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08화 (108/205)

각자의 마음 (4)

“업륜을 갖고 있어도 그러려니 하구, 등천자가 됐어도 그러려니 하구, 하린이한테 무공을 가르쳐 줄 때도, 평소에도, 심지어 이론 스터디를 할 때도 그렇고······ 천하 얘는 참.”

“천하씨가 참······ 무신경하기는 하죠?”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펴보는 이하린.

“음······ 솔직히 이런 건 함부로 입에 올리기도 조금 그렇지만, 천하씨는 나중에 승천자가 되더라도, ‘아. 승천자가 되었군요. 그렇네요.’ 그냥 이러고 마실 것만 같아요.”

그렇게 이하린은 마치 성대모사를 하듯 목소리를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그 순간 지켜보던 아리엘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린이 뭐야. 설마 지금 천하 목소리 따라 한 거야? 되게 잘 따라 하네?”

“아, 아······ 그, 그런가요?”

“응! 방금 되게 그럴듯했어. 말도, 내용도.”

“······가, 감사합니다.”

아리엘의 칭찬에 다시 얼굴이 붉어진 이하린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나는······.

“······.”

나를 두고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물론 예상했던 반응하고 다른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가호에 대해 말해줘도 정작 거기엔 관심이 없다는 듯 이렇게 이제까지의 태도나 이야기하며 놀려먹고 있으니 나로서는 기분이 조금 미묘할 수밖에 없었던 탓. 이것도 평소에 쌓아온 행실의 결과인 걸까?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업륜이고, 가호고, 등천자고,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 것들도. 애초에 만상세계와 관련된 요소들은 분명 내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아직 내 업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마주하고서도 저런 반응을 내비쳤던 것이다.

아니, 물론 평균적으로 보면 나도 대단하기야 하겠지만 원작에서 주로 다뤄졌던 건 대부분 주연인물이나 승천자.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하이랭커급의 공략자들이었을 뿐.

그렇다 보니 당연히 내 무의식 속 기준은 현실과 상당히 큰 괴리감을 띠고 있었다.

당장 티르유만해도 작중 후반부에선 하이랭커가 되어 단신으로 멸화급 마수와 대적했고, 아리엘이나 남궁설아, 사카타 같은 주연들도 업륜정도는 기본 4, 5획 이상씩은 들고 활약하였다. 게다가 그때는 당연히 아이들도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는 중이었기에 대부분은 진작에 등천자가 된 상태였고, 하물며 이하린과 진시우는 세계침식이 시작되고 나서는 승천자가 되어 심연에 뛰어들었으니 겨우 등천자가 됐다 한들 느낌이 오겠는가?

내 목표도 목표였고, 인식도 그러했으니 나로서도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만- 그리 생각하니 조금 흥미롭긴 했다.

지금까지야 승천자라 해도 그냥 소설 속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그러려니 했었지만, 막상 실제로 승천자를 만나보니······

“근데에··· 저 방금 그렇게 비슷했어요?”

“응! 천하 따라 한다는 게 확 느껴졌어. 하린이 성대모사도 잘하는구나?”

“······헤헤.”

지금 내 눈앞에서 마냥 해맑게 방실거리고 있는 그녀가 어지간해서는 3년 안에 승천자가 될 거란 사실이 참 미묘하게 다가왔다.

승천자 사이에서도 각각 차이는 있겠지만, 경지 자체만 놓고 보자면 엇비슷하긴 할 터.

물론 이하린도 할 때는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다른 이의 사소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쉽게 울고 웃는 평상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냥 평범한 아이처럼만 느껴졌으니- 이런 그녀가 언젠가는 그 루타텔과도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게 참으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일생의 과업이라 할 수 있는 목표도, 이하린을 대입해 생각해봤더니 순식간에 말랑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아, 물론- 이하린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이하린은 검에 대한 재능만 놓고 봐도 가능성이야 원래부터 무척 높긴 했다. 아무리 특성의 백업이 있다고 하지만 신검합일이나 의념의 습득과정. 그리고 전투 시의 모습을 보면 그녀 자체도 검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났다는 느낌이었고, 다시 카룬드와 위타극을 상대로 보여줬다는 활약만 들어봐도 이하린은 성장 속도 또한 다른 이들에 비해서 상당히 빠르다 볼 수 있었다.

얼마전까진 의념조차 몰랐던 아이가 이제는 능숙하게 검강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단순히 성장 속도만 놓고 보자면 나보다도 그녀가 더 빠르다고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리 간단히 이야기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았지만 말이다.

‘······이하린이 승천자가 될때쯤이라면.’

나는 잠시 몇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그때의 내가 과연 아직도 이곳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무림으로 돌아가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분명한 건 3년이라는 시간은 내게도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다. 언젠가 그녀가 지금의 나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사실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애초에 나 또한 재능은 확실한 편이었고, 서로 자라온 환경과 보내온 시간이 있었으니 그녀와 내 경지가 비슷해지려면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터. 아니, 내가 가만히 정체하고 있을 리도 없으니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녀에게는 언젠가의 목표겠지만,

나에게는 바로 앞에 놓인 목표였을 뿐.

이미 처음부터 내 목표는 3년 안에 초절정의 벽을 넘어 완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고, 지금으로선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이야기였다. 방만하지 않고 마음속의 화두를 붙잡아 계속 나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아. 맞다 천하야?”

“······음?”

그렇게 잠시 다음 경지에 대해 생각 해보고 있자니 아리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근데 넌 어쩌다 거기까지 가게 된 거야?”

“거기? 아, 스페인?”

“응. 거기 거기.”

무슨 질문인가 했더니 이거였나. 생각해보니 나도 이와 관련돼서 할 말이 있긴 했었다.

“원래부터 예정되어있던 건 아니었잖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포상 받으러 간다면서 갑자기 그런 대규모 현장에는 왜 끼어든 건데? 아니면··· 혹시 등천의 구도자 일로 간 거였어 그것도?”

그렇기에 나는 잠시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들을 치우고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줬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응?”

그러자 내 대답에 질문을 건넨 아리엘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이하린도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렇기에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등천의 구도자 차원에서 기량측정을 요청해와서 간 거였는데, 그곳을 선택한 거 자체는 내 의견이었어.”

“기량··· 측정이요?”

이하린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예. 처음 계약을 맺었을 때 예상했던 제 기량과 실제로의 기량이 많이 달라서 회의에서 그런 의견이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회의? 대회의에서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어··· 근데 기량측정이 꼭 필요했대?”

“너도 저번에 말했잖아. 나도 이제 등천자가 됐으니 종종 현장에 뛰어들게 될 거라고, 그래서 그쪽도 내 기량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대. 동료의 실력을 파악해두는 것도 실제 공략에선 중요한 요소라면서 말이야.”

“음··· 그렇긴 하겠네.”

내 말에 아리엘이 납득했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렇게 등천의 구도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지금 나는 이하린에게 받아온 물건을 전달해줄 생각이었다.

원래는 오자마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녀들의 상태가 미묘했기에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 아리엘과 가호로 분위기가 한번 환기된 상태라 그런지 아무래도 지금이 이야기를 꺼낼 가장 적절한 타이밍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와 관련돼서 하린씨한테도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드릴 것도 있고요.”

“······네? 저한테요?”

그렇게 이하린에게 말을 꺼냈더니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두 눈을 깜박거렸다.

“예. 사실 포상에 관한 연락이 따로 안 갔던 것도 이와 관련된 이유였다고 합니다.”

“네? 아······ 저는 측정이 필요 없어서요?”

“예.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를 부른 건 기량측정의 의미가 컸으니까요. 거기에 이상한 이유도 하나 더 있었고요.”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요- 그렇게 이어진 내 말에 이하린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렇게 나는 아까 전 일을 천천히 되새겨보며 그녀에 천천히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등천의 구도자에서 나오기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씀드리자면······”

아까 전 루타텔이 자리를 떠난 직후- 우리, 그러니까 나와 티르유는 바로 등천의 구도자로 복귀했다. 그가 떠난 마당에 그곳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었고, 목적이었던 기량측정도 무사히 마무리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결국 원래의 목적이었던 에테리얼 크리스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여해주기로 한 사람이 사라졌으니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되기는 힘든 노릇.

-원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참.

그래도 티르유로선 최대한 구색을 갖춰주고 싶었는지 그녀는 본부에 복귀하자마자 나르화리얀을 찾아갔는데, 하필이면 나르화리얀 또한 어디론가 사라진 상황이었기에 티르유는 결국 조금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게 직접 포상을 수여해줄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가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축하해. 등천자가 된 것도, 랭킹에 올라간 것도.

물론 나로서야 귀찮은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게 그저 만족스러웠고, 그렇게 나는 그녀로부터 예정되었던 포상을 건네받았을 뿐.

하지만.

그 순간 티르유가 내게 건네준 케이스는 두 개였고, 그걸 건네주며 들려준 배경은 내게 있어선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까 가기 전에 하린이 건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었지? 사실 정말 별거 아니었어. 이건 네가 대신 하린이한테 전해줘.

포상에 관해 첫 의견이 제시된 건 3월 말.

그녀가 말하기를 그때만 해도 우리 둘 모두에겐 소소한 포상이 수여될 예정이었던 모양이었고, 그건 포상의 의미가 생도임에도 불구하고 타천자와 맞서 싸웠다는 것 자체를 치하하는 게 중점이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허나- 그와 관련된 포상을 미처 지급하기도 전에 내가 위타극을 토벌해 등천자가 되어버렸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 우선은 등천자가 된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연이은 타천자 토벌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내게 주어질 포상의 등급이 재조정 되었다 한다.

그리고 또한.

마찬가지로 두 현장에 모두 참전했던 이하린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현장에 있었던 집행자의 의견을 통해 그녀에게도 공적이 있다는 게 밝혀진 덕분에 그녀에게도 에테리얼 크리스탈의 지급이 확정. 그렇게 최종적으로 그녀에게는 여명급이, 내게는 황혼급을 지급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니 성과를 생각했을 때, 천하 네가 대우에 부족함을 느낄수도 있겠다는 의견이 나왔어. 이번에 등천자까지 됐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회의에선 수여방식만이라도 조금 더 특별대우를 해주기로 한 거야.

예정된 포상이 다를지언정, 그걸 참작하고서라도 내가 이룬 성과가 너무나 확연하다 보니 회의에선 저런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게다가 거기에 기량측정의 일까지 겹치고, 다시 승천자들의 컨디션 조절 안건까지 겹쳐지면서 나와 승천자 루타텔의 단독대면이 성사되었으니, 괜히 이하린을 같이 불러봤자 그녀가 상대적으로 소외감만 느낄 테니 나중에 따로 수여해주기로 결정되었다는 말.

그리고 물론.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엔 정말 불필요한 배려였고, 그렇게 느낀 건 티르유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자신이 회의에 들어가 있었다면 그냥 둘 다 같이 불렀을 거라는 말과 함께 내게 이하린 몫의 에테리얼 크리스탈까지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말이다.

물론 나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애초에 너희 둘 다 이런 건 신경 안 쓰는 성격이지? 그니까 부탁할게. 오늘 수고했어.

어쨌든, 그렇게 본부에 방문했던 처음의 목적은 생각보다 허탈하게 끝맺음 지어졌고, 그녀의 말처럼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나는 이렇게 양손에 각각 케이스를 하나씩 들고 회랑에 복귀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제가 받아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설명을 끝마치면서도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하린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다시 한 번 떠올려봐도 여전히 이상했고, 뭔가 전체적으로 일 처리가 상당히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하린에게는 아니었던 모양.

“나름대로 이해는 가는 이유네요. 누구 의견이었는지도 알 것 같기도 하구······ 넵.”

이하린은 조금 떨떠름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아무래도 반응을 보아하니 원작의 저자답게 등천의 구도자의 체계나 인물들에 대해 짐작 가는 부분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저렇게 쉽게 납득한 이상 나로서도 뭐라 말하기 모호할 뿐이었고, 그렇기에 나도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갔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지금 이게······”

덜컥- 나는 그 말과 함께 한쪽에 내려놓았던 검은색의 케이스를 들어 올려 그녀에게 살며시 내밀어 주었고, 당연히 이 속에 들어있는 건 바로 가공 된 에테리얼 크리스탈.

“하린씨에게 지급된 여명급 에테리얼 크리스탈입니다. 대신 축하드리겠습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하린은 여전히 떨떠름해 보이는 얼굴로 내가 건넨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이해는 했어도 그녀로선 이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나보다.

“그, 근데······ 저, 정말 제거 맞는 거죠?”

“제거는 따로 있습니다. 하린씨거에요.”

“아, 아니··· 그게··· 아무런 얘기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받게 되니까, 뭔가··· 먼가······”

사전에 이야기를 들은 게 없던 만큼 그녀는 아무래도 이 상황이 조금 얼떨떨한 듯싶었는데, 갑작스레 이런 걸 받게 되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말을 건네주며 그녀를 향해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 하린씨거 맞으니까 잘 쓰세요.”

“······아! 네, 넵! 가, 감사합니다앙!”

그러자- 그제야 이하린도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인 듯 진심을 담아 고개까지 꾸벅 숙여 인사를 전해왔고, 그리고는 이내- 마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방실 거리며 케이스를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갑자기 받은 선물이 기쁘긴 한 모양.

그녀의 표정이 점점 행복속에 녹아내렸다.

그렇기에 잠시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아리엘이 그녀에게 작게 짝짝- 박수를 쳐주며 마치 부럽다는 듯 말을 건네왔다.

“축하해! 하린이 되게 좋은 거 받았구나?”

“앗. 가, 감사합니다!”

“하린이는 여명급에, 천하는 황혼급. 지금 기준이면 마력도 엄청 늘겠네? 마력 쌓으려면 얼마나 고생해야하는데··· 부럽당······”

“······?”

그런데- 나는 그 순간 건네진 아리엘의 말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너 요새 마력 부족해?”

“응?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구. 그냥 마력은 이래저래 많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흔들리는 동공-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뭔가 숨기는 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굳이 숨기고 있는 걸 캐묻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적당히 말을 돌려주었다.

“근데 여명급은 너도 구할 수 있지 않아?”

“응? 무슨 소리야. 여명급이라도 근원석 하나 제대로 캐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래도 여명급이잖아. 그럼 못 구해?”

“아니··· 뭐. 학회에 요청을 넣으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건 좀······”

그렇지?-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잠시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나도 여명급은 여태까지 3개나 지급 받았어서······ 더 요청하는 건 솔직히 너무 미안하단 말이야. 내가 받는 만큼 다른 애들한테 갈 기회가 줄어드는 거일 테니까.”

“3개? 학회에 소속된 게 언제부턴데?”

“기원학회에 소속된 거 자체야······ 12년? 5살 때 특성이 자연개화 돼버려서 바로 학회 산하 교육기관에 들어가게 됐었거든.”

“······5살이면 꽤 오래됐네.”

“뭐. 그렇지. 그래서 8살 때 한번, 12살 때 다시 한 번, 그리고 15살 때도 또 받아서 사실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 많이 받긴 했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나는 그녀의 대답 속에서 루타텔에 대한 방향은 완전히 배제되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녀의 가치관을 짐작해 볼 수 있었을 뿐.

아무래도 그녀는 원작처럼 부친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보였고, 아까 루타텔도 그렇고 아리엘도 그렇고 서로의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려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상당히 비슷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뭐······ 그냥 부럽다고 하긴 했는데 나도 정말, 지금 당장 마력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야. 오히려 요새 수련하는 방향성도 마력의 제어를 중점으로 하는 중이니까.”

“······그래?”

“응! 언령을 사용해서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사는 체내의 마력보다는 체외의 마력을 다루는데 숙달되어야 해. 제어력 이상의 마력은 솔직히 많이 비효율적이거든.”

그녀는 그 말과 함께 허공의 마력을 움직여보았다. 자신의 마력을 기반으로 세계에 퍼져있는 마력에 동조시켜, 다시 틀어낸다.

우웅-! 허공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의 격류.

그녀는 손위에 그 마력을 응집시키더니 이내 휙휙- 휘저어 마력을 다시 대기 속에 흩어버렸고, 그러면서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마력이 많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지겠지만, 정신력을 가다듬어서 제어력이 더 늘어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그게 더 좋으니까. 먼 이야기지만 제어력만 열심히 갈고닦아도 마력이 부족해질 일은 없을걸?”

“······세계에 퍼져있는 기운을 이용해서?”

“어? 들은 적 있나 보네? 응. 그거야.”

아리엘은 조금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말한 게 마법의 경지에 대한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

그렇기에 저런 아리엘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순간 루타텔이 보여줬던 광경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계에 스며들어있던 의식을 그러모아, 다시 마력과 공명시켜 세계의 퍼져있던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던 모습. 그건 분명 무척이나 대단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건 그게 아니었을 뿐.

내가 떠올리고 있던 건 무학의 경지였다. 육신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삼라만상을 받아들여 내기의 경계마저 벗어나 자연의 기운을 그 몸에 받아들여 무를 펼쳐낼 수 있는 경지. 물론 그건 마법사들이 도달하는 경지와는 궤가 다른 곳에 위치해 있겠지만, 적어도 그 결과의 사유물만큼은 비슷해 보이긴 했다.

결국- 사람의 몸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다 보면 결국 같은 결과를 추구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한계를 벗어날 길 자체가 제한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공도, 마법도 분명 교차하는 극점은 존재했다. 단전의 경계를 무너트려 만물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도, 마음의 경계를 무너트려 만상의 염원을 그러모으는 것도.

물론- 내가 그런 경지에 도달한다 한들, 내 손으로 루타텔이 펼쳐낸 광경을 재현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현상의 근간.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과정만큼은 따라 할 수 있을 터였고, 그것만으로도 분명 할 수 있는 범주는 무척이나 넓어질 터였다.

그래서일까?

새삼스레 만류귀종이라는 생각이들었다.

“······.”

“······으음.”

그런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리엘은 지금의 화제- 에테리얼 크리스탈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조금 민망했는지, 화제를 돌리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내왔다.

“아, 그것보다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그리고 그건.

“그런데 기량측정을 왜 거기로 간 거야?”

마침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던 것 하고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였다.

“왜 하필 그곳으로 갔냐는 거지?”

“응. 그건 갑자기 일어난 재해였으니까 원래는 다른 게 예정되어있었을 거 아니야.”

그리고 이건 이하린도 궁금한 부분이었는지 옆에서 케이스를 폼에 꼭- 그러안은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그녀도 대답을 듣고 싶다는 듯 이쪽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 또한 그 이유와 관련되어 아리엘에게 전해줘야 할 말이 있었고 말이다.

“그렇지. 원래는 대련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서 거기로 가게 된 거니까.”

“그래?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나 보구나?”

“어. 원래 대련을 해주기로 했던 분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기다리자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니까 그냥 시간도 남고, 손도 남고, 필요도 있어서 거기로 찾아갔지.”

“상당히 험한 곳까지 찾아갔네.”

“그분도 어차피 그곳에 계셨으니까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낼 바엔 기량측정도 대체하고,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기도 했었거든.”

“······그분? 만나봐?”

“어지간해선 만나기 힘든 사람이잖아.”

“······?”

하지만 이 순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해서 물어보는데. 너 뉴스 안 봤어?”

그렇게 혹시나 싶어 건네본 내 질문에,

태연자약하게 되돌아온 그녀의 대답.

“응···? 왜? 유명한 사람이라도 있었어?”

그리고- 그런 아리엘의 반응에 옆에 있던 이하린도 무언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그 모습을 통해 나는 그녀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말 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하린도 나한테 정신 팔려 다른 사람에 대한 걸 말해주는 것까진 깜빡했던 모양.

그렇기에.

“······유명한 사람이야 있기는 했지.”

나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담담한 기색으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들은 아리엘의 반응이 어떻게 돌아올지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루타텔씨. 너희 아버지를 만나고 왔어.”

“······.”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 그 세글자의 단어에 아리엘은 한순간에 얼어붙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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