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라인 (3)
그렇게 뒤통수를 한대 더 얻어맞게 된 리베르테는 억울하다는 듯 뭐라 말을 토해냈지만, 녀석은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거. 그거 하나 물어 본 거 갖고······”
물론 싸늘한 눈총을 받으면서도 침대는 어디게 편하다느니, 자기는 키가 커서 킹사이즈로 바꿨다느니, 전신 안마의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느니 계속해서 중얼거렸지만 저 말에 대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뿐.
“그래서. 말에 다가올 승천제 때 협력전을 같이 뛰고 싶다··· 그 말을 하러 온 거라고?”
“그렇지. 이런 말은 메시지로 보내는 것 보다는 직접 말하는 게 예의 같았으니까.”
“솔직히 톡만 보내도 됐을 텐데 말이야.”
“······같이 뛴다는 게 팀을 말하는 건가?’
“아니, 상대 팀으로 뛰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간에 들려온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사카타가 건네온 말을 되새겨보았다. 협력전을 같이 뛰고 싶다는 말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말이다.
일단- 우선 이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승천제 행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건 원작에서는 승천제가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라는 것과, 승천제라는 축제 자체가 일종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마찬가지로 원작의 이하린 또한 비슷한 이유로 승천제에 큰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물론 괜히 무리하다 다쳐서 병실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하린은 그저 마지막 날 퇴원해 솜사탕을 먹으며 돌아다닌 게 전부였을 뿐.
그렇기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껏 승천제 때 예정돼있는 행사들에 대해 따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고, 그저 때가 되면 적당히 장단이나 맞춰 줄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승천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런데 상대로서 뛴다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이지?”
“······음?”
“엥? 모른다고?”
세부적인 것까지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고, 나는 승천제 진행방식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아직 따로 공지가 나온 적은 없잖아.”
“뭐야 진심으로 한 말인가 보네? 방송 정도는 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럼 얼추 구성은 알지 않아? 당장 길가는 사람 한 명 붙잡고 물어봐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그렇지.”
“······뭐? 그게 말이 돼?”
당연히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이곳에 온 지 이제야 3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런 걸 봤을 리 있겠는가?
하물며 승천제의 진행에 대해서는 원작에서도 정말 대강 넘어간 부분이었기에 그런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저 지나다닐 때마다 들려오는 생도들의 대화을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감을 잡고 있는 게 전부라 해도 무방했을 수준.
그렇기에 나는 그냥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야 속세에 나온 지 얼마 안 됐거든.”
“······응?”
“······흠?”
그러자 내 말에 둘은 잠시 멈칫해서는 가만히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아! 뭐야 그럼 역시 소문대로 너······!
“은거문파 출신이라는 말이 맞았던 건가?”
“은거문파······ 뭐 그렇긴 하지.”
동시에 탄성을 토해내며 마치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오우쉣!! 하긴! 어쩐지 이상하더라. 너 정도 되는 녀석이 어디서 나왔나 했거든? 내가 무련에서 먹은 짬밥이 얼만데 말이야!”
“오버하기는···! 그것보다. 은거문파면 혹시 무련에 등재는 된 문파인가? 아니면 아예 신비무맥? 아, 일인 전승일수도 있겠어.”
“야야! 인마. 아니, 지가 더 오버하네.”
“아,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실례했군.”
그리고는 저마다 다소 흥분한 기색으로 말을 건네왔는데, 아무래도 내가 이슈가 되다 보니 내 출신에 대해서 평소에도 이래저래 여러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었다.
“······아니, 뭐. 딱히 상관은 없는데.”
하지만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진짜 출신-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을 천마신교에 대해 알 방법은 없었으므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고, 그러자 리베르테는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반짝거리며 빠르게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 그래?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그럼 뭔데? 사카타 말처럼 일인 전승? 아예 알려지지 않은 곳이야? 아니면 천무궁이나 동천처럼 옛날에 활동했던 곳? 그것도 아니면 아예 유럽 쪽 결사? 소수민족의 비전 기예?”
“일인 전승인 건 맞고, 내가 알기론 따로 기록에 남을 만한 활동을 한 적은 없어.”
“오··· 너 같은 녀석을 키운 곳인데도?”
“확실히 이건 조금 신기한 이야기로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천마신공이 일인 전승일 뿐이지 신교 자체는 사실상 여러 단체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규모의 집단이었고, 기록에 남을 만한 활동을 한 적이 없기는커녕 시조로부터 시작해서 대대로 무림에 이런저런 족적을 남긴 문파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 세계의 일은 아니었을 뿐.
그렇기에 나는 녀석들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적당히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티르유나 이하린에게 들려줬던 정도로만 적당한 수준으로. 더 캐묻지 않을 만큼 말이다.
“원래는 오래된 무맥이라 했으니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르지. 하지만 내가 무공을 배울 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은거했다는 기록만 남아있는 상태였고, 무공의 전승만 계속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들었어.”
“무공이 깊이도 얕진 않을 테니 정말 한참을 이어져 온 무맥일 수도 있겠군 그럼.”
“아! 그럼 넌 왜 나오게 된 건데? 이렇게 은거를 깨고 나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던 질문.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야······”
“그야······?”
그리고.
“사부님이 타계하셨으니까.”
내 대답에 방 안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었고, 이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리는 아이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곤 예상치 못한 듯싶었는데,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하긴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당황스러웠겠지.
하지만 모두 어차피 꾸며낸 사연이었으므로 내게는 별거 아닌 이야기에 불과했다.
“사부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길 등천회랑에 가서 많은 걸 배우라 하셨었거든.”
“······.”
“그리고 침식이 심해져서 내가 나올 때쯤엔 사문의 비처에도 점점 침식이 진행되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었어. 혼자 그곳을 지키고 있어 봤자 아무런 의미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된 거다- 그렇게 나는 태연하게 스스로 지어낸 배경을 늘어놓았고, 내 말에 그들은 잠시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는듯싶더니 이내 가라앉은 표정으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이었다.
“······침식. 그렇지. 그랬겠네.”
“중국 쪽 접경지도 더 늘고 있으니··· 쯧.”
그리고는.
“······.”
“······.”
조금 주제를 잘못 잡아버렸다는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들은 기묘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애먼 바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싸해져 버린 실내의 분위기.
아이들은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미안해하는 듯 싶다가도, 들은 내용에 조금 안타까움을 느끼는듯했는데 그게 실례라는 걸 알기에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인 것 같았다. 동시에 이 분위기에 난감함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까지 엿보였고 말이다.
역시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감정을 숨기는 데는 조금 미숙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도 한번 씁쓸해한 뒤 바로 털어냈던 이하린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이해는 가는 반응이었고, 이쯤 되면 더 궁금해하지도 않을 거란 판단이 들었기에- 나는 그냥 화제를 돌려주었다.
애초에 지어낸 배경이었던 만큼 나로서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으니까.
“그래서 협력전은 어떻게 되는 건데?”
그러자.
“······어? 아. 어. 협력전? 아. 그치!”
“아···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새어버렸군.”
그런 내 태도에 잠시 눈을 깜박거리던 둘은 이내 내 말을 빠르게 받아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리베르테는 대놓고 안도했다는 듯 표정을 풀어냈고, 사카타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는 선에서, 그러면서도 얼굴에 드리웠던 경직을 풀어내며 입을 열어왔을 따름.
“그래··· 우선은 설명부터 해줘야겠군.”
그렇게 사카타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우선 승천제가 3일 동안 진행되는 건···”
“그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그렇군. 그리고 승천제의 기간 동안 다시 각각 개인전과 협력전, 그리고 집단전이 개최된다는 것도 들은 적 있나?”
“딱 거기까지만.”
“그래? 그럼 세부적인 걸 설명해주지.”
사카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분위기를 환기하려는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개인전은 너도 경험해 봤을 거다.”
“경험해 봤다고?”
“그래. 이번 시험 때 겪어보지 않았나?”
“시험. 아, 타임어택.”
“······정확히 말하자면 타임어택이 아니라 단계별 토벌인데. 아니, 유천하 네가 한 건 타임어택이 맞긴 했지. 그래. 바로 그거.”
“응? 아 맞네. 얘 그랬었지.”
그럼 사실상 개인전 1등은 확정이네- 옆에 있던 리베르테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그다음으로 협력전은 일종의 배치고사 같은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단체로 입장해서 공적을 가리는 건가?”
“그렇지. 정확히 말하자면 각각 팀을 이뤄서 실제 공략대를 꾸렸다 생각하고 어느 팀이 더 많은 성과를 내느냐 그런 방식이지.”
“아, 그럼 배치고사 때처럼 전체 입장이 아니라 몇몇 팀끼리 분할로 입장한다는 거고, 상대로서 같이 뛰고 싶다는 말은 다른 팀으로 경쟁하고 싶다는 거였군.”
“오. 정확해 정확해. 바로 그거야!”
“그리고 어느 팀이랑 같이 입장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란 것이고?”
“그래. 그래서 우리가 널 찾아온 것이지.”
사카타는 그리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리베르테 또한 이제 알겠냐는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존재했다.
“근데 나와 같이하고 싶은 이유가 뭔데?”
물론 승천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나쁜 모습을 보여주던 실질적으로 영향이 가는 부분은 없겠지만 기왕 경쟁인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물며 등천회랑의 승천제는 이곳저곳에 방송까지 된다고 들었으니 아무리 유망주로서의 호승심이라 한들 나와 경쟁을 하고 싶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지 같아 보이진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결과가 너무 명확하게 예상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에게 그 부분을 물어보았고, 그러자 내 말에 사카타와 리베르테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그리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뭐 그런 걸 물어. 이유야 하나밖에 없지.”
“맞는 말이다. 그거야 당연히 우······”
띠리릭-! 띠리릭-!
그 순간- 갑작스레 울려 퍼진 인터폰 벨 소리에 그들은 하던 말을 멈추었고, 그렇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왜냐하면- 지금 열심히 울려대는 저 벨 소리가 의미하는 건 무척이나 간단했으니까.
***
기묘한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는 실내.
갑작스러운 방문도 방문이었지만 그녀들의 구성 또한 신기했으니, 인터폰을 받아들었던 나는 그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건 다른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
그렇기에.
“······.”
“······.”
“······.”
아이들은 서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는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렇게 굉장히 어색한 공기만이 맴도는 적막 사이에서 처음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리베르테의 감탄사였다.
“······오우야.”
참으로 짧고도 여러 의미가 담긴 한마디.
리베르테의 말에 우리는 순간적으로 다소 민망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민망해하는 건 나와 이하린뿐인 듯하였고, 그녀와 같이 이곳에 방문한 아리엘과 남궁설아는 그저 이 상황이 불편한 듯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건 신경도 안쓰인다느듯 다시금 묘한 표정 속에 말을 이어나갔다.
“도대체 이 시간에······ 여기에 왜 얘네가? 뭐야뭐야 유천하 이거 아주 발랑까······”
“음소거.”
“······읍읍? 읍읍읍? 읍! 읍!”
우웅-! 헛소리를 내뱉는 저 입에 마스크를 덮어씌워야 하나 고민되던 순간이었는데, 다행히 녀석의 헛소리가 더 이어지기 전에 아리엘이 빠르게 조치를 해주었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행동에 다른 아이들 또한 잘했다는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린 건 덤.
그렇게 읍읍- 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곤 다시 적막이 찾아온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세 명.
약간의 곤란함과 함께 흥미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리엘과 조금 불편해 보이긴 하지만 큰 상관은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남궁설아. 그리고 이 난데없는 상황에 혼자 잔뜩 쪼그라든 채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는 그녀- 이하린까지.
이곳에 사카타와 리베르테가 와있을 줄 몰랐던 건 모두 마찬가지인듯 싶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제각기 달랐고, 마찬가지로 이 상황에 대한 사카타와 리베르테의 반응 또한 그녀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읍읍! 읍읍읍?”
“제발 눈치 좀 챙겨라 넌.”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 갑작스레 울린 인터폰 소리에 알림을 확인해보니 그곳에는 저 세 명- 아리엘을 필두로 남궁설아와 이하린이 문앞에 서 있었는데, 그 순간 인터폰을 타고 실내에 울려 퍼진 그녀들의 목소리에 나는 우선 그녀들을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숙소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괜히 되돌려 보내봤자 조금 전 리베르테가 그런 것 처럼 괜한 오해만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
“······.”
“······.”
당연히 다들 유망주였던 만큼 아이들끼리 서로 친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분명 서로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을 터였지만 아무래도 모두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게 당황스러웠던 듯 모두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애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로선 왜 이 둘이 여기에 있는 건지, 그리고 둘은 왜 그녀들이 이곳에 온 것인지. 서로의 방문이 조금 당황스러운 모양. 하물며 이하린은 다른 이들과 거의 안면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점점 작게 움츠러든 채 동그란 눈만 데구루루 굴려대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래도 이 상황의 원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질문을 건네보았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건데? 그것도 남의 숙소까지, 이런 조합으로···?”
“아··· 음, 우선 용건이 있어서 찾아오긴 했는데, 이렇게 같이 오게 된 건 우연이야.”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그녀- 아리엘은 천천히 말을 고르며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그녀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나는 너한테 직접 말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찾아오는 중이었거든? 그런데 오는 길에 공원에서 하린이랑 설아가 서로 엄청 쭈뼛거리면서 서 있지 뭐야?”
“······쭈, 쭈뼛거린 적은 없어요.”
“응.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치만 보니까 거의 1분에 한마디가 나올까 말까 하던걸···? 아니야?”
“······.”
아리엘의 말에 남궁설아가 조금 곤란하다는 듯 슬쩍 이하린 표정을 살펴보았고, 동시에 이하린 또한 조심스레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허공에서 교차하는 둘의 시선.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예.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그녀들의 사이는 상당히 어색해 보였고,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일들이었던 만큼 그런 그녀들의 반응이 영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물론 서로 성격이 모난 건 아니었기에 대화를 나눌 일이 잦았다면 또 몰랐으나, 모난 건 아니어도 둘 다 평범하진 않았을 따름.
남궁설아에게 이하린은 자신의 검을 지적한 데다 대련에서 자신을 꺾은 사람이면서도 전장에서 함께 싸운 동기였을 테고, 이하린에게 남궁설아는 자신이 써내려간 주연인물이자 어쩌다 보니 무례를 저지르게 된, 그러면서도 같이 묘한 일을 겪은 아이였을 터.
그래서인지 남궁설아는 병원에서도 이하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를 내비쳤었고, 이하린 또한 원작의 기반까지 더해져 상당히 복잡한 심경으로 남궁설아를 대하고 있는듯했으니- 그런 만큼 소심한 이하린과 조용한 남궁설아는 서로 단둘이 대화를 나누기에는 확실히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에도 내가 치료를 받고 올 때마다 저 둘이 내 병실에서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여러 번 목격했을 정도. 그건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니, 아리엘은 서로 서먹해 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 너희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
“······.”
그녀들의 시선이 말없이 벽으로 향한다.
“뭐, 어쨌든···! 그래서 둘이 뭔 얘기를 하고 있나 들어봤는데 너한테 궁금한 게 있는 것 같더라구. 그래서 나도 천하 너한테 볼일이 있겠다, 어차피 혼자 오면 괜히 이상한 오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같이 온 거야.”
“······왜 메시지로 안 하고?”
“그야 나름 중요한 말이니까 그렇겠지?”
“어차피 이따가 3학구로 올 거 아니야.”
“아, 오늘은 3학구엔 안갈 생각이었거든.”
아리엘은 막힘없이 그렇게 말을 이어나갔고, 아무래도 사카타와 리베르테의 영향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장난기 하나 없이 다소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니, 가라앉았다기보다는 그냥 짓궂은 기색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지만, 오랜만에 보는 태도였기에 조금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차피 3학구? 뭐야. 너희 혹시 뭐 평소에도 야밤에 따로 만나고 그러는 거야?”
어느새 아리엘의 언령을 떨쳐냈는지 리베르테가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다소 능글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어왔다.
아무래도 또 이상한 오해를 하는 모양.
“오··· 어쩐지, 어쩐지, 요새 매일 붙어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오더니만··· 요거요거. 응? 말하는 뽐새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나봐?”
“으음······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한번 들어나 볼게.”
그렇게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리베르테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척이나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는 표정.
하지만 물론 그 표정과 말투와는 다르게 그녀의 내부에는 점점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사카타도 리베르테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 또한 녀석이 과연 어디까지 헛소리를 하나 한번 지켜나 보자는 심정 속에 녀석의 입을 바라보았을 뿐.
그런데 그 순간.
“에이~ 다 알면서 무슨. 야밤에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에, 숙소까지 찾아올 사이······”
“두, 두 분은 그런 사이 아니에요!”
우리가 따로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하린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팍-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