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라인 (2)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건네진 물음- 그 목소리는 아리엘을 머릿속의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어주었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아리엘은 고개를 들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너 아침부터 되게 멍해 보이네.”
“······어, 어?”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그래도 조금 멍해 보였고, 그녀의 친구들은 아침부터 계속된 그런 아리엘의 상태가 조금 신경 쓰였을 따름이었다. 서로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시간이 시간이었던 만큼 그녀들은 아리엘이 왜 저러는지 이유가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야? 나 완전 멀쩡한데?”
“그래? 심경이 되게 복잡해 보이는데.”
“그럼~ 우리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게?”
“······점심 뭐 먹을지?”
그렇게 바보 같은 표정으로 바보 같은 대답을 돌려준 아리엘의 모습에 그녀의 친구들은 일제히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아니야?”
“아니야. 바보야.”
차라리 평소였다면 이런 무방비한 그녀의 모습은 즐거운 놀림거리였겠지만, 자신의 친구에게 루타텔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고 있었던 그녀들로서는 이번만큼은 그녀를 놀리지 않고 다시 질문을 건네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꽤 직접적인 물음이었다.
“그렇게 신경 쓰였어?”
“······.”
그리고- 그 물음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아니라 대답하고 싶기는 한데 마냥 숨기기에는 자신이 대놓고 심란해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아직 고민의 정리가 덜 끝났으니 그거는 조금 곤란한바. 그렇기에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물론 이것 또한 그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인 건 맞았으니 말이다.
“음··· 아. 천하가 활약한 걸 보니까 조금 기분이 심란했었나 봐. 엄청 대단했으니까.”
“우리 아리는 자기가 거짓말할 때마다 눈 깜빡이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거짓말 하지 마. 안 그런 거 다 아니까.”
“정말? 확신해? 진짜루?”
“······아니거든?”
하지만 당연히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시간이었던 만큼 그녀의 친구들은 그게 중점이 아니었다는 걸 간단히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뭐. 그러면 그렇다 해줄게. 그럼 아리엘 넌 그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데?”
본인이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다면 억지로 캐묻고 싶지도 않았고, 아리엘이 루타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얼마나 민감해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들은 아리엘의 엉성함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을 뿐이었다. 평소에 서로 짓궂게 굴긴 해도 그래도 10년을 가까이 같이 지내온 친구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화제를 돌려주었다.
“응? 어떻게 생각하냐니···? 모가?”
“수호자급을 한 번에 보내버린 거지 뭐기는 뭐야. 타임어택으로 짐작은 했지만··· 참.”
“근데 공격은 그렇다 쳐도 근원석의 위치는 어떻게 바로 파악해 낸 거래 유천하 걘? 방벽이 깨져나간 건 정말 한순간이었잖아.”
“······.”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 화제를 돌려주기 위해 꺼낸, 그러면서도 흥미를 갖는 주제는 다시 아리엘을 곤란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기에.
“그래서··· 우리 똑똑이님이 생각했을 때는 그게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 거라 생각해?”
“······.”
방법은 무슨- 그게 이 순간 아리엘의 머릿속에 스쳐지간 생각이었고, 그녀의 뇌리에는 중간고사 기간 때의 기억이 떠올랐을 뿐.
그때 이하린과 자신은 유천하의 특성이 그림자의 장막 너머를 즉시 관측해낼 수 있다는 사실과, 그걸 통해 유천하는 마력방벽의 제거 없이도 근원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건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따름.
하지만 그날 새벽까지 이어진 실험을 통해 유천하의 특성이 실제 그러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시 중간고사 때의 기록이나 대규모 토벌전에서의 영상기록이 그 사실을 완벽하게 뒷받침해주었다.
그러니 방법이라 한들 뭐가 있겠는가?
유천하는 그냥 눈으로 보고 베어낸 것일 터였다. 티르유의 공격이 순간이지만 분명 마력방벽을 깨트렸고, 유천하는 그 순간을 노릴 기반도, 역량도 충분히 갖고 있었으니- 그건 결국 그의 실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으음··· 아마 그냥 우연이 아니었을까?”
“굉장히 무난한 대답이네. 뭐··· 그거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긴 하겠지만.”
물론 그 사실이 담고 있는 무게는 무척이나 무거웠고, 그건 매사에 무신경한 유천하마저 다른 곳에 밝히기 보류했을 만큼 공개 시 상당한 파란이 일어날 만한 정보였다.
애초에 처음 알게 된 것도 유천하가 상식에 대해선 바보에 가까웠기에 가능했던 일.
아니, 어차피 유천하도 공략자인 만큼 굳이 숨겨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괜히 사실을 밝혔다간 유천하는 사실상 그날부터 계속 공략현장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 특성에 그런 실력을 갖춘 사람이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기에는 세상엔 그 능력을 필요로하는곳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결국 이 부분은 유천하가 원할 때까지 비밀로 해주기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제 일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현장에 뛰어드는 걸 선택했겠지만, 유천하는 업을 쌓기보다는 조금 더 기량을 발전시키는 걸 선택했고, 그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로 위험한 현장에 뛰어들게 되는 건 이하린도 자신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친구들이라 하지만 그건 유천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함부로 말해 줄수는 없는 노릇- 그러므로 아리엘은 그저 넌지시 가능해 보이는 의견만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이라 해도 어느 정도 실력이라 봐야 되지 않을까? 천하가 쏘아낸 검강이 검강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범위기의 화력으로 밀어붙였다 생각해도 될 것 같던데.”
“범위? 아. 그러네. 유천하 걔가 쏘아낸 게 무지막지하긴 했지. 마수의 체적이 24m였으니까, 못해도 10m는 뻗어 나갔지?”
“난 그게 그렇게 날아가는 건 처음 봤어.”
“맞아. 무련애들이 완전히 까무러치더라.”
그러자 그 의견을 덥석문 그녀들은 이내 그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시작했다.
“그럼 그 정도 범위랑 화력을 마법으로 치환하면 마력 값이 어느 정도 나올까?
“음······ 우선 심층마력이 18,319 AC.”
“방벽은 깨진 틈에 찔러넣었으니까 재생력을 고려해도 저항력은······ 5,000 AC 즘?”
“그럼 체적대비로 생각했을 땐 표층마력 값을 뚫으려면 최소 고위급 마법은 써야겠네. 근원석 위치만 알면 6천인데, 화력으로 걸려 잡으려면 확률을 삼등분만 내도 최소 만 단위로 마력을 쏟아부어야 할 테니까.”
“천하는 마법이 아니라 검을 사용한 거니까 소모량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걸?”
“오러 AC 치환 평균값 아는 사람···?”
비록 화이트라인에 소속되어있는 건 아리엘과 티나 단 두 사람뿐이었지만 그렇다 한들 다른 이들도 분명 등천회랑에 입학했을 만큼 수재들이었고, 그녀들은 순식간에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모 값을 역산해나갔다.
“······마력의 밀집력을 생각하면 값이······”
“아니지, 그것보다는······ 해서 이 정도?”
“그 정도면 확실히 차이가······ 그럼 이건?”
그렇기에 아리엘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며시 대화에서 빠져나왔을 뿐.
그리고는 저들끼리 열띤 토론을 시작한 자신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아리엘은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었을 따름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저런 게 아니었고, 그녀의 고민은 따로 있었으니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
그렇게- 아리엘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아빠가 침식영역 밖으로 나왔다는 것도, 그러면서도 저에게 연락 한번 보내오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유천하가 그런 아빠와 같은 전장에서 활약했다는 것도 모두 자신을 심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리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건 따로 있었으니. 그건 그날- 유천하가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말에 담긴 내용이었고, 유천하로부터 그런 말을 전해 들은 이상,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루타텔인 이상. 그녀로서도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고민해봐야 했다.
왜냐하면-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담담한 기색으로 유천하가 전해준 말. 아빠가 헤어지기 전에 했다는 말.
바로 그 말은.
-승천제에서의 활약. 기대하겠대.
아리엘 화이트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기엔 충분한 한마디였으니 말이다.
***
고요히 가라앉은 황혼의 시간- 오로지 내 숨소리만이 들려오는 적막한 공간 속에서 나는 호흡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미약한 주홍빛은 점점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고, 벽 한구석에 걸려있던 시계는 다시, 내가 운기를 시작한 지 벌써 3시간이 지났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에 나는 천천히 들끓던 내력을 가다듬으며 아직 하복부에 응어리져있는 마력의 밀집을 한 번 더 살살 어루만져 보았다.
역시 순수한 기운 그 자체라 그런 걸까?
비록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몰두했을 뿐이었지만, 생각보다 마력의 흡수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지난 일요일 하루 동안 2할을 녹여냈다면, 이 짧은 시간 동안 녹여낸 마력의 양은 다시 반푼. 물론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시간 대비로 생각한다면 상당히 진척이 빠르다고 볼 수 있었다.
만약 일반적인 심법을 익힌 상태였다면 섭취한 기운을 하단전에 안치시켜놓고 다시 단전 내부로 살금살금 녹여내야 했겠지만, 천마신공의 운용은 전신을 기반으로 하니 기운을 받아들임에서도 단전이 비해 속도는 확실히 더 빠르다는 느낌이었다. 기운의 융해를 전신 속에 녹여내니 더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속도대로라면 이번 주말이면 모두 녹여내겠다는 판단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의문도 들었다.
대체 근원석의 본질은, 그리고 침식의 본질은 무엇이길래 이렇게 순수한 기운으로 정화될 수 있는 걸까? 침식 자체는 모든 생명체에게 끔찍하게 작용하였지만,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근원석은 이처럼 삼라만상의 본질에 가까운 순수한 마력을 내비쳤다.
물론- 아무리 여러 정화과정과 가공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세계의 요소로 자리 잡은 기운들은 아무리 이와 똑같이 정화해본다 한들 그 기질 자체가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처럼 아무 부작용 없이 손쉽게 녹여낼 수 있는 순수한 기운으로 화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슬슬 3학구로 갈 채비를 하면서, 그와 동시에 나는 머릿속으로 만상세계에 대해 다시 또 그 부분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차원, 세계, 업, 인과, 그리고 다시 본질.
그것은 단순히 검을 휘두르고, 스스로 수양을 쌓아 마음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과는 분명 또 다른 별개의 이야기였고, 그렇기에 다시 그건 현대사회에 살았던 일반인이자, 무림에서 살았던 한 명의 무인에게는 역시나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개념들이었다.
만상의 눈이 모든 것을 직시할 수 있다고 한들 현상을 규정하는 건 다시 나의 인지.
물론 이 세계의 지식을 학습함에 따라, 그리고 원작의 기억들을 되새겨봄에 따라 대략이나마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았고 이래저래 알 수 없는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띠리릭-! 띠리릭-!
갑작스레 울려오는 인터폰의 알림 소리.
“······.”
참고로- 새롭게 배정받은 화이트라인의 숙소는 블랙라인과는 사뭇 다른 구조로 되어 있었다. 당장 구성만 따져보아도 블랙라인은 일종의 호텔식으로 이루어져 호화로운 건물에 각자의 방이 주어지는 방식이었다면 화이트라인은 조금 더 독립적인, 그러니까 다소 호화스러운 단독주택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또한 건물의 외부에는 다시 정원이 둘러져 있고, 숙소의 넓이 또한 확실히 넓어져 간이 수련실로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무척이나 방음이 잘되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처럼 숙소의 가운데서 생각에 잠겨있으면 외부의 기척도 차단되어 잘 느껴지지 않게 되었고, 방문객이 정원을 넘어 다가오는 게 아니라면, 내부에서 누군가의 접근을 바로 간파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띠리릭-! 띠리릭-!
그렇기에 나는 한쪽 벽면에 설치돼있던 인터폰이 토해내는 소리에 현관을 향해 빠르게 기감을 확장해보았다.
그러자- 그렇게 감지된 인기척.
“······?”
나는 기감으로 전해진 익숙한 기척에 빠르게 만상의 눈으로 벽을 투과해 상대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보았다. 왜냐하면 저 녀석들이 갑자기 나를 왜 찾아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면 모를까 이렇게 찾아올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띠리릭-! 띠리릭-!
하지만- 역시 잘못 감지한 게 아니었고, 동시에 나는 한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아.”
그렇기에 나는 인터폰으로 다가가 보았다.
계속해서 울리는 소리도 거슬렸지만, 생각해보니 인터폰으로 확인하면 될 걸 나도 모르게 습관대로 행동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탓. 애초에 녀석들이 왜 찾아왔는지 이해가 안 가면 직접 물어보면 그만인 일이었는데, 문명의 이기를 눈앞에 두고도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으니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웠다.
어쨌든- 나는 바로 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기기의 화면 속에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고, 그리고 다시- 그와 동시에.
-오? 드디어 받았네.
-수련 중이었다면 미안하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따름이었다.
***
나는 아무말없이 녀석을 지켜보았다.
“오··· 아무리 화이트에 공실이 많아도 그렇지 여긴 아예 다 쌔삥 수준인데?”
“······.”
“근데 가구는 의외로 다 기본 가구뿐이네. 님님 가구 신청은 따로 하나도 안 하심?”
용건이 있다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기껏 안으로 들여보내 줬더니 녀석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리베르테 녀석은 찾아온 볼일이 뭔지는 얘기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신이 나서 남의 집을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마치 제 집인 것처럼 방문부터 열어 재끼는 건 도대체···?
그렇기에 순간 어이가 없어서 녀석이 언제까지 저러나- 잠시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같이 들어온 사카타가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신 사과하마. 미안하다.”
담담하게 전해진 사과- 그렇기에 나는 그 말에 잠시 뭐라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았지만, 생각해보니 리베르테도 어떤 의미론 마르네와 비슷한 부류라는 게 떠올랐기에 나는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기에 우선.
“뭐야 냉장고는 왤케 텅 비ㅋ···!”
의념으로 녀석의 뒤통수부터 후려쳤다.
“아, 아니 갑자기 왜 때리는 건데?!”
“시끄럽고, 와서 용건부터 말해.”
“오우 쉣···! 무미건조하기는.”
리베르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리슬쩍 내 눈치를 보고는 얌전히 뒤적거리던 냉장고를 닫고, 다시 우리가 있는 거실로 걸어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를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 눈을 찡긋거렸는데 굉장히 불쾌했다.
어쨌든 그렇게 리베르테는 자연스레 가운데 있는 소파로 향했고, 이내 마치 자신이 이곳의 집주인 것처럼 소파에 주저앉아 서 있는 나와 사카타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왔다.
그리고-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지.”
“······.”
“흠. 다들 왜 그렇게 서 있어? 자자.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들 앉아봐. 어서.”
리베르테는 그리 말하며 남의 집 소파를 팡팡- 내리쳐가며 씨익 웃어 보였고, 내 옆에 서 있던 사카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가만히 후- 한숨을 내쉬었을 따름이었다.
“······한 번 더 사과하지. 미안하다.”
마치 같이 다니기도 수치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사카타는 그 말과 함께 리베르테에게 다가갔고, 녀석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손으로 그 뒤통수를 팍-! 후려쳤다. 그러자 리베르테가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사카타를 째려봤지만 그는 이 정도야 익숙하다는 듯 그 시선을 무시하며 나를 바라보았을 뿐.
참으로 성격이 극과 극이라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저 녀석들을 집으로 들인 건 일단 나였고, 나름대로 저 둘도 주연인물이긴 했으니 나는 그저 속으로 한숨을 한번 내신 뒤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소파로 걸어갔다.
“괜찮으니까 너도 그냥 앉고, 우선은 왜 갑자기 찾아온 것인지 용건부터 말해봐.”
그리고는- 나 또한 쇼파 한쪽에 걸터앉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본론을 꺼내보았다.
“······.”
“······.”
그러자 그들은 서로 시선을 한번 교환하더니 이내 같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이번 승천제에서 협력전 상대를 정······”
“그래서 가구신청은 왜 안 한 건데?”
사카타의 손이 다시 한 번 더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