하린은 작은 린치를 살리며 그대로 스텝을 바꿔 유천하를 향해 검을 그어냈다. 물론 지근거리에서 휘둘러진 검격이었기에 피하기 어려운 일격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유천하의 손 또한 그녀를 후려칠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이건 동귀어진의 수법에 가까운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실력 차이가 난다고······”
유천하는 오히려 이하린을 향해 그대로 한 발짝 더 다가섰고, 그렇게 검극으로 이하린의 검신을 바깥으로 흘려내며 껴안듯이 가까워진 상태로 유천하는 다시 한 바퀴 돌아섰다. 다시 반 바퀴씩 돌아가는 서로의 신형.
카가각-!!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맞찌르기를 선택하는 건 악수입니다.”
“······!!”
우득- 이하린의 등뒤에 서게 된 유천하는 반원을 그리듯 흘러나간 이하린의 검병을 그대로 움켜잡았고, 흡-! 그렇게 뻗어진 팔을 굽히며 이하린의 목을 껴안듯이 붙들었다.
그렇게 이하린은 검을 휘두르던 자세에서 한순간에 팔과 급소를 제압당해버렸고, 그런 상황에서도 유천하의 한 손은 자유롭게 풀려나와 허공을 겨누었으니, 그야말로 이견의 여지 없이 완벽하게 제압당해버린 상황.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하린은 대체 자신이 어떻게 제압당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눈 깜빡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변화한 유천하의 움직임은 자연스레 자신의 공세를 흘려냈고, 자신이 무슨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유천하는 순식간에 자신의 뒤에 다가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목을 옥죄는 바위같은 압력에 저항하면서도 다소 아리송한 기분에 휩싸였고, 그 순간. 다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다른 의미로 미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밀착되어 있는 상황이었어도 유천하로서는 그저 상대를 제압한 것뿐이었기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을 따름이었다.
“하린씨는 카룬드때도, 위타극때도, 지금도.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 바로 동귀어진부터 노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
“어떻게든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국 이런 선택을 내려버리면 그건 그냥 나쁜 습관일 뿐입니다. 상대가 재생능력이 있다면 육참골단이라 해봤자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고, 카룬드같은 멍청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지능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움직임을 역이용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
“맞찌르는 수는 동선이 뻔하니까요.”
유천하는 그렇게 말도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담담히 조언을 건네주면서도 시선만큼은 계속해서 숲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리베르테와 사카타도 다시 몸을 추스른 채 일어서고 있었지만, 그들보다는 아직도 저곳에서 빈틈을 노리고 있는 그녀가 상당히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깨에도 오지 못하는 이 작은 소녀는 이미 제압당해 붙들려 있었으니 당연히 전력 외 판정이었을 뿐.
그렇기에 유천하는 살며시 팔의 힘을 풀어주며 그녀에게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시길 바랍니다. 죽더라도 상대를 죽이겠다가 아닌, 어떻게 상대만을 죽일까부터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네, 네헤에···”
그리고 그 순간.
“누가 대련 중에 연애하··· 엨!”
콰앙-!! 빈틈인 줄 알고 뛰쳐나오던 리베르테는 튀어 오르던 순간에 맞춰 가격한 의념에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아 버렸고, 뒤이어 달려들던 사카타는 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검을 내질렀다.
그렇기에.
“이제 다시 덤비세요.”
쐐액-! 유천하 또한 품속에 있던 이하린을 부드럽게 떠밂과 동시에 검을 그어냈을 뿐.
그러자 그 순간.
콰아아앙-!!
굉음이 바람을 타고 터져 나왔다.
카드드득-!! 그렇게 서로의 검을 맞댐과 동시에 검신을 타고 중압감이 전해지기 시작했지만, 유천하는 이미 전면으로 개안된 만상의 눈을 통해 그의 특성을 간파해내는 중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사카타의 특성이 발현되는 타이밍을 곧바로 잡아챌 수 있었다.
그러니- 그 결과 또한 간단했을 뿐.
우우웅-!! 한순간에 과부하 되는 중력. 하지만 검의 중량이 무거워짐과 동시에 유천하의 검신이 가볍게 흔들렸고, 그 가벼운 흔들림은 사카타의 무게 중점을 비틀어냈다.
그러자.
콰아앙-!! 그렇게 사카타의 검은 애꿏은 땅에 틀어박혀 버렸고, 유천하는 그 즉시 상대의 검을 발로 내리찍어 더 깊숙히 박아버리며, 그대로 검병으로 명치까지 후려쳤다.
“······큭!!”
물론 사카타 또한 그대로 당하진 않겠다는 듯 순식간에 내력을 끌어올려 방어하였지만, 호신강기의 숙련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기에 충격의 대부분을 그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그의 신형은 잠시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쾅-!! 다시 근성으로 바닥을 내리찍은 그는 반쯤 풀린 동공으로 그대로 틀어박힌 검을 뽑아 쏘아냈다. 그와 동시에 리베르테 또한 다시 한 번 뇌전을 몸에 휘감고선 내달렸고, 구석에 있던 이하린 또한 검을 쏘아낸다.
다시금 순식간에 뻗어지는 세 명의 합격.
허나-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들의 합이 그리 잘 맞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동선이 꼬였어.”
“···?!”
“···!!”
사카타는 반쯤 혼미해진 상태로 손을 뻗어낸 것이기에 리베르테의 기척을 감지해내지 못했고, 리베르테는 이하린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했으니- 이하린의 검은 리베르테의 검과 얽혀 휘어졌고, 리베르테의 몸은 사카타의 팔과 부딪혀 둘은 바닥을 굴렀을 뿐.
물론 이하린은 바닥에 구르진 않았지만 리베르테 때문에 순간 검을 놓쳐버렸고,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렇기에- 그녀의 모습에 유천하가 다시금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을 해주려 한순간.
바로 그 순간.
“어떠한 상황에서도 검을 놓······”
달빛을 머금고 쏘아진 군청색의 패격!
퀴식-!! 어둠을 가르고 쾌속의 섬광이 뻗어졌다. 수십 미터 바깥에서부터 쏘아진 군청색의 궤적은 찰나의 순간을 가볍게 가로질러서는 유천하의 팔을 노려왔고, 그에 유천하 또한 그대로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서로의 검이 부딪힌 순간 터져 나온 강렬한 굉음은 어둠을 가르고 울려 퍼졌고, 타점을 중심으로부터 막대한 힘의 격류가 파도처럼 밀려 나오며 깨져나간 강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세 번째 검합이 교차했고,
맞부딪히는 순간 검신은 다시 흐릿해졌다.
콰아아앙-!!! 카가각-!! 카앙-!!
그렇게 지근거리에서 맞부딪힌 두 개의 패검은 마치 포탄이 터지는듯한 굉음을 토해내며 적막한 숲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가 미처 제대로 퍼져나가기도 전에 그들의 검은 순식간에 수십 합으로 이어져 나갔다.
우웅-!! 서로 가속을 발현한 채 부딪혀가는 초속의 격전. 그것은 패검의 격돌이었고, 다시 속도만큼은 극한의 쾌격이었으니 그 또한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뿐.
“좋습니다. 아주.”
“과찬···! 이십니다!”
콰가가가각-!!!
그렇게 칠흑빛과 군청색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이중의 선율은 달빛 아래 순식간에 흐드러지기 시작했고, 망설임 없이 뻗어져 나온 일격일격에 그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힘의 격류가 막대한 굉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파아앙-!! 타점으로부터 밀려나오는 공기.
서로의 머릿결이 거칠게 흩날렸고, 그 격전을 이어나가며 유천하는 잠시 남궁설아의 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패검을 내지르는 것도 망설여 했던 남궁설아의 검은 이제는 정말 창천의 기세를 그 속에 품고서는 쏘아져 나왔고, 그녀의 특성 <변속제어>와 맞물림으로써 극한의 쾌속을 지닌 패검으로 완성되어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크나큰 발전이었고,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변화였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어설퍼.’
그래도 호흡이 단순한 건 여전했을 따름.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대로 검의 움직임에 변화를 줘보았다. 물론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부닥치는 아음속의 연격에서 검을 변화시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이미 만검의 갈래의 발을 들이고 있는 자.
그러니.
“······!!”
카아앙-!! 한 호흡만에 흐름을 바꿔내는 것도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궁설아의 검은 무척이나 단출하였다.
그렇기에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하린은 그녀에게 둔검을 설파했던 것이고, 그는 그것보다 검의 본질을 찾는 걸 중요시 여겼기에 그녀에게 패검을 되돌려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이미 패도를 되찾았다.
그렇다면 이젠 변곡점을 늘려야 할 차례.
유천하는 그녀의 상황을 그리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의 손은 둔검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투웅-!
가볍게 그어지는 궤적. 하지만 그 궤적은 남궁설아의 호흡을 끊어냈고, 그러자 공격이 흐트러진 남궁설아는 가속을 발현해 대응했다. 그리고 다시 휘둘러지는 검극. 허나 유천하의 검은 그녀의 검에 비해 느릴지언정, 마치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검이 자아내는 궤적- 그 힘의 폭발이 시작되는 지점을 정확한 시점에 카앙-! 강타했으니.
그렇기에.
콰삭-!! 검세가 제대로 뻗어 나오기도 전에 남궁설아의 검은 틀어졌고, 그 틈을 다시 유천하의 검이 비집고 내달렸을 뿐이었다.
상대방의 공격. 쾅-! 그 흐름을 파악하고 힘의 극점을 쳐낸다. 카각-!! 다시 검세의 흐름이 시작되기 전에 호흡을 빼앗고, 마치 상대를 농락하듯이 둔해 빠진 검으로 격전의 간극을 제멋대로 제어해나가기 시작했다.
한 번의 검을 쳐내는 즉시 그 움직임은 다시 다음의 검로로 이어졌고, 남궁설아가 그 검로를 막아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면 그 호흡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미 그의 검은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레 그녀의 흐름을 끊어쳤다.
모든 게 짜여진 각본처럼 합이 떨어진다.
흐르는 물결이 남궁설아를 뒤틀어낸다.
점점 좁혀들어가는 공세의 간극.
그녀의 몸은 점점 더 빠르게 가속되어가는 중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유천하의 검이 느리게만 느껴졌지만 이미 남궁설아의 감각은 그의 호흡에 휘말려버린 상황이었다. 마치 고장 나버린 기계처럼 삐그덕 거리는 움직임.
그렇기에- 뒤늦게 이변을 인지한 그녀가 다시 감각을 가다듬었을 때는 이미······
퀴이이잉-!!
흑색의 검이 틈새를 가로지른 뒤였을 뿐.
“······.”
“······.”
그렇게 칠흑의 검신은 어느새 남궁설아의 하얀 목덜미 앞에 드리워져 있었고, 그 찰나의 격전이 한순간 만에 끝나버린 순간- 이하린은 아직 검을 줍지도 못한 채, 그리고 사카타와 리베르테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대련이 종료되었다.
***
적막한 숲 속에서 잔뜩 격양된, 그러면서도 질린듯한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 퍼졌다.
“미쳤네 진짜!! 아니 왤케 강한거임?”
리베르테는 발차기에 얻어맞은 복부가 상당히 쓰라렸는지 배를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렸고, 허탈한 심경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쯧··· 상상 이상으로 상대가 안되는군.”
근성으로 버티긴 했지만 명치를 가격당한 게 그리 가벼운 피해는 아니었는지 사카타 또한 다소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열어왔다.
“일대일은 몰라도 이렇게 합공을 했는데도 순식간에 제압당하다니··· 어이가 없군.”
“아니 미친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분명··· 합공이었는데도 어째 이전에 대련했을 때보다 더 빨리 제압당한 것 같네요.”
“그래 맞아! 그때 너희 대련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뭔데 대체 이게?!”
남궁설아까지 합세해 그들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들을 보며 담담히 대꾸해주었을 뿐이었다.
“그야 그때는 전력이 아니었으니까.”
“······.”
“······.”
내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들.
남궁설아가 조금 떨떠름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조심스레 질문을 하나 건네왔다.
“······지금도 전력은 아니시지 않나요?”
“미묘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임했고, 거의 전력에 가까웠다 보시면 됩니다.”
“그러신가요···?”
“예. 전력에 가까운 대련이었습니다.”
물론 위타극과 싸우면서- 그 끝자락에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였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력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상대로 6성의 내력을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최선을 다해줬다 말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아니, 7성의 경지는 5월이 지나가는 지금도 계속 가다듬는 중이었고, 그렇기에 온전한 전력이라 치기엔 모호한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게 아니었던 모양.
“구라다. 저거 구라야. 냄새가 나.”
“······말투는 거슬리지만 내용엔 동의하지. 유천하 넌 갖고 있다는 가호도, 업륜도 사용하지 않았으면서 뭐가 전력이라는 말인가.”
“말씀하신 내용과 대련 중 보여주신 여유를 생각하자면 이전보다 더 정진하신 모양이군요. 정말 훌륭한 무인의 표본이십니다.”
대련 중 있었던 일로 아직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이하린을 제외하곤,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 말에 견해를 표해왔다. 물론 둘은 소소한 불만이었고, 한 명은 그날 이후로 쭉 계속되어온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물론.
“······.”
나로서는 그에 뭐라 할 말이 없었을 뿐.
물론 가호 정도는 연습 겸 감지용으로 사용하긴 했다만 별도의 공세에는 동원하지 않았고, 업륜 또한 사용하지 않았으니 실질적인 전력과는 꽤 큰 차이를 보일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어휴. 됐다. 봐줬다고 생각해봤자 자괴감만 더 들지. 넘어가 넘어가.”
그런 내 반응에 그들은 고개를 작게 내젓고선 이내 저들끼리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점이 뭐였다고 생각하냐 니들은?”
“기본적인 역량, 속도, 서로 간의 호흡,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상대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관찰력, 빠른 판단을 내리는······”
“야야! 아니 뭐 하나하나 다 읊고 있음? 피드백할 거만 집어보자고, 중요한 부분만.”
“가장 기본적인 뼈대는 말 그대로 역량의 차이에요. 하지만 합공까지 했으니 그건 변명일 뿐이고, 그 부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던 건······ 역시 통찰력 같습니다.”
“통찰력······?”
내 예상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짚어냈다.
“예. 특성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저희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간파당하는 게 가장 컸습니다. 합공을 해도 서로의 공세 사이에 자리한 약간의 틈새를 그대로 공략하시니······ 말이 합공이지 사실상 천하씨는 일대일을 연속으로 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확실히. 동의하는 부분이다.”
역시 저 중에선 남궁설아가 가장 뛰어나다는 느낌. 물론 남궁설아는 이미 이전에도 여러 번 내게 시달린 터라, 그때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는 이번 대련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원인을 가장 신속하게 짚어냈다.
그들이 내게 손도 못 쓰고 당한 이유는 기본적인 역량도 역량이거니와 모든 움직임이 내게 간파당한 탓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걸 우리가 공략할 방법이 있나?”
“간파하기도 어려울 만큼 더 다수의 합공으로 몰아치거나, 감각을 앞지를 만큼 빠르게··· 아니, 남궁설아가 실패한 시점에서 그건 말도 안 되는 가정이군. 그렇다면 간파해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을 가한다든가?”
“······그런게 있나요?”
아- 사카타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새로운 방향성을 꺼내왔다.
“차라리 아예 수호자급 마수라고 가정하고 분업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수호자급? 아예 공략하는 방식으로 하자면 마법사나 특수기 있는 애부터 구해야지. 마법사나 원거리형 특성만 껴있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수월해지긴 하겠다. 확실히.”
“대신 그때는 천하씨도 가호와 업륜, 탄기공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시겠지요.”
“······아니 미친, 지가 무슨 진짜 수호자급 마수야? 뭐 이렇게 공략이 까다로워.”
리베르테는 그리 말하면서 인상을 쓰고는 나를 노려보았는데, 하다하다 사람을 마수 취급 하고 있는 그 대화가 나로서는 웃기기도 했고 그저 어이가 없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