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13화 (113/205)

화이트라인 (5)

간단히 말해서-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이 이, 이게 한 번에 나갈 줄 몰랐는데··· 아니이······ 이거, 이거··· 아, 이게 아닌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하하하···!! 뭐야 이겤 크, 흡, 하하!!”

“처웃지 좀 말고 돕기나 해라 이 자식아.”

“리베르테는 쉿! 먼지는 가라앉아라!”

이하린은 칼조차 바닥에 내팽개친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아 두 눈을 글썽거리며 돌 쪼가리를 줍기 시작했고, 남궁설아는 그런 이하린을 다독이며 같이 청소를 도와주고 있었으며, 아리엘과 사카타도 옆에서 가만히 웃고만 있는 리베르테를 후려침과 동시에 그녀들을 도와 돌무더기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면······

“예. 수련 중에 실수로 파손되어서······ 아, 예. 그렇습니다. 저번 주에 배정받았고, 파손 정도는······ 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빠르게 회랑 측 복지담당팀에 전화해 자진해서 파손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어······ 그러니까 벽 하나만 무너진 거죠?]

“예. 생활 자체에는 큰 지장 없습니다.”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방문해야겠네요.]

“시간도 늦었는데 괜찮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원래 건물이란 게 간단해 보여도 무게하중 하나하나 계산해가면서 만드는 거라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생도분들 건강이 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워치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한 번 무너진 벽을 확인해보았다.

반으로 갈라져 박살 난 거실 한 측의 내벽.

무방비하게 백색의 오러에 얻어맞은 벽은 그대로 폭삭 반타작이 나 있었고, 그렇게 지금 거실 한구석엔 벽면’이었던’ 다량의 돌무더기가 나뒹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검강이 괜히 검강은 아니라는 걸까?

물론 방음과 수련을 위한 내구도를 위해 이런저런 소재가 뒤섞인 내벽이었지만 아무리 내구도를 신경 썼어도 검강까지 막아낼 수준은 아니었을 뿐이고, 그렇게 나는 졸지에 숙소를 배정받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집을 부숴 먹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화이트라인이라는게 다행인 부분.

만약 블랙라인의 기숙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자칫했다간 다른 호실의 벽까지 뚫어버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화이트라인의 숙소는 개별적으로 독립된 주택인 데다가 더 넓게 건축되어 있었기에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저 회랑에 보고하고 사유서를 제출하는 거로 끝날 수 있는, 딱 그 정도 수준.

당연히 그것도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기분이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 제 숙소랑 바꿔드릴··· 아, 아니··· 일단은 이것부터··· 아······”

물론- 사고를 친 게 이하린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그 이유중 하나였고 말이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아, 제, 제가 다 청소할게요. 제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 같이 해요.”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계속해서 사과를 건네오는 그녀의 모습에 조심스레 다가가 어깨를 살며시 토닥여줬고, 상황 보고도 끝났으니 나도 같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 숙소기도 했고, 말한 것처럼 어려운 일도 아니라 금방 끝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거 돌 어따 치워?”

그런데 본격적으로 정리에 끼어드니 아이들이 모아놓은 돌을 어떻게 할지 물어왔다. 아무래도 남의 집이라 그런지 돌을 모아놓고도 어찌 처리해야 하나 고민되는 모양.

나는 그 즉시 의념으로 창문을 열어 재껴 바깥으로 돌을 하나씩 집어 던지기 시작했고, 그런 내 모습에 아리엘이 질문을 건네왔다.

“······그렇게 막 내던져도 괜찮아?”

“상관없어. 어차피 정원도 안 쓰는데 놔둬서 뭐하겠어. 그냥 정원으로 던져버려.”

“그래? 그럼··· 부유. 비상. 줄줄이 슝!”

우웅-!! 그 말과 동시에 흘러나온 언령.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아리엘은 단번에 돌무더기를 들어 올렸는데 그녀의 마력이 휘몰아침과 동시에 구석에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하나씩 해체되며 창문 밖으로 줄줄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리베르테가 짝짝- 박수를 치면서 감탄사를 토해낸 건 덤.

확실히 언령은 범용성이 굉장히 뛰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특성이 언령과 어우러졌기에 효율성과 범용성이 모두 뛰어난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편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해야 할까?

어쨌든 나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고 그녀를 도와 돌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먼지도 슝슝!"

그렇게 마지막으로 아리엘이 바닥에 남아있던 먼지까지 바깥을 향해 날려 보냄으로써 거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한쪽 벽이 휑하긴 했지만 말이다.

“수고했어. 덕분에 빨리 끝났네.”

“응? 아니야. 이 정도 갖고 뭘.”

“······수, 수고하셨습니다!”

물론 정리가 끝나자 이하린은 자신이 사고를 쳐서 다른 사람들이 고생했다는 사실이 미안했는지 열심히 눈을 데굴거리며 우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런 이하린을 바라본 아리엘은 괜찮다는 듯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려주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손을 씼으러 간 상황이었기에 평소의 성격이 튀어나오는 모양.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마.”

“그치만 이건··· 제가 너무 민폐를······”

“괜찮습니다. 상황 자체가 당황스러웠던 거지 이런 건 딱히 큰 문제도 아니니까요. 이런 사고 정도는 얼마든지 치셔도 됩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선물해준 검- 그 검을 그녀를 향해 흔들어주었고, 이하린은 내 행동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조금 붉어진 눈시울로 말없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어우. 근데 웃기긴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상상도 못 한 복병이 숨어 있었네.”

“동의한다. 사건에 연루될 만큼 실력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빠르게 손을 씻고 나온 두 사람이 이하린을 바라보며 황당함과 감탄, 그리고 다소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옆의 남궁설아도 조금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같이 위타극과 싸웠던 만큼 이하린의 실력 자체는 알고 있었는지 딱히 충격받은 모습은 아니었고, 그와 반대로 이하린의 실력을 전혀 모르고 있던 그들은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허탈한 심경을 토해냈을 따름이었다.

“업륜 소유자에 검강도 한 번에 뿜어내고, 어마어마하네 진짜. 근데 여태까지 어떻게 하나도 몰랐지? 혹시 님 그런 거 좋아함?”

“······네?”

“힘을 숨긴 찐···”

팍- 사카타의 손이 오늘에만 다섯 번째로 리베르테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제발 무례하게 좀 굴지 말라고 이 머저리야.”

“오우? 오늘 좀 친다 너?”

“맞을 짓을 하지 말든가 그럼.”

“아니··· 그냥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는 거 아님? 봐봐. 저기 님? 님도 한 따가리 하시는 거 같은데 어케 저랑 앞으로 친구 하쉴?”

“아니요. 그건 좀······”

“······!!”

소심하게나마 단호히 되돌아온 대답- 계속 쭈굴거리고 있던 이하린의 입에서 한 치의 고민 없이 흘러나온 목소리에 리베르테는 순간 충격받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질문부터가 반쯤은 장난이었고, 입꼬리를 보면 진짜 충격받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건 이하린으로서도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이었는지, 순진한 그녀는 리베르테의 반응을 진짜로 오해하고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내 그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그,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하지만.

“저 녀석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

“맞아 하린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아니, 너네. 나 취급 왜 이럼?”

사카타와 아리엘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이하린의 말을 뚝- 잘라먹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진심으로 조금 울컥했는지 리베르테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쏘아보았다.

물론 그들은 그걸 가볍게 무시했을 뿐.

“그런데 조금 신기하긴 하군. 이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제껏 몰랐지?”

“하린이가 약간 좀 실전 파라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방금은······ 아니면 업륜이 있으면 그게 그렇게 쉬운 건가?”

“아니, 그건 아니야. 업륜의 마력이 조금 더 쉽긴 해도 일단 감각을 알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내 말에 사카타는 신기하다는 듯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이하린은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량 자체가 뛰어나다는 말이군.”

“그··· 아마 특성의 영향도 있었을 거에요.”

“특성? 무슨 특성인지 말해줄 수 있나?”

“아, 검을 잘 다루게 해주는 특성이에요.”

“재능 쪽의 특성인가? 좋은 특성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카타는 이하린이 보여준 탄검강이 무척이나 감명 깊었는지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고, 이하린은 그게 부담스러웠는지 슬쩍 시선을 피해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화제를 돌려주길 원하는 모양.

그렇기에 나는 분위기도 환기할 겸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그 순간 아리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갔다.

“하린이한테 너무 눈독 들이지 마.”

그것도 다소 뜬금없는 소리로 말이다.

“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하린이는 이미 임자 있는 몸이거든.”

“······네?”

순간 몸을 흠칫한 이하린이 놀란 눈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리엘이 무슨 소리를 할지 무섭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카타는 담담히 말을 받아냈다.

“갑자기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의 관심은 전혀 없으니까 전혀 걱정 안 해도 된다.”

“그으래? 그럼 어떤 의미의 관심인데?”

“그냥 저런 기량이면 협력전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우리 팀도 나름대로 목표가 있어서 그쪽으로 흥미가 생기는군.”

“······.”

사카타는 그말과 함께 곁눈질로 나를 힐끔 바라보았고, 아리엘 또한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들의 대화에 이하린은 여러 의미로 부담스러운 듯 슬금슬금 빠져나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는데······

“?!”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발견한 아리엘이 그녀의 팔을 확- 하고 붙잡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다시 또 이상한 말을 꺼내왔다.

“나도 그런 의미로 임자 있다고 한 거야.”

“아, 이미 정해진 팀이 있었나? 실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아쉽군.”

“그래그래. 팀은 이미 정해졌다구.”

“······?”

아리엘의 손에 붙잡힌 이하린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런 이하린을 바라보며 아리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러니까 확실히 말해두는 건데······”

아리엘은 갑작스레 짓궂은, 그러면서도 진지한 눈빛을 내게 보내왔고, 나는 그 시선에 순간 의아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모두 포기해. 하린이는 내꺼니까.”

“······넵?”

그녀는 그렇게 나를 바라보며 뜬금없는 말을 전해왔고, 정작 그 말의 당사자. 그 옆에 있던 이하린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을 뿐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했던 대로 회랑의 직원이 찾아왔고, 그와 동시에 찾아왔던 용건이 이미 끝났던 사카타와 리베르테 그리고 남궁설아는 내게 인사를 한 뒤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자신들의 숙소로 되돌아갔다.

물론- 아직 남아있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나는 잠시 다른 볼일부터 보는 중이었다.

“음······ 여기 구조가 이러니까, 그럼······”

그렇게 내부를 살펴본 직원은 워치를 두들겨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입을 열어왔다.

“이 정도면 하루면 가능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내일 수업이 있으시다니 우선은 임시조치만 해두고 오전에 다시 와서 뼈대를 잡고, 메꾸면 시간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예! 바로 뼈대부터 잡겠습니다. 30분은 걸리니까 볼일 보고 오셔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말에 직원이 벽으로 다가가는 것까지 바라본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현관을 지나 바깥의 정원으로 걸어 나왔다.

물론 한구석엔 빼낸 돌들이 잔뜩 쌓여있었지만 정원의 넓이가 작진 않았기에 한쪽은 멀쩡하게 잘 유지되어 있었고, 그곳엔 원목으로 된 의자까지 설치되어 있었을 따름.

그리고- 그곳에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어? 벌써 나왔네?”

“30분 정도는 걸린다고 해서.”

“30분? 딱 좋네. 이야기야 금방이지 뭐.”

“······.”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돌아와 있는 아리엘과, 그녀의 옆에서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는 이하린.

잠시 그녀들을 바라본 나는 조금 전을 되새기며 아리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래서 아까 한 말은 무슨 소린데.”

“무슨 소리긴. 말 그대로지. 난 이번 협력전에서 너랑 같은 팀 안 할 거야. 그리고 하린이도 내가 데리고 갈 생각이구. 괜찮지?”

“······아니 원래부터 별 생각 없었긴 한데, 그것보다 이거 사전에 얘기된 내용인가요?”

“그··· 저도 처음 듣는 얘기이긴 한데······”

“하린이는 그럼 나랑 팀 하는 거 별로야? 나한테는 하린이가 꼭 필요한데······ 응?”

아리엘이 이하린의 양손을 꼭 그러잡으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 이하린이 당황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

“아, 아니요···! 그, 그런 건 아니에요···!!”

“그래? 그럼 문제없네? 해결! 땅땅!”

“······.”

그렇게 얼떨결에 넘어가 버린 이하린은 동공을 떨어대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이하린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말하자면··· 나는 승천제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있어. 그래서 딱히 누구랑 팀을 한다거나, 그럴 계획도 없었고.”

“응. 천하 너는 그럴 것 같았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찾아와서까지 그런 말을 한데는 이유가 있긴 할 거 아니야. 다른 것보다 일단 그게 뭔지부터 말해봐.”

“역시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아.”

내 말에 아리엘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정말이지 상쾌하고 맑은 미소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너 사카타네 팀에 대해 들은 거 있어?”

다시 또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왔다.

“들은 적은 없지만 짐작 가는건 있지.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친 적이야 있었으니까.”

“그래? 누군데?”

“그 둘에 마르네랑 이솔라. 그리고 3명 더 있긴 한데 이름은 몰라. 맞지?”

“응! 맞아. 들어보니까 걔네는 4월 말부터 협력전 연습하려고 팀을 짰다 하더라구.”

그런데- 아리엘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걔네도 그렇게 사이좋은 조합은 아니거든? 걔네가 왜 팀을 짰는지 알아?”

“아니, 나야 모르지.”

“협력전에서 너를 이기는게 목표래.”

그 말에 아까 전 사카타와 리베르테가 찾아와 건넸던 제안과 내게 보여줬던 태도가 떠올랐고,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러자 아리엘은 천천히 설명을 덧붙였다.

“3월도 지나가고, 4월도 지나가고, 어느새 벌써 5월이야. 이제는 애들도 천하 너가 얼마나 강한지 정도는 잘 알고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알고야 있었지.”

“······.”

“하지만 단순히 생도 중에서 1등인 거랑 타천자를 처치하고, 수호자급 마수를 단독으로 토벌하고, 등천의 업을 달성한 거랑은 옆에서 보기엔 조금 느낌이 다르지 않겠어?”

“······.”

“이래서야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같은 생도라 말하기가 민망하잖아.”

그리고 그 순간-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그렇게 내 모습을 그 눈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런데 그거 알아?”

“······뭐를?”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적어도 여기까지 온 애들 중에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걸 얌전히 받아들일 사람은 없어. 그건 물론 누구나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래서-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렸고, 이내 그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단 한 번이라도 유천하 너를 이기는 거.”

“······.”

“이번 승천제에서 그걸 목표로 하는 애들이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많을 거야.”

“······그래?”

“아, 당연히 실력 차이까지 모르는 건 아니야. 일대일로 너를 이기겠다는 애들은 아무도 없으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줘.”

“아니, 딱히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관심이 없다는 쪽에 가까웠다.

아이들의 호승심이나 향상심이 딱히 나쁜 마음가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같이 어울려주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나와 그들 사이에는 조금 큰 벽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유망주들 정도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상대해볼 만하겠지만, 사실상 큰 의미는 없는 정도였고 유일하게 신경 쓸만한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승천제에 큰 관심이 없을 테니 이러나저러나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 심드렁하지?”

아리엘은 내 속을 들여다본 것 마냥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이해해. 천하 너 정도 실력이면 이런 데에는 큰 관심도 없을 테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랑 너가 같은 수준은 아니긴 하잖아.”

“······.”

“그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거야. 애초에 이미 같은 수준이라기엔 누가봐도 확연히 벌어진 상황이니까. 누가 일개 생도랑 상위권 랭커님을 같은 상대로 생각해주겠어?”

하지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고, 그리고는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그래서 너를 이겨보고 싶은 거야. 혼자서는 무리여도, 협력전이든, 다른 형식이든. 단 한 번이라도 말이야. 그런 취급을 당연스레 받고도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무도 들러리가 되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너도 그러고 싶다고?”

아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나도 이번에는 좀 진지하거든.”

“······이유는 알겠네.”

“그래. 그냥 마음 편히 누군가의 들러리가 되어주기에는 나도 이번에는 좀 기합이 많이 들어가버렸거든. 너가 전해준 말 덕분에.”

그러니까-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너한테 구해지는 게, 너희가 위험한 일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는 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나도, 나도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걸.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어.”

너한테도, 그리고······ 한테도.

그렇게 아리엘의 말은 작은 속닥거림으로 이어졌고, 제대로 흘러나오지도 못한 채 그 입속으로 다시 천천히 삼켜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하고자 했던 말을 알 거 같았다.

그렇기에.

“그래서 이걸 말해주고 싶었어. 결정하고 나서 다른 누구보다 너한테 처음으로. 직접.

“······.”

“그러니까 협력전에서 보여줄게.”

나는 순간적으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내게 내밀어 진 그녀의 손- 그 작은 손을 마주 잡고 천천히 손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손등의 인사가 아닌, 평범한 인사.

그렇게 나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결의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이 순간 교차한 시선 너머로 전해지는 아리엘의 표정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무척이나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